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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시온의 찬송(시편 65:1-5)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아름다운 보좌에 있는 그 자신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나, 집회의 주인으로서 그리고 회중의 대언자로서 하나님께 아뢰는 것으로 시작하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음을 살펴 보자.

Ⅰ.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1절)

1. 겸손한 감사로써.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나이다." 즉 원하는 긍휼을 기대하면서, 또 그 긍휼이 올 때까지 기다림으로써, 그 긍휼이 도착하자마자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찬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고 계실 때, 우리는 찬양을 가지고 맞으러 나가야 하며, 새벽녘까지 기다려야 한다. "찬송이 주의 거룩한 뜻에 완전히 만족하면서 또 주의 긍휼에 신뢰하면서 기다리나이다." 우리가 매사에 감사 드릴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것이 찬미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찬미가 주의 열납을 기다리나이다."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던" 모든 레위인들은 지정된 시간에 찬송을 부를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134:1, 2), 따라서 그들의 찬미가 그를 기다렸다. "찬송이 (단어 그대로) 주께 잠잠하나이다." 마치 주의 위대한 선하심을 표현하기에는 단어가 부족하고, 그것에 대한 조용한 경이감으로써 충격을 받았으므로 잠잠한 것 같다는 것이다. "입밖에 낼 수 없는 거룩한 번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한 경탄이 있으나", 그 침묵은 "마음을 감찰하시며 영의 마음을 아시는" 그에 의해 열납될 것이다. 그 능력에 있어서 우리들보다 뛰어난 거룩한 천사들의 찬송이 들려지게 하기 위해, 우리의 찬송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그에게 들리지 않게 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말을" 입 밖에 낸다면, "반드시 그는 삼키울 것이기 때문이다"(욥 37:20). "주 앞에서는 찬송도 침묵으로 여겨집니다"(갈대아 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즉 그 정도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축복과 찬양 위에 높이 계신다는 것이다. 찬송은 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보내져야 하나, 오직 시온에서만이, 그의 교회, 그의 백성 가운데서만 기다리고 있다. 그의 모든 일들이 그를 찬양하나(그들은 찬양을 위한 소재에 공헌하고 있다) 그의 성도들만이 실제적인 경배로서 그를 송축한다. 구속함을 얻은 교회는 시온산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계 14:1, 3). 시온에는 하나님이 처소가 있다(76:2). 거기에서 그와 함께 거하는 자들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그를 찬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참된 성실로써.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즉 서원된 제물이 바쳐질 것이다. 우리가 긍휼을 추구할 때 했던 서원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받은 긍휼을 대해우리가 감사드리는 것을 하나님께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서원하고서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Ⅱ. 그는 무엇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는가?

1. 기도를 들으신 것 때문에 영광 돌리고 있다(2절). "찬송이 주를 기다린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주께서 우리의 탄원을 허락하실 준비를 하시기 때문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주는 각 기도마다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능히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엡 3:20). 그리고 주는 친절하게 또는 친절로써 믿음의 각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시며 그가 그렇게 하심은 그의 영예로운 권한 가운데 두셨다는 사실로써 우리의 기도를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느 경우에나 그에게 그의 권한을 드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매우 궁핍해진다.

(2) 그 까닭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에게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마땅히 각 사람의 찬송이 주를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은, 다른 때에는 어떻게 행하든지 간에, 궁핍이나 환란 가운데 있을 때에는 그들의 기도가 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만이, 그리고 그들의 신앙으로 개종한 자들이 주께로 나아옵니다. 그러나 주의 집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을 때, 그때에 모든 사람이 주께로 나아와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롬 10:12, 13). 그에게로 나아가자. 담대히 나아가자. 왜냐하면 그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주를 사하여 주신 것에 대해 영광돌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까?"(미 7:18) 이것으로써 그는 그의 이름을 선포하셨다(출 34:7). 그러므로 이러한 면에서 찬송이 주를 기다리고 있다(3절). "우리 죄가 하늘에까지 닿았고, 죄악이 우리를 이겼고, 또 매우 그 수효가 많게 그리고 극악해 보이므로, 그것을 우리 앞에 나열해 놓을 때 우리는 매우 부끄러워하며, 곧 낙심할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그것이 이처럼 우리를 이기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의로움으로써 우리의 악과 균형을 이루는 척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 우리 자신의 양심이 우리를 고소하며, 우리는 답변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주의 후한 자비로, 그리고 주께서 친히 마련해 주시는 의로움을 인해 사하시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죄받지 않을 것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의 위험이 커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긍휼의 능력과 그 풍성함을 더욱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은총은 우리의 여러 가지 범죄와 우리의 큰 죄에 대한 위협적인 압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3.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던 자들을 호의로써 대우하시고, 그들에게 자기와 교제하는 즐거움을 갖게 해 주신 것에 대해 영광돌리고 있다. 먼저 죄책이 씻겨져야 하며(3절),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갈 수 있다(4절).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들어오는 자들은 그 교제 속에서 분명히 참된 행복과 충만한 만족을 발견할 것이다.

(1) 그들은 복이 있다. 그 나라가 복이 있을 뿐만 아니라(33:12).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아무리 비천한 자일지라도 그 개인이 "복이 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거룩한 은총에 대한 가장 확실한 표적과 영원한 축복에 대한 가장 확신한 담보와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이 축복을 위해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첫째, 그것은 그의 언약을 신뢰함으로써, 그에게 우리의 가장 훌륭한 감정을 쏟고, 우리의 멸망을 그에게로 향하게 함으로서 그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자로서 그와 대화를 하는 것이다.

[2]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들어오는가! 그것은 우리의 어떤 공로에 의해 추천을 받아 들어오거나 우리 자신의 수완에 의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 선택에 의해 들어오는 것이다. "주께서 택하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남겨진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실제적인 특별 은총에 의해서인 것이다. 즉 하나님은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자기에게로 접근하도록 만드신다. 그들로 하여금 가까이 나오도록 초대하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을 주시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그는 그들을 이끄신다(요 6:44).

(2)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여기에서 시편 기자는 인칭을 바꾸고 있다. "그가"(주께서 택하신 사람이)아니라 "우리가" 만족할 것이다. 이것은 그 약속을 우리 자신에 적용시키고, 적극적인 믿음으로서 우리의 이름을 거기에 두도록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음을 명심하자.

[1]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그의 집이다. 거기에 그가 거하신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의 의식이 집행된다.

[2] 하나님은 훌륭한 집을 가지고 계신다. 그의 집에는 선함과 의로움과 은혜, 영원한 언약에 대한 모든 위로가 가득 들어 있다. 모두에게 풍족할 만큼, 각자에게 풍족할 만큼 있다. 그것은 준비되어 있다.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무료이다. 돈없이, 댓가없이 주는 것이다.

[3] 이러한 것들 안에는 영혼을 만족케 하는 것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로써 모든 은혜로운 영혼은 만족케 될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교제의 즐거움을 갖게 하자. 그러면 그들은 만족될 것이다. 그것으로써 그들은 충족히 지니고 있어서, 더 이상 다른 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4.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위해서 영광스럽게 작용해 주시는 것에 대해 영광돌리고 있다(5절).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속에서 때로 그의 백성들을 꾸짖으시는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 그는 흔히 그들을 깨우치시고 활기를 불어 넣으시기 위해, 엄위하신 일로 그들에게 응답하시나, 그의 섭리는 항상 의롭다. 그는 그들에게 잘못 행하시지도 않으며, 그들을 해할 의도를 지니고 계시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을 해칠 때라도 그는 그들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다(사 45:15 참조). 그러나 오히려 이 구절은 그들의 대적들에 대한 그의 심판으로 풀이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위해 이방 나라들을 멸하시고 그 교만한 제자들에게 보복하심으로써,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기묘한" 일로써("엄위하신"을 이렇게 풀이하기도 한다), 매우 놀랍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던 일로써 응답하신다(사 64:3). 또는 "우리에게 충격을 주시는 일로써, 주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은 그 거룩한 자유가 그에 대한 우리의 경외감과 경건한 두려움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성소에서 엄위하신(무서운)" 분이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백성들이 어떠한 환란 속에 빠졌을지라도, 그리고 어디로 흩어졌을지라도, 그들을 돌보시는 것에 대해 영광돌리고 있다. 그는 "땅의 모든 끝에 있는 자의 의지"(신뢰 처)이시다. 즉, 이스라엘 자손들만의 의지처가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의지처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하나님, 그의 성전과 그 뜰에서 "멀리 있는," 즉 이방인들의 섬에 거하거나 "바다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자의 의지처"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지각이 혼돈될 때 주를 의지하고 주께 부르짖는다(107:27, 28).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써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킬 수 있으며, 우리가 그의 백성들의 엄숙한 집회에 참예해 있었을 때 뿐만 아니라 먼 바다에 있을 때에도 그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65:2 없음.

 

65:3 없음.

 

65:4 없음.

 

65:5 없음.

 

65:6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시편 65:6-13)

하나님을 자연의 하나님으로서 곧 섭리의 세계의 풍요함과 부요함으로서의 그의 권능과 주권을 살펴 보는 일은 유용한 일이요, 또한 은총의 하나님의 놀라우신 겸비를 더욱 깨닫게도 될 것이다.

Ⅰ. 그가 땅을 세우셨고, 그래서 땅은 께속 있다(119:90). 주는 "주 자신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6절), 비록 때로는 지진에 의해 흔들리지만, 처음에는 산들을 확고하게 세우셨고, 지금까지도 든든히 붙들고 계신다.

-Feriuntque summo

FuImina monts -

-번개는 가장 높은 산들을 친다-

이런 까닭으로 산들은 "영원한 산" 이라 불리운다(합 3:6). 그러나 나의 백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그것보다 더욱 견고히 서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사 54:10).

Ⅱ. 그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며, 그래서 그것은 조용해진다(7절) 폭풍 속의 바다는 흉용하며, 그것은 더욱 무서움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실 때. 파도와 물결에게 고요를 명하신다. 그러면 그것들은 잠을 자고, 광풍은 빨리 평정해진다(107:29). 그리고 바다의 이러한 변화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불변에 대한 산들의 사례에 의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바다와 그 마른 땅을 권능으로 두르신다는 사실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는 "바람과 물결을 명하시고, 그것들이 순종하는" 것으로써 자기의 거룩한 능력을 증명하셨었다. 바다를 잔잔케 하는 이런 일례에다 예수께서는 이와 비슷한 성질의 것으로서 "만민의 곧 일반," 백성들의 "훤화까지도" 진정시키신 사례를 덧 붙이고 있다. 폭도들의 반란, 천민들의 모욕보다 제어하기 힘들고 불쾌한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까지도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방법으로 평정시킬 수 있다. 또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백성들이 분노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2:1). 하나님은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가지고 계시며 영원히 그들의 훤화를 잠잠케 하실 것이다.

Ⅲ. 그는 아침과 저녁을 새롭게 하신다. 그래서 그 주기가 일정한 것이다(8절). 이처럼 낮과 밤이 일정하게 연결되는 것은

1.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의 일례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위압한다. "땅 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표적 곧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그들은 그것에 의해, 자기들은 그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어야하는 지고의 신, 최고의 주권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이 속에 하나님에 대한 가시적인 일들이 분명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징조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창 1:14). 멀고 후미진 구석 땅에 거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징조를 너무나 두려워했으므로 그것이 하나님의 징조라는 것을 알기도 전에, 하나님을 경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신 4:19).

2. (밤낮의 일정한 순환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하심에 대한 일례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두에게 위안을 가져다 준다. "주께서" 해가 떠오르기 전에 "아침되는 것과" 해가 지기 전에 "저녁되는 것을 즐거워하시나이다." 아침의 빛을 뿌리시고 저녁의 휘장을 치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듯. 그는 사람에게 은총으로 행하시고 즐거워하게 만드심으로써 우리에게 이 모두를 즐거워할 기회를 주신다. 그러므로 아무리 빛과 어두움이 서로 상반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그 사이에 있는 간막이를 치울 수 없더라도(창 1:4). 이것들은 모두 각자의 때에 세상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환영받는다. 낮의 일을 돕는 아침의 빛과 밤의 안식을 돕는 저녁의 황혼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더 반가울 것인가를 말하기는 어렵다. 파수군은 아침을 기다리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피고용인은 간절히 황혼을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조석 제사로 해석하고 있다. 선한 백성들은 조석 제사를 크게 즐거워했고, 하나님은 그것으로 언제나 영화롭게 되셨던 것이다. 주께서 그것을(단어 그대로) "찬송"하게 만드셨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아침과 매일 저녁 찬미의 노래가 레위인들에 의해 불려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일 요구되는 의무였다. 우리는 홀로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갖는 매일 예배를 우리의 매일의 업무 중 가장 요긴한 것으로, 그리고 우리의 매일의 즐거움 중 가장 기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시킨다면, 아침되는 것과 저녁되는 것을 우리는 진실로 즐거워하게 된다.

Ⅳ. 그는 땅에 물을 대어 비옥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에 대한 이 실례에 대해 다윗은 매우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 시편이 여느 때보다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두웠던 때에 지어졌거나 또는 오랜 가뭄 후에 단비가 내렸던 때에 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의 이 아래 지역의 비옥함이 얼마나 윗 지역의 영향력(감응력)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가는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하늘이 놋과 같다면 땅은 쇠와 같은데, 이것은 모든 훌륭하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온다는 -"모든 것은 위로부터"라는 것을 어리석은 세상 사람에게 잘 알 수 있도록 암시한 것이다. 우리는 언덕너머로 눈을 들어야 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 모든 축복의 원천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땅의 첫 번째 소산이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법으로써, 그것을 하늘을 향해 제물로 들어 올렸던 것과 같이, 그곳에 우리의 찬미를 돌려 보내야 한다. 모든 하나님의 축복, 심지어 영적인 축복은, 우리 위에 의로움의 비를 내리시는 것으로써 표현된다. 이제 하늘로부터 비가 내리고 풍성한 수확을 맺는 그 일반적인 축복이 여기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자.

1. 그 속에는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에 대한 것이 많이 있는데, 여기에서 생생한 표현으로 매우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1) 땅을 만드신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땅을 찾아오시고 비를 보내시며, 땅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입증하신다(9절). 그것은 자비의 방문이니, 땅의 거민들은 이에 대한 찬미를 드려야 한다.

(2) 하나님은 메마른 땅이 되게 하신 후, 그것을 비옥하게 하기 위해 그곳에 물을 대신다. 하나님 앞에서 꽃 피어난 땅의 산물이 내리게 하지만 본래의 의도에 따라 그 지면을 적셨던 안개가 있었다(창 2:5.6).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이슬같이 되어 우리들을 적셔 주시지 않는다면 메마르고 열매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가 심으신 나무들을 그는 물 주신 것이며, 그들로 번성케 만드실 것이다.

(3) 비는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한다. 구름은 이 강의 근원이며, 그 강은 아무렇게나 흐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강을 위해 잘라낸 수로 속으로 흐른다. 하나님은 빗줄기도 강물 줄기처럼 자기가 원하시는 방향으로 돌리신다.

(4) 하나님의 강은 땅을 윤택하게 한다. 비가 없다면 땅은 곧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지표의 소산물인 땅의 재물들은 그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것들보다 사람들에게 훨씬 더 유용하며 실용적이다. 우리는 금과 은 없이는 충분히 잘 살 수 있지만 곡식과 초목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다.

2. 비로부터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유익이 왔는가!

(1) 땅 자체에 온 유익. 적절한 시기에 오는 비는 땅에 새로운 모습을 부여한다.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보다(72:6) 더욱 생기있고 갱신력이 있는 것은 없다. 비가 미끄러져 나가는 것같이 보이는 밭 "고랑"에도 물이 "넉넉히" 대어진다. 왜냐하면, 그 고랑은 자주 그 위에 내리는 비를 들어 마시기 때문이다. 씨뿌리기 위해 쟁기로 파헤쳐진 그 "이랑"은 비에 의해 평평하게 되어 씨를 받아들이기에 적합하게 된다(10절). 마음의 토양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마음을 평평하게 한다. 왜냐하면 마음은 그 은혜로써 견고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해의 봄은 복되다. 그리고 봄, 곧 그 해의 처음 사분의 일이 복되다면 그것은 그해 전체가 복되다는 전조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일컬어 "하나님이 주의 은택으로 관씌우신다"(11절)고 했다. 즉 머리가 면류관으로 둘러싸이듯이, 일 년 내내 자비로 둘러싸며, 어떤 일의 끝을 그 일의 면류관이라 하듯 그 한 해의 위로를 완성시킨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진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소산을 잉태하고 있는 땅속에 있는 온갖 기름진 것은 하나님의 자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시는 곳마다 그 뒤에 그의 자비의 표적을 남기시며 (욜 2:13, 14), 그의 길을 이처럼 그 뒤에서 빛나게 하신다. 낮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의 이같은 교통은 매우 광범위하고 파급력이 크다(12절). 하나님의 자비의 "빗방울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초장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들의 초장에도 떨어진다." 사막은 사람들이 돌보지 않으며 거기에서 어떤 이득도 얻지 못하나, 역시 거룩한 섭리의 돌보심 아래 있다. 그리고 사막이 비록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지 못할지라도 온 창조물의 위대하신 은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영광에 이바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유용한 것에 대해서 분만 아니라 창조의 어떤 부분에 유용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창조주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광야는 경작된 밭과 같은 답례를 하지 못하지만 가장 비옥한 토양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비를 담뿍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한 자와 감사할 줄 모르는 자에게도 선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사하시는 선물은 매우 광범위하므로 그것으로 인해 "작은 산들이" 심지어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북방에 있는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다." 작은 산들도 하나님의 섭리의 필요성을 초월해 있지 않다. 작은 산들도 섭리의 인지(認知) 밖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하실 때, 그것들로 하여금 떨게 만드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114:6). 그가 원하실 때, 그것들로 하여금 기뻐하게 만드실 수 있다.

(2) 땅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온 유익. 하나님은 땅에 비를 예비하심으로써, 사람들에게 곡식을 주신다(9절). "지면은 식물을 낸다(욥 28:5)." 왜냐하면 곡식은 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에서 나오는 모든 곡식은 하나님 자신이 예비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땅에 비를 마련하심으로써, 사람들을 위해 곡식을 마련하셨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나머지 모든 피조물을 사람들의 발 아래 두셨고,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드셨던 것이다. 매년의 농산물은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바로 그 능력의 작용일 뿐만 아니라, 그것과 과히 다르지 않는 (우리 구세주 능력에 의해 나타난것과 같이. 요 12:24) 그 능력의 일례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고, 우리가 항상 땅에서 얻고 있는 소득은 영원히 지속되는 하나님의 선하심의 일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에게 곡식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곡식과 가축은 두가지의 주요필수품이며, 땅의 과실을 직접 다루는 농부들은 그것들로 인해 윤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두는 땅에 물을 대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인하고 있다(13절). 초장에 양떼가 놀 수 있는 것은 이것의 덕택이다(13절). 목초가 가축들로 가득하므로, 마치 그 안에 누워있는 가축들로 목초가 뒤덮여 있는 듯 보이나, 목초는 아직도 포화 상태가 되어 있지는 않다. 가축들이 매우 살쪘으므로, 그 가축들은 그들이 뜯어먹는 그 초장의 장식품이며 영광이다. 골짜기에는 열매가 풍성하므로 추수 때에는 "곡식이" 골짜기에 "덮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땅은 가장 낮은 부분이 일반적으로 가장 비옥하므로, 낮은 골짜기 땅은 고산의 5배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창조의 목적에 응답하고 있는 곡식 밭과 초장은 모두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한다"고 사람의 즐거움에 유용하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즐거움과 찬미의 소재를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추수의 기쁨보다 더한 세상적인 기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 사이에 "수장절보다" 더욱 감사를 표하면서 지낸 절기는 없었던 것이다(출 23:16). 우리가 해마다 그리고 날마다 그 은덕을 입고 있는, 이 거룩한 일반 은사 때문에 우리는 존재들 중 가장 훌륭하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더욱 증가시키고, 그가 이처럼 잘 위해 주시는 우리의 몸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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