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059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59:1

나를 위한 기도(시편 59:1-7)

이 시편의 표제는 우리에게 특별히 그것이 지어진 때를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사울이 밤에 다윗의 집을 포위하려고, 그의 감시인들의 한 무리를 보내어 그들이 그를 잡아죽일 수 있도록 하려한 때였다. 그 이야기는 사무엘 상 19장11절에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다윗에 대한 그의 적개심이 새로 일어났고, 다윗은 방금 전에 그의 투창을 겨우 벗어났을 때였다. 사울이 이렇게 그의 악의를 처음 노출했을 때, 다윗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과 교재를 계속했고, 그의 마음의 평정은 기도와 찬미에 합당한 상태를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하늘과의 교류가 근심이나 걱정이나 두려움 또는 환란 상태의(외적이건 내적이건) 초조함에 의해 방해되거나 끊어지지 않는 자들은 행복하다. 여기서는 다음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Ⅰ. 다윗은 자기가 그의 대적들의 손에서 구출되고, 그를 치려는 그들의 잔인한 의도가 좌절되기를 기도하고 있다(1,2절). "나의 하나님이여, 내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주는 하나님이시며, 나를 건지실 수 있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므로, 그 보호 아래 내가 있나이다. 그리고 주는 내게 모든 것을 충족케 하시는 하나님이 되심을 약속했으므로, 영예와 미쁘심으로 주께서 나를 건지실 것입니다. 나를 치려고 일어선 자들의 권세와 능력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나를 높이 두소서. 나로 안전케 하시고 내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안전하고 편하며, 안전하고 흡족하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나를 건져 나를 구하소서!" 그는 곧 죽게 된 자로서, 그리고 구원과 구출을 위해 오직 하나님만을 주목한 자로서 외치고 있다. 그는 기도하고 있다(4절).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사, 내 사정을 인지하시고 동정의 눈으로 그것을 감찰하시며 나를 위로하시는 주의 능력을 발휘하소서."

이처럼 제자들도 큰 광풍이 일 때, 그리스도를 깨우면서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구원하소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처럼 진지하게 우리는 우리의 영적 대적들로부터, 사탄의 시험으로부터 방어되고 구출되기를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Ⅱ. 그는 구원을 탄원하고 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탄원하고 그 앞에 우리의 주장을 내놓고 우리의 입에 변론을 채울 수 잇도록 허락해 주셨다. 즉 그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움직이도록 하는 허락을 내리셨다. 다윗도 여기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1. 그는 그의 대적들의 나쁜 성품을 진술하고 있다. 그들은 "사악을 행하는 자"였으므로, 그의 대적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이었다. 그들은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들로 하여금 자비로운 자를 쳐 이기게 마옵소서."

2. 그는 그를 지키려는 그들의 악의, 그리고 그가 그로 인해 당하고 있는 절박한 위험을 탄원하고 있다(3절). "그들의 앙심은 큽니다. 그들은 나의 더 나은 부분인 내 영혼, 내 생명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묘하고 매우 교활합니다. 저희가 나를 해할 기회를 잡고자 하여 엎드려 기다리나이다. 그들은 모두 궁과 나라에서 유력한 자이며, 부귀를 지닌 자이고 권세를 누리는 자입니다. 그들은 공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맹으로 연합하고 있으며, 실지로 함께 모여 나를 치려 하며 비상하며 그것을 수행하는 데 매우 열심입니다.(4절). 나를 해하기 위해 최고의 속력과 맹렬함을 갖고 저희가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나이다. " 그는 사울이 그를 잡기 위해 보낸 사신들의 야비한 행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6절) "저희가 흑암의 일에(그들의 밤일은 그들의 낯을 수치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종사하기 위해 그 날에 그들에게 배당된 직책에서 저물게 돌아와서 산토끼를 쫓는 개처럼 우나이다. " 이처럼 다윗의 대적들 은 그를 잡으러 왔을 때, 폭도처럼, 그에 대해 고함을 쳤다. 이처럼 다윗의 명성을 해치고자 했다. 그리하여 될 수 있다면, 군중들을 소요시켜 그를 치고자 또는 적어도 그들에 대한 군중들의 분노를 막고자 했다. 어떻게 하지 않고서는 그들은 다윗을 매우 사랑하는 군중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대해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처럼 개들로 비유되어 있는 우리 주 예수의 핍박 자들도(22:16) 소란스럽게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적어도 "민요가 날까하여 명절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희가 그 입으로" 그 마음속에 끓고 있는 "악을 토하나이다"(7절). "그 입술에는 악이 있나이다." 즉 슬픔으로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비방(42:10)과 내 명성을 찔러 손상시키는 중상이 있나이다. 그들은 사울이 칼을 꺼내어 그를 치기 위해 갈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시사했으며, 그것에 대한 과실은 거짓된 고발 자들에게 부과되었다. 만일 그 칼이 제일 먼저 그들의 입술에 있지 않았다면 그 칼은 아마도 사울의 손에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3. 그는 하나님께 대해서가 아니라(그는 결코 그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함을 인정하는 데에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의 핍박 자들에 대해서 그 자신의 무죄함을 탄원하고 있다. 그들이 그를 책망하는 이유는 완전히 그릇된 것이었다. 그는 그들로부터 그러한 취급을 받을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3절). "여호와여 이는: 나의 범과를 인함이 아니요, 나의 죄를 인함도 아니로소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께서 이것을 알고 계시는 주께서 이것을 알고 계시나이다." 그리고 다시 (4절) 그는 "내가 허물이 없으나"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 사실들을 유의하자.

(1) 경건한 자들의 무죄함은 그들을 악인의 악의에서 안전케 해 주지 않을 것이다. 비둘기처럼 해를 끼치지 않는 자들도, 그들이 마치 뱀처럼, 유해한 것처럼, 따라서 불쾌한 존재인 것처럼, 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받을 것이다.

(2) 비록 우리의 무죄함이 우리를 환란에서 안전케 해 주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환난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큰 힘과 위로가 우리에게 악하게 행하는 자들에게 선하게 행했다는 우리 양심의 증거는 불우한 날에도 우리의 큰 기쁨이 될 것이다.

(3) 우리가 우리의 무죄함을 자각한다면 우리는 겸손한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으며, 그가 해를 입은 우리의 경우를 변호해 주실 것을 간청할 수 있으며, 그는 합당한 때에 그렇게 해주실 것이다.

4. 그는 그의 대적들이 불경스럽고 무신론적이며 하나님께 대한 경멸감과 함께 다윗에 대한 적개심으로 그들 자신을 감싸고 있었던 것을 탄원하고 있다. "그들은 누가 들으리요 하고 말하나이다(7절). 하나님도 듣지 않으신다고 하나이다(10:11; 94:7)." 하나님께서 자기가 말하는 것을 마음에 두시지 않는다고 믿어온 자들이 자기가 하는 말에 개의치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Ⅲ. 그는 그 자신과 그의 주장을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에 의뢰하고 있다(5절). "주여, 재판장이시여, 나와 나를 핍박하는 자들 간의 재판장이 되시옵소서." 하나님께 대한 이 호소에서 그는 모든 창조물, 심지어 천사들의 무리도 지휘하여 심판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만 군의 여호와"로서 그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또한 하나님께서 진실로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던 정직한 자들의 편이 되시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서, 특별한 의미의 왕이며 재판장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사울의 무리들이 그를 괴롭혔을 때 그는 "만군의 여호와"로서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일어나 열 방을 벌하시"기를, 사람의 자손들 사이의 논쟁과 분쟁을 조속히 그리고 엄밀히 조사하시기를 원하고 있다(즉, 매우 확신하고 있다). 그가 찾아오실 날이 올 것이다(사 10:3). 그리고 다윗은 "간사한 악인을 긍휼히 여기지 마소서. 셀라-그것을 주목하라"라는 이 엄숙한 호소와 함께 그 자신을 그 날에게 의탁하고 있다.

1. 만일 다윗이 간사한 악인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면, 그는 긍휼을 얻을 얻을 것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대적들에 대해서는 그는 그가 전혀 범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3,4절)."이는 나의 범과를 인함이 아니오니, 주께서 내 편이 되시어, 나타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그는 그가 "간사한" 악인이 아님을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범죄 했을지라도, 그는 회개하는 범죄자가 아니었고, 그가 잘못 행했던 것을 완고하게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대적들이 간사하고 고집스러우며, 심술궂은 악인이라는 것과 또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범과를 더욱 굳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 대한 처벌은, 곧 긍휼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 왜야하면 이러한 자들은 간사한 악인들이기 때문이다.

 

59:2 없음.

 

59:3 없음.

 

59:4 없음.

 

59:5 없음.

 

59:6 없음.

 

59:7 없음.

 

59:8

하나님께 대한 확신(시편 59:8-17)

다윗은 그의 대적들의 위협적인 세력에 관하여 여기에서 하나님을 바라려는 경건한 결심과 그가 여전히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리라는 믿음의 기대로써 그 자신을 격려하고 있다.

Ⅰ. 그는 하나님을 바라기로 결심하고 있다(9절). "저의 힘을 인하여 (그의 대적들의 힘, 즉 그를 하나님께로 몰아넣는 두려움을 인하여, 또는 하나님의 힘, 즉 그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그 소망을 인하며) 내가 주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고 주를 바라 리이다."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 위험하고 어려운 때에 우리가 지녀야 할 지혜이며 의무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보루, 우리의 산성이므로, 우리가 그 안에 안전히 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은 그에게 긍휼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10절). "나의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으로 그의 선하심의 축복과 그의 인자하심의 선물로써 나를 영접하시리라. 내 두려움을 영접하시고 내 기도를 영접하시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게 내게 해 주실 것이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인자하신 하나님으로서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인자하신 하나님으로서, 즉 우리 안에 모든 선을 베풀어주시는 장본인이시며 우리에게 모든 선을 주시는 분으로서 주목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하나님께 있는 긍휼은 어느것이나 다 우리를 위해 쌓아둔 것이며, 그것은 즉시 우리에게 내려질 준비가 되어 있다. 당연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자기의 인자하심" 이라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언약의 모든 축복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언약" 이라 불리우고 있으며(사 55:3), 그것은 또한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는 그를 핍박하는 자에게 보복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그는 이것에 대한 기대를 일부는 예언의 방법으로써 또 일부는 청원의 방법으로써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두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그를 칠 구실과 그를 해할 기회를 찾고 있는 그은 대적들 또는 관찰자들에 관해 그가 예고하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 이 모든 것 속에서 그는 그의 보응을-그러나 감정적이고 복수심이 불타는 보응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믿음의 보응을-목도해야 했다(10절).

(1)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로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실 거시며, 그때에 그들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8절). "그들은 하나님이 저희를 들으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를 저희의 어리석음을 인하여, 즉 귀를 심어 주신 자가 듣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인하여 웃으시리니, 그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이방 백성들도 하나님이 비웃으리이다." 무신론자들과 핍박하는 자들은 비웃음 당하고 조소거리가 되어도 마땅하다는 것을 기억하자(시 2:4; 잠 1:26; 사 37:22 참조).

(2)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의 공명정대함의 기념비로, 세우실 것이다(11절). "저희를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만일 처벌이 빨리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할 것이므로, 오래지 않아 곧 사라질 것이다. 빠른 멸망은 그 순간 사람을 놀라게 하나 곧 잊혀지기 때문에, 그는 이것이 서서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주의 능력으로 저희를 흩으시고, 저희로 유리 하는 가운데 그들의 형벌을 방방 곳곳마다 주시할 수 있을 정도의 그러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을 지니고 다니게 하소서. 이처럼 가인 자신도 그 보복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록 살인자이긴 했지만 살해되지 않고 도망자와 유랑자가 되는 벌을 받았다.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 오고 있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서서히 그의 진노를 진행시킴으로써 지혜롭고 거룩한 결말을 이루시리라고 단정해야 한다. 그들을 그렇게 흩으시어 그들이 다시는 죄악을 행하기 위해 연합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우리 방패처럼 보호 하셨다면 그는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을 치려는 모든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낮추실 것이다.

(3) 그들은 그들의 행적대로 대우를 받을 것이다(12절). 저희 입술의 말은 곧 그입의 죄라(왜냐하면 그들의 말속에는 언제나 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하여, 다른 사람들과 그들 자신을 저주하고 거짓말한 것으로 인하여 "저희로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 혀의 죄에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더 큰 악의가 들어 있다. 더욱이, 저주와 거짓말과 교만하게 말하는 것은 가장 악한 혀의 죄에 속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공적대로 취급하시어, "그들의 혀가 그들의 패망이 되도록 만드시는" 그 사람은 진실로 비참하다.

(4)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왕으로서 그들의 멸망으로 그 자신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13절). "저희를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소서. 즉 연달아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사 마침내 그들이 완전히 멸하게 하소서. 그들로 눈에 뛸 만큼 그리고 서서히 소멸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소모되어가고 있는 동안 스스로 알 수 있게 하시고, 구경꾼들도 또한 그것으로부터 하나님이 야곱 중에 땅끝까지 다스림을 추론해 낼 수 있게 하소서." 하나님의 심판의 의도는 주께서 통치하시므로, 즉 그가 그의 뜻을 이루시고 모든 피조물에 법을 주며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일을 처리하시므로 가장 위대한 사람도 그의 제제 하에 있고 그가 즐겁게 여기시는 대로 그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는 "야곱 중에 다스리신다." 왜냐하면 야곱에게 그가 그의 법정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즉 그는 거기에 알려져 있으며, 그의 이름은 거기서 위대하다. 그러나 그는 "땅끝까지," 심지어 그를 모르는 자들까지 "다스리시나." 그는 "야곱을 위해 다스리신다"(그것은 이렇게도 풀이할 수 있다). 그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그의 교회의 유익에 시선을 기울이신다. 심지어 땅끝까지에 대한 통치는 "그의 종 야곱, 그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45:5).

(5) 그는 그들의 죄가 그들의 형벌이 되게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14). 6절과 비교하라. 그들의 죄는 그들이 다윗을 희생물로 삼으려고 노린 것이었다. 그들의 형벌은 그들이 매우 극도로 궁핍하여 그들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고기를 사냥하러 다녀야 하며 그들이 다윗을 놓친 것처럼 그것을 놓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단번에 잘리우지 않고 흩어질 것이며(11절), 점차로 소멸될 것이다(13절). 기근으로 죽는 자들은 차츰 죽어가며 그들 자신이 죽어 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애 4:9). 다윗은 그들이 빵을 구하기 위해 이 집 저 집으로 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1] 그들은 지극히 후회하면서 마지못해 그렇게 행해야 한다. "그들은 그걸 하기를 부끄러워한다"(이러한 것은 더 큰 형벌로 만든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둡기 시작하는 저녁에 그것을 행하여, 즉 다른 짐승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기어 나오는 때에 행하여, 그들이 사람 눈에 뜨이지 않도록 한다(104:20).

[2] 그러나 그들은 매우 소란스럽고 크게 불평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조금도 그들 자신을 적응시킬 수 없는 자기들의 상태에 대한 큰 분노에서 나올 것이다. "저희가 개처럼 울 것이다." 그들이 탐색하고 있을 때, 그들은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는 성난 개처럼 시끄럽게 한다. 그들이 고기를 찾을 때, 그들은 울부짖는 굶주린 개처럼 시끄럽게 할 것이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은 환란 중에 있을 때 비둘기처럼 슬퍼한다. 목이 곧은 자들은 환란 가운데 있을 때, 개처럼 소란을 피운다. 마치, "?에 걸린 들소처럼," "여호와의 분노가 가득하여" 울부짖는다. "그들은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호 7:14).

[3] 그들은 거의 위로를 얻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도 그들에 대해 매우 무정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으로 두루 다니며, 식물을 유리할"것이다(15절). 그리고 (난 외에 있는 것처럼 "저희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울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추근덕거려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는 것은 선한 의지로써가 아니라 그들이 계속 귀찮게 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지 그들을 ?아 버리려고 주는 것이다.

[4]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게 될 것이며, 이것은 초라한 상태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것이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사 56:11)이며 "배부름을 얻지 못하며 밤을 새운다." 만족을 느끼는 자는, 비록 그가 원했던 것을 갖지 못한다할지라도, 인색하게 굴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와 쟁론하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배를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그것이 채워지지 않고 그 욕구가 만족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과 그들 스스로에게 다투게 된다.

Ⅱ. 그는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기를, 즉 하나님의 섭리가 그의 찬미의 내용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찬미하려는 마음을 자기 안에 역사 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11,17절).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그는 무엇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미하고자 사는가?

(1) 그는 주의 능력과 주의 인자하심을 찬미하려 했다. 이 두 가지는 근의 찬송의 주제이어야 했다. 인자하심이 없는 권능은 두려워해야 한다. 능력이 없는 인자하심에서 사람들은 큰 혜택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를 도울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를 돕고자 하는 그의 인자하심은 마땅히 모든 성도들의 영원한 찬송이 될 것이다.

(2) 그는 여러 번, 줄곧 하나님께서 그의 환란 때에 산성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셨으므로 주를 찬송하려 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환란으로 이끄시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을 보호하시고 숨겨 주시는 그의 능력과 인자하심을 경험할 수 있게 하시며, 그를 찬송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신다.

(3) 그는 자기를 돕고, 그로 하여금 자기 의무를 행할 수 있게 하는 자신의 힘으로서, 그를 환란에서 지키고 안전케 하는 그의 산성으로서, 그리고 자기를 행복하고 편케 하기 위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서, 그가 계속하나님을 의지한 것을 인하여 찬송하고 있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되시는 주는 분명히 우리가 가장 사모하고 찬미하며 섬길 만한 가치가 있는 자이다.

2. 어떻게 그는 하나님을 찬미하려 했는가?

(1) 그는 "찬송"(노래)하려 했다. 노래란 기쁨의 자연적인 표현인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거룩한 기쁨과 감사를 발휘하고 자극하기 위해 제정된 규례이기도 하다.

(2)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 크게 감동된 자로서 그것을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기를 원하는 자이므로 "높이 부르려" 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할 것이며, 그의 인자하심을 크게 찬송할 것이다. 그것에 대한 심사숙고는 그 어느 것보다 더욱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3) 그는 그의 기분이 매우 신선하고 새로운 "아침에" 크게 찬송하려 했다. 하나님의 긍휼은 아침마다 새롭다. 그러므로 그를 찬미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

(4) 그는 하나님의 영예와 영광을 위해 그를 주목하면서 "하나님께 찬송"하려 했다.(17절).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기도를 올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우리는 우리의 찬송을 올려야하며 주님을 노래하면서 그를 우러러보아야 한다.

 

59:9 없음.

 

59:10 없음.

 

59:11 없음.

 

59:12 없음.

 

59:13 없음.

 

59:14 없음.

 

59:15 없음.

 

59:16 없음.

 

59:17 없음.




































 


Articles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