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05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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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환난 속에서의 기도(시편 57:1-6)

이 시편의 표제 속에는 "알다스헷" 곧 "멸하지 말라"라는 새로운 단어 하나가 들어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은 이 시편이 붙여진, 이미 알려진 어떤 곡조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 시편의 경우와 내용을 가리킨다고 보고 있다. "멸하지 말라. "즉, 다윗은 굴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에, 그를 죽이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그의 종들도 이 명령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다윗은 "그를 멸하지 말라"고 말했었다(삼상 24:4, 6). 또는 오히려, 하나님은 다윗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다는 뜻으로 본다. 하나님은 사울이 다윗을 핍박하도록 허락하셨지만, "그를 멸하지 말라"라는 한계선을 계속 두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시되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는 한계를 드신 것과도 같았다. 다윗은, "그 안에 복이"(사 65:8), 가장 큰 축복인 그리스도가 "있으므로," 멸망을 당해서는 안 되었었다. 다윗은 자기가 절박한 위기를 당하여 굴 속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로 향하는 가기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자기들이 위험을 당했을 때도 그 마음에 이처럼 선한 생각을 지니는 자들은 행복하도다!

Ⅰ. 그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 그리고 기도로써 자기의 힘을 북돋우고 있다(1,2절). 그 자신이 대적들에게 포위된 것을 보고 그는 그 적절한 기도와 함께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있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그는 이 기도를 다시 되풀이하고 있는데 그것은 결코 헛된 반복이 아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것은 바로 어떤 세리의 기도였다(눅 18:13). 사람들이 마음으로 하나님과 그의 긍휼에 대해 조금도 생각지 않으면서 단지 자기들의 놀라움이나 경이감 또는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또는 "주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맙소사)"라고 경솔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불쌍한 일이다. 다윗은 여기에서 매우 열렬한 감정을 가지고 "주여, 나를 불쌍히 돌아보시고, 주의 사랑과 연민으로 나를 구속하소서"하고 기도하고 있다. 자신을 하나님의 긍휼에 부탁하기 위해 그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고백하고 있다.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리이다"(1절).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음을 고백했을 뿐만 아니라 진실된 믿음과 자기 희생, 그리고 온전한 평정과 만족감과 함께 그의 영혼이 사실상 하나님만을 의지했음을 고백했다. 그는 하나님께로 가서 은혜의 보좌의 발상에서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를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다. 먹이를 찾는 새들이 병아리를 치고자 할 때, 병아리들은 암탉의 날개 아래 피신하는 것처럼,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



(1) 다윗은 자기 환란이 합당한 때가 되면 좋게 끝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 재앙이 지나리라." 그 폭풍우는 사라질 것이다. "지금 환난을 당할지라도 내가 항상 그러하지 는 않으리라." 우리 주 예수도 그의 고난 중에 이러한 사실로 그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눅 22:37).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가도다."

(2) 그 동안에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 밑에서 매우 편안했다.

[1] 그는 하나님의 성품의 선하심을 생각하면서 그 자신을 위로했다. 암탉이 어린 새끼들을 본능적으로 보호해 주듯이, 하나님께는 그 선하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구하고 보호하시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돕기 위해 날개를 타고 오시는데 이것은 신속한 구출을 지적하는 말이다(18:10). 그리고 그는 그들을 자기 날개 아래 두시는데, 이것은 재앙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에도 그들을 따뜻하고 생기있게 해 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마 23:37 참조).

[2]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과 그의 은혜의 언약으로 그 자신을 위로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이에서 좌정하신다고 일컬어지고 있으며(80:1), 그곳에서 그가 신탁을 주셨던 그 펼쳐진 "그룹의 날개"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의 하나님 되시는 하나님께 내가 날아가리라. 그리고 그의 약속은 나의 피난처가 될 것이며, 그것은 이 모든 위험을 지날 수 있는 확실한 통행권이 될 것이 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에 의해, 우리에게 그 자신을 의지할 것을 제안하고 계시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에 의해 그를 영접하고 그를 의지해야 한다.

2. 그의 모든 소망은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다(2절).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도움과 위안을 부르짖음이여,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내가 내 영혼을 들어올리고,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리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라.



(1)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인정해야 한다. 무엇이 이루어지든 그것은 모두 그가 이루시는 것이다. 그 속에서 그의 뜻이 완성되며 성경이 성취된다.

(2)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 대해 이루시는 것을 무엇이나, 그 결과에 있어서 그들을 위해서 이루어졌음이 나타날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높으실 지라도, "지극히 높으실"지라도 그는 모든 일이 그에게 선하게 역사 되도록 보살필 정도로 그 자신을 낮추시는 겸양을 가지고 계신다.

(3) 이것이 우리의 모든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그에게 부르짖어야 하는, 기도할 뿐만 아니라,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좋은 이유이다.

3. 그의 모든 기대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3절).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구원하실 지라." 하나님을 자기의 유일한 피난처로 삼아 믿음과 기도로써 그에게 날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이 자기의 방법으로 자기가 뜻하는 때에 그들을 구원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다음을 관찰하자.

(1) 어디로부터 그는 구원을 기대하고 있는가? 하늘로부터이다. 그가 이 땅 위에서는 어떤 길로 가든 피난처를 찾지 못하며, 아무 도움도 나타나 주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하라. 따라서 그는 그것을 하늘에서 찾고 있다. 위에 있는 것에 자기 마음을 둔 자들은 거기에서 모든 선을 기대할 수 있다.

(2) 그가 기대하는 구원은 어떠한 것인가?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삼키려는," 그를 파멸시키고자 노리며 그 동안에 그를 괴롭히는 일에 그들의 온갖 힘을 다 기울이는 "자의 비방에서" 그를 구원 해 주실 것을 믿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구원하시리니, 이는 저가 나를 삼키려는 자를 부끄럽게 하셨음이라." 하나님은 여지껏 나를 치려는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셨다. 그러므로 그가 내 구원을 완전케 하시리라.

(3) 그는 그의 구원을 누구의 원인으로 돌릴 것인가?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 시리로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가 말한 모든 말씀을 지키신다. 그러므로 그가 그의 백성을 위한 구원을 역사하실 때 그러한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인자와 신실하심의 은혜입은 것 이상이 필요치 않다(25:10).

Ⅱ. 그는 그의 대적들의 능력과 악의를 제시하고 있다(4절). "내 영혼이 사자들 중에 처하도다." 사울과 그 주위에 있어 다윗을 치려는 자들은 매우 맹렬하고 지독했으므로, 끝없이 그를 치려고 으르렁거리고 그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는 자들 가운데 그가 있는 자들 가운데 그가 있는 것은, 마치 사자 굴에 있는 것처럼 위험스러웠다. 그들은 불을 지폈고, 오직 불꽃만을 호흡했다. 그들은 다윗을 치기 위해 서로를 부채질하면서, 자연의 과정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지옥불을 놓았다"(3:6). 그들도 인간으로서의 이성과 동정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의 자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탈을 쓰고 먹이를 찾는 동물이었다. 그를 향해 가는 "저희 이는," 그리고 그것으로써 산산이 찢고 그를 뜯어먹기를 바라는 그 이는 죄악에 적합한 "창과 살이요," 그를 저주하고 그의 명성을 해친 "그 혀는" 베어 죽이기에 적합한 "날카로운 칼 같았다"(42:10). 해운 혀는 위험한 무기이며, 사탄의 압잡이들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친다. 그는 그에 대적하는 그들의 사악한 계획을 묘사하고 있으며(6절) 그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 하려고, 즉 나를 잡아 내가 다시는 저희의 손에서 빠져나 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도다. 저희가 내 앞에 구덩이를 퍼 내가 모르는 채 그 속에 곤두박질하도록 해 놓았도다. 교회의 대적들의 책략을 보라. 그들이 죄악을 행하기 위해 수고하는 것을 보라.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기로 하자.

1. 그것은 사실상 어느 정도 다윗을 불안케 했다.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것은 그를 위축되게 했고, 그에게 그처럼 많은 악의를 품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머리를 떨구고 생각하도록 했다.

2. 그러나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 멸망이 되었다. 그들은 다윗을 위해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거기에 빠졌다. 그들이 다윗에 대해 의도했던 그 재앙이 그들 자신에게로 돌아왔으며, 그들은 자기들의 꾀에 포위되었다. 사울이 다윗을 추격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그(사울)를" 침입했던 것이다. 아니, 사울이 다윗은 자기 수하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던 그 굴속에, 바로 그 자신이 다윗의 수중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Ⅲ.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위대하신 이름을 영화롭게 하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5절). "하나님이여 나와 내 유익에는 어떻게 되든지 간에,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는 위의 세상의 저 영광스러운 거민들인 거룩한 천사들에 의해 찬송 받으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이 땅의 모든 거민이 주를 알게 되어 찬송하기를 원하나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자신의 어떤 특정한 이익보다 우리 마음에 놓여 있어야 하며 더 가까이 놓여 있어야 하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윗이 가장 큰 환란과 치욕 속에 있었을 때도, 그는 "주여 나를 높이 드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주여 이름을 높이 드소서"라고 기도했다. 이처럼 다윗의 자손도 그의 영혼이 고통스러워,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했을 때 즉시 그 청원을 취소하고, 그 대신에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하고 제안했다(요 12:27, 28). 또는 이것은 구원에 대한 그의 청원을 강력히 주장하기 위한 탄원으로 볼 수도 있다. "주여,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면 그것은 천지의 하나님으로서 주를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우리의 가장 훌륭한 격려는 하나님의 영광에서 발췌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특별한 자비를 탄원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의 위로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주기도문에서 다른 것보다도 제일 먼저 규정하고 지시하고 있는 청원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로 되어 있다.

 

57:2 없음.

 

57:3 없음.

 

57:4 없음.

 

57:5 없음.

 

57:6 없음.

 

57:7

찬송으로 변한 기도(시편 57:7-11)

여기에서 음조가 얼마나 놀랍게 변했는가! 생생한 믿음의 행위에 의한 다윗의 기도와 호소는 여기에서 갑자기 찬미와 감사로 변하였다. 그의 베옷은 벗겨졌고, 허리에는 기쁨으로 띠를 두르고 있다. 그리고 그의 할렐루야는 그의 호산나와도 같이 열렬하였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사랑하게 하여 조만간에 그것이 찬미 속에 삼켜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어떻게 그는 찬미의 의무를 준비하고 있는가?(7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나이다." 억울하던(수그러졌던)(6절) 내 마음이 (어떤 사람들의 풀이대로) "바로 세워"졌거나, "들어올려"졌습니다 "내 마음이 확정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관해서입니다."

1. 하나님의 섭리에 관해.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의뢰"하였으므로(112:7; 사 26:3) 모든 사건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마음이 확정" 되었으니, "이 어느 것도 나를 요동케 할 수 없다."(행 20:24). 만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우리가 이처럼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 들어오게 되었다면, 우리는 감사할 큰 이유를 갖게 된다.

2.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관하여. 내 마음이 노래하고 찬송할 수 있도록 확정되었나이다. 이것은 마음이 모든 헌신 행위에서 요구되는 주된 것이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신앙에 있어서는 마음으로 행해지는 것보다 더 적절하게 해해질 주 있는 것이 없다. 마음이 확정(고정)되어야 한다. 마음이 의무를 위해 확정되어야하며 그것을 행하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주의 산만함이 없이 그것을 행하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주의 산만함이 없이 주를 섬기는" 그 의무에 전념하도록 마음이 확정되어야 한다.

Ⅱ. 그는 어떻게 그 자신을 찬미의 의무로 자극하고 있는가(8절). "내 영광이 맬지어다." 즉, 내 혀(우리 혀는 우리의 영광이며, 그것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사용될 때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다) 또는 내 영혼은 제일 먼저 깨어나야 한다. 우둔하고 멍청한 헌신은 결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해야 한다. 그 제물은 거룩한 불로써 살라져 거룩한 불꽃이 되어 올라가야 한다. 다윗의 혀는 이러한 찬송가에 앞장 설 것이며, 그의 비파와 수금이 그 뒤를 따를 것이다. "내가 깨우리로다. "즉, "내가 이 일에 죽지 않을 것이며, 졸거나 태만히 하지 않으리로다." 뿐만 아니라 "신선한 잠에서 막 깨어나는 자와 같이 자장 생기있는 상태에 있을 것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이 일을 행할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과 긍휼이 시작되는 때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과 함께 그 날을 시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총과 함께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실 때 우리는 나아가 우리의 찬송으로서 그를 만나야 한다.

Ⅲ. 어떻게 그는 찬미와 일 속에서 그 자신을 즐기고 있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와 그를 의지하는 것을 감사하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기로 결심하고 있다(9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1. 그의 마음은 매우 감동되어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는 심지어 땅을 그의 신성한 노래로 울려오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고 있다고 그 자신이 생각하는가를, 주목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

2. 그는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끌어들이기를 원했다. 그는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찬송을 공포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두려움, 그리고 사랑이 전달될 수 있도록, 또한 땅 끝까지 그의 구원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윗이 이방인의 땅으로 쫓겨나 있을 때, 그는 그들의 선을 섬기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그의 숭앙심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려 했고, 어디로 가든지 그의 신앙을 버리려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사랑하게 하도록 노력했고 그 뒤에 그것의 향기를 남기도록 노력했다. 다윗은 온 세계의 교회를 충만케 하고 있고 그리고 마지막 때까지도 그렇게 할 그의 시편들 속에서, 계속 "만민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고"있다고 일컬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미할 때 그의 말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도 요한도 그의 굴속에서 "많은 백성과 나라에게 예언한다"고 일컬어지고 있다(계 10:11).

Ⅳ. 어떻게 그는 찬미의 소재를 얻고 있는가?(10절) 그의 소망과 기쁨의 소재였던 것이("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3절), 여기에서는 그의 감사의 소재가 되고 있다.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비치고, "즉 커서 관념과 표본을 초월하고 있으며,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즉 커서 발견할 수 없나이다. 궁창으로 싸여 있는 것을 어느 눈이 볼 수 있겠읍니까? 하나님의 인자함과 진리는 하늘에 닿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물을 쌓아두듯이 이 모든 것을 하늘로 가져가며, 그 위에 그들의 소망을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는 하늘에서도 즉 윗 세상의 모든 눈부시고 복된 거민 들에 의해 찬송되고 있다. 다윗이 이 땅 위에서 그의 찬송을 가장 멀리 퍼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동안(3절) 그들은 가장 높게 하나님의 찬송을 끊임없이 들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Ⅴ. 결국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께 맡겨두고 있는가?(11절) "하나님이여, 주는 들리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그의 기도를 요약하기 위해 사용했던 단어가(5절) 여기에서 그의 찬미를 요약하기 위해 다시 사용되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소용없는 반복은 아니다). "주여 나는 주의 이름을 높이기를 원하며 모든 창조물도 주의 이름을 높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에 아무리 훌륭한 자라도 주의 이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읍니까? 주의 이 일을 주의 손에 두소서. 이것을 주께서 하소서. 하나님이여 당신이 높이 들리시기를 원한나이다. 교회의 승리에 대한 찬송 속에서 주는 하늘 끌까지 들리우시며, 교회의 투쟁에 대한 찬송 속에서 주의 영광은 온 세계에 전파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 모든 축복과 찬미보다 뛰어나십니다(느 9:5). 그러하오니 주여, 주 자신을 하늘 위에 그리고 세계 위에 높이소서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그것을 영화롭게 하셨사오니 또 다시 그것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57:8 없음.

 

57:9 없음.

 

57:10 없음.

 

57:11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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