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0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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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도엑의 사악함(시편 52:1-5)

이 표제는 이 시편과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의 간단한 언급이다. 이제 다윗은 두 번이나 자기를 죽이려고 시도했던 사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드디어 궁궐을 떠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 피신할 필요성을 느꼈다. 다윗은 무기와 식량을 얻지 못했으므로, 계략을 써서, 제사장 아히멜렉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이 모든 것을 공급하도록 만들었다. 에돔 사람 도엑이 우연히 이것을 목격하고는, 사울에게 아히멜렉이 그와 반역을 공모했다고 고했다. 이러한 혐의를 근거로 하여 사울은 모든 제사장들을 죽이라는 매우 피비린내 나는 명을 내렸고 고발자인 도엑이 그 일의 집행자가 되었다(삼상 22:9 이하).

Ⅰ. 다윗은 이 교만하고 강포한 자와 정당하게 시비를 논하고 있다(1절). 물리적인 면에서는 도엑이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무장하지 않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쉽게 물리쳤다하여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칼을 찬 자들이 예복을 입은 자들을 호통치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직책상 "강한자"(한글 개역에는 "강호한자"역주)였다. 왜냐하면 사울의 종들, 의전과 들을 감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재앙을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악을 행하는 것은 나쁘다. 즉, 사악한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찬미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더욱 나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죄를 자랑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수치를 자랑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에 그것은 더욱 수치스럽게 된다. 강한자는 흔히 해를 끼치며 "마음의 소욕을 자랑한다"(10:3). 어떻게 해서 여기에 다음의 말이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즉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 질문에 대한 악인의 대답으로 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 질문에 대한 악인의 대답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의 인내와 참으심은(그것은 그의 선하심의 큰 증거이다) 죄인들이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사악한 길로 행함으로써 남용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악행에 대한 형벌이 곧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계속 그들에게 선을 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악행을 자랑한다. 그들은 사악함 속에서 그들이 형통하는 것을, 그 속에 어떤 해로움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그에게 논박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즉,

1. 그의 죄의 사악함. "하나님은 끊임없이 선을 행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것을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끊임없이 악을 행하며, 전혀 하나님과는 다른 자요, 하나님께 거역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비가 있음을 자랑하는도다."

2. 그것의 어리석음, "너는 네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재앙으로써(그것은 매우 공교하게 계획되었고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쓰러지게 하고 멸망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는 네 자신이 실수했음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그들을 보호하시므로, 그들은 사람이 그들에게 무엇을 행하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자랑하는 반면에, 대적들은 허탄하게도 자기들의 악행을 자랑한다.

Ⅱ. 그는 사울의 궁전에서 아히멜렉에 대한 큰 책망을 내렸던 것과 같이 하늘의 궁전에서 그에 대한 큰 책망을 내리고 있다(2-4절). 그는 그의 혀의 사악함(그 다루기 힘든 악, 치명적인 독이 가득함). 그리고 그 증거였던 그의 마음의 사악함에 대해 그를 비난하고 있다. 그를 책망하고 있는 네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악의. 그의 혀는 바늘처럼 찌를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삭도같이" 자르면서 "심한 악"을 행한다. 그는 비웃으며 야유하는 말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삼키는 말, 곧 자기가 미워하던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파멸시키는 그런 말들을 사랑했다.

2. 거짓됨. 그가 이러한 악을 행한 도구는 "간사한 혀"였다(4절). 그는 거짓말을 사랑했다(3절). 그리고 그 날카로운 삭도는 "간사를 행했다"(2절). 즉, 그가 제사장들에 대한 그의 악의가 발각되기 전에 그들에 대해 매우 그럴 듯하게 감추었다. 비록 그가 에돔 사람이었지만, 그는 이스라엘 사람처럼 점잖게 제단에 참석했고 제물을 바쳤으며, 제사장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을 강제로 행했으나(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 억류된"자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더 큰 악을 행할 기회를 얻었다. 또는 여기서 말하는 혀는 그가 아히멜렉을 죽이려고 보고한 그 보고 자체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의 진상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오도되었고, 가장되어 있었으므로 그가 거짓을 사랑하고 간사한 혀를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사실을 말했지만, 증인으로서는 마땅히 해야 했으나. 사실 전부를 말하지는 않았다. 다윗이 아히멜렉으로 하여금 그런 일을 행함은 사울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라고 믿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가 말했었다면, 그가 다윗에게 베푼 호의는 곧 사울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임이 알려졌을 것이다. 우리가 말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야"라고 말할 때, 우리가 그것을 악용하고, 그것을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나타나게 만든다면, 우리는 거짓말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3. 죄의 음흉함,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는도다. 즉 그것은 네 마음이 계획한 극심한 악을 나타내는도다." 사악함 속에 교묘함과 계략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속에는 마귀적인 요소가 더 많이 있다.

4. 죄에 대한 애착,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는도다. 즉, 너는 악을 사랑하고 선한 것은 전혀 사랑하지 않는도다. 너는 거짓된 것에서 기쁨을 취하고 옳게 행하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구나, 너는 진실을 말하여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보다는 거짓을 말하여 사울을 즐겁게 해 주기를 원하는도다. "어떤 사람에게(우리의 마땅한 도리로서) 그의 몸이나 재산 또는 훌륭한 평판을 위해 호의를 베풀수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그러한 종류의 기회와 가까이 접근하게 되었을 그 때에 기뻐하는 자들은, 도엑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그것은 선보자 악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삼키는 말을 하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런 말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나쁘다.

Ⅲ. 다윗은 그러한 자의 파멸을 읽고 그런 사악함으로 인해 그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통고하고 있다(5절). "너는 주의 제사장들을 파멸시키고, 그들을 죽여버렸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라." 능동적으로 지옥의 아들이 된 자들은, 유다와 죄인 도엑처럼, 수동적으로 지옥의 아들이 될 것이다. 파멸하는 자는 파멸당할 것이다. 여호와의 제사장과 우리 하나님께 제사장이 되는 고귀한 성직자들 곧 그의 사역자들과 백성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며 멸하는 자들은 신속하고도 영원한 멸망과 함께 제거 당할 것이다.

1. 교회에서 추방당하는 선고를 받고 있다. "하나님이 너를 장막에서 뽑아내시리로다." 즉 네 장막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장막에서 (이것이 매우 타당한 풀이이다) 뽑아내시리로다. "너는 하나님의 은총과 그의 존전 그리고 그와의 모든 교제에서 끊어질 것이며, 지성소나 번제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처럼 심한 악을 행했던 그는 당연히 하나님의 전의 모든 특권을 박탈당했다. 그는 때로 하나님의 장막에 와 그의 전에 참석했으나 그는 거기에서 감금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봉사에 싫증이 났고, 하나님의 가족들을 중상할 기회를 찾았다. 그러므로 그가 거기서 제거되고 뽑힘을 당하리라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렇게 행하는 자는 우리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규례를 악용할 때는, 그 이득을 박탈당한다.

2. 세상에서 축출당하도록 선고받고 있다. "하나님이 너를 산자의 땅에서 뿌리 뽑으리라. 네가 스스로 깊이 뿌리박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땅에서 네 뿌리를 뽑으시리로다." 선한 사람들은 죽을때, 세상의 산자의 땅에서, 곧 의의 나무를 키우는 온상에서 천국으로, 곧 그들이 영원히 죽으면, 산자의 땅에서 뽑혀 거룩한 진노의 불에 대한 연료로서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다투는 자들이 받을 몫이다.

 

52:2 없음.

 

52:3 없음.

 

52:4 없음.

 

52:5 없음.

 

52:6

도엑의 멸망 예언(시편 52:6-9)

다윗은 당시 큰 환란 가운데 있었다. 도엑이 그에게 행한 악은 그의 슬픔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그가 개가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환란 가운데서 즐거워하는 것 이상이다. 축복 받은 바울도 환란 가운데에서도 승리 중에 있었다(고후 2:14).

Ⅰ. 여기에서 다윗은 도엑의 멸망 속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게인 적인 보복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그것을 그 자신의 행위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주시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면서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리라"(6절). 즉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경외할 것이며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설 것이다. 하나님 앞에는 아무리 교만한 죄인이라도 감히 그 앞에 설 수 없다. 따라서 우리 각 사람도 그 앞에서는 우리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의인들에게 경종이 되어야 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그의 진노를 초래하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119:120; 계 15:3.4).

2. 도엑을 수치스럽게 하고 있다. 그들은 "하늘에 계시어 저를 비웃으시는 자"와 같이 어이없는 웃음으로써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신중한 웃음으로 저를 비웃을 것이다. 그는 비웃을 만한 가치도 없는 우스꽝스러운 존재임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도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어떻게 개가를 부를 것인가를 읽을 수 있다(7절).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던 자라." 부유하고 유려한 자의 몰락과 멸망은 일반적인 주목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으며, 각 사람은 그것에 대해 논평하려 하는 것이다. 본문 은 의인이 도엑의 몰락에 대해 논평해 도엑은 자기의 부귀와 권력 속에다 그 자신을 세우는 그릇된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새로 건립된 건물이 무너지면, 모든 사람은 즉시 어디에 결함이 있었는가를 묻는다. 도엑의 형통함을 멸망시킨 원인을 찾아보자.

(1) 그가 집을 반석 위에 짓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였다." 즉, 그는 자기가 계속 형통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그 은총을 확고히 하거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도록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를 마음에 두거나, 조금이라도 그를 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나 신앙없이 자기의 권력과 재물을 지켜나가려고 생각하는 짜들은 비참하게도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2) 그가 모래 위에다 지은 점이다. "그는 그의 재물이 그 집을 지탱시켜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러 해 쌓아두었다고 생각한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였다. 아니 그는 그의 사악함이 자기의 번영을 지탱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영예와 권력을 안전케 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주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옳든 그르든, 그는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고, 그가 가진 것을 지킬 것이며, 그의 길을 방해하는 자는 누구도 멸망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그를 강하게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자들은 아무 것도 두려워함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자. 그는 잘 이기지 않은 회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이제 그 집이 허물어져 그가 그 속에 파묻혔다.

Ⅱ. 그 자신의 안전함 속에서 개가를 부르고 있다(8절). "이 강대한 자는 뿌리를 뽑힌다. 오직 나는 심겨져 뿌리를 박고, 견고히 자리잡고 무성하게 된 감람나무 같음이라. 도엑은 하나님의 장막에서 쫓겨나나, 나는 그 속에 견고히 있으며, 그처럼 어떤 것에 의해 감금되지 않고, 거기서 풍성한 만족을 얻으리라."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자들은 무성하게 되는 감람나무 같을 것이다. 사악한 자는, 나뭇잎은 크고 무성하나 열매를 못맺는 월계수 같다고 일컬어지고 있다(37:35). 그러나 의인은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며(92:14)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아(롬 11:17), "그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삿 9:9) 푸른 감람나무처럼 흥왕한다. 그러면 우리가 푸른 감람나무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은혜에 대한 믿음과 거룩한 확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자기의 풍족한 재물을 의지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가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까기 그 선물을 후하게 내리시며,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리로다." 그 인자하심은 영원하다. 그것은 꾸준하고 불변하며, 그 선물은 영원까지 지속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그것을 의지해야하며 결코 그 원천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감사하고도 거룩한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한다(절9). "주께서 이를 해하셨으므로, 주의 제사장들이 피흘린 것을 그 잔인한 대적들에게 갚으셨고 그에게 마실 피를 주시어 내게 대한 주의 약속을 이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리다. "그는 그것이 이미 행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때가 오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크게 찬양하는 일은 우리 고백을 아름답게 해 주며, 모든 은혜 가운데서 우리의 결실이 풍성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결코 감사할 소재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확실하다.

3.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고 그를 겸손히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나에 대한 주의 은총을 발견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정해진 때까지 기꺼이 기다리면서, 주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신 그 모든 길에서 주를 섬기겠나이다. 이는 주의 이름이 주의 성도 앞에서 선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주의 성도의 뜻과 판단 가운데에서" 선하기 때문이었는데, 다윗은 여기에서 그 성도들과 마음이 일치하고 있다. "모든 성도는 이러한 마음을 갖고 있다."

(1) 즉, 하나님의 읾은 그 자체가 선하다.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은 은혜로우며 매우 인자하시다. 우리의 피난처와 강한 망대가 될 수 있는 이름은 그의 이름 이외에는 없다.

(2) 그 이름을 섬기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선한 일이다. 우리마음이 번민하고 유혹에 빠져있을 때,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보다 (애 3:26) 더 좋은 것은 없다. 그것은 우리를 의무의 길로 인도해 주고 위로를 줄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이미 그런 은혜를 경험했다. 따라서 그들이 그를 섬긴 것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그의 인도하심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은 적이 결코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를 믿고 바랐던 것은 결코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 앞에 있는 선한 것을 보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자."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호 12:6).

 

52:7 없음.

 

52:8 없음.

 

52: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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