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의 존엄 (시편 50:1-6)
아삽이 이 시편의 연주를 맡았던 악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저자였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히스기야시대에 그들이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대하 29:30). 여기에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신하들은 왕 중 왕의 이름으로 부름받고 있다(1절).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엘, 엘로힘, 여호와, 무한하신 능력과 공의와 긍휼의 하나님,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께서 부르셨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셨고, 성령은 바로 심판의 영이시다. 온 세상은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그들의 사곡함과 배은망덕함에 가졌던 쟁론이 판단력을 가진 누구에게나 잘 보이도록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이스라엘 사람들로 "하나님과 그의 포도원 사이를 판단하게"하라, 사 5:3), 사람의 모든 자녀들이 관심을 갖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메시야 왕국이 세워질 때 모든 사람들이 복음적 예배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거기에 참예하도록 초청받아야 하기 때문이며(말 1:11; 행 10:34, 35 참조), 또 한 마지막 심판의 날에 모든 나라 백성들이 함께 모여 멸망당하고 또 각 사람은 하나님께 자기 자신에 대해 낱낱이 심문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Ⅱ. 심판대는 마련되었고 심판관은 좌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광야에서 율법을 주셨을 때,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 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신 33:2)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곡함을 책망하시기 위해, 그리고 율법적인 제도를 폐하고 그의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오실 때 그것을 언급하여 여기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1. 시내 산에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2절). 시온에 그의 궤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그 진노를 일으키는 백성들에 대한 그의 심판이 선포되었고, 그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이 발포되었다(욜 2:1). "시온에서 나팔을 불라.' 사람의 양심을 깨닫게 하고 그의 교회를 개혁하며 정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때로 그의 말씀과 그의 법령으로 또 그것에 의해 보통 때 이상으로 그의 임재와 권능을 나타내신다. 그 때에 항상 시온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시온에서 빛을 발하셨다"고 일컬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영적 예배를 이룰 복음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었고(사 2:3; 미 4:2), 또 그 가르침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될"(눅 24:47)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시온에서 빛을 발하셨다"고 일컬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챤들은 그 가르침을 받기 위해 시온 산에 이른다고 일컬어질 수 있다(히 12:22, 28). 시온이 여기에서 "온전히 아름다운 곳"이라 불리우고 있는데 그것은 시온의 거룩한 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로 거룩함은 아름다움의 완성인 것이다.2. 그가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리로다." 이전처럼 사람의 죄를 간과하시는 듯하지 않으시고(21절). 그들에 대한 그의 불쾌함을 보이실 것이다. 그리고 또한 오랫동안 "감추어졌던"비밀과 "이방인들이 후사가 되리라"는 것(엡 3:5, 6), 그리고 의식적인 율법의 간막이가 없어지리라는 것이 그의 거룩한 시도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하실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더 이상 감추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저 위대한 날에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고," 그의 율법에 귀를 기울이여 하지 않았던 자들로 그의 심판을 듣도록 만드실 것이다.
3. 그의 나타나심은 매우 장엄하고 두려울 것임에 틀림 없다. "그 앞에는 불이 삼키리로다." 사곡한 유대 민족을 깨우치기 위해 삼키는 불을 무서워하는 시몬의 죄인들로(사 33:14) 그들의 죄에 놀라게 할 수 있도록 그의 심판의 불이 그의 책망과 말씀에 길을 마련해 줄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의 왕국이 세워지기로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눅 12:49). 성령은 매우 격렬하고 강한 바람에 밀리는 광폭한 불의 갈라지는 혀같이 임했다(행 2:2, 3).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 그리스도는 불꽃 중에 나타나실 것이다(살후 1:8; 단 7:9; 히 10:27 참조).
4. 시내 산에서 그가 "일만 성도"와 함께 강림하신 것과 같이 그는 이제 "윗 하늘에 반포하시어," 모세가 흔히 이스라엘에 대해 "천지를 불러 증거로 삼고(신 4:26; 31:28; 32:1)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로 증거를 삼으셨듯이"(사 1:2; 미 6:2), 이 엄숙한 과정을 주시하실 것이다. 저 위대한 날에 있을 심판의 공의는 천지에 의해, 성도들과 천사들에 의해, 심지어는 무수한 거룩한 것들에 의해 입증되고 성원될 것이다.
Ⅲ. 회합이 소집된다(5절).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실지로 성도들에 대한 것.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모이게 하라. 소수의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만 모이게 하라. 왜냐하면 다음에 올 진노의 위협이 그들에게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곡한 자에 대한 견책을 정직한 자들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외적 행사에 머무르고 제물만을 바친 자들의 예배는 거절하시나, 제사를 통해서 "그와 계약을 맺고," 그 제사 목적에 상응하는 자들의 예배는 은혜로이 받으실 것이다. 복음을 가르치고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는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요 11:52).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그의 모든 성도들은 "그 앞에 모여"(살후 2:1) 그와 함께 입회인으로서 판단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6:2). 성도들이 제사로 하나님과 계약을 맺음이 그들의 특성이라고 했다.(1)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성도들로서, 그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서 그의 백성이 되며, 이처럼 여호와께 참예한 성도들만이 하나님께로 모이게 될 것이다.
(2) 우리 불쌍한 죄인들이 하나님께 용납되도록 하기 위해 그와 계약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제물에 의해서, 저 위대한 제물인 그리스도에(그로부터 모든 형식적인 제사가 귀중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의해서이다. 우리가 다시 계약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기 전에 첫 계약이 깨어진 것에 대한 속죄가 있어야 한다.
2. 또한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고백하는 성도들에 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거룩한 백성"이라 불리우고 있다(출 19:6). 그들은 나라로서 하나님과의 계약, 즉 특별한 계약 속으로 들어왔으며, 그것은 "제사로" 매우 엄숙하게 행해졌다(출 24:8). "그들이 와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하라.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하라.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 보내시는 책망을 받게 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합당한 때에 그의 아들을 통해 그들에게 보내시는, 의식적인 율법대신 들어서게 될 복음을 받게 하라. 만일 이러한 것들이 무시된다면, 그들은 이와는 다른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또 그들이 복종하지 아니하려는 그 말씀으로 심판받을 것을 예기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Ⅳ. 이 엄숙한 재판의 결과가 예고되어 있다(6절).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라." 부름을 받아 그 재판의 증인이 될 하늘이 그것을 반포하리라(4절). "하늘의 무리가 가로되, 할렐루야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도다"(계 19:1, 2).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의 모든 책망속에 있는 하나님의 의는, 그가 세우신 복음(그것은 "영원한 의를 가져오고" 그속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다")속에 있는, 그리고 특히 저 위대한 날의 심판 속에 있는 그의 의는 하늘이 선포하게 될 것이다.
1. 즉 그것은 보편적으로 알려질 것이며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이다. "하늘이" 하나님 창조주의 "영광을," 그리고 그 지혜와 권능을 "선포하듯이"(19:1), 그것은 또한 적지 않게 "심판장"이신 하나님의 영광과 공의와 의로우심을 적나라하게 선포할 것이다. 영광과 공의를 외치는 소리가 너무 크므로, 10편 3절 이하와 같이, "언어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온 땅에 통한다."2. 그것은 명백히 시인되고 증명될 것이다. 하늘이 선포하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죄인들의 양심까지도 그것에 동의 할 것이며 하늘뿐만 아니라 음부도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 그가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
(1) 따라서 그는 공정하실 것이다. 그가 그의 피조물에게 어떤 해를 끼치신다는 것은 불가은한 일이며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셨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위해 판단한다면 불공평하게 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신이 재판장이실 때는 어떤 불의도 행해질 리가 없다.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사도 바울은 이 이유 때문에 이러한 생각에 대해 놀라고 있다.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롬 3:5, 6) 이러한 결론들은 완전히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해서 어떤 예외도 없을 것이며 어떤 상소거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는 의로움을 얻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공의를 수행하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도록 명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판단하실 때의 순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51:4).
형식적인 제사의 무능함 (시편 50:7-15)
하나님은, 여기에서 의식적인 율법을 준수하는 것으로써 자기들의 믿음을 대신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다루고 계신다.
Ⅰ. 그는 그와 이스라엘 사이의 최초의 계약을 제시하고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은 그가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그들은 그의 백성임을 승인했으므로 이 쌍방은 동의했던 것이다(7절).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다른 사람들은 어떠하든 간에 그가 말씀하실 때 그의 백성들이 청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편한 마음으로 기대할 것이다. 그가 그의 말씀과 섭리의 책망과 위협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것을 증거하실 때에도 우리는 그가 말씀하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심지어 "매와 그것을 정하신 자"를 들어야 한다.
Ⅱ. 그는 형식적인 제사를 경멸하신다(8절 이하).
1. 이것은 율법 아래에서 제사를 행하는 것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과 쟁론하셨다. 그러나 그 쟁론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들의 의식적인 제도를 무시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을 준행하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꾸준히 하나님 앞에 바쳤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음녀처럼 그들이 바친 것으로 인해 그들의 욕정이 채워지기를 바랐다(잠 7:14). 그들이 꾸준히 바치는 제물은 그들이 무시하는 율법의 더 중한 것을 보상해 주고 용서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들이 이러한 제도를 약간 소홀히 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다투시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부도덕한 이야기에 비해 극히 작은 범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그들의 헌물 없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장들의 많은 가족들을 부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의 제단에 가져온 그 많은 제물들로 하나님께 큰 은혜를 입히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으로 인해 그를 그들의 큰 채무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 반대의 사실을 보여 주고계시다.(1) 즉 그는 그들의 제사가 필요치 않으셨다. "삼림의" 모든"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을 가지시고(9,10절) 그들에 대한 주권을 가지신 그가, 그들 모두를 항상 그의 시야와 영영 안에 두고 계시며 그가 원하실 때는 그 어느 것이나 사용할 수 있는 그가 무엇 때문에 그들의 수소와 수염소가 필요하겠는가? 그러한 것이 모두 그를 섬기는데 그가 그것들을 그의 뜻대로 할 수 없겠는가?(104:27-29) 모든 산새와 들짐승들이 있는 그의 곳간인 그 곳에 우리가 어떠한 것을 더할수 있겠는가?(11,12절)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족함은 그에게 어떤것도 더할 수 없는 우리의 절대적인 부족함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2) 그는 그들의 제사로 유익함을 입을 수 없었다. 그들이 베푸는 이러한 종류의 선함이 그에게 미칠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러한 일에서 의롭다면 그는 미칠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러한 일에서 의롭다면 그는 더 의로우셨다(13절).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겠느냐?" 그들의 제사가 그것 자체로,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어떤 본질적인 탁월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어떤 즐거움이나 찬미를 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무한하신 성령이 우리의 육신처럼 고기나 술에 의해 도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실상 이방인들이 숭배했던 마귀들은 "그들의 희생의 고기를 먹고 전제(奠祭)의 술을 마셨다"고 일컬어지고 있다(신 32:38). 그들은 참되신 하나님에게서 도적질해 간 충성심 속에서 스스로 크게 즐긴다. 그러나 위대하신 여호와는 이것으로 즐거워하실 것인가? 아니다. "모든 번제물보다 낫다." 더우기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의 죄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한 그들의 제시가 그에게 용납되지 못할 뿐아니라 가증스러운 것임을 자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즐거워하시기는커녕 그것을 조롱거리로 간주하셨다. 따라서 그것은 그를 모욕하는 것이며 격분케 하는 것이었다(잠 15:8; 사 1:11이하; 66:3; 렘 6:20; 암 5:21 참조). 따라서 그들은 여기에서 이 모든 행사를 중지하도록, 그리고 다른 모든 일에서도 그들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그에게로 그들 자신을 향하게 하라고 경고받고 있다.
2.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이러한 율법이 폐지될 것을 내다보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하몬드 박사는 그것을 이처럼 풀이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의 왕국을 세우실 때는 제사와 제물로써 예배하는 옛 방법을 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이 "항상 그 앞에"있도록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8절). 즉 그는 더 이상 그의 예배자들이 그의 제단에서 태울 수소나 수염소를 가져오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실 것이다(9절). 사실상 그는 결코 이것을 그가 필요하거나 즐거웁기 위해 지정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이미 그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삼림과 산에 있는 짐승들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 울안에 갖고 있는 것 이외에 이러한 것들을 모를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소유권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아들이 때가 충만한 때에 십자가에 바쳐져 죄를 대속하게 되는 그 위대한 제사를 예시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밖에 모든 영적 제사들을 기쁘게 인정해 주시리라는 것을 예시하기 위해 그것을 임명하셨다.
Ⅲ. 그는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지시하고 있다. 율법 아래에서 그러한 제사는 모든 번제와 제물보다도 훌륭한 것이었으며 그 때에는 여기에 큰 역점을 두었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복음 아래에서 개혁의 시대 전까지 부과되었던 그 현세적인 의식의 자리에 대신 놓이게 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훌륭한 것인가를 그리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과 제사가 소홀히 되고 찬탈되었을 때에 용납에 주실 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14,15절).
1.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 "교회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이렇게 읽고 있으며 죄를 자백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그렇게 함으로써 결코 죄악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는" 제사이다(51:17). 죄를 버리지 않는다면 속죄물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매일, 날마다 자주, 그리고 특별한 때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라"("하루에 일복 번씩 내가 주를 찬미하리이다"). 만일 그것이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그에 대한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다."(69:30, 31).
3.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한 것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라." 네 죄를 버리고 네 의무를 더 잘 행하여, 네가 그러한 취지로 그와 엄숙히 약속한 것을 수행하라. 우리는 받은 어떤 긍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는 우리가 그 긍휼을 얻고자 하여 그에게 한 서원을 틀림없이 갚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감사는 용납되지 못할 것이다.
하몬드(Hammond) 박사는 이것을 성만찬이라는 위대한 복음적 규례에 적용시키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신 그 큰 사랑에 감사해야 하며,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의무의 서원을 갚아야 하고, 또 헌금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의 모든 모형대신에 우리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그 복된 기념물을 가지고 있다.
4. 환난의 날에 우리는 신실하고 열렬한 기도로써 하나님께 우리 스스로를 아뢰어야 한다(15절). "환난 날에" 다른 신들을 부르지 말고 "나를 부르라." 우리의 환난은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볼지라도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그를 인정하고 그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에 의지해야 하며, 우리를 전적으로 그에게 의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것은 화목제에 의한 것보다 더 값싸고 손쉽고 빨리, 그러나 더욱 만족스럽게 그의 은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다.5. 그가 합당하게 생각하시는 때와 방법으로 행하시기를 약속하신 대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어 우리를 건지실 때, 우리는 그의 은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언급하고 그에 대한 찬미를 생생하게 함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그가 우리를 괴롭히실 때 기도로 그를 만나고, 그가 우리를 건지실 때 찬미로 그를 만남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악인의 특성 (시편 50:16-23)
하나님은 시편 기자를 통해 그의 백성들에게 그를 경배하고 그와의 교제를 유지하는 올바른 방법을 가르치신 후, 여기에서는 악인들과 사곡한 자들에게-그들이 유대교나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이든 아니든-말씀하고 계신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그들에 대한 책망.
1. 그들은 믿음의 존귀와 특권을 침해하고 빼앗는 것에 대해 책망받고 있다(16절). "악인아,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느냐?" 이것은 실상은 불경스러우나 겉으로는 경건한 체하는 자들에 대한 도전으로서, 그들이 자신의 마음과 생명의 가증스러움과 불경건함을 덮고 감추기 위해 율례를 사용할 때, 그들이 믿음의 가면에 대해 어떤 권리를 가지며 어떤 권세로 그들이 그것을 입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만일 그들이 할 수 있다면 그것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게 하라.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메시야 왕국과 앞 구절에서 언급되어진 복음적인 예배 방법이 세워지게 될 그 때에, 유대 교회의 선생이며 지도자였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예언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그 큰 변혁을 억압했고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모세의 자리에 앉음으로써 그들이 가진 모든 능력과 권세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복된 구세주와(마 23:)사도 바울이 그들에 관해 충고하신 말씀은(롬 2:21, 22) 여기에 있는 이 내용과 매우 잘 부합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전하기에 힘을 기울였으나 그리스도의 교훈은 미워했다. 따라서 복음을 거절한 그들이 무슨 율례를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불의를 행하는 모든 자들, 심지어 경건을 고백하는 자들, 특히 그것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적용된다. 악하고 경건치 못한 자들이 그의 율례를 전하며 그의 언약을 입에 두는 것은 그것 자체가 매우 무모하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큰 모욕이 된다. 하나님의 율례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자들이 그것에 불복종하면서 살고, 하나님의 언약을 그 입에, 아니, 그 마음에 두는 자들이 계속 죄와 사망과 언약을 맺은 것은 아주 가능한 일이며 또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은 찬탈하는 죄를 범하고 있으며, 권리도 없는 영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침입자들처럼 쫓겨나게 될 날이 오고 있다. "친구여 네가 어찌하여 이곳에 왔느냐?"
2. 그들은 율법과 믿음의 계율을 범하고 어긴 것에 대해 책망 받는다.(1)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담하게 경멸한 것에 대해 책망받고 있다(17절). "네가 교훈을 미워하는도다." 그들은 교훈을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해야할 것을 가르치기를 사랑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의 교만을 충족시켜 주며 그들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이러한 재주로 그들의 생계를 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교훈 받기를 싫어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을 저지시키고 그들을 굴욕스럽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너는 계율을, 말씀의 책망과 섭리의 비난을 미워하였다." 교화되기를 싫어하는 자들이 교화의 수단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네가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는도다."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 앞에 두는 것 같았고, 율법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자 했다(롬 2:19). 그러나 그들의 대화 속에서 하나님의 말을 위로 던졌고, 그들이 복종하지 않기로 작정한 그 규례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것은 여호와의 계명을 경멸하는 것이다.
(2) 그들은 가장 나쁜 죄인들과 가깝게 연합한 것에 대해 책망받고 있다(18절). "도적을 본즉, 하나님의 율례를 전하는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처럼, 그를 꾸짖고 그를 대적하여 증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와 연합하여 그들의 행실을 찬성했다. 그리고 그와 동업자가 되어 그의 저주스런 일로써 얻은 이득을 나누고자 했다. 그리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어 그들이 행한 것처럼 행하고 그들이 악한 일을 되풀이하는 것을 격려하며 또한 그러한 일들을 행했고, 그 일을 행하는 자들 옳다 했다"(롬 1:32).
(3) 그들은 계속 혀로써 가장 악한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책망받고 있다(19절). "네 입을 악에게 주어 네 자신에게 모든 모양의 악한 말을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네 자신이 거기에 완전히 빠졌다."
[1] 거짓말. "네 혀로 궤사를 짓는도다." 이것은 거짓말 할 의도와 계획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풀이대로 궤사를 "짜거나 잇는다." 거짓말은 또 거짓말을 낳고 한 가지 속임수는 그것을 덮고 또 하나의 속임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2] 비방(20절).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는도다 즉 그 형제를 야비하게 모욕하고, 왜곡하여 말하고, 당당하게 그를 판단하고 힐책하며, 마치 네가 그에게 명을 내려야 할 그의 주인인 것처럼 그를 처형한다. 그러나 그는 네가 그러한 것처럼 네 형제이며 너와 동등하다. 왜냐하면 그는 네 어미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네 가까운 친족으로서 네가 그를 사랑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를 모욕한다고 하더라도 너를 그를 옹호하고 편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잘못을 덮어 주고 그것을 잘 고쳐 주어야 할 네 자신이 그를 모욕했다. 그가 정말로 잘못했다 할지라도 너는 그가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그를 아주 그릇되고 부당하게 책망했다. 네가 석상에 있는 재판장처럼 권위 있게 앉아서 그와 같이 행했다. 너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서 네가 존중하고 친절히 해야 할 자들을 비웃고 헐뜯었다." 스스로 악하게 행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나쁘게 말하기를 즐긴다.
Ⅱ. 이 책망에 대한 증거(21절). "네가 이 일을 행하였다. 그 사실은 매우 분명하여 부인될 수 없으며 그 잘못은 극히 악하여 용서받을 수도 없다. 네가 이러한 것들을 행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알고 계시며 네 마음도 스스로 알고 있다." 죄인들의 죄는 저 위대한 날의 심판에서 그들이 반박할 수 없도록 그들에게 증명될 것이다. "내가 너를 책망하거나 깨닫게 하여 너로 하여금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이 영원히 입을 막고 잠잠케 될 날이 오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그들의 목전에 차례로 제시하실 때 그들은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그들은 굴욕당하게 될 그들의 죄를 보지 않으려 할 것이며, 그것을 뒤로 던지고 감추며 그것을 잊으려고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생각으로 그들의 양심을 괴롭게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로 자신이 죄를 보게 하시어 그들이 영원한 수치와 두려움을 겪게 될 날이 오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원죄, 자죄, 율법에 대한 죄, 복음에 대한 죄, 첫째 법판에 대한 죄와 둘째 법판에 대한 죄, 그리고 유년, 청년, 장년, 노년기의 죄를 차례로 드러내실 것이다. 그는 증인이 차례로 세워져 차례로 범죄에 대해 말하도록 부름받아 그에 대적하는 증언을 하도록 요청받는 것처럼, 죄목을 차례로 열거하실 것이다.
Ⅲ. 심판장의 인내 그리고 그 인내에 대한 죄인들의 모욕. "내가 잠잠하였다. 네 사악한 길을 방해하지 않고 너를 홀로 놔두어 네 방법대로 행하도록 하였다. 네 죄악에 대한 처형은 곧 집행되지 않고 연기되었다."격노케 하는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는 매우 크다. 그 는 그들의 죄를 보시고 그들을 미워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처벌하는 것이 그에게 어려운 일이거나 해로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너그럽게 기다리시면서 그들에게 회개할 여유를 주신다. 그래도 그들의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용서받을 수 없게 만드신다. 그의 인내는 죄인이 그것을 이처럼 악용하므로 더욱 훌륭하다.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네 자신처럼 연약하고 잊기 쉬운 자로, 네 자신처럼 거짓말하는 자로, 더욱이 네 자신처럼 죄에 친구인 자로 생각하였도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침묵을 허락으로 그의 인내를 묵인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오래 연기 받을수록 그들의 마음은 더욱 굳어진다. 그러나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때가 이미 늦은 그들의 잘못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두려우시며, 그들과 같이 그러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Ⅳ. 사곡한 자의 무서운 멸망에 대한 정당한 경고(22절).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죄를 알고 계시며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을, 그가 그것으로 인해 너희를 부르시리라는 것을, 그 모욕당한 인내가 더 큰 진노로 변하리라는 것을, 잊었을지라도 그는 너희가 그에 대한 너희 반역을 잊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생각하라. 그것이 너무 늦기 전에 이를 생각하라. 이것을 생각하고, 이에 대한 생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엄히 때림"을 당하는 것이(마 24:51) 사곡한 자의 파멸이다.
1. 하나님에 대한 망각이 악인의 모든 악행의 근저가 된다. 하나님을 알지라도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분명 그를 잊은 것이다.2. 하나님을 잊은 자들은 그들 자신을 잊은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깊이 생각하여 그들 자신을 되찾을 때까지 그들은 결코 올바르지 못할 것이다.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개종으로 향한 첫단계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경고를 깊이 생각지 않으려는 자들은 그의 진노의 형벌에 의해 필연코 찢김을 당할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오셔서 죄인들을 찢으실 때 그의 손에서 그들을 건질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들 스스로도 건질 수 없으며, 이 세상에 있는 그들의 어떤 친구도 그들을 건질 수 없다.
Ⅴ. 어떻게 이 두려운 파멸을 방지하는가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주는 충분한 교훈, 우리는 여기서 전체 내용의 결론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는 그것을 23절에서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주요한 목적을 획득하기 위해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를 지시하고 있다.
1. 사람의 주요 목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그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가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그 영적 제사는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미해야 하며, 찬미로 제사하고, 모든 제사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또한 제단이기도 하신 우리 주 예수, 그 제사장의 손에 그것을 드려야 한다. 그것이 불, 신성한 불에 의해, 거룩하고 열렬한 마음의 불꽃으로 불붙여지는 것을 보라. 우리는 주님을 찬미하면서 영적으로 열렬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주님은 이것이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서 해석하고 무한히 기뻐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겸양이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며 사람 가운데 있는 그의 나라의 권세를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2. 이것과 관련된 사람의 주요 목적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가 그의 구원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1)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우리는 또한 우리 행위를 옳게 해야 한다. 감사하는 것은 훌륭하다. 그러나 감사하는 생활은 더욱 훌륭한 것이다.
(2) 행위를 옳게 하려는 자들은 그것에 관심과 수고를 기울여야 하며, 법도대로 그것을 처리하도록, 그들의 길을 깨닫고 그것을 지도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3) 행위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은 그들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구원을 보이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알려지게 될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로 그것을 보고 그것을 즐기도록, 그것을 보고 그들 자신이 그 속에서 영원히 행복하리라는 것을 알도록 만드실 것이다. 이와 같이 행위를 옳게 하는 것은 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또 확실한 길이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