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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경청을 요함 (시편 49:1-5)

이것은 세상의 허탄함과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기에는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편 기자의 서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보다 더 엄숙한 서문을 거의 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보다 더욱 명확한 진리는 없고 더 무게 있고 중요한 진리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할 것이다.

Ⅰ. 그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경청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1,2절).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이것을 듣고 유념하며, 이것을 듣고 생각하라. 한번 말 한 것을 두 번 들으라. "듣고 귀를 기울이라"(62:9, 11). 이것은 "너희 모든 이스라엘 만민들아, 들으라. 가나안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만민들아,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이 교훈은 거룩한 계시로 축복받은 자들에게 특별히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빛으로 그것을 목격한 자들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로 그들의 재물이 죽음의 날에는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라.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로 이것을 적용시켜 듣도록 하라. 이 세상에서 귀하고 부유한 자들로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세상 재물이 얼마나 허탄한가를 듣고 그것을 자랑하거나 그 즐거움 속에서 방심하지 않도록 하고, 그것을 선행하는 데에 내놓아 그들의 친구로 삼을 수 있도록 하라. 가난하고 천한 자들로 이것을 부러워하지 않게 하라. 부유한 백성들이 세상의 재물을 지나치게 탐닉하는 반면에 가난한 백성들은 그것을 지나치게 원할 위험이 크다.

그는 왜 그의 이야기가 중하게 여겨져야 하는 가에 대한 좋은 이유를 듣고 있다(3절). "내 입은 지혜를 말하리라."

1. 그가 말해야 했던 것은 참되고 훌륭했다. 그것은 지혜와 명철이다. 따라서 그의 말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복종하는 자들을 지혜롭고 총명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의심스럽지 않고 명확하며 경박하지 않고 진중하다. 그리고 그것은 훌륭한 사색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를 큰 목표까지 가는 길로 인도하는 데에 훌륭히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2. 그것은 그 자신이 잘 소화시켰던 것이었다. 그의 입이 말한 것은(19:14; 45:1 처럼) "그의 마음의 묵상"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집어 넣으신 것이었고 그 스스로가 진지하게 생각하여 그 의미를 충분히 측정하고 그 진리를 깨달은 것이었다. 사역자들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은 대부분 듣는 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Ⅱ. 그는 스스로도 경청하고 있다(4절).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리라." 그것을 비유라 일컫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상징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혜롭고 매우 교훈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솔로몬의 잠언에 관해 사용된 것과 같은 말이다. 시편 기자가 그것에 그의 귀를 기울이고자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1.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가르침을 받은 것이지 그 스스로가 말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을 가리치고자 하는 자들은 먼저 그 자신이 배워야 한다.

2. 그는 그 자신이 거의 그것에 몰두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하도록 만든 일에 감히 자신이 영혼을 내던지지 않기로 결심했다.

3. 그는 가장 중요한 일로서, 그 자신이 유의하지 않았던 일에 다른 사람들이 유의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학자의 혀를 주실" 때, 먼저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사 50:4).

Ⅲ. 그는 될 수 있는 한 그 내용을 명료하고 감동적으로 만들 것을 약속하고 있다."내가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으리로다."그는 자기 혼자서 안 것을 숨기려 하거나 그 자신에게 국한시키려나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나누려 했다.

1.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수수께끼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보이는 것들의 허탄함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본체와 무게를 말해 주어라. 그러면 그들은"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았읍니까?"하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자들을 위해 이 오묘한 말을 풀려했고, 그것을 매우 분명하게 만들어서 지나가는 자들도 그것을 읽을 수 있게 했다.

2. 그것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도 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은 그것으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그러한 자들을 결코 감동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자들을 위해 그는 수금으로 그것을 풀려했고 그들을 움직여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러한 시도를 했다. "일련의 시귀는 설교를 피하는 자를 구할 것이다"(허버트).

Ⅳ. 그는 그것을 그 자신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시작하고 있는데 그것은 거룩한 것들을 다루는 옳은 방법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훈계하거나 가르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가르쳐야 한다. 그는 세속적인 담보의 어리석음을 제시하기 전에(6절), 거룩하고 은혜로운 담보의 유익과 위로를 그 자신의 경험에서 이끌어 내고 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이것을 즐기며 그들의 세상적인 재물을 즐기지 않는다.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이것은 "내가 어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사 8:12), 세상적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랴?"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내가 어찌 그것을 무서워하랴? 내가 어찌 환난과 핍박의 날을 나의 발꿈치의 죄악이, 또는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는 나의 찬탈자들의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고, 또 그들이 해로운 일을 하고자 나를 포위할 때를 두려워하랴? 내가 어찌 능력이 재물에만 있고 친구를 구제할 능력이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랴? 나는 그들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를 멸망시킬 능력을 그들에게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세상의 높은 자들도, 그들의 재물이 그들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별로 위대한 존재로 대두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탁월함을 지킬 수 없는 이러한 자들로부터 우리의 탁월함을 빼앗길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2. "내가 어찌 그들처럼 두려워하랴?" 노년과 죽음의 날은 "곤고한 날"이다(전 12:1). 심판의 날에 우리 발꿈치의(또는 우리 걸음, 우리 옛 죄의) "죄악"이 우리를 에워쌀 것이며 우리 앞에 나란히 놓여질 것이다. "모든 일은 심판받을 것이며 숨기워진 일도 심판 받으리라!" 그리고 "우리 모두는 심문받을 것이다." 이러한 날에 세상적이고 악한 백성들은 두려워할 것이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것을 떠나게 된다는 생각보다 더 두려운 것이 없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왕이다. 왜냐하면 죽음 후에는 심판이 오며, 그때에 그들의 죄가 매우 큰 분노로서 그들을 포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선한 자들이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는가?(23:4) 그의 죄악이 그를 둘러쌀 때, 그는 그것이 모두 사함을 받고 그의 양심은 정결케 되어 평화를 누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간담이 서늘한 심판의 날에도 그는 기쁨으로 머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눅 21:26, 28).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세상의 어떤 부유한 자녀들보다도 진정으로 더욱 행복하며, 사망과 장차 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져 있는 것이다.

 

49:2 없음.

 

49:3 없음.

 

49:4 없음.

 

49:5 없음.

 

49:6

세상 재물의 허탄함 (시편 49:6-14)

이 구절들 속에서 우리는 다음 사항을 볼 수 있다.

Ⅰ. 이 세상에서 분깃을 받는(27:14) 세상적인 사람들의 심령과 생활 방법을 엿보자. 그들이 재물과 풍부함을(6절). 즉 그들이 자기 것이라 부르는 상속받은 집과 땅을(11절).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은 그를 멸시하고 그를 배반하면서 살아가는 악인들에게 흔히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풍부히 주신다. 이것에 의해 세상 재물이 가장 훌륭한 것이 아니며(가장 좋은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그것들을 거의 다 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는(가장 좋은 것이라면 재물을 갖고도 멸망하려 하는 자들이 그렇게 많은 재물을 가지려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 1:32)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사람이 이 세상 재물을 풍성히 가졌을지라도, 그것에 의해 더 나아지고 그것에 의해 그의 마음을 사랑과 감사와 순종으로 넓힐 수 있으며, 그것으로 선을 행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세상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이 가진 재물이 아니라 그들이 그것을 가장 훌륭한 것으로 여겨 그 위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적인 사람들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1. 그들은 그들의 재물을 신뢰한다. "그들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한다"(6절). 즉 그들은 그들의 분깃과 행복으로서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이 모든 재앙으로부터 그들을 안전케 하고 그들에게 온갖 유익한 것을 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나님 자신 조차고 필요치 않으리라는 것을 예상한다. 그들은 금으로 소망을 삼는다(욥 31:24). 따라서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이 된다. 이처럼 우리 구세주5서도 부자가 구원받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고 계시다(막 10:24).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어려운지!"(딤전 6:17 참조)

2. 그들은 그들의 재물을 자긍한다. "그들은 풍부함으로 자긍한다."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확실한 표적이며 그들의 재주와 근면의 분명한 증거인 것같이"(나의 힘과 내 손의 능력이 나로 이 재물을 얻게 했노라."), 마치 그것이 그들을 진정 위대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그 이웃 사람들보다 진실로 뛰어나게 만든 것처럼 그것으로 자긍한다. 그들은 원하던 대로 모든 것을 가진 것과(10:3)은 마음의 소욕과 세상을 무시할 수 있는 것("나는 여왕으로 앉으며 영영히 주모(主母)가 되리라." 사 47:7)을 자랑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이 이름을 따라 그들의 땅을 명명"함으로써 그들이 영원히 기념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땅이 그들이 명명한 그 이름을 지니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영예에 불과하다. 그리고 흔히 그땅의 주인이 바뀔 때 그 이름도 바뀐다.

3. 그들은 그들의 세상적인 소유물이 영원하리라는 것을 기대하며 은근히 믿고 있다(11절).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생각으로 그들은 스스로 즐거워한다. 모든 생각은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속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1) 이 생각은 그들의 마음 속에 깊게 뿌리박고 있으며, 그곳에서 굴러다니고 그 마음의 가장 깊은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겉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그의 속 생각은 하나님과 거룩한 것들을 위해 남겨져 있다. 그러나 세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오직 피상적이고 낯선 생각만을 갖고 있는 반면에 그의 고정된 속생각은 세상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그의 마음 가장 가까이에 그리고 그 보좌에 자리잡고 있다.

(2) 그것은 열심히 감추어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들은 그들의 집이 영원히 지속될 것을 기대한다는 말은 부끄러워서 할 수 없으나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생각을 확신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집"이, 그리고 그들이 거처하는 것은 그러하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둔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더 이상 그들의 것이 되지 않을 때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를 짐작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과 그 유행을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은 세월의 잇빨이 삼켜 버리고 만다.

Ⅱ. 이 속에 나타난 그들이 어리석음에 대한 논증. 일반적으로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다"(13절) 속된 마음이 행위는 매우 우매한 행위이다. 땅에 보물을 쌓아두고, 아래에 있는 것에 애착을 두는 자들은 올바른 이성과 그들의 참된 유익을 거슬러 행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두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이며 그것이 그들 영혼의 분깃이 되리라고 선포하셨다(눅 12:19, 20).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그들의 말을 칭찬하며, 그들과 같은 심정을 갖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그들이 행하는 것처럼 행하며, 그들의 속된 생활을 답습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피 속을 흐르는 병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치료하기 전에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 병을 앓고 있다.

세상적인 속된 마음의 어리석음을 증명하기 위해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1. 그들의 모든 재물로도 이 세상에 있는 그들의 가장 귀한 친구들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사망에 사로잡힐 때에 죽음을 유예시킬 수도 없다(7-9절). "아무도 결코 그 형제-"그가 그 형제의 보증인이 되어야 한다면 그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내어 줄 정도로 가까운 그 세상적인 형제를-"구속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형제가 자기에게 똑같은 친절을 행할지도 모른다는 소망 속에서 그를 돕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서로에게 신빙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사람의 재물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한 속전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니은 재물을 중히 여기시지 않으며, 그것은 하나님께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사물의 진가는 그의 책 속에 있는 그대로의 가치이다. 그의 의는 교환이나 등가의 방법으로 그것을 받으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 형제의 생명 되시는 여호와는 우리 재산이 되시는 여호와이시며 만일 그가 원하신다면 그는 그 자신의 어려움이나 우리에 대한 해로움 없이 그것들을 모두 취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위한 속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형제가 더 살 수 있도록, 더욱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해 죽음에다 뇌물을 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로 썩음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해 음부에다 뇌물을 먹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죽어 티끌로 돌아가야 하는 그 싸움을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영혼과 같은 부모나 자손 또는 친구들에 대한 사형 집행을 한 시간도 유예시킬 수 없는 것들을 의지하고 자긍하는 것은 얼마나 우둔한 일인가! "생명의 구속은 너무 귀하며, 영영히 끝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즉 생명은 사라져갈 때 붙잡을 수 없으며, 그것이 이미 사라졌을 때 어떤 인간적인 기술이나 세상적인 대가로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더 나아가 구약의 성도들이 구속자로서 주목했던 그 메시야에 의해 이루어진 영원한 구속을 가르키고 있다. 영생은 매우 귀한 보석이므로 이 세상 재물로는 살 수 없다. 우리가 "구속되는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다"(벧전 1:18, 19). 하몬드 박사는 8,9절을 특히 그리스도께 적용시키고 있다.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소중하고 매우 값질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루어진 그것은 영원히 중단될 것이며 결코 반복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히 9:25, 26; 10:12). 그리고 그는(즉, 구속자는)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썩음을 보기 전에 다시 일어나 세세토록 살아계실 것이다(계 1:18)."그리스도는 세상의 어는 재물보다 우리에게 더 귀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형제나 친구나 가장 훌륭한 재물이나 권세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다. 그러므로 "아비나 어미를 그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그에게 합당치 아니하다." 이것은 또한 결코 영혼을 사지 못할 것을 위해 영혼을 팔아 버리는 세상적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고 있다.

2. 그들의 모든 재산으로도 죽음의 일격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안전케 할 수 없다. 속인은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역시 망하는"것을 보며, 또 그에게도 그것을 보도록 자극한다(10절). 그러므로 그는 그것이 마침내 그 자신의 차례가 도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그 자신이 영원히 살리라는 소망을 가질 만한 이유가 없음을 알고서, 어리석게도 그가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그의 집은 그렇게 되리라는 것으로써 그 자신을 위로한다. 어떤 부유한 사람들은 지혜롭고 지략이 있으나, 온갖 기술과 방법을 써도 죽음을 초월할 수 없고 또한 그 일격을 모면할 수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준하고 무지한 자(Fortuna favet fatuis-즉 바보들은 운명의 여신의 총아이다)로서 비록 선을 행하지 못할지라도 세상에 어떤 큰 해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변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의 꾀로 해로운 일을 행하는 지혜로운 자들과 마찬가지로 망할 것이며, 죽음에 의해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또한 지혜로운 자와 우둔한 자를 경건한 자와 악한 자로 풀이할 수도 있다. 경건한 자도 죽는다. 그러나 그 사망은 그들의 구원이다. 반면에 악한 자는 망하며, 그 사망은 곧 그들의 멸망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남긴다.



(1) 그들은 재물을 계속 지닐 수 없으며, 재물이 그들에게 집행 유예를 선고하도록 돕지도 못한다. "우리가 보화를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렘 41:8)는 변명이 한 번 효과를 거두었을지라도 그것은 어리석은 탄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그들은 재물을 지니고 갈 수 없고 남기고 가야만 한다.

(3) 그들이 재물을 남기고 떠났을 때 누가 그것을 즐길지 예견할 수도 없다. 그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 놓아야 하나 그 상속자가 우매자가 될지(전 2:19) 또는 대적이 될지 알지 못한다.

3. 그들의 재물은 죽어가는 시간에 그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이 그들에게 영예가 되지도 못한다(12절).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하도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행복할 정도로 출세의 최고봉에 오른 사람, 화려한 사람, 그가 원하는 온갖 유익을 얻고 있고 거기에 둘러싸여 있어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도 장구하지는 못한다. 그의 존귀는 계속되지 않으며,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다. 그는 모든 밤을 체제하지 못한다. 즉 이 세상은 여관이며 그는 아주 잠간 묵음으로 거기서 하룻밤을 묵는다고도 멸할 수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 속에는 인식이 거의 없다. 그는 단지 주막에서 휴식하는 시간만을 가질 뿐이다. "그는 멸망하는 짐승같도다." 즉 그는 짐승처럼 필연적으로 죽어야 하며 그의 죽음은 짐승들의 죽음과도 같이 이 세상에서의 그의 상태를 종결시킬 것이다. 그의 죽은 몸도 또한 짐승들의 몸처럼 썩을 것이다. 그리고 (하몬드 박사의 견해처럼) 부모들이 부당하게 획득한 가장 큰 존귀와 재물은 흔히 그 후손에게(짐승들이 죽을 때 어린 것들에게는 그들이 먹이를 찾을 수 있는 넓은 세상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 놓지 않는 것처럼) 상속되지 않고, 그 부모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곧장 떨어진다.

4. 이 세상 저 편에서의 그들의 상태는 매우 비참할 것이다. 그들이 지독히 애착을 갖는 이 세상은 그들을 죽음에서 구원해 주지못할 뿐 아니라 그들을 아주 낮은 음부로 떨어뜨릴 것이다(14절).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다"그들의 형통함은 도살될 양처럼 그들을 키울 뿐이다(호 4:16). 그 때에 죽음이 찾아와 우리에 갇힌 살찐 양처럼 그들을 음부에 가두고, 그들은 진노의 날을 맞으러 끌려 나가게 된다"(욥 21:30). 그들 중 다수가 어떤 병으로 죽은 양 떼같이 음부로 끌려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사망 즉"구더기"가 그들을 먹어(욥 24:20) 그들에게 두 번째 사망이 임할 것이다. 그들 자신의 죄책감은 매우 많은 독수리처럼 그들을 끊임없이 파먹어 들어가면서 "얘, 이것을 기억하라"(눅 16:25)고 말할 것이다. 바벨론 왕이 넘어졌을 때 "아래에 있는 음부가 소동한"것에서 나타나 있듯이(사 14:9 이하), 사망이 그들을 공격하고는 승리를 거둔다. 어떤 성도가 교만한 사망에게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뇨?"(고전 15:55)하고 물을 수 있다면 그 교만한 사망은 "네 재물과 네 화려함이 어디있느뇨?"하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형통함이 살질수록 사망은 더욱 달게 그들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부활의 아침, 티끌 가운데 누워 있는 모든 사람들이 깨어날 때(단 12:2), "정직한 자각저희를 다스릴 것이다." 그들이 영원한 치욕과 경멸을 당할 때 정직한 자는 최고의 위엄과 영예를 차지하게 되고, 그들이 가장 낮은 음부로 내려갈 때에 정직한 자는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직한 자는 그들에게 심판이 내려질 때 그리스도와 함께 입회인이 되어 그들을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의를 찬성할 것이다. 음부에서 부자가 나사로에게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그의 혀를 서늘케 해 주기를 간청했을 때 (눅 16:24) 부자는 어리석은 처녀들이 지혜로운 처녀들의 지배권을 인정한 것처럼, 그리고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했을 때 그들의 지혜로운 처녀들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처럼, 그에 대한 그 정직한 자의 지배권을 인정했다. 흔히 정직한 자들이 압제 밑에서 신음하고 사악한 자가 그들을 지배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이것으로 위로를 삼자, 양상이 바뀌어질 날이 오고 있으며(에 9:1) 그때에 정직한 자는 지배권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때에 나타나는 것으로 일들을 판단하도록 하자. 그렇다면 악인의 모든 아름다움은 어떻게 될 것인가? 슬프게도 그것은 모두 "음부에서 소멸되어 그 거처조차 없어"질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두었던 모든 것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존경하고 아첨했던 모든 것들은 외부적이고 빌어온 것들이다. 그것은 색칠되었고 장식된 것이 본래의 추한 모습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거룩함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은 다른 모든 아름다움을 소멸 시키는 음부도 만지거나 손상을 끼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무덤(혹은 음부)이 그들 각자의 거처이므로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될 것이다. 영원히 암흑의 어두움만이 있는 곳에 어떻게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49:7 없음.

 

49:8 없음.

 

49:9 없음.

 

49:10 없음.

 

49:11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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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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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자의 특권 (시편 49:15-20)

여기에 선한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Ⅰ. 그들은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 다윗이 여기에서 죽음 저편에서의 행복한 상태에 대해 갖고 있는 그러한 즐거운 전망을 그들도 갖고 있다면 그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15절). 그는 죄 가운데에서 죽어가는 자들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보여주었고(14절), 여기에서는 주님 가운데에서 죽어가는 자들이 얼마나 복된가를 보여 주고 있다. 사람의 외적 상태는 그것이 아무리 이 인생에서 큰 차이점을 만들지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 차이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의 영적 상태의 차이는 비록 이 생애에 있어서는 조그마한 차이라서 모두가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죽음 후에는 그것은 큰 차이가 되어버린다. "이제 저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눅 16:25). 의인은 죽음 속에서도 소망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다윗도 여기에서 그의 영혼에 관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다. 음부에서 영혼이 구속되리라는 그리고 영광을 보리라는 믿음의 소망은 죽어가는 순간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큰 도움과 가쁨이 된다. 그러한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바란다.

1. 하나님께서 음부의 권세에서 그들의 영혼을 구속하실 것이라는 사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1) 영혼은 육체와 함께 음부로 가지 않고 보호된다. 음부는 하나님의 선고에 의해서 육체를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창 3:19), 잔혹하게 수행한다(아 8:6). 그러나 음부는 영혼에 대해서는 그러한 권세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육신을 침묵시키고 감금하고 소멸시킬 권세를 갖고 있으나, 영혼은 그 때에 더 자유롭게 움직이고 행하며 대화한다(계 6:9, 10). 영혼은 무형적이며 영구하다. 죽음은 희미한 초롱을 깨뜨릴 수 있을지라도 그 속에 있는 촛불을 끄지는 못한다.

(2) 부활 때에 영혼은 육체와 재결합된다. 영혼은 종종 생명을 위해 나온다. 그것은 실상 잠시동안 음부의 권세 하에 놓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될"(고후 5:4) 때에 드디어 그 권세로부터 속량을 받을 것이다. 최초로 생명의 창조주이셨던 생명의 하나님은 결국 영혼의 구속자가 되실 수 있으며 또 되실 것이다.

(3)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영혼이 구원된다. "하나님은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15절), 장차 올 진노에서, 악인이 던져질 그 멸망의 구덩이에서(14절) 구속하시리라." 죽어가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것은(계 2:11) 큰 위로가 된다. 그러므로 첫째 사망은 괴로움이 되지 못하며 음부는 승리를 거두지도 못하는 것이다.

2. 그는 그들을 친히 영접하실 것이라는 사실. 그는 그들을 영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영혼을 구속하신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였나이다. 주께서 나를 구속하셨나이다."(31:5). 그는 그들을 그의 은총 속으로 영접하실 것이며 그의 왕국으로 그들을 위한 처소(요 14:2, 3), 곧 그 영원한 처소(눅 16:9)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Ⅱ. 그들은 왜 이 세상에서의 악한 사람들의 형통함과 권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 그것이 그들의 자만과 기쁨이 되는 반면 흔히 의인들의 부러움과 슬픔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모든 것들을 고려해 볼 때 두려워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1. 그는 죄인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는 것과, 그들의 교만한 손으로 그들 앞에 있는 모든 것을 가져가리라는 것, 그들이 그들의 재물과 권세로 신앙과 신앙적인 사람들을 쓰러뜨리리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실상 행복한 백성이라는 사실이 발견되리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매우 강한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들은 부유하게 되어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복종시키고 모든 일들을 지휘할 능력을 지니게 된다. Pecuniae obediunt omnes et emnia -즉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은 돈의 당당한 세력에 복종한다.

(2) 매우 작게 시작되었던 그들 집의 영광을 크게 불어나고, 그리하여 자연히 사람들을 오만하고 무례하며 거만하게 만든다(16절). 이처럼 그들은 하늘의 총아처럼 보이고 따라서 위대하게 보인다.

(3) 그들 자신과 그들 자신의 마음은 매우 편하며 방심 상태에 있다(18절). "저가 생시에 자기를 축하한다." 즉 그는 자기가 원하던 대로 매우 행복한 사람, 그리고 그가 마땅히 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매우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상에서 형통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영혼을 축하하면서 그 어리석은 부자처럼 그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혼아, 편히 쉬자. 그리고 세상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또는 양심의 책망이나 경고로 불안해하지 말자. 모든 것은 잘된다. 그리고 영원히 잘 될 것이다."

[1] 우리가 어떤 근거에서 우리 자신을 좋게 평가하며 우리의 영혼을 축복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믿는 자들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며"(사 65:16) 하나님이 그들의 것일 때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적인 사람들은 세상의 재물로 그들 자신을 축하하며 재물이 풍부할 때 그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2] 귀중한 영혼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스스로 축하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비난하시는 것을 성원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시어 전쟁을 선포하실 때에도 그들 자신에게는 화평을 말한다.

(4)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웃에게 좋은 평판을 얻는다. "저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그리고 이처럼 재산과 가문을 일으켜 스스로를 좋게 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추켜 올린다." 이것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다. 즉 그들은 재물을 쌓아올림으로써 그들 육신을 위해 최선을 기울이나, 반면에 그들 영혼과 영생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여호와를 배반한다"(10:3). 사람들이 우리의 심판자라면 이처럼 그들에게 좋은 칭찬을 듣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하신다면 우리가 사람들의 칭찬을 듣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몬드 박사는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자가 두 번째 사람이므로 이것을 악한 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선한 자에 대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저는 평생에 자기를 축하하나, 너는 스스로 좋게 행했으므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세상적인 것들이 그를 찬미했다. 그러나 너는 그처럼 네 자신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거나 좋게 행하지도 않고 오직 네 영원한 행복을 확고히 하는 데에 마음을 썼다. 따라서 네가 사람들의 칭찬을 듣지 않았을지라도 네 영원한 영예가 되실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을 것이다."

2. 그는 그 시험의 힘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게 형통하는 죄인들의 결국을 예상해 보라고 지시하고 있다(73:17). "그들이 저 세상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너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상태에 있든, 또한 무엇을 지니고 있든, 그들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1) 그들은 그들이 지금 매우 애착을 갖고 있는 모든 재물과 형통함으로는 결코 저 세상에서 더 나아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소득으로서 필요한 만큼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17절). "저가 죽으매"그가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그가 그처럼 오랫동안 모아두었던 것은 아무 것도 "가져가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부유한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의 그들의 삶이 결코 더 나을 바 없으므로, 가장 행복한 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빈 손으로 온 것처럼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비록 타락하고 죄스러우며 영적으로 벌거벗은 상태로 이 세상에 왔을지라도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고 성별케 되며 그리스도의 의로 든든히 옷입고 떠난다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은, 저 세상에다 이 세상에서의 그들의 삶에 대해 무엇인가 보여 줄만한 것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성령의 은혜와 위로를 풍성히 갖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죽을 때 가지고 가게 될 무엇인가-죽음도 빼앗을 수 없는, 아니, 죽음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세상적인 소유물에 대해서는 우리가"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은 것이다)분명 우리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 준다(딤전 6:7). 그들은 내려가나 즉 그들이 자기들의 영광이라고 부르고 간주했고 또 자랑하던 "저들의 영광"은 사망과 음부의 치욕을 경감해 주고, 그들에게서 심판이 없어지게 하거나 음부의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저를 따라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은혜는 우리와 함께 올라갈 영광이지만, 세상적인 영광은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따라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

(2) 이 세상에서 그들이 즐겼던 모든 재물과 형통함을 남용했던 것으로 인해 그들은 저 세상에서 무한히 비참해질 것이다(13절). "그 영혼은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그의 세상적이고 사악했던 열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열조의 말을 칭찬했고 또 그들의 걸음을 따랐던 것이다(슥 1:4). 그는 그들이 있는,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그곳으로 갈 것이며, 정죄되어 완전한 암흑 속에 빠졌으므로 어슴푸레한 위로와 기쁨마저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사악한 자들의 화려함과 권세를 두려워하지 말라. 존귀에 처한 사람도 그가 지혜롭거나 선하지 않다면 그 결국이 비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부러움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동정을 받아야 한다. 영화 속에 있는 우둔한 자, 사악한 자는 태양 아래 있는 어떤 것 못지 않게 정말 보잘 것 없는 하나의 동물이다. 그는 "멸망하는 짐승 같다"(20절). 자기 자신을 짐승처럼 만드는 자는 사람이 되느니보다는 짐승이 되는 편이 낫다. 그러나 존귀에 처한 자로서 자기의 의무를 깨닫고 알아서 행하는 자들은 신들과도 같이 지고한 자의 자녀들인 것이다. 그러나 존귀에 처해 있으나 깨닫지 못하는 자들, 교만하고, 관능적이며 포악한 자들은 짐승과도 같다. 따라서 그들은 짐승같이 죽지는 않을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짐승처럼 불명예스럽게 멸망할 것이며 저 세상에서는 죄 값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형통하는 죄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두려워하게 하고, 고난당하는 성도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자.

 

49:16 없음.

 

49:17 없음.

 

49:18 없음.

 

49:19 없음.

 

49:20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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