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아름다움과 힘 (시편 48:1-7)
시편 기자는 예루살렘을 찬양하고 그 성의 장엄함을 밝히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그의 광대하심으로 시작하고(1절)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그의 선하심으로 끝맺고 있다(14절). 우리가 어떤 주제를 갖고 찬송하든, 하나님은 그 찬송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교회의 영예에 대해 언급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나 교회의 하나님의 영예에 이바지해야 한다.
여기에서 예루살렘의 영예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Ⅰ. 하늘의 왕께서 그것을 인정하신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성"으로서(1절). 그가 모든 이스라엘 성 가운데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다. 시온에 대해 그는 땅 위에 어떤 성읍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보다 더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132:13, 14). 그것은 "큰 왕의 성"(2절)이요, 거기에서 특별히 그 자신을 선포하고자 하시는 온 땅의 왕이시다. 우리 구세주는 예루살렘으로 맹세하는 것은 곧 불경스럽게도 하나님으로 맹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이것을 인용하셨었다(마 5:35). 이는 예루살렘이, 하늘이 그의 영광을 나타내듯이 하나님의 은혜의 특별한 임재를 위해 그것을 선택하신 "큰 왕의 성"이기 때문이다.
1.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으로써 밝혀진다. "유다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알리셨고, 그의 이름은 크시도다." 그리고 입술로 이 지식을 전해야 하는 제사장들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다른 곳에서는 거의 크게 여기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는 "광대하시다"(1절). 하나님을 크게 여기는, 하나님을 최고의 위치에 두는, 그리고 그가 모든 것이 되시는 나라, 성읍, 가장, 그리고 다음은 행복하다. 거기서 "하나님이 자기를 알리시고"(3절) 그가 광대하게 되시리라는 것을 알리신다. 따라서 그를 모르는 자들 이외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경멸하지 않는다.2. 예루살렘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예를 위해 바쳐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룩한 산"이라 불리우고 있다. 즉 "여호와께 성결"이 라는 글자가 그 위에 그리고 그곳의 모든 기구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슥 14:20, 21) "거룩한 민족," "특별한 백성"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교회의 특권이다. 교회의 모형인 예루살렘은 아무리 나빴을지라도 "거룩한 성"이라 불리우고 있었는데(마 27:53), 마침내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자 그 후로는 결코 그렇게 불리우지 않았다.
3.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대한 엄숙한 봉사와 예배를 위해 지정된 장소이다. 거기에서 그는 극진히 찬송받고 있으며 우리도 그를 "극진히 찬송해야"한다(1절).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광대하심에 대해 명확히 발견할수록 우리는 그를 풍성하게 찬송해야 한다. 그 나라 모든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제물을 가져온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이처럼 그를 섬기도록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용납하시기로 약속하셨고 또 그들을 축복으로써 맞아 주시며 그들의 봉사에 의해 그 자신이 찬송받고 영화롭게 되신 것으로 간주하셨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루살렘은 복음의 교회의 모형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받으시는 조그마한 찬미는 땅 위에 있는 그 교회로부터 오는 것이며, 교회는 곧 사람을 가운데 있는 그의 장막이기 때문이다.
4. 그것은 그이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3절). 그는 그 자신을 "피난처로 알리셨다." 즉 그는 그 자신이 그러한 자이심을, 그리고 그의 경배자들에 의해 의탁을 받는 자이심을 입증하셨다. 따라서 그를 알고 있는 자들은 "주를 의지하고 주를 찾을" 것이다(9:10). 하나님은 거기에서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궁전에서도 피난처로 알려지셨다. 즉 높은 자들도 하나님을 의지했고 그와 사귀었다 믿음이 궁에 거했을 때는 성읍에서도 그 믿음이 번성했을 것이다.5. 이 모든 면에서 성전이 세워져 있었던 예루살렘, 특히 시온산은 보편적으로 사랑받았고 경탄을 받았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2절). 무한하신 지혜가 성소의 장소를 위해 터를 택하셨을 때 그것은 어느 면으로나 합당했음에 틀림 없다. 그리고 그것을 아름답게 한 것은 그것이 거룩한 산이라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거룩함 속에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죄로 인해 흉한 것으로 덮혀 있으므로, 이렇게 거룩함으로 아름답게 되어 있는 그 지점을 "온 세계가 즐거워"한다는 것은 매우 타당한 일이다. 즉 하나님께서 실제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이처럼 거하신다는 것은 온 세계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이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 북방에 있었으므로, 그 산은 그 쪽으로부터 부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으로부터 성을 막아 주는 피난처가 되었다. 또는 청명한 날씨가 북방으로부터 기대되었을 때 그들은 이처럼 시온 쪽을 바라보도록 지시 받았던 것이다.
Ⅱ. 세상 왕들이 그것을 두려워했다. 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신 것을 그들은 최근에 알았고, 그것은 매우 괄목할 만한 사실이었다.
1. 아뭏든 그들은 그 대적들을 두려워하게 되는 때가 너무 많았다. 왜냐하면 "열왕이 모였기" 때문이었다(4절). 이웃 방백들은 예루살렘을 치기 위해 공모했다. 그들의 두뇌와 나팔, 그리고 책략과 힘이 그것의 파멸을 위해 결탁되었었다. 그들은 모든 세력을 동원하여 무리를 이루었다. 그들은 자신이 즐거움이 되어 왔고, 또 온 세계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 성의 주인이 곧 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고 함께 행군하여 나아갔다.2. 그러나 하나님은 그 대적들로 하여금 그들을 두려워하게 만드셨다. 예루살렘의 바로 그 광경은, 야곱의 장막의 광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던 발람을 놀라게 했던 것처럼(민 24:2) 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그들의 분노를 냉각시켰다. "저희가 보고 놀라고 빨리 갔도다(5절). veni, vidi, vici-즉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가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veni, vidi, victus-즉 왔노라, 보았노라, 패했노라였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매우 두려운 것이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광경이 그들에게 그 성읍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임재하시고, 그것이 그 거룩한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에 관해 그들이 들어왔던 것을 상기시켜 주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이 급히 물러갈 정도로 큰 두려움을 그들에게 안겨다 주셨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들이 왕이었고, 공모에 가담한 자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이 전능자와 맞먹을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떨림이 저희를 잡으니 고통"스러웠다(6절). 하나님은 그가 교회의 가장 대담한 대적들도 기가 죽게 하실 수 있고, 편하게 살던 자들도 곧 고통스럽게 하실 수 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보았을 때의 떨림은 여기에서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즉 쓰라리고 극심하며, 때로는 홀연히 이르는(살전 5:3),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것으로서 죄와 저주의 결과인 그 고통에 비유되고 있다. 여기에서 그들의 의도가 좌절되는 것은 격렬한 폭풍에 의해 어떤 배는 쪼개지고 어떤 배는 파선되어 모두 흩어져 버리는 무서운 광경으로 비유되고 있다(7절).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바다의 힘은 이처럼 공격적이다. 또한 하나님의 두려움은 동풍에 비유되고 있다(욥 27:20, 21). 즉 이것이 그들을 혼비백산시키고 그들의 모든 계획을 깨뜨릴 것이다. "하나님의 노의 능력을 누가 알리요?"
교회를 돌보시는 하나님 (시편 48:8-14)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근래에 그의 백성들의 대적에 대항하시어 영광스럽고 은혜롭게 나타나셨던 것을 그들의 유익이 될 수 있도록 잘 이용하고 발전시키라는 가르침을 볼 수 있다.
Ⅰ. 이것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확고히 하도록 하자.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과 그가 말씀하신 것을 비교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들은 대로 보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8절).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은 우리가 들은 것을 믿도록 해 주고 있다.
1. "우리가 이전의 섭리 속에서, 옛 시대 속에서 행해진 것을 들은 대로 우리 시대 속에서 행해진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후에 그의 백성들을 위해 그와 그들의 대적들을 대항하여 나타나신 것은 그가 이전에 나타나셨던 것과 일치하며, 우리는 그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2. "우리가 약속과 예언 속에서 들은 대로 그것이 이행되고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만군의 여호와이며, 예루살렘이 우리 하나님의 거룩한 성으로서 그에게 소중하고 그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그의 선하심을 보았다. 우리는 그가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예루살렘의 사면에서 불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슥 2:5)."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고 계시는 그 큰 일들 속에서 성경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섭리 자체와 그 가운데서 이루어진 성경을 우리로 하여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Ⅱ. 이것에 의해 교회의 안정과 영원함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견고히 하도록 하자."우리 하나님의 도성에서 우리가 본 것을 우리가 거기서 들은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도성을 영원히 세우시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지 않고(그 성은 오래 전에 파괴되었고 그 모든 영광은 티끌 속에 묻혔다), 복음의 교회에서 성취되었다. 우리는 그것이 영원히 서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것은 반석 위에 세워졌고 음부의 권세도 그것을 이길 수 없다(마 16:18).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세우셨다. 시온을 세우신 자는 여호와이시다(사 14:32).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은 우리가 들은 것과 비교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가 기초하고 있는 그 약속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우리를 격려해 줄 것이다.
Ⅲ. 이것에 의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 대한 선한 생각으로 채우도록 하자.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있을 때는 언제나 보고 듣고 바라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9절)." 우리에게 흘러오는 긍휼의 모든 물줄기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어떤 공포 때문이 아니고 단순히 그의 긍휼, 그리고 자기 백성에 대한 그의 특별한 은총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자주 그리고 확고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이것보다 더 고귀하고 더 즐겁고 더 유익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항상, 그리고 특히 성전에서 그를 섬길 때 우리 목전에 두어야 한다(26:3). 우리가 방해받지 않고 공중 기도의 혜택을 누리고 있을 때, 우리가 그의 성전에 모이고, 거기에 우리를 두렵게 할 아무 것도 없을 때, 그때 우리는 그의 인자하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Ⅳ.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큰 일에 대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그것을 언급하여 그를 영예롭게 하자(10절).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땅 끝까지 미쳤나이다." 근래에 예루살렘을 현저히 구원해 주신 것으로써 하나님은 그 자신의 이름을 알리셨다. 즉 하나님은 영광스럽게 그의 지혜와 능력과 선하심을 드러내셨고, 모든 민족으로 그것을 깨닫게 하셨다. "그의 찬송도" 그러하였다. 즉, 어떤 지역에서는 그것에 응하여 그에게 영광 돌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이 가는 곳에는 그의 찬송이 가야하며, 적어도 세상 끝이 그를 찬송할 때까지 가야 한다(22:27; 계 11:15).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 의해 특별히 "만군의 여호와"라는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깨달았다. 그 이름과 같이 그의 찬송도 그러하다. 모든 피조물들, 세상 끝에 있는 것조차도 모두 그의 명령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가 자기들을 위해 그리하여 하시는 모든 일에서 특별히 그의 의를 인정해야 한다.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즉 주의 권능의 모든 작용은 공의의 영원한 법칙과 일치하는 것이다.
Ⅴ. 교회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그의 교회를 위해 행하시는 일에서 특별한 위로를 취하도록 하자(1절)."시온 산과 성소에서 수종을 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기뻐하고, 유다의 모든 딸들과 그들의 마을과 그 거민들은 즐거워할지어다. 여인들은 공적인 기쁨을 맞이했을 때처럼 춤과 노래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 큰 구원을 감사한 마음으로 축하할지어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을 때 우리는 교회에 대한 놀라운 구원의 기쁨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판단을(즉, 그의 섭리의 작용을)인하여," 우리가 지혜로 역사된 것을 볼 수 있는 모든 것(그러므로 판단이라 일컬어지고 있다)과 그의 교회에 유익하게 행해진 것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다.
Ⅵ. 교회의 아름다움과 능력과 안전함에 대한 사례와 증거들을 부지런히 관찰하고, 그 관찰한 것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충실히 전하도록 하자(12,13절). "너희는 시온을 편답하라."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승리의 의식을 언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 의식 행렬에 참여하는 자들로(느헤미야 12장 31절에서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성을 돌도록 하라. 이것을 행할 때 "그들로 그 망대들을 계수하고 그 성벽을 자세히 보게 하라."
1.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근래에 놀랍게 구원해 주신 일을 찬미하게 하라. 그들로 경이를 품고, 망대와 성벽이 모두 힘이 가득하고 그 어느 것도 손상되지 않을 것을, 궁전이 아름다우며 그 어느 것도 더렵혀지지 않은 것을 살펴보게 하라. 왕들이 그 성을 치려고 모였으나 그들은 조금도 해를 끼치지 못했다(1절).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성을 돌보신 놀라운 일례로서 "후대에 전하라." 그리하여 대적들이 이 성을 멸망시키거나 파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상하게 하거나 더럽히지 못하게 하라.2. 또 다른 때의 그러한 위협에 대비하여 그들 자신을 강화하게 하라.
(1) 우리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과 시온의 요새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다의 딸들로 하여금 시온과 망대와 성벽을 볼 때, 그것을 본 대적들 즉 열왕들의 두려움(5절)에 맞먹는 기쁨을 갖게 하라. 예루살렘은 일반적으로 애가(애 4:12)에 나타나 있듯이 견고한 곳으로 간주되었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뿐만 아니라 그 거민들이 죄를 지어 방비 태세를 버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 네 마음을 그 성벽에 두라." 이것은 시온의 중요한 성벽이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감각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을 두어야 하는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과 기술에 의해 사실상 매우 잘 요새화되었다. 그러나 주로 방어의 역할을 맡아야 했고 그 성벽은 그 속에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를 갖고 있었고, 그 위에 그가 부여하신 거룩한 아름다움과 그것에 관한 그의 약속을 지니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능력을 살펴서 그것을 후세에 전하라. 그리하여 그들이 그것을 약화시킬 행동을 하지 않고, 만일 어느 때 그것이 환난 가운데 있더라도 그들이 공격에 견딜 수 없어 대적들에게 비열하게 그것을 내 주지 않도록 하라." 킬빈은 그들이 여기에서 망대와 성벽과 예루살렘 궁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후손에게 전하도록 지시받고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러한 것들이 모두 파괴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에 대한 역사와 묘사를 보존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제자들이 성전 건물에 대해 경탄하고 있을 때 그들의 주님은 그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곧 무너지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4:1, 2).
(2) 따라서 이것은 반드시 복음의 교회, 곧 시온의 교회에 적용되어야 한다(히 12:22). "망대와 성벽과 그 궁전을 살펴 너희가 인도되고 격려되어 너희 자신을 그것에 결탁시키고 그것에 전념하도록 하라. 교회는 그리스도 위에 있고, 거룩한 능력으로 요새화되고, 결코 졸거나 주무시지 않는 자에 의해 방어되고 있는 반석 위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라. 그 궁전들 얼마나 귀중한 규례이며 그 성벽이 얼마나 귀중한 약속인가를 보라. 이것을 후대에 전하여 그들이 마음의 결의를 가지고 그 세력을 신봉하고 그것을 지지할 수 있게 하라."
Ⅶ.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그의 영원한 인자하심에 대해 갖고 있는 확신 속에서 개가를 부르도록 하자(14절). 이것을 후대에 전하라. 거룩한 증거물로서 너희 후손에게 이 진리를, 즉 우리를 위해 이제 이처럼 큰 일을 행하신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진리를 전하라. 그는 우리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있어서 견고하며 변함이 없으신 것이다.
1.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라면 그는 온 세대뿐만 아니라 영원을 통해서까지도 영원히 우리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은(계 21:3) 거룩한게 된 성도의 영원한 축복이기 때문이다.2. 그가 우리 하나님이라면 그는 "우리를 인도하시리로다."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시고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하시면서 우리를 성실하고 꾸준하게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우리의 길이 끝나고 우리를 휴식으로 이끄는 때까지, 즉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키실 것이다. 그는 (어떤 사람들의 풀이대로) "죽음 위로"(above death)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즉 그는 우리를 죽음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인도하시므로 죽음은 우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는(또 다른 사람들의 풀이대로) "죽음 저너머로"(beyond death)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즉, 그는 우리를 안전하게 죽음 저편에 있는 행복으로, 더 이상 죽음이 없을 생명으로 안내하실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우리 하나님으로 여긴다면 그는 죽음을 통해 죽음을 초월하여-죽음 아래에까지 그리고 다시 영광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죽음으로 인도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