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0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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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

찬양 받으실 하나님 (시편 47:1-4)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대한 위대하고 선한 생각으로 가득 채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모든 축복과 찬미를 받을 만한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자로서, 그리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주저하며 아주 속수무책인 것을 슬프게 여기는 자로서,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이 복된 찬미의 일에 참여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구절들 속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Ⅰ.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요청받은 자들은 누구인가? "너희 만민들아,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아," 이들은 그의 신하로서 그의 책임하에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행하든, 그와 그의 집, 그와 그의 백성들이 주를 찬미할 것이다. 또는 "저희 만민들과 만국들아"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그것을 열방들이 개심하게 되어 그들이 교회로 인도되는 것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롬 15:11 참조).

Ⅱ. 그들이 행하도록 요청받은 것은 무엇인가? "손바닥을 치라.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행하신 것에 대한 너희 기쁨과 만족을,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행하신 것에 대한 너희의 인정을, 아니 감탐을,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너희 분노를 표시하라(욥 27:23).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자처럼 손바닥을 치고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그로 하여금 듣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그의 귀는 어둡지 않다)네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로 듣게 하고, 네가 하나님의 행적에 얼마나 감동되어 흡족한 상태에 있는가를 주목하게 하기 위해 외칠지어다. 다른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의 안에서 그리고 그의 능력과 선하심 안에서 즐거운 소리로 외칠지어다."

점잖치 못하고 경솔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이러한 경건하고 열렬한 감정의 표현은 성급하게 비판되거나 정죄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그것이 순전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조롱거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 열렬한 마음의 힘을 용납하시고 그 표현의 결함을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Ⅲ. 우리가 찬미해야 할 내용으로서 우리에게 제시된 것은 무엇인가?

1. 우리가 관련을 맺고 있는 하나님은 두려운 위엄을 지니고 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2절).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도다." 그는 가장 고귀한 피조물들보다 무한히 위에 계시며 가장 높은 것보다 더욱 높으시다. 그 안에는 모든 것들이 경외해야 할 온전함이 있으며, 특히 그와 겨루려는 모든 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권능과 거룩함과 의가 있다.

2. 그는 지고하며 전 우주적인 통치권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는 홀로 군림하시는 왕이시며 절대적인 권능을 갖고 계시는 "온 땅의 임군"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그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그에게 종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큰 임금," 왕중의 왕이시다.

3. 그는 그의 백성들을 그리고 그들의 일을 특별히 돌보시고, 이전에도 그렇게 하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1) 그들에게 승리와 성공을 주시고(3절) 만민과 열방을, 즉 그들을 방해하는 자들과(44:2) 그들을 공격하려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 아래 굴복케 하신다.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것을 행하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나안에 심어지고 오늘날까지 그들이 거기에 계속 있으리라는 증거였다. 그들은 어느 쪽으로 승리의 무기를 돌리더라도 형통했던 그의 종 다윗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계속 향하시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 민족에게 국한되지 않고 온 땅에 세워질 메시야 왕국을 기대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 사람들을 진압하실 것이다. 즉 그는 (단어가 의미하듯이)"양을 우리로 모으듯" 그들을 모으실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도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그들의 감정을 진압하시고 그들을 "그의 권능의 날에 즐거워하는 백성들"로 만드실 것이며 그들의 생각을 그에게 복종하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그리고 길을 잃었던 자들을 "영원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의 인도 아래 두실 것이다(벧전 2:25).

(2) 그들에게 휴식과 정착지를 주신다(4절).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리로다." 그는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가나안 땅을 택하셨다.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탐지하셨던 땅이었다(신 32:8 참조). 이것은 그 땅에 대한 그들의 소유를 정당화했고 그들에게 훌륭한 자격을 부여해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땅에 대한 그들의 즐거움을 향기롭게 했고 그것을 평안하게 해 주었다. 그것을 무한하신 지혜께서 택해 주셨을 때 그들은 그것을 행복한 소득으로 여기고 만족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하나님의 성소를 그 속에 세우게 하신 것은 "야곱의 영화"와 영광이 되었다(암 6:8). 그가 야곱을 사랑하셨으므로 야곱을 위해 이처럼 훌륭한 기업을 택하신 것이다(신 7:8). 이것을 영적으로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 성도들의 행복,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 기업을 택하셨으며, 그것은 거룩한 상속이다. 영혼을 알고 계시며 그것을 행복하게 만드실 "여호와께서" 그것을 택하셨다. 그리고 그가 매우 잘 택하셨으므로 그가 친히 "그의 백성의 산업"이 되셨고(16:5), 또 그들을 위해 저 세상에다 썩지 않을 기업을 쌓아 두셨다(벧전 1:4). 이것은 진정 야곱의 영광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인해 그들을 사랑하셨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마련해 놓으셨던 것이다.

[2] 하나님께 대한 성도들의 믿음과 복종. 모든 은혜로운 영혼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리라. 그로 하여금 내 소득을 정하시게 하라. 그러면 나는 그 정하심에 따르리라. 그는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아시니 나는 그가 결정하신 이외의 것은 따르지 아니하리라."

 

47:2 없음.

 

47:3 없음.

 

47: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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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권고 (시편 47:5-9)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도록 매우 간곡하게 요청받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의무를 되돌아 볼 때 우리는 여기에서처럼 교훈마다 그리고 구절마다 그것을 행하도록 강권받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6절). "찬양하라." 그리고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그리고 또 다시 "우리 왕을 찬양하라." 이것은 그것이 매우 중요하고 훌륭한 의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자주, 그리고 많이 해야 할 의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말로 거듭 찬양해도 좋으며 그것이 새로운 감정으로 찬양되는 것이라면 되풀이하는 것이라도 결코 헛되지 않다. 백성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는가?(단 5:4)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찬양해야 한다. 우리는 찬양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로서 그를 찬양해야한다. 그러나 여기에 다음과 같이 필요한 규정이 추가되어 있다(7절). "지혜의 시"로, 즉 마스길로 "찬양할지어다."

1. "총명하게, 즉 너희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그리고 그 봉사의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스스로 이해하는 자로서 총명하게 찬양할지어다."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는 것"(고전 14:15)이 곧 복음의 원리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께 노래하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엡 5:19). 만일 그것이 온당한 봉사가 아니라면 용납되지 않는다.

2. "교훈적으로, 즉 다른 사람들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완전함을 이해하도록 만들고, 또 그들에게 그를 찬미하도록 가르치기를 원하는 자로서 교훈적으로 찬양할지어다." 이 구절 속에는 우리 찬미의 충분한 근거로서 다음의 세 가지가 언급되어 있는데 그 각각에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Ⅰ. 우리는 올라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5절).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1. 이것은 시온산으로 궤가 올라간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매우 엄숙하게 행해졌던 것으로, 다윗이 그 앞에서 춤추었고, 아마도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을 것이며, 백성들은 크게 외치며 따랐다. 이 궤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특별히 함께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세워진 표적이었으므로, 그것이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 운반되어 갔을 때, 그가 "올라가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규례가, 더욱 공적으로 엄숙하게 그들을 다스릴 수 있도록, 어두운 곳에서부터 더나옴은 어떤 백성들에게나 큰 은총이므로 그들은 그것을 즐거워하고 감사할 만하다.

2. 우리 주 예수께서 땅 위에서 그의 일을 필역하셨을 때 하늘로 승천하신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행 1:9). "주권과 권세를 꺾으셨을" 때 "사로잡은 자를 끌고"오신(68:18) 하나님은 그 때에 "즐거이 부르는 중에"왕의 정복자의 외침과 함께 "올라가셨다." 그는 궤와 그 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로 상징되어 있는 중보자로서 올라가셨고, 궤가 지성소에 들어가듯 "참 하늘에"들어가셨다(히 9:24 참조).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천시의 외침이나 나팔 소리에 대해 읽은바 없으나, 그때 기쁘게 외쳤던 것은 윗 세상에 거하는 자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다(욥 38:7). 그는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며(행 1:11) 우리는 그가 함성과 나팔 소리와 함께 다시 오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Ⅱ. 우리는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7,8절).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므로 우리는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온 땅의," 세상의 모든 왕들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므로(7절) 어느 곳에서든지 찬양의 분향이 그에게 바쳐져야 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풀이될 수 있다.

1. 섭리의 왕국에 대한 것으로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그리고 자연의 하나님으로서 "열방을 치리하시며" 비록 그들이 그를 모르며 존중치 않더라도 그들과 그들의 모든 일들을 원하시는대로 주관하신다. "하나님이" 그가 하늘에 준비해 두신 "그 거룩한 보좌에 않으셨도다." 그리고 거기에는 모든 것, 열방들까지도 다스리시며, 그들에 의해 그리고 그들에게 그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범위를 보라. 모든 사람은 그에게 충성하도록 태어났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열방도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참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다. 그의 통치의 공의를 보라. 그가 앉으시어 허락과 명령과 심판을 내리시는 곳은 거룩한 보좌이며 우리는 거기에 어떤 불의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2. 메시야 왕국에 대한 것으로. 하나님이시오, 그의 "보좌가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열방을 치리하신다." 섭리 왕국의 행정을 위탁받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방 나라에다 그의 은혜의 왕국을 세우시고 우상 숭배 속에서 자라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통치하실 것이다(엡 2:12, 13). "이방인들이 후사가 되는" 것을 사도 바울은 큰 비밀로서 말하고 있다(엡 3:6). 그리스도는 "거룩한 보좌에," 하늘에 있는 그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의 나라의 모든 행정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고, 인생들 가운데 거룩함을 증가시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Ⅲ. 우리는 "열방의 방백들" 에 의해 섬겨지고 존경받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9절). 이것 또한 다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이스라엘 나라 의회나 총회, 또는 엄숙한 절기에나 나라의 공적인 일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여러 지파의 두목과 관원들이 갖는 의회나 총회의 모임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그의 언약에 들어 왔을 때"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영예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 나라에 미치게 된 것은 영예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 나라에 미치게 된 것은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할 일이다(갈 3:14). 그들이 확고한 정부와 "그 땅의 방패"인 "열방의 방백"들을 가졌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장관은 나라의 방패이며, 이 방패를 갖는 것은 백성들에게 큰 긍휼이 된다. 그리고 특히 그들의 방백,"그들의 방패가 여호와의 것"으로서 그의 영광을 위해 바쳐지고, 그들의 권세가 그를 섬기는데 사용되어질 때에 그것은 커다란 자비가 된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그들이 크게 높임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방패가 여호와의 것"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님의 영예가 된다. 정치는 하나님의 제도이며, 그는 왕들의 마음을 강줄기처럼 자기가 원하시는 대로 돌려 놓으면서 세상의 정무를 통해 자기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신다. 백성의 방백들이 나라의 안녕을 의논하기 위해 함께 모였던 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좋은 일이었다. 평화를 위한 일에 나라의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의 의견이 일치 단결한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징조로서 이것은 풍성한 축복을 약속해 준다.

2. 그것은 또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로 부름 받은 것에 적용될 수 있으며, 메시야의 날에 세상 왕들과 그 백성들이 교회에 연합되고, 그들의 영광과 권능을 새 예루살렘에 가지고 와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던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예언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을 백성들의 "지원자"로 풀이할 수도 있다. 즉 그것은 110편 3절에 사용된 "주의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리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그리스도께로 모인 자들은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그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방패," 고귀한 존엄의 깃발(열상 14:27, 28)이, 성의 열쇠가 정복자나 주권자에게 증정되는 것처럼, 주 예수께 넘겨질 때, 방백들이 종교적 세력을 증진시키는 데 그들의 권세를 사용할 때, 그때에 그리스도는 크게 높임을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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