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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메시야의 영광 (시편 45:1-5)

혹자는 표제에 나오는 "소산님"(shoshannim)이 육현(六絃)으로 된 악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의 원래적 의미는 혼례식에서 아마 다른 꽃들과 같이 뿌려진 백합이나 장미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를 "샤론의 장미와 골짜기의 백합"이라고 칭하시는 그리스도께 쉽사리 부합된다(아 2:1).

이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거룩한 사랑에 관한 "사랑의 노래"이다. 그것은 "매우 사랑받는 자의 노래"요, 신부의 동무들인 처녀들의 노래이며(14절) 그들이 부르도록 준비된 노래이다. 시온 산 위에서 어린 양을 시중하는 처녀 친구는 "새 노래를 부른다"고 말하고 있다(계 14:3, 4).

Ⅰ. 서문(1절)이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주제의 품위. 그것은 "좋은 말"이다. 그런데 시를 짓는 것과 같은 감동적인 예술이 늘 나쁜 소재에 대해 사용되는 것은 유감된 일이다. 이것은 "왕에 대하여, " 즉 왕되신 예수와 그의 왕국과 다스림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께 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처럼 고귀한 주제가 없고 그토록 풍부하고 열매 많고 유익한 주제는 없고, 우리에게 잘 어울리는 주제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일이 우리 담화의 소재로 더 많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관리의 탁월함. 이 노래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관하여 심령의 믿음이 입으로써 하는 고백이다.

(1) 그 소재는 그것이 받을 만한 가치대로 잘 소화되었다. "내 마음이 그것을 짓고 있도다." 이 말은 아마 다윗에게 시편을 불러 주어 쓰게 한 예언의 영, 곧 예언자들 안에 있던 그리스도의 영을 의미할 것이다(벧전 1:11). 그러나 이것은 그의 경건한 명상과 마음속의 애정에 적용할 만하니, 이는 그러한 것들의 풍부함으로부터 그의 입이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진지하게 또 확고한 생각과 거룩한 사랑의 불길로써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생각하여야 하며, 특히 우리가 그러한 것들에 관해 말하게 될 때에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신적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우리 자신을 뜨겁게 하고 감동시키는 마음으로 말해야 하며,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관한 일들을 결코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 되며, 그릇된 말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말해야 할 것을 사전에 잘 저울질해 보아야 한다(전 5:2 참조).

(2) 그것은 잘 표현되었다. "나는 내가 지은 것을 말하리라."

[1] 그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소재를 잘 이해하고, 또 그것에 감동을 받은 자로서 가능한 한 아주 명석하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일을 말하겠다." 즉 그것은 기계적으로 외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궁구한 일들"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위해 역사하신 것과 아울러 우리 영혼 안에서 역사하신 것도 타인들에게 산포하지 않으면 안 된다(66:16).



[2] 그는 가능한 한 즐겁고 자유로우며 유창하게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으나, 붓이 손에 의해 쓰여지듯 내 혀도 말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의 인도를 받는다." 우리는 선지자들을 성서의 "필객"이라고 칭하는데, 실상 그들은 붓에 불과하였다. 가장 교묘한 논객과 가장 달변인 웅변가의 혀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기록하는 데에 사용하는 붓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를 거스려 신랄한 기사가 씌어진 경우에 그 붓을 가지고 왈가왈부해야 하며, 우리에게 좋도록 기록하는 경우에는 왜 그 붓을 우상화하는 것은 옳겠는가?

다윗은 자기가 그리스도께 대하여 생각하였던 일을 말로 했을 뿐만 아니라 기록도 하였으니 이는 그것이 더 멀리까지 전파되고 더 오래도록 계속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혀는 필객의 붓과 같아서 실언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좋은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것을 혀가 "필객"의 붓과 같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Ⅱ. 이 문단에는 주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자로서 제시되고 있다.

1. 그 자신에게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런 자로서, 이것은 혼인의 노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초인적인 탁월함은 왕되신 신랑의 아름다움으로 묘사되고 있다(2절). "당신은 아름다우시며, 인생보다 더 아름답소이다." 그는 왕에 대하여 말하겠다고 제의하였으나(1절). 곧 자기의 말을 그리스도께로 돌리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경탄과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자들은 그에게 가서 그와 같이 고백하기를 좋아한다. 우리도 이처럼 우리 신앙을 고백해야 할 것이니, 곧 우리는 그의 아름다움과 우리에게 대한 그의 사랑을 보며, 그것을 즐거워한다고 아뢰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아름다우시며 인생보다 더 아름답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나 모든 신자들의 눈에도 인생들보다 더 귀여우시며 사랑스러우시다. 하나님으로서, 중보자로서의 주 예수의 아름다움은 전반적인 인성의 아름다움을 훨씬 능가하며 인간의 자손들 중 가장 사랑스럽고도 빼어난 자들이 가진 천부의 미보다도 훨씬 우월하다. 그리스도 안에는 그 어떤 생물 곳에 있거나 있을 수 있는 것보다 우리의 사랑을 끌 수 있는 것이 더욱 많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자는 다른 자보다 뛰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 하계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은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끌어 내가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그 모든 아름다운 것이나 매력 있는 것들보다 얼마나 빼어나신 분이시며, 얼마나 더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신가를 이해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2. 하늘의 큰 총애를 받는 분으로서, "그는 인생보다 더 아름다우시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어떤 인생에게 해주시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행하셨으며,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모든 자비도 그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입과 손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1) 그는 은혜를 간직하시며, 그것은 우리를 위해 가지고 계시다.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시리이다." 그의 말씀에 의하여, 그의 약속과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에게 알려지며, 하나님의 선하신 사업이 시작되고 우리 안에서 영위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갖 은혜를 받았으며 중보자로서의 사업과 직분에 필요한 모든 천품(天稟)을 부여받으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충만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다.(요 1:16). 은혜는 그 자신의 힘과 격려를 위해 그이 마음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입술 속으로도 쏟아져 들어갔으니, 이는 그가 총괄적으로는 그의 말씀에 의해서 개개 신자에게는 그의 입맞춤으로써 거룩함과 위안하심을 전달하시기 위함이다. 그의 입에 쏟아져 들어간 이 은혜로부터 모든 사람이 경탄해 마지 않는 은혜스런 말씀이 나왔던 것이다(눅 4:22). 은혜의 복음이 그 입술에 담기워져 있었다. 이는 은혜의 복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선포되기 시작하였고"우리는 그에게서 그것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갈데아 판은 "예언의 영이 그의 입술에 담기워 있다"고 해독하고 있다.

(2) 그는 축복을 가지고 계시며,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가지고 계시다. "당신께서는 인간의 자손들이 사용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신의 은총을 신탁받고 계신 위대한 보관자이시기에 하나님이 당신께 영영히 복을 주셨고 당신을 영원한 축복으로 삼으셨으며 그로써 땅 위의 만국이 당신 안에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곳에는 그의 축복도 함께 해 주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엡 1:3).

3. 그의 모든 대적들에 대한 승리자로서, 신랑된 임금은 전쟁의 용사이다. 그런데 자기 혼인도 그를 전쟁으로부터 면하게 하는 구실이 되지 않는다(율법에 의해 허용이 되어 있는데도, 신 24:5). 오히려 그 결혼식이 그를 전쟁터로 오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칼의 힘에 의하여 그를 배필을 포로 상태에서 구출해 내어, 그녀를 손아귀에 넣고 그녀를 위해 이겨야 하며, 그리고 나서야 그녀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여기서 대하여 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그의 전쟁 준비(3절).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라!"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다. 그 말씀의 약속에 의하여, 또 그 약속에 포함되어 있는 은혜로써 영혼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기꺼이 복종하게 되며 그의 충성된 신하가 된다. 그리스도께 끝까지 대항하는 자들은 그 말씀의 경고에 의하여, 또 그 위협대로 시행되는 심판에 의하여 때가 이르면 망하고 파멸당할 것이다. 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개종하였으나 유대 민족은 복음에 대한 저들의 화해할 수 없는 적의로 인하여 그 예고대로 멸망을 받았고 이교 신앙도 철폐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허리에 찬 검은 "그의 입에서 나온다"고 일컬어지는(계 19:15)것과 동일한 칼이다. 복음이 만방에 선포되도록 보내졌을 때 우리 구속주께서는 자기 칼을 허리에 차셨던 것이다.

(2) 이 거룩한 전쟁에 대한 그의 원정. 그는 위대한 왕이 화려하고도 장려한 위풍을 충분히 갖추고 출정하듯 "그의 영화와 위엄"을, 즉 그의 칼과 영화와 위엄을 갖추고 나아간다. 그리스도는 그의 복음 안에서 초월적으로 위대하고도 탁월하게 나타나시며 명예와 위험 천부께서 그에게 입히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풍채나 복음 양자에서 볼 때, 외부적 영광과 위엄은 갖지 않으셨고, 인간들을 매혹시키거나(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므로)위압시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계시지 않으셨다. "그는 종의 형체를 가지셨던"(빌 2:7) 것이다. 그는 온전히 영적 영광과 영적 위엄을 지녔다.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에는 너무나 많은 은혜와 그에 따른 영광이 있고,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씀에는 매우 큰 공포가 있고 따라서 큰 위엄이 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다 합산하여 "구속주께서는 복음의 병거를 타고 영화와 위엄으로 나아가신다"고 말할 수 있다. "왕은 위엄 있게 타고 승전하소서(4절). 왕은 승전하시고, 타소서"이 말씀은 그가 "여호와의 선한 즐거움"을 따라 형통할 것이며 그가 자기 수난의 보상으로 "강한 자와 그 뺏은 것을 나누리라"는 그의 천부의 약속을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형통하라"고 말씀하시는 자들은 번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사 52:10-12).

또 이것은 영혼들이 그에게로 전향하며, 그에 대적하여 반기를 드는 모든 흑암의 권세가 파멸을 당하는 가운데 그가 융성하도록 기도하는 그의 친구들의 선한 소원을 의미한다. "주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나이다. 계속하여 번영하소서."



(3) 그가 종사하고 있는 일의 영화스러운 명분-"진리와 온유와 공의로 인하여," 어떤 의미로 이런 것들은 인간 세상에서 타락되어 상실된 것들이며, 그리스도는 이를 회복하고 구조하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1] 복음 그 자체는 "진리와 온유와 공의"이다. 복음은 진리와 공의의 권세로 지휘한다. 기독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들을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온유함과 온순함에 의해 더욱 촉구된다(고전 4:12, 13; 딤후 2:25)

[2] 그리스도는 복음안에서 그의 "진리와 온유와 공의"로써 나타나시는데, 이들은 그의 영광과 위엄이며 그는 이들로 인해 융성할 것이다. 인간들은 그가 진실하기 때문에 믿고 의지하게 되며, 그가 온유하기에 그에게서 배우게 되고(마 11:26, 그리스도의 은유하심은 큰 힘에 있다. 고후 10:1), 그가 의로우사 공평으로 통치를 하시기에 그에게 복종할 수 있게 된다.

[3] 복음은 그것이 인간을 설복하는 한 저들의 심령에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확립시키며, 저들의 잘못은 진리의 빛에 의하여 교정하고 저들의 정열은 온유의 힘으로 제어하며 저들의 마음과 삶은 공의의 율법으로 다스린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 중에 자기 나라를 세우심으로써, 타락한 세상에서 그 영화스러운 것들을 복원시켜 주시며, 실수와 악의와 불법으로 말미암아 쫓겨나던 공평하고도 의로운 지배자들의 정당한 이유를 자기 아래에서 주장해 주시려고 오셨던 것이다.

(4) 그의 토벌의 성공, "왕의 오른 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주는 주의 복음과 협력하여 그것으로 승리하게 만드는 신적 능력의 놀라우심을 체험하실 것이며, 그 결과는 두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1] 영혼들을 그에게로 개종시키고 환원시키기 위해서 두려운 일들이 행해지게 된다. 마음은 찔림을 받고 양심은 깜짝 놀라게 되어야 하며, 여호와의 공포가 그의 위안을 위해 먼저 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오른 손에 의해 행해진다. 위로자(성령)는 계속 머물러 계실 것이다(요 16:8).

[2] 지옥 문과 그 지지자들을 정복하시기 위해서, 또 유대교와 이방 종교를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두려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대이로 인해 "사람들이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눅 21:26) 위대한 자들과 장군들은 "산과 바위가 자기들에게 떨어져"달라고 호소할 것이다(계 6:15).

2. 다음 구절은 이 두려운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5절). "살이 날카로와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는다."

첫째, 타고 날 때부터 원수된 자들은 이처럼 부상을 입는데 이는 그들을 진압하여 화해를 얻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다. 확신은 활의 살과 같아서 그들이 집착하는 마음에게 날카로와 사람들이 그의 법과 통치에 복종하여 그리스도 아래에 끊어 엎드리도록 만든다. 이 돌 위에 그렇게 떨어지는 자는 깨어질 것이다(마 21:44).

둘째, 자기들의 반목질시를 고집하는 자들은 이처럼 상처를 입을 것이니, 이는 저희로 파멸을 당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두려움의 화살은 날카로와 저희 심장을 관통할 것이며, 그들은 이로써 그의 아래 거꾸러져 그의 발등상이 될 것이다(110:1). 하나님이 자기들 위에 군림하기를 원치 않는 자들은 끌려나가 그의 앞에서 살해당할 것이며(눅 19:27). 그의 금홀에 복종하고자 하지 않는 자들은 그의 철장으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45:2 없음.

 

45:3 없음.

 

45:4 없음.

 

45:5 없음.

 

45:6

그리스도의 주권과 영광 (시편 45:6-9)

우리는 여기서 자기 보좌를 공의로 충만케 하며 자기 궁정을 화려하게 보존하는 신랑되신 왕과 접하게 된다.

Ⅰ. 그는 자기 보좌를 공의로 가득 채우고 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나이다"라고 한 말씀은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께 하시는 말씀이다. 이것은 히브리서 1장 8,9절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말씀이 거기 인용된 것은 그가 하나님이시며 "천사들보다 더 훌륭한 이름"을 갖고 계신 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중보자께서는 하나님이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중보자의 사업을 행할 수 없었을 것이며 중보자의 면류관을 쓸 자격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다스림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하자.

1. 그 통치의 영원성. 그것은 "영영하리라." 그의 통치는 지옥문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간과 모든 시대를 통하여 이땅에 존족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배의 복된 열매와 결과로 하늘의 날들만큼 오래 지속할 것이며 영원 그 자체와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아마 그 때에까지라도 구속주의 영광과 구속받은 자의 복됨은 발전의 무한한 연속선 안에 있을 것이니, 이는 그의 정사(政事)뿐만 아니라 그의 "정사와 평강의 더 힘이 무궁할"것이기 때문이다(시 9:7). 나라가 "아버지 하나님께 바쳐질" 때에도(고전 15:24) 구속주의 보좌는 존속할 것이다.

2. 그 정사의 공평성."주의 나라의 홀" 즉 주의 통치 운영은 "공평하나이다." 그것은 선악의 영원한 척도와 전제가 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뜻에 정확히 의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슨 일을 행하시더라도 어느 자기 백성에게라도 부당한 일을 하시지 않으시며 오히려 부당한 일을 당하는 자에게 그 잘못은 시정해 주신다." 그는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신다"(7절). 그는 그 스스로가 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신다. 자기 삶의 거룩한과 그 죽음의 공로와 자기 복음의 위대한 계획에 의하여 그는 자기가 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드러나게 하셨으며(그의 모범과 그의 만족과 교훈에 의해 그는 영원한 공의를 가져왔던 것이다). 또한 그가 죄악을 미워한다는 사실도 나타나게 하셨으니, 즉 되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가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나타난 만큼 그토록 뚜렷이 드러난 적은 없었던 것이다.

3. 그 정사의 확립과 고양.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다. 요 20:17 . 이는 하나님이 그를 임명하셨고, 그는 그 계약을 맺은 자들의 머리가 되셨기 때문이다)즐거움이 기름으로 왕에게 부었나이다."

(1) "그러므로, "즉 "하나님은 이 의로운 통치를 위해 그의 성령, 곧 거룩한 기름을 당신에게 부셨으며, 당신은 그것으로 인해 사업에 적합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나이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사 61:1). 하나님은 자기가 칭하신 대로 그것에 알맞은 자격을 그에게 부여하셨다(사 11:2). 그리스도께서 자기 사업을 추진하실 때에 지니셨던 충만한 즐거움 때문에 그 성령은 "즐거움의 기름"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그는 자기의 모든 "동류보다 승하도록"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니, 제사장이나 왕 등 모든 기름부음을 받은 자보다 승하였다.

(2) "정의의 진흥과 죄의 박멸을 위해 주께서 행하신다. 수난당하신 일에 대한 보상으로서, 하나님은 즐거움의 기름을 당신께 부으시사 올리우신 상태에 수반되는 모든 명예와 기쁨을 맞게 하셨나이다." "그가 자기를 낮추셨으니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도다"(빌 2:8, 9). 하나님이 그에게 기름부으셨다는 것은 그가 높이운 뒤 받을 권세와 영광을 의미해 준다. 즉 그는 메시야의 모든 위엄과 권위를 수여받는다. 또한 하나님이 그에게 즐거움의 기름을 부으셨다는 것은 자기"아버지 앞"에서 빛을 대하게 될 때와(행 2:28) 자기 사업의 성사시에 그가 얻을 기쁨, 즉 "그 앞에 있는 기쁨"을(히브리서 12장 2절에서는 그의 높이우심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의미하는데, 그는 그것을 "보고 만족히 여기에"될 것이다(사 53:11). 이것이 바로 그가 기름 부음을 받아 자기의 모든 "동류보다 승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자기를 믿는 모든 신자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이다. 기름 부음의 맛을 조금은 맛보지만 그들의 기름 부음은 측량할 수 있는 것이나 그의 기름부음은 말(斗)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는 그것으로 그가 천사들보다 더 걸출하심을 증명하고 있다(히 1:4, 9). 죄인의 구원은 천사들의 기쁨이 되며(눅 15:10), 성도에게 있어서는 더 큰 기쁨이 되는 것이다.

Ⅱ. 그는 자기 궁정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보존한다.

1. 그가 걸치고 나타나는 그 의복의 위풍당당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을 느끼게 할 화려함 때문에 주목을 끄는게 아니라 그것이 뿌리는 방향의 상쾌함과 즐거움 때문에 주목받는다(8절). "그것들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그와 그의 의복에 칠해진 "즐거움의 기름") 향기가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관유의 일부로서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하려고 조제하는 것은 엄금되었었다(출 30,23,24). 이것은 우리 신앙 고백의 대상이신 최고 제사장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성령의 도유(塗油)를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그 성유를 지시하는 것같이 보여진다. 영혼을 그에게로 이끌며(아 1:3, 4) 그를 "믿는 이들에게는 보배"가 되도록 하는 것은 (벧전 2:7) 바로 이러한 좋은 기름의 향기, 즉 그의 은혜와 위로하심인 것이다.

2. 그의 왕궁은"상아궁"이라고 일컬어지며, 그것은 당시에 가장 훌륭한 것으로 간주되던 것이었다. 우리는 아합이 건축한 상아의 집에 대한 이야기도 볼 수 있다(왕상 22:39). 위에 있는 광명의 저택은 "상아궁"이어서 그곳에는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모든 기쁨이 있으며 그들은 거기서 영원히 완전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인해 그는 기쁨을 얻으며, 그의 소유가 되는 모든 자는 다 그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여호와의 기쁨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3. 그 궁정의 아름다움은 아주 찬연히 빛난다. 궁중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때인 궁중의 공적 회합에서, 여기에서 언급하는 귀부인들의 화려함 만큼 (9절). 그 궁중연회의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1) 개개의 신자들은 여기서 주권자에게 경의를 표하여 아름답게 성장하고 나온 귀부인들에 비유되고 있다. "왕의 귀비 중에는 열왕의 딸이 있으며"그들의 모습과 자태와 장식품은(우리가 저희 최고 혈통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다른 모든 자를 능가한다. 모든 참신자는 위로부터 태어났다. 그들은 왕 중 왕의 자녀들이다. 이런 자들이 저희 기도와 찬미로 그들의 주 예수님의 보좌를 시립하고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그들의 명예이며 그는 또 그것을 자기의 소유로 여기시기를 기뻐하신다. 열왕의 딸들을 그의 귀비들이나 시녀들로 여기는 것은 그 귀비된 자들의 부왕들도 그에게는 신하가 되고 그에게 의지해야 하며, 저희 딸이 그에게 시중드는 일은 승진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2) 이런 개개의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 전체는 여기에서 왕후로 비유되고 있다. 왕의 배우자 왕후는 영원히 불변할 계약에 의하여 왕이 친히 혼인을 약속한 자이다. 그 왕후는 "그의 우편에," 그의 가까이에 서 있으며 가장 부귀한 차림을 하고, 극 "오빌의 금으로"꾸미고 금실이나 금사슬로 짠 의복과 여러 금장식물로 꾸민채로 그로부터 예우(禮遇)를 받는다. 그 여인은 "어린 양의 아내"가 될 "신분"이니 그 여인이 장식물인 그 은혜는 순결함을 나타내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로 비유되며(계 19:8), 본문에서는 그것의 값비쌈 때문에 "오빌의 금"에 비유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구속과 같이 우리의 치장도 썩어질 것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하나님 아들의 귀한 보혈"에 힘입은 것이기 때문이다.

 

45:7 없음.

 

45:8 없음.

 

45:9 없음.

 

45:10

교회의 영광 (시편 45:10-17)

이 시편의 후반부는 신랑되신 왕이 우편에 서 있는 왕의 신부에게 한 말이다. 아들에게 "네 보좌는 영영하리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은 이 말씀을 교회에게 이르시는데, 교회가 자기 아들의 배우자이므로 그는 여기서 교회를 자기의 "딸"이라고 칭하고 계신다.

Ⅰ. 그는 그 여인에게서 기대하는 의무들은 그녀에게 말씀하시는데, 주 예수님과 관계를 맺게 되는 모든 자들은 이 의무를 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즉 네 배필이 조건에 복종하고 네 뜻을 그것과 부응하도록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득을 얻은 방법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 것이니라." 귀있는 자는 열심히 들을 것이며, 듣는 자는 그것을 숙고하고 충분히 가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생각하는 자는 기울어져서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힘이 항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요구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그 여자는 다른 모든 이들과 절교하여야 한다.

(1) 여기에 그 여인의 배우자에 대한 법률이 있다. "결혼의 법에 따라서 네 백성과 아비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들에게 품었던 네 애정을 지니지 말며 그들에게 돌아가고 싶어하지 말라. 품었던 네 애정을 지니지 말며 그들에게 돌아가고 싶어하지 말라. 롯의 처가 소돔을 돌아보았던 것처럼 뒤돌아보고 싶도록 만들 그런 기억들(네게 친근하였던 네백성들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더 친애하였던 네 아비의 집에 대한 기억까지도) 모조리 추방하여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의 본토를 떠났을 때 그는 "자기가 나온 그 지방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다음 사실을 나타낸다.

[1] 유대교나 이교 신앙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에로 전향한 자들에게는 옛 누룩을 완전히 쫓아내는 일과 그들의 기독교의 신앙고백을 유대교의 의식이나 이교의 우상 숭배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사마리아인들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안에 잡종의 종교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이름을 들어 바칠 때, 아비나 어미나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친근하였던 모든 것을 미워하는 일, 즉 그리스도와 그의 명예와 그의 안에서 얻을 우리의 이익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덜 사랑해야 하는 것을 덜 사랑해야 하는 일이(눅 14:26)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를 보여 준다.

(2) 이처럼 자기의 이전 인연으로부터 완전히 손을 뗀 왕의 신부에게는 선한 격려가 주어지고 있다. "그러하면 왕이 너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이것은 그 여자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간에 그 여인의 옛 의식과 관습을 그의 종교와 혼합시킨다면 그것은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오점이 되므로 자칫하면 신랑되신 왕의 총애에 의한 그 여인의 권익을 위태롭게 할 것임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동시에 만약 그 여인이 왕의 뜻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경우에는 그가 그 여인을 기쁘게 여기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교회에게 있어서나 각개 신자들에게 있어서나 거룩한 아름다움은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큰 가치가 있으며 매우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 거룩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에서는 그가 "이곳에는 나의 영원한 안식이 있다. 여기에서 내가 거할 것이니, 내가 그것을 원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금 촛대 사이로 즐거이 다니시는 것이다(계 2:1).

2. 그 여인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순종해야 한다.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 교회는 아내가 남편에게 하듯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하며(엡 5:24) 사라가 아브라함을 불렀듯이 그를 "주님"이라고 불러야 하고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벧전 3:6). 또한 그의 통치에 복종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거룩한 영광을 돌려야 된다. 우리는 그들 하나님과 우리의 주로서 경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듯 아들에게도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고백하고 그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된다(빌 2:11).

Ⅱ. 그는 그 여인을 위해 작정되어 있는 명예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있다.

1. 그 여인에게는 큰 찬사가 던져질 것이며 값비싼 예물이 바쳐져야 한다(12절). "부요하고 화려한 도성인 두로의 딸이, 두로 왕의 딸이 예물을 가지고 거기에 올 것이다. 주위에 있는 모든 왕족들은 네 은총을 얻고 네가 있는 이익을 구하기 위해 전체의 대표자로 한 사신을 보내게 될 것이다. 궁중에 의지하지 않을 정도로 재물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백성 중 부한 자도 너로 인하여 그들이 너의 배우자이신 주를 친구로 삼을 수 있도록, 너의 은총을 간청할 것이다." 가식적인 유대인들, 즉 유대인처럼 부유하다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부유한 유대인들이 빌라델피아 시기에는 교회의 발 앞에 절할 것이며, "그리스도가 그녀(교회)를 사랑하는 줄알게" 될 것이다(계 3:9). 그리스도를 믿기로 개심한 이방인들이 교회와 연합할 때, 그때 그들은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고후 8:5; 롬 15:16).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의 나라의 봉사를 위하여 그들 자신과 함께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칠 때도 그들은 "예물을"드리는 셈이다.

2. 그녀는 매우 찬란할 것이고 모두의 눈에 다음과 같은 면에서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1) 그녀의 개인적인 자격과 모든 사람이 경탄하게 될 마음의 자질(13절). "왕의 딸이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린다." 교회의 영화는 영적인 영화이며, 그것은 사실상 참된 영화이다. 그것은 영혼의 영화이며, 곧 사람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화로운 것이며 영원한 영광의 증거가 된다. 성도의 영화는 세속적인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영화가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져 있으므로 자연인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그렇게 구별하는 자들은 그것을 높이 평가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열망해야 할 참된 영광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자. 그것은 "욕신의 눈이 보기에 아름다운"것이 아니라 "숨은 사람의 마음"에 있고 "썩지 아니하는"것으로서(벧전 3:4),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나는 것(롬 2:29)이다.



(2) 그녀의 풍요한 외양. 비록 그녀의 모든 영화가 안에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그녀가 진심으로 소중한 존재가 되고 있다 할지라도"그 웃은" 또한 "금으로 수놓았도다." 크리스챤을 이 세상에 나타나게 해 주는 크리스챤의 대화는 선한 사업으로써, 칠이나 장식처럼 즐겁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금처럼 본질적으로 홀륭한 것으로써 풍요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공을 들여 금으로 수놓은 것처럼 정교하고 정확해야 한다.

3. 그녀의 혼례는 큰 영화와 기쁨으로써 축하될 것이다(14,15절). 주 하나님께서 여자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던 것과 같이(창 2:22) "저가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리라,"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화간의 이 신비적인 결혼의 모형이었다. 아버지가 데려오는 자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께로 올 수가 없다. 즉 그 이외에는 "왕께로" 이끌려 "왕궁에 들어갈"수 없는 것이다(15절).

(1)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배우자를 그리스도께 데리고 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1] 영혼이 그리스도께 대화함으로써 그때 그들은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비밀히 중매된다(고후 11:2; 롬 7:4).

[2] 마지막때에 신비로운 몸이 완성되고 모든 성도들이 영화롭게 됨으로써. 그때에 그 "신부," "어린 양의 아내"는 완전히 준비를 끝내고 있을 것이며, 은혜의 선택에 속한 모든 자들은 집으로 초청 받아 모두 그리스도께로 모여질 것이다(살후 2:1). 그때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고(계 19:7; 21:2)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러 나간다"(마 25:1). 그때에 그들은 "왕궁에", 하늘의 집에 들어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게될 것이다.

(2) 이 두가지 혼례 속에서 그 왕실에 신부를 영화롭게 한 것은 무엇인가?

[1] 그녀의 혼례복-그리스도의 의와 성령의 은혜로 "수놓은 옷"이다. 이것은 모두 거룩한 지혜로써 신기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2] 그 신부의 처녀 친구들 즉"동무 처녀들"이다. 그들은 등불에는 물론 그릇에도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 지혜로운 처녀들이다. 교회와 연합되어 교회를 지지하고 따르는 자들은 이 혼인 잔치에 들어갈 것이다.

[3] 이 혼인을 축하하게 될 잔치이다. "저희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으리라." 탕아가 그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때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 15:32). 그리고 양의 혼인이 기약에 이르렀을 때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자."(계 19:7). 왜냐하면 "혼인날은 마음이 기쁜 때"이기 때문이다(아 3:11).

4. 이 혼인의 자손들은 혁혁할 것이다(16절). "왕의 아들들이 왕의 열조를 계승할 것이라." 사라져가는 열조들처럼 쇠하여 "없어져 가는"(히 8:13). 십리, 즉 구약의 교회를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을 이방 교회 즉 신약의 교회가 계승할 것이다(롬 11:17). 그리고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더욱 더 뛰어날 것이다(사 54:1). 그리스도에 대한 이 약속은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리라"(사 53:10)는 것과 같은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온 세상의 군왕"이 될 것이다. 어떤 민족은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군왕이 될 것이며,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이 될 것이다(계 1:6). 또는 그것은 유대의 왕들보다도 훨씬 많은 크리스챤 왕들(전자는 가나안 땅에만 있으나 후자는 온 세계에 있다)이 "왕의 젖을 먹을" 교회의 수양 아버지와 수양어머니가 있으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만드신 왕이다. 왜냐하면 "그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펴기"(잠 8:15) 때문이다.

5. 이 혼인의 찬미는 고귀한 신랑에 대한 찬미 속에서 영원할 것이다(17절). "내가 왕이 이름을 만세에 기억케 하리로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각 세대마다 사역자들과 크리스챤들을 계승시킴으로써 그것을 영원케 할 것을 여기에서 약속하시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의 이름을 지탱해 나갈 것이며 그의 이름은 모든 세대에 기억됨으로써 이처럼 "영구할"것이다(72:17). 이와 같이 기독교 신앙의 계승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온 세대에 주를 기억할 것이므로, 그들은 영원히 주를 찬송하리로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영예를 돕는 자들은 천국에서 그의 영광을 보고 그것을 나눌 것이며 영원히 그를 찬송할 것이다. 저 세상에 있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믿는 소망 가운데 그곳으로 가는 우리 새대의 유일한 길이신 그리스도를 항상 기억하도록 하자. 그리고 또한 이 세상에 있는 구속자의 나라가 영구하리라는 확신 속에서 그에 대한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여, 그의 이름이"영구하고 하늘의 날들"같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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