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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

악인의 사악함 (시편 36:1-4)

이 시편의 표제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종"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왜 이 시편에서는 그렇게 칭해지고 시편 18편을 제외한 다른 시편의 표제에는 그런 칭호가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유도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모든 선량한 사람이 하나님의 종인 것처럼 여호와의 종이었을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 예언자로서 그 시대의 어느 누구보다 더 직접적이고 더 탁월하게 하나님의 왕국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봉사하도록 고용된 자로서 그의 종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영광스러워하고 있다(116:16). 위대하신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인간들 가운데에서 가장 큰 위인에게도 결코 비난거리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명예가 된다. 그것은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승진인 것이다.

다윗은 이 구절들 속에서 사악한 자의 악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자기의 특별한 박해자들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일반적으로 악명높은 흉악한 죄인들 전체를 지목하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에서 대하는 것은 죄의 원인과 색깔과 그 뿌리 및 가지이다.

Ⅰ. 여기에는 쓴 뿌리가 나오는데 이로부터 악한 자의 모든 악이 유래하는 것이다.

1.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멸시와 그에게 대한 정당한 존중심의 결핍으로부터 연유한다(1절). "악인의 죄가(뒤에 3,4절에서도 묘사된다) 내 마음에 이르기를 (나로 내 자신 안에서 결론짓게 만든다) 그의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는도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가 하듯 그렇게 터무니 없는 말과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위엄을 경외하고 그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려고, 또 감히 어기려하지도 못 하였을 것이고 자기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감히 범하지도 못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에 대한 두려움을 품지 않은 범죄인이 이러 이러한 짓을 했다는 것은 우리의 법률에 의하여 마땅히 기소의 형식을 띠게 되었다. 악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공공연하게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죄는 경건과 불경건의 성질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모든 자들의 마음 속에 그것을 은밀히 속삭였다. 다윗은 자유 분방하게 살고 있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없이 사는 자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2. 그것은 그들 스스로의 자기 기만과 그들 자신의 영혼에게 고의로 덮어씌운 속임수에서 연유한다(2절). "저가 그 자신의 눈에 스스로 자긍한다." 즉 그가 죄를 계속 행하는 동안 그는 자기가 스스로를 위해 현명하고도 옳게 행하는 줄로 생각하며 자기의 악한 행실의 폐해와 위험을 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악을 선이라 부르며 선을 악이라 칭한다. 자기의 방종을 그는 단지 정당한 자유인 듯 주장하며, 그의 기만을 사려와 책략으로 간주하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한 그의 박해는 필요한 정의의 일부라고 말하고 있다. 혹 그 자신의 양심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를 위협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실 것이다. 내가 계속하더라도 나는 화평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죄인들은 자긍하는 자들이 됨으로써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자들이 된다. 만약 그들이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다면 사탄도 그들을 속일 수 없다. 하지만 그 기만이 항상 계속되겠는가? 아니다. 죄인이 그 궤사의 그릇됨을 깨닫고, "그의 죄악이 드러나서 미워함을 받게"될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불의는 증오에 찬 것이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그 가증스러운 것"이며 그의 순수하고 질투하시는 눈이 차마 바라보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죄인 자신에게도 해를 준다. 그러므로 그 불의는 죄인 자신에게도 미운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죄인은 불의에 따르는 세속적 이득과 육욕의 쾌락 때문에 그것을 달콤한 빵조각같이 자기 혀 밑에 넣고 굴린다. 그렇지만 "그의 음식은 창자 속에서 변하여 독사의 쓸개가 되느니라"(욥 20:13, 14). 그러나 저들의 양심이 확신을 얻고 죄악이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어 저들 자신에게 공포로 변하는 때, 떨림의 잔이 저희 손에 쥐어져서 저희가 그 찌거기를 마시게 되는 때, 그 때에는 저희의 죄악이 미운 것으로 발견되고 저희의 자긍은 말할 수 없는 우행으로 드러나서 저희는 정죄는 더 악화될 것이다.

Ⅱ. 여기에는 이 쓴 뿌리에서 생겨나는 저주받은 가지가 등장하고 있다. 죄인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을 신성시한다. 그렇게 되면 그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것 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이 두가지 일은 죄악의 첫 출입구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긍하는 것이다.

1.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에 대해 진실과 허위, 정당과 부당의 여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3절). "그의 입의 말은 죄악과 궤휼이며,"악행을 하고자 궁리하고, 또 그것을 빛좋은 개살구와 같이 그럴 듯한 구실로 은폐시키려고 궁리한다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의 못될 것이다. 저희 자신의 영혼에 대해 거짓된 자들이 누구에게 진실할 수 있겠는가?

2. 그들 안에 그나마도 남아 있던 극히 적은 선마저도 사라지고 만다. 덕행의 불꽃은 꺼져 버리고 저들의 확신을 꺾이고 말았으며 저희의 선한 출발은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즉 저희는"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그들은 지혜의 지령과 종교의 지배하에 있는 것같이 보였으나 이 속박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버렸다. 저들은 저희 종교와 함께 저희 지혜도 떨쳐내 버린다. 선행하기를 그만 두는 자들은 지혜를 포기하는 자들인 것이다.

3. 선행하기를 중단하고 난 뒤 그들은 자기들 주위에 있는 착하고 선행을 하는 자들에게 해를 입히며 성가시게 할 궁리를 하게 한다(4절)." 그는 그의 책상에서 죄악을 꾀하는도다."

(1) 태만은 죄를 범하게 한다. 사람들이 선행을 중단하고 기도를 그만 두며, 하나님의 율례와 그에게 대한 의무를 보살피지 않게 될 때는 악마가 그들을 쉽사리 자기의 부하로, 도구로 삼아서, 죄악 속으로 끌려들어 올 자는 끌어들이고, 끌려 들어오지 않을 자는 환난 속으로 끌어들인다. 선을 행하기를 중단하는 자들은 악을 행하기 시작한다. 악마는 자기의 결백으로부터 이탈해 나온 뒤 하와의 유혹자가 되었고 의로운 아벨의 박해자가 되었던 것이다.

(2) 죄악을 저지른다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그것을 계획한다는 것은 더욱 나쁘다. 고의로, 결심하여 그 일을 행하며,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잘 해내기 위하여 자기의 온갖 지혜를 다 꺼내고, 음모와 술책으로 옛 뱀의 악의뿐만 아니라 그 교묘함으로써 악을 행하며,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말씀만을 상고하고 있어야 할 침상 위에서 죄악을 궁리한다는 것은 가일층 나쁜 짓이다.(미 2:1). 이것은 악을 행하고자 하는 죄인의 마음을 여실히 입증해 준다.

4. 죄의 길에, 즉 선하지도 않고 그 안에나 끝에도 선이 없는 그 길에 진입하고 난 뒤 그들은 그 길을 계속 갈 것을 고집하고 마음을 굳게 다진다. 그는 자기가 계획한 죄악을 실행하기로 스스로 다짐을 하는데, 그것이 아무리 자기의 의무와 진정한 이익에 상반된다고 하더라도 그가 행하기로 뜻을 둔 것을 억제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 죄인들이 저희 완고와 몰염치로써 심장을 강철로 입히고 저희 얼굴을 몰염치로 덮어 씌우기 않았다면 그들은 저희의 악한 길을 공평하고 선한 모든 것에 대해 그토록 정반대로 계속 해나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5. 스스로 악을 자행하는 저들은 타인의 모든 악도 싫어하지 않았다. "저는 악을 싫어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즐거워하며 자기 만큼 나쁜 타인들을 보고 기뻐한다. 혹은 이것은 죄를 회개치 않는 저희의 완고를 의미할 수도 있다. 악을 행한 자들도 만일 하나님께서 회개를 주시면 자기들이 행하였던 악을 싫어하게 되며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다. 죄를 저지를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달콤하였다. 하더라도 회고해 볼 때에는 아주 쓴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강퍅하게 된 죄인들은 저희 양심이 너무나도 시들고 어리석어서 나중에 어떤 후회나 자책감을 가지고 저희 죄를 반성하는 일도 없으며, 마치 저희가 하나님 앞에서 직접 그것을 합리화시킬 수 있다는 듯이 자기들이 행한 일들을 고수한다.

어떤 이는 다윗이 이 모든 것에서 특별히 사울을 지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울은 하나님의 경외를 일축해 버렸고 모든 선을 그만 두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 딸을 다윗에게 아내로 줄 때에도 다윗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 가장하면서 동시에 그에게 대한 재해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의 해석에 있어서 우리들 자신을 그렇게 제한시킬 필요는 없다. 이 표현에 부합하는 자들이 우리 중에만 해도 너무나 많으니 이는 크게 슬퍼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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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없음.

 

36:4 없음.

 

36:5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총 (시편 36:5-12)

다윗은 이제까지 비통한 심정으로 악인의 사악함에 대해 주위를 돌아다보았으나 본 문단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쳐다보고 위안을 얻고 있다. 이 주제는 전자가 역겨왔던 만큼 즐거움의 원인이 되고 그 악과 저울에 올려 놓고 비교하기에 매우 적당하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생각. 그는 악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세상이 오염되고 자신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았으며 하나님의 명예가 더럽혀져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갑자기 그는 그의 눈과 마음과 언어를 하나님께로 돌리고 있다.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주께서는 선하십니다."

1. 그는 하나님의 품성의 초월적인 완전성을 인정한다. 인간들 사이에서 우리는 흔히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으며(호 4:1) 공평도 의로움도 없다(사 5:7)"고 불평할 만한 이유를 갖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이 모든 것이 조금도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채 발견된다. 아무리 이 세계에는 결여되어 있거나 잘못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를 다스리는 분에게는 모자라거나 잘못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1) 그는 무진장의 인자를 가지신 하나님이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나이다."만일 사람들이 저희의 동정심을 폐쇄해 버린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은혜의 보좌에 계신 하나님에게서 자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치려고 재난을 고안하고 있을때에도 우리가 만약 하나님께 밀착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해 선한 생각을 품으실 것이다. 땅 위에서는 우리가 만족이라고는 거의 접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불안과 실망만 만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가 완전하게, 또 영원무궁토록 지배하는 하늘에는 전부가 만족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편안하고자 바란다면 거기에서 우리의 대화를 나누고 그곳에 있고 싶어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나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하나님과 그의 통치를 나쁘게 생각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에 무수히 깔려 있는 악으로부터, 마치 하나님이 죄를 묵인하고 계신 것처럼 그의 순수성을 곡해하는 대신에 이를 이용하여 그의 인내심을 칭찬하도록 하자. 즉 하나님은 아주 참을성이 많으셔서 그토록 뻔뻔스럽게 자기를 격동시키는 자들에게 자기의 햇빛을 비추시고 비를 내려 주신다. 만약 하나님의 자비가 하늘에(즉 어떤 생물의 자비심보다 무한히 큰 자비가)없다면 이보다 오래 전에 벌써 세상을 다시 물로 몰사시키고 말았을 것이다(사 55:8, 9; 호 11:9 참조).

(2) 그는 범할 수 없는 진리의 하나님이다.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치나이다." 하나님께서 비록 악한 사람들이 아주 많은 악을 저지르도록 허용하고 계시기는 하지만, 그는 죄악에 대한 그의 경고에 성실하실 것이므로 그가 저들과 셈하실 날이 이를 것이다. 그는 그의 백성과 맺은 언약에게 또한 성실하실 것이니 그것은 깨뜨려질 수 없으며 그 약 속의 일점 일획도 땅과 지옥의 악의로 인해 좌절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비록 부실하나 하나님은 충실하시다는 사실은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일이다. 사람들은 허구를 말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한 말들이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너무나 높이 다달아서 사람의 성실이 기상의 변화와 함께 바뀌듯이 바뀌지는 않으니. 즉 그의 성실이 "공중"(혹자가 생각하듯 이렇게 해독되어야 한다)에까지, 그리고 구름 위에 모든 하부 지역의 변화 위에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

(3) 그는 의론의 여지가 없는 정의와 평등의 신이다. "주의 의는 큰 산들과 같아서," 아주 요지부동하며 스스로 굽지도 않고, 또한 너무나 현저하여 온 세상에 명백하다. 왜냐하면 어떤 진리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길에 있어 의로우시다는 것과 그는 자기의 어느 피조물에게도 악을 행치 않으셨으며 악을 행하지도 않으실 것이라는 이 진리보다 더 확실하고 명백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구름과 흑암이 그의 주위에 들렸을 때"에조차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4) 그는 탐색할 수 없는 지혜와 모략의 신이다.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어서 어떤 유한한 오성의 줄이나 측연으로서도 그 깊이를 잴 수가 없나이다." 그의 권세는 지고무쌍하여 그가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조금도 설명할 필요가 없듯이 그의 방법 또한 독자적이고 신비하며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즉 "그의 길은 바다에 있으며 그의 행로는 큰 물결에 있다." 우리는 그가 만사를 지혜롭게 잘 행하시는 줄은 알지만 그가 무엇을 행하시는 지는 알지 못한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섭리가 가지는 광범위한 보살핌과 자선,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 그들을 재화로부터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짐승들은 비록 하나님을 알고 찬양할 능력도 없지만 은혜스럽게도 그들은 부양받는다. 그들의 눈은 그를 섬기고 그는 때 맞추어 그들에게 식물을 제공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도 먹을 것을 주신다고 이상하게 여기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야수들조차도 먹여 살리시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선한 자들에게 공급해 주시지 않을까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어린 사자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자녀를 굶어 죽게 하시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3. 성도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총, 다음 사실에 대해 주목하도록 하자.

(1) 그들의 특색(7절), 그들은" 하나님의 보배로우신 인자하심"에 이끌려서 "그의 날개 그늘아래 저희를 피하는"자들이다.

[1]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들에게 귀중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자를 음미하고 그 안에서 초월적인 감미로움을 맛본다. 그들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떨 것보다 높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온화 함을 우러러보며, 그렇게 친절하고 바람직한 것은 없다고 칭찬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칭찬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며, 그의 인자를 간절히 탐내지 않는 자들은 자기 자신도 기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인 것이다.

[2] 그들은 그런 까닭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들은 그에게 의지하고 그들 자신을 그의 보호 아래 맡기며, 그리고 나서는 암탉의 날개 아래 있는 병아리처럼(마 23:37)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이스라엘의 하나님 날개 아래로 보호를 받으러 온" 것이 개종자의 특성이었다(룻 2:12). 개종자들을 모아들이는 데에 하나님의 보배로우신 인자하심보다 더 적절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그의 안에서 그리고 그에게서 만족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데에 그것보다 더 강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리는 자들은 그에게 매달리게 될 것이다.

(2) 그들의 특권. 자기 하나님이 여호와인 백성들은 행복하되 아주 행복할 것이니, 이는 저희가 그 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누릴 수 있으며, 또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1] 저희 소원은 응답받을 것이다(8절).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다." 저희에게 부족한 것이 공급되고 저희의 갈망은 충족되며 배는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족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가지게 될 것이고, 계화되고 해방된 영혼이 바라거나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세상의 이득과 감각의 즐거움은 싫도록 먹어도 결코 만족을 주지 않을 것이나(사 55:2), 신의 은총과 은혜와의 교통은 만족을 줄 것이며 결코 물리지 않게 할 것이다. 은혜스런 영혼은 비록 하나님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바라기는 하지만 결코 하나님 이상의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섭리가 주는 은사는 그들을 매우 충족하게 만족시켜 주시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들에 만족하게 한다."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다"(빌 4:18). 거룩한 의식의 은혜는 하나님의 집의 풍족함으로서 성별된 영혼에게는 감미로운 것이 되며 영적인 신성한 생활에게는 힘이 되어 준다. 지들은 이로써 풍부히 충족하게 되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산다는 것과 그 약속의 위로를 받는다는 것 이상으로 더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하고도 풍족한 만족은 미래의 상태, 즉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예비되어 있다. 그 곳에서는 그릇마다 가득 채워질 것이다.

[2] 저희의 기쁨은 항구적일 것이다.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저희를 마시우게 하시리이다."

첫째, 참으로 신적인 복락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주의 복락이니 그것을 주시는 주께로부터 유래할 뿐만아니라 그 알맹이와 중심인 주에게서 끝날 것입니다. 순전히 영적인 그 복락은 천상세계의 영화로운 주민들의 것과 본질적으로 같으며, 영원하신 마음의 기쁨과도 유사하다.

둘째, 이러한 복락들이 언제나 가득하고 신선하며, 언제나 흐르는 강이 있다. 그것은 모든 자에게 충분하며 각자에게 다 족한 것이다(시 46:4). 육욕의 쾌락은 부패한 진흙탕과 같으나 신앙의 즐거움은 순수하고 유쾌하여 "수정같이 맑다"(계 22:1).

셋째,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이러한 복락의 강을 제공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물을 마시게 까지 하시며, 저들 안에 작용하셔서 이런 즐거움들에 대한 은혜로운 식욕을 돋우기까지 하시고 자기의 영을 통하여 저희의 영혼을 믿음 안에서의 기쁨과 화평으로 채워 주신다. 또한 하늘에서는 저들이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즐거움을 영원토록 마시고 기쁨의 충만함으로 만족하게 하실 것이다(시 16:11).



[3] 생명과 광명이 저들의 영원한 복과 몫이 될 것이다(9절). 하나님을 직접 자기들의 지복으로 삼았으므로

첫째, 그들은 그의 안에서 생명의 원천을 갖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복락의 강물이 흐르게 된다(8절). 자연의 하나님은 자연스런 삶의 원천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 안에서 살고 활동하며 우리의 존재를 갖는다. 한편 은혜의 하나님은 영적 생활의 원천이시다. 성별 받은 영혼의 모든 힘과 위로는 그 영혼의 모든 은혜로운 원리와 권능과 실천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는 신적인 일들의 모든 감동과 그들을 향한 모든 움직임의 원천이며 장본인이다.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자에게 활기를 부여하신다. 누구든지 와서 그에게서 자유로이 생명의 물을 먹을 수 있다. 그는 또한 영생의 원천이시다. 영광을 입은 성도들의 행복은 그에게 대한 비젼과 그를 향유함에 있으며 중단하지 않고, 또 중지할 염려도 없이 그의 사랑과 직접적으로 교통하는 데에 존재한다.

둘째, 저들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광명을 지니며 지혜와 지식 및 희열과 이 광명에 포함되는 모든 것을 갖게 된다.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뜻한다.

1. "은혜 중에 계신 당신을 알고 영광 중에 계신 당신의 환상을 봄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오성에 충분히 알맞고 그것을 만족시켜 줄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성서 안에서, 특히 세상의 빛 되신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빛나는 신의 광명은 그 안에 모든 진리를 갖고 있다. 우리가 휘장 안에서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될 때에는 온전한 광명을 보게 될 것이요, 그 때에는 충분히 알게 될 것이다(고전 13:12; 요일 3:2).

2. "이제 당신과의 교제 안에서, 즉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은혜의 고통과 당신께 대한 우리의 독실한 애정의 보답으로, 또 곧 천상에 계신 당신을 향유함으로써 우리는 완전한 행복과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은총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소원할 수 있는 온갖 선을 얻습니다."이 세계는 캄캄한 암흑 세계이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위안을 주는 것을 거의 찾지 못한다. 그러나 천상의 광명속에는 진정한 광명이 있으니 그 빛은 거짓 광명이 아니며 영원히 지속되고 닳지 않는 빛이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보되 피조물과 매개체에 의해서 그를 향유할 뿐이다. 그러나 하늘에서는"하나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실"것이며(계 21:3), 우리는 그를 직접 보고 즐기게 될 것이다.

Ⅱ. 우리는 본문에서 다윗의 기도와 중재와 거룩한 개가를 대하게 되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1. 그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 중재하면서, 그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가 주는 혜택과 위로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시도록 구하고 있다(10절).

(1) 그는 하나님을 알고 숙지하여, 그에게 사례하고 그를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또 그들은 그 마음이 정직하고 저희 종교의 고백에 진지한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나 다 신실한 자들이다. 하나님께 정직하지 않은 자들은 저희가 마땅히 알아야 될 만큼 하나님을 알지는 못하는 것이다.

(2) 그가 저들을 위해 구하는 복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즉 저희에게 대한 주의 은총의 표징들) 주의 의로우심이다(즉 저희 안에서 그의 은혜가 작용하는 것). 혹은 그의 인자와 의는 약속에 따르는 그의 선하심이며, 즉 자비와 진리이다.

(3) 그가 바라는 방법으로 이 축복이 전달될 것이다. "인자하심을 계속하시며 베푸소서." 어머니가 그 젖가슴을 내어 자녀에게 주듯이 베푸소서. 그러면 그 자식이 젖가슴에서 젖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여금 영원히 그 자체의 길이에 맞먹을 만큼 늘이시옵소서. 하늘에 있는 성도들의 행복은 온전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혹자가 생각하듯) 끊임없는 발전 도상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천은 항상 가득 차 있을 터이지만 그 지류는 항상 흐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옵니다"(사 64:5).

2. 그는 자신을 위해서, 그의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그 위로 가운데에서 보존되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 드리고 있다(11절).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내 발뒤꿈치를 걸어 넘어 뜨리거나 나를 유린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고 나를 향해 뻗친 악인의 손이 나를 압도하여 어떤 시험에 의해서 내 순수성과 완전함으로부터 쫓아내거나, 환난에 의하여 내 평화와 위안으로부터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자들이 하나님께 집착하는 자들을 이겨 의기양양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즐거움을 경험한 자들은 그 어떤 것도 결코 자기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지게 하지 못하도록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3. 그는 때가 되면 자기의 모는 대적들이 몰락하리라는 소망 속에서 기뻐하고 있다(12절). "거기, 즉 그들이 내게 대한 목적을 이루리라고 생각하던 그 지점에서 그들은 스스로 넘어졌고, 저희가 나를 잡으려고 놓아둔 바로 그 덫에 걸리고 말았다. "거기, 즉 성도들이 심판에 서며 하나님의 집에서 한 장소를 차지하는 저 다른 세상에서(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의한 행악자들은 심판 속에 던져지며 지옥으로, 무저갱 속으로 "던져져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라는 지탱할 수 없는 중량 때문에 결코 거기서 뛰쳐 나올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원수들 중 어떤 특정개인이 넘어질 때 우리가 기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불의한 행악자들의 최종적 타도됨은 영화롭게 된 성도들의 영원한 개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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