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0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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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여호와의 영광 (시편 29:1-11)

이 시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

Ⅰ. 세상의 훌륭한 왕들도 위대하신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라는 요구. 우뢰 소리를 다윗은 그 자신과 다른 왕들로 하여금 위대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는 부르심으로 풀이했다.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라.

1. 이러한 의무를 행하도록 요구받는 자들은 누구인가? "너희 권능있는 자들아(1절). 권능을 갖고 있으며 상속과 산업으로써 그 권능을 이어받게 되었고 왕실의 피가 그 혈관 속으로 흐르고 있는 너희 유력한 자들아!" 이 세상의 훌륭한 자들이 하나님께 경의를 표해야 하는 것은 주로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보다 무한히 위에 계시므로 그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절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권능을 그로부터 얻고 있고 그것을 그를 위해 써야 하며, 그들이 그것에 대해 그로부터 입고 있는 은혜에 보답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2. 이러한 요구가 얼마나 자주 반복되어 있는가?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가 세 번씩이나 반복되어 있다. 이것은 권능 있는 자들이 이러한 의무를 태만히 하며 그 일을 하도록 설득되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점과, 동시에 왕들이 그것을 진심으로 지지한다면 그것은 인간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의 세력을 크게 돕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올"때에 융성하게 되는 것이다(계 21:24).

3. 그들이 요청받고 있는 것은 "여호와께 돌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어떤 것을 필요로 하신다든가, 우리의 어떤 선물로 혜택을 입으실 수 있다든가, 또는 그가 갖고 있지 않는 어떤 것을 우리가 그에게 드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누가 처음으로 여호와께 드렸겠는가?), 그의 영광과 우리에 대한 그의 다스리심을 인식하는 것을 그는 그에게 드리는 선물로서 기쁘게 간주하시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너희 자신을, 그리고 나서 너희 봉사를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무한하신 위엄과 항거할 수 없는 권능을 지니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정하고 그에게 찬미를 돌릴지어다. 그리고 그의 섭리에 의해 어떠한 영광이나 능력을 너희에게 맡기셨든지 간에 그것을 그의 봉사에 바쳐 그의 영광을 위해 쓰여질 수 있도록 하라. 그에게 너희 면류관을 드리고, 그것을 그의 발아래 놓으라. 그에게 너희 왕홀, 너희 칼, 너희 열쇠를 드려라. 너희가 그 모든 것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의 이름과 찬미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드려라." 왕들은 그들의 영광과 능력에 의해 그들 자신을 평가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더욱 무한한 영광과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그것을 돌려야 한다. 권능 있는 자들에게 이러한 경의를 요구하는 것은 다윗 나라의 고관들, 그 지역의 귀족들, 그 지파의 방백들에게 지시된 것이거나(그리고 그것은 그들을 촉구하여 하나님의 제단에서 더욱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일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이 이 일에 매우 태만한 사실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또는 그가 칼로써 이스라엘의 조공국이 되도록 만든 이웃 나라들에게 이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조공국이 되도록 설득하기 위해 지시 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면류관을 쓴 머리도 왕 중의 왕이신 자 앞에 숙여져야 한다. 여기에서 권능있는 자들에 대한 말은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하나님께 경배할지어다"그것은 영원한 복음의 개요이며 핵심이다(계 14:6, 7).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종교적 경배의 본질.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것이다(2절).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알게 하신 곳에 있으며, 거기에는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이 있다. 우리가 그의 이름에 합당한 모든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의 영화를 위해 가장 훌륭하게 말하고 행한다. 할지라도 그 합당한 과제에는 무한히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합당한 감정과 겸양심을 갖고 그가 그 자신에 대해 나타내신 그 계시에 응답할 때, 그때에 우리는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어느 정도 돌릴 수 있다. 만일 듣고 기도함으로써, 그리고 그 밖에 다른 믿음의 행위로써 하나님으로부터의 은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우리의 일로 삼아야 한다.

(2) 종교적 행사를 이행하는 것에 대한 규정.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1] 우리가 경배하는 대상.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위엄은 "거룩한 예복"("거룩함의 아름다움")이라 일컬어지고 있다(대하 20:21).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아름다움을 주시해야 하며 그를 숭배해야 한다. 그는 무한히 두려우시므로 그 무엇보다도 경외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무한히 아리따우시므로 그 모든 것보다도 사랑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그의 거룩함의 미를 주목해야 한다. 천사들은 이것에 대해 항상 찬미하는 것이다(계 4:8).

[2] 경배하는 장소, 성소는 그 당시 "거룩한 산"("거룩함의 아름다움") 이었다. (48:1, 2; 렘 17:12). 성소의 아름다움은 거기서 거룩한 지시에 의해 행해지는 경배와 즉 산에 있는 모형과 정확하게 부합되고 있다. 이제 복음 아래서, 그리스도인들의(청결함이 그들의 아름다움이다)엄숙한 집회가 하나님께서 경배받으셔야 할 장소가 되고 있다.

[3] 경배의 태도, 우리는 모든 종교적 행사에서 거룩해야 하며, 하나님과 그의 뜻과 영광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한다.

이와 같이 거룩함 속에는 아름다움이 있으며, 그것은 모든 경배의 행위 위에 훌륭한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Ⅱ. 이 요구에 대한 타당한 이유. 다음과 같은 면을 깊이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의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1. 하나님은 스스로 충족하시며 이것은 "여호와"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그의 이름 속에 암시되어 있다. 그 이름은 이 짧은 시편 안에 열여덟 번이나 반복되어 있다. 즉 세 구절을 제외한 각 구절에 두 번씩, 그리고 이 세 구절 중 두 구절에 한 번씩 나와 있다. 나는 이 모든 시편들 중에서 이처럼 많이 그의 이름이 나와있는 것을 본적이 없다. 세상의 권능 있는 자들로 하여금 이 이름에 의해 그를 알고 그것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도록 하자.

2. 만유에 대한 그의 주권.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들은 그들 위에 그들을 다스리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하고 있다.

(1) 자연의 왕국에 대한 그의 주권. 자연의 원인에 대한 놀라운 결과와 자연의 능력에 의한 작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깨달아야 하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근원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즉 우리는 우뢰와 번개와 비속에서 그의 영광과 능력을 볼 수 있다.

[1] 그의 영광. 뇌성을 발하는 것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다(3절). 뇌성을 발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며(우뢰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욥 37:2)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정도로 그 우뢰소리가 무서울 뿐만 아니라, 거기에 수반되는 빛, 즉 번개는 매우 찬란하다. 청각과 시각을 이보다 더욱 자극하는 것이 없으며,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 두가지의 숙련된 감각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리석은 자들도 변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영광을 증명하시려는 것과 같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우뢰가 "여호와의 소리"로 불리워져야 하는 여러 가지 특별한 이유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그것이 위로부터 온다거나 어떤 사람의 지시나 통찰 아래 있지 않으며 그 소리가 크고 멀리까지 미치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주 특히 시내 산에서 우뢰로 말씀하셨고 우뢰로써 이스라엘대적들을 패주시키셨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영광의 하나님의 소리가 여기에서는"물 위에" "많은 물 위에"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3절). 그것은 광대한 대양. 창공 아래 있는 물에까지 미친다. 또한 그것은 짙은 구름, 창공위에 있는 물까지도 움직인다. 우뢰 소리를 듣는 각 사람들은(그 귀가 우뢰 소리에 울리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므로"(4절) 가장 높이 있는 자들을 겸손케하고(그 누구도 "하나님과 같은 뇌성을 말할"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교만한 자들을 떨게 만들기에-그의 소리가 그처럼 무서운 것이라면 그의 무기는 어떠하겠는가?-충분하다는 것을 시인할 것이다. 뇌성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경건한 능력을 그처럼 많이 갖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숭배심 속에서 우리 마음을 그에 대한 위대하고 높으며 존경스런 생각으로 가득 채우도록 하자. "주 하나님이여! 주는 매우 위대하시나이다."

[2] 그의 능력(4절). "여호와의 소리가" 그 결과로 나타나듯이, "힘 있도다." 즉 그것은 가사를 행한다. 자연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들은 우리와 번개의 경이적인 결과를 심지어 자연의 원인에서 일반적인 과정으로 나온 경이적인 결과라고까지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연의 하나님이 가지신 전능함의 결과로 보아야만 한다.

첫째, 벼락에 의해 나무들이 꺽어지고 쪼개져 왔다(5,6절). 우뢰속에 있는 "여호와의 소리가"자주 "백향목을 꺽으셨으며," 가장 강하고 가장 장중한 레바논의 백향목들까지도 꺽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백향목을 흔들고 때로는 솟아오르는 꼭대기 가지를 꺽었던 거센 바람을 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진도 또한 나무가 뿌리박고 있는 땅 자체를 흔들었고 "레바논과 시혼"을 뛰게 만들었다. "가데스 광야"도 그처럼 진동했으며(8절). 나무는 바람에 의해 땅은 지진에 의해 흔들렸으며 나는 이 모든 것이 오히려 우뢰에 의해 흔들렸다고 풀이하고 싶다. 하몬드 박사는 이것을 이스라엘에게 도전하고 다윗에게 대항했던 이웃 나라들, 즉 레바논 숲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던 아람 사람들이나 헬몬 산에 접하고 있었던 아모리 사람들, 그리고 가데스 광야 주변에 있었던 모압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같은 이웃 나라 사람들의 간담이 서늘게 되고 그들이 정복된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둘째, 번개에 의해 불이 붙여졌고 그것에 의해 짐과 교회가 불살라져 왔다. 우리는 뜨거운 번갯불에 대해 읽을 수 있다(78:48). 따라서 우뢰 속에 있는 여호와의 소리는 여기에서 "화염을 가르시도다"라고(7절), 즉 하나님께서 화염에게 지시하여 어떤 일을 수행하시기에 합당하다고 여기실 때는 그것을 땅 위에 흩어지게 하시리라고 언급되어 있다.

셋째, 우뢰의 무서움은 암사슴을 낙태케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무엇보다도 당연히 생각한다. 암사슴은 소심한 짐승이어서 우뢰소리에 매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때로 용감하고 강한 자들까지도 우뢰에 떨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인 호레이스는 우뢰와 번개의 두려움으로 인해 무신론에게 개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윗의 이 시편의 내용과 어느 정도 비슷한 것을 묘사하고 있다(lib 1, ode 34).

우뢰는 여기에서 "삼림을 말갛게 벗긴다"고 적혀 있다. 즉 그것은 숲의 짐승들을 매우 두렵게 하므로 그들은 숨었던 굴 속이나 덤불에서 떠나 결국 발각되게 된다. 그것은 나무들을 쓰러뜨리므로 그것들에 의해 가리워져 있던 땅을 드러나게 된다. 우뢰가 칠 때마다 우리는 이 시편을 생각하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가 이 시편을 노래할 때마다 우리가 때로 들었던 무서운 우뢰 소리에 대해 생각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알을 함께 결부시키자. 그리하여 우리가 그에게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촉구하도록 하자. 그리고 이처럼 무서운 소리 이외에 또 다른 그의 음성이 있는 그를 찬미하도록 하자. 그 또 다른 음성으로, 그의 복음에서 나오는 조용하고 작은 소리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므로 그 소리의 공포가 우리를 두렵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2) 섭리의 왕국에 대한 그의 주권(10절). 하나님은 인간 세상을 다스리시는 자로서 찬미 받으셔야 한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시며,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그는 앉아서 휴식하시며 스스로를 즐기실 뿐만 아니라, 그가 "하늘에 세우신" 그 보좌에(103:19) 왕으로서 앉으시어 그곳에서 인생들의 모든 일들을 인지하시고 그것에 대해 명하시며, 또한 그의 의지대로, 그의 의지의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하신다. 이에 대해 다음을 주시하라.

[1] 그의 나라의 권능. 그가 "홍수 때에 좌정하시도다." 땅위에 그의 터를 세우신 것과 같이 강들 위에도 그의 보좌를 세우셨다(24:2). 이 아래 세상의 밀물과 썰물, 그리고 그 속에서의 일들의 동요와 변혁, 이러한 것들은 영구하신 하나님의 평정이나 계획을 조금도 흔들지 못한다. 그의 대적들 의도전이 큰 물에 비유되고 있다(93:3, 4). 그러나 여호와는 그 위에 좌정하시어 그것을 짓이기고 정복하시며 사람들이 품은 온갖 계획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신다. 여기에 "홍수"로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노아의 홍수를 언급하는 경우 외에는 결코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바로 그 일에 관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불경건한 자들의 세상을 심판하시고 처형하시는 재판장으로서 그들을 쓸어 버리셨던 그 홍수 위에 좌정하셨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쓸어 버리셨던 그 홍수 위에 좌정하셨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그 홍수 위에 좌정하시면서 "땅을 침몰하는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창 9:11; 사 54:9)는 그의 약속대로 그것이 다시 땅을 덮지 않도록 노아의 물들을 제재하고 계신다.

[2] 그의 나라의 영존성.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그의 통치에는 종지부가 있을 수 없으며, 또 있지 아니할 것이다. 그의 나라의 행정은 영원에서 나온 그의 뜻과 일치하며 영원을 위한 그의 계획에 의거한다.

(3) 은혜의 왕국에 대한 그의 주권.

[1] 여기에서 그의 영광은 그 왕국의 신하들로부터 받는 숭배 속에서 매우 찬란히 빛난다(9절). 그의 백성들이 그 자신과 그의 마음을 발견하고 그들의 찬미로 그를 섬기는 "그 전에서 모두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서 그것을 보거나 또는 적어도 "먼 데서 볼 수"있을 것이다. (욥 36:25). 그러나 그의 영광이 언급되어 지는 곳은 오직 교회뿐이다.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145:10)(즉 그것은 감사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며), 그의 성도들은 그를 송축하고 그의 지으신 것 속에 나타난 그의 영광에 대해서 말한다(145:10).

[2] 그의 영광은 그가 그 왕국의 신하들에게 하사하시는 은총 속에서 매우 찬란히 빛난다(11절).

첫째, 그는 그들에게 그의 봉사를 위한 자격을 부여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리로다." 모든 악한 일에 대적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강하게 하시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힘을 공급해 주신다. 따라서 그들은 연약함에서 벗어나 강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연약함 속에서 힘을 완전케 하실 것이다.

둘째, 그는 그의 봉사를 하는 자들을 격려하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평강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귀한 축복으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다."의의 일은 평강(주의 율법을 사랑하는 자들이 얻는 큰 평강) 이다." 또한 의의 면류관은 더욱 큰 평강이다. 의인의 목적은 평강이며, 그것은 끝없는 평강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우뢰가 죄인들을 떨게 만들 때, 성도들은 기뻐하며 그들의 머리를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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