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대한 확신 (시편 25:1-7)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의 하나님께로 향한 열망과 의지에 대한 고백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흔히 그의 시편들을 이러한 고백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자신을 이러한 고백이 이루어지도록 스스로 몰두하기 위한 것이었다.
Ⅰ. 그는 하나님께로 향한 그의 열망을 고백하고 있다."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1절). 앞의 시편에서,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는"(4절) 것을 선한 사람의 성품으로 보았다. 그리고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도록" 문들은 머리를 들도록 요청되었다(7절). 이러한 성품, 이러한 요청에 대해 다윗은 여기에서 "주여 나의 영혼이 허탄한 것을 우러러보지 않고, 주를 우러러보나이다"하고 대답하고 있다.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어서 우리의 영혼은 주를 우러러보아야 한다. 기도는 영혼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주목해야 하고 우리의 영혼은 몰두되어야 한다. sursum corda- 즉 너의 마음을 위해 둠으로써 라는 표현은 옛날에는 예배에 대한 권유로써 사용되었다. 세상과 세상것에 대한 거룩한 경멸과 함께, 확고한 생각과 적극적인 믿음으로써 우리는 우리 앞에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을 우리 행복의 근원이신 그에게 두도록 하자.
Ⅱ. 그는 그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으며, 또한 그 의지로 인한 혜택과 위로를 간청하고 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나이다"(2절) 그의 양심은 그가 그 자신이나 어떤 피조물도 신뢰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나 그의 능력이나 약속을 미덥지 않게 여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자기 믿음을 이렇게 고백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고 있다.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는 마음 편하고 매우 만족스러우며, 재앙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탄원하는 하나님은 자기에게 의지함으로써 자기를 영예롭게 하는 자들을 돕는 것을 영예로 여기신다. 사람들이 신뢰하고 있는 것은 그 결과가 증명하듯이 그들에게 기쁜 것이 되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되는 것이다. 이제 다윗은 여기에서 믿음의 지시 하에 진심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간구하고 있다.
1. 수치가 그의 몫이 되지 않기를 간구하고 있다. "주께 대한 나의 신뢰를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내가 어떤 강한 두려움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결국에 가서 주를 의지한 것을 실망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주여, 내가 주께 맡긴 것을 지켜 주옵소서." 우리의 하나님을 지주로서 의지한다면 우리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안에서 개가를 부른다면 우리의 대적들은 우리가 두려움으로 위축되거나 결국에 가서 소망이 약해지는 때에도 우리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2. 수치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의 몫이 되지 않기를 간구하고 있다. 모든 성도들은 적당하고 귀중한 믿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결국에도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교제는 서로를 위한 기도에 의해서라도 유지되어야 한다.
더구나 참된 성도들은 모든 성도들을 위해 간구할 것이다. 믿음의 봉사로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이 소망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아무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3. 수치가 범죄자의 몫이 되기를 간구하고 있다. 무고히 또는 (단어 그대로) "헛되이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1)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범죄한다. 그들은 아무런 까닭없이, 즉 하나님 안에 있는 불의나 그가 그들을 서운하게 하신 것을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과 그들의 서운하게 하신 것을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과 그들의 의무에 그리고(어떤 사람들의 견해대로)다윗과 그의 정부에 반항한다. 사람이 죄에 쉽게 유혹될수록 그것에 의한 타락은 더욱 심하다. 죄를 위해 죄를 범하는 자들이 가장 악한 범죄자들이다.
(2)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행위가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헛된 것을 계획하는 그들은 곧 수치를 당할 것이다.
Ⅲ.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의무의 길을 지시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4,5절).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가르쳐 주시기를 거듭 간청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자였다. 그러나 아무리 총명하고 통찰력이 깊은 자라도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고 또 그것을 열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항상 배워야 한다. 여기서 다음을 주목하라.
1. 그는 무엇을 배우기를 바랐는가? "훌륭한 말이나 훌륭한 이론이 아니라 주의 도와 주의 길과 주의 진리를 내게 가르치소서. 주께서 나를 향해 걸으시는 길, 즉 모든 인자와 진리가 되는(10절) 길과 주께서 내가 당신께로 향해 걸어가기를 원하시는 길을 가르쳐주소서." 자기의 의무를 깨닫는 자들, 그리고 그들이 "행해야 할 선한 일을"아는 자들이(전 2:3) 가장 훌륭한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도와 그의 진리는 똑같은 것이다. 즉 거룩한 율법은 모두 거룩한 진리위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의 규례의 길은 진리의 길이다(119:30). 그런데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이시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2.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 대해 열망했던 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자신의 의무에 대해 밝히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었다.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게 가르치소서." 미심쩍은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 주시기를 진심으로 간구해야 한다.
(2)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그곳으로 향하게 해 주시고 그 속에서 그를 강하게 해 주시는 그것이었다. "나를 지도하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가르치소서." 이것은 눈이 어두운 사람이 그의 길을 잘못 가지 않도록 인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프고 연약하며 힘없는 자가 그의 길을 가도록 부축해 주고 중간에서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인도하는 것과도 같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셔야만 천국의 길로 갈 수 있다.
3. 그가 탄원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하나님께 대한 그의 큰 기대.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목표로 택하고 그를 구원의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그에게 담대히 나아가 그 목표로 이르는 길을 지시해 주시도록 청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면 그는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실 것이다. 구원을 주시는 교훈을 주실 것이다.
(2) 하나님께 대한 그의 꾸준한 봉사,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종이 그가 하루 종일 섬기는 주인에서가 아니면 그 누구에게서 지시를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의무를 행하고자 하는 결심을 품고 그것을 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해 주시리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Ⅳ. 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에 호소하고 있다. 그 자신의 어떠한 공로도 내세우지 않고서 오직 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6절).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을 기억하옵소서. 그리고 그 긍휼을 위해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시옵소서.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1. "주는 항상 자비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긍휼을 보이시는 것이 주의 이름이며, 주의 본질과 특성입니다."2. "긍휼에 관한 주의 뜻과 계획도 영원부터 있었습니다. 긍휼의 그릇은 만물이 있기 전에 영광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3. "일반적으로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특별히 나에 대해서 주님이 보여 주실 긍휼의 여러 사례들은 일찍이 옛날부터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셨사오니 지금도 가르치소서."
Ⅴ. 그는 그의 죄가 사함받기를 특별히 갈구하고 있다(7절). "내소시의 죄를 기억지 마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기억하시고(6절) 나를 변호하소서. 그리고 내 죄를 기억하시어 나를 꾸짖지는 마옵소서."
1. 여기에서 그는 암시적으로 죄를 자백하고 있다. 즉 그의 소시적의 죄를 열거하고 있다. 우리는 어렸을 때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오랜 후에라도 회개하고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세월이 죄책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사악한 쾌락을 슬퍼해야 하며 그들이 젊었을 때의 사악한 즐거움을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는 그의 죄를 더욱 무겁게 느끼면서 그것을 자기의 "허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율법을 범하는 것이 죄이므로,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할수록 죄는 우리에게 더욱 엄청나게 악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2. 긍휼을 특별히 간구하고 있다.
(1) 그가 죄책에서 방면될 수 있도록 긍휼 간구하고 있다. "내 소시의 죄를 기억지 마소서. 내게 불리하게 그것을 기억하시거나, 그것으로 책망하시고 판단하시지 마소서." 하나님께서 죄를 사랑하실 때는 그 죄를"더 이상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완전한 사면을 의미한다.
(2) 그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용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를 기억하소서. 나를 영원히 기억하시고, 나를 구하시기 위해 알맞은 때 오소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은총을 부어 주시는 것보다 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자 할 필요가 없다. 그의 탄원은 "주의 인자 하심을 따라, 주의 선하심으로 인하여 하옵소서." 하는 것이었다. 죄의 사함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유익을 위해 우리가 탄원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며, 그의 인자하심이지 우리 자신의 공로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과 보잘 것 없음을 깨닫는 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풍족함에 만족하는 자로써 항상 이러한 탄원에 의지해야 한다.
거룩한 선하심과 인자하심 (시편 25:8-14)
여기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다윗의 기도와 혼합되어 있다. 많은 탄원들이 이 시편의 앞부분에 있었으며 우리는 뒷부분에서도 많은 탄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 시편의 중간 부분에서 그는 약속들을 묵상하고 생동하는 믿음으로써 이 위안의 젖을 먹으며 흡족해 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말해 주고, 기도 속에 믿음과 소망을 갖도록 우리를 격려해 주는 기도의 가장 훌륭한 초석일 뿐만 아니라 기도에 대한 현재의 응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속에 따라 기도하기로 하자. 그러면 그 약속은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약속이 이행될 것이므로 우리는 그 기도가 청종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약속 중간 부분에서 약간 돌연스럽게 끼어든 것 같고 7절 다음에 넣어야 할 것 같은 하나의 청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죄악을 사하소서"라는 말이다(11절). 죄의 사함을 구하는 기도는 결코 무례하지 않다. 우리는 모든 행동에는 죄가 섞여 있으므로 우리의 모든 예배 속에 이러한 기도를 섞어야 한다. 그는 이중의 탄원으로써 이 청원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전자의 것은 매우 타당하다.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왜냐하면 주께서 주의 영광을 위해, 약속을 위해, 주님 자신을 위해 허물을 도말하심으로써 주의 이름이 은혜롭고 인자하심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사 43:25)." 그러나 후자의 것은 매우 놀랍다.-"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사하소서. 죄악이 중대할수록 거룩한 긍휼은 그것을 용서하심으로 인해 더욱 찬미될 것입니다. " 큰 죄를 용서하는 것-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는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이다(출 34:7). "그것이 중대하므로 무한하신 긍휼이 그것의 사함을 중재하지 않는 다면 나는 파멸할 것이며, 영원히 파멸할 것입니다. 그것은 중대합니다. 나는 그것을 그렇게 봅니다. "우리가 우리 죄의 극악함을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더 잘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죄를 자백할 때 우리는 그것을 무겁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이 구절 속에 나타난 위대하고 귀한 약속을 관찰하고 또 다음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자.
Ⅰ. 이 약속들은 누구에게 속에 있으며 누가 그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약속에 의한 어떤 유익을 바랄 수 있을까? 바랄 수 있다(8절). 하나님께서 그들이 비록 죄인들일 지라도 그들을 교훈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또 그것을 위해 죄인들을 가르치시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이 약속들은 비록 죄인이었고 빗나갔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확실한 약속이 된다.
1. 즉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들에게(10절). 그의 계율을 자기들의 규율로, 그리고 그의 약속을 자기들의 분깃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또 하나님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삼았고 거기에 의지하고, 그들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었으므로 거기에 따라 살아가는 그런 자들에게 확실한 약속이다. 비록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그들이 때로 계명을 어길지라도 잘못했을 때는 언제나 진심으로 회개함으로써, 그들의 하나님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의해 꾸준히 신봉함으로써, 그들은 그 언약을 지키고 깨뜨리지 않는다.2.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12절, 그리고 다시 14절), 그의 위엄을 경외하고 경외감을 갖고 그를 섬기며, 즐거이 그의 권위에 굴복하고 그에게 순종하며, 그의 진노를 무서워하고 그를 거역하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확실한 약속이다.
Ⅱ. 이러한 약속들은 무엇을 근거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에 의해 어떤 격려를 받아야 하는가? 여기에 모든 약속들을 비준하고 확증하는 두 가지 사항들이 있다.
1. 하나님의 성품의 완전함. 우리는 약속을 세우신 자의 성품으로써 그 약속들을 평가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할 수 있으니, 이 는"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가 그의 말씀과 같이 훌륭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온유하시므로 우리를 속이실 수 없으며, 매우 진실되시므로 그의 약속을 깨뜨리실 수 없다. "약속하신 이는 신실하시며,"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그는 약속을 세우실 때 선하셨으므로 그것을 실행하실 때에도 의로우실 것이다.2. 그가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것이 그의 성품의 완전함과 부합됨. "여호와의 모든 길은(즉 그의 모든 약속과 섭리는)인자와 진리로다"(10절). 그것은 그 자신과 같이 선하고 정직하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언제나 그의 목적의 인자와 그의 약 속의 진리에 따라 다루신다. 그가 행하시는 모든 것은 사랑으로부터 언약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그의 긍휼이 나타나고 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선한 백성들이 아무리 환난으로 단련을 받든지 간에 "여호와의 모든 길은 인자와 진리"이고 그들의 여행이 끝날 때는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이 드러나리라는 것이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이 풍만한 만족감을 준다.
Ⅲ. 이 약속들은 어떠한 것인가?
1.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무의 길로 가르치시고 지시하실 것이다. 이것이 매우 강조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나를 지도하소서'(4,5절) 하는 다윗의 기도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알맞는 그 약속들 위에 대부분의 우리의 생각을 집중시키고, 믿음을 행하여야 한다.(1) 그는 "그 도(道)로 죄인을 교훈하실"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인이므로 교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스스로가 죄인임을 알고 교훈 받기를 원할 때,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께 화해하는 길과 양심에 참된 평화가 깃드는 길, 그리고 영생으로 이르는 길을 가르치실 것이다. 그는 그의 복음을 통해 이 도를 만인에게 알리시며 그의 성령을 통해 회개하고 그 길을 구하는 죄인들은 인도하시고 총명을 허락하신다. 마귀는 사람의 눈을 가리우고 그들을 지옥으로 이끄나 하나님은 사람의 눈을 밝히시고 그들 앞에 있는 것들을 참된 빛 가운데 드러나게 하시어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2) "온유한 자를 지도하신다." 그들 스스로를 천하고 낮게 여기는 자들, 그들 스스로를 믿지 않고 교훈 받기를 원하며 거룩한 인도하심에 따르기를 정직하게 결심하는 자들, 이러한 온유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가르치실 것이다. "여호와여, 당신의 종들이 듣사오니 말씀하옵소서." 이러한 자들은 그는"공의로," 즉 기록된 말씀의 법으로 지도하신 것이다. 그는 죄와 의무에 관련되어 있는 실제적인 것으로써 그들을 지도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흠없는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는(어떤 사람들의 견해대로) 사려깊게 그것을 행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사정에 맞게 처리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죄인들을 지혜와 온유와 동정을 품고 가르치실 것이며 그들이 지탱해 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그의 도를 삼으며, 그것을 배우기를 원한다. 그러한 자들은 그 가르침을 받고 그 도로 인도될 것이다.
(3)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가 택할 길을 가르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거나 선한 사람들이 택할 길을 가르치실 것이다. 그것은 모두 한 가지 길로 일치된다. 왜냐하면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택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올바른 길을 택한다면 그 선택을 지시하시는 그가 우리의 걸음을 지도하시고 그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가 지혜롭게 택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롭게 행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을 편하게 만드실 것이다. "저의 영혼은 편안히 거하고 선하심 속에 머무르리로다"(13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전념하고 스스로를 복종시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그들 자신이 잘못을 범하지 않는 한 편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별케 된 자들, 더욱이 하나님의 평화에 의해 위로를 받는 자들은 편안히 거할 것이다. 심지어 몸이 아프고 고통 속에 누워 있을 때라도 영혼은 하나님 안에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에게로 돌아와 안식처인 그의 안에서 쉴 것이다. 많은 것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나 은혜의 언약은 그 모든 불안을 진압시키고 우리를 편하게 하는 것이다.
3. 그는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이 세상에서 유익한 것을 충족하게 주실 것이다.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우리의 영혼에 대한 관심 다음의 것은 자손에 대한 관심이며,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후손들을 위해 복을 저장해 두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땅을 상속할 것이며 그것에 대한 권한과 그 즐거움을 가질 것이고, 그들의 자손들은 죽을 때의 그들의 기도로 인해 더 잘 지낼 것이다.
4.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와의 친밀한 교제를 허락하실 것이다. "여호와의 친밀한 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나이다"(14절). 그들은 그의 말씀을 깨닫는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그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알" 것이기 때문이다(요 17:17). 진리를 사랑하여 받아들이고 그 능력을 체험하는 자들은 그 비밀을 가장 잘 깨닫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의 섭리의 의미를 더욱 잘 알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행하시는가를 안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그는 아브라함을 그렇게 부르셨듯이, 그들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부르신다. 그들은 은혜로운 영혼이 아버지와 맺은,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의 축복과 그 교제의 즐거움을 경험에 의해 안다. 그의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영광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탄원 (시편 25:15-22)
약속을 묵상함으로써 격려를 얻은 다윗은 여기에서 다시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다. 그리고 이 시편을 시작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한 의지와 그를 향한 열망을 고백하면서 끝맺고 있다.
Ⅰ. 그는 그가 당하고 있는 환난의 상태를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있다. 그는 발이 그물에 단단히 걸려 있었으므로 혼자의 힘으로는 그의 곤경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15절). 그는 "외롭고 괴로왔다"(16절). 괴로움을 당하는 자는 일반적으로 외롭다. 그럴 때에 그들의 친구는 그들을 버리며 그들은 혼자 앉아서 잠잠케 된다(애 3:28). 다윗은 그 자신이 "외롭고 고독하다고"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의 종이나 군병들을 의지하지 않고 피조물로부터는 어떤 도움이나 구조도 바라지 않으면서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했기 때문이다. 많은 환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의 근심이 많아"(17절) 그는 더욱 거 우울하고 마음이 괴로와졌다.
무엇보다도 죄책감이 그를 가장 괴롭혔다. 그이 심령을 상하게 하고, 그의 외적인 고통을 더욱 무겁게 느끼게 해 준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곤고와 환난" 가운데 있었다(18절). 그를 핍박하는 (그를 미워하는) 대적들은 많았고 사악했으며, 매우 야비했다. 그들은 그를 심히 미워했던 것이다(19절). 그리스도의 대적들과 그의 교회의 박해자들도 이러한 자들과 같았다.
Ⅱ. 그는 이러한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음을 나타내고 있다(15절).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하나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신들을 위했고 항상 그들의 우상을 바라보았다(사 17:7, 8).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우러러보아야 한다. 그는 성령이시기 때문이다(슥 9:1). 그에 대한 우리의 묵상은 달콤해야 하며, 그를 항상 우리 앞에 모셔야 한다. 우리의 모든 길에서 그를 인정해야 하고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의식 속에서뿐만 아니라 섭리 속에서도, 예배의 행위 속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윗은 환난 가운데서도 이것으로부터 위로를 얻었다. 그의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시리라는 것을, (어떤 사람들의 풀이대로)하나님께서 그를 마음의 타락에서,(또 어떤 사람들의 풀이대로) 그를 치려는 그의 대적들의 모략에서 구하시리라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자들은 오랫동안 발이 그물에 걸려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그의 고백을 반복하고 있다(20절).-"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그리고 그에 대한 기대를 거듭 고백하고 있다(21절)-"내가 주를 바라보나이다" 이처럼 주님의 구원을 소망하고 조용히 기다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Ⅲ. 그는 하나님의 위안과 도움을 간절히 간구하고 있다.
1. 그 자신을 위해.(1) 그가 어떻게 간구하고 있는가를 보라.
[1] 그 죄의 사면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다.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18절). 그것이 그의 가장 큰짐이었고, 또한 다른 고통들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그는 그의 소시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7절) 두드러지게 큰 어떤 죄악을(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우리아 문제로 지은 죄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용서해 주실 것을(11절) 간청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주여, 내 모든 것을 사하소서. 모든 죄악을 제하소서"하고 기도하고 있다.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옵소서." 그의 환난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참작해 주시는 것 이상은 그가 요청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의 죄에 관해서는 완전한 용서 이상의 요청하고 있다.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우리가 환난에 처할 때는 언제든지 환난이 제거되는 것보다 죄를 용서받는 것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 또한 그의 비탄을 바로 잡기 위해서 간구하고 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물러가신 것과 그의 죄로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린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주여, 내게 돌이키소서"(16절)하고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로 돌아오신다면 누가 우리에게서 돌아서도 상관이 없다. 그의 상황은 고통스러웠고 그것에 관해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나를 곤란에서 끌어내소서. 내 구원의 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 길을 발견하시거나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의 대적들은 악의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에 관해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내 영혼을 지켜 그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소서. 혹은 그들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2) 이 탄원들을 강력히 청원하기 위해 네 가지 자신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 자신과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고려해 주실 것을 간청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의 긍휼을 청하고 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자들도 무한한 긍휼이 하나님과 관련을 맺지 않는다면 멸망할 것이다.
[2] 그의 재앙, 고통, 곤고와 환난, 특히 그의 마음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로 하여금 거룩한 긍휼을 간구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3] 그의 대적들의 죄악을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여,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가를 살피시고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소서."
[4] 그 자신의 성실함을 탄원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유죄임을 스스로 인정했고 하나님에 대해 죄를 범했음을 자인했으나 그는 그의 적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잘못도 범하지 않았다는 양심의 증거를 갖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그를 심히 미워했을 때에도 그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그를 보호해"줄 수 있기를 간구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그의 "성실과 정직"이 지속되는 것보다 더 오래 안전케 되기를 기대하지 않았고, 그가 그것을 지속시키는 한 결코 자신의 안전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신실함은 최악의 사태에 있어서도 우리의 가장 훌륭한 보루가 될 것이다. 성실과 정직은 세상의 재물과 영화보다도 더 잘 사람을 보호해 줄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천국을 마련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실을 보호해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하고 그 다음에 그가 그것을 보호해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2.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22절). 다윗은 당시에 환난 가운데 있었지만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않고 있다. 환난은 모든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몫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 전체 집단보다도 더 클 수 있겠는가? 다윗의 고통은 컸으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구해 주시기를 매우 간절히 간구했다. 그러나 그는 그때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당한 환난을 잊지 않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은혜의 보좌로 가져갈 자신의 매우 많더라도 항상 공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선한 사람들은 교회가 환난과 위험 속에 있는 한 그 자신이 안전할지라도 위로를 얻지 못한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드디어 다윗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고, 따라서 이스라엘을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들로부터 편안케 해 주시리라는 예언이다. 또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130:8) 환난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메시야가 합당한 때에 보내어진다는 예언이다. 이것은 또한 미래 상태의 행복을 언급하고 있다. 하늘에서, 하늘에서만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모든 환난에서 완전히 구속될 것이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