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의 감사 (시편 21:1-6)
다윗은 여기에서 그의 기쁨이 하나님의 힘과 그의 구원 안에 있었고 그의 군대의 힘이나 성공에 있지 않았음을 고백하면서 제일 먼저 그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또한 여기에서 그의 신하들에게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가 얻은 승리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또한 모두 그리스도로 주목하도록 명하고 있다. 다윗의 승리는 흑암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비해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1. 그들은 여기에서 왕의 기쁨에 대해 왕에게 축하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그와 일치하고 있다(1절). "왕이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우리도 그러하니이다.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다 기뻐하리이다"(삼하 3:36). 하나님의 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쁨으로 삼는 왕, 하나님의 나라가 발전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서 그것에 대한 모든 봉사를 감당하는 왕, 그러한 왕을 가진 백성들은 행복하다. 우리 주 예수는 그의 큰 사업을 행할 때 하늘로부터의 도움에 의지했고, 그가 이루어 놓으실 큰 구원에 대한 전망으로 기뻐하셨다.2. 그들은 그들의 왕을 기쁘게 한 것들에 대한 모든 찬미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2절). "주께서 그 마음의 소원을," 그를 위해 그들이 하나님께 간구한 바로 그것을 "이루어 주셨나이다(마음의 소원대로 간구한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기도도 열납되지 않는다. 20:4).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응답은 특별히 우리로 하여금 겸손한 찬미를 돌려드릴 것을 요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기업으로 이방 나라를 주시고, 그로 하여금 그의 후손들을 오게 하시며, 모든 믿는 자들의 허물을 용납하셨을 때 그는 그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바치셨다.
(2) 하나님은 그의 은총으로 그를 놀라게 하셨고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이루어 주셨다(3절). "주께서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셨나이다." 우리의 모든 복은 선한 것에 대한 축복인 것으로서 전혀 우리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이 복을 선취적인 방법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써 독특하게 간주하고 있다. 어떤 사람의 표현대로 이 복이 그의 눈을 고정시켰고 그의 영혼을 확대시켰으며 그의 하나님을 사모하게 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리, 또 더욱 풍성하게 올 때, 우리가 기도하기도 전에, 준비하기도 전에 그것이 주어졌을 때 더구나 우리가 그 반대의 경우를 두려워했을 때, 우리는 그가 그것으로 우리를 앞지르셨다고 진정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상 그리스도를 앞지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인류에서 있어서는 어떠한 은총도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과 그의 묵상으로 인한 모든 축복의 열매보다 앞서지 못했다.
(3) 하나님은 그를 가장 영화롭게 높이셨고 그에게 가장 광대한 권세를 주셨다. "주께서 정금 면류관을 그의 머리 위에 씌우셨나이다. 그리고 그의 대적들이 그것을 빼앗으려 할 때 그것을 지키셨나이다." 면류관은 하나님의 시여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씌우시는 자 이외에는 그것을 쓸 수 없으며 그의 땅을 심판하시는 일이나 긍휼을 베푸시는 일에도 그러한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금 면류관을 씌우시지는 않으셨다. 먼저 가시 면류관을 씌우신 다음에 영광의 면류관을 씌우셨다.
(4) 하나님은 그의 나라의 영존성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셨고, 그를 위해서 그가 구하거나 생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그 속에서 이루어 주셨다(4절). "그가 위험한 일을 행하게 되어 그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영영한 장수를 주셨습니다. 그의 기대를 훨씬 넘어 그의 생명을 길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복된 불멸을, 그리고 그의 혈통에서 나올 메시야 안에서 그의 나라가 지속되리라는 사실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 어떻게 하나님께서 흔히 우리의 간구와 기대를 능가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가를 보라. 그리고 거기에서 그를 구하는 자들에게 그가 얼마나 풍성한 긍휼을 베푸시는 가를 추론해 보라. 또한 그리스도 왕국의 영영함을 보고 기뻐하라. 그는 우리가 그를 통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실지로 죽으셨다. 그러나 그는 살아계시며 영원히 사실 것이다. 그리고 "그의 다스리심과 평화에 끝이 없으리라." 그가 이처럼 살아 계시므로 우리도 또한 그처럼 살 것이다.
(5) 하나님께서 그를 가장 영화롭고 존귀하게 높이셨다(5절). "주께서 그를 위해, 그리고 그에 의해 역사하신 구원 속에서 모든 이웃 왕들의 영광을 훨씬 능가하도록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나이다." 모든 선한 사람들이 열망하고 있는 영광은 주의 구원을 보는 것이다. 주께서 그가 짊어져야 할 점으로서, 그가 맡아야 할 책임으로서 "존귀와 위엄으로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벧후 1:17). 곧 그가 창세 이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요 17:5) 영광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에게 만유를 다스릴 책임이 주어졌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맡겨졌다.
(6)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류에 대한 모든 복의 물줄기가 되게 하심으로써 그를 만족시키셨다(6절). "주께서 그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이 되게 하시며(난외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로 이 세상의 보편적이고 영원한 복이 되게 하셨으니, 그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복을 받고 있으며 또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그의 사업을 지지하시고 그것을 수행하는 그를 장려하심으로써 그를 지극히 기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특별한 예언의 영이 어떻게 여기에서 점차적으로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라. 그것이 특별히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그 이외에는 그 누구도 영원한 복을 받지 못했고, 더욱이 여기에 나타난 것과 같이 탁월하게 영원한 복을 받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원하심으로써 그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것을 노래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기쁨으로 즐거워하고 그가 높이 들리우심으로 개가를 불러야 한다.
신하의 소망 (시편 21:7-13)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와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을 기쁨과 찬미로써 되돌아보도록 가르쳤던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더 행하시리라는 것을 믿음과 소망과 기도로써 내다보도록 가르치고 있다."왕이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드리겠읍니다."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7절). 우리도 힘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Ⅰ. 그들은 다윗 왕국의 굳건함을 확신하고 있다. 왕은 그 자신의 업적이나 힘이 아닌"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그의 형통하는 상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과 소망도 그의 영의 지주로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과 주권)은 우리의 행복을 안전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그 인자함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모든 두려움을 평정시키기에 충분하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고난 중에 그의 우편에 두셨고(16:8). 그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그 우편에 계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요동하지 않을 것이며, 또 요동할 수도 없고 영원히 확고 부동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Ⅱ. 그들은 다윗 왕국에 대한 회개하지 않고 무자비한 대적들이 모두 열망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팔을 축복하시어 얻은 성공은 하나님께서 주위에 있는 대적들로부터 그를 안전케 해 주시리라는 전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는 그리스도의 모든 대적들에게 임하는 완전한 전멸의 모형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자.
1. 그의 대적들에 대한 묘사. 그들은 그를 미워하는 자들이다(8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그를 분리해 놓으셨기 때문에 다윗을 미워했고, 그들이 빛을 미워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미워했다. 이 두사람은 아무런 타당한 이유없이 미움을 받았고 그 속에서 하나님도 미움을 받으셨다(요 15:23, 25).2. 그의 대적들의 계교(11절). "저희는 너를 해하려 하여 계교를 품었도다." 그들은 단지 다윗만을 대항하여 싸우는 척했으나 그들의 적의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다윗을 왕으로 삼지 않으려는 자들은 결국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지 않으려는 자들인 것이다. 믿음을 대적하기 위해 계획된 것, 그리고 그것을 돕고 발전시키려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도구들을 대적하기 위해 계획된 것은 매우 악하고 해롭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자기 자신을 해하려는 계교로 여기시며, 또 그렇게 간주하실 것이다.
3. 그들의 실망. "그들은 이루지 못할 계교를 품는다"(11절). 그들의 악의는 무력하며 그들은 허사를 경영한다(2:1).
4. 그들의 발견(8절). "네 오른 손이 그들을 발견하리로다. 비록 우정을 고백하고 그것을 구실삼아 매우 공교하게 위장했을지라도, 비록이 나라의 충성된 신하들과 섞여 그들과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을지라도, 비록 공의에서 피해 그들의 은밀한 곳으로 달아나더라도, 네 손이 그들이 어디 있든지 그들을 발견해 낼 것이다. "하나님의 복수하시는 눈을 피할 곳은 없으며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바위와 산들도 결국은 처음의 무화과 잎사귀보다도 못한 피난처임이 드러날 것이다.
5. 그들의 멸망. 그것은 완전한 멸망이다(눅 19:27). 그들은 삼켜질 것이다(9절). 모든 그리스도 대적들의 몫은 음부가 육신과 영혼을 완전히 비참하게 만든다. "저희 후손과 자손이 멸하리로다(10절). " 모든 세대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대적들은 똑같은 저주 아래 놓이게 될 것이며, 그 모든 대적들은 마침내 근절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대적하는 교훈과 주권과 권세도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화살이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겨누어질 것이며 그들은 당황하여 도망칠 것이다(12절). 그것이 하나님과 정면으로 맞서는 대담한 대적들의 분깃이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은 그들을 소멸시킬 것이다(9절). 그는 그들을 풀무불에 던지실 뿐만 아니라(마 13:42). 그들 자체를 불을 뿜는 화덕이나 용광로처럼 만드실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고문대가 될 것이며, 그들 자신의 양심의 비난과 위협이 그들의 지옥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 구원 얻을 수도 있었으나 그를 거절하고 그에 대항하여 싸운 자들은 그것을 회고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영원히 맹렬한 화덕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죽지 않는 구더기인 것이다.
Ⅲ. 이러한 확신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수단과 도구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주님이며 영들의 아버지로서 그의 능력을 직접 조종하심으로써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위해 항상 나타나 주실 것을(13절), 그의 힘으로 그를 위해 행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1. 그리고 이것에 의해 그가 그 자신을 높으시고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청하고 있다. "우리는 조금 밖에는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치스럽게도, 주의 위해 매우 활동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합니다. 여호와여, 이 일을 주의 손으로 맡으시어 우리 없이 그것을 행하소서. 그러면 그것이 주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2. 여기에서 그들은 그를 찬양하려고 한다. "우리가 더욱 의기양양하게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때 우리의 봉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그를 더욱 더 칭송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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