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00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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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환난과 확신 (시편 3:1-3)

이 시편과 다른 여러 시편의 표제는 문을 열도록 이미 문에 달려 있는 열쇠와 같으며 우리를 그것의 즐거움 속으로 인도한다. 이 시편이 어떤 경우에 지어졌는가를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좀더 잘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대적할 음모를 꾸며 그의 왕관 뿐만 아니라 그의 생명까지도 빼앗고자 했을 때 그가 아들을 피하면서 지었거나, 또는 적어도 그 소재가 다윗의 생각속에서 묵상되고 소화시켜져서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사무엘 하 15장 등에서 볼 수 있다.

1. 다윗은 당시 큰 번민 속에 있었다. 그가 도망하여 감람산으로 올라갈 때, 그는 얼굴을 가리운채 맨발로 걸어가면서 크게 울었다. 그러나 "그 때에" 그는 이 즐거운 시편을 지었다. 그는 울면서 기도했고, 울면서 노래했으며, 울면서 믿었다. 이것은 눈물 속에 뿌리는 씨앗이었다. 고통당하는 자가 있는가? 그러면 그에게 기도하도록 하라. 아니, 그에게 시편을, 이 시편을 노래하게 하라. 게으르고 불순종하는 자손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자가 있는가? 다윗도 그러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그의 기쁨을 방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노래를 그치도록 하지도 않았었다.

2. 그는 당시 큰 위험 속에 있었다. 그를 대적하려는 음모는 몰래 세워졌고, 그의 파멸을 추구하는 무리는 매우 거대했으며, 그 자신의 아들이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형세는 극한 사황에 처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때에"그는 하나님 안에 그의 의로움을 굳게 지켰고 그것을 향상시켰다. 곤경과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에게로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

3. 그가 좀더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있었던 자들, 그가 응석을 받아 주던 그의 아들, 그리고 그가 그처럼 큰 축복을 주었던 그의 부하들은 이제 그를 매우 격노케 했다. 이것에 대해 그는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은 인간의 노를 폭발 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격정과 분노로 인한 무례한 말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믿음의 행위에 합당한 평정을 지녔다. 그 행위는 그 어느 것 보다도 가장 큰 마음의 견고함과 자유로움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의 평정은 그에게 임한 성령에 의해 명시되었다. 왜냐하면 성령은 조용한 바다를 택하시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자손이나 친구들이 우리에게 불친절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에 우리의 마음이 합당치 않게 될 정도로 그것에 깊이 유념하지는 앉도록 해야 한다.

4. 그는 당시 우리아 사건에서의 그의 죄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 죄의 대가로 하나님께서 "그의 집에 재화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하신 바로 그 재앙이었다(삼하 12:11). 물론 그는 그것을 주목했고 그것을 그 죄에 대해 다시 회개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므로" 그는 거룩한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확신을 저버리지 않았고 또한 구원이 있으리라는 것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죄로 인한 우리의 슬픔이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기쁨이나 소망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5. 투쟁도 한 번 해보지 않고서 압살롬을 피해 도망가고 그의 궁성을 포기하는 그는 비겁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 시편에서 보면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생긴 참된 용기를 가득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된 크리스챤의 불굴은 관대한 마음의 평정 속에 있으며, 또한 손에 칼을 들고 대담한 시도를 하는 일에서 보다는 참을성 있게 견디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일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세 구절에서 그는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다. 어떤 일이 우리를 슬프게 하거나 놀라게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는 것 이외에 또 어디로 가겠는가? 다윗은 당시에 그의 밀실에서, 그리고 그가 기도하곤 했던 하나님의 전 앞마당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늘로 향해 열려져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께로 접근할 수 있을 거며 우리가 어느 곳으로 끌려 가든지 간에 우리는 그에게 가까이 갈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도망하는 중에도 그의 하나님께

Ⅰ. 그의 환난을 말씀드리고 있다(1,2절).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마치 그것은 그가 적의 진영을 살피거나 그를 대적하려는 그들의 계획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것과도 같았고, 그는 이 사실을 그 자신의 회의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져가고 있다. 그는 그의 적들에 관해 다음 두 가지를 호소하고 있다.

1. 그들의 수효는 많았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그것은 그들의 처음 수효보다 많았고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압살롬의 무리는 눈덩이처럼, 이상스럽게도 움직일 때 마다 불어났다. 그는 그에게 그처럼 호의를 베풀던 백성들이 거의 대부분 그에게 폭동을 일으키고 그를 반역하며, 압살롬처럼 그렇게 어리석고 경솔한 자를 그들의 두목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놀래서-그것은 당연한 일이다-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교활하며 기만적인가! 다윗은 다른 왕들 못지 않게 그의 신하들의 충성을 받고 있었지만 이제 갑자기 그는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백성들이 방백들을 지나치게 의지해서는 안 되는(146:3) 것과 마찬가지로 방백들도 백성들을 너무 신뢰해서는 안 된다. 다윗의 아들인 그리스도는 많은 대적들을 갖고 계셨다. 큰 무리가 그를 잡으러 왔을 때, 군중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어야 하겠나이다"라고 외쳤을 때 그를 괴롭히던 자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선한 백성들일지라도 사람의 물결이 그들을 대적하고 그들을 위협하는 힘이 더욱 더 거대해져 간다고 해서 그것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2. 그의 적들은 매우 사악했다. 그들은 그를 대적하여 일어섰고 그를 괴롭히려 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그의 영혼에 대해,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1) 즉 그들은 다윗의 종들과 신하들이 이처럼 그를 버리고 그를 돕지 않았으므로 하나님도 그를 버리셨고 그의 주장을 들어 주시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를 사곡한 자와 악한 자로 간주하고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환난을 경멸하고 그것을 나쁘게 해석했던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이 그를 구제할 능력이 없는 자로 여기고 불평스럽게 비방했다. "그의 위험이 너무 커서 하나님 자신도 그를 도울 수 없다." 이스라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인간에게 전능자도 다스릴 수 없는 강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불신이 있다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다.

(3)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확신을 흔들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의 위로를 단념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나의 영혼에게 그렇게 말했나이다." 이와 같이 영혼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11편 1절, 42편 10절과 비교해 보라). 그들이 그로부터 그 토대를 빼앗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에 대해 나쁜 견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를 그 무엇보다도 가장 슬프게 했다. 그 단순한 시험이 "그의 몸의 가시"가 되어, 아니 "그의 뼈 속에 칼"이 되어 그를 고전케 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그 생각만으로라도 매우 두려워진다. "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 그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없다. 다윗은 하나님께 와서 히스기야가 여호와 앞에서 랍사게의 불경스러운 편지를 펼친 것과 같이, 그의 대적들이 그에 대해 말한 것을 하나님께 전하고 있다. "그들이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그러나 주님,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파멸합니다. 그들은 내 영혼에게 저는 하나님께 주원을 얻지 못한다(그 단어는 그렇게 나와 있다)하나이다. 그러나 주여, 주께서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35:3), 그리고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할 것이고 합당할 때에 그들을 잠잠케 하리라고 이르소서."

이 호소에 그는 "셀라"를 덧붙이고 있는데 그것은 시편 책에 약칠 십 번정도 나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다윗 시대에 시편이 노래될 때 덧붙여지는 음악으로 보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엄숙한 정지를 명령하는 음부로 보고 있다. 즉"셀라"를 "그것을 주목하라" 또는 "거기에서 멈추고 잠시 생각해 보라"로 해석한다. 여기에서 그들은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은 "잠시 이러한 것에 대해 생각하라. 사단아 내뒤로 물러가라.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리로다! 이처럼 사악한 암시를 걷우어라"라고 해석 할 수 있다.

Ⅱ. 그가 하나님께 의지함을 고백하고 있다(3절). 적극적인 믿음을 지닌 자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책망이나 대적들의 비방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짐을 당하게 될수록, 더욱 단단히 그를 붙들것이며 더욱 가까이 그에게 매달릴 것이다. 다윗도 여기에서 그의 대적들이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더욱 더 확신에 차서 이렇게 외치고 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니이다. 나는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주께서 나를 결코 버리시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며, 내가 결코 주께서 불신하지 않을 것을 결심합니다."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어떠한 분이시며 어떻게 되어 주실 것인지,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발견하며 다윗은 그에게서 무엇을 발견했는지를 보라.

1. 안전함. "주께서 나의 방패시오, (어떤 사람의 견해대로) 내 "둘레"의 방패되시여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나의 대적들로부터 온 사방을 막아 주시나이다." 주는 거룩한 보호를 시사하는 "나의 방패"(창 15:1)일 뿐만 아니라 현재 나를 보호하시어 내게 유익을 주는, 나를 위한 방패이다.

2. 영예. "주는 나의 영광이시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것으로 인정하신 자들은 안전하고 편할뿐만 아니라 정말로 위대해 보인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여된 참된 영광은 지상의 큰 자들이 자랑하는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다윗은 당시 치욕 가운데 있었다. 면류관은 그의 머리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그의 영광이 되시는 한 자신에 대해 더 나쁘게 생각지 않을 것이다(사 60:19). "주는 나의 영광이시요,(어떤 사람의 견해대로) 나는 주의 영광을 나의 것으로 여기나이다. 나의 운명이 어떤 것이든, 나의 영예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내가 내 하나님께 영광과 찬사가 되는 것이 곧 내가 뜻하던 것이며 갈망해 오던 것이었나이다."

3. 기쁨과 구원. "주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주는 나의 환난으로부터 내 머리를 드실 것이며 합당한 때에 다시 내 권위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또는 적어도 주께서는 환난 아래 있는 내 머리를 드시어, 내가 위축되거나 낙담하지 않도록 하실 것이며 내 심령이 절망하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든 일이 그들에게 유익하게 역사되리라는 것을 알고서 기쁨으로 머리를 들 수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머리를 드시는 자, 곧 즐거워하게 될 이유와 마음을 주시는 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도록 인도하여 우리 영혼의 파멸을 노리고 있는 악의를 품는 영적인 적들과 무리들의 위험 속에 처해 있다.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하고 간구함에 있어서 이 사실을 감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각처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모함하고 그것에 대적하여 싸우는 그 환난과 위험에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그러나 이 두가지 일에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스스로를 격려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이 백성들을 인정하시고 보호하시며, 또 합당한 때에 이 세상과 그의 백성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그 자신의 권세에 면류관을 씌우실 것이다.

 

3:2 없음.

 

3:3 없음.

 

3:4

하나님께 대한 믿음 (시편 3:4-8)

다윗은 그이 대적들의 자극으로 인해 더욱 분발하여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으로서 굳게 신봉했고 주위를 둘러 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그를 낙담시키는 것 뿐일 때에도 위를 바라봄으로써 위로를 얻었었다. 그러고 여기에서 그는 그가 하나님을 의뢰한 것으로 인해 얻었던 유익함을 기쁜 마음으로 희고해 보고 있으며, 그가 지금 처한 어두운 섭리에 곧 매우 찬란하고 행복한 결과가 오리라는 즐거운 기대로 앞을 내다보고 있다.

Ⅰ.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교제를 나누었었던 것에 대해, 그리고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인해 예전에 얻었던 또는 지금까지 얻었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매우 즐겁게 회고하고 있다. 다윗은 많은 화난을 겪었었고 자주 핍박을 당했으며 매우 비참한 상태에 처하곤 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모든 것을 풍족케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 즐겁게 다음과 같은 것을 회상하고 있다.

1. 그의 환난은 항상 그를 하나님의 무릎으로 데리고 왔으며, 그의 모든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마음 뿐만 아니라 그의 소리도 하나님께 올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이것은 우리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위로의 회고가 되어 줄 것이다.)"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걱정과 고통이 우리로 하여금 간구하게 만들고 진지한 자로서 하나님께 말할 뿐만 아니라 부르짖게 만든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해롭지 않고 오히려 유익한 것이다. 그리고"음성은 들리지 아니할"(삼상 1:13) 때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마음의 언어를 이해하시며, "저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는"(사 58:4) 자들의 위선적인, 즉 "소리뿐"인 기도를 중히 여기지 않으신다. 그러나 목소리의 진지함이 마음의 열정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우리가 우리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소중히 여겨질 것이다.

2. 그는 항상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도다."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인 하늘에서, 그를 구하는 자들에게 그가 응답하시던 그 시온산에 있는 궤에서 응답하신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가 그 궤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믿음에 의해 성산으로부터 화평의 대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서 사독에게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가라"고 명했다(삼하 15:25).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 안에 있는 그의 은총의 역사를 가로막을 수 없으며, 그의 은총과 우리 믿음 사이에 가로 놓여진 심연이 될 수도 없다. 언약의 궤는 시온산에 있었고 우리 기도에 대한 모든 응답은 그 언약의 약속으로부터 나온다. 그리스도는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워진 왕"이었고(2:6) 그를 통하여 아버지는 항상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다.

3. 그의 하나님의 보호 아래 언제나 매우 안전했고 평온했다(5절). "내가 누워자고, 즉 평온하며 조용하고, 새로 원기를 회복하여 깨였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르다."

(1) 이것은 매일밤 주어지는 일반적인 자비에 적용된다. 우리는 이러한 자비를 아침마다 혼자서, 그리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감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 둘 곳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한다), 갖고 있다 하더라도 대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감히 눕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평온하게 우리 스스로를 눕힐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눕더라도 잠들지 못하고서 육신의 고통이나, 마음의 번민, 또는 밤의 두려움 속에 있는 끊임없는 놀라움으로 인해 새벽녘까지 뒤척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을지라도 누우면 편히 잠든다. 많은 사람들이 누워 잠드나 다시 깨어난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까닭은 주께서 음식과 함께 잠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시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의 보호 아래 안전한 상태에 있어 왔고 그의 선한 섭리의 팔 아래 편히 있어 왔던 것이다.

(2) 이것은 여기에서 위험 가운데서도 다윗의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고 평온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도로써 그 자신과 그의 주장을 하나님께 의탁했고 그의 보호를 확신했기 때문에, 그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는 편안했다. 그의 아들의 불효, 신하들의 불충성, 많은 친구들의 배신, 그의 신상의 위험, 피곤한 행진, 그리고 그 사건의 불명확성 등도 결코 그에게서 한 시간의 잠도 빼앗을 수 없었고 그의 안식을 방해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의 은총과 성령의 위로로써 강력하게 그를 붙들어 주시어 그를 편케해 주셨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도, 먹고 잠잘 때에 결코 두려움과 놀람으로 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된다면 그것은 큰 은혜이다.

(3) 어떤 고대학자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적용시키고 있다. 고통 가운데서도 그는 위를 향해 강하게 부르짖었고 그것은 상달되었다. 그러므로 그가 누워서 사망의 잠을 잤었다 할지라도 그는 삼일째 되는 날에 깨어나셨던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그가 썩음을 당하지 않도록 그를 붙들어 세우셨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은 흔히 그의 대적들의 힘을 깨뜨리시며 그들의 악의를 속박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뺨을 치시며"(7절) 그들을 잠잠케 하시고 그들의 발언을 방해하신다. 또한 그들을 더럽히시고 수치스럽게 하시며, 그들의 뺨을 힐책하시면서 치시고 그들이 계획했던 재앙을 하지 못하게 하신다. 즉 그는 그들의 이를 부러뜨리셨다. 때로 그를 삼키려고 노리던 사울과 불레셋 사람들도 그들이 의도했던 것을 효과적으로 행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기 위해 갈려지거나 날카롭게 된 이는 부러질 것이다. 교회의 대적들의 힘이 위협적으로 보일 때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주 그것을 부러뜨리셨는가를 기억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팔이 짧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확신할 수 있다. 그는 그들의 입을 막고 그들의 손을 묶으실 수 있는 것이다.

Ⅱ. 위험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 가를 보라. 그 자신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었고 또 자주 그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1. 그는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6절). 그는 얼마나 거룩한 용기를 갖고 그의 대적들의 무능한 위협과 시도에 도전하고 있는가! "외부의 침입이나 내란으로 천만 인이 나를 둘러 또는 진을 펴고 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그 누구도 덜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그의 대적들은 "천만인"이나 되었다. 그들은 악의에 차 있었고 또 단호했다. "그들이 나를 치려 했습니다. 아니, 그들이 크게 우세하여 그들이 목적을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사방에서 일대 수 천의 비율로 나를 둘러치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나를 해할 수 없으며 따라서 나를 놀라게 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나의 보존을 위해 내가 아무리 신중한 방법을 취한다 하더라도 나는 평정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불신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드디어 좋은 결과가 오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 다윗이 압살롬으로부터 도망하면서 사독에게 하나님의 궤를 도로 메어가라고 명했을 때 그는 현재의 환난의 결과에 대해 의심스럽게 말했고, 겸손한 회개자처럼 "내가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삼하 15:26)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제, 강한 믿음을 지닌 자처럼, 그는 확신 있게 말하고 있고 그 사건에 대해 아무 두려움도 갖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 즐겁게 복종하는 것은 즐거운 만족과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얻는 길인 것이다.

2. 그의 기도는 혹기를 띠게 되었고 격려되었다(7절). 그는 하나님이 그의 구세주이심을 믿었다. 그러나 기도했다. 아니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의 약속은 그것을 구하는 우리의 간청을 찬탈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한다. 그는 이에 대한 문의를 받으실 것이다.

3. 그의 믿음은 승리를 얻게 되었다. 그는 그의 대적들의 힘과 악의를 소호하는 것으로서 이 시를 시작했으나 그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대한 환호로써 끝맺고 있으며, 이제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시기보다는 자기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8절)기로 그가 여기에서 그의 확신을 세우고 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다음 두 가지의 큰 진리 때문이었다.

(1) "그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 그는 아무리 그 위험이 크더라도 구원할 능력을 갖고 계신다. 모든 도움과 구조가 실패했을 때 구원하시는 것이 그의 특권이다. 그것은 그의 즐거움이며 그의 자산이다. 또한 그것은 그의 것이 된 자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그들의 구원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방침대로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구원을 확신한다 그들이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2) 그의 축복은 그의 백성들에게 임한다. 그는 그들을 구원할 능력을 갖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향한 그의 친절하고 은혜로운 뜻을 그들로 하여금 확신케 해 주신다. 그는 그의 말씀 속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녹을 내리실 것을 선포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 축복에 대한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없을지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임한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람들로부터 책망과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들을 실지로 축복하시고 복을 명하실 수 있는 하나님에 의해 확실히 축복받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노래하고 간구함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우리 자신을 의탁함에서 얻는 만족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구원을 계속 바라고 조용히 기다리도록 우리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3:5 없음.

 

3:6 없음.

 

3:7 없음.

 

3:8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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