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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엘리후의 연설(1)(욥기 32:1-5)

보통 보면 청년들은 논쟁을 좋아하는 논객이고, 노인들은 중재자가 되는 데 반하여 여기에서는 노인들이 논쟁자들이 되어 그들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열띤 논쟁을 힐책하였는데, 한 청년이 중재인으로 나타났다. 욥을 방문하고 그의 교훈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러 사람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것은 다음과 같다.

Ⅰ. 욥의 세 친구가 침묵을 지키고 잠잠하였던 이유가 있다.

"그들은 욥에게 대하기를" 그치고 그로 하여금 "그가 스스로 의롭게 여기었으리"라고 말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것이 저희가 더 이상 말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토록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자와 논쟁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1절). 자만심이 강한 자들에게 작용하여 설득하기란 실로 용이한 일이 아니다. 저희 스스로 만든 바보들보다도 오히려(하나님이 만든 바보들인) 미련한 자에게 더 희망이 있다(잠 26:12). 그러나 그들은 욥에 대하여 공정하게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실로 의로왔다. 다만 그 자신의 눈에는 의롭지 못하게 보였을 따름이다. 그래서 저들이 이것을 저희의 침묵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저희의 면목을 유지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흔히 억지를 쓰는 논쟁자들이 암초에 부딪쳤다고 느끼면서도 자기편이 성공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 싫어할 때 하는 수법이다.

Ⅱ. 네 번째 사람인 엘리후가 논쟁에 개입하는 이유가 있다. 엘리후라는 그의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그분이시다"는 뜻이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은" 이 일을 해 낼 수 있고, 해 낼 것이며, 마침내는 해내었던 "그 분이시다." 그만이 이해의 문을 여실 수 있다. 그는 "부스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나홀의 둘째 아들인 부스의 후손이란 뜻이다(창 22:21). 그리고 또 "람 족속"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스리아나 아람 족속의 시조인 "아람"의 후손임을 일컫는다(그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창 22:21). 갈대아 주석은 이를 "아브람 족속"이라고 읽는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단순히 "높다"는 뜻으로 "람"이라고만 이름하였고, 그 후에 "높은 아버지"란 뜻으로 "아브람"이라고 이름하였다가, 맨 나중에는 "아브라함 즉 많은 무리의 높은 아버지"라고 이름하였다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엘리후는 나머지 다른 사람들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이 더 소상하게 묘사되고 있다.

1. 엘리후는 화가 났기 때문에 말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자기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이 논쟁을 관전하는 동안 자리를 뜨거나 논쟁자들을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좋지 않게 생각하는 독설을 은밀히 품고서, 저희를 공박할 때를 기다렸었다. 그는 자기의 할 말을 저희 면전에서 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이 할 수만 있다면 자기 변호를 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1) 엘리후는 욥에게 화를 내었다.

그 이유는 엘리후가 생각하기에 욥이 마땅히 하나님께 대하여 경건하게 여쭈어야 하는 데도 그러지 아니 하였기 때문이며, 또 그것은 사실이었다(2절). "그는 하나님보다도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었다." 즉 욥은 마치 하나님의 영예보다 자기 자신의 명예를 더 소중히 하는 듯이, 자기에게 괴로움을 내리신 하나님께 의롭지 못하신 하나님이라는 비난이 돌아가지 않도록 결백을 증명하기 보다는 자기가 그와 같이 고통을 당하게 됨으로써 해서 그가 불의한 탓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자신의 무죄를 밝히는 데에 더 한층 고심하고 수고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하나님을 의로우신 분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그의 영광을 깨끗이 드러내 놓은 뒤에 자기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힘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

은혜로운 마음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열심을 다하며, 그 명예가 무시당하거나 뒤로 제켜지거나, 어떤 손상을 입을 때는 반드시 화를 내게 마련이다. 심지어 우리의 친구들이 하나님께 거역할 때 우리가 그들에게 화내는 일은 온유의 법에 조금도 저촉이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도 시몬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셨다. 엘리후는 욥을 선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였다. 하지만 욥이 잘못 말한다고 생각할 때는 여지없이 추궁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친구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심한 아첨이다.



(2)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에게 화를 내었다. 그 이유는 엘리후의 생각으로는 욥의 친구들이 그런 참상에 처한 욥에게 대해 응당 자비롭게 행동해야 하는 데도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다(3절). "그들이 능히 대답지는 못하여도 욥을 정죄함이라."

그들은 욥을 위선자로 규정하였으며, 사악한 사람이라고 판결하고도 욥에 대한 그 판결에서 추호도 후퇴하거나 양보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욥이 외식하는 자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였고, 그가 자기의 온전함에 대하여 제시한 증거를 뒤엎을 수 있는 반증을 들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전체를 실제로 증명하지 못하면서도 결론은 굳게 고집하였다. 그들은 욥의 논지에 답할 말도 없으면서 항복하려 하지 않고, 옳든 그르든 그의 말을 끌어 내리는데만 급급하였다. 이것이 공정치 못한 짓이었다 .양쪽이 다 잘못이 없는 언쟁은 좀체로 일어 나는 법이 없고, 이 경우처럼 오랫동안 계속되는 법은 더욱 더 드물다.

중재자가 된 엘리후는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양쪽의 실책과 논리의 모순을 다 불쾌하게 여겼다. 이와 같이 선한 열심히 진리를 구하는 자들은 논쟁자들에 대한 판단에 있어 공평무사해야 하며, 그릇된 것을 위하여 어느 쪽이든 간에 선하고 참된 것을 배척해서도 아니 되며, 진실되고 참된 것을 위하여는 그릇된 것을 시인하거나 옹호해서도 아니 되고, 옥석을 구분할 수 있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2. 엘리후가 말하게 된 것은 그 때가 말해야 할 시간이며, 드디어 자기 차례가 돌아 왔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4, 5절).

(1) 그는 욥의 말이 끝나기까지 기다렸고 또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다 들었다.

(2) 그는 욥의 친구들의 침묵도 참고 기다렸다. 이는 그가 욥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저들의 말에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자기보다 현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보다 연장자였으므로 그들이 먼저 발언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이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엘리후는 겸손하여서 그들의 특권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다.

질서의 유지를 위하여는 어떤 식으로든 우선의 규칙이 지켜져야만 한다. 그러나 내적 참 명예는 진정한 지혜와 참된 가치를 따른다고는 하나,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나 자기 친구들이 가장 지혜롭고 가장 가치있는 사람인 줄 생각하기 때문에 외적인 형식적 명예를 지정해 줄 수 있는 척도란 쉽사리 세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연령이나 직책의 순위에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손윗사람들은 그들도 연소자였을 때 존경심을 연장자에게 바쳤기 때문에 존경을 꼭 받는다 해서 무리한 일은 아니고, 손아래 사람들도 연장자가 되면 존경을 받을 것이므로, 손윗사람에게 이런 경의를 표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32:2 없음.

 

32:3 없음.

 

32:4 없음.

 

32:5 없음.

 

32:6

엘리후의 성품(욥기 32:6-14)

엘리후의 인간적 면모는 다음과 같다.

Ⅰ. 그는 아주 점잖고 겸손한 사람이다. 그는 아직 젊은이였으나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러면서도 건방지거나 주제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얼굴은 광채가 났으되 모세처럼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이 그의 얼굴을 한층 더 빛나게 하였다. 모든 사람은 그 점을 잘 유의해야 하며, 특히 젊은이들은 그 점을 귀한 것으로 알고 본받아야 한다.

1. 그는 그 자신과 그 자신의 판단에 대해 매우 겸손한 생각을 품었다(6절). "나는 연소하므로 당신들에게 나의 의견을 감히 진술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내가 실수한 것으로 판명되거나 내 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 될까봐 주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건의 경과를 하나같이 모두 주의 깊게 관찰하였고, 자기의 귀에 들리는 말에 열심히 그 마음을 기울였던 관계로 그 일에 대한 시비 판단이 저절로 그 마음 속에 형성되었다. 그는 그 일을 남의 일이라 하여 소홀히 여기지도 않았고, 또 그것이 번잡한 일이라 하여 물리치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한 판단이 아무리 명백하다 하더라도 그 일에 대한 자기 의견을 진술하기가 두려웠다. 그것은 자기보다 연장자인 그들과는 소감이 다를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심쩍은 쟁점이 있을 때 우리 자신의 판단에 대해 일단 한번쯤 의심을 해 보고, 재빨리 남의 소감도 귀담아 들으며 우리 자신의 감상은 더디게 발표하는 것이 우리에게 알맞는 일이다. 특히 학식이나 경건한 신앙심의 면에서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과 판단이 상반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

2. 그는 자기의 선배들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하였으며, 그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7절). "내가 말하기를 날이 많은 자가 말을 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연륜과 경험은 사물의 판단에 있어서 큰 이점을 인간에게 제공해 준다. 나이와 경험은 인간의 사고력이 작용할 소재를 공급해 주며, 나이나 경험의 다과는 사고의 대상이 되는 재료의 다소와 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연령과 경험은 인간이 구사하는 기능을 더욱 성숙하게 하며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인들이 스스로 배우는 일과 남을 가르치는 일에 고심하는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그렇지 않다면 나이가 많아 얻는 것은 그들의 치욕밖에 없을 것이다), 또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의 교훈에 간청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래된 제자와 더불어 유숙함"은 좋은 일이다(행 21:16; 딛 2:4).

엘리후의 점잖은 자기 연장자들이 한 말에 기울인 그의 인내심은 깊은 주의에 나타난다(11, 12절). 그는 이 근엄한 선배들에 대해 품었던 선입관을 따라 그들에게서 무척 많은 것을 얻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말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는 저희의 논리적 전제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것은 그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였고, 또 저희 담화의 취지가 무엇이며, 저희 논증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열심히, 그리고 조심성을 가지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였다.



(1) 그들이 늑장을 부린 데다, 할 말을 찾아내는 데에도 무척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마는 그는 참고 경청하였다. 비록 저들이 명제의 핵심과 표현 어귀를 찾아 내려고 끙끙대며 또 중단하기도 하고 머뭇거리는 등 자기들의 과제에 대하여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으나 그는 그런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저들의 변론에 귀를 기울였다." 만약 실제로 지당한 말이라면 그는 그들의 말투가 신통치 못하더라도 그로 인해 잘못 듣지는 않을 수 있었다.

(2) 저들이 설사 이 변론을 농지거리로 하였거나, 아무 것도 아닌 양 말하였다고 하더라도, 또 욥을 납득시키기에 온당한 말은 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는 저들이 종래에는 확신을 주는 어떤 결론에 이르도록 할 것이라고 바라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얘기라도 쾌히 들어야 된다.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만사를 다 증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끈질기게 저희 담화를 들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위한 것이다.

[1] 자기 차례가 되면 연설할 수 있는 자유를 얻고 그가 저들의 주의를 요청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이다. Hamc veniam petimusque damusque vicissim-즉 이 자유는 우리가 서로 허용하기도 하고 요구하기도 해야 한다. 들은 자가 말할 수 있으며, 배운 자가 가르칠 수 있다.

[2] 저희가 말한 것에 대한 판결을 그가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저희가 노리는 목표를 잘 관찰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혹평하기 전에 그들의 감상을 온전히 평가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을 듣기도 전에" 혹은 어떤 일을 불완전하게 듣기만 하고도 "그 문제에 대답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 되고, 치욕이 된다." 또 일면 그것은 그가 건방지고 주제넘은 것을 나타낸다.

Ⅱ. 그는 명쾌한 분별력과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며, 침묵의 시기와 침묵의 방법을 잘 알 뿐만 아니라 말해야 할 때와 말하는 방법까지도 잘 아는 자였다. 그는 자기의 말참견으로 욥의 친구들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존경심을 그들에게 대하여 품고는 있었지만, 그는 그보다 못지 않게 정의와 진리에 대하여도 크나 큰 애호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그 진리와 정의는 그의 더 좋은 친구였으므로),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들을 배신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담대하게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1. 인간은 이상적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누구나가 분별있는 판단력을 스스로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 차례가 오면 자유로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엘리후가 8절에서 "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욥이 말한 바와(욥 12:3, "나도 너희같이 총명이 있다") 꼭 같은 것을 의미하였다. 단지 그는 그 말을 좀더 부드럽게 표현하여, 갑이라는 사람도 을이라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총명 즉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이라도 이성을 자기 혼자 전매특허를 낸 듯이 활개치며 또 총명을 모두 도매금으로 독점하게 된 것처럼 행세할 수는 없다고 표현한 것 뿐이다(어떤 이들이 이 구절을 해석하듯). 만약 그가 "내게도 너희와 같이 계시가 있다"고 말한 것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자기가 받은 계시 사실을 증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나도 너희와 마찬가지로 이성을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만을 뜻했다면 그들은 이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가진 것이며, 그것은 곧 인간의 명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억측이 아니므로 그들은 그가 이러한 근거에서 내린 결론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10절). "그러므로 내 말을 들으라."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영혼은 하나의 심령이다. 그것은 그 자체가 물질이 아니며, 물질에 의지하는 존재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각의 대상물이 못되는 영적 존재와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2) 인간의 영혼은 이해력을 가진 심령이다. 그것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또 그 진리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또 담화할 수도 있고 조리 정연하게 판단할 수도 있으며, 따라서 지도할 수도 있고, 지배할 수도 있다.

(3) 이러한 이해하는 심령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다(요 1:9).

(4) 우리에게 이러한 이해하는 심령을 주신 이는 전능하신 이의 영감이다. 왜냐하면 그가 영들의 아버지도 되시고 인간 오성의 근원도 되시기 때문이다(창 2:7; 전 12:7; 슥 12:1 참조).

2. 위엄스럽고 진중한 면에 있어서는 남보다 앞서있는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꼭 비례하여 지식과 지혜에 있어도 남들을 능가한다고 할 수는 없다(9절). "대인이라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바로 그러했다. 만약 그들이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의 위대함이 욥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며, 저희의 지혜로 더 큰 선을 행했을 것이다. 인간은 지혜를 잘 이용해야 한다. 명성과 권세를 가진 자들도 지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최대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위대한 자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어떤 독단적 명령에 맹신적으로 추종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노인이라고 하여 늘 현명한 판단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까지도 실수하는 수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대로, 순종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박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을 모욕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며, 젊은이들에 의해 교사받는 경우에는 그 일을 오히려 호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10절). 우리는 어느 모로 보나 우리보다 열등한 자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도리에 맞는 말은 들어야 하며, 그 말에 승복하여야 한다. 좋은 시력을 가진 자는 비록 평지에서 바라본다 할지라도, 흐린 시력을 가진 자가 높은 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한 왕보다 낫다"(전 4:13).

3. 이 변론을 진리의 빛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필요불가결한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이제껏 언급된 모든 말로는 이 논쟁이 더 복잡하고 혼란된 것으로 나타났을 뿐이기 때문이다(13절). "당신들이 혹시라도 우리가 지혜를 깨달았구나 하고 말할까 두렵고, 또 당신들이 욥에 대한 당신들의 변론이 결정적이고도 논박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여길까 두려워하여 내가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내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신들이 생각하기를 욥은 당신들의 이 주장 외의 어떤 변론에도 수긍하고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그를 넘어지게 하신 것이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하나님이 욥의 대적자이심은 그가 당하는 눈뜨고 볼 수 없는 참경을 봐서라도 나타나기 때문에 욥은 누가 보아도 악인임이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이 주장이 그릇된 가설이며 이렇게 주장하지 않고도 욥이 설득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내 주어야 하겠습니다."

또는 이렇게 말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당신들이 혹 욥과 더 이상 씨름하지 않아도 될 가장 현명한 길, 즉 그의 주장을 꺾어 버리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발견해 낸 것처럼 생각할까봐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릇된 의견이 제시되어 논의되는 것을 들을 때, 더욱이 하나님의 명분을 옹호한다는 구실로 그럴 때는 우리가 말참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긍지나 정열을 옹호하는 일이나, 자기 형제들에 대한 불공평하고도 무자비한 비난을 하는 일에 하나님의 정죄하심을 증거로 끌어 대어서 단언될 때는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때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을 해야 한다.

4. 엘리후에게는 새로운 어떤 제안이 있었으며, 지금까지 그 논쟁이 처리되어 온 것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그 논쟁을 이끌어 갈만한 점이 있었다(14절). 그는 자기의 말에 대해 호의적으로 경청하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엘리후는 자기가 완전하다는 욥의 주장에 대해 대답치 아니하겠고, 그것들이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욥의 대적자로서 논쟁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말을 걸지 아니하였습니다. 나도 그의 이야기의 근본 취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할 말이 없으며, 내 원칙이 그가 주장하는 원칙과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단지 그의 과격한 표현에 대해 온건한 질책으로 그에게 들려 줄 뿐입니다."

(2) 엘리후는 그들의 논난을 반복하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원리 원칙에 따라 행하지도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들의 말처럼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리라. 나는 같은 내용으로 대답지도 아니하겠습니다. 만약 내가 이미 말한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뻔뻔스런 자가 되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더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나는 당신들과 꼭 같은 방법으로는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들처럼 욥에게 대해 편벽되어 억지를 부리는 따위의 잘못은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들에게서 싫어하는 점은 바로 그런 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만약 자기가, 이미 굳어져 버린 것에 대해 수정하거나 개선시킬 수가 없는 경우에는 그것이 이미 충분히 다루어진 논쟁이라면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이다. 왜 그가 ac um agere-즉 이미 굳어져 버린 일을 할 것인가?

 

32:7 없음.

 

32:8 없음.

 

32:9 없음.

 

32:10 없음.

 

32:11 없음.

 

32:12 없음.

 

32:13 없음.

 

32:14 없음.

 

32:15

엘리후의 연설(2)(욥기 32:15-22)

여기에서는 이미 그토록 예리하고 박학다식한 논쟁자들에 의해 세밀히 토의된 이 논쟁에 개입하면서 엘리후가 늘어 놓는 세 가지 해명이 나온다.

1. 무대는 깨끗하였고, 그는 어느 쪽의 무대 감독에 대해서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놀라서(15절), 말이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지 아니하였다"(16절). 그들은 말하기를 그만 두었을 뿐만 아니라, 가만히 서서 일행 중 누구라도 자기들의 의사를 말하면 들으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발표할 장소를 가지게 되었으며, 자기에게 주어진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피력한 변론에 대해 온전히 만족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만약 만족했다면 그들은 그 재판석을 폐회했을 것이며, 어떤 다른 의견이 있을 것을 기대하며 가만히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본분대로 대답하겠습니다(17절). 나는 내가 최종 선고를 내리는 자라고 자처할 수는 없습니다. 심판은 여호와의 것입니다. 누가 옳으며 누가 그른지는 여호와께서 결정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각기 당신들의 의견을 나타내 보였으니 만큼 나도 또한 내 의사를 제시하겠으며, 당신들의 의견과 더불어 숙명의 판결을 받게 하겠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자가 내놓는 의견이라도 이렇게 정중하게 제의될 때는 공정히 들어 주며 진지하게 참작해야 한다.

나는 엘리후가 여기에서 스스로를 이 욥기의 필자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또 그가 이 구절에서 사실을 언급하면서 역사가처럼 기록하고 있다는 상상을 해도 별로 불편이 없는 것 같다. 그는 이 앞 구절들에서 저희의 주의를 미리 구하였는데, 그들은 아연하여 저희들끼리 수군거림을 중단하면서도 그가 구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부정하지 않고 그가 말하려는 것을 듣기 위해 조용히 서 있기까지 하며, 그가 서두에서 나타낸 대담성과 겸손의 교묘한 배합에 무척이나 놀랐다고 기록한 사실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2.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밝히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고통스러워하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참고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묵상할 때에 화가 발했으며"(시 39:3), 예언자가 말하는 것처럼 "골수에 사무쳤던 것이다"(렘 20:9). 또 유모가 젖이 불어 젖을 물리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하더라도 엘리후가 욥의 경우에 대하여 자기 의사를 전달하고자 그토록 오랜 시간을 참느라고 애쓴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18-20절). 만약 논쟁자들 중 어느 누구라도 그가 바로 요점이라고 생각한 점을 말했다면 그는 만족하게 생각하고 침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는 그들은 모두가 핵심을 빗나간 변론을 폈기에 그는 자신이 직접 말해야 한다고 기어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주장은 다음 몇 가지이다.

(1) 그는 말할 것이 너무 많았다. "나는 지금까지 논란되어 온 모든 것에 대해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내게도 할 말이 가득합니다. 노인들이 신의 섭리를 논하면서 무미건조하게 얘기를 이끌어 가고, 또 그 얘기가 바닥이 날 때는 하나님께 비록 젊은이들이라 하더라도 딴 사람을 세우사 당신의 교회에 유익한 교훈이 될 재료를 그들에게 채워 주게 하신다. 왜냐하면 비록 복음을 말하는 자들은 고갈되 버릴지 모르나 복음 자체는 결코 다 하지 못할 무진장의 논제이기 때이다."

(2) 그는 그것을 말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내 안에 있는 심령이 무엇을 말해야 할 것인가를 내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얘기하도록 압박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내게 만약 분출구가 없다면(내 생각이 안에서 물 끓듯이 소용돌이 치고 있으므로) 그것이 작용하는 날에는 새 가죽 부대가 터짐 같을 것이다(19절). 훌륭한 목회자가 침묵하고 한구석에 처박혀 있다면 그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보라. 목회자에게는 할 말이 가득하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충만하며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넘쳐 흘러서 타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런 것들에 관하여 꼭 말해야 될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3) 자기 의사를 발표하는 일은 엘리후에게 있어서 안심이 되고 만족스런 일이 될 것이다(20절). "내가 말을 발하여야 시원할 것입니다. 나는 내 생각이 질식당하는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내 지위와 능력에 따라 선을 행하기 위한 노력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서도 나는 말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타인의 교화를 위해 자유로이 발언할 수 있다는 것은 선량한 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상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엘리후는 모든 가능한 자유와 성실을 총동원하여 자기가 진실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만을 말하겠고, 결코 자기를 즐겁게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말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하였다(21, 22절). "나로 하여금 사람의 낯을 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이런 일은 편파적인 재판관이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공의를 행하려고 목적 삼지 않고, 자기를 부하게 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아첨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생각되어지는 대로 말하고, 그 밖에 달리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1) 그는 욥이 불쌍하고 재난 중에 있다고 하여서, 그의 비탄이 더 심하게 될까봐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가 애당초 실제로 단정하였던 것보다 욥의 경우를 동정해서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사실을 말하고, 다만 그로 하여금 그것을 참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이라 하여 듣기 좋은 말만 해 주어서는 안 되며, 신실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환난을 당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을 그로 인해 동정해서 함께 죄를 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연민에 불과한 짓이다(레 19:17). 그것은 저들의 잘못을 극도로 더 악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하여" 가난한 자를 비호하지도 말며, 불리하게 하지도 말라(출 23:3). 또 함부로 깔보거나 우러러 보기 때문에 공의를 편벽되게 하지 말라. 그것이 곧 사람의 낯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욥의 친구들이 번영을 누리며 명성을 떨치는 자들이라 하여서 경의를 표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욥의 친구들은 엘리후가 자기들의 말대로 얘기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 없게 하였고, 또 그가 자기들의 말이 정당한 줄로 확신하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을 수 없게 하였으며, 그들의 권위를 위하여 그가 자기들의 지시에 호응하리라고 생각하게도 하지 아니하였다. 엘리후가 비록 청년으로서 장래의 출세를 생각했겠지만, 그는 권세 있는 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진리를 외면하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그가 취한 결단은 훌륭하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말을 할 줄 모르며, 또 아첨하는 말을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그가 자기 결단에 대해 제시한 이유도 훌륭하다.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자가 속히 나를 취하시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정죄하심을 거룩하게 경외하며 우리 자신을 항상 두려움 가운데 처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를 지으신 이는 만약 우리가 의당 취해야 마땅한 행동을 우리가 취하지 않을 때에는 크게 진노하사 우리를 쉬 데려 가실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허위의 은폐와 아첨을 증오하시사 "거짓말하는 입술은 곧 침묵시키실 것이며" 아첨하는 입술은 끊으실 것이다"(시 12:3). 우리가 우리의 조물주로서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더 가까이 바라보면 볼수록, 또 그의 진노와 공의를 두려워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죄악된 공포와 사람에게 아첨하는 위험에서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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