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인간의 발견물(욥기 28:1-11)
여기에서 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1. 인간의 기지는 얼마나 깊이 자연의 깊이를 찾아내어 그것의 풍요함을 깨달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들의 독창적이고 근면한 탐구에 의해 얼마나 많은 지식과 재물을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의 기지로써 왜 어떤 악인들은 흥하고 다른 사람들은 벌을 받으며 왜 어떤 선한 사람들은 형통하고 다른 사람들은 환난을 당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아니다.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땅의 동굴은 발견될 수 있어도, 하늘의 뜻은 발견될 수 없다.2. 세상적인 사람들은 재물을 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수고를 하는가. 욥은 "은을 티끌같이 쌓는" 악인에 대해 관찰한 일이 있었다(27:16). 이제 그는 여기에서 악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은이 어디에서 나오고, 어떻게 그것이 얻어졌는가를 보여 주고 있으며, 악인은 그들의 부요함과 화려함에 대해 자랑할 이유가 얼마나 적은가를 보여 주고 있다. 다음을 살펴 보자.
Ⅰ. 이 세상의 재물은 땅 속에 숨겨져 있다. 그들이 은과 금을 그 속에서 캐내어 나중에 연단한다(1절). 그곳에 그것들이 흙덩어리와 다름없이 보잘 것 없는 것처럼 흙과 먼지와 함께 범벅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이 그처럼 무시된 채 묻혀 있다가, 마침내 흙과 그 속에 있는 모든 찌끼들이 불살라질 것이다. 허버트(Herbert)씨는 "탐욕"이라는 그의 시에서 돈을 사랑하는 인간의 수치를 파헤치면서 이러한 사실을 다루고 있다.
돈, 너는 행복의 독이며, 화의 근원이다.
너는 어디에서 와 그처럼 깨끗하고 멋있게 되었는가?
나는 너의 태생이 천박하고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광산에서 초라하고 더러운 너를 발견했으니까.
분명 너는 네가 온 이 왕국에서
기여한 바가 거의 없기 때문에,
네가 부족할 때 그는
너의 어두운 동굴에서 너를 파내려 한다.
사람은 너를 재물이라 불러 너를 부요케 만들었다.
그러나 너를 파내는 동안 그는 도랑으로 떨어진다.
철과 동은 값이 덜 나가나 더 긴요한 물질이며 그것들은 흙에서 취한다(2절). 그것들은 그 속에서 매우 풍부하게 발견되기 때문에, 실상 그 가격이 떨어지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매우 요긴하게 쓰이며, 금보다 철이 더욱 많은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지면은 식물을," 곧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곡식을 "낸다"(5절). 그곳에서 인간의 생계를 위한 것들이 나오며,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근원을 생각케 한다. 즉 그는 흙으로 만들어졌으며, 곧 흙으로 돌아간다. "지하는 불로 뒤집는 것 같다." 즉 그 속에는 불을 일으키기 쉽고, 불을 일으키기에 적당한 부싯돌과 같은 귀한 돌들이 있다. 우리가 땅으로부터 식물을 얻는 것같이 연료도 얻는다. 그 속에서 남보석과 그 밖의 보석들 그리고 사금 등을 파낸다(6절). 창조주의 지혜가 이러한 것들 속에 들어 있다.
1. 그것들은 우리의 눈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그것은 우리에게 그것들을 주목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잠 23:5).2. 그것들은 우리 발 아래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우리에게 그것들을 우리 가슴 속에 품지 말고 또한 우리 마음을 그것들에 두지 말고 단지 거룩한 경멸로써 그것들을 짓밟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얼마나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한가" 보라(시 104:24). 그리고 그것에서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을(시 24:1)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그 위대하신 왕의 성읍인 하늘 나라에는 이 초라한 땅과 비교하여 얼마나 하나님의 풍성하심이 넘치겠는가를 추정해 보라.
Ⅱ. 땅 속에 감추어진 재물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얻을 수가 없다.
1. 그것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단지 여기 저기에 "은을 내는 광"이 있을 뿐이다(1절). 그 귀중한 광석들은 그것 자체로는 빛나지만,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음예와 유암중의 광석"이라 일컬어진다. 사람들은 그것들이 그들에게 빛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야 할 것이다.2. 그것이 발견되었을지라도 그것들을 꺼내기는 힘들다. 이 감추어진 보물들을 손에 쥐기 위해 사람들은 방법과 수단을 고안해 내기 위해 그들의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그들은 등불을 가지고 "어둠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만일 한 가지 수단이 잘못 행해지고, 한 가지 방법이 실패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끝까지 궁구하여" 마침내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3절). 그들은 땅 속에 있는 물을 끌어 올려야 하며(4, 10, 11절), 산의 뿌리인 바위를 깨어 길을 내야만 한다(9절). 하나님은 금, 은 그리고 귀한 광석들을 얻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드셨다.
(1)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근면하게 만들고, 또 그것을 장려하기 위함이었다. Dii laboriibus omnia venbunt-즉 수고는 신들이 모든 일에 붙이는 대가이다. 만일 귀중한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결코 수고하는 것을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재물조차도 얻기가 어렵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하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힘을 써야 하는 것인가를 암시해 주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2)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허영과 사치를 억압하고 규제하기 위함이다. 필수품들은 얼마나 수고를 적게 하고도 땅 표면에서 얻을 수 있는가! 그러나 사치품들을 파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수고하며 창자로부터 힘을 쏟아야 하는가! 배를 불리는 것은 그리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지만, 화려하게 하는 것은 많은 부담을 요한다.
Ⅲ. 땅 속에 있는 재물을 얻기가 힘들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얻으려 한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많이 지닌 자는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다음을 살펴 보라.
1. 사람들은 이 재물을 얻기 위해 어떠한 고안을 하는가 살펴보라. 그들은 "끝까지 궁구한다"(3절). 그들은 기술과 기계를 사용하여 물을 퍼내어 그곳을 말리우나, 그 물은 그들의 광산으로 스며들어 그 일을 망칠 위험을 겪게 된다(4절). 그들은 펌프와 도관을 만들며 수로를 냄으로써 그들의 길을 닦아 놓는다. 그리고 장애물들이 다 제거되었을 때 그들은 "솔개도 알지 못하는 길"을 밟는다(7, 8절). 또한 그 길은 재빨리 간파하는 매의 눈으로도 볼 수 없으며, 광야의 모든 길을 통과하는 사자 새끼도 밟지 않은 길이다.2. 사람들은 이 재물을 얻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며, 얼마나 막대한 수고를 들이는가 살펴보자. 그들은 바위를 뚫고 길을 내며 산에 갱도를 판다(10절).
3. 그들은 얼마나 위험한 모험을 하는가 살펴보자. 광산을 파는 자들은 그들의 생명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냇물을 막아 스미지 않게" 해야 하고(11절), 땅의 독기에 질식당하거나 그들 위에 있는 흙이 무너져 내려 깔리거나, 생매장당할 위험성을 끊임없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어리석게 인간이 그 자신의 짐을 더 무겁게 만드는가를 보라. 그는 얼굴에 땀을 흘리며 음식을 먹어야 하는 벌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부족한양 더 많이 캐어낼수록 더 가치는 줄어드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명의 위협도 무릅쓰고 금과 은을 얻고자 한다. 솔로몬 시대에 은은 마치 돌과도 같았다.
4.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이 모든 수고와 위험을 겪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라.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한다"(10절). 은과 금은 그들에게 귀중한 물건이므로 그들의 눈은 언제나 이것을 좇는다. 그들은 그들의 눈 앞에서 이것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리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이 모든 어려움을 무릅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침내 수고의 대가를 얻기 때문이다. 즉, "감취었던 것을 밝은 데로 내게 된다"(10절). 땅 밑에 감취었던 것이 갱구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광석 속에 감취어 있는 금속들이 용광로 속에서 그 불순물이 제거된 후 순수한 귀금속으로 제련된다. 그때 사람은 그의 수고가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광부들에게 가서 너희는 얼마나 너희가 믿음에 게으른가를 배우고 또한 그들의 태도를 살피고 지혜롭게 되라. 사라질 재물을 찾는 그들의 용기와 근면과 끈기는 참된 보물을 위해 일하는데 있어서 게으르고 낙심하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다. "지혜를 얻는 것이 정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 그것이 얼마나 쉽고 안전한가! 그러나 사람들은 정금을 찾으나 은혜는 무시한다. 땅에서 나는 보석에 대한 기대는(그 보석이 실제로는 보잘 것 없으며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그처럼 열심히 찾아내도록 박차를 가하는데, 하늘에 있는 참된 보물에 대한 소망은 그것보다도 더 큰 박차를 가하지 못하겠는가?
지혜의 우수성(욥기 28:12-19)
욥은 사람들이 매우 중히 여겨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해 말한 후, 이제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보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지혜와 명철"로서 하나님과 우리들 자신을 알고 즐기는 것이다. 모든 방법과 수단을 사용하여 그들 스스로를 부요케 한 자들은 그들 자신이 매우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욥은 그들의 지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는 그들이 그들의 요점을 얻었고 그들이 찾던 것을 발견하리라고 짐작하고 있으나(11절), "지혜는 어디서 얻는가? 그것은 여기에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이 모든 방식은 매우 우매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그밖의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며, 그것은 믿음의 원리와 실천 속에서만 발견될 것이다. 우리에게 하늘의 기쁨을 얻는 길을 보여 주는 견고한 거룩함 속에서 우리에게 땅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 주는 자연 철학 또는 수학 속에서보다도 더욱 참된 지식과 만족과 행복이 있다. 그들의 지혜를 가지고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은 결코 찾아낼 수 없다.
Ⅰ. 그것의 값은 찾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재물보다도 더욱 무한하다. "그 값을 사람이 알지 못한다"(13절).
1. 그것을 올바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그것의 가치와 본질적인 우수성, 그것의 필요성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유익을 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많은 값으로 이 지혜를 그들 속에 넣으려 할지라도 그들은 "무지하다"(잠 17:16). 우화에 나오는 수탉은 쓰레기 속에서 그가 발견한 보석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차라리 보리알을 원했다. 사람들은 은혜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려 한다.2.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재물로도 그것의 가치와 비교될 수 없다. 욥은 15절 이하에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인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금이 다섯 번이나 언급되어 있으며, 은도 또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여러 가지 보석들, 수마노와 남보석, 수정과 홍보석 그리고 구스의 황옥이 언급되었다. 이것들은 이 세상에서 고액으로 거래되는 물건들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지혜를 위해 이 보석 더미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주고 바꾸려 한다면 그는 매우 조롱당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솔로몬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지혜를 찾는데 약간의 도움을 줄지도 모르나, 이것으로써 지혜를 살 수는 없다.
그것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성령의 선물"이다(행 8:20). 그것은 우리의 피 속을 흐르거나 조상에게서 물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대신으로 얻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거래로써 흥정될 수도 없는 것이다. 영적인 선물은 돈이나 대가없이 주어진다. 왜냐하면 돈이 그것을 위한 대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혜는 그것을 지닌 자에게 매우 귀한 선물이며, 정금이나 보석보다도 그를 더 부요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정금보다 지혜를 얻는 것이 낫다." 정금은 다른 사람들의 것이며, 지혜는 우리 자신의 것이다. 정금은 육신과 한정된 시간을 위한 것이며, 지혜는 영혼과 영원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귀한 것을 우리들의 것이 되게 하자. 잠언 3장 14절 이하를 보라.
Ⅱ. 그것이 있는 곳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발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혜는 어디서 얻겠는가?"(12절)
1. 그가 이것을 묻는 것은 진실로 그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자로서였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하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은 어디서 얻겠는가?"라고 물을 때, 우리는 "지혜는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 그것을 구하여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헛된 철학이나 세속적인 계략이 아닌, 참된 믿음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유일하고 참된 지혜이며, 그것이 우리의 능력을 가장 훌륭히 개선할 수 있고, 우리의 영적이며 영원한 행복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리 높여 구해야 하는 것이다(잠 2:3, 4).2. 하나님이 계시는 것 이외에서 그리고 거룩한 계시 이외의 방법으로 그것을 발견하는 일에 완전히 실패한 자로서였다. "그것은 사람이 사는 이 땅에서 얻을 수 없구나"(13절). 우리는 어떤 책을 읽거나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책을 읽고 그의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 자신과 우리의 의무와 유익에 대해 올바른 명철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성품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듭 태어나고, 은혜로 인해 거룩한 성품을 지니게 된 자들 이외에는 참된 지혜를 지닌 자들이 없다. 그밖에 사람들은 아무리 재주가 많고 근면한 자라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에겐 이 잃어버린 지혜의 소식을 알려 줄 수가 없다.
(1) 광부들에게 물어보라. "깊은 물이 이르기를 그것이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는 사실을(14절) 그들이 알려 줄 것이다. 땅 속을 파서 보물을 찾으려는 자들은 이 어두운 굴 속에서 이 희귀한 보석들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기술로도 그것을 소유할 수 없다.
(2) 수부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바다 위를 살피거나 그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구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다의 보고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모래밭에 숨겨진 보물도 아니다." 은이 들어 있는 광이 있는 곳에 지혜가 들어 있고, 은혜가 들어 있는 광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늘의 지혜를 얻으려 할 때보다도 세속적인 재물을 얻으려 할 때 만나는 어려움을 더욱 쉽게 타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더 많은 수고를 한다. 이처럼 눈이 멀고 어리석게 된 인간에게 "지혜의 곳은 어디이며, 그리고 그곳으로 인도하는 길은 어느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인간에게 감추거나 계시된 지혜(욥기 28:20-28)
욥은 한번 했던 질문을(12절) 여기에서 다시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귀하고 중한 것이므로, 우리가 그것을 부지런히 찾지 않으면 놓치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그것에 대한 만족스런 답을 얻을 때까지 찾아야 한다. 부지런히 이것을 탐구한 끝에 그는 드디어 이러한 결론을 얻었다. 즉, 지혜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 안에 감취었던" 것으로서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비밀이고, 또 하나는 그에 의해 사람들에게 계시되어 알려진 것으로서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속한" 것이다.
Ⅰ. 하나님의 은밀한 뜻, 그의 섭리의 뜻은 우리의 미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스스로 보존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주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후에 하시려는 세부적인 사항과 지금 행하시고 있는 것의 이유를 아는 것이 욥이 제일 처음으로 언급한 바 있는 지식이다.
1. 이 지식은 우리에게서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너무 높아서 우리가 도달할 수 없다(21, 22절). "그것은 모든 생물의 눈에," 심지어 철학자들과 정치가들과 성자들의 눈에 "숨겨졌고, 공중의 새에게 가리워졌다." 비록 새들이 넓은 창공을 높이 난다고 할지라도 비록 그들이 이 지혜의 근원이 있는 저 높은 세상과 약간 가깝다 할지라도, 비록 그 눈이 멀리 본다 할지라도(39:29)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통찰할 수 없다. 사람은 "공중에 나는 새보다 더 지혜롭지" 못하며, 따라서 이런 지혜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명상 속에서 높이 솟아 올라 공중의 새처럼 그들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까지도 이 지식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욥과 그의 친구들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과 이치에 대해 논쟁을 벌여 왔다. "우리가 이처럼 흑암 속에서"(욥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하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람의 이성에 의한 헤아림은 하나님의 뜻의 심연을 결코 측량할 수 없다. 누가 하나님의 섭리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방법과 그 정도와 처세법 곧 하나님의 지혜의 각의(arcana imperii)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때가 이르러 하나님의 섭리의 일들을 밝히기 전에는 그것을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고(행 1:7), 영원히 그것을 밝힐 때까지는 그 섭리의 비밀을 캐려하지 말자.
하나님은 지금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다(사 45:15). 그러므로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러 싸고 있다." 비록 이 지혜가 생물의 눈에 감추어져 있지만 "멸망과 사망도 이르기를 우리가 귀로 그 소문은 들었다"고 한다. 비록 그것들은 그것들 자체에 대해 설명을 하지는 못하지만("왜냐하면 음부에는 이 세상보다도 더 지혜나 계략이나 지식이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죽음과 음부 저편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우리는 그 어두운 경계 위를 지나야 하며, 그 때는 우리가 지금 도무지 모르는 것을 명확하게 보게 될 것이다. "조금만 참아라." 죽음은 호기심이 강한 영혼에게 말한다. "나는 너를 이 지혜가 발견될 곳으로 곧 데려갈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이 필역될" 때, 그것은 공개될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알려진 것과 같이 알게 될 것이다. 육신의 장막이 찢겨지고, 가로 막고 있는 구름이 흩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지금은 모르나, 그 때는 알게 될 것이다(요 13:7).
2. 이 지식은 사도의 말처럼 하나님 속에 감추인 것으로서 비록(엡 3:9), 우리에게 드러나진 않으나,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 있다(행 15:18). 그가 행하시는 데에는 선한 이유가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규명해 내지 못한다(23절). "하나님이 그 길을 깨달으신다." 사람은 때로 자신이 모르는 것을 행하나,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그들이 계획하지 않았던 것을 행한다. 그리하여 갑작스런 일이 발생할 때는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하고 또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손수 계획하신대로 모두 행하시며, 결코 그것을 바꾸지 않으신다. 사람들은 때로 좋은 이유를 발견할 수 없는 일을 행하나,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는 선한 계획이 들어 있다. 그는 이 지식을 온전케 하시며, 결코 그것을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그의 길을 깨달으셔야 할 필요를 여기에서 두 가지 이유로 제시해 놓고 있다.(1) 그것은 모든 사건들이 모든 것을 돌보시는 전능하신 섭리에 의해 지시되고 있기 때문이다(24, 25절).
[1]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이는 그가 땅 끝까지 시간과 공간을 모두 감찰하시기" 때문이다. 즉 먼 지역과 시대가 항상 그의 시야 아래 있다. 우리의 시야가 짧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길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지금 행해지는 것들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어찌 앞날의 일을 알 수 있으랴! 그러나 "여호와의 눈은 각 처소마다 계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 땅을 두루 살핀다." 아무 것도 그에게서 감추어지지 않으며,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악인은 이 세상에서 현저하게 흥하고 또 다른 악인은 망하는 이유는 우리에게서 비밀이나, 그는 알고 계신다. 어느 날의 사건과 어떤 사람의 일들은 다른 것들과 이러한 대조를 이루고 또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모든 사건과 일들이 오직 그 앞에서만 드러나고, 모든 것을 완전하고 분명하게 보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담당하기에 합당한 심판관이시다.
[2]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그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며, 그가 행하신 모든 것은 매우 정확하다. 그는 "바람의 경중을 정하시는" 법을 알고 계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신다"(시 35:7). 그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내버리듯이 무더기로 그것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 곳간에서 어떤 물질을 꺼내는 것과 같이, 세밀히 측정하여 내 놓으신다. 우리에게 있어서 바람보다도 더욱 헤아릴 수 없도록 세미한 것은 없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경중을 정하시어 "그것이 어디에서 불고 얼마만한 세기"로 불 것인가를 지혜롭게 명하신다. 그는 바닷물과 빗물을 모두 측량하여 달으시고, 모든 조수와 빗방울의 한계를 정하신다. 구름과 바다 사이에 그리고 창공 위에 있는 물과 그 아래 있는 것 사이에 크고 끊임없는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증기는 올라가고 비는 내려오며, 공기는 물로 압축되고 물은 공기로 정화된다. 그러나 위대하신 하나님은 공공의 유익을 위해 운반되어야 할 이 모든 저장물들을 정확하게 측정하시며,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손실되지 않도록 살피신다. 이러한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이처럼 정확하다면 공평의 원리대로 모든 인간에 대한 진노와 은총, 그리고 보응과 형벌을 내리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2) 모든 일들은 정확한 통찰과 불변하는 명령에 의해 영원으로부터 계획되고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26, 27절). 그가 자연의 법칙을 정하셨을 때 그는 또한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 위한 계획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
[1] 그는 자연의 법칙을 정하셨다. 욥은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레와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신" 사실을 특별히 언급해 놓고 있다. 원인과 결과가 놀랍게 이루어지는 이 일반적인 법칙과 방식 그리고 그 특별한 용도와 경향은 모두 그 거룩한 목적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신다"고 일컬어진다(시 135:7; 렘 10:13).
[2] 그가 그것을 하셨을 때 그는 모든 것을 그의 섭리로 측정하셨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든 일을 정확히 계획하셨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영원으로부터 그 자신 안에서 그의 일들에 대한 계획을 보셨으며, 그것을 그 자신에게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준비하셨고 정해 놓으셨으며 견고케 하셨고, 그의 모든 사업을 위해 모든 것들을 준비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 행해져야 할 때 무엇을 찾을 필요가 없었고, 방법이나 시기가 어긋나 예기치 못했던 일이 발생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그가 마치 연구하고 탐색했던 것과도 같이 매우 정확하게 명령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무엇을 행하시든지 "더할 수도 없고 더할 수도 없으므로 그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다"(전 3:14).
어떤 사람들은 욥이 지혜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그때에 그가 그녀를 보시고 선포하셨다"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아버지의 중요한 지혜 곧 영생의 말씀에 관한 솔로몬의 것과 유사하게 된다(잠 8:22 이하).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도다(요 1:1, 2).
Ⅱ.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의 교훈의 뜻을 계시하며,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다다를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28절).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사람에게 감추시고 지식의 나무를 금하신 이유는 그가 인간에게 참된 행복과 만족에 기여하는 일을 싫어하셨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의 의무와 행복을 위해 알게 되어 있는 것은 될 수 있는 한 많이 알기를 원하신다. 인간은 신하로서 필요하고 합당한 그 탁월한 정신을 많이 부여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가 고문관이 되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대.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그가 창조된 날에 말씀하셨다. 그는 아담이 지나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창조의 비밀을 알아내려 한다든가, 자연의 모든 현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것이 그에게 합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즉 그가 그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행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이 세상을 만들 정도의 지혜는(틸로스톤 대주교는 말하고 있다) 완전히 그 원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주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것을 그의 지혜라고 알아야 한다. 그가 그것을 배우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지식이 그의 능력을 도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식의 나무를 금하셨을 때 생명의 나무는 허락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그 나무다(잠 3:8). 우리는 거룩한 계시에 의하지 않고서는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여호와는 지혜를 주신다"(잠 2:6). 이제 그 문제는 자연이나 섭리의 비밀 속에서 발견된다. 그는 인간에게 "하늘로 올라가 거기서 행복을 잡으라"든가, "밑으로 내려와 그것을 끌어내리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이 있다"(신 30:14). "사람아," 주께서 무엇이 위대한 것인가가 아니라,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너의 주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행하고자 하시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그가 네게 구하시는가를 네게 보이셨다"(미 6:8). "사람아 내가 너희를 부른다"(잠 8:4). 주여,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염려하시고 찾으시는지요! 이것을 보고 마음에 명심하라. 귀를 가진 자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손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를 경외함이 지혜이다."
1. 참된 믿음, 순수한 믿음, 이 더럽혀지지 않은 믿음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으로서 욥의 성품에 대한 하나님의 묘사와 일치하고 있다(1: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믿음의 근원이며 요약이다. 하나님을 잔인한 분으로 생각하는 데서 기인되는 하나님께 대한 비굴한 두려움이 있는데 이것은 믿음에 위배되는 것이다(마 25:24).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생각에서 일어나는 이기적인 두려움이 있는데, 이것은 믿음으로 향하는 좋은 단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행 9:5). 그러나 하나님을 위대하고 높게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효성스런 두려움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믿음의 생명이며 영혼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음 속에 있는 자는 끊임없이 "악을 떠나려고" 주의한다(잠 16:6). 이것이 믿음의 진수이다. 우리는 제일 먼저 악을 그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잘 행하는 것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악에서 떠나려고 싸우는 속에서도 얼마 만큼의 미덕은 있다."2. 믿음의 공로, 그것은 "지혜와 명철"이다. 참된 믿음을 갖는 것이 진실로 지혜롭게 되는 길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믿음의 법칙 속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의 지혜는 믿음의 실천과 관찰에서 나타난다. 그것이 명철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진리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지혜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들을 가장 훌륭히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경건한 믿음을 가지는 것보다도 더 확실히 우리의 길을 인도하고 우리의 목적을 이루게 해 주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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