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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악인의 외적인 번영(욥기 24:1-12)

욥의 친구들은 악인이 잠시동안 매우 흥할지라도 곧 멸망하게 되는 것을 보리라는 의견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욥은 결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 어찌하여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1절).

1. 욥은 모든 것이 전능자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지난 것도 그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전 3:15), 현재의 일도 그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고(마 10:29), 미래의 일도 그의 예지에서 어긋나지 않는다(행 15:18).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시므로 우리는 그가 그것을 인지하시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비록 그 세대를 악하게 만든 악인들이 서로 말하기를 그는 "땅을 버리셨도다"(시 94:6, 7)라고 할지라도, 악한 시대가 그에게서 감추일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의 때가 그의 손 안에, 그의 눈 아래 있으므로, 이 세상의 악인의 세대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도 그의 능력 안에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죽음을 예지하신다. 그러므로 만일 악인들이 그들의 사악함에 대한 처벌을 받기 전에 죽었다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이 몰래 그를 피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가 그 일을 예견하셨고, 그것을 명하셨기 때문이다. 욥은 악인이 흥하는 이유를 조사해 보려 하기 전에, 선지자로서의 하나님의 전지를 확언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의로우심과(렘 12:1), 그의 거룩함과(합 1:13),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선하심을(시 73:1) 단언했다. 일반적인 진리들은 때로 우리가 특별한 사건 속에서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견고하게 지지되어야 한다.

2.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아는 자들이(곧 그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비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지혜롭고 선한 백성들이) "그의 날" 즉 그들을 위해 심판해 줄 "날을 보지 못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그의 편에 서서, 그의 호소를 들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욥의 원망이었다(29:8). 그런데 공공연하고 대담하게 죄를 범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날을 여기에서 그의 날(시 37:13)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는 그날이 오리라고 믿지만 그것을 지금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래의 일이고 그 전조는 비밀이기 때문이다.

3. 비록 이것이 섭리의 신비이긴 하지만, 그것에 대한 이유는 있는 것이며, 우리는 왜 그 심판이 지연되는가를 곧 알게 될 것이다. 가장 지혜로운 자나,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들도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과 인내를 연단시키실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그의 나라가 임하는 것에 대한 기도를 하도록 격려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 밤낮 부르짖는다"(눅 18:7). 악인이 흥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욥은 두 종류의 의롭지 못한 자들을 열거해 놓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죄악 속에서 여전히 흥하는 것을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자들이다.

Ⅰ. 포학자들 그리고 법과 권세를 가장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 때때로 "해 아래서 재판하는 곳에 각이 있는 것을 보는"(전 3:16) 것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무시하며,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는 것"(전 4:1), 그리고 "공의를 박멸하는 것"(전 5:8) 등은 우울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1. 그들은 그들의 이웃의 귀중한 재산을 탈취한다. 그 재산은 그 이웃 사람들이 조상들로부터 물려 받은 것이다. 그들은 모르는 척하고 "지계표를 옮기며(2절),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이웃들의 권리를 침해한다. 그리고 지계표로서 그들이 정당한 주인임을 증거하는 것으로 삼아, 그들이 그릇된 방법으로 소유하게 된 것을 그 후손들에게 안전하게 물려 주려고 한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신 19:14) 저주로써(신 27:7) 금지된 일이었다. 오늘날 증서를 위조하거나 없애는 것은 이것과 동등한 범죄이다.

2. 그들은 공의를 핑계삼아 그들의 개인 소유를 탈취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은 부자와도 같이(삼하 12:4), 몰수한다는 구실 아래 "양떼를 빼앗아 기른다." 가난한 고아가 돈이 될 만한 것이라곤 단지 자기 소유의 나귀밖에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들은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그것을 빼앗는다. 그 주인은 그들과 다툴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살림 밑천이라고는 소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과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그것이 그 과부의 전재산이라 할지라도 적은 부채나 임대료가 조금 밀린 것을 이유로 삼아 그 소를 볼모 잡을 것이다.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와 과부의 재판관"이 되시는 것을 영예로운 직함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최대한의 힘을 기울여 그들을 보호해 주고, 도와주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친구로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자들은 분명히 그의 적으로 간주될 것이다.

3.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이웃들을 개인적으로 학대한다(4절). 만일 그들이 그 이웃들을 길에서 만났을 때 될 수 있는 한 그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불쌍한 자들은 그들을 피하는 것밖에는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백성들을 속이고, 그들을 조롱하며, 될 수 있는 한 그것을 해하기를 즐긴다. 특히 그들은 위로를 빼앗긴 불쌍한 백성들 위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그들을 부랑자들로서 처벌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그들이 도망가도록 만들며, 그들이 달아날 때 비웃기를 즐긴다.

이 야비한 행동들은(9, 10절) 학대자들이 율법을 구실로 삼아 행하는 것들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미 품에서 빼앗는다." 즉 그들은 아버지 없는 불쌍한 아기를 만든 후 그 어머니가 없도록 만든다. 아버지의 생명을 빼앗아간 후에 또 그들은 어머니의 가슴을 깨뜨려, 그 아이가 굶어 죽도록 버려둔다. 바로와 헤롯은 가슴에 있는 아기들을 끌어 내려 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 내렸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호 9:13).

무죄한 피를 빨아 먹기를 매우 즐기는 자들은 정말로 비인간적인 살인자이다. "그들은 가난한 자의 볼모를 잡는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볼모로 잡는다(라고 어떤 사람들은 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고아를 어미 품에서 빼앗는 것"은 느헤미야 5장 5절에서처럼 아마도 그들을 노예로 삼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는 것은 매우 사악한 일로서 보복하려는 원성이 매우 높게 된다. 그들의 자비를 구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들은 자비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이득을 취하기 위한 또 하나의 야비한 행동은 그 가난한 자들로부터 일용한 음식과 의복까지도 빼앗는 일이다 그들은 그처럼 그들을 강탈하여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게"(10절) 만들어, 결국 죽게 한다. 그리고 만일 불쌍하게 굶주린 자들이 곡식 한 단을 가져다가 겨우 끼니를 이으려 할 때, 그것으로도 허기를 못 메워 죽게 될는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마저도 빼앗아간다. 그리하여 그들 자신은 마음껏 배불리고, 그 가난한 자들이 궁핍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며 매우 기뻐한다.

4. 그들은 고용한 노동자들을 매우 학대한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를 충분히 받을 만큼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품삯을 주지 아니할(이 죄는 그들을 소리 지르고 울게 한다-약 5:4)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충분히 주려하지 않는다. "그들이 주리면서 곡식단을 멘다." 이것을, 곡식단을 멘 자들이 주린다고 풀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러한 풀이는 "그 사람의 담 안에서 기름을 짜며." 술틀 위에서 심한 노동을 하는 자들도 목말라 한다는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11절). 이것은 곡식을 더듬어 가는 소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보다, 더 가혹한 일이다. 그들의 하인들이나 일하는 자들이 그들의 노동으로 먹고 살아갈 수 있는지 없는지 상관하지 않고, 그들이 생계를 유지해 나갈 필요한 물건들을 주려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도 하늘에 주인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자들이다.

5. 우리는 가난한 시골 백성들 가운데에서 뿐만 아니라, 성읍 중에서도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을 볼 수 있다(12절). 인구 많은 성 중에서 사람들이 신음한다. 시골의 지주가 그 가난한 소작인들을 학대하는 것과 같이, 부유한 상인과 장사들도 그 가난한 채무자들에게 잔인하다. 성중에서의 이러한 잔인한 행위들은 어두운 시골 구석에서 보다 더 눈에 뜨이고, 억울함을 당한 자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좀 더 쉽게 재판대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법의 규제나 이웃의 정당한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압제자들이 있다. 따라서 압제당한 자들이 상처입은 자들처럼 신음하고 울부짖더라도, 그 압제자들은 그들의 신음 소리에 무자비하게 귀를 막아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어찌할 바를 모른다.

Ⅱ. 욥은 약탈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그를 약탈해 간 스바 사람들과 갈대아 사람들의 무리처럼, 노골적인 폭력으로써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욥은 그들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 그것은 그가 그 자신의 변론에 대해 편애를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을 판단하기를(우리가 그렇게 하기 쉬운 것처럼) 그들이 우리에게 대하는 것으로써 판단하려는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동방 자손들(욥의 나라)인 아라비아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 이웃 사람들을 기습하고 여행자들을 강탈하는 약탈과 강탈에 의해 살아가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여기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있으며 그들이 어떤 악행을 범했는가를 살펴 보자(5-8절).

1. 그들의 성품은 "거친 땅의 들나귀같이" 사납고 걷잡을 수 없으며, 무지한 이스라엘의 성품이었고(창 16:12), 매우 급하고 과격하여 법이나 다스림으로 제어할 수가 없었다(렘 2:23, 24). 그들은 거친 땅에 거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법의 지배받기를 싫어했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싫어했기 때문이었고, 또 더 많은 불의를 행할 기회를 얻고자 함이었다. 거친 땅은 이처럼 사나운 백성들이 거하기에 정말 알맞은 곳이다(9:6). 그러나 하나님의 눈와 손이 닿지 않은 광야는 없다.

2. 그들의 직업은 도둑질하며 주위 사람들의 것들을 모두 약탈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것을 그들의 일로 삼은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정직하게 버는 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열심히 그 일을 행했다. 사람들이 노동하는 것과 같이 "그들도 나와서" 그것을 위해 "수고한다"(시 104:23). 그들은 부지런히 그것을 위해 일한다. 그들은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한다." 만일 여행자가 일찍 지나간다면 그들은 재빨리 나와 그를 강탈할 것이다. 사람이 일함으로써 먹고 사는 것처럼, 그들은 그것으로써 살아간다. "그 광야가(땅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도로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내는구나." 그들은 길가에서 약탈함으로써 그들 자신과 그 가족들을 부양하며, 에브라임처럼(호 12:7, 8) 동정으로 인한, 또는 양심의 후회도 없이 그 속에서 스스로를 축복했고, 마치 그것이 정직하게 얻은 것인 양 매우 안심하고 있다.

3. 그들이 농촌에 끼치는 재앙을 살펴 보라. 그들은 여행자들을 약탈할 뿐 아니라, 그들의 이웃을 기습하여 밭에서 "남의 곡식을 벤다"(6절). 즉 그들은 다른 사람의 밭에 들어가 곡식을 베어서, 그것들이 그들의 것인 양 마음대로 날라 간다. 또한 그 "악인은 남겨둔 포도를 따는데" 그것은 사악한 행동이다 또는 여기에 적힌대로 그들은 악인의 남겨둔 포도를 땀으로써, 한 악인이 다른 악인을 괴롭히게 된다. 그 악인이 강탈하여 얻은 것을(이것은 일종의 도둑 행위이다) 이 도둑들은 훔침으로써 그것을 빼앗는다. 이처럼 흔히 약탈하는 자들은 약탈당한다(사 33:1).

4. 그들은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7, 8절). "그들은" 등에 걸칠 옷도 없이 모두 빼앗겨,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추운 밤을 지낸다." 그러므로 그들은 "산중 소나기에 젖으며, 가리울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으며, 그 험한 날씨를 피할 만한 바위틈이나 동굴을 발견하고는 매우 기뻐한다. 엘리바스는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 욥을 책망하면서 만일 욥이 먼저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섭리도 그로 하여금 이처럼 헐벗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지었다(22:6).

이에 대해 욥은 그가 부당하게 비난당했던 그러한 죄를 정말 범한 자들이 있으나, 그들의 극악함 속에서도 눈에 띄이지 않게 그들 스스로 저주를 받고 있는 곳에서도, 흥하고 성공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들려 주고 있다. 욥은 엘리바스처럼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옛날 몰래 저지른 죄악 때문이라고 추론하며 논쟁하는 것보다는, 공공연하게 대담한 악을 행하는 자들의 사악함에 의해 미래에 그리고 은밀하게 심판 받으리라는 추론으로써 자기처럼 논쟁하는 편이 더욱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포학자들과 약탈자들에 대한 형벌이 한 단어 속에 표현되어 있다(12절). "그러나 하나님이 그 불의를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즉 그는 즉시 이 죄를 심판하시어 그들을 처형하시지 않으며, 그들을 본보기로 징계하지도 않으신다. 그리하여 그들의 불의를 온 세상에 보이시는 것이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 17:11). 그러나 그가 흥할 동안에 그는 지혜로운 자로 간주되며,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루 찾으리라" 하고(눅 12:20) 말씀하실 때까지는 그의 불의를 보지 않으신다.

 

24:2 없음.

 

24:3 없음.

 

24:4 없음.

 

24:5 없음.

 

24:6 없음.

 

24:7 없음.

 

24:8 없음.

 

24:9 없음.

 

24:10 없음.

 

24:11 없음.

 

24:12 없음.

 

24:13

범죄자에 대한 현재의 처벌(1)(욥기 24:13-17)

이 구절은 또 다른 종류의 죄인, 즉 발각되지 않고 따라서 처벌받지도 않는 죄인들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광명을 배반한다"(13절).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상징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들은 자연의 빛, 하나님의 율법의 빛, 그리고 그들의 양심의 빛을 배반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체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배반하고 있으며, 그것에 의해 인도되거나 다스림을 받기 싫어하고, 또한 명령이나 제어받기를 싫어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고 있다. 그들은 낮을 싫어하며, 그들이 사악한 행위를 하기에 가장 유리한 때로 밤을 택한다. 그러므로 사악한 행위는 "어두움의 일"이라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며"(요 3:20), "광명의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그러한 자는 광명의 길을 피하거나, 혹 그가 발각될까 염려하여 그가 알려지리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거하지 않는다. 따라서 욥은 여기에 가장 악한 죄인들을 묘사해 놓고 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죄를 지으며, 자신의 양심을 거역함으로써 그들의 죄에 배반 행위를 첨가시킨다. 그들은 그들의 사악함을 감추기 위해 수많은 계략을 사용하여, 많은 계획과 음모를 꾸밈으로써, 신중하게 죄를 범한다. 그리고서 악을 행한 자는 하나님의 눈을 피하여 숨을 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다는 것(34:22)을 잊은 채, 만일 그들이 사람의 눈만 속일 수 있다면 안심해도 좋으리라는 어리석은 상상을 한다.

이 문단에서 욥은 광명을 피하려는 세 종류의 죄인들을 열거해 놓고 있다.

1. 그들은 살인자들이다(14절). 그들은 날이 새자마자 "새벽에 일어나," 약간의 돈이나 물건들을 가지고 시장으로 가기 위해 일찍 길을 떠나온 불쌍한 여행자들을 죽인다. 그들이 지니고 가는 것은 너무도 초라하여 그들은 실재 가난하고 궁핍한 자라고 불리울 정도였고, 그들은 그것으로 생계를 마련하기 위해 소중히 간직하며 시장으로 가지고 가지만, 살인자들은 자기의 생명을 내걸고 그 이웃의 생명을 빼앗으려 한다. 그리고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작은 시합을 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약탈물보다도 피를 더 원하여 살인을 위한 살인을 한다. 악인들이 그들의 악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어떠한 관심과 수고를 갖는가 보라. 그리고 이러한 광경에서 선을 행하기를 소홀히 하고 게을리 하는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자. 악당들은 사람을 죽여 재물을 취하기 위해 밤마다 일어났다. 너는 네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일어나지 않겠는가?

2. 그들은 간음하는 자들이다. "음심이 가득한 눈이"(벧후 2:4), 불결하고 음란한 눈이 "저물기를 바란다"(15절). 음녀의 눈도 역시 그러하다(잠 7:9). 음행하는 자들은 수치로 인해 그 머리를 감춘다. 가장 뻔뻔스러운 죄인들도 그들의 죄를 감추고자 한다. "순결하지 못하다면 조심성 있게," 그리고 수치스러운 모든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해도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럽고," 또 앞으로도 부끄러워할 것이다(엡 5:12). 그러한 자들은 "그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리라"는(잠 6:34, 35)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으로 또한 머리를 숨긴다. 육신의 정욕을 채우려는 자들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어떠한 수고를 하는가 보라. 그것은 결국 죽음을 초래하고,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죄인으로 하여금 그의 마음을 바꾸도록 하라. 그러면 그는 얼굴을 위장할 필요가 없으며, 가면을 쓰지 않고서도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3. 그들은 집을 뚫는 자들이다(16절). 그들은 "낮에는" 밤에 침입해 들어갈 집의 구조를 잘 알아둔다. 그리고서 밤에는 그 집으로 뚫고 들어가 사람을 죽이거나 도적질하거나 간음을 범한다. 밤은 공격하기에 유리하며, 방어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집 주인이 어느 때에 도적이 이를 줄 몰라서" 잠들기 때문이다(눅 12:39). 그러므로 그는 쉽게 공격을 당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법률은 흉악한 의도를 가지고 밤중에 어떤 사람의 집을 뚫고 들어온 강도는 중죄자로 취급하며, 성직자로부터 어떤 특혜를 받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욥은 그들이 발각될 것을 염려하여 끊임없는 공포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그리고 아마도 욥은 이러한 자들이 공개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이러한 공포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현재의 심판에 대한 일부분으로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아침을 흑암같이 여긴다"(17절). 낮의 광명이 정직한 자들에게는 반가운 것이 되나, 악인에게는 두려운 것이 된다. 그들은 해를 저주한다. 그것은 흑인들처럼 그들의 살갗을 태우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만일 누가 그들을 본다면," 그들의 양심이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고 그 양심이 그들 자신을 고소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흑암의 두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수치가 죄와 함께 들어왔고, 죄의 끝에는 영원한 수치가 뒤따른다. 죄인들의 비참함을 보라. 그들은 끊임없이 놀란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항상 그들을 감시하는 하나님의 눈은 두려워할 줄 모른다. 그들은 그들이 행한 것이 알려지는 것은 극히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을 행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24:14 없음.

 

24:15 없음.

 

24:16 없음.

 

24:17 없음.

 

24:18

범죄자에 대한 현재의 처벌(2)(욥기 24:18-25)

욥은 여기에서, 그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결론 짓는다.

Ⅰ. 욥은 이 잔인하고 냉혹한 자들의 사악함에 대한 예를 몇 가지 더 들고 있다.

1. 그들은 바다의 해적들이며, 약탈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물위에 빨리 흘러가고"(18절)라는 이 까다로운 표현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의 해석이 있다. 해적선의 선원들은 가장 빠른 배를 택한다. 이 빠른 배를 타고 그들은 이 해협에서 저 해협으로 순항하면서, 포획물을 낚는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엄청난 재물을 모으게 되나, "그 산업은 세상에서 저주를 받으며, 그들은 다시는 포도원 길로 행치 못할 것이다." 즉(패트릭 주교의 설명대로) 그들은 밭을 갈고 포도나무를 심으나, 별 수확을 거두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의 노동을 멸시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것이 광명을 두려워하는 죄인들의 행실을 더 묘사해 놓은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만일 그들이 들키게 되면 재빨리 도망친다. 그리고서 또 다시 들킬 것을 두려워하여 포도원에 숨지 않고,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저주 받은 곳, 한적한고 황량한 곳에 숨는다.

2. 그들은 고통에 빠진 자들을 학대하고 곤고한 자들에게 고통을 더한다. 불임은 큰 수치로 간주되었는데, 그들은 잉태치 못하는 고통에 빠진 자들을 책망함으로써, 한나를 괴롭혔던 브닌나처럼 고의로 그들을 괴롭히고, 한탄하도록 만드는 야비한 일을 행한다. 이것이 "잉태치 못하므로 해산치 못한 여인을," 또는 성문에서 원수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는 자식이 없는 자들 그리고 전통에 화살이 빈약한 자들을(시 127:5) "학대하는" 것이다(21절). 그들은 그들을 쳐서 이득을 취하고, 그들을 학대한다. 고아들과 마찬가지로 자식없는 자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무능력하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우리가 마땅히 도와야 할 과부를 해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도울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돕지 않는 것은 해하는 것이다.

3. 그들 스스로를 잔인하도록 연마시켜 마침내 엄청나게 사나운 자가 되어 그들이 "살 고 있는 땅에서 강한 자의 두려움"이 되는 자들도 있다(22절). "그는(역주 한글 성경에서는 그를 하나님으로 풀이했으나 영역에서는 잔인한 자로 풀이하고 있음) 그 능력으로 강한 자들을 함정으로 끌어들인다. 아무리 큰 자라도 그가 미쳐 날 뛸 때는 그와 힘을 겨룰 수가 없다. 그가 살기가 등등한 격한 감정에서 일어날 때는, 아무도 살기를 바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치기 때문이다"(창 16:12).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을 즐겁게 여길 사람이 있을까고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사람들이 있다.

Ⅱ. 욥은 이 대담한 죄인들이 흥하며, 잠시동안 평안케 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스마엘처럼 그들의 마지막 날까지 그들이 편히 살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이스마엘은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것과 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었지만, 우리가 창세기 16장 12절과 25장 18절에서 읽는 것과 같이 "그 모든 형제 앞에서" 편히 "살다 죽어간" 것이다. 이 죄인들에 대해 여기에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1. "하나님은 그들을 호위하신다"(23절). 그들은 거룩한 섭리에 의해 특별히 보호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이처럼 위험한 길을 달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위험을 피하여 생명을 보존하게 되는가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2. 그리하여 그들은 평안케 된다. 즉 그들은 그들의 모든 폭행을 정당화해 주리라 믿고 안심한다. "그들의 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곧 임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가 큰 죄를 범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들을 문책하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흥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안심한다.

3. "그들은 높아진다." 그들은 하늘의 총아처럼 보이며, 스스로를 이 땅위의 가장 훌륭한 인물로 간주한다. 그들은 영예 가운데 거하며(그들이 생각하듯이) 위험을 당하지도 않고, 교만해진 그들의 영혼은 높임을 받는다.

4. 드디어 그들은 매우 조용하고 온화하게 그리고 어떤 두드러진 수치나 공포의 흔적이 없이 이 세상을 떠난다. "그들은 햇볕에 녹은 눈이 마른 땅에서 곧 사라지듯이 편히 무덤 속으로 내려간다"라고 패트릭 주교는 설명하고 있다(19절). 그는 또 20절, "태가 그를 잊어 버리고"라는 말 이하의 내용도 이러한 요지로 풀이해 놓고 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곧 잊어버리지 않지마는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불쾌한 흔적을 찍어 놓지 않으신다. 의로운 손은 그를 나무에 목매달아 새의 밥이 되게 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무덤 속에 들어가 구더기의 달콤한 먹이가 된다. 거기에 그는 조용히 눕는다. 그리고 그와 그의 죄악이 부러진 나무 조각 만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신다."

그리고 24절에 있는 말씀 곧 "그들은 범인처럼 제함을 당하고"라는 구절은 이렇게 풀이되고 있다. "그들의 무덤은 다른 사람들의 것과 같이 닫혀진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네 손으로 베어낸 곡식 낱알처럼 편하게(어떤 사람들이 당하는 극심한 고통없이) 죽는다." 이것은 솔로몬이 관찰한 내용과 비교해 보라(전 8:10). "내가 본즉 악인은 장사지낸 바 되어 무덤에 들어갔고, 선을 행한 자는 거룩한 곳에서 떠나 성읍 사람의 잊어버린 바 되었도다."

Ⅲ. 그러나 욥은 그들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비록 그들이 편히 죽긴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그들의 파멸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하나님의 "눈은 그들의 길에 있구나"(23절). 비록 그가 침묵을 지키시어 그들을 묵인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들의 모든 사악함을 살피시고 기록하신다. 그리고 "아무 눈도 보지 못하시리라."고 그들이 생각했던(15절), 그들의 매우 은밀한 죄악을 그가 보시고는 밝히 곧 드러나게 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이 죄인들에 대한 심판이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그들의 죽음의 결과를 특별히 지켜 본다는 사실에서 그것이 암시되어 있다.

1. 무덤 속에서 몸이 썩는 것은 비록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일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의 결과로 간주되고 있다. "음부가 범죄자를 소멸하리라." 어두운 땅은 "광명보다 흑암을 사랑하는" 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들이 화려하게 치장하던 몸은 구더기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로써 얻은 것을 즐겁게 먹었던 것같이, 구더기도 그들의 살을 달게 먹을 것이다.

2. 비록 그들이 부귀와 권세와 위대한 업적으로 큰 명성을 얻었으리라고 생각했을지라도 "그들의 이름이 영영히 멸망당한다"(시 9:6). 그는 자기가 죽으면 영영히 기억 "되리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지만, 그는 "기억함을 다시 얻지 못하며, 그의 이름이 썩을 것이다"(잠 16:7). 그가 살아 있을 동안 그의 성품에 대해 온당한 평을 감히 말하지 못한 자들은 그가 죽었을 때에 그를 좋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잉태한 태, 곧 그의 어머니도 그를 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어머니는 그에 대한 언급을 회피할 것이며, "그것이" 그녀가 그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 대해 좋게 말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죄로 인해 얻은 영예는 곧 치욕으로 변할 것이다.

3. 그들이 그들 집안에 세우고자 했던 불의의 나무처럼 꺾일 것이다. 그들의 악한 모든 계획은 시들고, 그들의 악한 모든 꿈은 깨어져 그들과 함께 묻힐 것이다.

4. 그들의 교만함은 땅에 떨어져 흙 속에 묻힐 것이다(24절). 그리고 이 세상에서 그들은 제함을 당할 것이며, 그들의 모든 권력과 번영은 베임을 입을 것이다. 그들을 찾아 보라. 그들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욥은 악인들이 결국 비참하게 되리라는, 죽음 저편의 세상에서 비참하리라는 사실은 시인하고 있으나, 그들이 대부분 이 세상에서 비참한 생애를 보내리라는 그의 친구들의 주장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Ⅳ. 욥은 될 수 있으면 그가 말한 것을 반박하려 하는 그의 모든 친구들에게 대담하게 도전하면서, 그의 말을 끝내고 있다(25절). "가령 그것이 내가 단언한 대로 그렇지 않을지라도, 그리고 내가 부당하게 정죄당하고 책망당한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누구든지 나의 이야기가 거짓되다고 하며, 나를 거짓말쟁이로 간주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는 낯선 이야기이므로 아무 소용이 없다하여, 내 말이 하찮으며, 보잘 것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상 거짓된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진실이 없는 곳에 어찌 선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진실되고 온건한 말을 하는 자들은 그들이 말한 것이 시험당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여기에서의 욥과 같이 기꺼이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허락할 수 있다.

 

24:19 없음.

 

24:20 없음.

 

24:21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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