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발의 두 번째 연설(욥기 20:1-9)
Ⅰ. 소발은 매우 격정적으로 말을 꺼내고 있다. 그는 욥이 말한 것에 대해 크게 노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욥을 나쁜 인간으로 정죄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욥이 선한 자처럼 말한 것을 그는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이 들자마자 급하게 말을 꺼내고 있는 것 같다(2절). "그러므로 내 생각이 내게 대답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욥이 그들의 동정을 자극하기 위해, 또는 그 자신의 결백을 증거하기 위해 한 욥의 말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단지 욥이 말을 마치면서 그들을 책망한 것을 꼬집어 내어 그것을 비방거리로 삼았다. "그러므로" 그는 욥에게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욥은 그들에게 칼을 두려워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다. 가장 훌륭한 충고가 적대자들에게 잘못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므로, 보통 효과를 보기가 힘들다. 소발은 너무 급히 말을 꺼내는 것으로 보아 슬기로운 자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성급한 발언에 대해 두 가지 변명을 하고 있다.
1. 욥은 그들의 분노를 크게 자극했다(3절). "내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말을 들었으므로, 더 이상 그것을 참을 수 없다." 욥의 친구들은 기질이 너무 격해서 사람들을 침착하게 대할 수 없지 않았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즉 그들은 반박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오만했고, 그들 주위의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들게 말해주지 않을 때는 모욕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 책망을 참을 수가 없었고, 그것을 "부끄럽게 하는 책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도의상 그러한 책망을 준 욥에게 그것을 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2. 그의 중심이 그를 강하게 선동했다. 그의 생각이 그를 대답하도록 했던 것이다(2절). 왜냐하면 "생각이 가득 찼을 때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슬기로운 마음"이 그것을 선동했다고 말하고 있다(3절). 사실상 그것은 우리를 대담하게 만든다. 우리는 말하기 전에 올바로 일을 이해하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소발이 여기에서 그렇게 했는지 안 했는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은 감정의 지시를 이성(理性)의 지시로 종종 오해하고서, 화 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Ⅱ. 소발은 계속 악인의 멸망과 파멸을 매우 명확히 알려 주면서, 욥이 멸망하고 패망한 이유는 분명 그가 악인이고, 사곡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 소발의 이론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고 있다(4절).(1) 그는 여기에서 욥 자신의 지식과 확신에 호소하고 있다. "네가 알지 못하느냐? 이처럼 분명한 사실을 네가 모르느냐? 혹은 모든 인간들이 입을 모아 동의하는 이 사실을 네가 의심하느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들은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
(2) 그는 모든 세대 사람들의 경험에 호소했다. 그것은 인간이 땅 위에 세워졌을 때부터 알려진 일이었다. 즉, 인간이 만들어진 이래로 죄를 짓는 자는 멸망하리라는 사실이 그 마음 속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사악함의 실례를 보더라도(그것은 인간이 땅 위에 세워진 이래로 곧 발생했다), 거기에는 형벌이 따랐고, 아담과 가인은 곧 추방되었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죽음도 함께 들어 왔다. 악은 죄인을 쫓으며, 죄인은 "공의를 살지 못하게" 한다(행 28:4)는 것은 온 세상이 알고 있다. 더욱이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그는 조만간에 그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사 3:11).
2. 그것은 다음과 같은 주장이었다(5절).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는 겉으로 보기에 사악하고 불경한 자들 뿐만 아니라, 믿음을 고백하고 표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사악하게 행하는 사곡한 자들도 비참하게 되리라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그는 욥을 이러한 악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경건한 모습을 하였더라도, 그 안에 악의가 숨어 있다면 그것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것은 사실이다. 가장한 경건은 이중 범죄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따르는 멸망도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우리 구세주께서 시사한 것과 같이 지옥의 가장 뜨거운 불은 사곡한 자의 몫이다(마 24:51).
(2) 그는 악인이 잠시동안 창성할 수 있으며, 안전하고 편안할 수 있고, 또 매우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자들이 부귀와 권력 속에서 영화와 성공 속에서 기뻐하고 환호를 부르며, 그들이 괴롭히고 압제한, 가난하나 정직한 이웃들 위에서 즐거워하며 개가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악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욥의 친구들은 악인도 번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 인정하기 싫어했다(4:9). 그러나 욥은 그것을 명확하게 증명했고(9:24; 12:6), 이제 소발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 그러나 소발은 그들이 오래 번창하지 못하리라는 단서를 여기에 붙여 놓았다. 그들의 기쁨은 잠시 뿐이며, 그것은 끝없는 슬픔으로 곧 변할 것이다. 그가 비록 매우 위대했고, 부유했고 그리고 즐거웠을지라도 그 사곡한 자는 낮아지게 되고, 몰락하게 되어 비참하게 될 것이다.
3. 그것은 다음과 같이 예증되었다(6-9절).
(1) 그는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그가 크게 번창했다고 가정했다(6절). 그가 "그 높기"를 스스로 측정한 것은 그의 슬기와 덕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의 세속적인 재산 또는 광대함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하늘에 닿았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기백 또한 그 상황과 함께 충천해 있으므로, "그 머리가 구름에 미쳤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앞서 있었다. 세상이 그를 위해 최대한으로 해 주었던 것이다. 그는 그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멸시했고, 반면에 그들은 그를 존경과 부러움 또는 두려움을 가지고 우러러 보았다. 우리는 그가 군주 정치를 할 만한 여유가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이처럼 극히 번창하기 전에는 그 자신을 많은 사람들의 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지라도, 그는 마치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그 스스로가 그들이 화살을 쏘아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 따라서 그가 이처럼 높아졌던 만큼 그의 멸망도 매우 크며, 그의 몰락도 더욱 두려워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다. "그는 영원히 망할 것이라"(7절). 그의 교만과 방심은 재난을 초래하는 분명한 전조가 된다. 이것은 회개하지 않는 모든 죄인들에게 저 세상에서 분명히 내려질 것이다. 즉 그들은 영원히 망할 것이다. 그러나 소발은 그의 멸망을 이 세상 안에 국한시키고 있다. 그리고 실상 때로 악랄한 죄인들은 현재의 심판에 의해 현저히 죽임을 당한다. 그들은 소발이 득의만면한 죄인들에게까지 여기에서 위협한 말에 대해 두려워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1] 수치스러운 멸망. "그는 자기의 똥처럼," 또는 똥더미처럼 "망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모든 선한 자들은 그를 혐오하며, 세상은 그와 헤어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시 119:119; 사 66:24).
[2] 놀라운 멸망. 그는 졸지에 황폐케 될 것이다(시 73:19). 그러므로 방금까지도 그를 보았던 그 주위의 사람들은 "그가 어디 있느냐? 그처럼 위대한 인물이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 증발해 버릴 수가 있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3] 조속한 멸망(8절). "그는" 그 자신의 공포의 날개 위로 "지나가고," 그 주위에 있어 그를 제거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모든 사람들의 저주에 의해, "쫓겨갈 것이다."
[4] 완전한 멸망. 그것은 전체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는 "꿈 같이" 또는 단순한 환상, 곧 "밤에 보이던 환상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환상이든지 간에 아주 사라져 버리고, 조롱하는 웃음 밖에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남겨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종말이 될 것이다(9절). "그를 본 눈이." 그리고 그를 우러러보려고 했던 눈이,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그를 다시 보지 못하고, 유다처럼 제 곳으로 간(행 1:25) 그와 영원한 작별을 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악인의 비참함(1)(욥기 20:10-22)
이 세상 악인의 비참한 상태에 대한 실례가 여기에서 매우 충분히 그리고 유창한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똑같은 내용의 말을 다른 말로 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상세한 내용을 간추려 살펴보기로 하자.
Ⅰ. 악인은 무엇 때문에 처형되는가 보자.
1. 육신의 정욕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그것을 "청년같이 강장하다"(the sins of his youth, 11절)라고 일컫고 있다. 왜냐하면 정욕은 그 나이의 청년들에게 가장 큰 유혹이 되기 때문이다. 금지되어 있는 감각적 즐거움은 "달게 여겨 입에 물고 있게" 된다고 적혀 있다(12절). 즉 그는 육체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에 열중하고, 그것이 가장 큰 즐거움인 것처럼 그 속에서 무절제한 만족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가장 감미로운 것처럼, "혀 밑에 감추고서," 굴리는 만족감이다. "그는 그것을 계속 입에 물고 있다"(13절). 즉 그것을 가진 자는 그 이외의 것은 원치 않는다. 따라서 그는 아무런 맛이나 애착을 느껴보지 못한 영적인 거룩한 믿음의 기쁨을 위해 그것을 결코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그가 계속 그것을 입에 물고 있는다는 것은 그가 완고하게 그의 죄를 고집하며(그가 그것을 죽여 없애 버려야 할 때, "아껴서 버리지 아니하고" 그것에 단단히 집착되어 더욱 견고하게 지킨다),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기억해 냄으로써, 그의 죄를 다시 행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 악인은 "그 음행을 더하여 그 젊었을 때를 생각하는" 음란한 여인(겔 23:19)과도 같이 행한다. 또는 그가 그것을 그의 혀 속에 계속 감추어 둔다는 것은 그가 집념하고 있는 욕정을 열심히 감추어 두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사곡한 자이기 때문에 그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가 죄를 범하는 소굴을 감춘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자는 그 혀 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또한 알아차려, 그것을 곧 발견해낼 것이다.
2. 세상과 재물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가 행복을 정해 놓은 것은 세상적인 재물이었으므로, 그의 마음도 거기에 있었다. 다음을 살펴보자.(1) 그는 얼마나 그것에 탐욕을 두었는가 보라(5절). 굶주린 자가 고기를 삼키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그는 재물을 삼켰다." 그리고도 여전히 "달라, 더 달라"라고 외쳤다.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다(20절). 즉 그것은 그의 눈에 가장 좋은 선물로 보여졌고 따라서 전심으로 탐내던 것이었다.
(2) 그는 그것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가 보자. "그것은 수고하여 얻은 것이다"(18절). 그러나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직하고 부지런히 일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기 위해 "옳건 그르건"(per tas, per netas) 끈질기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얻은 것이다.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잠 23:4), 은혜를 베풀기 위해, 우리가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엡 4:28), "수고해야" 한다.
(3) 그는 그것에서 얼마나 커다란 것들을 기대했는가 보자. 그것은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으로 암시되어 있다(17절). 그는 스스로 이러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으나, 실망하게 되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즉 그는 관능적인 즐거움의 강을 기대했던 것이다.
3. 그의 가난한 이웃에 대한 폭력과 학대와 불의 때문이다(19절). 옛날에 위대한 자들도 이러한 죄를 범하여 그 백성과 족속들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렸었다. 이 악인에 대한 책망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그가 가난한 자를 버리고,"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으며, 어떠한 친절도 베풀지 않았고 또 양식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아마도 바리새인들처럼 명성을 얻기 위해, 일부러 자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행동으로 그들에게 봉사해야 할 때가 왔을 때, 그들은 그것을 팽개쳤고, 이전에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던 가난한 자들은 버렸다. 선행을 하는 자들이 선한 원칙에서 행하지 않을 때는 아무리 풍족한 것을 내더라도 진정으로 돕는 것이 아니다.
(2) 그가 그들을 "학대하고," 그들을 짓밟으며, 그들의 모든 이익을 빼앗아 그들에게 재난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이 부자가 되기 위해 그는 착취를 행하여 가난한 자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3)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것처럼, 그가 "그들의 집을 빼앗은" 때문이었다. 몰래 사기를 해서 빼앗았거나, 위조나 위증 또는 법률을 이용해서 개략을 쓴 것이 아니다. 공공연하게 폭력을 써서 그의 권리도 아닌 것들을 빼앗았다.
Ⅱ. 이러한 사악함으로 인해 그는 어떠한 벌을 받는가 보자.
1. 그는 기대했던 것에서 실망을 얻게 되고, 헛된 기대를 가졌던 세속적인 재물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17절). 그는 침을 삼키면서 기대했던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그것을 사랑하고 얻으려고 애쓰며 사모하는 자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것이 되리라는 공상을 한다. 부푼 기대를 즐거워했던 자들은 깊숙이 아래로 가라앉는다.2. 그는 병이 들어 몸이 상할 것이다. 사람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부유한들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병과 고통은 그들이 곤경에 처해 있는 때는 특히 그들의 모든 기쁨을 사라지게 한다. 악인은 즐거움의 극치까지 달하는 관능의 모든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그 기골이 청년같이 강장할" 때(11절), 즉 죄에 물들어 있을 때, 그는 어떠한 참된 행복을 즐길 수 있겠는가? 그가 젊었을 때 폭음과 폭식(暴食) 그리고 부정함과 방종으로 인해 후에 오랫동안 그에게 고통을 줄 병에 걸리고, 아마도 그의 생을 매우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이 말한 것과 같이(잠 5:11), 그의 몸과 육체가 쇠패(衰敗)하게 된다. 아마도 그는 젊었을 때 싸움을 하고는 그 상처를 치료하거나 잘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랜 후에 그의 뼈 속에 그것으로 인한 통증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편안함과 위안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얻을 수 없다. 그는 그의 고통과 병을 그와 함께 무덤 속으로 가지고 갈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그를 그곳으로 끌고 가며,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울 것이다." 무덤에서 그의 몸이 썩는 것은 바로 죄의 결과이다(24:19). 즉 그의 죄악이 그의 백골 위를 덮는 것이다(겔 32:27). 죄인들의 죄는 죽음 저편에까지 그를 따라간다.
3. 그는 마음의 평정을 잃고 고민에 싸일 것이다. "그는 마음에 족한 줄을 알지 못하리라"(20절), 그는 사람들이 그가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평안함을 그 자신의 마음 속에 가지지 못한 채, 끊임없이 마음의 동요를 느낄 것이다. 그릇된 방법으로 그가 삼켜 버린 재물은 그에게 병을 줄 것이고, 소화가 안 되는 고기처럼 그를 언짢게 할 것이다. 부당하게 착취한 것을 편히 즐기리라는 기대를 가지지 않도록 하자. 그 마음이 불안해 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 그의 양심이 뒤를 돌아보며, 그의 사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도록 그를 만들기 때문이다. 행할 때는 달콤하게 느껴지고, 맛있는 빵조각처럼 혀 밑에 굴리던 사악함도, 반성해 볼 때는 쓰게 느껴지고, 그것이 다시 되풀이 될 때는 그의 마음을 공포와 초조감으로 채운다. "그것이 창자 속에서 변하여"(14절), 요한의 책처럼 "그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그 배에서는 쓰게 된다"(계 10:10). 이러한 것이 죄이다. 그것은 그에게 "독사의 쓸개로" 변하여 지독히 쓰게 되고, "독사의 독"처럼(16절),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그가 그처럼 달콤하게 그리고 매우 즐겁게 빨던 것이 그에게 독사의 독이었음이 증명될 것이다. 비합법적으로 얻은 소득은 모두 이렇게 될 것이다. 아첨하는 혀가 독사의 혀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죄라고 여겨지는 모든 매력들은 양심이 깨어날 때는 매우 격렬한 분노로 변할 것이다.
(2) 장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22절). "풍족할 때에도," 곧 그가 가장 행복하며 그 행복이 계속되리라고 가장 확신할 때에도 "곤액이 이를 것이다." 즉 그는 마음의 불안과 초조감으로 인해 곤고하다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며,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서도 걱정하는 그 부자 같이 "내가 어찌할꼬"라고 외칠 것이다(눅 12:17).
4. 그는 그의 재산을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즉 그것은 감소되고 축소되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므로, "그것으로 즐거워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18절). 그는 진실로 즐거워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래 즐긴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1) 그가 부당하게 집어 삼킨 것을 억지로 토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15절). "그가 재물을 삼키고" 나서 그것이 그가 삼킨 고기처럼 확실하게 그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속았다. "그가 그것을 다시 토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자신의 양심은 그가 취한 것을 계속 가지고 있으려는 그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의 마음의 평정을 위해, 그는 그것을 도로 내놓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결한 기쁨으로 그것을 도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마지 못해서 고통스럽게 토해낼 것이다. 또는 만일 그가 폭력으로 빼앗은 것을 그 스스로 돌려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그의 섭리로써 억지로 돌려 주게 하실 것이며,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그릇된 수단으로 착취한 물건은 그 올바른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그 배에서 도로 나오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죄에 대한 사랑은 그의 마음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
그가 가난케 만든 가난한 자의 항의하는 소리가 매우 커서, 그는 억지로 그의 자녀들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달래며, 용서를 구할 것이다(10절). "그의 자녀들이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구하리라." 뿐만 아니라, 그는 수치스럽게도 그 자신의 손으로 그들의 재물을 그들에게 돌려 줄 것이다(18절). 그가 온갖 학대를 써서 "수고하여 얻은 것을 도로 주고," 그것을 삼켜 소화해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즉 그것은 그와 함께 있지 못한 채 "수치스럽게 도로 줄 것이다." 그가 부당하게 많은 것을 취했을 때는 많은 것을 돌려 주게 될 것이며, 각 사람에게 그것을 주었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삭개오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성별된 은혜에 의해 부당하게 취한 것을 돌려 주게 되는 것은 커다란 긍휼이다. 그는 자진해서 기꺼이 네 배를 돌려 주었으나, "가난한 자에게 주고서도" 많이 남았던 것이다(눅 19:8). 그러나 유다처럼 단지 절망 가운데 있는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억지로 돌려 줄 때는 어떠한 이익도 그리고 그에 따른 즐거움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은을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기" 때문이다.
(2) 그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구걸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약탈한 자는 그 스스로가 약탈당하게 된다(사 33:1). "모든 고통하는 자의 손이 그에게 닿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해한 결백한 사람은 손해를 입고서 다윗처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삼상 24:13)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를 용서할지라도, 그들이 그에게 보복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공의가 행해질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악인으로 하여금 의로운 자의 송사를 보복하도록 하여 악인은 다른 악인의 손에 의해 학대당하고 짓밟힐 것이다. 이처럼 그가 사방에서 뜯기울 때, "그 기뻐하는 것을 하나도 보존치 못하여"(20절), 그 전부를 보존치 못할 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그가 그처럼 매우 탐내고 그처럼 기뻐하며 먹을 것을) "남긴 것 없이 몰수히 먹힌다"(21절). 그의 모든 이웃과 친척들은 그가 이처럼 비참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가 죽었을 때 아무도 그의 재물을 가지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를 동전 한 푼 보다도 못한 자로 여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그를 위해 남겨둔 유산 관리지시서도 없애 버릴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 속에서 소발은 모든 것을 잃고 극심한 곤경에 처한 욥을 책망하고 있다.
악인의 비참함(2)(욥기 20:23-29)
소발은 학대하는 자들과 잔인한 자들의 사악한 행위에 일반적으로 따르는 궁핍함과 고통을 상세히 묘사한 후, 여기에서 그들이 마침내 완전히 멸망하게 됨을 보여 주고 있다.
Ⅰ. 그들의 멸망은 하나님의 진노와 복수로 인해 야기될 것이다(23절). 악인의 손, 곧 "모든 고통하는 자의 손이" 그에게 닿을 것이다(22절). 그의 손이 모든 사람들을 대적하였으므로, 이제 모든 사람들의 손이 그를 대적할 것이다. 그는 그들을 쥐어 짬으로써 좀더 그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보응하시는" 날에는(겔 22:14),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를 내리시고 그의 위에 비같이 쏟으실 때," 그의 마음이 견디지 못하고 그 손에 힘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말들은 협박이다. 그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 일 뿐만 아니라, 그에게 향한 깊은 그의 진노이다. 그것도 극도로 달구어진 "맹렬한 진노"이다. 그것은 강하고 맹렬하게 그에게 쏟아진다. 그것은 비처럼 그에게 퍼부어진다. 그것은 소돔 위에 내린 유황과 불처럼 그의 머리에 떨어지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시편 기자도 또한 언급하고 있다(시 11:6). "악인에게 하나님이 불과 유황을 비같이 쏟으시리라."
이것을 막아 줄 울타리는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리스도는 광풍과 폭우를 가려 줄 유일한 은신처이시다(사 32:2). 이 진노는 "그가 배를 불리려할 때" 그가 취한 것을 막 삼키어, 그 포만감을 즐기려 할 바로 그 때에, 그 위에 쏟아질 것이다. 그러면 이 광풍이 먹으려 하고 있는 그를 아무런 위험도 깨닫지 못한 채 편하게 느끼며 방심하고 있는 그를 놀라게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옛날 노아 시대와 소돔의 멸망은 그들이 깊은 방심과 극심한 환락 속에 빠져 있을 때 임하였다. 그리스도도 이와 같은 사건을 누가복음 17장 26절 이하에서 언급하고 있다. 소발은 아마 여기에서 욥의 자녀들이 먹고 마시다가 죽음을 당하게 된 사실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Ⅱ. 그들의 멸망은 불가피하므로 그들은 그것을 피할 도리가 없게 될 것이다(24절). "그가 철병기를 피하리라." 도망은 범죄함을 입증해 준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스스로를 낮추려 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와 화해할 방법을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의 모든 관심은 그를 추적하고 있는 복수를 피하려는 것이지만 그것은 헛된 일이다. 그가 칼을 피할지라도, "놋활이 쏘아 꿸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병기를 가지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는 "칼을 갈으시고 그 활을 당기신다"(시 7:12, 13). 그는 "가까이에서 또는 먼 곳에서" 그의 적들을 다루실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힘을 가지고 하나님과 싸우려는 자들을 칠 수 있는 칼을 가지고 계시며, 꾀를 내어 그를 피하려 하는 자들을 쏠 활을 가지고 계시다(사 24:17, 18; 렘 48:43, 44 참조). 멸망받도록 정해진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어도 또 다른 심판이 그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Ⅲ. 그것은 무서운 전멸이 될 것이다. 그에게 겨냥된 활은 그의 "몸에서 그 살을 빼어내고"(하나님이 쏘으신 것은 틀림 없이 그 과녁을 맞추실 것이며 급소를 찌르실 것이다), "번쩍 번쩍하는 촉이"(단어 그대로 "번개불"처럼 빛나는), 하늘에서 닦여진 불꽃튀기는 칼날이(사 34:5), "그 쓸개에서 나오리라." 얼마나 "큰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는가!" 그 격동은 얼마나 강하며, 그 죽어가는 고통은 얼마나 극심한가! 악인의 죽음은 얼마나 끔찍스러운가!
Ⅳ. 때로는 그도 모르는 사이에 멸망이 닥친다(26절).
1. 캄캄한 것이 몰래 그를 둘러싼다. 그것은 "모든 캄캄함," 즉 한 줄기의 빛도 없는 완전한 어둠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보물을 위하여 쌓인다." 그곳으로 그는 몸을 숨기었고, 또 그것은 그가 스스로를 숨기고자 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는 결코 그의 양심을 들여다 보지 않으나, 그는 스스로가 어두움 속에 있는 것을 깨닫고는 완전히 당황하게 된다.2. 그를 사르는 불은 "사람이 피우지 않은 불"로서, 소리없이 불이 붙으며, 모든 사람들의 눈으로 그것이 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불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지 못한다. 조롱박이 현저하게 시들어 갈 때, 그것을 시들게 하는 그 뿌리의 벌레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부드럽고 조용한 불에 의해 타들어 가는 것은 확실하나, 그것은 매우 천천히 탄다. 연료가 매우 잘 타는 것일 때는 바람이 필요하지 않다. 그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 그는 익어서 사그러진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다"(말 4:1). "막을 수 없는 불이"(어떤 사람들의 견해대로) "그를 멸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틀림없는 지옥의 불이다.
Ⅴ. 그것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에게도 미치는 멸망이다. "그것은 그 장막에 남은 것을 사르리라." 그 저주가 그에게 임하여 그는 아마도 중한 병에 의해 죽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집안에까지도 그 진노가 미쳐 그의 상속자와 기업이 멸망할 것이다(28절).
1. 그의 후손이 끊어질 것이다. "그 가산이 패하고," 그의 자손들은 뜻하지 않게도 죽게 되거나, 그 나라에서 쫓겨 나게 될 것이다. 번성하고 흥하던 집안도 만일 그들이 악하게 되고 타락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곧 줄어들고 흩어지며 근절될 것이다.2. 그의 재산도 없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날에 그 가산이" 그의 집으로 흘러 들어왔을 때처럼 빨리 "흘러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거짓 속임수와 학대함으로 인해 재물을 쌓는 동안, 그는 진노를 또한 쌓고 있었기 때문이다.
Ⅵ. 그를 멸망시킨 것은 분명 당연하고 의로운 일로 드러날 것이며, 그에게 멸망이 임한 것은 그 자신의 사악함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27절). 즉, 악인이 몰래 행하는 것을 모두 보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모든 세상으로 하여금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를 알려 주어, 그들이 그에게 내린 하나님의 의를 시인하게 만드신다. 또한 "땅이 일어나," 그의 사악함을 폭로하고 그것을 보복함으로써 "그를 칠 것이다."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낸다"(사 26:21). "땅이 일어나"(소화 안 되는 음식을 먹을 때 복통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를 치고," 더 이상 그를 가만히 놔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그의 죄악을 드러내며" 그를 받아들이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갈 곳은 지옥 이외에 또 어디 있겠는가? 천지의 하나님이 그의 적이 되신다면, 하늘과 땅은 그에게 어떠한 친절도 베풀지 않고, 그 모든 무리들이 지금도 그와 싸우고 또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Ⅶ. 소발은 마치 웅변가처럼 결론짓고 있다(29절).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니라." 그것은 그의 몫으로 예정되었고, 허용되었다. 그는 어린 아이가 그의 몫을 받듯이, 그것을 마침내 받을 것이며, 영원히 지닐 것이다. 그는 그것을 묵묵히 따라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산업이니라." 그것은 그의 심판의 확고한 법칙으로서 훌륭한 경고가 그 안에 들어 있다.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겔 33:8).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이 여기에 제시되어 있는 것과 같은 현세의 심판을 언제나 받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이 점에서 소발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에게 반드시 내려진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인 심판에 의해 비참하게 된다. 이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것으로서, 한편에서는 그의 양심이 그들을 위협하여, 그들은 끊임없이 놀라게 되거나,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양심이 무뎌지고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사악한 욕정 속에 빠져 결국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된다. 소발의 이야기보다도 훌륭히 제시된 이론 또는 그릇 적용된 이론은 없다. 소발은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욥을 사곡한 자로 몰려고 한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설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잘 적용시켜서 우리 스스로 두려움을 가지고 죄를 범하지 않게 하는 경고로 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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