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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빌닷의 연설(1)(욥기 8:1-7)

Ⅰ. 빌닷은 욥이 말한 것을(2절) 책망하면서 그의 감정을 저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빌닷의 태도는(매우 흔한 일로서) 퍽 흥분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욥이 선한 말을 매우 많이 했고, 또 목적에 매우 적합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편이 옳다고 주장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빌닷은 매우 노한 논쟁자처럼 그것에 대해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느냐"고 말하면서, 엘리바스가 그를 침묵시키기에 충분한 말을 했으므로 욥의 말은 모두 무례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책망은(카라일의 견해대로) 그릇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이 올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들은 마치 악을 행한 사람들처럼 엄하게 책망당한다. 빌닷은 욥의 말을 "광풍"에 비교하고 있다. 욥은 그의 말이 단지 "바람"과 같으므로(6:26), 그들이 그 말을 가지고 이처럼 소란을 피울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 자신을 변명하고 있다.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소란스럽고 위협을 주며, 시끄럽고 위험스런 광풍과도 같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빌닷은 말했다).

Ⅱ. 빌닷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속에서 하나님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이 내용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왜냐하면 욥은 빌닷이 추측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는 적어도 여기에서처럼 욥의 자녀들은 비난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빌닷은 그 형제를 정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지지할 수 없었을까?

1. 그의 의견은 일반적으로 옳았다. 즉, "하나님이 심판을 굽게 하시지 않으며," 또한 공의의 고정된 법칙을 그 어느 것도 어긋나게 하지 않으신다(3절)는 것은 옳았다. 하나님은 그러한 일과는 거리가 멀고 우리도 하나님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결코 무죄한 자를 학대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죄의 값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시지 않으신다. 그는 하나님이시며, 심판자이시다. 세상을 심관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냐?(창 18:25) 만일 하나님께 불의함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롬 3:5, 6) 그는 "전능하시고 모든 것이 충만하시다." 사람들은 때로 다른 사람들의 권력을 두려워하고(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그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공의를 굽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충만하시므로, 어떤 것의 호의로 인해 이득을 얻을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흔히 불의한 것은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력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불의하실 수 없는 것은 그의 전능하심 때문이다.

2. 그러나 빌닷은 적용되는 면에 있어서 정당하지 못했고, 솔직하지 못했다. 그는 욥의 자녀들,(그들의 죽음은 욥을 매우 괴롭게 한 것 중에 하나였는데) 그들은 유명한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들이 죽게된 불행한 사태는 그들의 동방의 모든 자녀들 가운데 뛰어난 죄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4절).

욥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굽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인정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자녀들이 어떤 큰 범죄로 인해 버림을 당하거나 죽게 되었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했다는 것은 사실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 속에서 그의 의로우심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한 고통은 언제나 특별한 죄에 따르는 심판은 아니며, 때로 그것은 특별한 은혜를 시험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경우를 판단할 때(그 반대의 경우가 나타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신 대로(눅 13:2-4) 좀더 호의적인 면을 택해야 한다. 여기에서 빌닷은 그 점을 빠뜨려 놓고 있다.

Ⅲ. 빌닷은 만일 욥이 자기의 말대로 정직했다면, 그의 현재의 고통에 대한 좋은 결말을 앞으로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욥에게 전하였다.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그들은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해 죽었다), 만일 네 자신이 청결하고 정직했고 또 그 증거로서 네가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그에게 복종한다면 모든 것은 잘되어 갈 것이다"(5-7절). 이것은 다음 두 가지 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1. 욥의 환난이 크다는 사실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계속되는 사실로써 욥이 사곡하고 악한 자임을 증명하는 것임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네가 황폐케 되고 너의 자녀들이 죽음을 당했을 때, 만일 네가 청결하고 정직했다면, 그리고 그 시련 속에서 네 자신이 그렇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면, 하나님은 벌써 네게 긍휼을 다시 베푸셨을 것이며, 네가 환난 당한 때를 따라 너를 위로해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네 주장대로 네가 청결하고 정직한 자가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네가 예전의 환난 가운데에서 스스로 잘 처신하였다면 또 다른 환난을 당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빌닷은 옳지 않았다. 선한 사람도 연단을 위해 매우 극심할 뿐만 아니라, 매우 오랫동안의 고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영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순간과 관련시켜서 보았다. 그러나 빌닷이 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와 함께 이 문제에 끼어들기를 좋아하셨고 빌닷 자신의 이론에 의해 욥이 정직한 자임을 증명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곧 욥의 초년보다도 더욱 풍성하게 그의 말년을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다.

2. 욥을 격려하고 권면하여 그가 이처럼 절망에 빠지지 않고, 지나간 모든 것을 단념하도록 만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만일 그가 올바른 태도를 취한다면 아직도 희망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빌닷이 여기에서 죄를 정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를 권면하고 위로하려는 것이라고 간주되기를 바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1) 빌닷은 욥에게 훌륭한 충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엘리바스와 마찬가지로(5:8) 욥이 돌아와 회개하는 일에 게으르고 어리석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부지런히"(즉, 신속하고 신실하게) "구하라"는 충고를 욥이 받아들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욥에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겸손과 믿음으로 "전능하신 이에게 빌라"고 충고하였다. 그리고 그의 마음 속에 신실함(그것은 아직까지 욥에게 부족하다고 빌닷이 생각한 것인데)이 있는가 살펴보고("너는 청결하고 정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집에 의로움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충고하였다. "그것은 의로운 집이어야 하며 그릇된 방법으로 획득한 재물로써 가득 차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너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시 66:18). 정직한 자의 기도만이 여호와께서 받아 주시며 기뻐하신다(잠 15:8).

(2) 그는 욥이 아직도 좋은 날들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밝은 전망을 그에게 들려 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욥이 그 날들을 볼 권한이 있는지를 몰래 의심하고 있었다. 그는 만일 욥이 일찍 하나님을 구하였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위로를 주셨을 것이며, 비록 지금 하나님이 그를 잊으시고 버리신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를 기억하시고 돌아오실 것이라는, 다시 말해서 만일 그의 집이 의로우면 그것이 형통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왜냐하면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고, 내적인 경전은 외적인 형통을 가져다 주는 확실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무를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돌아올 때,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로 돌아오셔서 긍휼을 베푸시리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욥이 이 세상을 다시 시작해 나갈 수 있도록 그에게 남겨져 있는 것은 거의 없으므로 그가 이전처럼 형통하리라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욥이 반박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이다. "비록 너의 초년이, 그릇에는 조금밖에 음식이 없고, 기름이 병에 조금 담겨 있을 정도로 궁핍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그것이 크게 해 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은혜와 위로로써 그의 백성들의 영혼을 풍요케 하는 방법이다. 즉 그것은 "한꺼번에"(Per saltum) 오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씩"(Per gradum) 오는 것이다. 시작은 초라하나 그 과정은 완전으로 행한다. 여명의 빛이 정오를 가져오며,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보잘 것 없는 날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큰 날에 대한 소망을 지니도록 하자.

 

8:2 없음.

 

8:3 없음.

 

8:4 없음.

 

8:5 없음.

 

8:6 없음.

 

8:7 없음.

 

8:8

빌닷의 연설(2)(욥기 8:8-19)

빌닷은 여기에서 사곡한 자와 악을 행한 자들의 슬픈 재앙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소망과 기쁨이 비극적으로 끝나버리는 것에 대해 매우 훌륭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엘리바스처럼 의로운 자가 이처럼 끊어짐이 없다고(4:7) 말할 정도로 대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의 방법으로, 경건하고 형통한 것처럼 보였던 악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게 하고, 파멸을 당하게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며, 그들의 형통함을 짧게 함으로써 그들의 경건함이 허위였음을 밝히는 것 역시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멸망하는 모든 자들은 사곡한 자였음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분명히 증명하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대해 말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그것을 의심하고 있으며 그 이론을 쉽게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Ⅰ. 빌닷은 옛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모든 지혜롭고 선한 자들의 일치되는 생각과 관찰력에 호소함으로써, 사곡한 자들의 모든 소망과 기쁨이 분명히 끊어지는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저 세상에서 다시 말해서 이 인생에서가 아닌 장차 올 세상에서 사곡한 자들이 그들의 모든 신앙과 모든 승리를 박탈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로서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을 틀림없는 사실이다. 빌닷이 이러한 의미에서 말한 것인지 안한 것이든지 간에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가 증명한 방법을 관찰해보자(8-10절).

1. 그는 그 자신의 판단과 그의 동료들의 판단을 고집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다"(9절). 그는 욥이 그들의 능력에 관해 모르고 있으며, 그들이 거의 아무 것도 모르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빌닷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네가 그것을 정죄하였으나 우리의 무지함을 자백할 용의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던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짧고 순간적이어서 그림자와 같이 빨리 사라지기 때문이다."

(1) "그러므로 우리는 옛날 시대처럼 거룩한 계시의 근원에 가까이 갈 수가 없다"(거룩한 계시는 잘은 모르지만, 그 당시에 말로 전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말한 것을 조사해 보고 그들의 생각에 대해 들어온 것을 다시 음미해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글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옛 시대 사람에게 묻거나,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 필요가 없이, 직접 그 말씀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지어다. 비록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롬 10:8).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예언의 말씀"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율을 연구하고 지킨다면 우리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할" 것이다(시 119:99, 100).

(2) "우리는 옛세대의 사람들처럼 거룩한 섭리의 방법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처럼 이 자연의 법칙에 있어서 유능한 판단자가 될 수 없다." 우리 생명의 짧음은 우리 지식의 진보를 방해하고 있으며, 우리 몸의 연약함과 결점도 역시 그러하다. vita brevis, ars longa-즉 인생은 짧고 예술의 진보는 무한하다.

2. 빌닷은 옛날 사람들의 증언과 욥이 그들의 생각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너는 옛 사람들에게 물으며 그들의 의견을 들으라. 그리하여 이 문제를 네 자신이 판단해볼 뿐만 아니라, 열조의 판단도 또한 참조하라(8절). 그들이 네게 가르쳐, 그들의 시대에도 항상 하나님의 심판이 악인에게 따랐다는 것을 네게 알려 줄 것이다(10절). 그들은 그 마음에서 나는 이러한 말을 발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 스스로 확고히 믿는 것과 그들이 크게 감동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감동을 주려고 하는 사실들을 말할 것이다."

(1) 거룩한 섭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어려운 점을 밝히기 위해 우리 세대의 사건들을 이전 세대의 관찰이나 경험과 비교해 보면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다 역사, 특히 가장 오래되고 절대적인 진리로서 우리로 하여금 배우도록 하기 위해 기록된 그 거룩한 역사를 참고하는 것은 더욱 유익한 일이다.

(2) 옛 세대로부터 지식을 얻으려는 자들은 부지런히 탐구하고 "터득한 일을 배우며" 탐구하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가르치는 자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은 배우는 자들의 마음에 도달할 것이다.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 발하는 자들," 기계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적이고 거룩한 일들에 대한 경험에서 나오는 말을 하는 자들이 "네게 가장 잘 가르칠 것이다." 학식이 풍부한 패트릭(Patrick) 주교는 빌닷이 그두라에게서 난 아브라함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인 수아의 혈통을 타고 난 수아 사람이기 때문에(창 25:2), 그가 여기에서 역사를 언급해 놓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충성스런 아브라함(그는 이제껏 그리고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믿음을 계속 지녔다)의 자손들을 안전케 하였고, 욥의 이웃인 동방 사람들을(그들은 욥의 나라에 있는 곳에 정착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악함 때문에 멸절당하게 한 그 보응에 대해 그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시사했다. 여기에서 빌닷은 의인이 형통하며, 악인은 잠시 번영하더라도 결국 근절되어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일반적인 방법이라는 이론을 끌어내고 있다.

Ⅱ. 빌닷은 비유를 들어 이 사실을 예증하고 있다.

1. 사곡한 자의 소망과 기쁨은 여기에서 왕골이나 갈대로 비유되고 있다(11-13절).

(1) 그것은 진펄과 물 가운데에서 자라난다. 사곡한 자는 악하고 썩은 발판이 없이는 그의 소망을 얻을 수 없으며,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그밖의 것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더욱이 왕골은 진펄없이 자랄 수 없는 것과 같이, 그것은 자기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터전 없이는 소망을 얻을 수 없다. 그는 그의 세상적인 형통함과 그럴듯한 신앙 고백과 그의 이웃에 대한 선한 생각,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한 자부심에다 그의 터전을 두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그가 확신을 세울만큼 견고한 터전은 아니다. 그것은 모두 진펄과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자라나는 소망은 왕골과 갈대에 불과하다.

(2) 그것은 잠시동안 푸르고 생생하게 보일지도 모른다(왕골은 다른 풀보다 빨리 자란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시들고 하찮게 되어 아무런 쓸모가 없어져 버린다. 그것은 보기에는 푸르르나 아무 소용이 없다.

(3) 그것은 "다른 풀보다 일찍이" 시들어 버린다(12절). "아직 벨 때 되기 전에" 그것은 말라 버리고, 곧 죽어버린다. 사특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은 전성기에 이르자 마자 시들어 버린다. 심지어 그것이 푸르를 때에도 그것은 쇠해간다. 풀은 "벤바 되어 마른다"(시 90:6). 그러나 왕골은 "베이지 않으나, 자라기 전에 마른다"(시 129:6). 그것은 소용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되지도 못한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다"(13절).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 그것은 그들이 왕골과 같은 길을 밟기 때문이다.

[1] 하나님에 대한 망각은 인간의 사곡함의 근저에 깔려있고, 또 그들의 사곡함 속에서 그들 스스로에게 속살거리고 기만하는 그 허탄한 소망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이 만일 그들과 관련을 재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그 속에 있는 진실을 살피신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또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의 영들을 보살피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사곡한 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사곡한 자들이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면 공연한 소망은 가지지 않았을 것이며, 찢김을 당하고 절뚝발이가 되는 조롱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2] 사곡한 자들의 소망은 그들 자신을 크게 속인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잠시동안 흥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침내 분명히 소멸될 것이고, 그것과 함께 그들도 파멸할 것이다.

2. 그것들은 여기에서 "거미줄" 또는(난외에 있는 것과 같이) "거미집"에 비유되어 있다(14, 15절).

(1) 사곡한 자의 소망은 그 자신의 내장 속에서 만들어진다. 즉 그것은 그 자신의 공상에서 나온 조작물이며 자기 자신의 자만과 능력에 대한 망상에서 나온다. 꿀벌이 하는 일과 거미가 하는 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근면한 그리스도인은 부지런한 꿀벌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이슬로부터 그의 모든 위로를 얻는다. 그러나 사곡한 자는 교활한 거미처럼, 하나님을 마치 그 자신과 동류인 것으로 여기는 그릇된 가설로부터 자기의 위로를 짜아낸다.

(2) 그는 거미가 거미줄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 즉 그것으로써 그 스스로를 즐기고 그것으로 그의 몸을 감싼다. 그리고 그것을 그의 집이라 부르면서 "그 집을 의지하고 굳게 잡는다." 거미는 "손에 잡힐만 하여도 왕궁에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잠 30:28). 이처럼 그의 충족하고 확고한 외적인 형통 속에서 세상적인 정욕들이 그를 포옹한다. 그는 그 집이 그의 왕궁인 것처럼 교만을 떨며, 그의 성곽인 것처럼 그 속에서 방어하고, 거미가 거미줄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그가 먹이로 삼고자 노리는 자들을 유혹하는 데에 그것을 사용한다. 형식적인 고백 또한 그러하다. 즉 그는 그 자신의 눈을 스스로 속이고, 그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고, 하늘에 대해 확신하며, 그의 헛된 신념으로 이 세상을 속인다.

(3) 하나님이 그의 집을 쓸어 버리실 때가 올 때, 그것은 거미의 분비물로 만들어진 거미줄처럼 쉽게 그리고 틀림 없이 쓸어버림을 당할 것이다. 세상적인 형통을 누리는 자들은 그들이 그 속에서 안전과 행복을 얻으리라고 기대할 때, 실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재산을 굳게 잡으려고 노력하나, 하나님은 그들의 손에서 그것을 빼앗으신다. 그러면 그들이 모은 이 모든 것들은 누구의 소유가 되겠는가? 또 그것들이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곡한 자의 확신은 무너질 것이다. "내가 너희를 모른다고 말하리라." 모래 위에 세운 집은 폭풍우가 몰아칠 때, 다시 말해서 집이 매우 필요하게 되고 그 자신에게 그 도움을 보리라고 기대했던 때에 넘어질 것이다. "사악한 자가 죽을 때 그의 소망은 끊어진다." 그가 소망을 둔 근거는 거짓된 것임이 증명될 것이다. 그가 바라던 것은 그를 실망시킬 것이며, 그 스스로를 들뜨게 했던 그의 어리석은 소망은 끝없는 절망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그의 소망은 끊어지고, 그가 은신처로 삼았던 그의 거미집은 쓸어버림을 당하며, 그는 그 속에서 짓이겨질 것이다.

3. 사곡한 자는 여기에서 무성하고 튼튼히 뿌리박은 나무에 비교되어 있다. 비록 그것 자체는 시들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쉽사리 잘리울 것이고, 그 자리는 더 이상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안전한 상태에서 형통하는 죄인은 그 자신이 왕골과 갈대에 배교되는 것이 그릇된 비유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가 보다 튼튼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빌닷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의 착상을 허용할 것이며, 그가 원하는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 그러나 그는 곧 잘리울 것이다." 사곡한 자가 느브갓네살의 꿈속에서와 같이(단 4:10) 여기에서 큰 나무로 표현되어 있다.

(1) 이 나무가 푸르르고 무성한 것을 보라(16절). 그것은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햇볕에 마르지 않고 항상 그 푸르름을 지키는 "본토에 선 푸른 나무"와 같다(시 37:35). 그리고 그것은 동산 울타리에 의해 보호되고 그 토양의 양분을 마음껏 흡수하며 그 가지가 뻗어간다. 그것이 견고한 자세로 서 있고 "그 뿌리가" 깊게 박히며, "돌 가운데로 들어 갔으므로" 폭풍우에도 결코 뽑힐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보라(17절). 그것은 왕골처럼 진펄과 물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땅에서 자라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악인이 이 세상에서 형통할 때에는 그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재물은 "그 자신의 망상 속에 있는 높은 벽"이 되고 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가 "그 곳에서 뽑히어"(18절),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을 보라. 그것은 완전히 근절되기 때문에 그것이 자라난 흔적이나 표적이 그곳에 남아있지 않게 된다. 바로 그 장소도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옆에 서있던 것들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시 37:36). 그는 한때 거드름을 피우고 큰 소란을 피웠으나 곧 사라져 버려,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않는다"(말 4:1). "그 길의 희락은 이와 같다"(19절). 이것이 그 결국이며, 그의 모든 희락은 이렇게 끝난다.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그의 소망의 결과는 기쁨으로 나타나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 결과이며 그 희락이다.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 농작물이 없어지리라"(사 17:11). 이것이 그 최선의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 최악의 상태는 어떠한 것이겠는가? 그는 그가 가진 것을 그의 가족들이 즐길 수 있도록 남겨둘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그 후에 다른 것이" 즉 그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자가, 그의 뿌리에서가 아니라 "흙에서 나와," 그의 장소를 채울 것이며, 그가 수고하여 얻은 것을 다스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즉, 같은 기질과 성품을 지닌 다른 자들이) 그의 처소에서 자라고, 그의 몰락을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고서, 그와 마찬가지로 방심한 상태를 누릴 것이다. 속인들의 방법은 어리석으나 같은 부류에 속하는 자들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한다"(시 49:13).

 

8:9 없음.

 

8:10 없음.

 

8:11 없음.

 

8:12 없음.

 

8:13 없음.

 

8:14 없음.

 

8:15 없음.

 

8:16 없음.

 

8:17 없음.

 

8:18 없음.

 

8:19 없음.

 

8:20

빌닷의 연설(3)(욥기 8:20-22)

빌닷은 여기에서 그의 연설을 끝내면서, 그가 말해야 할 것을 몇 마디 말로 요약하고 있다. 그는 욥에게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제시하면서, 그가 예전처럼 잘 되리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1. 한편, 만일 그가 온전하고 정직한 자였다면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20절). 비록 지금 그가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다시 그에게 돌아오시사 점차로 "그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실 것이며(시 30:11), 그에게 위로가 흘러넘쳐 그의 "입이 웃음으로 채워질" 것이다(21절). 행복한 변화는 이처럼 매우 감격스럽다(시 126:2). 그를 사랑한 자들은 그와 더불어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그를 미워하고 그의 실패를 기뻐한 자들은 그들이 그가 이전의 형통함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보게 될 때, 그들의 무례함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잠시 버림을 당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버림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저 세상에서 하나님이 의로운 자의 "입에 웃음으로 채우시리라"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그들의 해가 구름 속에 가리워져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시 맑게 떠오를 것이며 결코 더 이상 구름 속에 싸이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슬퍼하며 무덤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기쁨으로 들어가는 길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거룩한 자들의 적들은 거룩한 자들이 영예의 화관을 쓰는 것을 볼 때,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러나 욥이 이전의 형통함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는 순전한 자로서의 성품을 박탈당하지 않을 것이다.

2. 또 한편으로, 만일 그가 사악한 자이며, 악을 행하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를 도우시지 않고, 그의 현재의 재앙 가운데에서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며(20절), 그의 "장막은 없어질" 것이다(22절). 여기에서 하나님이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벗어나게 되고, 그의 은혜를 박탈당할 것이다. 하나님은(난외에 있는 것처럼) "그 손으로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실 것이며," 그들과 교제를 나누거나, 교통하시지 않을 것이다. "광명과 흑암 사이에 무슨 교통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던져버린 그 영원한 재앙으로부터 그들을 끌어 올리기 위해 그의 손을 빌려 주시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때에 그들이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려 그들의 손을 뻗칠지라도 그것은 이미 늦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손으로 붙들어 주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 큰 심연이 놓여 있다."

"악인의 장막은 조만간에 없어지리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을 그들의 거처로 삼"는 자들만이 영원히 안전하다(시 90:1; 91:1). 다른 것들을 그들의 피난처로 삼는 자들은 실망할 것이다. 죄는 본인과 그 가족들에게 멸망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욥의 가족들이 몰락하고 그 자신도 현재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가 분명 불경하고 악한 자라는 이론을 내세우는 것은 그의 사악함과 불경건함에 대한 다른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정당하지도 못하고 또한 너그럽지도 못한 일이다. "때가 이르기 전에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자. 그리고 모든 마음의 비밀이 명백히 드러나기까지 기다리자. 그리하면 "하나님의 비밀이 필역될 때에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난점들이 영원한 만족을 줄 것이다."

 

8:21 없음.

 

8:2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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