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느헤미야 0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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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백성들의 회개(느헤미야 9:1-3)

우리는 여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켰던 금식을 위한 집회에 대한 일반적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은 느헤미야의 명령과 족장들의 조언과 동의에 의해 행해졌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정한 금식이었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금식" 이었다.

1. 왜냐하면 그 날은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사 58:5). 그들은 성전 뜰에 모여 굵은 베옷을 입고 머리를 땅에 댐으로써 슬픈 자세를 취하였다(1절). 그들은 이처럼 그들의 슬픔과 겸손을 밖으로 표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깨달았고, 서로가 회개하도록 자극했다. 그들이 "우는 것" 을 제재받는 날이었다(8:9). 그러나 이제는 울도록 명령받았다. 거룩한 잔치에 대한 기쁨은, 엄숙한 금식의 때가 오면 슬픔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2. 그 날은 "흉악자의 결박을 풀어주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금식이었다(사 58:6). 그렇지 않다면 삼베를 펴고 우리 발 아래 티끌을 까는 것은 하나의 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은 거룩한 자손이요 하나님께 합당하고, 그들의 이웃보다도 더욱 뛰어났으므로, 그들이 서로 친밀하게 지내던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했다" (2절). 에스라가 이미 여러 해 전에 그들에게 이방 아내와 헤어지도록 했으나, 그들은 다시 똑같은 죄에 빠져 있었다. 즉 그들은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들과 우정을 맺음으로써 그들에게 올무가 되는 교제를 계속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방 아내들 뿐만 아니라 이방 자손들과도 손을 끊었다. 기도와 계약으로써 하나님과 합하려는 자는 죄와 죄인들로부터 떠나야 한다. "어둠과의 교제가 어찌 밝겠는가?"

3. 그 날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이었다. "그들은 그를 위하여, 그를 위하여 금식했다" (슥 7:5).

(1)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로써 하나님께 말씀드렸고, 죄를 자복하고, 그를 여호와로서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사모함으로써, 그들의 경건과 열렬한 마음을 바쳤다. 기도 없는 금식은 영혼 없는 몸과 같이, 무가치한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

(2)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이야기 하신 것을 들었다. 즉 그들은 율법책을 읽었는데, 그것이야말로 금식 일에 할 합당한 일이었다. 우리는 율법의 거울을 통해서, 우리의 부정과 잘못을 볼 수 있으며 인정하고 고쳐야 할 것을 알게 된다. 말씀은 기도하기를 명하며 재촉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기도로써 우리 기도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두 가지를 위한 시간을 얼마나 공평히 나누었는가를 살펴보자. 그들은 3시간을(이것은 이 날 낮의 1/4에 해당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성서를 읽고 해석하고 연구하는 일로 보냈고, 또 3시간은 죄를 자복하고 기도하는 일로 보냈다. 그리하여 그들은 6시간을 꼼짝 않고서 이 엄숙한 믿음의 행위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들은 "보라, 이 얼마나 지루한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행사의 다양성이 그것을 덜 지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읽은 말씀이 기도 제목을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도 그 말씀을 더욱 유익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패트릭(Patrick) 주교는, 그들이 그 날의 12시간을 모두 예배에 바쳐 새벽 6시부터 9시까지는 말씀을 읽었고, 9시부터 12시까지는 기도했으며, 12시부터 3시까지는 다시 읽고, 3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다시 기도했을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금식일에 할 일은 선한 일이다. 그러므로 금식에도 그 날에 합당한 좋은 일을 해야 한다.

 

9:2 없음.

 

9:3 없음.

 

9:4

레위 사람들의 기도(느헤미야 9:4-38)

우리는 여기에서 이 금식의 일의 일들이 어떻게 수행되었나 하는 것을 읽게 될 것이다.

1. 이 일을 맡은 사역자들의 이름이 나와 있다. 여기에 그들의 이름은 몇 개만 다를 뿐 같은 이름이 두 번씩 열거되었다(4, 5절). 그들은 바울 사도가 말한 규칙처럼 잇달아 기도했거나("너희는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고전 14:31), 어떤 사람들의 견해대로, 여덟 그룹의 무리가 약간씩 서로 떨어져 있었고, 그곳에 각각 한 사람의 레위인이 그들을 인도했을 것이다.

2. 그들이 맡은 일들은 어떠한 것이었나?

(1)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4절),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과 은총을 내려주실 것을 간구했다. 그들이 크게 부르짖은 것은 바알 숭배자들처럼 하나님께서 간구를 더 잘 들어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의 열성을 북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2)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했다. 찬미하는 일은 금식 일에 합당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믿음의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려야" 한다.

여기에 그들의 기도가 요약되어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레위 사람들이 설명해야 할 것을, 미리 작성해 놓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기도 속에 상세히 말해 놓은 것을 후에 기억하여 그 제목들만 기록해 놓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들은 여기에 기록된 것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말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복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이 한낮의 1/4에 해당하는 시간을 두 번씩이나 채울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이 엄숙한 말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온전하시고 영광스런 자이시며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나타나 있다(5, 6절). 회중은 모두 일어남으로써 이 사실에 대한 경의를 표하도록 요청 받았다. 그리고 사역자들도 "주의 영화스런 이름을 송축하나이다" 하고 하나님께 축사를 올렸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찬미를 받으신 것은

1. 오직 하나이시고 살아 계시며 참된 하나님으로서였다. "오직 주는", 스스로 존재하시고 의지함이 없으신 "여호와시도다." 그런고로 "주님 이외에는 하나님이 없나이다" 는 것이다.

2. 만물의 창조주로서였다. "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 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셨나이다" 고 했다. 사도 신조의 첫 번째 조항은, 우리가 드릴 찬미의 첫 번째 항목이 되기에 합당하다.

3. 모든 창조물을 보호하시는 자로서였다. "주님은 존재하도록 만드신 모든 창조물을 보존하시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가장 높은 것에까지 뻗쳐 있다. 왜냐하면 가장 높은 곳도 하나님의 섭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까지 뻗쳐 있다. 그것은, 섭리가 결코 그것들을 소홀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가 만드신 것을 보존하실 것이며, 그가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다(전 3:14).

4. 창조물의 찬미를 받으실 자로서였다. "모든 천군이, 거룩한 천사들의 세상이 주께 경배하나이다(6절). 그러나 주의 이름은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나나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창조물의 찬미가 필요하지 않으며, 그들의 찬미로 하나님의 영광을 더할 수도 없나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하는 가장 훌륭한 의식이나 천사들이 드리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에는 무한히 부족하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의 송축뿐만 아니라 모든 송축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이다. 하늘과 땅이 모두 합하여 찬미를 드린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천분의 일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의 선함이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

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감사드리고 있다.

1. 이에 관한 많은 일들이 하나님 앞에 질서정연하게, 그리고 매우 적합하게 나열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울 수 있다.

(1)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은총을 이야기하고 "모든 기도에서 감사를 드려야" 한다.

(2) 우리가 죄를 자백할 때는, 우리의 죄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주목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겸손해지고 부끄러움을 깨닫게 되어, 배은망덕하다는 악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3) 우리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자비나 위로를 구할 때는, 우리들 자신과 우리 조상들의 경험을 회고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과 소망에 도움이 된다. "주님은 이전에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다시 그렇게 해 주실 수 없겠나이까? 당신은 여전히 똑같은 하나님이 아니신지요?"

2.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선하심을 베풀어 주신 일이 여기에 다시 언급되어 있는데 구체적 사례를 잠시 살펴 보기로 하자.

(1) 아브라함의 소명(7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총은 특별했다. "주께서 그를 택하셨나이다." 그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총은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데려오실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그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심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영예를 부여하셨고, "열조의 조상" 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라" (사 51:21). 그리고 아무런 대가없이 그를 영광스럽게 한 것을 보라.

(2)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자손에게 더 훌륭한 나라의 원형인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그에게 약속하셨다(8절). 이 계약은 실현 되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충성되다는 것을 발견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그의 마음이 그처럼 되었다는 것을(왜냐하면 믿음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발견하셨으므로 그의 말씀을 이루어 주셨다. "정직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정직하심을 보이실 것이다." 그리고 충성된 마음을 지닌 자들을 어디에서 발견하시든 그는 그들에게 충성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실 것이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셨다(9-11절). 그들이 중재받아 바벨론에서 온전히 구원된 것을 지금 기억해 낸다는 것은 때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압제자들의 교만과 무례함 때문에 고통 중에 울부짖는 그들을 구원하셨던 것이다. 그들이 교만하게 행할 때, 하나님은 그 자신이 "그들보다 크시다" 는 것을 보여 주셨고(출 18:11), 그렇게 함으로써 "영광" 을 받으셨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바로를 이겨 영광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이 놀라운 역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예롭게 하고 있다. 그것은 기적적으로 행해졌다. 즉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이적과 가사를 보이셨다. 그들의 구원은 곧 그들 적들의 멸망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 적들은 돌을 큰 물에 던짐 같이", 헤어날 수 없도록 "깊은 물에 던져졌다."

(4)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셨다. 즉 구름과 불 기둥으로 갈 길을 비춰 주셨으며, 언제 그들이 이동해야 하고 언제 어디에서 쉬어야 하는가를 알려 주시어, 그들의 모든 단계와 발걸음을 인도하셨다(12절).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어 그들을 안내하고 돌봐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가시적인 표징이었다. 그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고 광야의 샛길에서 방황하며 멸망하도록 만드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신 긍휼을 베푸사 그들을 계속 인도하셨고, 또 "구름 기둥과 불 기둥" 을 치우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이것을 다시 반복하여 언급해 놓고 있다(19절). 우리가 한 때 박탈당했던 긍휼을 다시금 받게 될 때는, 두 배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 하나님은 그들이 굶어죽지 않게 하기 위해 광야에서 풍성한 양식을 내려 주셨다. "주님은 하늘에서 양식을 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습니다(15절). 그리고 또한 그들이 가나한 땅에 들어가 그것을 차지할 것이라는 언약으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들은 편히 길을 갈 수 있도록 양식과 음료를 얻었으며, 여행 끝에 그 복된 땅을 차지했습니다. 이 외에 그들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은혜가 그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이 다시금 언급되었다(20, 21절). "사십년 동안을 주께서 그들을 키우셨나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양육되고 이처럼 자상한 돌보심을 받은 백성은 일찍이 없었다. 즉 그들은 기적적으로 양식을 제공받았고, 오랫동안 "그 옷이 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길은 험하고 지루했지만, "그들의 발은 부르트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독수리의 날개 위에 있는 것처럼 인도되었기" 때문이었다.

(6)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다. 이것은 그들에게 베풀어진 매우 큰 은총이었고, 그들에게 부여된 큰 영광이었다. 그 율법을 주신 자는 매우 영광스러운 분이었던 것이다(13절). "주는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강림하시어 저희와 말씀하셨나이다" (신 4:33). 주어진 율법도 매우 훌륭했다. 태양 아래 있는 어떤 민족도 이처럼 "올바른 법도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 를 가지지는 못했다(신 4:8). 도덕적이고 공정한 계율은 참되고 의로왔으며, 자연의 원리와 선과 악에 대한 영원한 이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의식상의 제도도 훌륭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표징하는 것이었고, 복음의 은총을 표하는 모형이었다.

특히 제 4계명이 주어진 것을 커다란 은총으로 특기했다. "주는 거룩한 안식일을 저희에게 알리셨나이다." 안식일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또 태고로부터 있었던 계시 신앙의 한 부분인 안식일을 아주 잃어버린 이방 민족과 그들을 구별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의 선한 신을 주시어 율법과 안식일을 저희에게 가르치셨다" (20절).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이외에도 모세가 "성령에 감동되어서" 기록한 것이요, 특히 신명기는 하나님의 영이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충분히 교훈을 주고 있다. 브사렐은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하게 되었으며(출 34:3), 여호수아도 그러했고(민 27:18), 갈렙도 또한 그러했다.



(7) 하나님은 그들에게 훌륭한 가나한 땅 곧 "나라들과 족속들" 을 나누어 주셨다(22절). 그들은 또 그곳을 차지하여(23절) 주인이 될 만큼(24절) 수효가 불어나게 되었다. 즉 본토 여러 족속들을 그들 손에 붙이어, 그들이 "임의로 행할 수 있게" 하셨고, 그들이 원하면 그 왕들을 자기들 발 아래 둘 수고 있도록 하셨다. 이처럼 그들은 행복하게 "정착" 할 수 있었던 것이다(25절). 그들의 성읍을 보더라도 견고하고 튼튼했다. 그들의 집들도 아름답게 꾸며졌고, 각종의 아름다운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그들의 나라를 본다면 우리는 아마 이처럼 기름지고 이처럼 "포도원과 감람원" 으로 가득 찬 곳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발견한 모든 것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고 선한 이 선물을 향유했다. 그들은 이보다 더욱 편하고 행복한 것을 바랄 수가 없었다. 만일 그들이 잘못을 범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계속 가나안에서 이렇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8) 그들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진노를 입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광야에 있었을 때는, 그들은 그가 "사유하시기를 기뻐하는 하나님" (17절). 곧 "용서의 하나님" (난외에 적힌 대로)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이 "불법과 범죄와 죄악을 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는" 것을 영광으로 삼으시는 신이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을 버리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계속 돌보시며 은혜를 베푸셨다. 후에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범죄하여 적의 손에 팔렸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굴복하고 겸손히 청하는 것을 들으시고 "구원자들" 을, 즉 사사를 "주시었다" (27절).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사사들을 통하여 멸망하려는 순간의 백성들을 크게 구원하는 역사를 행하셨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의 공적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책망 밖에는 받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 그들에게 커다란 긍휼을 베푸셨던 것이다.

(9) 하나님은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을 훈계하셨고 경고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환란 속에서 구원하셨을 때, "그들의 죄를 경계하시어" (28, 29절), 그들이 구원 얻은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사악함을 묵인하셨기 때문이라고 오해하지 않게 하셨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를 한 모든 의도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고 그들의 목을 굽히며 규례대로 행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맡고 있는 직분의 목표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율법으로 인도하여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지, 그들을 우리의 율법 밑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는 다시 읽게 된다(30절). "주께서 선지자로 말미암아 주의 신으로 저희를 경계하셨나이다." 선지자들의 증언은 선지자들 안에 있는 성령의 증언이며, 또한 그들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다(벧전 1:10, 11). 그들은 "성령에 의해 감동되었을 때 말했다." 즉 그들은 받은 것을 그대로 말했다. 하나님은 "그의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셨다" (20절). 그러나 그들이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신으로 그들을 경계하셨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그것에 복종하지 않을 때는, 그 말씀이 우리를 고소하고 심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측은히 여기시사 그들이 심판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지자를 보내셨다(대하 36:15).



(10)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으며 진노를 조정했다.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용서하셨나이다" (30절).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셨으므로,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그들을 벌하셨을 때에도, 그는 "저희를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다" (31절). 그가 그들을 버렸다면, 그들은 완전히 멸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다시 돌아와,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셨으므로 그의 진노를 모두 발하시진 않았다. 이처럼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 가운데 증대케 되어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깊이 깨달아 회개하여 우리의 사악함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감사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의 죄에 대해서 더욱 통회하게 될 것이다.

Ⅲ. 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 열조의 죄를 자복하면서 회개했다. 이 이야기 속에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회상이 섞여 있다. 즉 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는 더욱 현저히 나타나며, 하나님의 은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악은 더욱 흉하게 드러나게 된다. 죄악과 긍휼에 대해 여기에서 언급해 놓은 구절들은 에스겔 20장 5절에서 26절에 있는 것을 많이 인용했다. 거기에 나온 구절을 여기에서 나온 구절과 비교해 보면 알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로 인도하는 데 유익하며 우리는 그가 하신 말씀에 의해 그에게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1. 그들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범죄한 사실부터 언급했다.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그들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고 최근에 그들이 어떻게 종의 몸에서 풀려났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그들은 조금도 교만해질 만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목을 굳게 하였다" (16절). 교만은 사람의 완고함과 불순종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멍에에 그들의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들을 낮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그들 자신의 의지를 내세웠다.

(1) 그들이 규례대로 행하지 않은 일이 두 가지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이처럼 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으나 그의 이적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들이 만일 이 일들을 이적으로써 받아들였다면 그들은 믿음과 경외의 원칙에서 순종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긍휼로 받아들였다면 그들은 감사와 거룩한 사랑의 원칙에서 순종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규례나 섭리를 바르게 이용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2) 여기에 두 가지의 커다란 죄악이 명시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광야에 있을 때 범죄한 것으로써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영광스런 자유를 베풀어 주었을 때 다소의 곤함과 불편이 있다고 하여 마늘과 파를 생각하면서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그의 선한 언약을 멸시하고서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워 종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17절).

[2] 애굽의 우상 숭배로 돌아가려 했다. "저희가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이는 너희 하나님이라" 고 말했다.

2.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들의 열조가 가나안을 차지한 후에 범죄한 것을 애통해 했다. 비록 그곳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크게 선하심을 기뻐했었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더욱 충성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던" 것이다(26절).

(1)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능욕하고 "죽였는데" 그것은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했기" 때문이었다(26절). 이처럼 그들은 최대의 은혜를 최대의 모욕으로 갚았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멸시했다. "저희가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악을 행하였다" (28절). 그들은 그들이 받은 고통이나 고통 중에서 구원된 일을 생각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의무를 행하고자 하는 두려움과 애착심이 없었다.

3. 드디어 집회가 끝날 시간이 가까워 오자 그들은 이러한 심판 가운데 오랫동안 괴로움을 당해왔고 또 지금도 괴로움의 일부를 겪도록 초래한 그 죄를 탄식했다.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옵니다(33절). 우리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열조" 가 모두 범죄하였고 우리도 그 속에 속했습니다(34절). 그들은 그들이 환란을 당하게 된 이유로써 다음 두 가지 일로 그들 자신과 그들의 조상을 책망하고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준 선한 율법을 경멸했다. 그들은 "주의 규례를 범하였다." 또한 거룩한 지혜에 의한 명령과 거룩한 주권의 요구를 거역했다.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은" 주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듣긴 했지만(29절) 그들은 그것을 행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실상 그들은 "살고자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긍휼을 버렸다." "이를 행하는 자는 살리라는" 언약의 요점은 에스겔 20장 13절에서 발췌된 것이며 갈라디아서 3장 12절에서 인용된 것으로 율법은 믿음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즉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믿으면 살리라" 는 언약이 아니라 난외에 있는 바와 같이 어깨를 움츠리게 했다. 그들은 그의 어깨에 하나님의 율법을 짊어지고 그것을 위해 행하는 척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있음이 드러났다. 즉 그들은 약속을 어기고 그것을 지켜 준행하려 하지 않았다. 율법이 왔을 때 그들은 피하고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타락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돌아오도록 권유하셨을 때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다" (30절). 즉 그가 손을 펼치셨으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2)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훌륭한 땅을 무시했다(35절). "우리 열왕이 그 나라에서 주를 섬기지 않았고 그들은 권력을 믿음을 지키는 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백성들은 주님의 매우 선하신 은사를 사용하여 주를 경배하지 않았으며 본토 족속들을 좇아내고 완전히 승리를 거두게 해주시고 그 크고 기름진 땅에 살면서도 주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는 자들은 그에 대한 벌로 이방 나라에 있는 대적을 섬기게 되어 있었다(신 28:47, 48). 훌륭한 땅에 악한 자들이 거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나 소돔의 땅은 그러했다. 기름지고 풍족한 상태는 흔히 사람들을 교만하고 관능적으로 만든다.

Ⅳ. 그들이 이전에 그리고 또한 이제 하나님의 징벌이 내리게 되었을 때 그들은 겸손한 태도를 표하였다.

1. 그들이 범죄하고도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받게 되었던 옛날의 징벌이 회고되고 있다. 심판의 날에 "그들은 대적의 곤고를 당하였다" (27절). 그리고 그들이 다시 악을 행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그 대적의 손에 붙이셨다." 그런데 이 대적들은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결코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을 때 그 적들은 그들을 수중에 넣고 지배할 수 있었다.

2. 그들은 현재의 참상을 하나님 앞에 아뢰었다(36, 37절).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나이다." 자유민으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제 종이 되었고 그 어느 하사품보다도 더욱 영예로운 소유권을 가지고 오랫동안 차지해 왔던 땅도 잃게 되었다. 즉 이 땅의 어느 백성보다도 특별한 백성으로서 하늘로부터 직접 하사받은 그 땅이 이제는 악한 무리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사 왕들에 의해, 그들에게 예속되어 그들의 지배 아래에 있는 종이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변모인가! 죄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보라. 그들은 각기 고역을 당해야 했다. 저희가 "우리의 몸을 관할하옵니다." 즉 그들은 마음대로 그들이 취한 것을 소유했으며 토지세로 엄청나게 비싼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 그러므로 그들 땅의 산물과 이익, 그리고 세금은 사실상 모두 그 왕에게 들어갔으므로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생계만 유지할 정도였다. 이것은 그들의 죄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정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빈곤하게 되고 종이 되는 것은 죄의 열매이다. 즉 우리에게 환란을 가져오는 것은 죄이다.

Ⅴ. 그들은 여기에서 이러한 참상 아래 있는 것을 하나님께 고하고 있다.

1. 그들은 그들의 환란을 "작게 여기시지" 말도록 요청하고 있다(32절). 이것은 이 모든 기도 속에 있는 단 한가지의 탄원이다. 그 환난은 전반적인 것이었다. 즉 그들의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 선지자들, 열조 그리고 모든 백성이" 이 환란을 당했다. 그들은 모두 죄를 함께 지었으므로(34절) 이제 그 징벌도 모두 나누어 당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래 지속되었다. 즉 열 지파를 사로잡아 가던 "앗수르 열왕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었다. "여호와여 이것을 작게 여기시어 돌아보실 가치가 없는 일이거나 또 고통을 덜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지 마옵소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행해달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애굽에게 크게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구하러 오신 사실을 기억하여(출 3:7, 8) 단지 그가 그것을 인지해 주시기만을 바라면서 그 일을 하나님에게 맡기고자 했다. 이러한 요청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자로 여겼고(왜냐하면 그는 "크고 강대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 이기 때문이다) 또 의지해야 할 자로 여겼다(왜냐하면 그는 언약 속에 계시는 "우리의 하나님" 이며 "언약과 긍휼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들이 받아야 할 환난보다 사실상 가벼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33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시어 환난을 당하게 하신 일이 결코 그릇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주의 율법을 어겨 악을 행했으므로 우리에게 이러한 재난을 주신 주님은 의로우십니다." 우리가 거룩한 섭리에 의한 책망을 받게 되었을 때 비록 그것이 매우 고통스럽고 오래 계속되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의롭게 여기고 우리들 스스로를 판단해야 한다. 그것은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기" 때문이다(시 51:4).

Ⅵ. 여기에 이 모든 일에 대한 결론과 결과가 나와 있다. 그들은 이처럼 오랫동안 간언을 한 뒤에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들의 의무를 다하며 앞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항상 그들의 의무를 계속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우리가 이제 하나님과 견고한 언약을 세우겠습니다. 우리가 자주 하나님을 떠난 일을 생각하여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견고히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이처럼 심한 징벌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어깨를 움츠리지 않도록 확고한 결심을 하겠습니다." 다음을 주목하라.

1. 이 언약은 신중한 고려 끝에 이루어졌다. 이것은 온당한 생각의 결과이므로 그 일 또한 합당한 것이다.

2. 이 언약은 매우 엄숙히 이루어졌다. 그것은 in perpetuam rei memoriam-모든 세대에게 기념물로 남기기 위해 기록되었다. 그리고 거짓으로 행하는 자들에게 증언이 되게 하기 위해 기록하고는 인을 쳤다.

3. 이것은 모두의 동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리가 그것을 세웠다. 우리는 모두 만장일치로 그것을 동의하여 서로의 손을 강대하게 하기로 했다."

4. 그것은 견고한 결심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결코 취소할 권능이 없는 견고한 언약이다. 이것은 우리가 죽거나 살거나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이며 결코 취소할 수 없는 것이다."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 몇 명이 회중의 대표로 뽑혔고 그들은 나머지 사람의 이름으로 또 그들을 위해 서명하고 인을 쳤다. 이제 유다 사람들에 관한 약속은 이행되었다. 즉 그들이 사로잡혔다 돌아왔을 때 그들은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할 것이며(렘 50:5)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하리라" (사 44:5)는 언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정직한 마음을 지닌 자는 확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들 자신의 마음에 있는 기만성을 안 자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없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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