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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다리오왕의 우호적 조서(에스라 6:1-12)

Ⅰ. 성전을 건축하는 데에 관한 고레스왕의 조서가 반복되어 있다.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내세웠기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것을 언급해 놓았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은 이것이 발견되지 않아 유대인의 청원이 파기되어 그 공사는 중지하게 되리라고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조서를 찾아보라는 명이 내려졌다. 유대인들은 그 조서의 공인 사본을 간직해 두고 있지 않았다. 사본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대단히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원본에 의지해야 했던 것 같다. 바벨론에서 원본을 조사하게 했다(1절). 그곳은 고레스왕이 조서에 서명한 장소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곳에서 발견되지 않았을 때도, 디리오왕은 그곳에는 그러한 조서가 없다는 구실을 내세워 유대인을 처벌하려 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이러한 조서가 분명히 선포되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찾아보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은 메대도(道)에 있는 악메다 궁에서 발견되었다(2절). 원본이 없어지면 유대인들이 그 조서의 혜택을 못받으리라고 생각한 어떤 자들이 유대인에게 앙심을 품고, 감히 소멸해 버리지는 못하고 거기다 숨겨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원본이 알려지도록 역사하셨다. 그래서 그것이 여기에 게재되었다(3-5절).

1. 여기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이 나와 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그 전을 건축하게 하라." 그리고 이러한 크기로 하라. 이러 이러한 재료로 만들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

2. 왕의 세입으로부터 성전 건축 비용을 주도록 명시되어 있었다(4절).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명해진 것을 그들이 받았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중에서 벌어진 일의 양상은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3. 느브갓네살이 가져간 성전의 기명과 기구를 돌려줌과 동시에(5절) 제사장들 곧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하나님의 전 안에서 행할 직무로 돌아갈 것을 명했다.

Ⅱ. 이 원본은 다리오왕의 조서로 다시 공인되었고, 견고케 되었으며, 곧 실행되었다.

1. 다리오왕의 조서는 매우 명백하고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1) 그는 그의 관원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내용의 표현을 살펴보면 그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하고자 한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너희들은 그곳을 멀리하고" (6절), "하나님의 전 역사를 막지 말라" (7절)고 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대적들의 격노함이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다." 이것을 생각하는 원수들은 자제하게 된다.

(2) 그는 그들에게 명하여 그 자신의 세입으로 그 건축하는 자들을 돕도록 했다.

[1] 그것은 건축 자금이었다(8절). 이 점에서 그는 고레스왕의 본을 따랐다(4절).

[2] 성전이 건축되었을 때는, 그곳에 드릴 제물을 구입하는 데 쓰여졌다(9절). 그는 유대인들에게 번제와 소제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도록 명했다. 그는 자기의 세입에서 대지료(貸地料)를 지불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래서 어김없이 매일 그 돈을 바치도록 명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제물을 드리고 거기에서 왕과 왕자 생명을 위해(즉 행복과 번영을 위해) 그 제물들을 드리고(왜냐하면 그들의 조상들은 제물을 바칠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또 사무엘, 엘리야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도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기도드릴 수 있게 했다(10절). 여기에서 그가

첫째, 어떻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예롭게 했는지 살펴보자.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 이라 불렀다.

둘째, 그가 하나님의 일꾼들을 어떻게 영예롭게 했는가를 보자. 즉 그는 그의 신하들에게 명하여 제사장들의 명령에 따라서 성전 예식을 위해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도록 하였다. 그들을 지배하려 했던 자들은 이제 이 일에 있어서는 그들의 명을 받아야만 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이처럼 국고에서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었다.

셋째, 그가 어떻게 기도를 영예롭게 했는가 보자. "왕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게 하라" 고 했다. 그는 그들이 기도하는 백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까이 계시어 그들이 구하는 모든 것을 살피신다는 사실을 들어왔다. 그는 그 자신에게도 그들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들에 의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기도로 인한 유익함을 얻을 수 있기 위해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권세를 잡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무이다. 선하고 온유한 집권자들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심술궂은 집권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히 자기들을 보호해 주는 자들이나 은인들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왕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원하고 그들을 고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도 가장 초라해 보이는 성도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도록 하자. 우리가 그들과 화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적대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3) 그는 형벌을 가미시켜 그의 조서를 강력히 시행토록 했다(11절). "그 누구도 그 공사와 성전의 일을 방해하거나 물자를 공급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도록 하라. 이 조서를 지키지 않는 자는 왕의 명에 의해 죽음의 형벌을 내릴 것이다. 누구든지 이 조서를 변개하면, 그를 그 집 들보에 매어 달고(즉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그의 집 문 앞에 매어 달고") 저주받은 자로 취급하여 그 집은 쓰레기 더미가 되게 하라."

(4) 그는 이 전을 헐려고 거기에 손을 대는 모든 왕들과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내린다고 했다(12절). 성전을 보호하기 위해 그 스스로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모든 진노를 갚으시는" 하나님께서 행해 주시기를 바랐다. 이것은 그가 성전 건축에 매우 열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비록 이 성전은 마침내 하나님의 정의에 의해 가장 의롭게 파괴되었지만, 이 전을 파괴시키는 도구가 되었던 로마 사람들은 아마 이 저주의 효력을 입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후 로마 제국은 현저하게 망해갔기 때문이다.

2. 이 모든 일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다.

(1) 열왕의 마음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대로 그 마음을 움직이신다. 그들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왕중 왕" 이시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계획을 성취해야 될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감히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지도 못했던 도구들을 일으키시어 그 계획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땅이 때로 여인을 도우며" (계 12:16), 거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 믿음을 방어하는 일에 사용될 것이다.

(3) 하나님의 섭리를 역이용함으로써 교회를 침해하려는 의도를 행해진 일들이 흔히 교회에 유익을 가져오기도 한다(빌 1:12). 유대인의 적들은 다리오왕에게 호소함으로써 유대인을 탄압할 명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유대인을 도우라는 명을 받았던 것이다. 이처럼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온다." 묵시문학서인 제1에스드라서(또는 에스라서) 3, 4장에는, 유대 사람에게 이롭도록 이 조서를 선포한 사실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나와 있다. 즉 다리오왕은 자기가 이 나라에 온다면 예루살렘에다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맹세했다는 것이다. 또 그의 수행자 가운데 하나인 스룹바벨이(그가 이 때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진리는 위대하며 승리하게 될 것이라") 왕 앞에서 솔직 담백한 대화를 나눌 때, 왕이 그에게 무슨 보답을 해주기 원하는가 하고 묻자 그는 단지 왕의 맹세를 이행해 줄 것만을 청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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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성전의 완성(에스라 6:13-22)

Ⅰ. 유태인을 대적하던 자들이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들이 왕에게서 이 명을 받자, 그들의 조상들이 그 공사를 중단했을 때처럼(4:23) 매우 서둘러 그 공사를 돕고 장려했다. 그들은 왕이 명한 것을 행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 못하여 그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신속히 준행" 하였다(13절). 왕의 온화함은, 그들 자신의 기질과는 반대로, 그들까지도 온화하게 만들었던 것이다.Ⅱ.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진행되었고, 잠시 후에 곧 필역되었다(14, 15절). 이제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기쁘게 "건축하였다." 잘은 모르지만 장로들은 직접 "그들의 손으로" 일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행한다는 것이 그들의 장로직을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자들을 격려하게 되었다.

1.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가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어 그를 섬기는 데 사용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2. 그들은 이전에는 고레스왕, 현재는 다리오왕 그리고 이 후에 아닥사스다왕과 같은 이방 나라의 왕의 명령을 좇아 그 일을 행하는 데에 대한 수치스러움을 깨달았다. 이 이방 왕들이 이처럼 이 일에 호의를 보이는데 유대 사람의 장로들이 이 선한 사업을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이방인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아무런 비용도 아끼지 않고 있는데, 본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에 대한 수고와 관심을 아낄 수 있겠는가?

3. 그들은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에 의해 건축할 용기를 얻었다. 이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패트릭 감독의 견해대로) 하나님의 놀라운 선하심이 바사왕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이처럼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게 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역사는 매우 형통하였으므로, 그것은 4년 안에 완성되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온전하다." 복음의 교회 곧 영적 성전은 오랫동안 건축되고 있으나, 마침내는 완성될 것이다. 그 때에는 신비스런 몸이 완성될 것이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가장 거룩한 믿음으로 지음을 받은, 살아 있는 성전" 이다. 사탄과 우리 자신의 타락이 이 일을 크게 방해한다. 우리가 실없는 행동을 할 때, 그 일은 중단된다. 그러나 "선한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은 그것이 완성되는 것을 보실 것이다. 그리고 "심판하여 이기리라." "의로운 자의 영은 온전케 될" 것이다.

Ⅲ. 성전 봉헌식. 그 성전이 건축되자-성전은 단지 신성한 용도만을 목적한 것이므로 "그들은 그것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를 본보기로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것은(패트릭 감독의 말대로) "봉헌" 이라는 단어의 원뜻이다. 그들은 의식을 갖추어 집행했다. 그리고 아마도 성전은 속된 용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위해, 그를 섬기는 일에만 사용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공적 성별식도 있었을 것이다.

1. 이 일을 맡은 자들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각 "열 두 지파" 에서 온 약간의 "이스라엘 자손" 이었다. 주로 유다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긴 했지만, "기타 사로잡혔던" 혹은 "추방되었던 자의 자손" 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이외에도 열방 사람들, 곧 사로잡혔던 자들과 함께 와 유대인의 종교로 개종한 자들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본문을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중 남은 자" 들이라고 읽지 않을 경우에 그렇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읽으면, 이처럼 초라하고 고통스러운 그들의 형편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그러한 형편이 믿음에 더욱 열심이 되게 하였고, 의식과 그 밖의 다른 종교적인 행사에도 진지한 마음을 가지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슬픈 변화인가! "이스라엘의 자손" 이 "사로잡힌 자들이 자손" 이 되었다니! 그리고 "남은 자는 돌아오리라" 는 예언대로(사 7:3) "그들" 중 남은 자들만이 여기에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이 때에 바쳐진 제물은 "수소와 수양과 어린양" 이었다(17절). 이것은 번제와 화목제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 때에 바쳐진 제물과는 그 수효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현재의 능력에 따라 바쳐졌으므로 하나님께 용납되었다. 왜냐하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했기" (고후 8:2) 때문이었다. 그들이 바친 백 마리는 솔로몬이 바친 천 마리보다 하나님께는 더 많았다. 그러나 이것 외에도 각 지파에서 한 마리씩 하여 수염소 열 둘을 속죄제로 드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죄를 속죄했으며, 그들은 이것을 그들의 예배가 열납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처럼 죄악을 벗어버림으로써, 그들은 최근에 겪은 환난의 아픔을 씻을 수 있었다. 만일 그 아픔이 제거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들의 현재의 기쁨의 뿌리를 파먹어 가는 벌레가 될 수밖에 없었다.

3. 이 의식은 기쁨으로 행해졌다. 그들은 성전이 건축된 것을 보고 모두 기뻐했으며, 매우 훌륭한 마음가짐으로 그 일에 임하도록 관심을 기울였다. 우리도 기쁨으로 거룩한 규례를 맞이하며, 즐겁게 그 일을 행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자.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바치든지, 그가 그것을 즐겨받을 수 있도록 기쁘게 행하도록 하자.

4. 그들은 성전을 봉헌하고 나서, 성전 살림을 정돈했다. 성전 봉사를 하지 않고서는 이 성전에서 별로 위안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사장을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반차대로 세웠다" (18절). 성전 봉헌식에서 하나님 예배는 시작되었고, 그들은 그것을 지속시켜 나가도록 힘썼다. 그리고 "모세의 책" 을 지침서로 삼아, 이 모든 일을 해나갔다. 비록 그들의 궁핌함으로 인해 성전 봉사가 이전처럼 그리 화려하거나 풍족치 못하게 거행되었지만, 아마도 이들은 전처럼 이 거룩한 의식을 매우 정결하고 열의 있게 행하여 참된 영광을 돌렸을 것이다. 거룩함이 지니는 아름다움과 비교할 만한 아름다움은 없다.

Ⅳ. 유월절 잔치가 새로 세워진 성전에서 베풀어졌다. 이제 그들이 최근에 바벨론의 속박에서 구원받은 것을 경축하면서,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받은 것도 함께 경축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들에게는 제단과 성막이 있었기 때문에, 매해 때를 따라 유월절을 지켜 왔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적의 방해를 받아 의식을 행할 장소가 없어 불편을 겪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전이 건축될 때까지는 규례대로 엄숙히 절기를 지킬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성전이 필역하고 봉헌된 그 다음 달이 되자, 그들은 기쁜 잔치를 베풀었다(19절). 다음 사실이 주목되어 있다.

1. "유월절 양을 잡을"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케 하였다(20절). 히스기야 시대에 많은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몸을 정결케 하지 않았던고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이 일을 지켜 "그들은 일제히 몸을 정결케 하여" (낱말 그대로) 칭찬을 얻었다. 즉 그들은 모두 합심하여 그들의 결정을 따랐고, 이 엄숙한 의식을 위해 의식법대로 몸을 정결케 하고 그렇게 보존하도록 노력했다. 그들 모두가 다 정결케 되기 위해 그들은 서로 도와 힘을 합하여 준비를 했다. 사역자들의 정결함은 그들의 직분의 아름다움을 더하게 한다. 그들의 일치단결도 역시 그러하다.

2. 이 규례에는 개종자들도 함께 있다. "이러한 자들은 모두 스스로 구별하여 이스라엘 무리에게 속하였다" 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땅과 그 미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연합하였다. 또한 그들은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 즉 우상 숭배와 음행을 "버리고" 그들의 하나님으로써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기 위해" 유월절 양을 함께 먹었다. 개종자들 곧 전향자들을 어떻게 묘사했는가 보라. 그들은 죄의 더러움과 죄인과의 교제를 버리고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합하여 교제하고 그들을 따랐다. 그리고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구하였다. 이처럼 정직히 행하는 자들은 이방인이나 타국인이라 할지라도 복음의 잔치에 초대받게 된다. 그들은 이제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 이 되는 것이다.

3. 그들은 "무교절을 지키면서" 매우 기뻐했고 즐거워했다(27절). "여호와께서 저희로 즐겁게 하셨다" 고 했다. 즉 그들에게 즐거울 수 있는 이유와 또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이 성전의 토대가 세워진 것은 약 20년 전이었으므로, 그 때 제1성전을 회고하면서 울었던 노인들이 이 때에는 거의 다 죽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이 기쁨에는 눈물이 섞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기뻐할 수 있는 좋은 여건 위에 있는 자들은 그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저희를 즐겁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모든 기쁨의 샘물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지키는 모든 자에게는 "그의 기도하는 전에는 그들을 즐겁게 하시겠다" 는 약속을 주셨다. 그들이 이때 즐거워한 그 특별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제왕의 "마음을" 저희에게로 돌이켜,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대적하던 자나 우리가 두려워하던 자들이 우리의 편이 되었을 때는, "우리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였으므로" (잠 16:7) 좋은 표징으로 여기고 기뻐해야 하며,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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