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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반대에 부딪힌 성전 재건(에스라 4:1-5)

우리는 여기에서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있었던 오랜 원수지간의 한 예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성전은 세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탄은 맹위를 떨치고 "지옥의 문은 그것을 대항해 싸울 것이다." 복음의 왕국은 이와 같이 많은 투쟁과 싸움을 통해 세워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제2성전의 영광은 앞선 성전의 영광보다 크며, 반대도 없고 악한 방해도 없었던 솔로몬이 세운 성전에 비해(왕상 5:4) 더욱 그리스도 교회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는 성전이다. 그러나 이 제2의 성전은 큰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를 제거하고 정복하여 결국은 세워졌으며, 그 반대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완성되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선함이 더욱 크게 영광 받았고, 그 교회는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Ⅰ. 성전을 재건하려는 자를 본문에는 "사로 잡혔던 자의 자손" (1절)이라고 칭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막 포로에서 돌아왔고, 포로된 중에 태어났으며, 아직도 포로의 징표를 몸에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다. 비록 지금은 포로가 아니었지만 아직도 자기들을 포로하던 자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의 장손이다. 그러나 저들의 부정함 때문에 팔려갔고 노예가 되었으며, 결국 포로민의 자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이 자유를 상실한 것은 성전을 무시했었기 때문이라는 자각 때문에 더욱 분발하여 이 사업에 나섰던 것만은 분명하다.

Ⅱ. 이 사업을 반대하는 자들을 여기서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갈대아인들이나 바사인들이 아니었다(이들은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고-" 그들로 하여금 성전을 세우게 했고 환영했다"). 그들은 10 지파들 중 남은 자들과 또 그들과 연합한 이방인들이었고, 우리가 열왕기 하 17장 33절에서 그 내용을 볼 수 있는 대로 혼합 종교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했으나 그들 자신의 신들도 역시 섬겼다." 그들은 "열국 백성" 이라 불리었다(4절). 유다와 베냐민이 만난 최악의 원수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한" (계 3:9) 자들이었다.

Ⅲ. 그들의 대적은 옛 뱀의 간교함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성전이 세워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자기들의 미신에 결정적인 타격이 되리라는 것을 즉각 알아채고 거기에 대적했다. 그들은 강제로 성전 재건을 저지할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썼다.

1. 그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그 일을 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그 일을 도와주는 척하면서도 오히려 지연시킬 기회를 가지자는 것이었다. 이제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 그들의 제의는 충분히 찬성할 만하고 친절해 보인다.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가 너희를 돕겠고 비용도 부담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2절). 이것은 거짓이다. 그들이 비록 동일한 하나님을 구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방법으로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이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구하지 아니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능한 한 성전 세우는 것을 방해할 길을 구한 것이며, 그렇게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이 일을 안전하게 끝내는 것은 방해하려고 했다. 참된 하나님을 순수히 예배하고 또 그만 예배하기 위해 성전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성전이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것이 "원수를 속이는 입맞춤이다." 칼을 마음에 품고 있으나, 원수의 말은 버터보다 매끄럽다. 그러나

(2) 그들이 제안 한 것을 거절한 것은 대단히 잘 한 것이다(3절). 이스라엘 족장들은 즉시 그들이 어떤 태도로 가장하든지 간에, 그것들이 친절이 아니고 사실상으로는 자기들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만큼 진실이었다면 사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했지만) 그들에게 명백히 말했다.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참여도 안 되고 부담도 질 필요가 없으며, 너희는 참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며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예배자들도 아니다. 너희는 너희가 모르는 것을 예배하는 자들이다(요 4:22). 너희는 우리가 감히 교제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섞이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율법으로 그들에게 항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더 잘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들은 다만 그들에게 지시된 왕의 위임만 말했을 뿐이다. "바사 왕은 우리에게 이 전을 세우라고 명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외국의 원조를 구하다면 그 왕을 불신임하는 것이며, 모욕하는 것이다." 선한 일을 함에 있어서 비둘기의 양순함이 필요함같이 뱀의 지혜도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을 삼가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마 10:16, 17). 우리는 우리를 돕는 사람을 주의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며,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사람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경건한 신뢰심으로 의지하겠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사려 깊은 경계심과 주의를 기울여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그들이 음모가 실패되자, 이 일을 못하게 하고 좌절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행했다. 그들은, 건축자들을 보고 완성해 낼 수 없는 일을 시작하는 "어리석은 건축자들" 이라고 말하면서 그 일을 시도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고 하여, 그들의 일손을 약하게 했고, 각가지 중상으로 괴로움을 주었고 일이 힘들게 했다. 모든 사람이 다 이 일에 똑같이 열렬했던 것은 아니다. 냉담했던 자들과 무관심했던 자들은 그들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술책 때문에 그 일에 손을 떼버리기도 했다(4절). 그들이 무슨 말을 했든지 유대인들은 낌새를 알아차리고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은밀히 "모사꾼(議士: 개역)들을 고용하여" 그들에게 가장 좋은 충고를 해주는 척하여 그 일을 방해했고, 그들의 목적을 좌절시키려고 했다(5절). 혹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과 계약한(3:7) 목제를 공급하지 못하게 했다. 이스라엘 해방에 대한 칙령에 따라서, 어떤 특정한 특혜를 얻기 위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바사 궁정에서 무슨 일을 하였는지는 모르나, 이스라엘에게 불리한 조언을 하기 위해 고용된 모사꾼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에 반대하는 교회 원수들이 끊임없음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과 그들이 행하는 사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온 세상 어디서나 해치려는 세력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역사하신다. 선한 사업을 실망시키고 그 일을 행하는 자들의 손을 약하게 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누구의 전철을 밟는지 알게 될 것이다.

 

4:2 없음.

 

4:3 없음.

 

4:4 없음.

 

4:5 없음.

 

4:6

고소당한 유대인(에스라 4:6-16)

고레스 왕은 꾸준히 유대인의 이익을 도모했으며, 그 자신이 손수 하사품을 주어 돕기도 했다. 유대인의 이익에 방해하는 어떤 제안도 그에게는 소용없었다. 그가 행한 것은 선한 원칙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그러나 그가 통치한 것은 모두 30년이었지만, 그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유대인을 석방하라는 조서를 낸 후의 통치 기간은 단 3년 혹은 7년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죽었거나 또는 통치자의 생활을 끝내고 "아닥사스다" 라고도 불리우는(7절) 아하수에로스(6절)가 즉위했다. 그런데 이 아닥사스다는 이교도들의 작품 속에서 "캠비세스" 라 불리우는 자와 같은 인물일 것이다. 그는 초라한 유대인들을 선왕만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조상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다.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에게 편지를 내어, 성전 건축을 중단시키는 명령을 내려줄 것을 청했다. 그들은 그들의 뜻을 이루어 줄 왕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조금도 지체하려하지 아니하고, 그가 즉위하자 곧 그러한 청을 올렸던 것이다. 교회의 적들은 교회에 재앙을 내릴 기회를 찾는 데 얼마나 민첩한가를 보라. 교회의 친구들은 교회를 돕는 데에 결코 방심하지 말자.

Ⅰ. 그들이 왕에게 이 문제를 고하기 위해 보낸 편지의 일반적인 취지를 보자. 그것은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는" 것이라고 했다(6절). 마귀는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 이다(계 12:10). 마귀는 항상 그들에게 악의를 품고 있다. 그러므로 마귀는 욥에게 행한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다 그들을 고소할 뿐만 아니라, 자기 부하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어줌으로써 재판장들과 왕들에게 그들을 고소케 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하고, 또 유력한 자들의 혐오를 받게 만든다. 성실하고 경건한 자들을 헐뜯기 위해 아직도 그런 수법이 이용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Ⅱ. 이 편지를 쓰는 일에 관여한 자들을 보자. 그것을 계획한 자들의(7절) 이름과 그것을 문서화한 자들과(8절) 그러한 주장에 협력하고 동조한 서기관들의 이름(9절)이 열거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허위의 진술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관원들은" 자기 동료들과 함께 "여호와와" 그의 전을 "대적하여 모사를 꾸몄다" 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대단한 열의와 증오를 품고 그것을 대적했다. 아마 그렇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모든 이방의 신들이 쇠진케 되고, 멸하게 될 것을 예언한 때문이었을 것이다(습 2:1; 렘 10:11).

2. 어떻게 백성들은 그들과 동조하여 이 헛된 일을 꾀했는가를 보자. 그들은 이 고소를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고 함께 외쳤다. 이 주민들이 사는 모든 성읍에서 대표가 파견되었다(9개 이주민 도성이 열거되어 있다). 그들은 앗수르, 갈대아, 바사 등지에서 온 자들이었다. 아마도 10 지파에 속한 유대인들이 돌아오자, 유대인들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그들은 그 후로부터 유대인의 재산에 손을 댈 수 없게 되자 시기를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돌아온 유대인들에 대해 그들은 몹시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Ⅲ. 에스라는 바사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을 여기에 기록해놓고 있다. 그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잘 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선한 백성들을 괴롭히고 선 한 계획을 방해하려는 수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자기들이 그 나라에 대해 매우 충성스럽고 또한 그 나라의 영예와 이익을 위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처했다. 그리하여 그 왕은 나라안 전체에서도 자기들처럼 충성스럽고 왕에 대한 의무를 철저히 행하는 신하를 또 다시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식으로 말했다(14절). 우리는 궁전의 소금이 쳐져있는 고로(난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즉 "우리는 왕궁으로부터 녹을 받고 있으며, 우리의 몸이 소금 없이는 보존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녹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는 것이다. 또는 다니엘 1장 5절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궁에서 교육을 받고 왕의 식탁에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라는 뜻이다. 이들은 그가 등용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의 식품(食物)에서 먹었다" 고 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일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는 왕의 수치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겠나이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무엇보다도 분명 왕을 수치스럽게 만들 그 성전의 건축을 중지해 줄 것을 왕에게 간청했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에 대한 은밀한 적의가 흔히 가이사와 그의 권력을 애호한다는 미명 아래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유대인들은 로마 정부를 증오했다. 그러나 태도를 바꾸어 돌연 "우리에게는 가이사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라고 외칠 수 있었다.

그러나(이것을 보면) 왕에게 의지하여 사는 자들이 이렇듯 감사한 마음으로 국왕의 권익을 지지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느꼈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경건한 관심을 지녀야 더욱 당연할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양식을 얻고 있으며, 그의 소금을 먹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으며, 그의 섭리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수치당함을 보고도 분개하지 않고 "참고 본다면 합당치" 않다.

2. 그들은 이렇게 고발했다. 즉 유대인들은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 위험한 존재이므로, 예루살렘은 "패역하고 악한 성읍" 이며(12절)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다는" 것이다(15절). "온 세계가 즐거워하는" (시 48:2) 예루살렘이 여기에서는 온 세상의 수치로써 크게 비난받고 있다는 것을 보라. 교회의 적들은 제일 먼저 교회에다 악한 이름을 붙이고 나서 비로소 자기들이 꾸민 악한 계획을 밀고 나간다. 예루살렘은 의로운 왕들에게는 충성스런 성읍이 되어 왔으며 그곳의 현주민들은 각 도에 사는 자들처럼 왕과 그의 나라에 호의를 품고 있었다. 유대인이었던 다니엘도 근래에 그 왕에게 매우 충성스러웠으므로, 가장 악한 대적들은 다니엘에게서 흠을 잡을 수가 없었다(단 6:4). 그러나 엘리야는 가장 부당하게도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받았었고, 사도들은 "세상을 소란케 한다" 고 비난을 받았으며, 그리스도 자신에게도 "민족을 타락시키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므로 똑같은 장난이 지금 되풀이되더라도, 우리는 조금도 이상히 생각지 말아야 한다.

(1) 그들의 지나간 역사는 불쾌한 것이었다. 즉 "그 성읍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이 행해졌고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었다" 는(15절) 것이었다.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믿음의 일과 지금 중건하고 있는 성전을 가까이 했었더라면, 그들은 결코 바벨론 왕의 속박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1] 그들 자신과 조상들과 방백들이 그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들이 맹세를 위반하지 않는 한(왜냐하면 나로서는 위반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의로운 방법을 택하고 제일 먼저 하나님과 화해했다면 그것은 또한 성공할 수 있다.

[2] 비록 유대인들과 그들의 방백들이 반역하는 일을 범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영원히 "반역하고 패역한 성읍" 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을 붙이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그들이 사로 잡아간 유대인들은 사려있는 자들로서 선한 행실의 본보기를 보여 주어, 남의 비난을 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사로 잡혀간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는(렘 29:7)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들이 이 가르침을 준수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처럼 조상의 죄를 자손에게 전가시킨다는 것은, 희귀한 일은 아닐지라도 매우 온당치 못한 처사이다.

(2)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일에 대한 저들의 정보는 사실상 대단히 그릇된 것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이 성곽을 중건하고" 아니 "필역했으며" (난외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 지대를 수축하였다" (12절)는 사실을 왕에게 고하기에 매우 열심이었으나, 이것은 사실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고레스의 명에 의해 그 성전을 건축했을 뿐이었으며, 성곽을 위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성곽을 중건한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성곽들은 수년 후에도 여전히 훼파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느 1:3). "너 궤사한 혀여, 무엇으로 네게 주며 무엇으로 네게 더 할꼬?" 너는 이 거짓 펜보다도 더욱 나쁘도다.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로다" (시 120:3, 4). 만일 그들이 모든 덕과 영예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이웃사람들이 모두 거짓된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것을 왕에게 써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왕이 그 사실을 곧이 들으리라는 것을 확신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감히 그렇게 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잠 29:12 참조).

그들이 예측한 사실들은 모두 근거 없고 어리석은 것이었다. 만일 이 성읍이 중건되면 유대인들은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할" (13절) 뿐만 아니라(큰 거짓말도 작은 거짓말과 같이 쉽게 말해지기 때문이다), 왕은 강 서편에 있는 모든 나라들로부터도 아무런 것도 받을 수 없게 된다는(16절) 사실과, 유브라데강 이 편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연이어 반역을 일으키리라는 사실을 매우 확신하고 있었고, 또 왕도 그들의 말을 믿도록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왕이 이런 사실을 묵인하게 되면, 왕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후계자들에게 해가 된다고 말했다.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이 편지의 내용이 줄줄이 얼마나 교묘하며, 늙은 뱀처럼 독기를 품고 있는가를 보라.

 

4:7 없음.

 

4:8 없음.

 

4:9 없음.

 

4:10 없음.

 

4:11 없음.

 

4:12 없음.

 

4:13 없음.

 

4:14 없음.

 

4:15 없음.

 

4:16 없음.

 

4:17

중단된 건축사업(에스라 4:17-24)

Ⅰ.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인들에게 불리한 보고를 하자, 바사왕은 그 보고에 답하는 명을 내렸다. 그들의 거짓과 기만에 압력을 받은 왕은, 유대인이 현재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그들의 청원을 검토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공사를 중단하라는 명을 내림으로써, 그들을 기꺼이 만족시켜 주었다.

1. 그는 예루살렘에 관해 올린 글을 보고서, 그 성읍이 정말 바벨론 왕을 거역한 사실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그들의 말대로 "악한 성읍" 이었고(19절), 더욱이 역대의 왕들은 그곳에서 다스렸으며, 강 서편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그곳으로 세금을 바쳤다(20절). 그러므로 만일 그 나라들이 강대해지면(그들은 결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자기네들의 권리를 요구할지도 몰랐다. 이처럼 왕은 사마리아인들이 말한 것과 같은 말을 했고, 그렇게 행하는 것에 대한 구실을 붙였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들어야 하며, 그 진술이 거짓된 것일지라도 남의 말을 듣고 판단해야 하는 제왕들의 어려운 운명을 보라. 하나님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시고 사실대로 보시기 때문에 그의 판단은 항상 의로우시다.

2. 그는 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명을 내려 즉시 성을 건축하는 것을 중지시키도록 했고, 그에 관한 몇 가지의 명을 더 내렸다(21, 22절). 편지를 보낸 그들이나 명을 내린 왕은 성전과 그 건축에 대해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과 왕은 모두 유대사람들이 고레스 왕으로부터 성전을 중건하는 허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명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 사마리아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취소할 용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그 "성읍에" 관해서만 말했다. "그것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라" 고 했다. 즉 성곽과 성문이 있는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어떠한 방법을 쓰든지 그것을 막아 왕들에게 손해가 되지 않게 하라." 그는 자기의 잘못으로 해서 그 후계자들이 왕관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했다.

Ⅱ. 유대인의 적들은 속임수로 얻은 이 조서를 어떻게 이용했는가? 그들은 이 명령을 받자, "예루살렘으로 급히 갔다" (23절). "그들의 발은 악으로 달려 갔다" (잠 1:16). 그들은 이 금지령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건축하는 자들이 계속 일을 하고 있다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마음대로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역사를 그치게 하였다." 그들은 거짓된 보고로 이 명령을 얻기 위해 왕을 속였듯이, 그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도 그를 속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받은 명령은 단지 "성" 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함부로 권력을 썼고, 그 명이 "성전" 에 관련된 것으로 간주해 버렸다. 그런데 그들이 이처럼 행한 것은, 그들이 성전에 악의를 품고 있었고 또 그것을 건축하는 일을 방해하려는 구실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조서에 들어있는 일반적인 조항은 "그 사람들로 역사를 그치게 하라" 는 것으로써, 그들이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대해 불만을 표한 내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적용시켰다. 왕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 아래에서 권력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보내어진 관원" 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왜냐하면 "매우 경건하고 올바른 가운데" 우리의 삶을 "평온하고 화평하게" 이끌어가는 것은, 고급 관리들은 물론 하급 관리들의 정직과 지혜로움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 대적들의 권력과 오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의 친구들의 냉담함과 무관심에 의해 성전은 바사왕 다리오 제 2년까지 중단된 채로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24절에 언급된 다리오는, 본문의 이야기의 문맥으로 보아 다리오 히스타스페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사마리아 사람들의 폭력 때문에 그 일이 정지되었지만, 만일 유대인들이 그 역사에 온당한 열심을 품고 있었다면 그 후 곧 다시 계속되더라도 묵인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왕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허락을 받기 전에도(6장), 선지자들은 재건을 계속하지 않는다고 책망했다는 점을 보아서다(5:1; 학 1장 참조). 만일 그들이 성의를 가지고 이 일의 진상을 캠비세스에게 알렸더라면, 아마도 그는 그의 명을 철회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그 건축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도 반대자가 되어 그 공사가 중단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교회는 종종 그 적들의 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친구들의 냉담함 때문에 더욱 환란을 당해왔다. 그러나 보통은 이 양자가 합당하여 교회의 사업을 지연시킨다.

 

4:18 없음.

 

4:19 없음.

 

4:20 없음.

 

4:21 없음.

 

4:22 없음.

 

4:23 없음.

 

4:2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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