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스 왕의 선포(에스라 1:1-4)
여기에서 우리가 다음의 몇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1.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의 형편. 여러 가지 면에서 보아 그 형편은 비참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미워하는 세력에 눌려 있었고, 자기들의 소유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다. 즉 성전도 제단도 없었다. 그들이 시편을 노래하면, 원수들은 그것을 비웃었다. 그러나 예언자들만은 있었다. 에스겔과 다니엘은 이방 종교에 물들지 않은 자들이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궁정에서 지내기도 했고, 또 어떤 자들은 안정된 생활도 했다. 그들은 모두가 때가 되면 자기 나라로 다시 돌아가리라는 열렬한 희망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기대 속에서 저들은 자기들의 가문을 구별되이 지켰고 자기들의 신앙에 대한 지식을 간직했으며 우상 숭배를 증오할 수 있었던 것이다.2. 저들의 정치적 형편은 어떠했는가? 느브갓네살왕은 많은 이스라엘인들을 그의 통치 원년-이것은 여호야김 4년에 해당한다-에 포로로 잡아갔다. 그는 45년 간을 통치했고, 그의 아들 에빌메로닥이 23년 간을 통치했고, 그의 손자 벨사살이 3년간을 통치했다. 그러므로 이 연대는 모두 70년이 된다. 이것은 라이트푸트 박사의(Dr. Lightfoot) 계산이다. 그러므로 느브갓네살은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려 했다" 는 비난을 받았다(사 14:17).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왕이 불쌍한 유대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면, "그의 평안이 그에게 장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단 4:17). 그러나 바벨론의 죄악의 그릇이 다 차게 되자, 메대 사람 다리우스와 바사(페르시아)사람 고레스를 통하여 그들에게 파멸이 임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다니엘 5장에서 읽을 수 있다. 다리우스가 늙게 되자, 고레스에게 정권이 넘어갔다. 고레스는 유대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게 되었다. 그는 느브갓네살과는 대조적으로, 바벨론 왕국의 주인이 되자마자 느브갓네살의 가족을 제거하고 유대 민족의 해방을 선포했다. 그 이유는 아마 느브갓네살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없애고자 했든지, 정책적으로 자기의 새로운 통치권은 자비롭고 평화적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든지, 혹은(혹자가 생각하듯이) 150년 이상이나 잘 알려져 왔던 이사야의 예언에 경건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 예언에 보면 고레스는 분명히 하나님을 위해 이 일을 해야 할 사람으로 이름이 나타나 있고,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큰 일을 행할 것이(사 44:28; 45:1) 나타나 있다. 그의(혹자의 말에 의하면) 이름은 바사어로 "태양"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에 빛을 가져다 주었고 치유를 주었다. 그리고 그는 "의의 태양" 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뚜렷한 모형 인물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이름은 "아버지" 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곧 영원한 아버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자.
Ⅰ. 이러한 선포가 있게 된 근원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 시키셨다고 했다. 제왕들의 마음도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으며,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하나님은 당신이 뜻하는 대로 어느 길로든지 그들의 마음의 방향을 돌리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또 섬기는 방법도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아셨고 그를 통해 역사하실 방법도 아셨다(사 44:4).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서 세상을 지배하시며, 어느 때에 어떤 선한 일이 일어나든 그 일을 하도록 마음을 감동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은 인생들의 마음에 생각을 두시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이해력을 주시며, 당신이 기뻐하시는 뜻을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행해지는 선한 일은 그 어느 때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만 그 일의 영광을 돌려야 한다.
Ⅱ. 이 사건은 예레미야의 예언과 관계되어 있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올 것을 약속했을 뿐 아니라, 시온이 받을 은총의 시간도 확정하셨다. 정해진 기간은 70년이었다(렘 35:12; 29:10).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겠다고 하셨던 약속을 지키신 그 분은(출 12:41) 이번에도 역시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고레스가 지금 행한 이 일은 오래 전에 말했던 "하나님의 종들의 말씀을 응하게" 하는 것이다(사 44:26). 살아있는 동안은 예레미야가 증오와 멸시를 받았다. 그러나 능력 있는 한 군주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나온 여호와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그것은 예레미야가 죽은 지 오랜 후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영예롭게 했기 때문이다.
Ⅲ. 이 선언이 발표된 시간. 그 시각은 고레스왕의 출생국인 바사 통치 원년이 아니라, 그가 정복한 왕국인 바벨론 통치 원년 때였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되고 그 일을 시작한 첫 해부터 하나님을 섬기게끔 된 자들은 대단히 영예로운 자들이다.
Ⅳ. 그 선포는 이렇게 하여 되었다. 입으로 전해졌다(그는 마치 회년 나팔소리와 같이, "그의 온 나라에 소리를 전파하게" 했다. 즉 불행했던 여러 해가 지난 후 즐거운 안식이 왔으며, 여러 해 동안의 포로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선포케 했다). 또한 글로도 선포했다. 즉 그는 그 선포를 더욱 만족스럽게 전하고, 열 지파가 흩어져 살고 있는 앗수리아와 메데와 같이(왕하 17:6)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에도 전해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Ⅴ. 이 해방 선포의 요지는 무엇인가?
1. 이 선언의 전문(前文)에는 그 영향을 받은 동기와 주안점이 나타나 있다(2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여호와(그가 하나님을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에 대한 지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즉 그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살아 계신 참 하나님", "하늘의 하나님" 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그 하나님은 만주의 주요 "세상 만국을" 배정하시는 분이심을 알았다. 또한 그는 "그가 참 하나님", 곧 홀로 뛰어나신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가 비록 교육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을 그에게 나타내시사, 그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이런 일을 하도록 만드셨다. 그는 두 가지 이유로 이 일을 행한다고 고백하고 있다.(1)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조금 지나친 자랑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그가 다스리지 못하는 "많은 나라들" 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왕에게 주셨던 모든 나라를 자기에게 주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의 영토가 "땅 끝까지" 미쳤다고 말했다(단 4:22; 5:19). 하나님은 권세의 근원이시오, 세상 나라는 그의 장중에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그러므로 어떤 자가 어느 나라를 차지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이다. 또 하나님이 큰 권세와 많은 재물을 맡겨 준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께 순종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를 명하사 유대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다" 고 했다. 아마 밤에 꿈이나 환상을 통해 이 말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 말씀은 이사야의 예언과 비교해 보면 일치하는 것이다. 이사야서에 보면, 그가 이 일을 하리라는 것이 예고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종종 하나님의 분부에 불복종했다는 사실을 지적받았다. 그것은 이제 이 이교도인 한 왕의 복종으로 인하여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2. 그는 자기 통치 아래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거기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자유를 준다고 했다(3절). 하나님에 대한 배려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은 일을 간과해 버렸다.
(1) 그의 정부의 세속적 이익을 간과했다. 유능한 많은 사람들을 자기 나라 안에 유치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그의 정책이었을 것이며, 이제 그들로 하여금 자기 나라를 떠나 그들 본국으로 돌아가 뿌리를 박게 한다는 것은 실책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심은 최선의 정책이 된다.
(2) 자기 나라의 종교의 위신을 무시했다. 왜 그는 바벨론이나 바사의 신들을 위해 전을 세우라고 명하지 않았던가?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늘의 신" 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오직 그분만 섬기라고 했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행하게 하라."
3. 그는 가난하거나 자기들의 재산을 가지고 갈 수 없는 자들의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서 모금을 하라는 훈령을 하기를 "현지에 남아 있는 자들은 예루살렘에다 자기의 부담을 지불할 방도가 없으니,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돕도록 하라" 고 했다. 혹자는 이 말을 6장 8절에 있는 말과 같이, 왕이 관리들에게 왕의 세입에서 그들을 위해 쓸 물건을 공급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것은, 그 포로민들이 왕의 사랑하는 모든 백성들로부터 의연금과 자선비를 요구하여 받으라고 명령하는 영장일지 모른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들의 이웃들에게 대단히 잘 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진해서 유대인들에게 희사물을 내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정부가 유대인에게 좋은 대우를 하는 것을 보고서 자신들도 친절했을 것이다. 고레스는 떠나는 자들에게 선한 축원을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노라" 3절),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들도 공급하는 배려를 해주었다. 그는 유대인들 중에서 능력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전 재건을 돕기 위해(자원하는) 예물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자기 나라의 국고에서도 그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했다. 성전에 대해서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은 또한 성전을 위해 좋은 행위를 해야 한다.
고레스의 선언(에스라 1:5-11)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내용을 본다.
Ⅰ. 고레스의 선포는 다른 면에서도 성공을 가져왔다.
1. 그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올라갔다(5절). 그 지도자들은 유대와 베냐민의 "족장" 들, 곧 재능이 탁월하고 경험이 많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형제들보다 높은 권위에 있었기 때문에, 의무 이행에도 다른 형제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은 마땅히 예상되는 바이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시온을 향하여 얼굴을 돌린 첫 사람들이었다. 어떤 선한 사업이든 그것을 성취시키고자 한다면, 사역자들로 지도자를 삼으라. 제사장들 레위인들과 더불어 동반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올라갈 마음을 주신 사람들이었다. 이 해방을 선포하도록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신 바로 그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도 움직여 그 해방의 혜택을 취하도록 하셨다. 그것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만군의 주의 영으로 되기" 때문이다(슥 4:6). 어떤 자들에게는 바벨론에 머물고자 하는 유혹이 컸을 것이다. 그들은 거기에 안전하게 정착했고, 그 이웃과 마음도 맞았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가 좋사오니" 라는 말을 할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돌아가려는 용기를 막는 것들이 많았고 또 컸을 것이다. 그 여행은 길고, 그들의 처자식들은 여행에 익숙치 못했으며, 그들의 고향 땅은 오히려 그들에게 낯선 땅이 되었고, 그리고 가는 길도 알지 못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땅은 모두 폐허가 되었고, 자기들을 쉽게 희생시킬 수 있는 그런 원수가 사면에 둘러선 땅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 때문에 바벨론에 머물거나 적어도 먼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얼음을 깨뜨리고 나아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노상에 있을 사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성령과 은총을 통해서, 커다란 야망을 그들에게 채워주셨고, 자유에 대한 자기들의 땅에 대한 아름다운 애착을 가지게 하셨으며, 자기들의 신앙에 입각하여 자유롭고 공공연히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욕망을 가득 채워 주셨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그들 멋대로 버려 두시어 그들의 육정을 따르게 하셨더라면, 그들도 바벨론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시온을 향하는 마음을 두셨고, 이방 나그네들처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묻는 마음을 주셨다(렘 1:5). 그들은 새로운 세대였기 때문에,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아를 떠나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것과 같은 형편에 놓였다(히 11:8). 우리가 무슨 선한 일을 하든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요, 그가 그 일을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우리에게 의욕을 주시고 또 일을 행하도록 역사해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본성적으로 이 땅을 향해 있고, 이 땅의 것들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위로 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복음의 초청도 고레스의 선언과 같다.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선포한다" (눅 4:18). 죄의 불의한 지배 아래 얽매인 자들,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로 돌아가며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죄의 노예 상태에서 떠나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 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초청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고" (고레스에게 준 권세보다도 훨씬 큰 권세이다. 2절), "하나님의 전을 세울" 책임, 곧 세상에 교회를 세우는 일, 사람들 가운데 나라를 세우라는 책임을 주셨다고 밝히셨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바벨론에 머물기를 택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사랑하는 자들이요 거룩한 삶을 위해 난관을 극복하려는 모험을 하지 않고자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실망되는 모든 일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전을 세우기로" 작정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신앙의 나라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세상과 육신에서 벗어나게 하신 자들이요, "주의 권능의 날" (시 110:3)에 기꺼이 들어 세우실 자들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멸망하더라도, 하늘의 가나안은 충분히 보충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고레스가 유대인들의 이웃 족속들에게 그들을 도우라는 명령을 하자, 그들은 그대로 행했다(6절). 유대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여행을 돕기 위해 물품을 공급했고, 그들의 집과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일을 돕기 위해 또 물건들을 공급했다. 모세의 성막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노획물로 세워졌고, 첫 번째 성전이 이방인 노동자들로 말미암에 건축되었듯이, 둘째 성전은 갈대아인들의 헌물들로 채워졌다. 이 모든 사실은 때가 오면 이방인들도 교회로 들어가리라는 사실을 시사해 준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곳에서는 이방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라도 언제나 자기 백성에게 친절을 베풀게 하시며, 그들이 약하게 했던 자들의 손을 그들을 통해 다시 강하게 하실 수 있다. "땅이 그 여인을 도왔다" 고 했다. 함께 오지 아니하고 뒤에 남아 있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그의 전을 향한 사랑으로 헌물을 바친 것 외에도, 혹자가 말한 바와 같이, 설명할 수 없는 신의 권능으로 마음에 감동을 받은 바셀론 사람들이 바친 헌물도 많았다.Ⅱ. 고레스 자신이 이 선언을 지원했다. 하나님의 전에 대한 자기의 사랑의 진실성을 보이기 위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했을 뿐 아니라 성전의 그릇들을 되돌려 주었다(7, 8절).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하나님은, 성전의 기구들이 상실되거나 녹혀져 다른 기구들과 혼합되어 분별할 수도 없게 되도록 버려두지 않고, 모두 그대로 내어 놓을 수 있도록 그 기구들에 대해 용의주도한 섭리를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비의 그릇", "존귀한 그릇" 에 대해서도 그러한 배려를 하신다. 그러므로 그 사실에 대해서 "주께서는 자기 백성을 아시고 그들이 하나도 멸망하지 않도록 지키신다" 고 말하고 있다(딤후 2:19, 20).2. 비록 그 기구들이 우상의 신당에 놓여 있었으며, 어쩌면 우상 섬기는 일에 사용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하나님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되돌아오게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되찾으실 것이다. 무장한 군사에게서 빼앗은 노획물은 그 정복자를 위해 쓰이게 될 것이다.
3. 유다는 포로 상태에 있으면서도 방백을 가지고 있었다. 스룹바벨과 동일한 인물로 생각되는 세스바살이 여기에서 "유다 목백(牧伯)" (영어로는 방백)이라 불리었다. 갈대아인들은 그를 "세스바살" 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시련 속의 기쁨"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 중에서는 "스룹바벨" 이라고 불리었는데, 그 의미는 "바벨론의 나그네" 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고, 조세푸스(Josephus)가 말한 바와 같이, 비록 그가 바벨론 왕국의 시위 대장이었지만 예루살렘을 자기 고향으로 생각했다. 그는 유대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았다. 아마도 자기를 다윗집에 속한 자로 고용했던 여호야김이나 여고니야가 죽은 후부터 자기 백성들에게 어떤 권위를 행사하게 되었을 것이다.
4. 성전 기구들이 계수되었다(8절). 그리고 세스바살은 그것들을 예루살렘으로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한 조처를 취했다(11절). 성전이 건축되면 그 안에 비치할 많은 기구를 가지게 되자, 그들은 성전을 세울 용기를 얻게 되었다. 성소의 기물들처럼, 하나님의 규례가 비록 신약 성서의 바벨론에 의해 부패되고 속되게 될는지는 모르나, 때가 되면 그것들은 그들의 본래의 의미와 본래적 위치로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의 제도 중 극소량이나 극미한 것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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