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건축에 대한 부탁(역대상 29:1-9)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Ⅰ. 다윗은 이스라엘의 직책을 맡고 있는 자들이, 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전심을 기울일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훌륭히 권고의 말을 하였다. 우리 자신이 선한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선한 일을 하도록 힘써 권고하기 위하여, "서로 사랑하고 선한 사업을 하기 위해 서로 권면하는 것" 은 우리의 의무이다. 이스라엘에는 부유한 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성전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성전을 건축하기에 좋은 화평한 시대에 은덕을 입을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이 세금을 부과하지 않더라도, 성전 건축을 위해서는 헌납을 해야 했다. 따라서 그는 그들에게 강제로 그것을 부담시키지 않고, 이 훌륭한 기회에 자원제를 드리라고 권고하였다. 왜냐하면 경건과 자비로 이루어지는 사업은 강제로가 아니라 자의로 기쁘게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1. 그는 솔로몬이 어리고 연약하여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택하시어 이 일을 맡긴 사람인고로 그들의 도움은 매우 값진 것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역시 주지시켰다. 하나님의 사업을 행하는 자들이 비록 어리고 연약하더라도 그들을 격려해 주는 것은 퍽 좋은 일이다.2. 그는 그들에게 그 사업이 매우 큰 역사이므로 모두가 협력하여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 또 보다 많은 공이 들어갈수록 그것은 더 장엄하게 건축될 수 있고, 따라서 그 선한 의도에서 잘 부합될 수 있었다.
3. 다윗은 자기가 이 사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두었는가를 그들에게 말했다. 그는 그들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려 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기증물로만 성전을 건축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원했던 것은 그들이 이미 이루어진 일에 조금 덧붙임으로써, 각자의 선한 뜻을 표해주는 것이었다(2절). "내가 이미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도다" 고 했다. 즉 "나는 그것을 내 사업으로 만들었노라" 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사업은 우리의 힘을 다하여 행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과를 못 얻게 될 것이다.
4. 그는 그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제시해 주었다. 노략물과 이웃나라에서 보낸 선물(22장 14절에서 언급되었다) 이외에도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다윗은 자기가 사유하고 있던 금 삼천 달란트와 은 칠천 달란트나 되는 막대한 액수를 바쳐 그것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하였다(4, 5절). 이것은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그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바친 것은, 교황 숭배자들이 교회를 지어 참회하거나 속죄하려 한 것처럼 한 것이 아니며, 더욱이 바리세인들처럼 다른 사람들에 과시하기 위해 봉헌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그가 여호와의 전을 사모하는 순수한 마음 때문이었고, 이것은 시편 26장 8절에도 고백되었고, 또 여기에도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일을 사모하는 자는 그것을 행하는 데 아무리 많은 수고와 비용을 들이더라도 힘겹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사랑에서 나온 봉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하늘 나라를 사모하는 자는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전을 사모할 것이다. 이제 다윗은 그들에게 이것을 이야기해 줌으로써 그들도 역시 그러한 사실을 깨닫도록 격려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을 선한 일로 이끌려는 자는 먼저 자신을 선하게 인도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특히 지위나 권세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자들은 자기들의 빛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출 것인가를 특별히 연구하여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본보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매우 강력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5. 다윗은 다른 사람도 자기가 행한 것을 해달라 했다(5절).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1) 우리들 각자는 어느 곳에서든지 여호와를 섬기고, 그에게 봉헌하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을 멀리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예와 영광을 위해 예배해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필수적 업무로 삼아야 한다. 즉 히브리판에 씌어진 구절처럼 "여호와를 위해 우리의 손을 채워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는 자들은 항상 그들의 손이 채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섬기는 일은 전인(全人)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손을 하나님 섬기는 일로 가득 채운다는 것은, 우리가 오직 그만을 섬기고, 우리의 자유로운 의사로 기꺼이 그를 섬기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총의 힘 안에서 그를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3) 우리는 이것을 자유롭게 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선한 마음이 생기는 그 날에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이 일을 행하여야 한다. "누가 기쁘게 하겠느냐?" 그 다음을 나타내자.
Ⅱ. 그들이 이러한 권고를 받았을 때, 그들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모두가 훌륭히 봉헌하였다. 권고를 받아서 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즐거이 드렸다" 고 적혀져 있다(6절).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훌륭한 교훈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성심으로" 바쳤다(9절). 그들이 바친 물질은 그들의 관대한 마음을 나타내었다(7, 8절). 그들은 그들의 신분에 맞게, 곧 방백, 곧 이스라엘 방백들답게 바쳤다. 그리하여 그것은 즐거운 날의 사업이 되었다. 즉
1. "백성이 기뻐하였다." 여기서 백성이라는 말은 바친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물질로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드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을 기뻐하였고, 이 훌륭한 사업이 완성될 것을 생각하고 기뻐하였다. 아니면 여기에 백성이란 일반 백성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방백들의 너그러움을 기쁘게 생각했고, 이렇게 선한 사업에 힘쓰는 자들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을 기뻐하였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을 이루는 일이 이렇게 힘차게 되어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2. "다윗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의 찬미가 훌륭한 영향을 미치고, 다른 사람들도 봉헌을 하여 그것을 도우려 했고, 또 그의 아들과 신하들이 여호와의 전을 매우 사모하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전심을 기울였던 이 일이 잘 계속될 것 같이 보였다. 선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자기들이 남겨 놓을 믿음의 불꽃이 그 후로도 지속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커다란 기쁨이 된다. "주여, 이제 당신의 종을 평화롭게 떠나게 해주옵소서."
솔로몬의 즉위(역대상 29:10-22)
Ⅰ. 방백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훌륭히 응해 주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엄숙하게 송축을 드렸다(10절). "다윗은" 골방에 혼자 있을 때 뿐만 아니라,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였다." 이것은 내가 "다윗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더라" (9절)는 구절을 읽었을 때 기대하던 바의 것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믿음이 깊은 자들에게는 감사할 일이야말로 분명히 기뻐해야 할 일이 되기 때문이다. 화평을 얻은 자는 반드시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윗은 이제 늙었으므로 얼마 안가 곧 죽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이 많은 성도들이나 임종을 맞이한 성도들의 마음이 감사와 찬미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이러한 마음은 그들의 육신의 고통을 진정시켜 주고, 죽음 그 자체를 그리 우울한 것으로 생각지 않게 해준다. 이 책 후편에 나오는 다윗의 시편들은 대부분 찬미의 노래이다. 우리가 영원한 찬미의 세계로 가까워질수록, 찬미하게 되고, 그 세상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설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그는 하나님을 사모하여 영원히 송축받으옵소서 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 주기도문도 다윗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찬미처럼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주께 속하였사옵니다." 라는 찬미로 끝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찬미하기에 합당한 구절로써 거룩한 경외심과 참다운 사랑을 나타내며, 또한 다음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1) 그의 무한함과 완전함을 인정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시며 영광스러우실 뿐만 아니라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이 그에게 속하여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그것들을 가지셨을 뿐 아니라, 그의 속성이기도 하다(11절). 그는 빛나고 복된 모든 것의 근원이요 중심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찬미할 때 그에게 지극히 높은 칭호를 드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에게 "광대함이" 있었다. 그의 광대하심은 거대하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와 비교해 볼 때, 다른 것들은 모두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하다. 그에게 "권능" 이 속하였으며, 전능하여 거역할 수 없는 권능이었다. 또한 모든 창조물은 그에 의존하며, 그로부터 나왔다. 그에게 "영광" 이 속하였다. 그의 영광은 그 자신의 목적이었고, 모든 창조물의 목적이었다. 우리가 마음과 입과 생명을 다하여 그에게 지극한 영광을 돌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영광에 비해 무한히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 "승리" 가 있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초월하고 극복하시므로 무엇이나 정복하여 굴복시킬 수 있다. 또한 아무 것도 그의 승리를 겨룰 수 없고 막을 수 없다. 그에게 참되고 인격적인 "위엄" 이 있다. 그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운 위엄이 있다.
(2) 그에게는 모든 것을 정당하게 소유하고 있는 주권이 있다. 다시 말해서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다." 그리하여 피조물에 대해 명백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모든 것을 명하는 최고의 통치자였다. "나라가 주의 것이니이다. 그리고 모든 왕들도 당신의 신하이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모든 것의 머리되시어 찬미와 숭배를 받으시기 때문이옵니다."
(3) 그는 만유를 움직이시며 감화시키신다. 자손들이 부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다. 다윗이 방백들에게 이 사실을 깨닫게 하고 인정하도록 하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당연히 어떤 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와 존귀를 얻었으나, 그들이 그에게 보답하는 것은 그들이 받은 것 중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는 자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힘을 얻든지, 그것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신" (시 68:35) 그가 주시는 것이다(10절).
2. 다윗은 그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기쁘게 봉헌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13, 14절).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의 일을 하는 데서 오는 영광을 받게 되고, 또한 언제나 그를 받들 수 있도록 능력주시는 은총을 힘입게 된다. 그러므로 "그가 종에게 사례하는 것이냐?" (눅 17:9) 아니다. 오히려 종이 그에게 감사해야 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다음을 명심해 두자.
(1)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업을 기쁘게 행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권능을 나타내는 분명한 실례라 하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즐겁게 행하도록" 역사하신다. 그리고 백성들이 즐거이 헌신하는 것은 바로 주의 권능의 날에 이루어진다(시 11:3).
(2) 우리는 어느 때나 우리들 자신에 의해, 혹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 모든 선한 영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교만해져는 안되며, 다른 사람들이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불평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모두 찬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분명 최고의 영광이요 기쁨이기 때문이다.
3. 다윗은 그 자신과 그의 백성들, 그리고 하나님께 바친 제물은 매우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했다.
(1) 다윗 자신, 그리고 방백들이지만 자기 일에 협력해 준 그런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유념하신 은혜를 그토록 베풀어 주실 수 있겠는가고 생각했다(14절). "나와 나 의 백성이 무엇이옵니까?" 그 당시 다윗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였고, 이스라엘은 가장 영예로운 백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하나님이 알아 주시고 베풀어 주신 은총에 비해 자기 자신과 그들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 엄숙한 회의를 주관하고 그의 후계자를 정하는 다윗은 매우 위대해 보였다. 그러나 다윗은 그 자신의 눈에는 보잘 것 없고 비천하게 보였다. "주여 내가 무엇이옵니까?" 왜냐하면, "주 앞에서는 우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초라한 "나그네와 우거한 자이기" 때문이옵니다(15절).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집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땅 위에 사는 성도들은 이 세상의 나그네에 불과하다.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도다." 다윗의 일생은 보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즉 그는 훌륭한 자였고 선하고 유익한 자였으며, 오래 살았고 사는 동안 선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귀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 앞에서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다" 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 헛된 것이요, 어두운 것이며, 인생이 덧없는 것이라는 것과 장차 완전한 광명이나 흑암의 운명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그 다음 말이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머무름이 없도다" (원어로는 "기대할 것이 없도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큰 일을 기대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이 오래 지속되리라고 바랄 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자랑하지 말 것을 암시하고 있다. 슬프게도 그것은 작은 시간 속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연약하고 덧없는 인생의 봉사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것으로 상 받으려 할 수 있겠는가?
(2) 그들의 제물에 관하여는 다윗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옵니다" (14절). "그것은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16절)." 즉 "우리는 우리의 제물을 주께로부터 값없는 선물로 받았으므로, 우리가 그것을 주를 위해 써야 하옵니다. 우리가 주께 바치는 것은 주께로부터 얻은 것 뿐입니다" 는 것이다. 패트릭(Patrick) 감독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도 이와 같이 모든 영적인 일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하며, 선한 생각과 선한 목적과 선한 사업은 모두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총의 덕분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로 하여금 주님 안에 있는 영광을 빛나게 하라."
4.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가 진실되게 행하였음을 호소하였다(17절). 누구든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자기의 "정직을 기뻐하시라" 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한 사람으로서는 큰 기쁨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더라도 하나님은 "의로운 길" 을 알고 계시며, 그것을 인정해 주신다. 다윗 자신과 그 백성들이 즐거이 제물을 바쳤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리라는 것이, 다윗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그는 그 자신의 선한 사업을 자랑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선한 사업을 시기하지도 않았다.
5. 다윗은 그 백성과 솔로몬이 그들이 시작한 일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이 간구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라 일컫고 있다. 즉 하나님은 그들과, 또 그들로 인하여 자기들과도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으로 일컫고 있는 것이다. "주여, 우리가 그 언약을 잘 지키는 유익함을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언약을 잘 이행할 수 있었나이다 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풍족히 내리신 것과 같은 은총을 우리에게도 내려 주소서 하는 것이다.
(1) 그가 백성을 위해 간구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선한 하나님을 항상 심중에 두고 지금의 믿음을 결코 버리지 말며, 그들이 지금 지니고 있는 확신을 잃는 일이 없이 또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지지 않고, 지금 그들이 지니고 있는 마음을 항상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목표를 정하여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깊고 가장 훌륭한 심중에 두어둔 생각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어떠한 선한 것을 우리 심중에 혹은 우리 친구들의 심중에 얻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계속 간직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 좋다. "주여, 그것을 지켜주시옵소서. 영원히 그것을 지켜주옵소서. 다윗이 성전을 위하여 물건들을 예비해 두었었나이다. 그러나 주여, 주께서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그들의 마음을 예비해 주소서." 흠정역의 난외에 있듯이, 그들의 마음을 "세워주소서." 또한 "그들의 결심을 확고히 하소서. 그들은 지금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사오니, 내가 죽은 후에도 그들과 그들의 것을 영원히 지켜 주소서" 라는 기도이다.
(2) 그는 솔로몬을 위해서는, "그에게 정직한 마음을 주소서" (19절) 하고 간구하였다. 그는 전에(28:9) 솔로몬에게 "온전한 마음" 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을 당부했다. 다윗은 "주여, 솔로몬으로 하여금 훌륭하고 부유하고 학식 있는 자가 되게 해주소서" 하고 간구하지 않고, "주여, 그가 정직한 자가 되게 하소서" 하고 간구하였다. 그것은 정직함이 그 어느 것보다 가장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여, 그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을 지킬 뿐만 아니라, 특히 한 마음으로 섬길 수 있도록 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만일 그가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전을 건축할 만한 정성된 마음도 지니지 않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를 구원할 교회를 건축할 생각도 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Ⅱ. 이 엄숙한 자리에서 온 회중이 모두 기쁘게 동조하였다.
1. 그들은 다윗과 함께 하나님을 송축하였다. 그가 기도를 끝낸 후, 그들의 의견을 알기 위해 동조를 호소했을 때(" 이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20절), 그들은 모두 이에 응하여 "그들의 머리를 숙임으로써" 그들의 숭배심을 표하였다. 회중에 모인 자가 누구든지 간에, 단지 "머리를 숙이는" 것만이 아니고 "영혼까지도 바침으로써" 그와 함께 한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2. 그들은 하나님의 손이 되어 자기들에게 은혜를 전해주는 자인 다윗을 존경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즉 그들은 다윗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이다.
3. 다음날 그들은 하나님께 풍성한 제물을 드렸다(21절). 그들은 번제를 드려 모두 불사르고, 화목제를 드린 후 그 제물을 먹으며 즐겼다. 비록 다윗이 이 세상에서 많은 수고를 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여기에서 이렇게 자기들의 나라를 복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였다.
4.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향연을 베풀고 기뻐하였다(22절).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그와 함께 교제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경건하게 화목제를 드리고 잔치를 베풀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을 먹고 즐기며 잔치를 베푼 것은, 그들이 성전 일을 위해 기쁘게 봉헌하였으므로 결코 그것 때문에 궁핍하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었다. 즉 그들 자신이 바친 제물의 은덕을 입게 된다.
5. 그들은 솔로몬으로 다시 왕을 삼았다. 아도니아의 반란으로 해서 이전에 급히 서둘러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을 가졌었으나, 이제 그 의식을 다시 가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되어졌다. 이것은 백성들을 매우 기쁘게 해주었다. 그들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렸다." 장관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종이 된 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치리해야 한다. 사독도 역시 기름부음을 받아 아비아달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는데, 아비아달은 근래에 그의 영예를 박탈당하였다. 이러한 왕과 제사장을 두고 있는 이스라엘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대 교체(역대상 29:23-30)
여기에 적힌 내용은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것과, 다윗이 죽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세대는 옛 것을 몰아내고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때가 있는 법이다.
Ⅰ. 이제 솔로몬이 즉위했다(23절).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에 앉았다." 그것은 하늘에 예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 라고 불리우는 이스라엘의 보좌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유의 왕이시며, 모든 나라의 왕들이 그의 아래 있을 뿐 아니라, 특별히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기 때문이다(삼상 12:12). 하나님께서 손수 그들의 보좌를 만드시고 채워주셨으며, 그들의 왕국을 다스리는 율법은 거룩하였다. 또한 우림과 선지자들은 방백들의 개인적인 조언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보좌는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 라고 불리웠다. 더욱이 솔로몬의 왕국은 메시야 왕국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것을 사실상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 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치 않으시고 그에게 심판하도록 하셨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그의 왕" 이라 부르셨다(시 26:).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여호와께서 주신 보좌" 에 앉히시매 그는 번영하였다. 거룩한 인도를 따른 자들은 거룩한 축복에 의해 성공할 것이다. 솔로몬은 번영하였다. 이유가 있다.
1. 그의 백성들은 그들이 마땅히 존경할 자로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기 때문이다.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을 순종하였다" (23절). 즉 "방백들과 용사와 더욱이 다윗의 아들들" 까지도-그들이 솔로몬보다 윗자리에 있었으므로 출세에 있어서 그들 자신이 배반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솔로몬에게 충성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왕 되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시어 그를 그렇게 만들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그에게 복종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어서, 솔로몬의 통치는 처음부터 평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은 그보다 더 훌륭한 자였으나 왕위에 오를 때까지 퍽 많은 어려움과 오랜 시일이 걸렸었고, 여러 단계를 거쳐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다윗은 더 큰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더욱 시련을 당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복종하였다" (원문에 따르면 "그들은 솔로몬에게 손을 주었다"). 즉 그들은 그에게 충성될 것을 서원했거나(손을 허벅다리 아래에 놓는 것이 고대의 서원하는 의식이었다), 아니면 그들은 그를 섬기기 위해 그들의 손을 그들의 발 밑에 놓으려 할 정도로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2. 하나님은 그를 영예롭게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려는 자를 하나님은 영광되게 해주시기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을 심히 존대케 하셨다" (25절).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함께 하여 주셨으므로, 그들은 무엇인지 모를 위엄과 두려움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그가 한 모든 말과 모든 명령은 존경되어졌다. 그의 선조들 가운데 어떤 사사나 왕도 그와 같은 위엄을 지닌 자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이처럼 눈부신 생애를 살았던 자도 없었다.
Ⅱ. 이제 훌륭한 자였던 다윗은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성경기자인 역사가는 여기에서 그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끝내고 막을 닫고 있다.
1. 그가 통치한 햇수가 요약되어 있다(26, 27절). 그는 모세, 웃니엘, 드보라, 기드온, 엘리, 사무엘 그리고 그가 뒤를 이은 사울과 같이 40년간 다스렸다.2. 그의 죽음에 대해 짧게 언급되어 있다(28절). 그는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었다.
(1) 그는 이러한 것들을 풍성히 지니었다. 그는 매우 장수했고, 매우 부하게 살았으며,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많은 영광을 받았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군인이었으나 생명을 잃지 않고 계속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즉 군인 생활의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 남아 늙도록 살았으며, 그의 영예로운 침상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2) 그는 그런 부귀 따위를 만끽하였다. 그는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였다. 즉 그는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렸다. 그리하여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라(시 49:15).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도다" (시 23:4) 하고 말하면서 기꺼이 그런 것들을 떠나려 했으며, 기쁜 마음으로 죽었다. 선한 자는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귀하게 살 것이나, 결코 이것들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는 곳에는 결코 만족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3. 다윗의 생애와 통치의 자세한 이야기는 당시의 역사와 기록이 있다. 즉 다윗 생전에는 솔로몬이 썼고, 그의 사후에는 나안과 갓이 썼다(29절). 이외에도 그의 내치(內治)와 나라간의 싸움, 즉 "그가 지나간 시대의 사건" 들을 기록한 것이 있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비록 신성하지도 않고 거룩한 영감에 의해 씌어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정확한 교회의 역사는 훌륭하게 사용되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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