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역대상 0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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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4 지파(역대상 7:1-19)

여기에 나온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

Ⅰ. 잇사갈 지파는 야곱이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 (창 49:14)로 비유한 지파로써, 매우 근면했고 그들의 나라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였다" (신 33:18). 여기에 나타난 내용에 의하면, 다음 사실들을 알 수 있다.

1. 잇사갈 지파는 수효가 많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아내들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나라는 매우 비옥하여 목장을 대량으로 구입할 필요가 없었고, 백성들은 매우 슬기로와 모든 일을 손으로 해 낼 수 있었다. 백성들의 수효가 많다고 해서 불평하지 말고, 한 사람이라도 게을리 행하지 않도록 하자.

2. 잇사갈 지파 사람들은 용맹스러운 "용사" 였고(2,5절), "족장" (chief men)(3절)이었다. 그들은 작업과 사무에 잘 훈련되어 있어 유사시에 그들의 나라를 위해 일하기에 아주 합당한 사람들이었다. 각 가족들의 수효가-다윗 시대에 조사된 것이다-적혀 있는데 싸움터에 나갈만한 사람들은 모두 14만 5천명 이상에 달했다. 이 수효는 요압이 조사한 인구수(삼하 24장)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그와는 다른 계수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싶다. 왜냐하면 이 수효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였으므로, 다윗 왕의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적혀져 있기 때문이다(대상 27:24).

Ⅱ. 베냐민 지파에 대해 여기에서 약간 언급되어 있으나, 다음 장에서는 좀 더 많이 언급되어 있다. 이 지파에 속한 군사수는 6만명도 채 못되나, 이들은 모두 "큰 용사" 라고 전해지고 있다(7, 9, 11절).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였다" (창 49:27). 영광스럽게도 이 지파는 첫 번째 왕인 사울을 배출하였다. 또한 이 지파는 다른 지파들이 반역하였을 때도, 합법적인 왕가인 다윗 가문을 지지하여 그들의 영예를 한층 더하였다. 여기에는 아헬의 아들 후심에 대한 언급이 있다(12절). 단의 아들들은 후심이라 불리워졌으므로(창 46:23), 어떤 학자들은 아헬을 총칭적으로 후심 곧 다른 자의 아들들(곧 야곱의 다른 아들들을 뜻한다)이거나, 혹은 이방인의 아들들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이 되어서는 안 되었으나, 미가가 새겨 만든 상과 부어 만든 상을 세워 숭배하고 있었을 때, 그것은 바로 단 사람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Ⅲ. 납달리 지파(13절)의 첫 번째 조상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창세기 46장 21절에 있는 것과 같은 이름이다. 창세기에는 실렘이라 적혀 있으나, 여기에는 살룸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은데,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계보가 손실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Ⅳ. 요단 강 서편에 있는 므낫세 지파에 대한 족보다 있다. 또 다른 므낫세 지파에 관해서는 5장 23절 이하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다음을 관찰해 보자.

1. 한 남자가 아람 여인 곳 수리아 사람과 결혼하였다(14절). 그들이 일찍이 애굽의 속박을 받고 있을 때 그들은 그 민족들과 혼합되기 시작했다.

2. 비록 그 아버지가 수리아 사람과 결혼하긴 했지만,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마길은 베냐민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15절). 아마도 이것은 그가 그 아버지의 집의 불편한 점들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손들은 부모의 실수를 경고 삼아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3. 또 브단에 대한 언급이 있다(17절). 아마도 그는 사무엘상 12장 11절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자 가운데의 한 사람으로 언급된 브단과 같은 인물일 것이다. 므낫세 출신인 야일(삿 10:3)이 아마도 그 사람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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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과 아셀 지파(역대상 7:20-40)

여기에는 다음 두 지파가 언급되어 있다.

Ⅰ. 에브라임 지파. 이 지파가 한창 번성기일 때에 관한 큰 일들을 읽었다. 여기에는 그 지파가 유년기일 때 겪은 재난이 적혀져 있는데, 이것은 그 지파가 애굽의 속박을 받고 있었던 때인 것처럼 보인다. 이 재앙이-여기에 적힌 대로 7대가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기는 하지만-일어났을 때 에브라임 자신은 살아 남았다. 그러므로 나는 죽임을 당한 그 후손들은 요셉의 아들이었던 바로 그 에브라임의 아들이지 다른 에브라임의 자손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여기에 언급된 구절만 살펴 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에브라임 가문에 큰 재앙이 있었다. 가드 사람과 블레셋 사람, 그리고 장대한 자들은 그 가문의 많은 아들들을 죽였는데, 그것은 "저희가 내려가서 가드 사람의 짐승을 빼앗고자 한 때문이었다" (21절). 여기에서 누가 먼저 침입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애굽 땅에서 태어나" 이제 가드에 거하고 있는 가드 사람들이 고센 땅으로 기습해 와 에브라임 사람들의 가축을 몰아내고, 그들을 막으려 한 주인들을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재산으로 말미암아 위협당하고 배반당하는 것은, 그 성읍이 강하지 못한 때문이다. 또 어떤 학자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가 왔다고 추측하여 가드 사람을 약탈하기 위해 기습했으나, 그들의 무례와 경솔에 대한 쓰라린 대가만 받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려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다. 나는 오히려 가드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기습해 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인이 아닌 양치기로 많은 가축들을 돌보고 있었으므로, 그 이웃의 가축들을 취하는데 별 생명의 위험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 구절은 "저희가 가드 토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가드 사람들이 내려와서 그들의 짐승을 빼앗고자 하였음이라." 고 풀이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에브라임의 아들 사밧, 수델라, 에셀 그리고 엘르앗(그의 손자들)은, 라이트푸트 박사의 견해대로, 죽임을 당한 자들이었다. 야곱은 에브라임의 씨앗이 "큰 족속" 이 될 것을 예언하였으나(창 48:19), 그 꽃은 봉우리째 이렇게 짓밟혀 버렸다. 하나님의 섭리들은 가끔 그의 약속을 배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들은 실제 그 약속을 영광되게 하며 실현시키며, 오히려 더욱 빛내준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요셉의 후손이었고 아직도 요셉이 살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의 힘이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었다. 칼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삼켜 버린다.

2. 이에 대해 그 자손들의 아버지는 매우 상심했다. "에브라임이 여러 날을 슬퍼하였다." 같은 핏줄을 이어 받고 난 어린 자손들이 부모보다 먼저 죽어가는 것만큼 연로한 부모들을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없다. "이 자손들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리라" 고 생각했던 바로 그들이 먼저 죽는 것을 보는 것은 흔히 오래 산 자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준다. 에브라임이 이러한 고통에 처했을 때 "그 형제가 와서 위로한 것은 형제답고 우애있는 일이었다. 즉 그들은 와서 그에게 동정과 관심을 표했고, 이 슬픈 섭리 하에 있는 그를 돕고 진정시키려 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야곱이 오른 손을 그의 머리 위에 얹고, 그의 자손들이 번성케 되리라고 한 약속의 말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을 것이다. 비록 그가 바라는 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집에 함께 하시지 않아 그 집이 파멸되어 슬픔에 빠졌다 할지라도 약속은 확실한 것이었다(삼하 23:5).

3. 하나님께서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 셋을 주신 것과 같이(창 4:25), 에브라임에게도 노년에 다른 자식을 주어, 어느 정도 그 재앙을 회복하게 해 주셨다. 이처럼 애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위로를 주시며, 십자가의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그를 곤고케 한 날 수대로 기쁘게 하실" 때, 우리는 거룩한 섭리 안에 있는 은혜와 온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과 같다(시 90:13, 15). 그러나 에브라임의 집안에 다시 아들이 태어나는 기쁨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슬픔을 잊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 집이 재앙을 받아" 애통하는 중에 아들이 태어났으므로 그는 그 아들에게 브리아 곧 재앙 중에라도 우울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우리가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여 우리의 심령이 "낙심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렘 3:19, 20). 고통 많은 이 세상에 "여인으로부터 태어나는 자" 에게 브리아라는 이름보다 더 적합한 이름이 어디 있겠는가?

에브라임 가문을 더욱 영예롭게 하는 일이 생겼다.



(1) 즉 그 지파의 딸 세에라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 그 자신의 힘으로 성읍들을 세웠다는 점이다. 그 성읍들 가운데 한 성읍은 그녀의 이름을 따 우센 세에라라고 불렀다(24절). 현숙한 여자는 유력한 남자와 마찬가지로 가문의 큰 영예이며 축복이다.

(2) 이 지파의 한 아들이 가나안을 정복했는데 그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 였다(27절). 이로써 에브라임 가문에 있었던 재앙도 충분히 회복되었다. 아마도 이전에 가나안 사람들이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행한 재앙에 대한 분노가 그로 하여금 더욱 용맹스럽게 싸우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Ⅱ. 아셀 지파에 대한 기록. 이 지파의 주요한 인물들의 이름이 여기에 적혀 있다. 그들의 군사 수는 모두 2만 6천명으로써, 다른 지파에 비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뽑힌 큰 용사요 방백의 두목이었다" (40절). 그들이 많은 군사들을 단련시키기를 바라지 않고, 오직 출전하고 기꺼이 도울 수 있는 소규모의 싸움들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지혜로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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