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역대상 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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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유다의 아들들(역대상 4:1-10)

에스라가 여기에서 유다 족속의 명부에 특별하게 관심을 표명한 이유는, 의심할 바 없이 다른 족속들보다 가나안에 오래 잔존했었고, 기간이 경과함에 따라 이것이 기록된 당시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지파가 부족 지파인 시므온, 베냐민, 그리고 레위와 더불어 유다 왕국을 세웠으나, 다른 족속들의 대다수는 앗수르아에 남아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본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야베스이다. 야베스가 누구의 아들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고 그가 얼마나 살았는지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8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아하헬 족속들 중의 하나를 이룬 자였다.

Ⅰ. 야베스의 이름에 대한 이유. 그의 어머니가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9절)는 이유로, 그 이름을 그에게 주었다. 모든 아들들은 수고로이 태어난다(왜냐하면 여인에게는 "수고로이 자녀를 낳으리라" 고 선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자녀는 다른 자녀들보다 훨씬 더 어렵게 난다. 보통 출산의 수고는 "아들이 난 기쁨" 때문에 후에는 잊어버린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수고가 너무나 특별한 것이어서, 그 아이가 할례받을 때까지도 기억된 것 같으며, 그 기억이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남아 있었던 것같이 보인다. 아마 이 어머니는 라헬이 고통 중에 죽어가면서 그녀의 아들을 베노니라고 부른 것과 같이, 그를 야베스라고 불렀을 것이다. 혹은 그 어미가 건강을 회복했다고 할지라도, 이름은 그렇게 붙였을 것이다.

1. 그렇게 붙인 이유는, 그것이 그녀에게 계속 기억에 남아 그런 수고를 겪으면서도, 그 고통 중에서도 자기를 붙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하여서였다. 우리가 고통의 날에 겪었던 일들에 대한 생각을 항상 소유하여 떨림으로 그 기쁨을 배우기 위하여, 우리의 고통을 종종 회상하는 것은 유용한 일이 될 수 있다.

2. 또한 그 어머니가 그를 낳아서 보내 준 이 세상이 얼마나 큰 눈물의 골짜기이며, 그가 "고통의 날은 많고 기쁨의 날은 적다" 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케 하기 위하여서였다. 그의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그 고통의 의미가 그의 영혼을 진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나 큰 고통 중에 그를 이 세상으로 낳아준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귀케 하고 그녀를 평안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일에 수고할 수 있도록 각성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기의 양친께 보답하는 것은 자녀의 경건한 의무이다(딤전 5:4)

Ⅱ. 야베스의 성품의 탁월함. "그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였다" 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형제들보다 더 합당한 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들보다 위험이 있었다. 형제들도 모두 아름답게 행하였으나 그는 그보다도 뛰어났다. 이제 그의 어머니가 그로 인하여 겪은 수고는 충분히 보상되었다. 그녀의 모든 아들 중에서 그 아들은 그녀에게 가장 귀한 값을 치르었고, 그녀는 그를 통해서 가장 행복했으며, 고통에 비례하여 그만큼 기쁨도 컸다(시 90:15). 우리는 그가 그 형제보다 존귀했다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가 재산을 크게 일으켰는지, 보다 훌륭한 행정 장관이었는지, 혹은 전쟁에서 눈에 띄게 공로를 세웠기 때문인지 그것은 모른다. 우리는 그의 학식과 신앙 때문에 그런 칭호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무엇보다도 한 개인에게 명예를 주기 때문이다. 야베스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탁월했다.

1. 학식에 있어서, 우리는 "서기관들의 족속이 야베스에 살았다" 는 것을 안다(2:55). 야베스란 도성은 아마 그의 이름을 딴 것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야베스가 유명한 율법박사요, 그 후에 많은 제자들을 남겼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그에 대하여 이렇게 돌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에스라가 이것을 기록할 때는 그의 이름이 잘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 신앙에 있어서도 뛰어났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음을 안다. 신앙에 대한 그의 열심이 그로 하여금 참으로 존귀케 했다. 그리고 기도로 하여금 그의 존귀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더했다. 참으로 위대해지는 길은 참으로 선하고 많이 기도하는 것이다.

Ⅲ. 그가 한 기도는 솔로몬이 지혜를 얻기 위해 한 기도와 같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행했으며, 하나님의 축복과 가호 아래 머물러 있었다. 따라서 그는 영달을 누렸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그의 매일의 기도를 차지한 제목들이었을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홀로 기도하고, 또 다니엘과 같이 그의 가족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그의 상례였다. 혹자는 그것은 그가 원수들과 싸우거나 위협을 받았을 특별한 경우에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그는 누구에게 기도했나? 이방인들의 어떤 신들에게 기도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요, 그만이 기도를 들을 수 있으며, 그만이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에게만 기도하는 자에게 향할 수 있는 눈이 있다. 그분은 그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요, 야곱이 씨름하여 승리하고 거기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은 하나님이다.

2. 그의 기도의 성질은 어떤 것이었나?

(1) (KJV의) 난외주에서와 같이 그 기도는 경건한 서약이었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시오면" 이라고 했다. 이 의미는 불완전하나, 야곱의 서약에서 쉽게 그 뜻이 충분해질 수 있다.-그리하면 "주께서는 나의 하나님이 되리이다" 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약속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약속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며, 그 자신은 완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쓰실 수 있도록 백지를 드리고 있는 셈이다. "여호와여, 만일 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실진대, 주께서 나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대로 행하소서. 나는 영원히 주의 명령과 처분에 맡겨져 있나이다."

(2) 본문에 따르면, 그 기도는 가장 열렬하고 열정적인 욕망을 가진 말이다. "오, 나에게 축복하소서" (KJV).

3. 그의 기도의 제목은 무엇인가? 그는 네 가지를 위하여 기도했다.

(1) 하나님이 참으로 그를 축복하도록 바라는 기도였다. "주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소서. 즉 나에게 거듭거듭 그리고 풍성한 축복을 하소서." 아마도 그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창 22:17)을 바랐을 것이다. 즉 "축복으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그 축복을 나에게도 내리게 하소서" 한 것이다. 영적인 축복이 최선의 축복이다. 그런 것으로 축복 받은 자들이 참으로 축복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실제적인 것들이요 현실적인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단지 축복을 원할 뿐이고, 하나님만이 그것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자들은 참으로 축복 받은 자들이다.

(2) 그의 지경(地境)을 넓히도록 기도했다. 그는 작업이나 전쟁으로 말미암아, 자기 할당으로 돌아온 것을 증가하여 번창케 하기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크게 하시고, 그 자신 안에서와 우리의 하늘의 가나안에서 우리의 몫이 크게 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3) 하나님의 손이 자기와 함께 하시도록 기도했다. 유다의 족속을 위한 모세의 기도는, 유다 자신의 "손이 스스로를 위해 만족하게 하소서" (개역: 싸우게 하소서)라는 것이었다(신 33:7). 그러나 야베스는 만일 "하나님의 손" 이 자기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즉 그의 능력의 임재가 없으면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일을 하게 하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은 참으로 우리에게 만족한 손이요 충만한 손이다.

(4) 그는 악에서, 즉 죄의 악에서, 고난의 악에서, 또 이것들이 그를 상치 아니하고 괴롭히지 아니하며 자기 자신을 참으로 "슬픔의 인간" 이 되지 않도록 그의 모든 원수의 책략에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다. 본래 그의 이름에는 하나의 암시가 있다.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뜻이다.

4. 그의 기도의 성취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그가 구한 것을 허락하셨다." 그에게 특별한 번영을 주셨고, 그의 기업에 성공을 주셨으며, 그의 연구에, 그의 세속적인 직무에, 가나안 족속들과의 싸움에 성공을 주셨다. 그래서 그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 가 되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를 경청하실 준비가 되어 있다. "하나님은 귀먹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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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工人)들의 집안(역대상 4:11-23)

이 본문에서 다음의 내용을 관찰할 수 있다.

1. 여기에 모든 공인(工人])들의 가족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모든 종류의 제조품들을 공급하는 수공 상인들이다. 이 분야에 있어서 남보다 재주가 있고 전문적이었다(14절). "공장(工匠)들이 마을" 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그러므로 공장들은 비천한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이들 장인들이 비록 동일한 상업으로 종종 서로 다투기는 했어도 함께 살기를 택했다 왜냐하면 서로 비교되는 문제들을 통해서 기술을 개선하고 서로의 평판을 지지 해주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2. 이들 중 한 사람이 바로의 딸과 결혼했다(18절). 바로란 애굽 왕들에 대한 일반적 명칭이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이 시작되기 전, 아직 요셉의 공로가 생생할 동안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그 나라 왕의 사위가 되었다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될 것이 없다. 모세와 같이 그 나라 궁정과 야합하기를 거절하는 이스라엘 사람은 거의 없었다.

3. 또 다른 사람은 "세마포 짜는 집의 아비" 가 되었다고 했다(21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베를 가장 잘 짜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그들의 영광으므로 그들 족보에 삽입한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대대로 이어가면서, 그들을 신사로 만들 목적이 아니고 장인(匠人)으로서 같은 직무에 전문가가 되도록 길렀다. 여기에 나오는 라아다는, 홍수 이전에 유발이 음악하는 자의 조상이 되고, 야발이 양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과 같이, 세마포 짜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후손은 마레사 성읍에 살았는데, 그곳의 주요 산물은 왕들과 제사장들이 입는 세마포였다.

4. 다른 가족은 "모압을 다스렸다." 그러나 이제는 "바벨론에서 노예가 되었다" (22, 23절).

(1) 그들이 "모압을 다스렸다" 는 것은 "옛 일들" 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마 모압 지방이 정복된 것은 다윗 때였을 것이고, 그 때 그들이 그리로 이주하여 그곳을 지배하였을 것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몇 세대 동안 살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기억에서 떠난 지 오래되었다.

(2) 그들의 후손이 지금은 옹기장이와 정원 가꾸는 자들이다. 이것은 생각하건대 그들이 바벨론에서 그 "나라 왕과 함께 살면서 그의 일을 위해" 지냈을 것이며, 그들의 기술로 말미암아 좋은 생업을 얻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포로의 기한이 끝나고 모든 동족들이 귀국할 때도 함께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지배권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후손이 어떤 상태로 위축될지 알지 못하며, 그들이 어떤 비천한 직업으로 살아가기에 만족할 지 모른다. 그러나 고통 중에 처해 있는 가나안으로 돌아오기보다는 "수풀과 산울들" 가운데 살고 싶어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이름들에 합당치 못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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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온의 아들들(역대상 4:24-43)

우리는 여기에서 시므온 족속의 계보를 보게 되는데(이 지파가 비록 큰 지파는 아니었지만) 이들은 특별히 이스라엘 종족 중에서는 족장들이었다(38절). 이 족속은 "크게 번성하였" 으나 "유다 자손 같지는 못했다" 고 한다(27절). 하나님이 번성케 한 자들은, 비록 그들이 자기들보다 더 번성한 사람들을 본다 할지라도 마땅히 감사해야 된다. 여기에서 몇 가지 내용을 관찰해 보자.

1. 그들에게 할당된 성읍들은(28절) 여호수아 19장 1절 이하에서 볼 수 있다. 이 성읍들이 다윗 왕 때까지 저들에게 속하였다(31절)는 말은, 10지파가 다윗의 집에서 이탈했을 때 시므온 자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성읍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다 경내에 살았지만 다른 편에 속하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2. 그 밖에도 그들이 차지한 땅이 있었다. 다윗의 집에서 떨어져 나온 이 족속의 사람들이 그 나머지와 함께 앗수르로 잡혀 갔을 때, 유다에 속해 있던 자들은 하나님의 소유로 분명히 인식하고 그들의 지경을 넓히겠다는 노력으로 번성하였다. 히스기야 왕 때에 오랫동안 위축되고 굴종되었던 시므온 자손들 중 한 세대가 이 대담한 노력을 하여 생기를 회복했던 것이다.

(1) 그들 중 어떤 자들은 저주 받은 함의 후손들이 살던 곳 곧 "그돌의 입구" 라고 불리어지는 아라비아에 있는 한 지경을 공격하여(40절), 그 땅의 주인이 되어 그곳에서 살았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의 경건한 통치에 영광을 더해 주었고, 그 왕의 나라가 대체로 번창한 것처럼 개개의 가문들도 번창하였다. 그들은 기름진 초원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땅은" 평온하였다고 한다. 앗수르의 왕들이 자기들의 주위 모든 땅에는 혼란을 가져왔으나, 이 땅은 그들의 소음에서 피할 수가 있었다. 아무도 해치지 아니하는 목자들인 그 주민들은 그들 자신들도 누구에게 해침을 받지도 않았다. 그래서 시므온 자손들이 들어와 그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할 때까지 그 땅은 풍요하였을 뿐 아니라 평화의 땅이었다. 비옥하고(오늘 날 우리와 같이) 광대하며 평온하고 화평스러운 땅에 사는 사람은, 우리의 거주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있다고 생각해야 될 것이다.

(2) 이 본문에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42, 43절) 네 형제들의 명령을 받는 500명이 세일 산을 쳐서 남은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그 땅을 차지하였다. 이제 함과 아말렉에게 내린 저주는 죽지 않았을지라도 중단된 것 같이 보이다가 다시 크게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므온에게도 나누어지고 흩어지리라고 했던 저주가 실현되었다(창 49:7). 그러나 그것은 축복으로 변했다. 즉 이와 같이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나라로 이주하여 온 시므온 가족들이 "오늘까지 거기 거하였다" 고 했기 때문이다(43절).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포로의 참화를 피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는 보호하려는 자들은 고통을 받지 않게 구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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