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몰락(열왕기 하 25:1-7)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을 거스려 반역하게 됨을 보았다(24:20 절). 그것은 자기의 멍에를 벗으려고 은밀히 계획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올바른 방법을 취하지도 않았었다. 여기서는 그와 같은 시도가 가져온 치명적 결과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된다.
Ⅰ. 바벨론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1절). 그 나라가 이미 그들의 수중에 들어 있는데, 무엇이 그들을 방해했는가?(24:2) 그들은 "그 성읍을 치려고 사면으로 토성을 쌓았다." 그들은 그 당시의 각종 전술을 사용하여 그 도성을 맹공하였고, 그 성 안을 죽음의 손아귀에 몰아 넣으면서, 생명을 부지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필수품을 차단하였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방패와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였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자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의 사면을 둘러쌌다. 죄로 하나님을 분노케 하고 떠나게 하는 자들은, 결국 "무수한 죄악이 자기들을 둘러 싸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2년 동안 이 포위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애굽 왕을 두려워하여 바벨론 군대가 물러났었다(렘 37:11). 그러나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그 도성의 주인이 될 때까지 결코 그 도성을 포기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Ⅱ. 이 포위 기간 중에 기근까지 덮쳤다(3절). 그래서 오랫동안 그들은 "그들의 떡을 달아서 조금씩 먹었다" (겔 4:16). 그래서 그들은 결국 그들의 폭식과 무절제, 즉 "떡의 풍족과 무절제한 섭식" 으로 인한 형벌을 받았다. 마침내 "그 땅의 백성들을 먹일 양식이 없게 되었다." 즉 일반 백성들과 군인들을 먹일 양식이 없었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약화되었고, 군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그들은 양식이 부족하여 자기 자녀들을 잡아 먹었다. 이 사건은 한 예언자가 예언했고(겔 5:10), 다른 한 예언자가 슬퍼한 것을 보라(애 4:3 이하). 예레미야는 왕에게 항복할 것을 간절히 권고했다(렘 38:17). 그러나 왕의 마음은 이미 파멸에로 굳어져 있었다.
Ⅲ. 드디어 그 성읍은 폭풍우에 휩쓸렸다. 즉 "무너졌다" (4절). 포위자들은 성벽에 구멍을 뚫고, 그들이 성 안으로 들어갈 길을 내었다. 그리고 포위당한 자들은 더 이상 그 성을 지킬 수 없음을 알고는 그 성읍을 떠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칼에 쓰러졌고, 승리에 찬 군사들은 그들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매우 분격하였음이 분명하다.
Ⅳ. 왕과 그의 가족과 그의 모든 대신들은 밤에 도망하였고, 그들이 도망간 비밀통로들은 그 포위자들에게 들키지 않았다(4절).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용감히 대적하리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물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달아나는 자의 발은, 하나님의 심판과 대항하여 싸우는 손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실패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항상 그가 이기실 것이다.
갈대아 사람들에게 왕의 도주 정보가 들어왔다. 즉 어느 길로 도망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곧 그를 뒤따라가 잡았다(5절). 유다 왕을 지키던 호위병들은 모두 흩어졌다. 각자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달아난 것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자신을 맡겼더라면, 그 보호는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하여 그는 곧 적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들이 그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 보자.
1. 그는 바벨론 왕에게 끌려 갔다. 그리고 자기를 왕으로 세워준 자에게 반란을 일으키며, 충성을 맹세해 놓고 도중에 배반하고만 사실 때문에 그는 전쟁 회의에서 심문을 받았다. 이 문제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합세하여 그와 다투었다(겔 17:16 이하 참조).그 때에 바벨론 왕은(유다와 바벨론 사이에 있는) 립나에 있었다. 그것은 그가 대내적으로는 그의 왕궁에 그리고 대외적으로 그의 군대에다가 명령을 내릴 태세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2. 비록 아직 어린 아이들에 불과했지만 "그의 아들들이 그의 목전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이 참혹한 마지막 광경을 그는 자기 눈으로 목격해야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줄곧 그의 정신에 커다란 비탄과 전율을 남겨 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의 자식들을 살해함으로써, 그들은 그의 어리석음에 분노한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시드기야에게 속한 자는 누구든 믿을 수 없으며, 그러므로 살려 두기에 적합치 않다고 선언한 셈이었다.3. 그의 눈이 뽑혔다. 이로써 그는 "불행한 자들에게나 고뇌하는 영혼을 가진 자들에게도" 주어지는 공통적인 인간 생활의 위안, 곧 태양의 빛을 박탈당했다. 이로써 그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조롱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권고를 받고도 항복하려 하지 않았다(렘 38:19). 그러나 그가 두려워했던 바로 그것이 한 증인과 더불어 그에게 다가왔으며, 분명코 그의 불행은 더해졌을 것이다. 벙어리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 얘기를 한다고 의심하듯이, 장님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을 비웃는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서로 모순된 것 같았던 두 예언들이 모두 성취되었다. 예레미야는 예언하기를,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데려감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렘 32:5; 34:3). 에스겔은 예언하기를, 그가 바벨론을 보지 못하리라고 했다(겔 12:13). 그러므로 시드기야가 그곳으로 데려감을 당했으나, 그의 양 눈이 뽑힘으로써 그 나라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생명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의 날을 끝냈다 하겠다.
4. 그는 "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는 눈이 멀었으므로 결박할 필요가 없었다(그의 보지 못함이 이미 그를 결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치욕을 더욱 주기 위해서, 그들은 그를 결박하게 했다. 보통 악인들은 쇠로 된 사슬로 매었다(시 105:18; 107:10). 그러나 그는 왕이었기 때문에 놋사슬로 결박했다. 그러나 그 금속이 보다 고귀하고 보다 가벼운 것이라 하여, 그것이 차꼬에 매여 있는 한은 그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불의의 고리에 매인 자들이 "재앙의 고리에 매이게 되더라" 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욥 36:8).
성전의 파괴(열왕기 하 25:8-21)
갈대아 군대는 그 도성이 그렇게 완강히 저항한 사실에 대하여 대단히 분노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그 도성을 취하면서 즉시 불사르거나 칼을 휘두르지 않았고(이런 때는 흔히 그런 일이 있는 법이다), 약 1개월 뒤(8절과 3절을 비교하라) 느부사라단을 파견하여 예루살렘의 파괴를 마무리지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나님은 이미 오랫동안 참으셨으나, 다시 그들이 회개할 여유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헛된 일이었다(하여튼 나타난 바에 의하면)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완악했고 그에 따라서 심판의 실행은 극도에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1. 그 도성과 성전이 불탔다(9절).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거주시키려고 어떤 거류민단을 이주시킬 계획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그 도성을 도둑들의 보금자리마냥 잿더미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의 궁전과 "대신들의 집" 이 불탈 때는(그 집 거주자들이 그들의 죄 때문에 그 집들을 불타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조금도 의아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이 전" 이 이 불길 속에서 사라져야 하며,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집이 불에 타야 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사 44:11). 다윗이 준비하여 솔로몬이 막대한 경비를 들여 지은 그 성전(왕상 9:3)-그 위에 항상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자리잡고 있던 그 집-그것은 이 화재에서도 타다 남은 부지깽이처럼 화제를 면할 수 없단 말인가? 그럴 수 없다. 그것도 하나님의 심판의 불길을 막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 웅장한 건축물은 재로 변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마 그 안에 있던 법궤는-블레셋 사람들이 그것을 오용하다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었는가를 적군들도 들었을 것이기 때문에-감히 적군들도 노획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며, 법궤의 친구들 중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관하려고 관심을 쏟지도 않은 것 같다. 만일 그러했더라면, 우리는 제2의 성전에서 그 법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경 저자들 중의 한 사람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그 법궤를 성전에서 내어다가 요단 맞은 편 느보산 동굴로 옮기어 숨겼다고 말한다('마카비하' 2:4, 5). 그러나 당시 예레미야는 철저히 감금된 포로였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그 성전이 불타게 함으로써, 종교의 생명과 권능이 무시되는 때에는 하나님도 그의 예배의 외형적 허위에 거의 무관심 하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 백성들은 성전을 신뢰했다. 그래서 마치 그것이 자기들을 죄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렘 7:4).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이 그 성전을 모독하면, 그것은 한갖 거짓 된 피난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게 하셨다. 이 성전은 약 420년 혹은 430년 간 서 있었다.
그 백성들은 그 성전에 관한 약속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므로, 그 약속들은 복음의 성전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복음의 성전은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처이다. 제1의 성전도 제1의 성전이 갈대아 사람들에 의해서 불탄, 그 달 그 날에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 불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사실인데, 이것은 조세푸스(Josephus)의 견해이다. 그 날은 8월 10일이라 한다.
2. 예루살렘의 성벽을 파괴했다(10절). 그것은 승전한 군인들이 예루살렘이 그토록 오랫동안 저항한 사실에 보복하려는 듯한 행동이었고, 적어도 또 다른 기회에 있을지도 모를 그러한 반항을 미리 방지하려는 작전과도 같았다. 죄는 사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버리며, 그들의 방어책을 제거한다. 이 성벽들은 느헤미야 시대까지는 조금도 수리되지 못했다.3. 그 백성의 잔류자들은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가게 되었다(11절). 주민의 대부분이 이미 칼과 기근으로 죽었거나 그들의 왕이 도망할 때 도망갔다(5절에 기록된 바대로 "모든 군사가 저를 떠나 흩어졌다" 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갔는데, 그 수효는 도합 832명에 불과했다(렘 52:29). 그리고는 단지 "그 땅의 빈천한 자만 남겨 두었다" (12절). 그들은 갈대아 사람들을 위해 그 땅을 경작하고 포도원을 손질하게 했다. 때로는 빈곤이 하나의 방패막이 된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자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을 억압했던 부유한 유다인들이 이제 나그네들, 아니 죄수들이 되어 적국에 가 있었을 때, 그들의 멸시를 받고 억압을 받던 빈천한 자들은 자기 나라에서 평화와 자유를 누렸다. 하나님의 섭리는 때때로 이런 식으로 교만한 자들을 현저히 낮추시고 낮은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4. 놋그릇과 성전의 부속물들이 옮겨졌다. 금은 그릇들은 대부분이 그 이전에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하나님의 전의 안정과 힘을 상징하는 "야긴" 과 "보아스" (왕상 7:21; 대하 3:15-17)라는 두 개의 유명한 기둥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 기둥의 놋은 바벨론으로 가져갔다(13절). 상징의 내용이 되던 실체들이 죄를 지어 사라져버린 때에, 상징들만이 버티고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아하스는 불경하게도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 내고" "놋바다를 돌판 위에다가 두었다" (16:17). 그러므로 곧 물두멍과 놋바다가 원수의 손에 넘어간 것은 정당한 일이다. 하나님의 규례를 업신여기고 악용하며 못쓰게 만드는 자들에게서 하나님이 도로 그 규례를 빼앗아 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는 정의로운 일이다.
또 금과 은이 섞여 있던 것들도 옮겨졌다(15절). 그러나 이번에 가져간 약탈품의 대부분은 놋이었고, 그 양이 막대하여 "중량을 헤아릴 수 없다" 고 했다(16절). 사역자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쓰던 그릇들을" 옮겨 감으로써 그 사역자들의 집무는 중단되고 말았다(14절). 하나님 예배의 은덕을 오랫동안 경시해 왔고, 그보다는 거짓된 예배를 더 좋아한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예배에 필요한 기물들을 빼앗아 버리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정당한 일이었다. 많은 제단을 가지려는 자들은 하나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5. 신분이 높은 사람 몇 사람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거기에는 대제사장 스라야(에스라 7:1 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에스라의 아버지인 듯하다), 부대제사장(기회가 오면 대제사장을 대행할 제사장), 그리고 세 사람의 성전 문지기, 군대 장관, 왕의 시종 5사람(이후 그들을 7명으로 늘였다. 렘 52:25), 전쟁의 서기관 혹은 군대의 주계관(主計官), 그리고 그 도성에 숨었던 일반인 60명이 살해되었다. 상당한 지위에 있던 사람들은 바벨론 왕에게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19-21절). 그러므로 이제는 죽음의 고통이 지나갔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벨론 왕의 보복심은 그들이야말로 자기를 가장 괴롭힌 자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그들이야말로 이러한 폐허에 의해서 처벌받게 된 불경과 우상 숭배의 장본인들이라고 보았던 것이다.이것으로 그 재앙은 종결되었다. 여호수아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된 지 약 860년 후에, "유다는 사로잡혀 그 땅을 떠나게 되었다" (31절). 이리하여 성경이 이루어졌다. "여호와께서 너희가 알지 못하는 나라로 너희와 너희가 세울 왕을 끌어 가실 것이다" (신 28:36). 죄가 그들의 조상들을 40년 동안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데 이제 또 죄가 그들을 쫓아낸 것이다. 여호와는 그가 집행하는 심판을 통해서 그가 한 말씀을 이루신다(암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유다 백성의 분산(열왕기 하 25:22-30)
위의 기록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보게 된다.
Ⅰ. 남은 사람들의 흩어짐이나, 예루살렘 도성은 완전히 황폐케 되었다. 그 땅에는 그 난국을 빠져나가 "노략물 대신으로 자기들의 생명을 얻은" (이것은 별로 은총이랄게 못되었다) 자들이 다소 있었다(렘 45:5).
1. 이제 그들이 얼마나 좋은 처지에 놓였는지를 살펴보자. 바벨론 왕은 그들 중의 한 사람인 그달랴를 택하여, 자기 밑에서 일하는 그들의 통치자와 보호자로 지명했다. 아마 그는 매우 선한 사람이었을 것이며, 최악의 사태를 최상으로 이용하려는 자였을 것이다(22절). 그의 아버지 아히감은, 왕들이 예레미야의 죽음을 맹세했을 때에, 예레미야에게 호의를 베풀고 보호했던 사람이다(렘 26:24). 아마 예레미야의 권유로 인하여 이 그달랴는 갈대와 사람들에게 가서 항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바벨론 왕은 그를 신임하여 정권을 맡긴 것 같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사무엘 시대에 유명했던 곳인 베냐민 부족의 땅 미스바에 머물러 있었다. 시드기야를 떠나 도망했던 자들이 그리로 와서(4절), 그의 보호를 받았었다(23절). 그리고 그는 그들이 만일 마음을 돌이키어 바벨론 왕의 통치 아래 평화롭게 지낸다면 그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확약을 했다(24절). 그달랴에게는 제왕의 위풍과 권력이 없었다. 그러나 그달랴는 역대의 유다 왕들 중의 많은 왕들보다는 그들에게 더 큰 축복이 될 수가 있었다. 특별히 그에게는 예레미야와 같은 추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당시 그들과 함께 있어서, 그들의 일에 직접 관여하고 있었다(렘 40:5, 6).2. 그달랴가 통치권을 인수한 지 2개월도 못되어 그가 죽음으로써, 그들에게는 곧 매우 치명적인 불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현재로서는 유다인들의 완전 근절이 이미 작정되어 있으므로, 그 유다인들이 스스로 다시 그 땅에다 뿌리를 내리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헛된 일이었다. 온 땅이 송두리째 뽑혀야 한다(렘 45:4). 그리하여 이 기대에 넘친 정착은 산산이 좌절되었다. 그것도 갈대아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들 중의 몇몇 사람에 의해서였다. 그들에게 평화가 될 길이 그들의 눈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 다시 잘 지낼는지 그때를 알지 못했고, 그것을 듣고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1) 그들에게 자기들 자신의 선한 통치자가 있었으나, 갈대아 사람들에 대한 증오에서 그를 살해했다. 즉 그 왕은 느브갓네살이 지명한 자였기 때문이었다(25절). 왕족들이었던 이스마엘은 그달랴의 출세와 그의 밑에서 백성들이 행복하게 정착하는 것을 시기해서, 비록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제안할 수는 없었지만, 그달랴를 파멸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달랴와 그의 모든 친구들, 즉 유다인들과 갈대아인들까지 모두 죽였다. 느브갓네살도 다윗가(家)의 타락한 이 후손처럼 그렇게 유다인의 평화에 악한 원수 노릇을 하려 하지는 않았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2) 그들은 아직은 자기들의 그 좋은 땅에 있었지만, 그것을 버리고 이제 애굽으로 갔다. 그것은 갈대아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26절). 갈대아 사람들은 그달랴가 살해된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분이 상했을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남았던 자들이 그것은 다만 이스마엘과 그 일당의 행위였다고 주장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항변을 했더라면-생각컨대 그들은 결백했던 자들이요, 아니 오히려 그 사건으로 인해 크게 고통을 당했던 자들이다-그들이 그 사건 때문에 처벌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갈대아인들을 두려워한다는 핑계로 예레미야의 충고에 반대하여, 모두 애굽으로 갔다. 아마 그들은 거기에서 애굽 사람들과 점차로 동화되어서, 다시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 자신의 어리석음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철저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굽이 그들의 최후를 맡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저 경고의 장(章)의 마지막 구절이 성취되기 위해서였다(신 28:68). 즉 "여호와께서 다시 너희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다" 라는 경고였다. 이 사건은 예언자 예레미야에 의해서 더욱 자세히 기록되었다(렘 40:-45:). Quaeque ipse miserrima vidit et quorum pars magna fuit-그는 자기가 보아야만 했던 그 장면 속에서, 우울한 역을 맡았다.
Ⅱ. 포로가 된 왕을 회복시켜 주었다. 시드기야에 관하여는, 그가 눈이 멀어져서 바벨론으로 데려간 뒤로는 더 이상 듣지 못한다. 그러나 아마 그가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죽었을 때는 다소 영예롭게 장사되었던 것 같다(렘 34:5). 여호야긴 혹은 여고냐는 항복하였다(24:12). 그래서 에윌므로닥은 그의 아버지 느브갓네살이 죽자 곧 왕좌에 오르고,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석방하여(그는 거기서 37년을 갇혀 있었으므로, 이제 55살이 되었다), "그에게 친절히(선히) 말하였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포로로 잡아왔던 다른 어떤 왕들보다도 그를 더욱 존경하였고(28절), 그에게 죄수복 대신 왕복을 주고, 그를 자기 궁전에 두면서(29절), 그와 그의 가족에게 그의 지위에 어울릴 정도의 은급을 지급하였다. 곧 "날마다 받는 정수(定數)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다" 고 했다.
그것을 이렇게 생각해 보자.
1. 여호야긴의 처지에 매우 행복한 변화였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감금과 불명예 가운데서 지낸 뒤에 명예와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과 그가 오랫동안 죄인의 궁핍과 비참에 익숙하게 된 후에 왕궁의 풍성함과 열락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매우 어둡고 지루한 밤이 지난 뒤에 아침이 돌아온 것과 같았다. 어떤 사람이 장기간 동안 불행만을 보고 살아왔다 하여 그가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하지는 말자. 즉 가장 비참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의 일에 어떤 축복을 주실지는 모르는 일이요, 그들이 "곤고히 지낸 날수대로" (시 90:15) 그들이 어떤 위안을 받게 될지,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고통받던 성도들의 죽음은 그 성도들에게 마치 여호야긴이 당한 그런 변화를 준다. 즉 죽음이 그 성도들을 감옥에서 석방할 것이고, 그 몸에서 죄수복을 벗기고, 그들의 장래를 위해 앞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또 죽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랑스런 자유인 왕 중 왕의 보좌와 신탁으로 그 성도들을 내보낼 것이다.
2. 에윌므로닥은 매우 관대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포로 된 자들에게 멍에를 너무 무겁게 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으로서의 다정한 마음과 왕으로서의 명예로써 그 멍에를 보다 가볍게 해 주었다. 에윌므로닥은 그의 권력 밑에 있던 모든 왕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특히 그 중에서 여호야긴이 더 큰 은혜를 입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 이유가 다윗과 솔로몬과 같은 유명한 조상들의 명예와 그의 가문의 유구한 역사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민족들의 왕들은 아무도 한 집안에서 유다 왕가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왕위를 계승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유다 전승에 의하면, 에윌므로닥 자신도 당시에 어떤 실수로 자기 아버지에 의해서 투옥되었었는데, 그때야 그는 제 정신이 들었고, 그 감옥 안에서 여호야긴과 친교를 맺었고, 그 결과로 그가 권좌에 오르자마자 고통받는 자에게, 그것도 함께 고난을 받던 그 여호야긴에게 이러한 친절을 보인 것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에윌므로닥이 좋은 감화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가 여호야긴에게 이런 호의를 베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3. 유배 중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격려를 보내며, 적당한 때가 오면 그들이 석방되리라는 그 믿음과 소망을 지지해 주는, 하나님의 섭리의 자비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그들이 유배를 당한 바로 한밤 중에 일어났다. 70년 중에 36년이 지나갔으나, 아직 거의 같은 연한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때에 자기들의 왕이 그렇게 진출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적당한 때, 곧 정해진 그 시간이 돌아오면 그들도 석방되리라는 것을 보여 주는 고무적인 전조였을 것이다. "정직한 자에게는 암흑 중에서도 빛이 일어나서" (시 112:4), "구름이 낀 어두운 날" 에도 희망을 지닐 수 있도록 격려를 주게 될 것이니, 그들은 "어두워 가는 때에도 빛이 있으리라" (슥 14:7)는 희망 속에 살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곤경이 닥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말자.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