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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다시 찾은 하나님의 말씀(열왕기 하 23:1-3)

요시야는 하나님에게서 메시지를 받았으나, 예루살렘의 멸망은 막지 못하고 자기의 영혼만을 구원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절망 가운데 주저 앉아서, 자기의 나라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기 의무를 다하려고 했고, 그 일을 하나님께 맡겼다. 공적인 개혁 사업은 이미 결의된 사실이었다. 만일 어떤 일이 이미 경고된 그 파멸을 막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개혁 사업을 위한 준비를 엿보게 된다.

1. 그는 총회를 열었다. 즉 대신들과 장로들과 장관들, 혹은 유대와 예루살렘의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 곧 일반 사역자들과 특별 사역자들을 총망라하여 함께 모았다. 그래서 그들이 모두 그 일에 개입함으로써, 그 일이 국가적 행사가 되게 했다. 따라서 더욱 국가의 심판을 막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출석하라는 소환을 받았다(1, 2절). 그래서 그 사업은 보다 엄숙하게 될 수 있었고, 그들이 모두 그 일을 돕고 조언할 수 있음으로써, 나아가 그 일에 반대하였던 자들도 이제는 다른 반대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의회란 훌륭한 왕들의 세력과 명예에 피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큰 도움이 된다.

2. 왕은 이 협의회에서 연설을 하는 대신 그들에게 율법책을 읽어 들려 주라고 명하였다. 아니 그 자신이 그것을 읽었던 것 같다(2절). 율법에 큰 감동을 받은 자들은, 역시 자기들도 읽어 보고 싶어하는 법이다. 요시야는 자기가 율법을 낭독한다고 하여 자기 자신을 격하시킨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솔로몬도 자기가 설교자가 되는 것이 자기를 격하시킨다고 생각지 않았으며, 다윗도 자기가 하나님의 집 문지기가 되어도 격하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렇게 요인들의 협의회를 여는 외에는, "유다의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의 회합을 열어 그 율법을 읽어 듣게 하였다. 제왕들이 자기 나라 안에 성경의 지식을 장려하는 일은 진실로 그들의 이익이 된다. 만일 요시야가 율법에 의해 통치하려는 결심처럼 그 백성들도 그렇게 확고하게 율법을 좇아 순종하기로 결심하게만 된다면, 그 나라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성경을 알려고 애쓴다. 그리고 권세 잡은 모든 자들은 그 지식을 보급하려고 애써야 한다.

3.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확증하기 위해 율법을 제안하는 대신에, 그들이 모두 일심으로 하나님과 약속해야만 할 한 회합을 제안했다(3절). 그 율법책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약속한 계약의 역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그때에는 하나님도 당신의 역할을 다하시리라는 것을 결코 의심치 않았다.

(1) 그 계약은, 그들이 여호와를 좇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의 뜻과 규례와 섭리에 응하여 그의 모든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의 모든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 곧 도덕적, 의식적, 재판상의 모든 계명들을 인식하고, "마음과 정성" 을 다하여, 모든 가능한 관심과 주의, 성실과 열심, 용기 그리고 결단력을 다하여 그것을 준수해야만 하고, 나아가 이 계약의 약속에 의지하면서 이 계약의 조건들을 성취해야 한다.

(2) 먼저 계약을 한 자는 왕 자신이었다. 그는 기둥 곁에 서서(11:14 절), 자기는 이 계약에 동의한다는 뜻을 공표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할과 특히 그들이 순종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에게 줄 수 있었던 모든 장래를 확신시켰다. 하나님께 구속되는 것이 군주 자신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하여 또 "모든 백성들이 그 계약을 좇기로 했다." 즉 계약에 대한 그들의 승인을 나타냈고, 그것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최대한으로 엄숙하게 우리 자신의 의무를 지키는 것이 좋다. 그리고 특히 이 악명 높은 죄와 타락에로의 퇴행이 있은 후에 시기 적절하게도 이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다. 정직한 생각을 품는 자는 적극적인 계약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즉 단단히 단속하면, 잃는 법이 없다.

 

23:2 없음.

 

23:3 없음.

 

23:4

우상 숭배의 타파(열왕기 하 23:4-24)

우리는 과거 유대 역대 왕들의 전 역사를 통해서 일찍이 당면해 보지 못했던 개혁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된다. 그것은 모두 가증스런 것들을 제거해 버리고 영광스러운 선(善)을 수립해 나가는 개혁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다.

1. 여기에 제거된 것으로 나타난, 그렇게 수많은 사악한 것들이 허용되어 왔고 또한 그처럼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2. 이런 사악한 것들을 제거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 희망적인 정리 사업에 의해서 그처럼 행복한 전망을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이 2~3년 내에 완전히 멸망해 버렸고, 이러한 개혁조차도 예루살렘을 구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에는 대부분의 백성들이 개혁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리라" (렘 6:29, 30).

여기서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 보자.

Ⅰ. 수많은 사악한 것들이 그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들이다. 하나님이 알려졌던 유다에, 그의 명성이 떨쳐졌던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거하셨던 살렘이나 시온에 그와 같은 가증한 것들이 있다면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요시야 왕은 18년 간 통치했고, 그 자신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고, 율법에 따라 신앙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가 우상 숭배를 조사하고 나서 파괴해 버린 그 엄청난 쓰레기더미는 좀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1. 솔로몬이 세웠던 성전으로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드리는 여호와의 집에서까지도 바알과 "아세라 상 및 하늘의 일월성신" 에게 제사를 드리는 데 사용된 그릇이나 여러 가지 용기들이 발견되었다. 비록 요시야 왕이 우상 숭배를 금지했지만, 여전히 우상 숭배를 위해 제작된 그릇들은 성전에서조차도 귀중히 보존되었고, 금령이 해제되면 언제나 다시 사용될 수 있도록 보관되었다. 아니 아세라 목상도 성전에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6절). 어떤 사람은 그것을 아세라 목상과 같은 비너스의 상이라고 생각한다.

2. 바로 "여호와의 전의 입구에" 종교적인 목적에 쓰이는 말들을 위해 마구간(생각이나 할 수 있으랴!)을 마련했다. 마치 "달리기를 기뻐하는 용사" (시 19:5)에게 말이 필요하듯이, 태양에게도 말이 필요한 양 "태양을 위해 드린" (11절) 거룩한 말들을 위한 마구간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그토록 감탄해 마지 않던 그 태양의 신속성을 그런 식으로 과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앙은 없더라도 조그마한 철학(생각)이라도 지니고 있는 자라면 능히 알아채고 부끄러워할 그런 수치들, 곧 태양의 병거에 대한 시적 공상에다 자기들의 신앙을 맞추었던 것이다. 어떤 자들은 말하기를, 그들이 그 말들을 매일 아침마다 솟아오르는 태양을 추앙하기 위해 타고 나갔었다고 한다. 그들은 태양을 향해 달리는 전차를 몰고 나갔으며, 그 전차들을 숭상했다. 이상한 것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들까지도 이처럼 "그 생각이 어리석어졌다" (롬 1:21)는 점이다.

3. 바로 "여호와의 전 옆에 소돔 사람들의 신당들이 있었다." 그 신당에서는 가장 변태적인 여러 가지 음탕하고 더러운 행위들이 자행되었으며, 심지어 종교 의식이란 구실 아래서 그들의 불결한 신들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다. 육체적이고 영적인 매음 행위가 함께 자행되었으며, 백성들이 단념하게 되었던 그 부도덕의 결과는 결국 그들의 망상에 대한 형벌이 되었다. 그들의 하나님을 욕되게 한 자들은 그들 자신들을 욕되게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다(롬 1:24 이하). 아름다운 비너스 상을 둘러쌀 천막의 휘장을 짜는 여인들이 있었으며(7절), 그곳에서 우상 숭배자들은 음란한 행위를 행했고, 또한 "하나님의 전에서도" 그렇게 했다. 그러한 행위들은 바로 아버지의 집을 장사꾼의 집으로 만들어버린 사악한 행위였고, 더욱 나쁜 것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이며, 최악의 것은 하나님과 성전의 거룩성을 뻔뻔스럽게 무시해 버리고 창녀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데 있다(Horredum dictu!-말하기도 무섭도다!). 바울 사도가 그들을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자들" 이라고 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 궁전에서나 "아하스의 다락방 지붕에서" (12절) 발견된 수많은 우상 숭배의 제단들이 있었다. 그들의 지붕은 평평했기 때문에, 집들을 산당으로 만들어 우상 숭배 제단(렘 19:13; 습 1:5), 즉 가정 제단을 만들었다. 유다 왕들도 그렇게 했으며, 요시야 왕도 가령 제단을 사용치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 당시까지 그것들은 잔존해 있었다. 므낫세 왕은 하나님의 전 안에다 우상을 위해 제단을 세웠다. 그가 회개하고는 그 제단을 옮겨서 "도시 바깥으로 내 버렸지만" (대하 33:15), 그 모든 제단들을 파괴하지는 않았으며, 그 아들 암몬이 아마 그 제단을 성전 뜰로 다시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데 요시야는 그 제단들을 발견하고는 "그들을 파괴해 버렸다" (12절).

5. 예루살렘 바로 근처에 있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이란 데가 있었는데, 거기에는(음란하게 더럽고 잔인한 신) 몰록의 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몰록의 상에다 희생 제물로서 자기들의 자녀들을 불 속을 통과하게 하는 자들이 있었으며, 다른 자들은 자녀들을 바쳐서 불에 타 죽게 했다. 이것이야말로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이다(합 2:13). 도벳(Tophet)은 북이라는 뜻의 toph에서 왔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자기 자녀들을 불태우면서 그 비명을 듣지 않으려고 북을 쳤기 때문이리라.

6. "예루살렘 앞에 솔로몬이 세운 여러 산당들이" 있었다(13잘). 그 산당들에 있는 제단과 주상들은 아마도 선대의 경건했던 왕들이 옮겨 놓았거나 솔로몬 자신이 죄를 회개하고 나서 옮겨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건물들의 일부는 요시야 왕 때까지도 그대로 존속해 왔다. 종교에다가 타락을 끌어들이는 자들은 그 타락이 얼마나 멀리까지 미치며, 또 얼마나 오래도록 계속되는가를 알지 못한다. 유구하다는 것이 진리의 확실한 증거는 아니다.

전국에 걸쳐 산당이 있었으니,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며" (8절), "통치자 집의 문전 입구와 성문에도 산당이 있었다." 이러한 산당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왕들은(패트릭 주교의 생각에 의하면) 성읍의 보호를 수호신에게 부탁하여 빌면서 번제를 드렸다. 아마도 성읍의 통치자에게도 자기의 penates-가정 수호신을 위해 개인적인 제단이 있었을 것이다.

7. 우상 숭배를 하는 제사장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이 모든 우상 숭배의 제단에서(5절) 그 마림 곧 검은 사람들-검은 옷을 입은 자들을 시중했다(습 1:4 참조). 오시리스 신에게 희생 제물을 드리는 자들, 또는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거나(겔 8:14) 지옥의 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애도자처럼 검은 옷을 입었다. 유다의 왕들은 우상 숭배하는 제사장들을 기용하여 "산당에서 번제를 드리도록 임명했다." 아마도 그들 중에 아론 집안의 제사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하여서 자기들의 신을 모독했다. 그리고 전혀 제사장직의 권리를 가지지 못한 자들도 임명되었는데, 그들은 바알에게 분향을 드렸다.

8. 마술사와 박수, 그리고 "신접한 자" 와 같은 자들이 있었다(24절). 마귀를 자기들의 신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마귀들의 신탁을 따른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Ⅱ. 의로운 요시야 왕은 우상 숭배의 온갖 유적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이와 같은 처사는 만군의 여호와께 대한 충성심과 그 하나님을 거스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거룩한 의분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은 어떤 것도 그 앞에 설 수 없다. 율법은(신 7:5)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 유적들을 모두 철저히 파괴하라고 명령했는데, 하물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 숭배 유물이야 어떠했겠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 숭배 유적들은 보다 더 사악하고 속되고 불경스런 것들이었다.

1. 그는 힐기야와 다른 제사장에게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그들이 해야할 직분이었다(4절). 바알을 위해 만들어졌던 모든 그릇들은 다 내다 버렸다. 그런 그릇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에 다시는 사용될 수 없었고, 더욱이 일상적인 용도로도 다시는 사용되지 않게 했다. 그들은 모두 불태워졌으며, 그 재는 모두 벧엘에다 뿌렸다. 벧엘은 우상 숭배의 공통적인 원천이 되어 왔었다. 그 이유는 그 곳에 송아지 우상이 하나 세워지자-그곳은 유다 가까이 있었다-그 나쁜 영향이 나라 전체에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벧엘을 우상의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즉 모든 오물을 그리고 갖다 쌓았다. 아마 그러한 처사는 우상 숭배를 즐겨오던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일이었을 것이다.

2.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을 모두 축출해 버렸다. 아론의 집안이 아닌 자들로서 바알이나 거짓 신에게 희생 제사를 드린 자들은 율법에 따라 죽임을 당했다(20절). 요시야 왕은 "그들의 제단에서 그들을 죽였다." 이것은 이제껏 바쳐진 제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제물이었다. 즉 하나님의 정의의 제물이 된 그들 자신을 드린 셈이다. 아론의 후손들이면서 참 하나님께도 분향을 했지만, 산당에서 분향을 드렸던 자들에 대해서는 용서했다. 그러나 다시는 여호와의 전에 나가지 못하게 금했다. 즉 그들은 명예를 박탈당했다(9절). 그는 그들이 다시는 옛 우상 숭배 의식을 비밀리에 지킴으로써 그 나라에 재앙을 가져오지 않도록, 그들을 "유다의 성읍 밖으로 몰아내었다" (8절). 그러나 그들에게 "형제와 더불어 무교병(소제물의 빵. 레 2:4, 5)은 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으니, 그들은 형제와 함께 거룩하게 되었고, 그들의 감시 하에 있음으로써 남들에게서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그 떡, 곧 무교병(딱딱하고 맛이 없는)은 그들에겐 사실상 받을 자격이 없는 훌륭한 양식이었으며,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데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부정한 제사장들처럼(레 21:22) 모든 희생 제물들을-그것은 주로 "그들의 하나님의 떡" 이라고 일컬어졌다-을 먹을 수 있었는지, 그것은 저으기 의문스럽다.

3. 모든 우상은 산산이 파괴되어 불태워졌다. 아세라 상(6절)과 다른 신상들은 재로 변했고, "그 재들은" 그 성읍의 공동 묘지에 있는 "평민의 무덤에 뿌려졌다." (6절). 율법에 의하면, 무덤에 접촉하면 의식법상 부정을 타게 된다. 따라서 그 재를 무덤에 매장함으로써, 이 자리에서 요시야 왕은 그 재는 가장 불결하다고 선포한 셈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기들이 부정해지지 않고서는 그 재에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갈대아역에 의하면) "그는 재를 무덤에다 버렸다." 그것은 그는 모든 우상들을 마치 구역질나는 물건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매장하여서, 죽은 자가 잊혀지듯이(14절) 아주 잊혀지게 되기를 원했다는 뜻이다. 그는 "사람의 해골로 아세라 목상이 있던 곳을 채웠다." 그는 모든 주상들의 재를 가지고 가서 죽은 사람의 해골과 섞었듯이, 우상들이 세워져 있던 곳에는 죽은 자의 해골을 가져다가 그 빈 터를 메웠다. 이 두 가지 방식은 모두 우상 숭배는 흉칙한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며, 또한 사람들이 그 우상들의 티끌이나 자기들이 예배하던 그 우상들이 있던 장소까지도 가까이 하지 않기 위함이다. 죽은 자와 죽은 신은 서로 비슷하므로, 같이 있는 게 적합하다.

4. 사악한 모든 집들, 즉 우상 숭배자들을 숨겨 주었던 불신앙의 은신처와 소돔 사람들의 집들을 헐어버렸다(7절). "그들을 때려 부셔라. 그들을 때려 부셔라. 그들을 밑바닥까지 부셔 버려라." 산당도 그렇게 허물어져서 결국에는 평지가 되었다(8절). 물론 그 성읍의 지사에게 속했던 산당도 그리되었다. 어떤 사람의 지위나 권력도 그 자신을 우상 숭배나 신성 모독에서 보존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통치자들이 먼저 개혁에 복종토록 하라. 그러면 피지배자들은 곧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요시야는 산당을 훼파했다(8절과 13절). 그는 산당을 증오하는 온갖 일을 다했다. 그리고는 바알의 집이 우상 숭배의 집결지가 되었을 때, 예후가 행한 것처럼(왕하 10:27) 요시야는 산당에 대한 과대망상에서 백성을 건져냈다. 다른 우상 숭배의 장소와는 달리 골짜기에 위치해 있던 도벳-다른 우상 제단은 언덕이나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도 역시 같은 모욕을 당했다(10절). 즉 성읍의 공동묘지가 나와 있다. 거기에는 "그들이 도벳에 장사될 것이라" 고 했다. 그리고 성읍 전체가 도벳과 같이 될 위협에 직면하게 되리라고 했다.

5. 태양 신에게 드려졌던 말들은 도로 찾아서 일반적 용어로 돌렸다. 그리하여 그 말이 종속되어 있던 그 허망함에서부터 그들을 건져 내었다. 태양의 병거들(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되어야 할 것들이 그런 꼴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을 요시야는 불태웠다. 태양이 불꽃이라면, 그 병거들이 불에 타는 병거가 되었을 때에야 진정 태양을 닮았던 것이다.

6. 신접한 자들과 마술사들은 축출당했다(24절). 아마 요시야는 마술에 걸린 자들도 죽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마귀 같은 행실을 좇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은, 그가 최근에 발견한 "그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 (24절)에 진실한 관심을 가지고 행한 것이다. 그는 그 율법을 자기 통치의 법으로 삼았고, 이 개혁을 완수하는 데도 그 율법을 유념했다.

Ⅲ. 그의 통치권이 미치고 있는 한도 내에 있던 이스라엘의 성읍들에게까지도 그의 열의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10지파(이스라엘)는 사로잡혀 끌려갔고, 앗수르의 주민들이 그 나라의 전체를 뒤덮고 있지는 못했으므로, 아마도 많은 이스라엘의 성읍들은 유다 왕들의 보호 하에 있었던 것 같다(대하 30:1; 36:6). 요시야는 자기의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성읍을 방문하고 있다.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한도까지, 선을 행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행사되어야 하며 사악한 자들의 악이 종말을 고하도록 애써야 한다.

1. 그는 산당과 아세라 목상과 더불어 벧엘에 있던 여로보암의 제단을 파괴해 버렸다(15, 16절). 확실히 금송아지는 이미 없어진 것 같다. "오 너 송아지 같은 사마리아여, 너는 쫓겨났도다." 그러나 제단은 있었다. 저 유서 깊은 우상 숭배에 결합된 그 제단은 여전히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1) 바로 그것이 더렵혀졌다(16절). 요시야는, 그의 경건한 신앙심의 열성에서, 우상 숭배의 옛터를 샅샅이 찾았고, 산에 있는 무덤까지 수색하였다. 아마 우상 숭배하던 제사장들이 그 무덤에 매장되어 있었고, 그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이 집전하던 제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그 제단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기들의 유골이 그 제단 옆에 안치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는 그 무덤을 열고 뼈를 끄집어 내어 "제단에서 그 뼈를 불살랐다." 그것은 산 채로 그 제사장들을 발견했을 경우 요시야가 어떻게 그들을 처치했을까 하는 것을 보여 주는 처사였다(20절). 이와 같이 그는 그 제단을 더럽혀 모독했으며, 그 제단을 가증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의 뼈가 태양 앞에서 뿌려질 것이라" 는 경고가 우상 숭배자들에게 주어져 있었다(렘 8:1, 2). 그때 주어진 경고가 여기서 실행된 사실(" 그들의 죄악이 그들의 뼈에까지 사무치리라" 고 했다. 겔 32:27)은 사후의 형벌에 대한 암시이다. 곧 죄를 짓고 살다가 회개치 않고 죽은 자들이 벌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예시한 것이다. 그런 자들의 뼈를 태우는 일이 전부라면 그 형벌은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더 무서운 불꽃 가운데서 당할 영혼의 고통을 상징해 준 것이라면(눅 16:24) 그 형벌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요시야의 행동에서와 같이, 이 일은 매우 갑작스러운 결단의 결과인 것 같다. 우연히 그런 결심을 하고 무덤을 수색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단이 여로보암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졌던 350여 년 전에 이미 이러한 사실이 예고 되었었다(왕상 13:2). 하나님은 언제나 미래를 예견하시고, 때때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우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확실히 예고해 주신다.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 안에 있도다." 요시야 왕의 마음도 그러했다. 그래서 그는("부지 중에" 아 6:12) 이 일을 하려는 뜻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2) 그 제단은 파괴되었다. 그는 제단과 그에 달린 모든 부속 시설물을 헐어 버리고(15절) 불에 탈 수 있는 것은 모두 태워버렸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므로, 그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우상들을 말살했다. 그는 "그것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날려 보냈다고 했기 때문이다.

2. 그는 "사마리아의 성읍에" (19절) 있는 사탄의 모든 회당들, 곧 산당의 온갖 집들을 파괴해 버렸다. 이스라엘 왕들이 이것들을 세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 왕인 요시야를 들어서 그들을 파괴해 버렸다. 이것은 그 10지파가 배반했던 다윗의 옛 집의 영예를 위해서였다. 그가 그 제사장들을 "그들 자신의 제단에" (20절) 제물로 바친 것은 정당한 처사였다.

3. 그는, 유다로부터 나온 한 왕이 이 일을 이루리라는 사실을 예언하기 위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을 주의 깊게 보존했다. 그 무덤은 바로 "벧엘 제단을 향하여(요시야 왕이) 행한 이 일들을 선포했던" 그 선한 예언자의 무덤이었다. 그러나 그 예언자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사자에게 물려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 예언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끝나 버렸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하나님은 그의 주위에 있는 무덤이 소란을 당할지라도 그의 무덤만은 안전하게 보존되게 하여(17, 18절), 어떤 사람도 그의 뼈를 옮기지 못하도록 했다. 그 예언자는 평화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침대에서 쉬게 되었다(사 57:2). 저 늙은 거짓 예언자가 가능한 한 그 의로운 예언자 근처에 매장되기를 원했던 것은 그가 미리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즉 그의 티끌도 그 선한 예언자의 티끌과 함께 있음으로 인해서 그 선한 예언자 덕분으로 잘 보존된 것이다(민 23:10 참조).

Ⅳ. 요시야 왕과 그의 백성들은 이 모든 일을 다 마친 후에 유월절을 아주 엄숙하게 지켰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은 옛 누룩의 나라를 깨끗이 청소하고 난 후에, 유월절을 지켰다. 예후는 바알 숭배를 폐지하고 나서도,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준수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그러한 것을 신중히 했으니, 우리도 그것을 배워야 하리라. 즉 그는 악행을 중지하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가증스러운 습관을 막는 길은 제정된 모든 규례를 준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레 18:3 참조). 그러므로 그는 모든 백성에게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그 유월절은 그들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을 기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출해 낸 하나님께 그들 자신들을 봉헌하고 자기들이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징표였던 것이다.

그는 "율법의 책" 에서 유월절을 발견했다. 그 책을 여기서는 "계약의 책" 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비록 하나님의 권위는 인간을 절대적인 명령으로 다스릴 수 있으나, 하나님의 은총은 겸비하게도 상호적인 거래를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시야는 유월절을 지켰다. 히스기야 시대에 있어서와 같이 이 유월절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없다(대하 30장).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선대의 어떤 통치에서도 그처럼 "유월절을 지킨 일은 없다" 고 말했다. 아니 "사사 시대 이래로" 그런 예는 없었다(22절). 그런데 이 사실은, 사사기가 말해 주고 있는 이스라엘 국가의 상황이 비록 우울한 감을 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때가 황금 시대였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유월절은 참여자들의 수효나 헌신, 그들의 희생과 헌물, 또 율법의 철저한 준수라는 점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예식이 되었다. 또 히스기야 시대의 유월절에서와 같지 않았다. 즉 히스기야 시대에는 성소의 결례법에 따라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은 자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에게도 제사장의 업무를 하도록 허락을 해 주었다. 요시야 왕의 통치의 남은 기간 중에도 아마 줄곧 종교는 번성했고, 여호와의 절기가 매우 충실하게 준수되었다고 능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최근에 되찾았던 그 계약에서 찾은 만족과, 그것에 따른 개혁 사업, 그리고 오래도록 무시되어 왔거나 부주의해 왔던 율법 책에 있는 본래적인 하나님의 규례의 재흥 등이 이 유월절을 통해서 거룩한 기쁨을 더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상을 파괴하는 데 대한 그들의 열성에 기꺼이 보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을 특별히 보여 주셨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이 유월절을 월등하게 뛰어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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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의 죽음(열왕기 하 23:25-30)

우리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다. "주의 의는 큰 산과 같도다." 곧 분명하고, 확실하며, 논쟁의 여지가 없도다-하오나 "주의 공의는 깊은 바다와 같도다." 곧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고, 생각조차 할 수도 없었다(시 36:6). 우리가 이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할 수 있으리요!

Ⅰ. 본문에서 보면, 요시야 왕은 다윗 왕조를 이어 받았던 가장 훌륭한 왕들 중의 한 사람임이 인정되고 있다(25절). 히스기야가 곤경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에 있어서는 필적할 자가 없었던 것처럼(18:5), 요시야 왕은 개혁 사업을 수행하는 그 성실성과 열성에 있어서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는 그의 선조들이 반역하여 오던 "그 여호와께로 향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사랑하여 하나님께로 향하여 돌아가는 것이 참 신앙이다. 그는 나라도 역시 여호와께로 돌아가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2. 그는 "마음과 뜻을 다하여" 이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일을 행한 이유와 목적이 의로왔다. 마음을 다하여 하지 않는 일은 신앙에 아무 소용이 없다.

3. 그는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즉 온힘을 기울여 용기 있게 결단력을 가지고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로 인하여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힘과 마음을 다해 일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성취시킬 수 있으랴!

4. 그가 "모세의 모든 율법에 따라" 그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그 율법에 실제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 일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열성을 낸다하여 결코 어떤 불법적인 일에 말려들지는 않았다. 그는 오직 온 힘을 다하여 규칙대로 행했다.

Ⅱ. 이와 같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창 시절에 횡사를 했고, 그의 나라는 그 후 2~3년 이내에 멸망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이와 같은 개혁에 따를 당연한 결과로는 왕조와 왕국에 번영과 영광인 것이 틀림없다고 흔히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그 양쪽에 모두 구름이 뒤덮인 것을 보게 된다.

1. 나라가 개혁되었지만 여전히 계속 멸망으로 운명지어졌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다(26절). 하나님은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서(렘 28:7, 8), 만약 멸망으로 예정된 어떤 민족이 그 "죄악에서 떠나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형벌하시기로 한 "악을 돌이키시겠다" 고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요시야 왕 치하의 백성들은 비록 요시야의 권력에는 복종했지만 중심으로는 요시야의 근본 방침에 동화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들은 억지로 돌아 왔으나, 자발적으로 "악한 길에서 떠나지는"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그들의 우상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알고 계시는 여호와께는 그 선고를 취소하실 수 없었다. 즉 그 선고는, 이스라엘처럼, 유다도 포로가 될 것이요 예루살렘도 버림을 받으리라는 것이었다(27절). 그러나 이러한 멸망의 본의는 그들을 효과적으로 개혁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죄악이 극도에 달해서 곧 멸망할 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질병이 최악의 상태에 도달하여 곧 치료를 받아야 할 절박한 순간에 놓여졌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치료처방은 실효를 거두어 죄악까지도 제거하게 될 것이었다.

2. 이러한 사실의 증거로서, 개혁을 단행하고 있는 왕도, 한창 시절에 죽게 되었으니, 그것은 오히려 그에게는 하나의 자비였다. 즉 그들의 파멸의 한 서곡으로서 요시야 왕이 죽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나라에 대해서 내리시는 재앙을 살아서 보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애굽 왕은 앗수르 왕과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벨론 왕이 부름을 받았다. 요시야 왕국은 그들 나라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애굽 왕에 대항하여, 한창 증대하고 있는 위협적인 애굽 왕의 권력을 견제하려고 결심했다. 비록 당시에 애굽 왕은 요시야 왕을 칠 계획이 없었다고 단언했지만, 만약 애굽 왕이 애굽 강과 유프라데스 강을 통합할 수 있게 되면, 유다 나라도 순식간에 그들의 수하에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애굽 왕에 대항하여 싸웠으니," 첫 교전에서 전사했다(29, 30절).



(1) 우리는 여기에 나타난 요시야의 처사를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에게는 이 전쟁에 참전하라는 분명한 소명도 없었고, 그 전쟁에 관해서 예언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앗수르 왕의 우방이나 동맹군의 자격으로 나서 싸워야 했었는가? "그가 신앙 없는 자들을 도우며,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해야 했는가?" 만약에 애굽과 앗수르 왕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용하여 서로의 힘을 약화시킴으로써 왕 자신과 자기 백성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주리라고 생각해야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평안히 무덤에 장사되리라" 고 한 약속은, 이 문제 처리에 나타난 실책으로 인해, 어느 의미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으며, 그는 사실상, 그 약속의 은덕을 잃었다고 보는 자들도 있다. "우리의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만약 우리가 우리의 길에서 떠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에서 스스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이해한다. 요시야는 하나님께 대해서나 자신의 양심에 대하여 "평화한 가운데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갈대아 사람들에 의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직접 보지 않고 죽은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그 섭리는 경솔한 그의 처사에 대한 책망임에도 또한 틀림 없다고 본다.



(2) 우리는, 진가를 알지 못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주어진 보석을 하나님이 다시 빼앗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로 알고 찬양해야 한다. 예레미야가 요청한 바이지만, 그들은 요시야 왕의 죽음을 심히 통애했다(대하 35:25).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그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며 얼마나 무서운 징조가 되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들은 요시야의 생존이 가져다 주는 그 은덕을 마땅히 선용해야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점에 실패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시야를 일찍 데려가심으로써 그 은덕의 진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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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1

유다왕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열왕기 하 23:31-37)

예루살렘은 요시야 왕이 무덤에 장사된 이후로 하루도 좋은 날을 보지 못했다. 그후 22년 만에 예루살렘은 마침내 완전히 멸망되고 말았다. 여기에는 그의 두 아들의 통치에 관한 짧은 기사가 실려 있다. 한 아들은 포로가 되었고, 다른 한 아들은 애굽 왕에게 공물을 바쳤다. 두 아들 모두 통치 초기부터 그렇게 되었다. 이 애굽 왕은, 비록 유다를 치려는 계획은 하지 않았었으나 요시야 왕이 대적하므로 격분하여 그를 살해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요시야 가족과 그 나라에 대해 자기의 전력을 기울여 경계를 편 것 같다. 만약 요시야의 아들이 요시야의 발자취를 따라갔다면, 그의 신앙심으로 인해 보다 좋은 생활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빗나갔기 때문에, 그의 경솔한 처사로 인하여 더욱 나쁜 운명을 겪고 말았다.

Ⅰ. 요시야의 아들 중 동생이었던 여호아하스가 "그 나라 백성들" 에 의해서 먼저 왕이 되었는데, 아마 그가 그의 형보다는 더 활동적인 전쟁 영웅의 기질이 있어 애굽 왕에 대항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백성들은 그 아버지의 개혁 정책을 유지하고 계속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점에다 더 관심을 쏟고 있었다. 따라서 문제가 생겼다.

1. 여호아하스는 악을 행했다(32절). 그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훌륭한 모범을 보았고, 또한 우리가 생각하기로 많은 훌륭한 기도가 그를 위해 올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또한 그가 아버지가 생존시에 이미 악행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무서운 일이다. 따라서 결국 그의 통치 기간은 너무도 짧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성품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는 "그 열조들의 모든 행위대로" 악을 "행했다." 비록 그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본을 받고 따라가고 있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그는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따르려 했던 조상들의 모든 악행을 그대로 행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년들이 자기들의 모범으로 누구를 택하여 모방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대한 결과를 낳는다. 그 선택을 잘못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당한다(빌 3:17, 18).

2. 그는 악을 행했기 때문에, 불운을 당했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가 않다. 그는 단지 3달 간 왕위에 있었고, 그 후에는 포로가 되어 포로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애굽 왕은 그를 사로 잡아다가, 소란을 피우지 못하도록 줄로 묶어서(33절), 애굽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그는 애굽에서 곧 죽고 말았다(34절). 이 여호아하스는 에스겔이 "이스라엘 왕들(방백)을 위한 애가" 라고 말할 때 언급했던 그 젊은 사자이다. 그 젊은 사자는 "먹이를 움키고 사람을 삼키는 법을 배웠다" 고 했다(이것이 바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행했던 악이었다). 그러나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갔다" 고 했다(겔 19:1-4; 렘 22:10-12 참조).

Ⅱ. 요시야의 다른 아들인 엘리아김은 애굽 왕에 의해서 왕 위에 올랐는데,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오른 것이 아니고(그의 통치는 너무나 짧아서 거의 계산에 넣지 않았다) "요시야를 대신하여" 올랐다고 했다. 지금까지 유다의 왕관은 언제나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물려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형제에게로 이양되었다. 아합의 집안에서는 그런 계승이 있었으나 다윗 집안에서는 지금이 처음이다. 애굽 왕은 자기의 권력으로 그를 왕으로 만들었고, 더욱 그의 이름까지 바꾸게 했다. 즉 여호와라는 이름과 관련을 지어서 "여호야김" 이라 부르게 했다. 이것은 애굽 왕이 그에게 그의 나라의 종교를 포기하게 하거나 잊어버리도록 할 계획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백성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할 것이니, 그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러나 바벨론 왕은 자기 이름을 바꾸어 준 자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단 1:7).

이제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

1. 애굽 왕은 그에게서 "100달란트의 은과 1달란트의 금" 을 공물로 요구했다(33절). 그래서 여호야김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백성들을 쥐어짜서 바로에게 바쳤다(35절). 이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인들을 노략했으나, 이제는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노략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변화의 결과를 가져오는가 보라.

2. 그러한 조공은 그를 가난하게는 했지만, 행복하게는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징계를 받고 있는 중이므로, 그것을 깨닫고 겸비한 태도를 가지고 회개했어야 했지만, 여전히 그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37절). 그러므로 보다 더 큰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 작은 심판이 뜻을 못 이루면, 하나님은 더 큰 심판을 보내어 그 뜻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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