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열왕기하 17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7:1

호세아 왕의 최후(열왕기 하 17:1-6)

우리는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의 통치와 멸망을 보게 된다. 그에 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Ⅰ. 비록 그가 반역한 살인으로 억지로 왕위에 나아갔다 할지라도(15장 30절에서 읽은 바와 같이), 그후 7, 8년이 지나서야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가 베가를 살해한 것은 아하스 4년이었지만, 아하스 12년에 이르러서야 집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1절). 앗수르 왕 때문인지 혹은 유다 왕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 백성에 의해서인지는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자기가 목적했던 왕위를 차지하지 못한 것 같다. 이리하여 그의 행위는 정당하게 징계되었고, 예언자의 말은 성취되었다(호 10:3). "저희가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도다 하리라'" 했다.

Ⅱ. 호세아 왕은 비록 악했지만, 그의 이전 열왕들처럼 악하지는 않았다(2절). 또 다른 왕들처럼 송아지 우상에게 그렇게 빠지지는 않았다.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송아지 우상들 중의 하나(단에 있는 우상)는 15장 29절에 기록된 원정 때에 앗수르 왕이 가져갔고(호 8:5 의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는 말은 이것을 뜻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호세아 왕은 다른 송아지 우상들도 별로 신임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前) 왕들이 신하들을 억압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금했으나 호세아 왕은 그런 통제를 풀고 생각이 있는 자들에게는 올라가서 예배드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이 가장 훌륭한 왕들 중의 한 왕의 통치 중에 도래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오, 하나님, "주의 심판은 어찌나 깊은지요!" 이로써 하나님은 이 멸망을 그들에게 내리심으로써 벌하시고자 계획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나타내셨다. 그 징벌의 대상은 다음과 같다.

1. 그 세대의 죄뿐만 아니라 앞서 간 세대의 죄이다. 그리고 조상들의 죄악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 조상들은 이 진노의 날을 위하여 노(怒)를 쌓았었고 이제는 그 한도가 다하게 된 것이다.

2. 이스라엘 열왕의 죄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의 죄이다. 호세아는 선왕(先王)들처럼 악하지 않았지만, 그 백성은 앞서 간 백성들처럼 악했다. 호세아 왕은 선왕들처럼 그들에게 악한 본을 보이지 않았고 그들이 마음을 돌이키는 일에 방해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들의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즉 왕은 그들이 보다 잘 개선되도록 허락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악하게 행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죄와 멸망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Ⅲ. 파멸은 점차적으로 왔다. 그들은 앗수르 왕의 포로가 되기 전 얼마 동안 속국이 되었었다(3절). 그리고 만일 하찮은 심판으로 그들이 겸비하게 되어 마음을 돌이켰더라면 보다 큰 심판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Ⅳ. 그들이 앗수르 왕의 멍에를 떨쳐 버리기 위하여 취했던 그 간접적인 방법에 의해서 자신들에게 파멸을 가져왔다. 이스라엘 백성과 왕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와 화해하고, 그리고 그에게 기도했더라면, 그들이 자유와 평안과 명예를 회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앗수르에 대한 조공을 철회하고, 자기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애굽 왕이 도와 주리라 믿었다. 실상 그것이 효과를 거두었다 해도 자기들의 압제자를 바꿀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은 그들에게 하나의 상한 갈대 지팡이가 되었다. 이 앗수르 왕을 격노케 하여 보다 더 철저하게 그들을 치게 하였다. 인간들은 그물과 씨름해 봤자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더욱 엉키게 될 뿐이다.

Ⅴ. 그들에게 완전한 파멸이 닥쳐 왔다.

1. 이스라엘 왕은 죄수가 되었다. 아마도 그는 사마리아가 포위되기 전에 불시에 습격을 받아 사로 잡혔을 것이다.

2. 이스라엘 땅은 먹이가 되었다. 앗수르 왕의 군대가 그 온 땅을 두루 다니고, 자기들이 그 곳의 주인이 되었다(5절). 그리고 그 백성은 일반 적군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의 검으로 징벌 받아야 될 반역자로 취급받았다.

3. 이스라엘의 왕성은 포위되어 결국 함락되었다. 그 나라가 정복된 뒤에도 그 곳은 3년 동안 견뎌 내었다. 그 당시에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불행을 겪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간략하게 빨리 끝나는 것은, 내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으며, 이전에 종종 그랬던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괴로움을 돌보지 않으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앗수르로 옮겨졌다(6절). 백성의 대부분 특히 이름 있는 자들이 정복자의 나라로 강제로 옮겨졌고, 거기에서 거지와 노예가 되었다.

(1) 그래서 앗수르 왕은 그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한다는 것과 그들이 완전히 자기의 의사에 달려 있다는 것을 기뻐했다.

(2) 그는 그들에게서 소유물과 재산 곧 동산과 부동산을 빼앗았다. 그리고 막강한 군대의 힘을 빌어 그들에게 온갖 고생을 시키고 낯선 나라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하게 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그들의 반역과 또 그의 멍에를 떨쳐 버리려는 그들의 기획을 징벌했다.

(3) 그래서 사실상 그는 장차 있을 모든 시도를 방지하여 나라의 안전을 확보했다.

(4) 그래서 그는 그들을 자기 나라에서 부려먹는 이득을 취했다. 마치 바로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행했던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무가치한 백성은 민족의 출발점에서부터 다시 압제 받는 노예 신세가 되었다.

(5) 그래서 그는 국내에서는 할 일이 없고 재산도 없는 자기 백성들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 복된 땅에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방법으로 그는 이 10지파의 포로를 이용했다.

본문 중에는 그가 자기 나라의 어떤 곳에다 그들을 배치했는지가 나타나 있다. 포로민들이 서로 왕래를 계속하지 않으며, 다시는 결합하지 않도록, 그리고 강대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로 멀리 떨어진 여러 고을, 즉 "할라" 와 "하볼" 에다 거주시켰다. 거기에서 얼마 후 그들은 앗수르 백성들과 아주 깊이 혼합되어 민족의 정체가 사라질 정도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이름이 더 이상 기억되지 않았" 을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은 역시 잊혀진다. 열방들과 같아지기를 배운 자들은 그들 가운데 묻힌다. 그리고 본토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려던 자들은 이방 땅에서 그들의 원수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재산이 있고 명예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며, 보다 못한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은 뒤에 남았을 것이다. 모든 족속들 중 많은 사람이 유다로 넘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혹은 앗수르 식민지에 예속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갈릴리 사람들" 이 되었거나, "사마리아 사람들" 이 되었다. 결국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Lo-ammi-한 민족이 아닌 자들이요, Lo-ruhamah-긍휼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다. 이제 가나안이 그들을 토해 내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기사를 읽을 때, 엘라의 아들 호세아의 지휘 아래 그들이 다시 가나안에서 쫓겨나리라는 생각을 그 누가 했겠는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투스(Augustus) 때의 로마의 영광도, 여러 세대가 지난 후, 아우구스툴루스(Augustulus)에 와서 기울어졌다. 섭리자께서 10지파의 명예를 실추시키셨으므로 남아 있는 유다 지파(왕족)와 레위지파(거룩한 지파)의 영예가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 지파를 제외한 12지파에게 각각 인치심을 받은 자들이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계 7:). 야고보는 외국에 흩어져 있는 12지파에게 편지를 쓴다(약 1:1). 그리고 바울 사도는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12지파에 관하여 말한다" (행 26:7). 그러므로 포로로 끌려간 자들에 대한 기사도 없으며(그들이 여전히 세상의 어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나의 구별된 무리로 남아 있었다는) 혹자의 추정은 믿을 만한 근거도 없지만, 그들 중의 남은 자들은 도피하여서 이스라엘의 이름을 보존했고, 그것이 결국 복음의 교회 즉 영적 이스라엘에 의해서 대치되기까지 이른 것이다. 복음의 교회 안에서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갈 6:16).

 

17:2 없음.

 

17:3 없음.

 

17:4 없음.

 

17:5 없음.

 

17:6 없음.

 

17:7

이스라엘의 죄악(열왕기 하 17:7-23)

열 지파 왕국(이스라엘)의 파멸은 다만 간략히 언급되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역사가는 이 구절들에다 자세히 주석을 가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2차적인 제2원인들, 즉 이스라엘의 약함, 그들의 불리한 행정, 그리고 앗수르 군주의 힘의 증대 따위 때문이 아니라(그런 것들은 오히려 무시됨), 단지 제1원인인 하나님의 역사 때문이다.

다음 사항들을 관찰해 보자.

1.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제(除)하신 이는 여호와" 자신이었다. 그 일을 한 도구가 누구였든지, 그 재난의 저작자는 여호와이시다. 그것은 "전능자에게서 나온 파멸" 이었다. 앗수르 사람은 다만 "그의(하나님) 진노의 막대기" 에 불과했다(사 10:5). "이스라엘 족속을 버리신 이는 여호와" 자신이었다. 다른 어떤 원수들이 그들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20절).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으로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사 42:24) 만일 우리가 민족적 심판 가운데서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한다면, 그리고 성경의 성취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심판의 유익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 사실이 여기서 또 다시 주목되고 있다(23절). "여호와께서 그 종 모든 선지자로 하신 말씀대로" 그는 이스라엘을 그의 은총과 그들의 땅에서 축출하셨다.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한 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일을 비교하면, 서로 일치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설명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왜 기적과 예언에 의해서 일어났고 결합된 이스라엘과 같은 한 민족을 멸망시키고자 하셨는가? 왜 그는 자신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서 행했던 것을 무위로 돌리려 했는가? 그것은 순수히 하나의 절대권의 행사였는가?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인 정의의 행위였다.

2. 또 그들이 죄악으로 하나님을 분노케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행위였는가? 아니, 오히려 그것은 그들 자신의 행위였다. 그들의 길과 그들의 행위로써 그들은 스스로 이 모든 것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을 징계했던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악이었다. 역사가(곧 열왕기의 필자-역주)는 여기에서 이것을 자세하게 보여 주고 있다 즉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떠한 과오도 행하지 않으셨다고 생각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민족들도 이 사실을 듣고 두려워했으리라는 것이다. 이 모든 악을 행한 것 그리고 그들의 힘을 깨뜨리고 그들의 영예를 진토에 누인 것이 무엇인가 와서 보라. 그것은 바로 죄였다.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분리시킨 것은 다른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모든 황폐의 원인이었음이 본문에 매우 감동적으로 드러나 있다.

역사가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Ⅰ.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일이 무엇인가?

1.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다(7절). 그는 그들을 압제하던 "바로의 손에서 벗아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자유를 옹호하셨고(" 이스라엘은 나의 아들이다"), 전능하신 손으로 그들의 자유를 실현시키셨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종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속박을 풀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애굽 왕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했던 것은 그들을 앗수르 왕의 손으로 넘기기 위함이었다면, 하나님의 자가당착이다. 저들이 자기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자기들의 자유를 배반하고 스스로를 팔아 넘기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은 그들을 앗수르에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고, 친히 그들의 왕이 되셨다. 그들은 직접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들은 선과 악의 무지, 그리고 죄와 의무의 무지를 변호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방 사람을 본받지 말라" (15절)고 일러 주신 바로 그 말씀으로 그들을 책망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을 거절했다고 책망받고 있는데,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태에 있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율법이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례와 계명들" 이었기 때문이다(13절). 그래서 그것들을 지켜야만 할지 혹은 지키지 말아야 할지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논의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다" (시 147:19, 20).

3.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땅을 주셨다. 그것은 "그가 그들 앞에서 이방 사람들을 쫓아 내셨기" 때문이었다(8절). 그것은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우상 숭배 때문에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신 것은 이스라엘로 그들과 같이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경고가 되었어야 했다.

Ⅱ.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러한 역사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

1.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고" (7절), "그들은 비밀히 불의를 행하였다" (9절). 그들은 그들의 악한 관습에 따라 결혼하였다. 그들이 공공연히 악습을 행할 수 없게 되자 비밀히 행하고자 했던 것이다-그것은 그들의 불신앙을 입증한다. 또한 비밀히 행해진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눈 아래서 행해진 일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다시 문책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직접 반대되는 악한 일들을 행했다. 마치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며 하나님의 정의에 도전하기 위해서 일부러 "여호와를 격노케" (11절) 하려는 듯이 악을 행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계약을 거절했고(15절), 그들 자신이 그 계약에 보냈던 동의(同意) 혹은 하나님의 명령에 구속받기를 원치 않고 그 두 가지의 의무를 모두 내어 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곧 그들을 버리셨다(20절. 호 4:6 참조). 그들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렸다" (16절). 그리고 그러한 명령들이 그들에게 지시해 주고 이끌어 주던 길과 사업을 떠났다. 아니 결국, 그들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는 데에 자신들을 팔아 넘겼다." 즉 그들은 전적으로 죄에 탐닉(耽溺)하였고, 죄 가운데 완고히 행하였으니 마치 노예들과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굳어졌고, 마침내 도덕적으로 그들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까지 되었다. 마치 한번 회복한 자유를 스스로 다시 팔아 버린 자는 그 자유를 되찾을 수 없음과 같다.

2. 자세히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비록 그들이 많은 부도덕의 혐의가 있고, 10계명의 둘째 법판에 들어 있는 모든 명령들을 어겼음이 분명할지라도, 여기서는 그들의 우상 숭배 이외에 아무 것도 열거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이 아주 쉽게 빠지던 그 죄이다. 즉 이것은 모든 죄 중에서도 하나님을 가장 격노케 했다. 결혼 계약을 깨뜨리는 것은 영적 간음이며, 다른 모든 악의 입구가 된다. 그러므로 바로 그것이 그들을 멸망시킨 죄라는 점이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다.

(1) 그들은 다른 신들을 두려워했다(7절). 즉 우상을 숭배했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마치 그들이 그 신들의 분노를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했다.

(2) 그들은 "이방 사람의 율례를 행했다." 그리고 그 율례는 하나님의 율례와 반대되는 것이었다(8절). 그리고 그들은 "이방 사람들이 행했던 바와 같이" 행했고(11절), 자기들의 사방(四方)에 있었던 "이방 사람을 따라갔다" (15절).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고유의 영예를 더럽혔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렸다. 하나님의 계획이란 그들이 이방 사람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에게서 배운 자들이 이방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가?-하나님에게 속한 자들이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은 민족들에게 표준을 빌어와야 하는가?

(3) 그들은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왕들의 율례를 행했고" (8절) "여로보암의 모든 죄를" (22절) 행했다. 자기들의 왕들이 하나님의 제도들을 변경시키고 추가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처하자 그들은 왕들의 뜻에 복종했고, 그 왕들의 명령을 지키면 하나님의 명령은 불순종해도 된다고 생각케 되었다.

(4) 그들은 "그들의 성읍들에서 스스로 산당들을 세웠다" (9절). 만일 어떤 곳에 망대(성벽이 없지만, 다만 위험한 때에 수비자를 보호할 탑만을 가진 촌락)가 있거나 혹은 단지 목자들의 거처만 있어도, 산당을 세워 그 자리를 기념하고 거기다 제단까지 세웠다. 견고한 도성이 만일 있다면, 산당을 세워 그 도성을 더욱 강화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버렸기 때문에, 산당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 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환상을 좇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신에게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이로써 신성한 것들이 더럽혀졌고, 속된 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무더기 같이 되었다" (호 12:11).

(5) 그들은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 -아세라(영어 성경에는 숲이라 했으나 목상으 로 번역해야 한다고 보는 자도 있다. 개역은 목상이라 함)나 아스다롯(어떤 자는 이렇게도 본다)과 같은 우상은 제2계명과 직접으로 반대된다(10절).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이 하지 않도록 경고한 일이지만, 그들은 우상들을 섬겼다. 자기 자신들의 환상의 창작품들과, 그들 자신이 만든 공예품들을 섬겼다.

(6) 그들은 이방 신들을 위해 "모든 산당에서 분향" 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께는 불명예가 된다(11절).

(7) 그들은 "헛된 것" 을 좇았다. 우상을 그렇게 불렀는데, 까닭은 그것들은 악도 선도 행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우상들을 숭배하는 자들는 역시 그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헛되고 아무런 선행도 행할 수 없게 되었다(16절). 그들의 예배-이것은 야만적인 어리석은 짓이었다-도 헛되었으니,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헛된 것이었다.

(8) 두 개의 송아지 우상과 같이 부어 만든 우상들 이외에도, 그들은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섬겼다" -즉 해, 달 그리고 별들이다. 그것은 천군천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감각적인 것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신성화된 이방인들의 영웅 바알도 섬겼다(16절).

(9) 그들은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 (17절). 이것은 그들이 우상에게 자녀를 바쳤다는 표시이다.

(10) 그들은 점과 마술을 썼다. 이것은 그들은 자기들이 제사를 드렸던 제 신들에게서 지시를 받은 것을 말해 준다.

Ⅲ.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써서 그들을 우상 숭배에서 건져내려고 하셨는가가 나타나 있다. 그것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음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시험하셨다. 그들의 죄를 나타내 보였고, 모든 예언자들과 "선견자" 들(예언자들을 공식적으로는 선견자라고 불렀다)을 통하여 그들을 치명적인 결과들을 경고했다. 그리고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킬 것" 을 촉구했다(13절). 우리는 모든 통치 기간에 예언자들이 있었음을 읽게 된다. 그들에게 제사장이라는 하나님의 권속들은 없은 적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예언자들의 후계가 없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았었다. 그러나 모두가 헛되이 되었다(14절). 즉 그들이 듣지 않았고, 도리어 그들의 목을 굳게 했고, 우상 숭배를 계속했다. 그들의 조상들과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목을 굽혀 하나님의 멍애를 메기를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그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리고 그의 약속을 감히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광야에서의 그들의 조상들을 말하는 것 같다. 그 조상들을 가나안에 들이지 않았던 동일한 죄가 이들을 쫓아 내었으니 곧 불신앙이다.

Ⅳ. 어떻게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벌하셨는가? 그는 "그들에게 심히 노하셨다" (18절). 왜냐하면 예배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영광을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 돌리는 것을 지극히 분개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을 괴롭게 하셨고(20절), "그들을 노략군의 손에 붙이셨다." 사사들의 시대와 사울의 시대에, 그리고 그 후에 열왕들 중 대부분의 시대에 그러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자기들의 길을 돌아보고 고치는지를 시험해 보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징계가 그들의 어리석음을 몰아내지는 못하게 되자, 하나님은 먼저 "다윗의 집에서 이스라엘을 찢어 나누시었다." 그들이 다윗의 집 아래에서는 행복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유다 나라가 약화되었듯이, 이스라엘도 또한 타락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왕으로 삼은 사람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를 떠나게 하여 큰 죄를 범하게" 하였던 자이기 때문이다(21절). 이것은 한 민족의 심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전에 우상을 숭배해 온 죄의 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하나님) 앞에서 제하셨으므로" (18, 23절), 포로에서 귀환되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희망도 주지 않았었다.

마지막으로 아주 한 가운데에 유다에 대한 고발이 있다(19절). "유다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고 했다. 그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그렇게 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이스라엘의 율례를 행하였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죄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죄악을 유다에게 감염시켰다는 점이다(겔 23:11 참조). 나라와 가정에 죄를 가져오는 자들은 재앙도 가져오며, 그들은 그 뒤에 올 모든 해악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17:8 없음.

 

17:9 없음.

 

17:10 없음.

 

17:11 없음.

 

17:12 없음.

 

17:13 없음.

 

17:14 없음.

 

17:15 없음.

 

17:16 없음.

 

17:17 없음.

 

17:18 없음.

 

17:19 없음.

 

17:20 없음.

 

17:21 없음.

 

17:22 없음.

 

17:23 없음.

 

17:24

사마리아인들의 우상 숭배(열왕기 하 17:24-41)

상속자가 없어서 땅을 잃어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고 흔히 말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에서 쫓겨나자, 앗수르 왕은 곧 자기 나라에서 다 수용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그리로 이주시켰다. 그런 사람들은 앗수르 본국에는 없어도 상관이 없을 자들이요, 왕의 종이었고, 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주인 노릇을 했다.

여기에는 이들 새로운 거주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나와 있음으로써 사마리아와 또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된다.

Ⅰ. 여기에는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간 앗수르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1. 그들은 사마리아를 소유하여, "그 여러 성읍에 거하였다" (24절). 땅이 그 주인을 바꾸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거룩한 땅이 다시 이방인의 땅이 되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죄가 무슨 일을 하는 가를 보라.

2. 그들이 처음 온 것을 보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사자(獅子)를 보내셨다" 고 했다. 그들이 그 땅을 다 차지하기에는 수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들짐승이 번성하여 그들을 해하였다" (출 23:29). 그러나 그렇게 된 것은 자연적인 원인 이외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만군의 주요, 모든 피조물의 주이다. 하나님은 몸집이 작든 크든, 이나 사자라도 그가 기뻐하시는 바대로 그의 목적에 이용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박대하신 것은 그들의 자존심과 거만을 꺾으시고, 그들이 비록 이스라엘을 정복했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들을 처치하실 충분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또 이스라엘을 돕도록 사자들을 명령함으로서, 하나님은 이주민의 가나안 거주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나안 거주를 허락한 것은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악함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의 징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하셨다. 이주민들은 자기들의 본국에서도 하나님 없이 살았으나 사자들로 인한 괴로움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이 땅에서도 그렇게 한다면, 생명에 위험이 온다.

3. 그들은 자기들의 주인인 그들의 왕에게 이 불평에 대한 간언을 했다, 즉 새로 생긴 그들의 식민지는 사자들로 인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런 공포를 당할 것이라는 점을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자기들이 그 땅의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이 내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들은 그 땅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를 예배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26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었으니, 그들은 무지하게 그를 "그 땅의 하나님" 이라고 불렀고,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 이스라엘인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준비를 하지 못했었다. 또 이스라엘인들은 "그 땅의 하나님" 을 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바로 그들 조상의 하나님이며, 그들의 위대한 보호자였고, 그를 예배하는 법식을 잘 배웠던 것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배우기를 싫어했던 바를 배우려고 애썼다.

4. 앗수르 왕은 그들이 "그 땅의 하나님의 법식" 을 배우도록 조처했다(27, 28절). 이것은 그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사자에게서 자기의 신하들을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이 일을 위하여 그는 포로로 데려갔던 제사장들 중의 하나를 돌려 보냈다. 어떤 예언자는 그들에게 보다 많은 친절을 베풀었으면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제사장은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 중의 일원에 불과했고, 그래서 그는 옛 정의를 보아서 벧엘에 거하기로 선택했으며, 그가 비록 그들이 이전보다 더 잘 행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할지라도, 그가 자기의 동족을 더 잘 가르칠 수 없었을 바에야, 그들을 그렇게 잘 가르친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제사장은 그들 중에 와서 거하였고,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가 그들을 율법책을 통해서 가르쳤는지 혹은 입의 말로써 가르쳤는지는 분명치 않다.

5. 그들은 그런 가르침을 받음으로, 그것으로 하나의 혼합 종교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했다." 그러나 "각자 자기들의 신들도 예배했다" (33절). 결국 여호와 하나님은 겁이 나서 섬겼고 자기들의 신은 사랑 때문에 섬겼다. 그들은 모두 그 법식에 따라 그 땅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희생 의식과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여러 우상들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다. 그런 우상들은 자기 가족들의 사사로운 용도를 위해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산당에도" 놓여졌다(29절).

각 지역의 우상들의 이름이 여기에 나온다(30, 31절). 학자들도 이들 여러 이름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 우상들을 어떤 식으로 예배했겠느냐 하는 데도 의견의 일치가 없다. 만일 우리가 유대 박사들의 전승을 믿는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숙곳브놋에는 암탉과 병아리로 예배를 드렸고, 네르갈은 수닭으로, 아시마는 흠없는 염소로, 닙하스는 개로, 다르닥은 노새로, 아드람멜렉은 꿩으로, 그리고 아남멜렉은 칠면조로 각자 예배를 드렸다. 영국 학자들은 숙곳브놋(" 딸들의 장막" 을 의미한다)은 뷔너스였다고 말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크다. 바사와 굿 사람들이 예배했던 네르갈은 "불" 이었다.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은 몰록 신의 별칭에 불과하다.

우상 숭배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지 보라. 그러면 그들의 어리석음에 놀랄 것이다. 이들 우상에 대한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이러한 거짓 신들이 모두 사라질(렘 10:11) 것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모두 망각 속에 매몰되지만, 참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계속할 것이다.

6. 이 가지각색의 미신이 "오늘까지 계속되니" 라고 했다(41절). 그것은 이 책이 기록된 때, 그리고 그후 오랫동안 300년 이상, 즉 알렉산더 대왕 때까지 계속되었다. 알렉산더 대왕 당시 유대의 대제사장 야두스의 형제인 므낫세는,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의 딸과 결혼하여 그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래서 대왕에게 그리심 산에다 성전을 세울 허락을 받아 내었고, 많은 유대인들을 자기에게로 데려왔다. 그리고는 사마리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우상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예배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배는 너무도 미신과 혼합되었으므로, 우리의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무엇을 예배하는지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다(요 4:22).

Ⅱ. 앗수르 땅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사람들에 관하여 보자. 역사가는 그들에 관하여 이야기할 기회를 잡았다(33절). 그는 그 땅의 후속 거민들이 어떻게 행했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이 데려온 민족들의 법을 좇아 행했다"). 즉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다른 신들을 함께 섬겼다. 그러나 포로들이 그 고생의 땅에서 무엇을 행했는가? 그들은 그들이 당한 고통으로 인하여 마음을 고치고 회개했는가? 아니다. 그들은 이전의 법을 좇아 행했다(34절). 나중에 두 지파(유다 왕국)도 바벨론으로 끌려 갔는데, 그들은 그 사건으로 인하여 우상 숭배를 버렸다. 그러므로 70년 후 그들은 기쁘게 되돌아 왔다. 그러나 열 지파(이스라엘 왕국)는 시련 속에서 더욱 완악하여졌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 잊혀지고 멸망하도록 버림받아 마땅했다. 그들의 이 완고함은 다음 사항을 고려해 보면 더욱 무거운 죄악이다.

1. 하나님은 "그가 이스라엘이라 이름했던" 야곱의 자손으로서의 영예를 그들에게 주었고, 그들은 그의 이름을 따라 그렇게 불리웠지만, 오히려 그들은 그 귀중한 이름에 치욕을 돌렸다.

2. 그는 그들과 계약을 맺었고, 그들에게 그 계명에 대한 의무를 주었다. 이 사실은 여기에 아주 충분히 기술되어 있다. 그 계약이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이요(36절), 또 그의 법도와 규례를 기록으로써 받았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영원히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이며(37절)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과 맺은 계약 곧 그 계약의 조건들과 약속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고 하는 가장 중요한 조항은 3번이나 반복되어 있다. 이렇게 반복되어 있는 것은, 이미 그 조항이 수없이 거듭 가르쳐져 왔고 강조되어 왔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일 그들이 늘 하나님께 가까이 하면 "그들을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겠다" 고 말씀하셨다(39절). 그러나 그들은 지금 원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에 구원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그들은 너무 미련하고(자기들의 유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이전의 법을 좇아 행했고(40절), 그들은 참 하나님과 거짓 신들을 전혀 구별할 줄 모르는 자들처럼, 둘을 함께 섬겼다.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그대로 내버려 두라." 그들이 이렇게 하자, 이웃 백성들도 그렇게 행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모두 죄 아래 있기 때문이다" (롬 3:9)라는 바울 사도의 말은 지당한 말이다.

 

17:25 없음.

 

17:26 없음.

 

17:27 없음.

 

17:28 없음.

 

17:29 없음.

 

17:30 없음.

 

17:31 없음.

 

17:32 없음.

 

17:33 없음.

 

17:34 없음.

 

17:35 없음.

 

17:36 없음.

 

17:37 없음.

 

17:38 없음.

 

17:39 없음.

 

17:40 없음.

 

17:41 없음.




































 


Articles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