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열왕기상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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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열왕기 상 22:1-14)

아합은 욕망의 지배를 받아서 분노와 죄 지음을 계속하고, 마침내는 전쟁에 휩쓸려 멸망하게 되지만, 참회와 겸비의 대가로 삼년간의 평화를 누리게 된다(1절). 그리고 유다 왕 여호사밧의 예방을 받는다. 유다인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다. 즉 아합이 그의 죄로 인해 겸비해지고 베옷을 입었을 때, 그는 여호사밧을 불러 자기에게 채찍을 가하도록 부탁했고, 여호사밧은 매일 여러 차례 아합을 채찍질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거없는 전승이다. 아마 그들은 나라 일에 대해 의논하려고 만났을 것이다. 여호사밧처럼 위대한 인물이 다윗의 왕가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 아합의 왕국을 왜 그토록 존경했는지 또 하나님 예배를 저버린 아합왕을 그토록 친절히 대했는지 아리송하다. 여호사밧은 믿음 깊은 사람이나 그의 성품은 너무 고분고분하였고, 이 때문에 함정과 난처한 지경에 빠지게 된다. 아람 사람은 감히 아합에게 불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Ⅰ. 아합은 아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그 계획을 알린다(3절). 아람의 왕이 그를 격분시킨 것이다(20:34). 즉 벤하닷이 아합에게 그의 성읍들을 되돌려 주기로 약속하고, 풀어 주었는데 그것이 아합의 어리석음이었다. 그 성읍들을 도로 찾아 버리기까지는 벤하닷을 풀어 주지 않았어야 할 일이었는데, 그의 말만 듣고 놓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이제 그는 사전에 고려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즉 그러한 약속이나 입맞춤은 "적군의 사기행위" 요, 비통한 가운데서 억지로 맺은 동맹군에게는 신임을 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벤하닷은 자기들이 언약한 바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그 언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왕들 중의 하나였다. 다른 성읍들은 되돌려 주었는지 알 수가 없으나, 레위 지파의 도성인 요단 건너편에 있는 땅이요, 갓 지파의 도성 중에는 상당히 큰 도성이요 또 도피성 중의 하나였던 길르앗 라못은 돌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합은 자기 자신과 그의 백성들을 책망했다. 즉 일찍이 길르앗 라못 성읍을 아람 사람에게서 뺏어오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점과, 벤하닷이 자기와 맺은 약속을 파기한 것을 징책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였다. 그리고는 감사할 줄 모르며 불실한 벤하닷에게 평화를 주었듯이, 이제 자기는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벤하닷에게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합은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공정성이 일의 성패로 판가름되어서는 안 된다.

Ⅱ. 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려고 여호사밧을 불러 자기와 합류케 한다(4절). 그가 신앙심 깊고, 부유한 이웃의 도움을 갈망한 것은 이상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쁜 사람들조차도 이따금 착한 사람들의 우정을 탐내는 법이다. 하나님과 관계하는 자들과 관계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며, 하나님을 믿는 자가 우리와 함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아합의 관심사에 쌍수를 들고 참여하며, 나는 "그대와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라" 고까지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은 아합과 그의 백성만큼 사악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악인들에게 지나치게 고분고분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방심 때문에 "흑암의 무익한 일" 로 위험한 교분을 갖게 된다. 여호사밧은 싸움터에서 아합에게 졌던 신세를 값비싸게 보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자는, 여호사밧은 자기 아버지가 아람과 합세하여 이스라엘을 친(15:19, 20)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합세하여 아람과 싸우려 한다고 본다.

Ⅲ. 여호사밧의 특별한 간청으로 아합은 원정에 대하여 선지자들의 의견을 묻는다. 아합은 그의 정치가들에게만 물어 보아도 충분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떤지 물어" 보아야 한다고 건의한다(5절).

1. 선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싶어하며,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허가를 얻어서 거둔 성공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 선한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져야 하며, 그 신앙을 냉대하는 자들과 같이 있는 동안에도 자기의 신앙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다 "하나님의 말씀" 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남겨두고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솔직히 인정하여 아합의 궁정에 이 생각을 곁들일려고 노력한다. 아합이 그를 전쟁에 끌어들였다면, 여호사밧은 아합을 하나님께 대한 기도로 끌어들였다.

Ⅳ. 아합이 소집한 400명의 선지자들은 (그들은 자기들을 "아세라의 선지자" 라 불렀다) 그가 원정을 떠나도록 격려하고 그의 성공을 확신한다고 했다(6절). 아합은 표면적으로는 공정한 태도로 질문한다. "내가 가야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삼가야 하느냐?" 그러나 선지자들은 아합이 어느 쪽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아합과 여호사밧을 즐겁게 해 주려고만 생각한다. 여호사밧을 기쁘게 하기 이해 선지자들은 "여호와" 의 이름을 이용한다. "여호와께서 그 땅을 왕에게 주시리라." 그들은 진실한 선지자들에게서 그 말을 도적질하여(렘 23:30) 그들의 언어로 말하였다. 아합을 기쁘게 하려고 그들은 원정에 "오르시요" 라고 말한다. 사실인즉 그들은 아합의 편이었다. 얼마 전에 아합은 아람을 두 번이나 패배시킨 적이 있다. 아합은 이제 훌륭한 명분도 섰고, 여호사밧의 동맹군으로 더불어 무력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머리에서 나온 추론이 아니라 예언에 의해서,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통찰력에 의해서 된 일처럼 꾸며서 말한다. "왕은 확실히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리이다."

이 선지자들 중의 지도급인 시드기야는 참된 선지자의 말을 모방을 하면서, 표적으로 거짓을 예언한다. 그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그것이 두 왕과 그의 명예와 힘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뿔 하나는 의기양양함을, 또 하나는 힘을) 이것으로 아람은 쫓겨나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아합이 원정에서 승리자가 되어 귀환하리라고 의견이 일치된다(12절). 일치가 항상 참다운 교회나 사역의 표지는 아닌 것이다. 400여명의 선지자가 한 마음으로, 한 입으로 하듯 합치된 예언을 했지만, 모두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Ⅴ. 여호사밧은 이런 방식의 설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에 자기가 듣고 보고 한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참다운 선지자의 흉내를 그렇게 잘 해 낼 수가 없었지만 영감을 지닌 사람이면 그 허위성을 분간할 수 있었기에, 여호사밧은 "이 외에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아 물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7절). 여호사밧은 지나치게 비위를 잘 맞추는 자이지만, 어쨌건 "여호와의 선지자가 오기를" 기다린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와는 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그에겐 상관이 없었다.)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아무런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갈 2:6). 충실한 여호와의 선지자 한 사람이면 많은 거짓 선지자보다 가치가 있다.

Ⅵ. 미가야라는 선지자는 아합이 미워하지만, 아합은 여호사밧을 기쁘게 해주려고 미가야 선지자를 부른다(8-10절). 아합은 미가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고 그가 진실한 선지자이므로,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리라 말한다. 그러면서도

1. 그는 미가야를 미워했으므로, 유다왕에게 그 사실을 부끄러움 없이 말한다. 그 미워하는 이유란 "미가야가 나에 관해 좋은 것은 말하지 않고 나쁜 것만 말하기 때문" 이라고 한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아합이 좋은 일만 해 왔다면 좋은 소리만 들었을 것이다. 나쁜 일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비난하시고 위협하시는 말씀으로 그가 불안해 하여도 마땅하다. 불쌍하리 만큼 죄 속에 굳어지고 멸망을 행해 치닫고 있는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노골적으로 저희들만을 다루고 죄 때문에 그들이 불행과 위험에 부딪치게 되리라고 경고하고 그네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까닭에 미워하는 것이다.

2. 아합은 미가야를 감옥에 가둔다(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미가야를 불러오게 한 후(26절), 관원을 시켜 그가 왔던 곳으로 다시 데려가도록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벤하닷에게 관대했던 점을 미가야가 비난했었기 때문일 것이다(20:38). 이리하여 미가야는 3년이나 감옥에서 지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아합은 미가야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9절). 그의 옥중 생활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계속 찾으셨던 것이다. 그는 묶여 있었지만 "하나님 말씀" 은 묶여 있지 않았다. 감옥 생활로 인하여 그의 용기는 약해진 것이 아니요, 자신감이 없어지지도 않았고, 하나님 말씀을 더욱 충실히 전달하게 되었다. 아합이 충실한 선지자에게 분개하고 있는데 대해 여호사밧은 너무 점잖게 힐책한다.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8절).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어야 옳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선지자에게 부당하며, 그대 자신에게 냉혹하며 그와 왕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로다" 고 아합과 같은 죄인은 신랄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합은 여호사밧과의 동맹 관계가 단절될까봐 모든 비난에 양보하여, 미가야가 빨리 떠나도록 명령한다.

사마리아 성문에서 예복을 입고 왕좌에 앉아 두 왕은 미가야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한다. 좀처럼 하나님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 자들이 그의 말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두 왕 옆에는 아첨군 선지자들이 운집하고 있는데, 이들은 지금 동맹 관계에 있는 영광의 두 왕에게 아주 달콤하고 순조로운 것 이외에는 어떤 예언도 생각할 수 없는 자들이다. 아첨을 좋아하는 자는 아첨꾼이 필요 없게 되리라.

Ⅶ. 미가야는 그를 데리러 간 관원에게 압력을 받는다. 그 관원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이름을 지닐 가치조차 없는 자였다. 그는 선지자에게 말의 내용을 지시하려 했다. 미가야는 이 사람도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다른 선지자들과 유사한 자라고 판단한다. 그는 모든 다른 선지자들이 압도적으로 왕의 성공을 예언했고, 그것으로 얼마나 왕이 기뻐하는지 모르며, 미가야도 그들처럼 말해야만 이익을 얻데 되리라는 암시를 주면서, 그렇게 해야만 석방될 뿐 아니라 왕의 발탁을 받게 되리라고 말해준다. 세상사만 너무나 사랑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진실이든 허위이든, 옳든 그르든 간에 그들의 세속적 이득만을 위해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가야를 회유하고 있는 이 사람은, 압도적이며 훨씬 많은 수의 발언을 반박하는 것은 헛된 일이며 꼭 그렇게 반박하게 된다면 웃음거리가 되며 어리석은 외톨박이가 되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물에 대해서 더 잘 아는 미가야는 이에 항의하며, 왕이 기뻐하거나 싫어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하겠다는 그의 선서로서 그의 항의를 뒷받침하는 것이다(14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바대로 나는 더 보태거나, 감소시키거나 변경함이 없이 말하리라." 왕좌에 예복으로 성장한 두 왕보다도 더 위대한 하나님에게 주목하는 미가야는 이렇게 당당히 설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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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야의 예언(열왕기 상 22:15-28)

미가야가 훌륭한 일을 해 내지만, 통례대로 그 일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Ⅰ. 아합왕이나 많은 거짓 선지자보다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자이므로, 미가야가 얼마나 충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는가를 알게 된다. 그는 세 가지 방법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이것이 모두 아합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1. 거짓 선지자와 똑같이 말하지만 매우 빈정대서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라고 한다(15절). 아합은 거짓 선지자에게 물어 본 것과 똑같은 질문을 미가야에게 던지는데(" 우리가 싸우러 가랴 말랴") 아합는 이때 바람처럼, 자기가 멋대로 하고 싶은 데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했으므로, 미가야는 그 눈치를 채고 아합왕이 원정에 떠나도록 하는 것이다. 미가야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확실히 비웃음을 머금고 한 것이다. "나는 왕이 원정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을 알고 있오. 또 왕의 선지자들이 왕의 성공을 확신하는 것도 듣고 있오. 그러니 가려거든 가보시오. 그 후의 일은 왕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저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왕에게 주시리라고 말하지만, 나는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하지 않겠고, 오히려 그 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듯이 말한 것이다. 아첨을 받기를 좋아하는 자는 놀림을 당할 만하다. 욕망에 빠진 자들에게는 자기들 뜻대로 버려 두시는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다(전 11:9). 이에 대한 대답으로 아합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뭣을 시킬 것이며, 자기는 하나님을 위해 뭣을 해야 하는지를 간절히 알고 싶어 하는 듯이, 미가야의 농담 아닌(16절) 진실을 말해 주도록 간청하나, 마음 속으로는 미가야가 성미가 까다롭고 괴팍한 선지자로서 선서를 지켜야만 진실을 말하는 자라고 생각했다.

2. 압력을 받았으므로, 미가야는 원정에서 군대가 차단되며 흩어지리라(17절)는 것을 밝히 말해 준다. 미가야는 환상 속에서나 꿈 속에서 아합의 군대가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목자를 치라. 그러면 양이 흩어지리라(슥 13:7).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1) 이스라엘은 그들의 목자인 왕을 잃으리라. 하나님께서 이를 아시는 도다. "그들이 주인을 잃을 것이다."

(2) 그들이 "목적 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퇴각할 것이다. 미가야는 군대에서 대 살육이 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불명예스러운 퇴각을 당하리라고 예언한다. "모든 군인들은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무질서 속에 퇴각하겠지만 왕의 죽음으로 인하여 크게 잃는 자는 없으리라. 왕은 죽을지라도 군인들은 평화로이 집에 돌아가리라.

다른 거짓 선지자들이 다만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예언을 하는 데 반해, 미가야는 그가 보고 들은 바를(그들이 즐기거나 말거나) 예언한 것이라고 증언한다(렘 23:28). "너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들었으니 나의 말을 충실히 말해라. 밀에게 있어 왕겨는 뭣인가?" 아합은 몹시 불쾌하여 여호사밧에 미가야가 분명히 자기에게 앙심을 품었던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18절). 다른 사람에게 악의를 품는 자는 보통 근거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악의를 품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가장 나쁘게 해석하는 법이다. 아합이 원정을 갈 수도 있고 중지할 수도 있는 터에, 만약 왕이 원정하면 치명적인 것이라고 아합에게 예언한 것이 무슨 죄악인가? 위험한 길로 가려는 자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은 그의 위험성을 지적해 주는 일이다.

3. 미가야는 거짓 선지자가 왕에게 원정을 하도록 격려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탄을 시켜 거짓 선지자들이 왕을 속여 파멸되도록 한 것이며 미가야는 환상을 통해서 이것을 알았노라고 하고 또 하나님께서는 아합왕을 길르앗 라못에서 패망시키도록 결정하고(19, 20절), 벤하닷에게 악하게 행한 바에 대해 하나님과 아람 사람에 의해 처벌되게 하고, 아합이 길르앗 라못에 갈 것이냐 그만둘 것이냐 하다가 마침내는 자기의 부하 선지자들의 의견을 듣기로 하고 그들이 왕의 원정을 권고하게 되고 떠나게 되니(21, 22절), 거짓 선지자들이 확신을 가지고 왕을 격려하게 되었던 것(23절)이고 하나님의 허가하심을 입은 거짓말이었다고 일러 준다.

이 일은 인간들의 행동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을 이루시는데 방법을 모르셔서 당황한다든가 어떤 조언에 따른다든가, 그가 하시는 방법에 있어 천사나 인간과 의논할 필요가 있다든가, 죄의 창시자가 아니면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믿게 되는 원인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일이 아합에게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있다.



(1)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세상의 왕좌 위에 있는 왕좌를 가지셨다. 미가야는 아합과 여호사밧왕에게 말한다. "왕들은 왕좌를 가졌고 원하는 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며, 원하는 대로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아계신 것을 보았고, 그분에게서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이 유래되는 것을 보았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나는 말하리라.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니라."

(2) 하나님께서는 항상 수많은 천사의 무리들의 봉사를 받으시며, 그들 천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가고, 명령대로 행하며, "우편 손에는" 자비의 사자를, 왼편에는 분노의 사자가 자리하고 있다.

(3) 하나님은 인간 관계의 만사를 심리하고 관장하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기의 뜻에 따라 다스리신다. 제왕들의 흥망, 전쟁의 결과, 국가의 대사들, 등은 나라의 요인들이 생각할 문제이지만, 시골 촌부의 하찮은 일과 마찬가지로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

(4) 하나님은 스스로의 뜻을 실현하는 여러 가지 방도를 가지고 있으나, 특히 멸망에로 익어가는 죄인들을 몰락시키는 방법은 더욱 여러 가지이다.

(5) 악의에 찬 거짓말하는 영(靈)이 항상 멸망시키려고 돌아다닌다. 그 영은 속이기 위해 힘쓰고, 특히 선지자의 입에 거짓말을 넣어 그것으로 많은 사람을 유혹하여 파멸시키려 애쓴다.

(6) 악마가 인간들을 속이는 것도 하나님 허락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니, 여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신다.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여 있다" (욥 12:1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섭리의 사랑 가운데 나타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처벌하려고 "사탄을 풀어 속이게 할" 뿐 아니라(계 20:7, 8), "사탄을 믿도록 강한 미혹을 저들에 준다" (살후 2:11, 12)

(7) 이처럼 버림을 받은 자는 분명히 멸망시키기로 운명지어 진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거짓말하는 선지자들에 의해서 속도록 포기한 자들에게는 분명히 "재앙을 발하신다."

이렇기 때문에 미가야는, 아합에게 그가 전쟁에 나서는 위험성과 원정에 나가도록 격려하는 자들을 믿는 것은 위험하다고 공정한 경고를 했던 것이다. 우리는 "거짓말하는 선지자들을 조심해야" 하며, 영들을 시험해야 한다. 거짓 영이 "선지자들의 입에" 있을 때보다 더 위험스런 때는 없다.

Ⅱ. 미가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고 명백하게 왕들을 확신시키고 감동시키기에 알맞은 방법으로 말한 까닭에 곤욕을 치룬다.

1. 사악한 선지자 시드기야가 법정에서 뻔뻔스럽게도 "미가야의 뺨을 때려" 모욕을 주었고, 그를 비난하고 침묵케 하고, 말을 못하게 하며, 분통을 터뜨렸다[이렇게 이스라엘의 재판장(미 5:1)이신 우리 구주도 곤욕을 당했다. 마 26:27]. 시드기야는 자기가 하나님의 영을 독점이나 했다는 듯이, 또 자기의 허락 없이는 하나님의 영이 떠나지도 않는다는 듯이,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라고 말한다(24절). 거짓 선지자들이야 말로 참다운 선지자들의 가장 나쁜 적이요, 거짓 선지자들은 정부에 선동하여 참 선지자에게 대항할 것을 계획할 뿐 아니라, 시드기야처럼 자기들이 직접 참 선지자들을 모욕하는 행동을 취하는 법이다. 특히 왕이 있는 법정 구역 내에서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우리들(영국)의 법률에 의하면 중죄에 해당된다. 그런데도 이 사악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욕하고도, 아무런 견책을 당하지 않는다. 아합은 이것을 기뻐했다. 그리고 여호사밧은 자기의 관할권 밖의 일이라 여기고, 부상당한 선지자 앞에 나타날 용기를 갖지 않는다. 미가야는 비록 반격을 가하지 않지만(하나님의 선지자는 사람을 때리거나 고소하지 않으며, 주먹에는 주먹으로 복수하지도 않으며, 혹은 평화를 깨뜨리는 일에 가까운 행동은 안하는 법이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조금도 모르는 자들이 통상 그렇듯이, 시드기야가 성령에 대해 지나치게 자랑하고 있으므로, 미가야는 시드기야에게 되어지는 사건을 통해서 그의 잘못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그냥 버려두었다.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날에 알리라" (25절). 시드기야는 아합과 함께 싸움에 나가 철로 된 뿔로서 병사들을 격려하고, 그의 예언이 이루어져서 왕과 함께 승리의 귀환을 하리라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군대가 패주하자, 그는 적진 속에서 겨우 도망을 쳐, 벤하닷이 그랬듯이 "골방에" 숨었던 것이다(20:30). 이는 발람이 그랬듯이(민 31:8), 자기가 속였던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며, 또 그 눈먼 선지자는 자기가 잘못 인도한 그 눈먼 왕과 함께 "도랑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발버둥친 것이다. 하나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시기에 알맞게 잘못을 수정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잘못을 깨닫게 되는 것은 이미 때 늦은 것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2. 아합은 악한 왕이라, 미가야를 감옥에 넣고(27절), 감시를 하게 할 뿐 아니라, 그가 나온 곳에 재투옥시켜, 자기가 개선하여 올 것을 확신하면서, 돌아올 때까지 거치른 빵과 웅덩이 물만 먹고 지내도록 했다. 그리고는 그가 돌아오면 거짓 예언의 누명을 씌워 미가야를 처치하려 했던 것(27절)은, 그의 멸망을 막아보려 했던 선지자에 대한 가혹한 대접이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합을 "파멸시키기로 작정하셨다" (대하 25:16). 아합이 그의 성공을 얼마나 자신하였던가! 그 자신이 벤하닷에게 상기시켰던 것은 망각하고, 평안이 돌아올 것을 의심치 않았다. "갑옷 입는 자가 자랑치 못할 것이니라." 그러나 아합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감옥에 둔 채로는 전지에서 편안히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미가야는 이것을 쟁점으로 하여, 모든 사람이 증인이 되어 달라고 한다. 의심치 않았다. "왕이 편안히 돌아온다면, 여호와께서 나를 통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다(28절). 만약 왕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거짓 선지자에 대한 비난과 처벌은 내가 받으리라." 미가야는 운에 맡기고 이렇게 호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었다. 지상의 왕들에게 무서운 존재이시오, 왕들을 진흙처럼 밟아버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말씀 중 일점일획이 지워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 천의 군왕을 멸망시키려 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코 "자기의 종의 말을 응하게 하신다" (사 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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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의 최후(열왕기 상 22:29-40)

하나님의 선지자와 아합의 선지자 사이의 싸움이 곧 결판나는데, 어느 편이 옳은가가 나타나 있다.

Ⅰ. 두 왕은 군대와 더불어 길르앗 라못으로 행진한다(29절). 하나님의 선지자를 미워하던 이스라엘의 왕은 자기의 고집을 계속 주장하는 만큼 그 선지자의 말에는 불신을 보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신앙심이 두텁고 아합의 선지자를 싫어하며 불신하고 "여호와의 선지자" 를 알아보았던 여호사밧왕이 그토록 공정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원정에 나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고분고분한 성격 때문에 그의 친구의(위선에 빠졌던 바나바처럼. 갈 2:13) 기만에 빠졌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전해 주는 듯이 가장했고, 자기 나라에서는 그런 협잡에 속아 본 일도 없는 까닭으로, 아합의 예언자들의 말에 지나치게 유의하였다. 여호사밧은 대다수의 예언자들과 의견을 같이 하려했고, 두 왕이 성공하리라는 말은 400대 1의 비율이라고 결론지었다. 미가야도 두 왕이 원정에 나서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었다. 처음에는 "나가시오, 승리를 거두소서" 라고 하지 않았던가! 만사가 최악의 경우가 된다 하여도 예언대로 아합이 멸망하는 것 뿐이니, 여호사밧은 안심하고 모험해 볼 만한다고 생각했다.

Ⅱ. 아합은 자기 자신은 안전하게 하고, 자기의 친구 여호사밧이 위험을 당하게 할 계략을 꾸민다(30절). "나는 변장을 하고, 일반 병사처럼 행동하겠으며, 여호사밧에게는 왕복을 입혀 장군으로서 나타나게 하리라." 그리하여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경의를 표하는 체하고 이 전투에서 총 지휘를 할 것을 권했다. 여호사밧이 지휘하고 명령을 하달하면, 아합은 그의 지휘 하에서 병사처럼 싸우게 된다. 그러나 아합은 다음과 같이 작정하였던 것이다.

1. 선한 선지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이요. 이렇게 함으로써 위험을 피하고, 자신이 가장함으로써 하나님의 눈과 추적하는 심판을 벗어나기만 할 수 있다면, 그 선지자가 말한 경고를 물리치게 되리라 생각한다.

2. 선량한 왕(여호사밧)을 바보로 만드는 일이다. 아합은 여호사밧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신봉했던 까닭이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의 변절을 비난했던 것이다. 그는 누구든지 멸망해야 한다면 그것은 목자(미가야가 그렇게 예언했다)가 망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이 주로 "이스라엘의 왕에 대하여" 싸운다는 것을 알리며, 여호사밧을 비열하게도 위험에 직면케 하여 배반하기로 하고, 자기 자신의 안전만을 얻으려 했을 것이다. 아합은 멸망되도록 운명지어져 있었다. 아무리 큰 돈을 준다 해도 누구나 그의 옷을 입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합은 강력히 권고하여 신앙심 높은 여호사밧이 대신 불려나가게 한다. 양심이 타락되고 명예로운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악의에 찬 사람들과 유사성으로 인하여 합류되는 자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보아라. 하나님에게 진실하지 못한 자가 친구에게 진실하리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Ⅲ. 약삭빠름보다는 경건한 마음을 가진 여호사밧은 비록 위험하지만 명예로운 지위(지휘관)에 올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아람 왕은 말다툼한 일조차 없는 유다 왕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특히 증오하는 이스라엘 왕 바로 그 인물을 향해 똑바로 돌격하도록 명령한다. 이제 아합는 그가 벤하닷의 생명을 구해 준 대가를 치르게 된다. 벤하닷은, 독사의 새끼들처럼, 자기가 자라났고, 거기서 멸망을 면했던 그 가슴을 상하게 한다. 혹자는 벤하닷은 아합을 생포하여, 그전에 자신이 받은 똑같은 명예로운 대접을 아합에게 해 주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가 어떠했든, 장관들은 그런 명령을 받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왕이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사밧이 이 왕복을 입은 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간주하여 그를 포위했기 때문이다.

1. 그러나 여호사밧을 위험에 직면케 함으로써, 하나님은 아합과 동맹을 맺은 그를 좋게 여기지 않음을 알게 한다. 여호사밧은 일찍이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4절)라고 아합에게 경의를 표했었는데, 이제 그는 아합으로 잘못 보여진 것이다. 나쁜 짓 하는 자와 가까이 지내는 자는 벌도 함께 받게 되는 것이다.

2. 이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을 미워는 하여도 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한다. 여호사밧을 알고 있는 몇몇 장교들이 그들의 잘못을 알고 여호사밧을 쫓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여호사밧에서 떠나가도록" 하신 것이라 했다(대하 18:31)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손으로 만물을 관장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해, 여호사밧은 비겁심에서가 아니라, 신앙심에서 울부짖었더니, 하나님의 구원이 그에게 온 것이다. 아합은 여호사밧을 구원해 주는 데는 조금도 개의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친구들이 우리를 저버려도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는 친구이니라.

Ⅳ. 아합은 일개 보초병 노릇으로 그의 안정을 도모해 보았지만 전투 중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다. 가면을 쓴다 해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 숨을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말라. 어떻게 변장했어도 "주의 손이 모든 적을 찾아 낼 것이다" (34절). 아합을 쏜 아람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과 자기의 왕에게 봉사를 한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특히 어떤 적을 겨냥했던 것이 아니라 우연히 활을 당겼던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화살이

1. 하나님께서 파멸시키기로 결정한 바로 그 장본인을 맞추게 한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초 계획대로 아합을 생포했더라면 아마 벤하닷이 살려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죽이기로 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2. 화살은 바로 정곡을 맞추었다. "아합의 갑옷 솔기를" 쏜 것인데, 이 죽음의 화살이 뚫고 갈 곳이라고는 그곳뿐이었던 것이다. 어떤 갑옷도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을 막을 수는 없다. 강철 속에 범인을 집어 넣어도 매일반이라. "사람을 만든 하나님께서 그의 칼로 범인을 칠 수 있느니라." 우리에게는 전혀 뜻하지 않는 일같이 보이는 것도 실은 하나님의 단호한 생각과 선견지명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Ⅴ. 군대는 적에 의해 분산되고 왕의 명으로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여호사밧이나 아합이, 목자가 다쳤으므로 양떼를 돌려보냈을 것이다. "각기 성읍으로 가라." 왜냐하면 그 이상 다른 것을 기도하여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36절). 아합은 죽기 전에, 미가야가 예언한 것, 곧 모든 이스라엘이 "길르앗 산에서" 흩어지리라(17절)는 것이 실현되는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34절) 군진에서 떠나고 싶었지만, 자기 군대가 과연 승리할지 알아보려고, "병차 가운데 남아" 있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세가 아합에게 불리해지자, 그의 사기는 떨어지고, 그는 죽는다. 그런데, 그의 죽음은 서서히 다가왔으므로, 자기가 죽어가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아합이 죽어가는 동안, 자기가 저지른 사악한 행위와 자기에게 준 경고를 경시한 것, 그리고 바알의 재판, 나봇의 포도원, 미가야의 감금 등으로 얼마나 공포에 떨었겠는가는 짐작이 간다. 아합은 자신이 파멸되어 가고 있다고 믿으며, 시드기야의 쇠뿔이 아람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를 파멸 속으로 밀어 부치고 있는 것을 보았으리라. 이렇게 하여, 아합은 아무런 "희망" 도 없이 "죽음의 공포의 왕에게로 끌려갔다."

Ⅵ. 왕의 시체는 사마리아에 운반되어 거기서 매장되었는 바(37절) 여기에는 또 그가 탔던 피묻은 병거와 갑옷도 운반되어 왔다(38절). 특히 지목되고 있는 사정은, 예언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즉 그들이 사마리아 웅덩이로 병거를 씻으려고 운반해 왔을 때, 개들이(칠십인역에는 돼지도 있었다고 함) 모여들어 그 "피를 빨았다" 는 점이다. 혹자는 병거를 씻은 물에 피가 섞여 있었고, 그 물을 핥은 것으로 본다. 개들에게는 왕의 피이건 일반 사람의 피건 상관없는 일이다. 나봇의 피는 이제 복수를 받은 것이고(21:19), 다윗과 엘리야의 말들은 충족되었던 것이다(시 68:23). "네 발을 정의 피에 담그게 하고 개의 혀로 네 원수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 하리라." 죄있는 피를 개가 핥는다는 것은 아마도 죽음 후의 죄있는 심령을 괴롭히는 공포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아합의 얘기는 일반적인 공식으로 끝맺어진다(39, 40절). 그의 여러 가지 일 가운데 그가 건립한 상아의 집이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그 집의 대부분을 상아로 새겨 넣었기 때문인 것이다. 아마 이렇게 호화롭게 한 것은 솔로몬이 건립한 으리으리한 유다 왕들의 왕궁과 경쟁하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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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여호사밧의 최후(열왕기 상 22:41-53)

Ⅰ. 유다 왕 여호사밧의 통치에 대해 잠깐 설명된다. 더 충분한 얘기는 역대기에서 읽게 되며, 유다 왕의 위대함과 인자함은 깎이거나 훼손되지 않으나, 그가 아합과 교분을 자주 가짐으로써 몰락을 재촉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미 본 대로, 아합과 동맹하여 전쟁에 참여했던 것은 그에게 위험스러운 일이었고, 아합의 아름 아하시야와의 교역(交易)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하시야는, 상선 솔로몬의 해군이 그랬듯이(49절) 오빌에서 금을 캐오는데 함께 가자고 여호사밧에게 제의했었다(대하 20:35, 36). 그들이 선박을 출범시키려 했을 때, (" 에지온 게벨에서") 폭풍이 일어 파선되었는데, 한 선지자가, 이것은 여호사밧이 사악한 아하시야와 교제를 맺은데, 대해 하나님께서 노하신 것이라고 그에게 알려준다(대하 20:37). 아하시야가 다시 한 번 여호사밧과 합작하자고 원했고, 그것이 어려우면 여호사밧의 선박에 그의 종들만이라도 보내려 했으나 여호사밧은 이를 거절했다. "여호사밧은 원치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해석된 바에 의하며, 하나님의 막대기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행한 왕과 여호사밧의 동맹 관계를 효과적으로 끊어버리신 것이다. 지혜는 비싸게라도 구입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경험은 바보들의 애인이라고 한다. 바보들이란 경험을 통해서 배우게 될 때까지는 배우려 하지 않으며, 특히 사악한 자들과 교제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서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여호사밧의 통치는 가장 긴 것은 아니었으나, 가장 훌륭한 통치의 하나였다.

1. 가장 길지 않았다는 것은, 겨우 25년간만 통치했기 때문이다(42절). 그러나 그의 일생 중 가장 원기 왕성한 때인 35세에서 60세까지였고, 그의 25년간과 그의 부친의 41년간의 통치는 유다 왕국이 번영할 수 있었던 좋은 여건을 조성해 주었다 하겠다. 이스라엘에서 모든 사정이 여의치 않았을 때에도 유다 왕국에서의 신앙생활은 상당 기간 번성되었던 것이다.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만큼 장기간 통치하지 않은 것은, 그의 부친이 말년에 저지른 실수(대하 16:9, 10, 12)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혜와 명예로써 명성을 얻고, 그 명성이 한창일 때 죽는 것이 오래 살면서 그 명성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2. 그러나 경건함과 번영의 관점에서 보면, 여호사밧은 훌륭히 통치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니" (43절),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고 그의 아버지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 안에서 부지런히 힘썼던 것이다. "그는 거기서 돌이켜 떠나지 아니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격에 "다소" 의 결함이 있듯이, 여호사밧도 그랬다. 즉 "산당은 제하여지지 않았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에 지극히 가까이 있어서, 쉽사리 그곳에 가서 제사와 분향을 드릴 수도 있었으므로, 다른 지파들처럼 멀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산당이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유구한 제악이 뿌리 뽑히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는 법이니, 특히 그 산당은 사무엘이나 솔로몬 등과 같이 위대한 인물들이 후원하던 것이므로, 그들도 거기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더욱 어려웠다.

(1) 그의 사업은 번영했다. 그는 영속적인 평화를 수립함으로써(44절), 이스라엘 왕과 동맹하여 전쟁에 참예했던 피해를 막았다. 만일 그가 스스로 평화에 힘쓰고, 이스라엘과 동화되려 하지만 않았더라면, 그의 사업은 더 큰 번영을 가져 왔을 것이다. 그는 에돔 나라에 자기의 부관 내지는 대리 총독을 줌으로써, 그 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었다(47절). 그리고 이것으로써 에서와 야곱에 대한 예언, 곧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는 것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그의 권력과 전쟁에 대해서 일반적인 언급이 나와 있다(45절).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국력과 성공으로 축복해 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마감하기 위해서 그의 죽음(50절)이 언급되어 있지만, 이후에도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사에서 그는 다시금 언급됨을 볼 수 있다(왕하 3:7).

Ⅱ.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왕의 이야기가 시작된다(51-53절). 그의 통치는 매우 짧아서 2년을 넘지 못했다. 하나님은 어떤 죄인들에게 대해서는 일을 빨리 끝내신다.

여기에 나와 있는 그의 성품은 지극히 악하다. 그는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를 지속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바알 예배도 계속했다. 그는 비록 여로보암의 가문의 패망을 들었고, 바알의 예언자들 때문에 자기 아버지가 파멸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지만-종종 그 예언자들은 거짓 예언자들임이 입증되곤 했다. 그는 아무런 주의나 경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악한 아버지의 전첩과 더 악한 어머니 이세벨-그녀는 아직 생존했었다-의 충고를 따랐던 것이다. 부모들의 무수한 악에서 떠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답습하도록 가르침을 받은 자식들은 불행한 자들이다. 자기 자식들의 영혼이 저주를 받도록 돕는 부모들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부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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