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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는 아합(열왕기 상 21:1-4)

Ⅰ. 아합은 불행히도 자기 궁전 가까이에 있는 편리한 이웃 사람의 포도원을 욕심낸다. 나봇은 그의 포도원이 왕궁의 정원이 될 수 있을 전망과, 그의 포도원의 수확물을 왕궁에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했을 것이나, 이 환경이 그를 죽이게 했다. 만약 포도원이 없었든가 혹은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그의 목숨만은 부지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재산이 그 주인의 올가미가 되었었고, 왕궁에 가까이 있음으로 해서 치명적인 결과를 빚었었다.

아합은 이 포도원에 눈독을 들인다(2절). 이 포도원은 자기 소유지에 훌륭한 부가물이 될 것이고, 궁전의 편리한 출구(出口)가 될 수 있었다. 특별한 생산물이 없다해도 그 포도원은 반드시 그의 것이 되어야 했다. 포도원의 과일을 즐길 수 있었고, 산책을 할 수도 있었다. 나봇은 포도원을 자기의 생활을 위해 임대(賃貸)해 줄 수도 있었으나, 아합은 포도원을 완전히 자기 소유로 하고, 그와 그의 후손이 영구히 소유하지 않은 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포도원을 강제적으로 빼앗을 만큼 폭군은 아니어서, 그 포도원의 가치에 맞먹는 돈을 주든가 더 좋은 포도원과 교환할 것을 나봇에게 제의했다.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 승리로 그의 영토를 확장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유리한 점을 줏대 없이 포기하고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어리석은 자처럼-이제 와서 자기 저택의 편의만을 위해서 정원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소유지의 편의성을 희망하는 것 자체는 악(惡)이 아니다(구입하려는 의사가 없다면 구입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정숙한 부인은 "전답도 신중히 생각하고 산다"). 그러나 법적 수단 방법을 통하여 터무니 없이 요망하는 것은-우리가 모든 편의성을 독점해야만 한다는 것으로서-지나친 이기심의 결과이다. 만족의 율법, 즉 십계명의 말씀인 "너희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는 구절을 어기면서까지 편안히 살려 해서는 안 된다.

2. 아합의 욕망은 거절되었다. 나봇은 결코 포도원을 넘기려 하지 않았다(3절). "여호와께서 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왕에게 주는 것을 금하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봇이 이러한 사소한 일로 자기의 군주 아합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할 만큼 그렇게 거칠거나 무례(無禮)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나안 땅은 아주 특이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땅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작인으로서 희년이 오기까지(레 25:28) 또는 극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자기들의 땅은 누구에게나 또 상호간에도 양도할 수 없다는 임대 조건하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봇은 그의 포도원이 왕에게 팔려 버린다면 희년이 오더라도 그 상속인에게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아 차렸다. 그는 아합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보다는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므로, 이 일에 있어서는 변명을 요한다. 아합은 율법을 알고 있었고, 또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죄를 범하고서야 승낙할 그런 조건을 내세운 것은 악을 범한 것이다.

혹자는 나봇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그 유업은 하늘의 가나안에서 가질 그의 몫의 보증으로 여겼으므로, 하늘의 가나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지상의 가나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다고 본다. 나봇은 양심적 인간이었던 것 같고, 하나님께 죄를 범하느니보다는 왕을 불쾌하게 하는 데 서슴치 않았다. 아마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7천 명 중의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 아합이 나봇에게 원한을 가졌을 것이다.

3. 아합은 이에 큰 불만과 불안에 빠졌다. 그는 그전과 같이(20:43) 근심하고 답답하여(4절) 우울해지며, 침상에 누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방문객도 접견하지 않았다. 그는 모욕감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나봇이 자기의 요구를 거절한 냉대를 생각할수록 왕은 분통이 터졌다. 나봇의 양심의 까다로움에 대하여 아합은 실컷 욕설을 퍼부었는데, 겉으로는 평화에 대해 의논하는 듯이 보이면서도 실은 비밀리에 복수하기도 했다. 그가 받은 실망은 참을 수가 없다.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분통으로 병이 들었다. 다음을 명심하자.

(1) 불만족이란 그 자체가 처벌이 되는 그런 죄요, 인간들을 스스로 고통을 당하게 만든다. 불만은 정신을 슬프게 하고, 신체를 병들게 하고, 모든 즐거움을 쓰디쓰게 하고, 가슴이 무겁고 뼈가 부패하게 한다.

(2) 불만족은 죄의 근본이다. 그것은 외부 조건에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일어난다. 바울이 감옥소에서 만족한 반면, 아합은 궁중에서도 불만족이다. 그는 행복한 땅 가나안의 모든 기쁨과 나라의 부귀, 왕궁의 즐거움, 왕관의 명예와 권력 등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함에도 나봇의 포도원이 없는 한 아무 것도 그에게는 쓸모가 없었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욕망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번민케 하고, 아무리 과거에 행복했다 하여도 욕망을 채우려는 초조함에 걸려들면 항상 무엇엔가에 대해서 애를 태우게 되는 것이다.

 

21:2 없음.

 

21:3 없음.

 

21:4 없음.

 

21:5

이세벨의 계략(열왕기 상 21:5-16)

여기에서는 이세벨-" 저주 받은 여인" (왕하 9:34)에 대하여 듣게 된다.

1. 병이 든 남편을 위한다는 구실로, 그녀는 남편의 교만과 정욕을 만족시켜 그의 타락에 부채질을 한다. 그녀는 남편의 비통함을 알게 되고 그 원인을 캐낸다(5절). 서로 간에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그들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자들은 부부간의 사랑과 의무마저 망각한 것이다. 아합은 아내에게 그가 고통을 받고 있는 원인을 말해 주지만(6절), 나봇이 거절한 이유는 비위에 거슬려서 감추어 둔다. 실은 나봇이 양심적이었는데도, 아합은 나봇이 나쁜 사람인양 말한다. 나봇은 "주면 안 됩니다" 라고 말했는데, 아합은 "주지 않겠습니다" 고 말한 것으로 이야기했다. 이세벨은 놀란다. "뭐라고요!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서 식사를 하십시오." 이세벨이 왕을 열심히 설득하니 우울증이 떨어지고 괴로움 속에 빠지지 않게 되어, 마음이 안락하고 즐겁게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 비통하건, 슬퍼한다고 해서 그 비통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즐겁게 지내는 것이 그 슬픔을 덜어 주리라.

그녀의 촉구는 "왕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나이까?" 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좋은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위대하신 왕께서 이렇게 사소한 문제에까지 시선을 돌려야 할 만큼 낮아지셨습니까? 왕 자신에게 창피한 일이며, 왕관을 모독하는 일이외다. 그런 무가치한 일에 유의하시는 것은 왕답지 않소이다. 왕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에 적임이십니까? 당신은 당신의 정욕의 정부보다 더 좋은 정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부유한 왕국을 다스리는 자이 온데, 포도원 하나 없이 지내실 수 없습니까? 하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십자가 밑에서라도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행운과 특히 하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잠잠히 지내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세벨이 말하는 의도는 악의에서 나온 것이다. "왕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데, 왕께서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왕에게 주기를 거절하는 백성이 있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왕이십니까? 물건을 팔고 사고 하는 것은 왕답지 못하외다. 더 더구나 청원을 하고 기도를 하다니 말도 아니외다. 왕의 대권을 발동하시어 정당하게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강제로 얻으십시오. 모욕에 대해 분개하지 말고 몰수를 하십시오. 왕의 위신을 지키실 줄 모른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왕의 이름만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시면 곧 나봇의 포도원을 왕에게 드리겠습니다. 잘했건 못했건 포도원은 왕의 것이 됩니다.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요." 주변에 폭군의 행동을 하도록 자극시키며 권력의 남용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는 왕들은 이렇듯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이다.

Ⅱ. 왕을 기쁘게 하고자(이세벨은 나봇을 살해할 것을 계획한다) 아합 왕에게 준 모욕을 보상시키도록 함에 있어, 적어도 나봇의 피만큼은 흘리게 해야겠고, 더욱이 나봇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율법을 고수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의 복수심은 커졌다.

1. 포도원만을 목표로 삼았다면, 그녀의 엉터리 증인들의 조작으로 포도원 주인이 그 땅을 내 놓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녀가 제기한 소장의 이유는 매우 빈약했을 것이나, 장로들은 그것을 만족할 만한 것으로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음란한 계집이 귀한 생명을 사냥할 것이다" (잠 6:26). 복수는 달콤한 일이다. 나봇은 그 복수심을 충족하기 위해 죽어야 했고, 악인으로서 죽었다.

(1) 이세벨이 이스라엘의 장관들에게 보낸 명령은 이때까지 왕이 발송된 어떤 명령보다도 더 사악한 것이었다(8-10절). 그녀는 옥새를 빌리지만, 왕은 그녀가 그 옥새로 무엇을 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옥새를 빌려 준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선지자를 살해하는 영장에 옥새를 찍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왕의 이름으로 이렇게 하는데, 일이 끝나면 왕이 기뻐하리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왕이 그녀의 그 방법을 꺼릴지도 모른다고 겁을 먹는다. 그러나 그녀는 위증자들에게는, 그들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하여, 나봇을 살해하도록 명령한다. 그녀가 나봇에 대해 위증을 했다면, 법관들은(증거와 진술에 따라) 아마도 기만당했을 것이고, 그러한 그들의 선고는 그들의 죄라기보다는 불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법관들로 하여금 증인들, 곧 벨리알의 아들들을 찾아오게 했고, 증인들을 매수했으며, 그리고는 그 거짓 증언에 따라 재판케 했다. 이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뻔뻔스런 신성 모독이요, 정의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녀가 이 명령은 분명 지켜질 것으로 알았다는 것은, 그녀는 이스르엘의 장로들이야말로 정직하고 명예로운 모든 일에는 완전히 눈먼 자들로 간주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는 뱀의 교활한 계략으로, 그 장로들을 조종하려 했다.

[1] 종교의 이름으로 이 일이 진행되도록 하게 했다. "금식을 선포하라." 너희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심판이 닥쳐오고 있다. 이것을 피하려면 기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주받은 것을 찾아서 치워버려야 한다. 아직 찾지 못한 백성 중에 대 범죄자가 있는 사실을 무서워하라. 그 범죄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너희들 사는 도시에 대해 분노하시는도다. 마침내는 나봇에게 의구심을 가지게 하라. 아마 그는 이웃 사람들과 함께 예배에 참례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것은 나봇을 피고석에 앉히기 위해서 그를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는 좋은 구실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법정에서 나봇에 대해서 그가 아간이라고 증언시키면, 모두 그것을 들을 수 있게 선포하라. 그 후 증인들이 그 증거를 제시하게 하라. 이렇게 고약하고 지독한 사악이 드물겠지만 종교는 이따금 가면과 허식으로 이용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금식과 기도가 남용되어진 것이 나쁜 짓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더욱 나쁜 것은 사악한 계획들이 기도와 금식의 미명 하에 언제든지 진행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이 사악한 계획은 법적 절차의 형식을 밟아 "정의의 이름으로" 진행되어야 했다. 그녀가 만약 나봇이 밤거리를 거닐 때 그를 찔러 죽이거나 암살할 흉악한 악당이나 잔인한 자를 불렀다면 그 일은 참 졸렬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순진 무고한 백성을 살해하는 데 있어 법의 힘을 이용하고, 법의 경로를 밟아 나봇을 멸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정의와 법도에 대한 묵과할 수 없는 악용" 이요, 극악무도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런 일에 "놀라지 말라" 고 가르침을 받고 있다(전 5:8).

포도원 주인에게 부과할 죄는, 그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것" -매우 중대한 불경죄-이었다. 물론 그녀는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한 것 자체가 불경스러웠다고 생각하지는 못하는데, 나봇이 그의 포도원을 아합왕에게 주기를 거부한 것은 왕에게 불손한 것이요, 그 이유로 하나님의 율법을 들먹인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경이라고 얽어대는 것이다. 아니 그녀의 논고에는 전혀 진실이란 것이 없고, 증인은 서약을 해야 하며, 나봇에게는 변경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증인들에게 반대 심문을 해서도 안 되며, 즉시 범죄에 대한 모든 백성의 미움이라는 구실 하에 무리들이 "그를 반드시 끌어내어 돌로 쳐야 한다." 나봇은 하나님에게 불경했다는 이유로 포도원이 아닌 목숨을 빼앗기고, "아합 왕에게 불경했고" 반역죄로 기소되었으므로 포도원도 몰수된다. 결국 아합이 포도원을 소유하게 되었다.



(2)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 의해 사악한 명령이 이토록 사악하게 집행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들은 분명히 공정치 못한 명령이었는데도 논박하거나 반대를 하지 않았으며, 그 명령의 각 조항을 꼼꼼히 준수한 것은 이세벨의 잔학성을 두려워했거나 나봇의 경건함을 미워했거나 혹은 양쪽 모두의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재판자들은 이사벨이 "쓴 편지대로" (11, 12절) 행하였고, 아무 장애가 되었거나 장애물에 부딪침이 없이 나쁜 짓을 현명히 처리했다. 그들은 나봇을 돌로 쳐죽였다(13절). 그리고 그의 자식들도 죽였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피에 대하여 심문하셨을 때 이 설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왕하 9:26). "내가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아마 그 아들들은 살려두면 그들의 아버지의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아버지에게 가해진 박해에 대해 불평을 할 것이 분명하므로, 비밀 죄에 살해되었을 것이다.

2. 이 기회에 이 슬픈 얘기에 대해 살펴 보자. 그러면 우리는

(1) 사악한 자들의 사악성과 불복종의 자식들 사이에 역사하는 사탄의 권능에 놀라게 된다.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도다" (전 3:16). 그러니 하나님의 의분은 얼마나 크시겠는가!

(2) 학대받는 순진무고한 자의 혹독한 처지를 슬퍼하게 된다.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는데,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러나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도다" (전 4:1).

(3) 우리의 생명과 즐거움을 하나님께 위탁하게 된다. 결백 그 자체가 항상 보장책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4) 심판이 있으리라는 믿음에 기뻐하게 된다. 그 날에 이와 같은 옳지 못한 재판은 일일이 가려내어질 것이다. 우리는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 도 있음(전 8:14)을 알지만, 모든 것은 심판 날에 바로 될 것이다.

Ⅲ. 나봇이 떠나갔으므로, 포도원은 아합이 차지한다.

1. 이스르엘 장로들은 태연하게-이세벨에게는 기분좋은 소식-"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는 소식(14절)을 알려 준다. 잠시 살펴보자. 나봇을 살해하기 위해 사마리아에서 이세벨이 보낸 이스르엘의 장로들은 얼마나 잘 맹종했던가! 그러나 그 후에 사마리아의 장로들은 아합의 자식 70명을 죽이라고 이스르엘에서 보낸 예후의 명령에 또한 잘 순종했다. 그때 아합의 자식들은 법에 의하지 않고 죽게 된다(왕하 10:6, 7). 사악한 명령으로 하급 법관들의 양심을 하락시킨 폭군들은 결국 운명의 수레바퀴가 자신들에게 돌아오고, 한 가지 잔학한 짓을 하는 자들은 또 한번 잔학한 짓을 쉽사리 하게 된다.

2. 이세벨은 자기의 계략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자, 아합에게 "나봇은 살아있지 않고 죽었도다." 그러니 "일어나 그의 포도원을 차지하시오" (15절)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의 관원을 시켜 차지할 수도 있으련만, 자기 토지에 새로이 덧붙이게 된 사실에 너무나 기뻐서 포도원에 들어가기 위하여 여행을 떠났다. 마치 큰 승리를 거둔 자처럼 정장하여 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후 훨씬 후에 예후는 이때에 자기와 빗갈이 아합을 수행한 사실을 회상하기 때문이다(왕하 9:25). 만약 나봇의 아들들이 모두 살해되었다면, 그 토지는 왕인 자기가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땅의 상속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나봇이 범죄자로서 죽고 없는 마당에, 아합은 "그의 죄로 인하여 토지가 몰수되었으므로" 떳떳이 권리를 주장했다. 만약 아무 것도 충분한 권리를 그에게 주지 않는다 해도 이세벨이 그에게 준 절대적 권력을 살필 때 감히 누가 그녀의 뜻에 반대한단 말인가? 권력은 이따금 권리를 물리친다. 그런데 권리가 짓밟히게 하는 하나님의 인내야말로 놀랍기만 하다. 하나님은 부정을 단지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고 "분별하는 정결한 눈을" 가지신 것이다. 그런데도 "사악한 자가 그보다 정당한 자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시고도 침묵을 지키시는 것이다(합 1:13).

 

21:6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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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7

책망받은 아합(열왕기 상 21:17-29)

이 대목에서는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Ⅰ. 아합이 나봇에 대한 죄를 저질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중형을 가하셨다. 그러나 아합이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지만 않았어도(25, 26절),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심한 벌을 내리시지는 않았을지 모른다(우리아의 문제로 다윗은 더 중한 죄를 지은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악한 성품은 하나님의 이 가혹한 처벌을 정당화해 준다. 반면에 다윗은 그 일을 "제하고는 옳은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합에게는 "다윗과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죄를 지음에 교묘하고 부지런하였고, 죄와 거래를 했다. 그는 "사악한 일을 하는 데에다 자신을 팔았다." 즉 자기 욕망의 완전한 노예가 되어, 마치 하인이 주인 시키는 대로 하듯이 움직였던 것이다. 그는 완전히 죄에 빠져서, 쾌락을 얻는 조건이면 어떠한 응보도, 죽음까지도(롬 6:23) 달게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바울은 자기 의사와는 반대로 "죄 아래 팔렸도다" (롬 7:14) 하고 불평했지만, 아합은 자진해서 그의 선택과 행동으로 "자신을 죄에 팔아" 넘기는 것이다. "그의 아내 이세벨" 이 그로 하여금 사악한 짓을 하게 했다. 그러나 아내가 그를 나쁘게만 유도하지 않았더라면, 사악하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그의 범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마음 속에 이토록 부패한 정신을 가지고 거기에 불을 붙인 자들이야 얼마나 불경스런 것인가! 많은 못된 짓 중에서도, 가나안 사람처럼 "우상을 숭배한 것이 가장 가증한" 짓이었다. 그의 비도덕성은 하나님을 노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우상 숭배는 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성격의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Ⅱ.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려고 갔을 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가게 된다(17-19절).

1.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세벨의 편지에도 이스르엘의 장로들이 하는 일에도 침묵하면서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제 아합은 책망을 받고, 그의 "죄는 하나님 앞에 가지런히 드러난다."

(1) 보내진 자는 엘리야이다. 그보다 지위가 낮은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친절한 전언을 전하는 일을 맡았었다(20:13). 그러나 이제 선지자의 선생이 그의 살인을 재판하고 판결하기 위해 보내어 진다.

(2) 장소는 나봇의 포도원이고, 때는 아합이 그 포도원을 취하려 하는 때이다. 바로 그때 그곳에서 아합은 자기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듣는다. 포도원을 점유하자 곧 그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공언하며, ex post facto-사후(事後)의 종범이 되어 스스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는 전에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이제 이전보다 더 큰 죄책이 닥쳐왔다. "이 포도원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 피로써 사들인(합 2:12) 포도원에서 그 주인의 목숨을 빼앗고 뭣을 기대할 수 있는가?" (욥 31:39) 악의로 뺏은 땅으로 기뻐하면서 포도원으로 그의 정원이 되게 하니, 이제 그의 "뱃속의 음식이 올라온다. 그는 안정을 누릴 수가 없다. 그가 자기 배를 채우려 하자, 하나님께서는 전능자의 진노를 마시게 한다" (욥 20:14, 20, 23).

2. 아합과 선지자 간에 오고간 말들을 살펴보자.

(1) 아합은 선지자를 보자 겸손했어야 하는데도, 오히려 그를 보자 화가 나서 마주 대 놓고 분노를 쏘아 붙인다(대하 36:12).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20절). 이 말은 다음 사실을 말해 준다.

[1] 아합은 선지자 엘리야를 미워했다. 한 때는 두 사람이 매우 가까운 친구로 지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왕상 18:46). 그 때 아합은 개혁을 찬성했었고, 선지자와 그와의 모든 일은 순조로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합이 타락하고 그전보다 나빠졌다. 그의 양심은 그가 하나님을 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엘리야가 자기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원수로 삼은 자들의 처지는 실로 비극적이고, 또한 "진리를 말한다" 는 이유로(갈 4:16) 사역자들을 원수로 여기는 자들의 처지란 너무도 절망적일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자. 죄 속에 자신을 팔아버린 아합은, 자기의 거래에 충성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제 자신을 회복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2] 아합은 선지자가 두려웠다. "네가 나를 찾았느냐?" 이것은 될 수 있는 한 아합이 선지자를 피하여 왔는데, 이제 그 선지자를 보게 된 것이 공포가 됨을 암시한다. 그가 선지자를 만나게 됨은 벨사살이 벽의 글씨를 보는 것과 같았다. 선지자를 보자, 아합은 "안색이 바꿔지고, 허리가 풀어지며, 무릎이 서로 맞닿게 되었다." 가난한 채무자나 범인이라도 자기를 체포하러 온 관리를 보고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들이 공포심을 갖게 되는 사실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2) 엘리야는 아합에 대해 하나님의 격노하심을 선언한다. "나는 너를 찾았도다(20절). 네가 사악함에 빠졌기 때문이로다." 죄에 빠져든 자는 조만간에 말할 수 없는 공포와 놀람 속에 있게 된다.

나봇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아합이 피고석에 앉아 나봇보다도 더 떨게 된 것이다.[1] 엘리야가 아합을 기소하고, 사실(19절)에 대한 악명 높은 증거를 대며, 유죄를 선고한다. "너는 사람을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이렇게 하여 아합은 나봇을 살해한 죄를 쓰게 된다. 법에 따라 나봇을 살해했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악용된 재판은 최고의 불법이다). 설사 나봇이 불법으로 처형되었어도, 자기가 직접한 일이 아니었고 그는 거기에 대해 아는 바 없었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합을 기쁘게 하려고 처형이 이루어졌고, 나봇의 처형에 아합이 기뻐했으므로, 나봇의 불법처형에 대한 모든 것은 아합에게 죄책이 있다. 아합은 살해하고, 포도원을 빼앗았다. 포도원만 취했어도 죄가 되는 것이다.



[2] 엘리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아합에게 통고한다. 하나님께서 아합의 가족을 멸하고 뿌리까지 뽑으리라는 것이다(21절). 후대도 끊기며 그의 집은 선조인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며(22절).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의 밥이 되며, 들에서 죽은 자는 새의 먹이가 되게 하리라는 것이다(24절). 여로보암의 집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고(14:11), 바아사의 집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16:4). 또 특히 이세벨은 개가 먹어 치우고(23절), 실제 개가 먹어 치웠지만(왕하 9:36) 아합 자신은,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게 되리라(19절)고 말씀하셨다. "너의 피, 네 자신의 피가-그것이 비록 왕의 피요, 또 교만으로 네 혈관 속에서 팽창되거나 네 가슴 속에서 노여움으로 끓는 피라고 해도-머지 않아 영원히 개들의 밥이 되리라." 실제 이렇게 되었다(22:38). 이 하나님의 말씀은 아합이 비명에 죽으며, 잔인하게 묻히고, 치욕이 그를 따르리라고 암시한 것이다. 그런 교만한 자에게는 이런 치욕이 합당하다. 여기에는 죽음 후의 형벌이 강조되고 있는데-물론 육체에 대한 영향만 말하고 있으나-아마도 죽음 후에 받는 영혼의 고통을 말하려는 것이리라.

Ⅲ. 선고받은 후 아합은 겸비해졌고, 이에 따라 좋은 소식이 전해 진다.

1. 아합은 일종의 참회자였다. 하나님 이름으로 엘리야가 아합에게 전한 말씀은 아합을 놀라게 하여, 그는 옷을 찢고, 두터운 옷을 입었다(27절). 아직도 아합은 교만하고 완고한 죄인이었으나, 이제 많이 고쳐졌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용기 있는 사람조차도 낮아지게 하시며, 가장 의기양양한 자라도 보잘 것 없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빠르며 힘이 세며, 원하실 때에는 그 말씀이 불과 방망이 같아진다(렘 23:29). 말씀은 벨릭스 총독을 두렵게 만들었다.

아합은 옷을 입고 참회자인 척하지만, 그의 마음은 아직도 겸손해지거나 고쳐지지 않았다. 이 이후에도 그가 선지자를 미워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왕상 22:8). 진실성과 내용이 결핍된 채, 참회를 거짓 꾸미고 겉으로만 참회함을 보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기하라. 아합이 회개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질 뿐이었다(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기를). "아합이 겸손해 하는 것을 보라" 고 하신다. 옷을 찢었지만 마음은 찢지 않았으니 겉으로만 겸손해 하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위선자는 종교상의 의무의 외형적 실행에는 열심일 수 있으나 그것은 부족한 것이다.

2. 아합은 여기서 형의 유예를 받는데, 나는 이것을 일종의 용서라고 부르겠다. 아합이 겉으로만 참회했고(심판에 대해서만 슬퍼하고 죄에 대해서는 진실로 회개하지 않았으니), 우상을 버리지 않았으며, 포도원을 나봇의 후손에게 되돌려 주지도 않았으나, 아합은 하나님께 영광을 조금은 돌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엘리야에게 눈여겨 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아합이 스스로 겸손해 하는가를 보라" 는 것이다(29절). 이 점을 감안하여 파멸시키기로 되어 있었던 그의 집은 "그의 자식의 시대에까지" 연기된다. 그에게 내려진 선고가 무효가 된 것이 아니라 집행이 연기된 것이다.

(1)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인자성과 자비를 베푸실 준비가 되어 있음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심판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고 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완전성의 다른 속성들이 위험해짐에도 불구하고 이 사악한 인간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이것은 샌더슨(Sanderson) 주교의 견해이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지 않다라고 하기 보다는 성스럽지 않고(샌더슨 주교의 말), 진실하지 않고, 공정하시지 않는 것(사실 해당되는 것은 없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 이것은 별로 훌륭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좋은 점이 있음을 유의하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좋은 일을 하는 한 칭찬해야 한다.

(3) 사악한 사람이 이따금 오래도록 번영을 누리게 되는 사실이 있음을 가르쳐 준다. 사람들이 겉으로만 하나님께 봉사하면 하나님께서도 겉으로만 자선을 베푸시는 것이다.

(4) 이것은 진실로 참회하고 성실하게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을 격려해 준다. 겉으로만 참회하는 자가 유예를 받은 자기 집으로 가게 된다면, 진심으로 참회하는 자는 "의롭게 된 자기 집으로 가게" 된다.

 

21:18 없음.

 

21:19 없음.

 

21:20 없음.

 

21:21 없음.

 

21:22 없음.

 

21:23 없음.

 

21:24 없음.

 

21:25 없음.

 

21:26 없음.

 

21:27 없음.

 

21:28 없음.

 

21:2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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