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아사 가문의 멸망에 대한 예고(열왕기 상 16:1-14)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Ⅰ. 바아사 가문의 멸망에 대한 예고. 그는 자기 가문을 일으켜 든든히 세우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가능성을 가진 자였다. 즉 민첩하고 도략이 있으며 대담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상 숭배자였다. 이로 인해 그는 자기 가족을 파멸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람을 보내셔서 그 점을 경고해 주셨다.(1) 이것은 그가 감동되어 뉘우치고 개심하면 파멸을 막아 주시려고 하신 조치였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는 분으로서 위협적 경고를 통해 치지 않을 수 있으시면 치지 않게 되기를 목적으로 하시는 때문이다.
(2) 그것은 그가 회개치 않을 경우 파멸이 올 때 누가 그 도구가 되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행위이며 죄에 대한 형벌이라는 것을 나타내도록 하시기 위한 조처였다.
2. 경고는 하나님의 아들 예후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동시대의 선견자 또는 선지자로서(대하 16:7) 유다왕 아사에게 파송되었다. 그러나 아들은 젊고 보다 활동적이었으므로 이스라엘 왕 바아사에게 보내진 것이다. 이것은 보다 길고 보다 위험한 길이었다. juniores ad labores-수고와 모험은 청년을 위한 것이다. 이 예후는 선지자였고 선지자의 아들이었다. 예언도 이처럼 복되게 상속되면 그만큼 더 많은 명예를 받을 만하였다. 이 예후는 계속하여 오래도록 그 유용성을 과시한다. 우리는 40여년이 지난 뒤에도 예후가 여호사밧을 책망하고(대하 19:2) 또 그 왕의 연대기를 기록한다(대하 20:34)는 사실에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 선지자가 바아사에게 전달한 말의 내용은 아히야가 여로보암의 처를 통해 여로보암에게 전한 말씀과 대동소이하였다.
(1) 예후는 바이사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베푸신 큰 일을 상기시킨다(2절). "내가 너를 진토에서 들어 영광의 보좌에까지 올렸다." 이것은 신적 주권과 권세에 대한 큰 본보기이다(삼상 2:8). 바아사는 자신의 반역과 잔인성에 의하여 스스로 입신양명한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그 일 가운데에는 여로보암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착착 이루어가는 섭리의 손길이 작용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아사의 출세를 하나님 자신의 행위로 인정하셨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의 야욕과 반역을 후원하신 것은 결단코 아니다. 악인의 손에 권력을 쥐어 주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악인의 권력을 악용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선하신 목적에 충당되도록 하시기 위해서다. "내가 너를 내 백성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비참하리만치 타락해 있었지만 여전히 자기 백성이라고 부르시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할례의 언약을 보유하였고 개중에는 선한 백성이 많았던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지 않아 로암미-즉 내 백성이 아니라고 불리우게 된다(호 1:9).
(2) 예후는 큰 범죄와 비행을 들어 바아사를 책망한다.
[1] 그 책망은 바아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고 충순한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여 하나님께만 바쳐야 마땅할 충성을 거름더미 잡신들에게 바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고(2절) 그의 집과 같았다는 것을 꾸짖고 있다(7절).
[2] 바아사 자신도 그 손의 소위로, 즉 사람의 손이 만든 것인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하나님의 노를 격동케 했다는 것이다. 아마 딴 사람이 만들었을 테지만 그는 그것들을 섬겼고 또 그 제조를 승인하였기 때문에 그 손의 소위라고 칭하고 있다.
[3]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집을 멸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그를 즉 여로보암의 아들과 그에게 속한 모든 자를 죽였기 때문에(한글 개역: 그 집을 쳤음이더라) 이같은 책망이 나오는 것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과 그의 뜻과 영광을 주목하고 여로보암과 그 집의 죄악에 대한 거룩한 분개심에서 이와 같이 무참한 짓을 했다면 하나님의 정의의 사자로서 용납되고 박수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일을 자행할 때는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자기 욕망의 노예에 불과하였다. 그의 모든 행위 가운데서 그를 지배하고 충동질한 것은 악의와 야욕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어떤 면으로든지 하나님의 공의를 선언하거나 행사하는 일에 기용된 자들은 선한 원리와 경건한 방법으로 그 일을 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일이 자기들의 죄가 되지 아니하며 그들 자신이 그 일로 미운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3) 바아사는 여로보암 일족을 멸하는 데 기용되었지만 예후는 여기서 그와 꼭 같은 멸망이 바아사 일족에게 임하리라는 예언을 하고 있다(3, 4절). 죄에 있어 남과 흡사한 자들은 그 천벌도 남과 방불하리라고 각오해야 한다. 남이 짓는 죄에 대해 스스로 빠져들 만큼 열심인 자들은 특히 그러하다. 아합 집의 피에 대해 예후 집은 갚음을 당하였던 것이다(호 1:4).
Ⅱ. 집행 유예가 얼마 동안 허락되었다. 그 기간은 상당히 길어서 바아사는 평화로운 가운데 임종하고 자신의 왕성에서 명예롭게 매장되었다(6절). 그는 개와 새의 밥이 되지는 않았는데 실은 이 위협적 경고의 대상은 그의 집이었던 것이다(4절). 회개치 않는 죄인이 직접 고난을 당하게 되고 이 세상에서와는 달리 그나마 자주 모면할 수가 없는 미래적 상황은 틀림 없이 존재한다. 바아사는 경고된 형벌을 생전에 보거나 느끼지 못하였으나 그 자신이 바로 최대의 태만자였던 것이다. 바아사는 외견상 나타난 어떤 일로 하나님의 가시적 복수의 일격을 받아 죽은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욥이 말하는 대로 그의 죄악을 쌓아 두셨다가 그 자손에게 갚으셨던 것이다(욥 21:19).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죄를 벌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관찰할 것은 바아사가 사후이긴 하나 자녀의 멸망에 의해 벌을 받았다는 것과 그의 자녀들도 사후 시체의 학대로써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 경고를 구체화시켜 표현한 유일의 사례는 개와 공중의 새가 그들을 먹으리라는 것이다(4절). 여기에는 죽음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난 뒤에도 형벌이 있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시사하려고 의도하는 것같이 보인다. 이것이야 말로 극히 쓰라린 형벌이 될 것이며 극히 두려워해야 할 형벌인 것이다. 신체와 후손에게 내리는 이 심판은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눅 12:5) 분이 몸에서 분리된 영혼에 대해 내리시는 심판을 의미하였다.
Ⅲ. 마침내 형은 집행되었다. 바아사의 아들 엘라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과 마찬가지로 2년 동안 통치하다가 자기 부하였던 시므리에게 피살되었으니 이 또한 나답이 바아사에게 주륙당한 것과 꼭 같았다. 그의 집은 경고받은 대로 여로보암의 집 운명을 이어받았던 것이다(3절). 그의 우상 숭배 역시 나답의 우상 숭배와 같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답과 다투시게 된 죄 중의 하나였다. 그 죄는 여로보암 일족의 멸망의 빌미가 되었다. 그의 멸망이 나답의 멸망과 흡사하면 할수록 죄와 벌은 얼굴이 거울 속의 얼굴과 일치하듯 더욱 비슷하게 되었던 것이다.
1.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제도 왕이 맨 먼저 살해되었다. 그러나 엘라는 나답보다 한층 불명예스럽게 죽었다. 나답이 피살된 곳은 전장이었고 그것은 명예로운 장소였다. 나답과 그의 군대는 그때 깁브돈을 공략하고 있는 중이었다(15:27). 그러나 이 재난으로 포위 공격은 중단되고 이 성읍은 여전히 블레셋인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이제 이스라엘군은 공격 재개를 시도하고 있다. 엘라는 이때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총사령관이 되어야 마땅하였다. 그러나 그는 명예나 의무나 공익보다 자기 편안과 안전을 더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후방에 있으면서 즐기고 있었다. 엘라가 자기 신복의 집에서 마시고 취해 있을 때 시므리가 그를 쳐죽였던 것이다(9, 10절). 술을 즐기는 자들, 특히 일부러 취하려고 마시는 자들은 이것을 경종으로 삼아야 한다. 술취한 상태에서는 죽음이 언제 기습할지 모르는 까닭이다.(1) 술취한 자에게는 죽음이 쉽사리 임한다. 사람들이 폭음으로 말미암아 만성질환에 걸려 한창 시절에 꺾어지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것 말고도 취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원수에게 쉽사리 당하게 된다. 암논은 술에 취했다가 압살롬에게 해를 입었던 것이다. 취객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하므로 흉한 사고를 당하기 쉽다.
(2) 술취한 자에게는 죽음이 격렬하게 임한다. 그들이 죄악의 행위 속에 있으면서 신앙의 행위에는 무력하게 되는 때에는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그들에게 임한다(눅 21:34).
2. 그때처럼 이제도 전 가족이 멸절되고 뿌리채 뽑혔다. 역적이 신왕으로 되었다. 지각없는 백성은 어느 왕이든 매 한가지라는 듯이 순순히 복종하였고 반역자를 왕으로 삼았다. 시므리가 맨 먼저 착수한 일은 바아사의 온 집을 죽이는 일이었다. 이와 같이 그는 반역에 의해 획득한 것을 잔인함으로써 지켰다. 그의 잔인성은 바아사가 여로보암 집에 대해 나타난 것을 능가한 듯이 보인다. 그는 엘라의 족속이든지 그 친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11절). 그는 그의 복수자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원뜻은 그러하다). 엘라의 죽음에 대해 복수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씨도 남기지 않고 다 처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얼마 가지 않아 너무나도 괄목할 만한 복수를 성취하셨기 때문에 "주인을 죽인 시므리가 평안하였던가?" 란 속담이 그 뒤 오래도록 유행하였던 것이다(왕하 9:31).
이 일로 살필 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었다(12절).
(2) 바아사와 엘라의 죄는 셈을 치르게 되었다. 그들이 그 헛된 것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던 것이다(13절). 그들의 우상이 그 헛된 것이라고 칭해지는 까닭은 그 우상은 유익도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헛된 것을 신으로 삼고 있는 자들은 불행한 자들이다.
시므리의 죽음(열왕기 상 16:15-28)
솔로몬은 "나라에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이스라엘이 그러했음) 명철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동시대 아사 치하의 유다가 그랬다)" 고 관찰하고 있다(잠 28:2).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게 되면 안정과 확립은 멀리 도망가 버린다. 시므리와 디브니와 오므리는 여기에서 왕위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교만하고 야망에 찬 자들은 서로를 멸망시키며 타인을 파멸에 끌어들인다. 이 혼란은 오므리의 정착으로 끝이 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단 끝까지 오므리의 기사를 취급하지 않을 수 없다.
Ⅰ. 그는 어떻게 선출되었는가? 그는 로마 황제들이 왕왕 그랬던 것처럼 깁브돈 앞에 포진하고 있던 야전 군대에 의해 왕으로 피택되었다. 시므리가 왕을 시해하고 왕성인 디르사에서 왕을 참칭하였다는 소식이 곧 그리로 전해지자 그들은 진영에서 오므리를 왕으로 세웠다. 이는 그들이 시므리에게 엘라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지체없이 하기 위함이었다. 엘라는 게으르고 절제없는 위인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들의 왕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왕을 살해한 자에게 순순히 복종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반역죄를 응징하지 않고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나답이 죽었을 때 그들은 바아사에게 복수하려고 꾀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 바아사가(家)가 여로보암가(家)보다 관대한 통치를 했던 때문이리라. 시므리는 격분한 군대의 적개심 때문에 경을 치게 되었다. 그들은 깁브돈 포위는 풀어버리고(이스라엘인이 분쟁하게 되면 블레셋은 십중팔구 득을 보게 된다) 시므리를 추적하기 위해 말머리를 돌리게 하였다.
Ⅱ. 그는 시므리를 어떻게 정복하였는가? 시므리는 7일간 통치하였다고 했다(15절). 그것은 오므리가 왕으로 추대되고 시므리 자신이 반역자로 규정되기 오래 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므리가 죽기까지는 보다 긴 시간이 경과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여로보암의 길에 기울어진 것을 나타내고 우상 숭배를 후원함으로써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미움을 사고도 남을 만큼 오래 존속하였던 때문이다(19절). 디르사는 아름다운 도성이었으나 요새가 아니었으므로 오므리는 곧 그곳을 장악하였고(17절) 시므리를 왕국으로 몰아 부쳤다. 시므리는 왕궁을 방어할 수도 없고 항복할 생각도 없었으므로 불을 놓아 그 자신도 타죽고 말았다(18절). 자기의 상대자가 그 화려한 왕궁을 향유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그는 그것을 불태워버렸다. 그는 자기가 산채로든 죽은채로든 군대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면 굴욕적인 취급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두려워하여 분신 자살하였던 것이다. 악은 왕왕 인간을 얼마나 절망적 행위로 몰아 넣으며 그들의 멸망을 얼마나 재촉하는지 살피자. 스스로 불꽃 속에서 멸망할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왕궁과 나라를 불태우는 방화자의 기질을 눈여겨 보자.
Ⅲ. 그는 디브니와 어떻게 투쟁하였으며 마지막에 가서 그를 어떻게 제거했는가? 백성의 절반은 이 디브니를 좇았다(21절). 아마 이들은 시므리의 편에 있던 자들일 것이다. 또 병영에서 뽑은 왕이 아니라(무단 정치를 할까봐서) 국가 대회에서 선출한 왕을 바라는 딴 사람들이 이들과 합세했을 것이다. 이 양자간의 경쟁은 수 년 동안 계속되었고 양편이 다 많은 피를 흘렸던 것 같다. 오므리가 처음 왕에 추대된 것은 아사왕 27년이었고(15절) 그의 12년간의 통치는 그때부터 기산(起算)된다. 그러나 그가 경쟁자 없이 단독으로 통치를 시작한 것은 아사왕 31년이 되어서였다. 디브니가 죽으매(전장에서 죽었을 것이다) 오므리가 왕이 되었다(22절).
월터 랠레이 경(Sir Walter Raleigh)은 그의 세계사에서 이스라엘 왕국이 이런 온갖 혼란과 혁명을 겪으면서도 다윗가로 복귀하며 유다와 연합하는 일은 어째서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추궁하는데 그것은 현재보다 과거가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는 유다 왕이 이스라엘 왕보다 절대적이고도 전제적인 권력을 행사한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처음에 다윗가를 배반하면서 불평한 것은 멍에가 무겁다는 것이었다. 그 멍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그들은 그 후 줄곧 다윗가에 대한 혐오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자기들의 왕에게 복속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왕들도 법과 제한된 군주 정치의 규칙에 의해 지배하는 수가 많아졌다.
Ⅳ. 그는 결국 왕좌에 정착하고 난 뒤 어떻게 다스렸는가?
1. 그는 사마리아를 건축함으로써 유명하게 되었다. 사마리아는 그 뒤 이스라엘의 왕성이 되었고(디르사에 있던 왕궁이 소실되었으므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가나안의 중앙부(북방의 갈릴리와 남쪽의 유다 사이에 위치한)와 그 거민이 사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괄목할 정도의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 땅을 은 두달란트로 샀는데 우리 돈으로 치면 700파운드 약간 넘는 액수였다. 한 달란트는 353파운드 11실링 10.5펜스였던 것이다. 그 땅을 매각한 세멜은 아마 그 성이 자기 이름으로 명명될 것을 조건으로 하여 아주 더 싸게 넘겨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성읍에는 사들인 사람의 이름이 붙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땅은 전 소유주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 또는 세메렌(히브리어로는 그러함)으로 불리웠다(24절). 이스라엘 제왕들은 왕도를 수차례에 걸쳐 옮겼는데 처음은 세겜이었고 다음은 디르사였으며 이제는 사마리아가 천도한 곳이었다. 그러나 유다 왕들은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시종일관 하여 수도로 삼았다. 여호와께 집착하는 자들은 요동치 않으나 그를 떠나는 자들은 늘 방황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2. 그는 자기의 악함으로 악명 높게 되었다. 오므리는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였다(25절). 그는 천신만고 끝에 왕좌에 오르게 되었고 그가 등극하기까지에는 섭리의 은총이 눈에 띌 정도로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로보암가나 바아사가의 누구보다 더 참람하였고 미신을 좋아했으며 크게 박해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앞 사람들보다 한층 더 지나치게 불법을 법으로써 든든히 세우며 죄중에서 행하는 자기와 동조하도록 백성에게 강요하였다. 우리는 오므리의 율례가 있었으며 그것을 지킴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황폐케 된다는 말씀을 읽게 된다(막 6:16).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것은 유혹과 본보기와 시험에 의해서였으나 오므리는 강제에 의하여 범죄케 하였던 것이다.
Ⅴ. 그는 어떻게 자기 통치를 마무리하였는가?(27, 28절) 그는 강력한 힘을 과시하였고 그로써 다소 명성을 떨쳤다. 악인이 강한 힘을 소유하는 경우는 이제까지 많이 있었다. 오므리는 여로보암이나 바아사처럼 자기 침상에서 임종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자기 불의의 한도를 채워 그 셈을 치르는 일은 그의 자손에게 넘기고 말았다.
아합의 통치(열왕기 상 16:29-34)
우리는 여기에서 아합의 통치에 접하게 되는데 성서에는 이스라엘 역대 임금 중 어느 누구보다 아합에 대한 세밀한 기록이 많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모든 왕들 중 가장 악하였다고 하는 일반적 견해만 피력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이로써도 그 세부적 사항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22년간 통치하였는데 그것은 아주 많은 악을 자행하고도 남을 만큼 긴 세월이었다.
Ⅰ. 그는 악에 있어서 자기의 모든 전임자를 능가하였고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악을 더욱 행하였다" (30절). 마치 하나님과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적의를 품고 하나님을 모욕하며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행이라도 한 양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의도적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고" 결과적으로 그 땅에 심판을 내리게 하였다고 일컫고 있다(33절). 계승하는 왕마다 앞 사람보다 더 악하다 할 때 그 백성에게는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합은 딴 악한 왕들과 그 가문의 파멸을 목격하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각심을 높이기는커녕 하나님께 대해 마음을 더욱 강퍅케 하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다(31절).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제2계명을 범하는 것이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딴 잡신들을 도입함으로써 제1계명조차 팽개쳐 버리고자 하였다. 그의 새끼 손가락은 여로보암의 허리보다 무겁게 하나님의 율례를 내리 눌렀다. 보다 작은 죄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보다 큰 죄에 대한 문호 개방이 된다. 딴 사람의 죄를 경감시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자신의 죄만 가중시키게 될 뿐이다.
Ⅱ. 그는 악한 여인과 혼인하였다. 아합은 이세벨이 바알 숭배를 도입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목적으로 이세벨과 결혼한 듯이 보였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이 가벼운 일이기라도 하듯 그는 이세벨로 아내를 삼았다" (원래의 뜻은 그러함, 31절). 이세벨은 열렬한 우상 숭배자였고 지극히 방자하였으며 그 천성이 사악하였다. 또 그 여인은 술수와 음행에 탐닉하였으며(왕하 9:22) 어느 모로 보나 부도덕한 여자였다. 계시록에서는 거짓된 여선지를 논하면서 이세벨이라고 칭하는데(계 2:20) 이는 악한 여인을 칭할 때 이세벨이란 이름보다 더 악하게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세벨이 어떤 악을 행하였으며 마지막에 가서 어떤 화가 그에게 임하였는지(왕하 9:33)는 다음에 나올 것이다. 솔로몬의 모든 이방 아내보다 이 한 명의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을 더 많이 타락시켰다.
Ⅲ. 그는 바알 숭배를 확립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버리고 시돈인의 신을 섬기며 여호와 대신 쥬피터를, 태양을, 베니게(phoenicia)의 영웅을 신격화하여 숭배하였다. 그는 금송아지에 식상(食傷)하였고 그 정도면 충분히 오래도록 섬겼다고 생각하였다. 그 송아지 우상은 극히 헛된 것이었다. 극히 좋아하던 자들도 결국에 가서는 싫증이 나서 마치 간음하는 자들처럼 변화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헛된 것이었다. 바알 곧 주인이라고 부르던 이 가짜 신을 영화롭게 하고 또 그에 대한 숭배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아합은 다음과 같은 조처를 취하였다.
1. 그는 왕성인 사마리아에 사당을 건축하였다. 남왕국의 도성인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수도에 바알 신전을 세웠던 것이다 그는 바알 신전을 보다 빈번히 참배하고 보다 잘 보호하며 더 존귀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기 가까이에 두고자 하였다.2. 그는 그 사당 안에 단을 쌓았다. 그 제단은 바알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한 것이었고 바알에게 대한 자기들의 의존을 확인하고 그의 은총을 구하는 것도 이 제단을 통해서였다. 우상 숭배자들의 우둔함을 보라! 그들이 신으로 삼으려 했든지 않았든지 간에 자신들이 택했을지도 모를 자를 친구로 삼는 데 엄청난 비용을 들이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3. 그는 사당 주변에 숲을 만들었다(한글 개역 성서에는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로 되어 있음). 그늘지는 나무를 심음으로써 자연적인 숲을 조성하였거나 아니면 수목의 성장 기간이 너무 길다면 자연의 숲을 모방하여 인공적인 숲을 만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숲을 심었다고 하지 않고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바알 숭배에는 가증스런 음란 행위가 연출되었다. 이를 옹호하고 방조하기 위한 목적 에 부응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은폐술이었던 것이다. Lucus, a lucendo, quia non lucet-즉 악을 행하는 자는 빛을 싫어한다.
Ⅳ. 그의 주제넘음을 모방하려던 한 백성은 여호수아가 오래 전에 선포한 저주를 무시하고 여리고를 감히 재건하려고 하였다(29절). 이것은 인간의 불경건이 얼마나 높이 도달하였는가에 대한 사례로서 제시되고 있다. 특히 벧엘은 그처럼 악이 관영하던 곳으로서 금송아지 중 하나가 그곳에 있었다. 이 대담한 죄인은 바로 벧엘 출신이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그 죄인은 매우 몹쓸 짓을 저질렀다. 그는 아간처럼 저주받을 일에 관여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납된 것을 자신의 용도로 변경시켰다. 그는 이스라엘에서는 모를 자가 없을 정도로 알려진 저주를 무시한 채 여리고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저주를 헛소리 정도로 우습게 생각하였거나 그 저주가 공포된 지 500년 이상이 경과했기 때문에 그 효력이 없어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수 6:26 참조). 그는 저주가 부분적으로 실시 됐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축을 계속하였다. 그가 건축을 시작할 때 장남이 죽었는데도 그는 하나님과 그의 진노하심을 업신여기고 축성을 계속 진행시키려고 하였다. 장님의 상실은 그의 불경건을 치는 하늘로부터의 계시였던 것이다.2. 그의 팔자는 매우 기박하였다. 그는 자식들을 위해 건축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무자하였다고 기록하신 것이다. 그가 공사를 시작했을 때 맏아들이 죽었고 공사를 완료했을 때는 막내둥이가 죽었으니 그 나머지 자식은 그 중간에 죽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저주받는 자들은 참으로 저주스런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 대해 자기 마음을 강퍅케하고 잘 된 사람은 여지껏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람된 죄로부터 물러나게 하신다. 그것은 큰 허물이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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