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보암의 어리석음(열왕기 상 12:1-15)
솔로몬은 천 명의 비빈을 거느렸는데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받드는 단 하나의 아들만 읽을 수 있으며 그나마도 그는 우매자였다. 호세아 선지는 "저희가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한다" 고 말한다(호 4:10). 죄는 가정을 이룩하는 데 나쁜 방법이 된다. 르호보암은 극히 지혜로운 자의 아들이었는데도 자기 아버지의 지혜를 물려 받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니 자기 아버지의 왕좌를 물려 받았다고 해도 그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지혜나 은혜는 유전되지 않는다. 솔로몬은 매우 젊어서 등극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그가 매우 지혜로울 때였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사십세 되던 때였다. 남자 나이 사십이라면 불혹의 나이로서 한창 지혜로울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호보암은 우매하였다. 지혜는 나이에 의거하지 않는다. 지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많은 세월도 아니며 유리한 교육도 아니다. 솔로몬의 궁정은 지혜의 시장이자 학식 있는 자의 회합처였고 르호보암은 그 궁정의 총아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으로도 그를 지혜롭게 만들기에는 부족하였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전 9:11). 르호보암의 왕위 계승에는 이의가 없었다. 솔로몬이 붕어하자 르호보암은 곧 왕으로 선포되었다.
Ⅰ. 백성은 그와 세겜에서 약조하기를 원하였고 그는 그들을 만나러 그리로 내려갔다.
1. 그들의 구실은 그를 왕으로 삼는다는 것이었으나 그 의도는 그를 폐위시키려는 데 있었다. 백성은 르호보암이 유다만의 왕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윗성이 아닌 딴 지역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고자 했다. 그의 치하에 있는 열 지파가 자기들에게 속했으므로 그들은 그의 왕권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단 한 번만이라도 그를 자기들 가운데 모시기를 원했다.2. 장소가 불길하였다. 세겜은 아비멜렉이 자칭 왕이 된 곳이다(삿 9장). 그러나 세겜은 민족 회의가 열린 곳으로 유명하였다(수 24:1). 르호보암은 자기대에 나라가 찢긴다는 경고를 알았으리라고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그는 세겜으로 가서 열 지파와 협상하여 분열을 방지하려고 희망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더 할 수 없으리만치 졸렬한 처사로서 분열을 재촉하였다.
Ⅱ. 지파의 대표자들은 그들이 부담하고 있던 과중한 세금을 완화시켜 주도록 원하면서 말했다. 회담이 예정되자 그들은 애굽에 있던 여로보암을 부르러 보냈다. 와서 자기들의 대변인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디다 임명하실지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그들이 부르러 보내지 않아도 올 터였다. 약속된 왕관의 소유를 기대할 만한 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진언은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지나간 정치에 대해 불평한다. "왕의 부친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나이다" (4절). 그들은 그의 아버지의 우상 숭배나 하나님께로부터의 반역을 불평하지 않는다. 온갖 일중 최대의 불평거리가 될 일이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신앙의 일에는 그들이 이토록 무성의하고 무관심하였다. 하나님이나 몰록이 매 한 가지인양 행동하였다. 단지 편안히 살고 세금만 내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또 그 불평은 무근하고 부당하였다. 이들보다 편안히 살고 이들보다 더 풍족한 가운데 지내는 백성은 없었다. 그들은 세금을 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의 국력과 국위를 선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솔로몬의 건축 공사에 그들의 돈이 소요되었다고 해도 전쟁에서 보듯 그들의 피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 공사에는 노예들의 손이 많이 동원되었는가? 그러나 그 손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손이 아니었다. 세금이 무거운 짐이었는가? 그러나 솔로몬이 들여온 금괴는 너무나 풍부하여 은이 돌처럼 흔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세금은 얼마나 되겠는가? 따라서 그들은 솔로몬의 것을 솔로몬에게 되돌려 주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다소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자. 그들은 이전에 왕의 제도가 이러하리라는 것을 듣고도 왕을 원하지 않았던가?(삼상 8:9 이하) 아무리 훌륭한 정부라도 비난과 혹평을 면할 수 없다. 솔로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당심에는 불평할 게 끊이지 않는다. 나는 솔로몬의 정치에 백성의 멍에를 무겁게 하는 요소라고는 없었을 줄로 안다. 단 말년에 솔로몬의 총애를 받은 여인들이 백성의 학대를 묵과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2. 그들은 과중한 부담의 경감을 요구한다. 그들은 이것을 조건으로 다윗가에 충성을 계속 바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납세를 전적으로 면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아니라 부담을 좀 더 가볍게 해주기를 요구하였다. 돈을 절약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모든 관심사였다. 신앙의 유지나 정치의 보호 따위는 어떻게 되든지 안중에 없었다. 전부가 자기의 소유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Ⅲ. 르호보암은 자기가 내려야 할 대답에 대하여 주위 인물과 상의하였다. 자문을 받는다는 것은 슬기로운 일이었다. 자기의 지력이 그토록 보잘 것 없는 르호보암의 경우에는 특히 그랬다. 그러나 이를 맞아 그가 스스로 고려할 시간적 여유를 가졌다는 것은 몰지각한 행위였다. 이로써 그는 불평 분자에게 반역을 성숙시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게 되었고 그가 그토록 간명한 문제를 심사숙고한다는 것은 백성의 안녕에 대해 그가 거의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증좌로 역이용될 것이었던 때문이다. 그들은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 그에 따라 대비하였다.
1. 그의 자문관중 근엄하고 경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청원자들에게 친절한 답을 내리도록 그에게 건의하였다. 그들에게 좋은 말을 사용하며 그럴듯한 약속을 하고 "오늘날" 즉 이 위급한 날 그들을 섬긴다는 대답을 내리도록 충고하였다. 즉 그가 그들 백성의 종이며 그들의 불평거리를 해소시킬 의사가 있고 백성을 즐겁고 편안하게 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다고 말하도록 권고하였던 것이다. "요번만 자신을 죽이고 그렇게 하소서. 그러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현재의 열기와 흥분이 부드러운 대답으로 가라앉고 군중이 해산되면 그들은 냉정한 생각을 되찾게 될 것이고 따라서 솔로몬가와 화해하며 계속 고착될 것입니다." 통치하는 비결은 섬기고 선을 행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 굽히며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며, 그럼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있다. 권력을 잡은 자는 이런 방법을 취하는 때에라야 실제로 가장 높이, 가장 편안히, 가장 안전히 앉아 있는 셈이다.2. 그의 자문관 중 젊은 사람들은 혈기가 넘치고 거만한 자들로서 백성의 요구에 대해 혹독하고 위협적인 대답으로 응수하라고 르호보암에게 권고하였다. 르호보암의 약점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서 예증되었다.
(1) 그는 연로한 자문관들의 말을 좋아하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라났으며 자기가 친숙하던 젊은 자들의 의견을 더 낫게 여겼다(8절). 연륜이 말해 주는 법이다. 젊은 때의 유희와 쾌락에 의기 투합하는 짝패였다고 해서 국사 처리에 적격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여간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큰 재주꾼이라고 하여 반드시 가장 지혜로운 자는 아니며 우리를 즐겁게 해줄 줄 아는 자라고 하여 우리의 최선의 친구로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는 그들이 누구와 사귀며 누구에게 순응하고 누구의 충고에 의지하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그들이 만일 자만심을 만족시켜 주며 허영심을 충족시키고 쾌락을 조장하는 자들을 아주 훌륭한 친구로 간주한다면 그들은 이미 파멸당할 운명에 처한 셈이다.
(2) 르호보암은 온당한 조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가혹하고 엄한 방책을 권한 자들을 기뻐하였다. 그들은 그럴 필요가 있든 없든 세금을 배로 올리고 또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터놓고 말하라고 조언하였다(10, 11절). 이들 젊은 자문관들은 노인들이 멍청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였다(7절). 그들은 자기들의 조언이 재치있는 걸로 생각하고 그걸 뽐낸다. 노인들은 르호보암에게 어떤 말을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좋은 말을 하라고 권면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젊은 자들은 르호보암에게 별스럽고 깔끔한 표현 즉 신랄하고 주제넘은 비유를 가르쳐 준다. "나의 새끼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10절). 극히 달변이라고 하여 꼭 가장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Ⅳ. 그는 젊은이들의 조언대로 백성에게 대답하였다(14, 15절). 그는 짐짓 거만을 부리고 오만불손하였으며 자기 앞에 있는 것은 죄다 강압적인 수단으로 제거할 듯한 허풍을 쳤다. 그는 그들에게 좋은 말로 대답하려고 참느니 차라리 백성을 잃는 모험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였다. 자기 이익보다 기분을 중요시하다가 파멸당하는 자가 허다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1. 르호보암은 제 꾀에 도취했다. 그는 더 어리석고 지각없이 행동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1) 그는 자기 아버지의 정치에 대한 그들의 비난을 사실로 인정했다. "내 부친은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이 점에는 그는 자기 아버지를 부당히 기억하였다. 그는 자기 아비의 오명을 쉽사리 해명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2) 그는 역량면에서 자기 부친보다 엄청나게 열등하다는 것을 생각지 않고 그보다 백성을 더 잘 다스리고 강압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솔로몬의 영화로운 통치 근처에도 가까이 갈 수 없던 그가 자기 부친이 통치하다 받은 상처를 부지할 줄로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3) 그는 세금으로 착취할 뿐만 아니라 잔인한 법과 그 법의 엄한 실시로 징치하겠다고 백성을 협박하였다. 그것은 채찍같을 뿐만 아니라 전갈같기도 하리라는 것이다. 톱니가 달린 채찍은 때릴 때마다 피를 내게 하며 자기의 통치는 그와 같을 것이란 말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르호보암은 백성을 짐승처럼 부리고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 그들에게 짐을 지우며 매를 때리겠다고 공언하였다. 백성이 자기를 사랑하든 말든 자기를 두려워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4) 그는 오랜 평안과 번영으로 부유하고 강하고 교만하게 된 백성을 이렇게 격동시켰다. 그들은 겁 많고 가난하고 풀죽은 백성과는 달리 짓밟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도발한 백성은 이제 반역하기로 작정한 백성이었으며 괴수될 자가 갖춰진 백성이었다.
실로 그만치 교만과 독재심에 눈먼 자도 없었다. 이보다 치명적인 일도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계획은 이로써 이루어졌다.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나님은 르호보암을 그의 어리석음 중에 내버려 두셨다. 그리고는 나라가 그에게서 찢기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의 평안에 관한 일을 그의 눈에서 숨기셨다(눅 19:42).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경솔과 불의를 통해 자신의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신 의도를 이루시며 죄인을 그 자신이 만든 올무에 걸리게 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르호보암이 자기 나라를 잃었듯이 천국을 상실하는 자는 자신의 고집과 어리석음 때문에 천국을 팽개치는 자이다.
열 지파의 반란(열왕기 상 12:16-24)
열 지파의 나라가 다윗가(家)에서 이탈해 나갔다. 그렇게 된 것은
Ⅰ. 백성들은 대담하고 단호하게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르호보암이 자기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실에 대해 지극히 분개했고, 그의 협박에 분노했다. 그래서 이 정권이 이렇게 처음부터 교만하니 갈수록 가혹해져 가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침내 이 반란을 일으켰다.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라고 소리쳤다(16절). 이제 그들은 다윗을 함부로 말했다. 그는 그들 민족의 대 은인인데도, 그들은 그를 자기 동료와 조금도 다름 없다는 식으로 "이세의 아들" 이라고 불렀다. 선한 사람들이 세금을 위해 수고한 선한 봉사도 얼마나 쉽게 잊혀지고 마는가를 보라. 저들의 성급한 결심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시간을 두고 신중히 의논했더라면, 그들은 르호보암과 서로가 만족할 만한 원칙적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들이, 누구가 르호보암에게 이같은 조언을 보낼 것이며, 그 주위에 있는 그 악한 자문관들을 쫓나낼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해 보았더라면, 이러한 불화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자기들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그 열성이 그 자유로운 백성에게 복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 포로가 되었느냐?" (렘 2:14)
그들은 기꺼이 지배를 받고자 한다. 그러나 시달림을 받기는 원치 않는다. 보호는 충성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파괴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만일 다윗가(家)가 그들을 영달시켜 준 목표인 "선한 일을 위한 하나님의 일군들" 이 되는 것에서 이탈했다면, "이스라엘이 다윗가를 떠난다" 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19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불러서 나라를 주셨던(그 계승권을 그의 후손에게 주셨으며) 바로 그 다윗의 자손에 대해서 배신하고, 새로운 왕을 내세워 대적한다는 것은 중한 죄이다(대하 13:5-8 참조). 하나님은 그것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왕들을 세우나 내게서 난 왕들은 아니니라" (호 8:4).
유다 족속에 대해 "그들이 다윗의 집을 좇았다" 고 한 것은 그들을 칭찬해 주기 위해 여기에 언급한 것이다(17, 20절). 그리고 아마 그들은 르호보암이 말보다는 더 훌륭한 자이며, 처음에 말한 그런 잔인한 협박으로 통치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Ⅱ. 르호보암은 이 일의 사후 처리에도 현명하지 못했고, 갈수록 이성을 잃게 되었다. 그는 제발로 위급한 상태에 빠져 들어가서, 벗어 나오려고 발버둥쳤지만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다.
1. 그가 "공물(貢物) 감독" 인 아도람을 보내어 그들을 진압하려 했던 것은 큰 잘못이었다(18절). 공물은 물건이고, 아도람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지극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은 평소 어렵게 느끼던 이름의 주인공, 아도람을 보자마자 성을 내고 말았다. 그들은 그의 말을 인내심 있게 들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소동을 피우고 "그를 돌로 쳐 죽였다."르호보암은 이전에는 자문원을 잘못 선택하더니 이번에는 자기의 사신을 선택함에서 불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2. 르호보암이 그렇게 성급하게 자기의 터전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도 잘못이라고 보는 자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 기회에 그는 친구를 잃었고, 원수들에게는 이점을 주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적들은 실상 기분 나쁜 태도로 자기들의 장막으로 돌아갔다(6절). 그러나 르호보암이 돌아가기까지는 여로보암이 왕이 될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20절). 이 어리석은 임금이 한 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으로 얼마나 가볍게 옮겨가는가를 주목하라. 그는 모든 것이 자기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큰 소리를 치고 허세를 부렸으나, 자신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는 꽁무니를 빼면서 아주 초라하게 행세했다. 잘될 때 건방진 자들이 잘 안 될 때는 가장 비굴하게 구는 것이 보통이다.Ⅲ. 하나님은 그가 잃어버린 그 칼을 통해서 르호보암이 권력을 회복하려는 기도를 못하도록 막았다. 일단 되어진 일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는 그 일이 다시 전복되는 것을 용서치 않으신다(즉 르호보암이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열 지파를 복원시킨다면, 하나님의 일이 다시금 전복되는 것이다). 또한 여로보암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그 두 지파마저 정복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다윗의 집으로서는 최악의 사태를 맞는 것이 되었으리라. 만사는 적당한 곳에서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싸움을 중지시킨 것이다.
1. 르호보암이 무력으로 반란민들을 복원시키려 한 것은 용감한 계획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용기가 생겨났다(21절). 거기서 그는 자기가 친구들 숲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모두가 그에게 친절하고 자기편이라고 생각되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그들은 여호와와 왕을 두려워했고, 일어난 변화에 대해 쓸데없이 참견하지 않았다)는 당장 18만 명의 군사를 모집하여 열 지파에 대한 저들의 왕의 권리를 회복하려고 했고, 그 왕을 지지하기로 작정했다(말하자면 거기에 자기들의 목숨과 행운을 걸었다). 그리고 다른 지파들과 같이 그런 불평을 할 이유나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2. 그러나 하나님이 한 예언자를 보내어 그 군대를 해산하라고 했을 때, 그가 자기의 용감한 계획을 그만두고 만 것은 더욱 용기 있는 일이었다. 그는 비겁하게 앉아서 나라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에게는 주군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형제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24절)-그들은 그 형제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그들의 하나님과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나-그들은 그에게 복종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는 "이 일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의 손해와 곤경, 그리고 우리의 형제들이 그 일에 도구 노릇을 한 그런 손해와 곤경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순응시킬 줄 알아야겠다. 그러므로 복수를 품지 말자.
르호보암과 그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군사를 해산하고, 평정을 지켰다. 인간적인 전망에서 보면, 비록 그들에게는 승리의 희망이 엿보였지만(그들의 군사의 수효가 많고 그들의 의지가 결연했으며, 여로보암 편은 약하고 정리되지 못한 채로 였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큰 힘의 손실을 보았으면서도 조금도 복구하려 하지 않으면, 꽃만 피워 놓고 아무런 결실이 없다고 하여 그들이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1)비록 초라한 예언자를 통해서 전달되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중시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에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뜻과는 아무리 맞지 않더라도 기필코 시행해야 한다.
(2) 그들은 모든 사태가 자기들에게 유리하고, 또 정당한 권리도 가지고 있는 일이건만, 그것이 하나님을 거슬러 싸우는 싸움이라면 자기들에게 번영이 오지는 않으리라고 결론 짓고, 자기들 자신의 이익을 의논해 보았다. 올라갔다가 더 깊이 떨어질 바에야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더 좋다. 그 다음 왕대(往代)에 가서 하나님은 그들과 싸울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승리도 주셨다(대하 13:). 그러나 지금은 안 된다.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열왕기 상 12:25-33)
여기에서는 여로보암의 통치가 시작되는 일을 보게 된다. 그는 먼저 세겜을, 그 다음에는 브누엘을 건립했다. 즉 그 성읍들을 단장하고 수비를 튼튼히 했으며, 아마 그 두 곳에 자기의 궁궐을 지었을 것이다(25절). 세겜은 에브라임의 땅이요, 브누엘은 요단 강 동편에 있는 갓 지파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왕국을 튼튼히 만들려는 또 하나의 계획을 꾸몄는데, 그 계획이 그 나라의 종교적 사업에 치명적인 운명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Ⅰ. 이제 스스로 저들의 왕으로 군림한 그는 어떤 유효 적절한 조처를 내려서 백성들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26, 27절).
1. 그는 백성들을 경계했고, 어느 시기가 오면 자기를 죽이고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 것 같다. 소요로 인하여 출세한 자들은 흔히 또 하나의 소요에 의해서 묵살되고 만다.여로보함은, 비록 백성들이 지금은 자기를 무척 좋아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릇된 방법이나 찬탈의 형식으로 얻은 것은 안심하고, 또 만족하여 즐길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2.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임할 수 없었다. 그가 자기의 의무에 충실하는 한,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워 주리라" (11:38)라는 약속을 자기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어떤 수단이든, 비록 죄악적인 방법일지라도 강구하고자 애를 썼다.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실제적인 불신이 하나님을 떠나가는 모든 악질적인 배신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Ⅱ. 그런 일을 위해서 그가 취한 길은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예배보러 가지 못하게끔 막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장소이다 거기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다. 그 성전은, 모든 이스라엘인이 보는 가운데서-많은 생존자들이 지금도 그 광경을 기억하고 있었다-구름으로써 하나님이 친히 차지하시겠다는 것을 보여 주었던 그 성전이다. 그곳에 있는 제단에 여호와의 제사장이 참례하며, 거기서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절기를 지켜야 했고, 그들은 제물을 그곳으로 가져가야 했다. 그런데
1. 이제 여로보암은, 저들이 계속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머지 않아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요, 다윗의 집의 궁전과 성전의 장엄함에 매혹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옛 종교를 지속한다면, 그들의 옛 왕에게 돌아가려 할 것이다.그가 만일 르호보암하고 협정을 맺어 지정된 절기 때에는 자기 자신이나 백성들이 자유로이 예루살렘을 왕래할 수 있게 했더라면, 그것이 그에게 그렇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들이 강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2. 그래서 그는 그들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구실 아래,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못가게 단념시켰다. "이제는 너희가 예배드리려고 먼 데까지 가지 않아도 되느니라(28절). 너희가 예루살렘까지 그렇게 멀리 간다(혹자는 그렇게 읽는다)는 것은 무거운 멍에이다. 이제 그 멍에를 벗어버려라. 너희들이 지금 사용하던 그 성전은 처음처럼 그렇게 화려하지도 그렇게 신성하지도 않다(보이는 영광은 점차 사람들에게 낮게 평가되는 법이다). 이제 너희들은 모든 짐에서 벗어나와, 이 일에서도 자유를 누리라. 우리는 왜 사무엘 시대 이상으로 이렇게 한 장소에만 매여 있어야 하겠는가?"3. 그는 그들의 고향의 예배를 지원했다. 자기의 정치인들 중 어떤 자들과 상의하여, 그 문제를 이렇게 해결했다. 즉 하나님의 임재의 징표나 표적으로 금송아지를 두 마리를 세우고, 이제는 고향에 머물러 있어도 좋으며, 법궤 앞에서 예배드리려고 예루살렘에 가듯이, 이제는 이 두 마리의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 좋을 거라고 설득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관대하여, 그 두 마리의 금송아지는 속죄소와 법궤 위에 있는 그룹들을 상징해서 받들어 놓은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운 것은 애굽인들의 우상 숭배를 차용한 것이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는 그 지방을 여러 번 여행했었고, 그들은 송아지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의 신 아피스(Apis)를 숭배하고 있었다.
(1) 그는 솔로몬처럼 금으로 성전을 짓는 비용을 지불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가 지불할 수 있는 것이란 두 마리의 금송아지 값이었다.
(2) 그는 물론 그의 말과 마찬가지로, 이 송아지를 가지고 어떤 거짓 신, 몰록이나 그모스를 표징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한 신,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만을 표상하려고 했을 것이다(28절). 그러므로 그것은 제1계명이 아니라 제2계명을 범한 것이었다. 그리하여서 그는 백성들의 신앙심을 보증해 주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그는 그들 중에는 형상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심하므로, 송아지를 만들어 두면 아무런 형상도 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갈 생각은 않을 것이라고 미리 계산했기 때문이다.
(3) 그는 두 마리를 세움으로써, 신성의 통일성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게 했다. 두 마리의 송아지상은 이방인들의 사신론에로 이르는 길을 닦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는 단에 하나는 벧엘(한 곳은 그의 나라의 최북단에 있는 국경지대이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최남단이다)에 세웠다. 그래서 마치 송아지상들이 그 나라의 수호자들인 양 꾸몄다. 벧엘은 유다에 가까웠다. 그는 하나는 거기다가 세워서, 르호보암의 백성을-그들에게도 형상 숭배를 원하는 자들이 있었다-또 유혹함으로써, 자기 백성들 중에 계속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자들을 대신하려는 속셈이었다. 다른 하나는 단에다 세웠는데, 그것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한편 미가의 우상이 거기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여러 세대 동안 큰 존경을 받아 왔던 지역이기 때문이었다(삿 18:30, 31).
"벧엘" 은 "하나님의 집" 이란 뜻이다. 그것은 미신적인 색채가 짙은 이름이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그 곳을 "벧아벤" 을 "허무의 집" 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4. 백성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그에게 순응했다. 새로운 것을 지극히 좋아했다. 그들은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했다" (30절) 단에 세워진 것이 먼저였다. 먼저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까지," 그렇게 멀리까지 갔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드리는 일은 큰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기들의 고안대로 예배보기 위해서는 그 두 배의 거리가 되는 단까지 가는 데에 아무런 애로를 느끼지 않았다. 또 그들은 단에 있는 한 송아지에게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왜냐하면 유다 왕 아비야가 그 후 20년도 못 되었을 때 벧엘을 복원해 버렸기 때문이다(대하 13:19). 그래서 아마 아비야가 그 금송아지를 치워 버렸거나 사용을 금했기 때문에, 그들은 불가불 단까지 가야 했다. "이것이 죄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말해진 제2계명을 어기는 중한 죄였다.하나님이 때로는 일정한 한 곳에서만 예배 드리라는 율법을 면제해 준 일도 있다. 그러나 형상을 만들어 예배하는 일은 한 번도 허용하신 적이 없다. 이리하여 그들은 호렙에서 자기 조상들이 송아지를 만들던 일을 변론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그 조상들에 대한 자기의 심한 분노를 보여 주시고 때가 되면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던 것이다(출 32:34). 그리하여 그 우상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한 것이었듯이 또한 하나님의 진노를 크게 무시한 처사였다. 이리하여 저들은 죄에 죄를 더하였다.
패트릭(Patrick) 주교는 유대인들의 말을 인용하여, 여로보암 시대까지는 이스라엘인들이 오직 한 마리의 송아지에서 젖을 빨아 먹었으나, 그 후로부터는 두 마리의 송아지에게서 젖을 빨아 먹었다고 했다.
5. 그는 신들을 세우고 나서, 그 신들을 위한 부설물을 준비했다. 이 점에서 그는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탈했고, 이것은 그가 다른 일에 있어서도 유다에게 되어진 일(32절)을 가능한 한 본받으려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나의 죄가 얼마나 많은 죄로 불어나는가를 주목하자.(1) 그는 산당이나 제단의 집을 지었다 즉 단에다 하나, 벧엘에 하나, 성전을 지었을 것이다(31절). 그리고 아마 예루살렘 성전에는 제단이 하나밖에 없는 불만을 탓하면서 각 성전에다 여러 개의 제단을 만들었을 것이다. 제단을 많이 만든 사실이 어떤 자들에게는 신앙심의 발로로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서 그 점을 다르게 보셨다. "에브라임이 많은 제단을 만드는 죄를 범했도다" (호 8:11).
(2) 그는 백성들 중에서 제일 천한 자를 골라 제사장으로 삼았다. 물론 아무리 천한 사람들이라도 그의 송아지의 제사장이 되기에는 충분하며, 아니 너무나 위대한 것이다. 그는 "그 백성의 말단(한글 개혁-" 보통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즉 그 나라의 가장 촌구석에 사는 자들을 불러서 했다. 그는 그들을 그들의 이웃들과 더불어 살도록 명했는데, 그것은 자기의 명령대로 그 백성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일반 사람들과 친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리하여 그 제사장들은 레위인들처럼 분산되어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우의 자손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산당이나 제단의 제사장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제사장들이 살 듯이, 벧엘에 거주하게 했다(32절). 그래서 공중예배에 참례하게 만들었다.
(3) 초막절-하나님은 7월 15일을 지정하셨다-을 "자기가 생각한 달" (33절) 8월 15일로 정했다 이것은 그가 교회의 문제에 있어서 가지는 권한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월절과 오순절을 고유한 절기로 지켰다. 또는 모두 다 지키지는 않았고, 초막절에 비하면 별로 엄숙하지도 않게 지킨 것이다.
(4) 그는 자기에게 제사장을 지명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기 손으로 제사장들의 일을 했다고 해도 조금도 놀랄 것은 아니다. "그는 제단에 제사를 드렸다" 고 했다. 두 번이나 그런 말이 나오며, 그는 분향도 했다. 이것은 그의 여러 불법 중의 하나였으므로 그에게서는 거의 묵살되었다. 그러나 웃시야 왕이 그런 일을 했을 때는, 그가 문둥이가 되는 벌을 받았다.
그가 손수 그런 일을 함으로써, 자기 백성들에게 자기를 위대하게 보이게 했고, 신앙 깊은 사람이란 존경을 사려했으며, 자기의 새로운 축제를 보다 엄숙하게 하고자 했다. 아마 그 축제를 그의 제단 봉헌식과 겸해서 한 것 같다.
그리하여
[1] 여로보암은 직접 죄를 졌다. 그러나 솔로몬이 다른 신을 섬겼던 것에 비하면, 세상에 대해서나 그의 양심에 대해서는 솔로몬처럼 악하지는 않았다는 식으로 변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 그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했다." 그들을 참 하나님 예배에서 떠나게 하고 우상 숭배를 그들의 자손에게 물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다윗 집의" 보좌를 버린 벌을 받았다.
학식이 많았던 휘스톤(Whiston)씨는, 그의 연대기에서, 유다와 이스라엘 두 나라의 연대표를 맞추기 위해서, 여로보암이 연한의 계산을 변경시켜 일년은 11개월로 정했고, 나아가 예후의 혁명이 있기까지는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 기간을 그런 연한으로 계산했으며, 따라서 이 기간에는 유다의 1개월이 이스라엘 왕국의 12개월에 상당한다고 생각했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