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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백성의 계수(사무엘 하 24:1-9)

Ⅰ. 다윗은 요압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을 계수하라고 명령한다(1, 2절). 여기에는 두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1. 백성의 계수를 죄악시하는 것은 이상하다. 이 일에 무슨 해악이 있단 말인가? 모세도 두 번씩이나 백성을 계수했지만 범죄로 치죄받지 않았지 않는가? 정책적 인구 조사는 군주의 여타 정책 속에 들지 않는가? 목자가 자기 양떼의 수를 알아서는 안 되는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의 이름을 아시지 않은가? 그는 이 계수를 선용할 수 없는가? 그가 이 일을 한다면 어떤 악을 행하는 셈인가? 대답해 보라. 백성의 계수가 죄였고 그나마도 큰 죄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일의 죄악이 어디에 소재하는지는 그다지 확실치 않다.

(1) 혹자는 신장이나 체력 면에서 무기를 들 정도만 되면 이십세 이하라도 계수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이 계수가 다윗왕의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않은 이유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법적 계수였던 때문이다(대상 27:23, 24 참조).

(2) 다른 이들은 다윗이 반 세겔을 요구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반 세겔은 백성의 계수 시마다 생명의 속전으로 성소 예배를 위해 바쳐야 할 돈이었던 것이다(출 30:12).

(3) 또 다른 이들은 다윗이 자신의 공세를 부과할 목적으로 계수했다고 생각한다. 즉 다윗은 자기 내탕고에 넣기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했고 따라서 그 액수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은 전혀 비치지 않으며 다윗은 세금을 징수하지도 않았다.

(4)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인구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성도 없었다는 것이 잘못이었다. 그것은 다윗 자신이나 백성을 불필요하게 괴롭히는 일이었다.

(5)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옛 약속을 모독하는 행위였다고 혹자는 생각한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인구조사는 그 약속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거나 아니면 그 약속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냈다. 그는 하나님께서 계수할 수 없다고 하신 자들을 계수하려고 했다. 하나님이 말씀을 반박하려는 자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6) 이 일에 있어서 가장 그릇된 점은 다윗이 교만한 마음으로 이 일을 행했다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죄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는 교만심에서 자기의 보물 창고를 사신들에게 보였던 것이다.

[1] 그것은 헛된 교만이었다. 그것은 그토록 무수한 백성을 좌우할 수 있다는 교만심에서 나온 것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축복 탓으로 돌려야 할 인구증가를 마치 자기가 증가시킨 양 뽐낸다는 것은 교만이 아닐 수 없다.

[2] 그것은 자기 힘을 믿는 교만이었다. 그는 자기 나라의 인구 수효를 열방 중에 공포함으로써 더 두려운 나라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면 자기 군대 수로써 적을 압도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이로써 그는 그답지 않게 육체의 팔을 더 신뢰하였다. 하나님만 신뢰하자고 많이 기록했던 그가 이렇게 행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하는 죄를 심판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는 무해한 것 또는 적어도 조그마한 허물처럼 보이는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큰 죄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살피시며 심령의 생각과 의도를 식별하신다. 그러나 그의 심판은 사실대로 행해진다.

2. 계수의 동기는 더욱 이상하게 표현되고 있다(1절).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신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다윗의 복된 통치를 감사하긴 커녕 이상하게도 먼저는 압살롬에게 빌붙고 나중에는 세바에게 혹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평화와 풍족이 그들을 방심하게 만들고 육욕적으로 되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해서 다윗의 마음을 감동하사 백성을 계수하게 하셨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의 장본인이 아니시란 것은 확신한다. 그는 사람을 시험하거나 유혹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사탄이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계수하게 했다(대상 21:1)는 말씀을 읽는다. 사탄은 가롯 유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배신할 생각을 심었듯이 이스라엘의 대적으로써 이 일을 제안했던 것이다. 의로우신 재판장되시는 하나님은 다윗의 이 죄를 이용해서 이스라엘의 다른 죄를 징벌하시려는 목적으로 이를 허용하셨다. 그는 이 일이 아니라도 당연히 그들을 벌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전에 사울의 죄에 대해 그들에게 기근을 내리셨듯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에 대해 역병을 내리신다. 이는 군주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날 때는 그들의 죄가 원인인 줄로 깨닫게 하며 따라서 스스로 회개하고 개선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백성들도 권세자들을 위해 기도할 줄 알게 된다. 백성은 하나님이 권세자들을 죄에서 지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니 권세자가 범죄하면 나라가 아픔을 당하기 때문이다.

Ⅱ. 요압은 이 명령에 이의를 제기했다. 요압까지도 인구 조사를 하려는 다윗의 어리석음과 헛된 자만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다윗이 이유를 설명치도 않고 다만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 고 하는 데 주목했다. 그러므로 그는 왕의 자만심을 돌이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압살롬이 죽었을 때도 다윗의 비탄스런 감정을 돌이키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제 요압은 그때보다 더 공손한 태도로 왕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노력한다. 그때는 요압이 무례하고 퉁명스런 투로 말했지만(19:5-7), 이제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말을 한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백 배나 더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3절). 당시에는 백성에게 과세하거나 인명부에 등재시키거나 그들을 분재할 일도 없었다. 백성은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백성의 수효가 증가하고 늘었지만 왕도 살아 생전에 백성의 증가를 보고 만족을 누리기를 소원하였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그렇게 하실 필요가 무엇이니이까? Pauperis est numerare pecus-즉 양떼를 세는 일은 가난뱅이에게나 맡겨라. 특히 하나님께 대한 즐거움과 신앙행위를 그토록 많이 지껄이던 다윗이 어찌하여 이런 유의 일을 기뻐해야 하는가? 누가 생각해도 노인이 다된 다윗은 치졸스런 행위를 벌였을 게 아닌가? 요압은 이렇게 점잖게 말하지만 실은 다윗의 교만을 지적하고 있다. 그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지만 터무니 없이 즐기다 보면 죄로 변하는 일이 많다는 데 주목하자. 요압은 이 일에서 다윗의 헛됨을 깨닫고 있었으나 다윗 자신은 깨닫지 못하였다. 우리가 자만심에서 행동할 때 충실히 충고해 줄 친구가 있다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헛된 자부심에서 행동하지만 우리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Ⅲ.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은 실시된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원했고 요압은 이를 반박하지 못했다. 이는 그가 왕을 섬기는 일에 시간과 수고를 아끼는 것으로 오해받을까봐 두려워해서였다. 권세자들 주위의 인물들이 악한 일로 권세자를 섬기고 방조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요압은 다소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명령대로 이 불유쾌한 작업에 착수했고 군대 장관들의 도움을 얻었다. 그들은 가장 먼 지방부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인구 조사한 방향은 요단 저편 동쪽부터였다(5절). 그 다음 북쪽의 단으로 향하고(6절) 거기서 다시 동편의 두로로, 거기서 또 남쪽의 브엘세바로 행하였다. 이 조사를 하는 데 9개월 이상이 걸렸고 이 인구조사로 나라 안에는 많은 곤란과 놀램이 야기되었다. 결국 인구 총계가 예루살렘에 있던 왕에게 보고되었다(9절). 그 숫자가 다윗의 기대에 부응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또 그 조사가 그의 자만심을 충족시켰는지 욕되게 했는지도 알 수 없다. 백성의 수효는 무척 많긴 했으나 그가 생각하던 만큼 많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나안에서는 애굽에서의 인구 증가 추세에 미치지 못했고 사백년 전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입주하던 당시 인구의 두 배를 훨씬 상회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좁은 지역에서 이토록 중다한 무리가 연명했다는 것은 가나안이 매우 비옥한 땅이었다는 증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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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조사에 대한 징벌(사무엘 하 24:10-17)

다윗은 자기 죄를 회개하지만 그 죄로 벌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뉘우치시고 다윗은 그로 인해 더욱 참회하게 된다.

Ⅰ. 여기에는 백성을 계수한 다윗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구조사가 실시되고 있는 동안 다윗이 자기 죄를 깨달았다는 흔적은 없다. 그가 만일 각성했다면 자기 명령을 취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가 완료되어 그에게 보고된 바로 그날 밤 그의 양심이 눈을 뜨고 그가 즐거움을 기대하던 바로 그 순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자기 백성의 수효에 만족하여 잔치를 하려던 때 그의 만족감은 쓰디쓴 쓸개즙으로 변했다. 죄의식이 기쁨을 변질시킨 것이다(10절).

1. 그는 자기 죄를 확실히 깨달았다. 선지자가 그에게 이르기 전에 그는 그 마음에 자책하였다. 그의 양심은 그가 한 일의 나쁜 점을 가리켜 주었다. 이전에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던 죄가 나타났고 그 눈에 비친 죄는 심히 악하였다. 그는 그 죄를 회상하고 크게 뉘우쳤다. 그의 마음은 그 죄로 인해 그를 부끄럽게 하였다. 사람이 범죄했을 때 그에게 자책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자책은 은혜의 원리가 마음 속에서 작용한다는 좋은 표시이며 회개와 개혁을 향한 좋은 디딤돌이다.

2. 그는 자기 죄를 하나님께 고백했고 그에 대한 용서를 간절히 구했다.

(1) 그는 자기가 범죄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등 죄가 안 되는 것 같을지 모르나 그는 자기가 크게 범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은 그 양심이 부드럽고 박식하여 남이 보지 못하는 죄악을 발견한다.

(2) 그는 자기가 교만한 마음으로 이 일을 행했기 때문에 심히 미련하게 행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가 자기 백성의 수효를 자랑했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였고 비록 그들의 수가 많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곧 그들을 소수의 무리로 만들 수 있으신 때문이다.

(3) 그는 하나님께 용서를 바라서 외쳤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며 믿음으로 사유하심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실 것이며 우리가 진정한 회개로 죄를 불식해버리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는 자비로 그 죄를 가져가 버리실 것이다(요일 1:9).

Ⅱ. 그가 이 죄 때문에 받은 징계는 지당하고도 필요한 것이었다. 다윗은 죄의식에서 밤새도록 전전긍긍했고 조금도 안식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들으리라고 각오했거나 아니면 자기의 선견자 갓과 더불어 이 일에 대해 얘기하기로 마음 먹었을 것이다. 갓을 그의 선견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항상 갓을 가까이 두고 하나님의 일에 대해 그의 자문을 받으며 그를 자기 고해사와 상담자로 이용한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예방하여 선지자 갓에게 미리 다윗에게 할 말을 지시하셨다(11절).

1. 다음 세 가지가 여기서 당연한 일로 간주되고 있다.

(1) 다윗은 자기 과오에 대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 다윗 자신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너무나 큰 죄악이며 하나님을 너무 욕되게 하는 것이기에 벌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 죄 중에서 첫째 가는 것은 교만이다(잠 6:17).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받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아직도 그 죄 때문에 가책을 받는다는 데 주목하자.

(2) 벌이 죄에 따라야 한다는 것. 다윗은 자기 백성의 수효를 자랑했다. 그러므로 이 죄 때문에 징계받아야 할 그의 심판은 백성의 수효를 줄이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 교만의 재료로 삼는 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으시거나 우리에게 고통의 재료가 되게 하시거나 우리를 벌하시는 재료로 삼으셔도 지당하다.

(3) 그 벌은 백성이 대거 연루되는 징벌이 되어야 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신 때문이다(1절). 직접 수문을 연 것은 다윗의 죄였으나 홍수가 되게 한 것은 백성 전체의 죄였던 것이다.

2. 그들에게 벌이 과해지고 있다.

(1) 다윗은 어떤 회초리로 맞을 것인지 선택하라는 말을 듣는다(12, 13절). 그의 하늘 아버지는 그를 징계하셔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즐겨하지 않으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다윗에게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란 세 가지의 쓰라린 심판 중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신다. 이 세 가지는 전부가 한 민족을 크게 약화시키는 심판이다. 하나님이 이와 같이 다윗으로 하여금 삼자 택일하게 하시는 의도는 다음과 같다.

[1] 그를 자기 죄에 대해 더욱 겸비케 하시기 위하여, 이 심판이 심히 두렵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는 자기 죄가 매우 컸다는 것을 알게 될 터였다.

[2] 또는 그의 교만심을 견책하시기 위해서.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자기의 통치권을 자만했었다. 그는 강대한 군주가 되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자! 그러면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택하려느냐?" 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한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 다윗의 자유처럼 칼과 열병과 기근에 속한 자유이다.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갈지니라" (렘 34:17; 15:2 참조).

[3] 또는 징계 속에서도 그를 다소 격려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가 그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배척하시기 않으시며 그에게는 여전히 하나님과의 "교통하심" 이 있고 그에게 고통을 주시는 가운데도 "그의 체질" 을 참작하셔서 그가 가장 잘 견딜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알리심으로써(잠 3:32; 시 103:14 참조) 그를 격려하신다.

[4] 그로 하여금 징계의 회초리를 보다 잘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선지자는 다윗에게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기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게 하라고 말한다. 목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파송된 자들이다. 그래서 목사는 위임받은 사명의 실적을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우리들한테서 어떤 대답을 얻어갈지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들이 우리에게 관한 보고를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

(2) 다윗은 칼의 심판 만큼은 반대하며 나머지 두 심판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소관사로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암암리에 온역을 더 바라는 듯이 말한다(14절). "내가 곤경에 있도다." 그는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그 앞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렘 48:43, 44). 그는 한 가지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재난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죄는 인간을 큰 곤경에 빠뜨린다는 것을 명심하자. 지혜롭고 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곤경을 자초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1] 그는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해 주기를 간청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로 석 달을 대적 앞에서 도망하지 않게 해주소서." 석 달간의 도주는 다윗의 온갖 승리의 영광을 먹칠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대적들의 교만한 행동을 야기시킬 터였다(신 32:26, 27 참조). "그들의 긍휼은 잔인하며 석 달이면 그들이 여러 해 동안에도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이 민족에게 입힐 것입니다."

[2] 그는 하나님께 투신한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노라." 사람은 하나님의 손이다(그렇게 부른다. 시 17:14, 즉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칼이다). 그러나 기근이나 역병 같은 심판은 하나님의 손에서 직접 나온다. 다윗은 이 두 천벌을 가리키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화해 받음을 보다 빨리 깨닫도록 하기 위해 가장 짧은 심판을 택하신다. 그러나 혹자는 다윗이 이 말로써 온역의 선택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그 땅은 삼 년 전 기브온인 때문에 입은 기근의 피해를 아직 복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근의 회초리로 징계받지 않기를 원하노라. 이 역시 우리 이웃 민족의 자랑거리가 될 것임이니라." 이런 점에서 우리는 기근의 욕이란 표현을 읽을 수 있다(겔 36:30). "그러나 이스라엘이 어차피 감소되어야 한다면 온역으로 감소되게 하소서. 왜냐하면 그것이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 죽이는 재앙 때처럼 보통 자신이 직접 보낸 종이나 사자의 손으로 심판을 하신다. 그 심판은 다윗과 그 가족도 극히 비천한 자와 마찬가지로 당해야 하는 심판이지만 칼과 기근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 죄를 뼈저리게 깨닫고 후자를 택한다. 칼과 기근은 이 자나 저 자를 다 삼킬 것이지만 멸하는 천사는 하나님께 가장 죄인된 자들에게만 칼을 뽑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심판은 가장 단기간에 끝나는 심판이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노여워하시는 표징 아래 있다는 생각만 해도 두려움을 느낀다. 사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히 10:31)고 말한다. 불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비로운 모든 소망에서 차단된다는 것은 죄인에게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회개하는 다윗은 여호와의 긍휼이 크신 줄을 알기에 감히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내던진다. 선한 자들은 하나님의 노여움 아래 있을 때조차 하나님께 대한 선한 생각을 품는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라(욥 13:15 난외주).

(3) 하나님은 이에 따라 역병을 보내신다(15절). 그 범위로 말하자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였다. 즉 왕국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였으니 이것은 역병이 어떤 자연적 원인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임을 나타낸다. 다윗은 자기가 선택한 것을 받았다. 그는 보통 수단의 수난을 당하지 않고 불가사의한 일로 수난을 겪는다. 그 온역은 그날 아침(다윗이 선택한 바로 그 날 아침)부터 정한 시간까지 계속됐다. 즉 풀(poole) 선생이 생각하듯 사흘까지 계속됐거나 아니면 패트릭 감독 외 여러 사람이 생각하듯 첫 날 저녁 곧 저녁 제사 예정 시간까지만 계속됐을 것이다. 후자의 계산에 따르면 온역은 단지 아홉 시간 동안만 계속됐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대한 긍휼심에서 처음 언급하셨던 시간을 단축시켰다는 것이다. 온역의 위력은 매우 엄청났고 가혹했다. 백성의 죽은 자는 칠 만이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건강하던 자들이 다 병들어 죽은 것이다. 장자가 살육되던 때의 애굽처럼 이스라엘 온 땅에 얼마나 큰 호곡이 일어났는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전자가 한 밤중에 있었다면 후자는 백주에 있은 일이었다(시 91:6 참조). 하나님이 임무를 부여하실 때 천사들의 구원하는 능력이나 멸망시키는 능력이 얼마나 굉장한지 주목하자. 요압은 봇으로 돌아 다니는 데도 구 개월이 걸렸지만 천사는 칼로 온 이스라엘 땅과 해안을 두루 행하는 데도 단 아홉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극히 교만한 죄인들을 얼마나 쉽사리 낮추실 수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의 덕을 얼마나 많이 입고 있는지 주목하자. 다윗의 간음은 그 당장 한 아이의 죽음으로만 처벌되었으나 그의 교만은 칠 만의 인명으로 처벌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교만을 증오하신다. 역병으로 죽은 자는 칠만 명으로 그들은 거의 스무 명에 한 명 꼴로 죽었다. 우리는 다윗의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그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시 119:120).

Ⅲ. 온역이 예루살렘에 창궐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이 심판을 완화시켰다(16절). 천사는 마치 딴 어느 곳보다 예루살렘에 더 큰 심판을 행하려고 하는 듯이 그곳을 향해 손을 들었고 심지어 멸하려고 하기까지 했다. 지방은 쓴 잔을 마셔야 했지만 예루살렘은 그 찌꺼기를 마셔야 했다 예루살렘은 마지막으로 계수된 듯하다. 그러므로 그곳은 마지막에 재앙을 입도록 예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예루살렘에는 다른 어느 곳보다 죄악이 많았을 것이며 특히 교만의 악이 심했을 것이다(그리고 이 심판은 교만의 죄에 대한 징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멸망자의 손은 예루살렘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 여호와께서는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셨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마음을 바꾸시지 않고 그 방법을 변경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긍휼로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게 하라" (약 2:13 참조)고 하셨다. 예루살렘은 법궤를 인하여 목숨을 건지게 될 것이다. 그곳은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꺼이 용서하시며 벌하는 것을 얼마나 즐겨하지 않으시는지 살피자. 이로써 우리는 심판 도중에라도 용기를 얻어 회개하게 된다. 이 일은 모리아 산상에서 있었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아브라함이 하늘의 명령 취소로 자기 아들의 살해를 중지한 바로 그 장소에서 이 천사가 그때와 비슷한 제지로 인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중지했다고 관찰한다. 우리의 몰수된 생명이 멸하는 천사에게서 보존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저 큰 희생 때문이다.

Ⅳ. 이 때 다윗은 자기 죄에 대해 새로이 잘못을 뉘우친다(17절). 오는(하나님께서 그 눈을 여신 까닭에) 그 천사를 보았고 그 천사가 멸하려고 빼어든 칼을 보았다. 그는 명령 일하에 그 천사가 막 칼을 칼집에 꽂고 심판을 중지하는 것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을 보고 난 그는 천사에게 말하지 않고 여호와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하고 아뢰었다. 이는 크신 주인의 면전에서 종에게 말하거나 창조주께 돌려야 할 존귀를 피조물에게 돌리는 일이 도리가 아닌 줄 알았던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자는 하나님의 살려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자비를 많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더욱 더 자기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는 데 주목하자.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용서한 후에는 그들이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겔 16:63).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그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고발하는가? 그는 자기 잘못을 아무리 악평해도 모자라는 듯이 자기를 고발하고 있다.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삽나이다. 죄는 내가 지었사오니 십자가도 내게 지워 주소서.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나는 죄인이오니 나로 고난자가 되게 하소서." 이와 같이 다윗은 비록 자기가 백성 만 명에 해당하는 자였을지라도 자기 죄에 대한 벌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했다.

2. 그는 백성을 위해 어떻게 중보의 기도를 올리는가? 백성들의 비통한 애곡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고 그의 귀를 울렸다.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그들은 많은 잘못을 범했다. 하나님을 격동시켜 다윗으로 하여금 이와 같이 인구조사를 하도록 내버려 두게 한 것은 바로 그들의 죄였다. 그럼에도 그는 참회자답게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엄한 반면 그들의 죄는 경감시키려고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널리 시행될 때 대개의 사람들은 남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면서 비난하고 그 심판으로 누가 엎드러지든지 개의치 않는다. 그럼으로써 그 심판을 모면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다윗의 참회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공중심이 있는 자였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상기시켜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으며 우리가 피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치도록 기꺼이 원하셨다. 양 무리가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목자 자신이 맞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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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7 없음.

 

24:18

물러가는 온역(사무엘 하 24:18-25)

Ⅰ. 다윗은 천사를 본 바로 그 장소에 제단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는다(18절). 이 명령이 다윗에게 시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다윗이 재차 승복하고 뉘우치자 완전히 그와 화해를 하셨다는 사실을 이로써 암시하신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만일 그를 죽이기를 즐겨하셨다면 제사를 열납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그에게 단을 쌓으라고 명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 제사를 드리라고 권면하신다는 것은 그가 우리와 화해하셨다는 위로의 증거가 된다.

2. 그것은 희생 제물로 하나님과 죄인간에 화해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위대하신 화목 제물이시다. 율법의 모든 희생 제물은 그리스도의 예표였던 것이다. 멸하는 천사가 그 손을 멈추라고 명령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이다.

3. 하나님의 심판이 은혜로이 중지될 때 우리는 감사함을 고백하고 그를 찬양해야 한다. 이 제단은 감사의 제사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 세워졌던 것이다(사 12:1).

Ⅱ. 다윗은 제단을 쌓기 위해 토지를 매입한다. 그 땅의 소유자는 아라우나라는 이름의 여부스 사람인 것 같다. 그는 틀림 없이 이방 태생이지만 유대교에 개종해서 이스라엘인 사이에 거주가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성 안에 자기 소유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레 25:29, 30). 그 땅은 타작마당으로 보잘 것 없는 곳이었지만, 수고의 장소였으므로 이처럼 존귀한 장소가 된 것이다.

1. 다윗은 땅임자와 직접 거래하기 위해 그에게 갔다. 다윗이 공정성을 주목하자. 그는 이렇게 절박한 중에도 그곳을 사용하려 들지 않았다. 비록 소유자는 이방인이었고 그 자신은 왕이었으며, 목하 그곳에 제단을 세우라는 지엄하신 하나님의 분부를 받았음에도 그는 그곳을 매입하여 값을 치르기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신다(사 61:8). 다윗의 겸허를 살피자. 그는 조금도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비록 왕이었지만 이제 참회자가 된 그는 자기 비하의 표시로 아라우나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거래하지 않고 친히 아라우나에게 가서 이 일을 주선했다. 이 일은 얼핏 보기에 다윗의 체통을 손상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 일로 명예를 잃지 않았다. 아라우나는 다윗을 보자 왕 앞에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했다(20절). 권세자들은 자기 겸손 때문에 존경을 더 받으면 받았지 덜 받지는 않을 것이다.

2. 아라우나는 다윗의 내방 이유를 알게 되자 그에게 후한 제의를 했다(21절). 그는 제단 쌓을 토지뿐만 아니라 번제할 소와 제사에 소용이 될 다른 물건들까지도 내놓겠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무상으로 내놓는 외에 좋은 것까지 곁들였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라우나가 이렇게 행한 것은 다음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1) 그는 대재산가로 관대한 마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왕처럼 왕께 드렸다" (흠정역, 23절). 그는 평범한 백성에 지나지 않았지만 제왕의 정신을 가진 자였다. 히브리 원문으로는 "그는 드렸으니 바로 왕이 왕께 드리는 것 같았다" 는 뜻이다. 이로써 우리는 아라우나가 그 곳 여부스족들의 왕이었거나 아니면 그때는 비록 다윗의 속민이더라도 여부스족의 왕손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아라우나는 다윗이 비록 정복자였지만 그의 많은 개인적 공로 때문에 그를 크게 존경하였고, 그에게 아무리 많은 은혜를 베풀어도 신세를 갚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애착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스라엘에 내리는 재앙이 그치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재앙이 자기 집 타작마당에서 그치게 되면 그것은 영광이 될 터였으므로 그는 다윗에게 바치는 모든 것을 귀중하게 생각하려고 했다.

3. 다윗은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로 결심하고 또 그렇게 했다(24절). 여기에는 두 관대한 심령의 만남이 나온다. 아라우나는 기꺼이 헌납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윗은 한사코 지불하려고 했다. 그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그는 값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는 경건한 여부스인의 관대한 마음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윗은 틀림 없이 그의 친절한 제의에 대해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타작마당과 소에 대해 은 오십 세겔을 지불했고 나중에는 성전 건축을 위해 그 인접 구역에 대해 금 육백 세겔을 지불했던 것이다. 그 주된 관심이 값싸고 손쉬운 데 있는 자들, 가장 노력과 돈이 적게 되는 걸 기뻐하는 자들은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주의하자. 우리가 재물로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재물을 소유한단 말인가? 재물을 이보다 더 선용하는 것은 없다.

Ⅲ. 다윗은 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을 드렸다(25절). 그는 시행된 하나님의 공의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 번제를 드렸고 그 심판 도중 적절한 시기에 중단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 화목제를 드렸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나타내셨다(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워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재앙이 그친 것은 자비에서였고 하나님이 왕이나 백성과 다 화해하셨다는 표시였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이요, 희생 제물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만이 하나님께 은총 입기를 기대할 수 있고 그 안에서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으며 생명나무 길을 지키는 그룹들의 화영검을 피할 수 있다. 아멘

 

24:19 없음.

 

24:20 없음.

 

24:21 없음.

 

24:22 없음.

 

24:23 없음.

 

24:24 없음.

 

24:25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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