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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시바의 야욕(사무엘 하 16:1-4)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얼마나 많은 호의를 베풀었으며 그의 사환 시바에게 정중하게 대했던가(9:10 참조), 그것은 매우 잘한 것이다. 그러나 시바는 관리의 신분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므비보셋의 재산을 맡은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이든 압살롬이든 왕관을 쓴 자로서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을 허락만 한다면 하고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이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마치 거친 물 속에서 낚시질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1. 시바는 다윗을 환영의 뜻으로 가장 필요한 선물을 제공했다. "선물은 사람의 길을 부드럽게 하고" (18:16) 그는 이것으로 자기의 길이 너그럽게 풀리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뇌물은 아니였다(잠 17:8 참조). 다윗은 시바가 매우 현명하고 관대한 사람이며 주인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바는 생각을 많이 하고 다윗에게 이 선물을 가져왔다. 가난한 자를 동정하면 부활 때 갚아 주실 줄 믿지만(눅 14:14) 부자에게 인심 쓸 필요가 무엇일까?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 그가 직면한 고통 가운데서 어떤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2절). 포도주는 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곤비한 자나 신하들을 위한 것이었다. 포도주는 일반인이 다 사용하는 것 같지 않다. 다만 쇠약해지는 사람을 위해 강장제로 사용했던 것이다.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잠 31:6). 압살롬이 술을 이용해서 암논을 죽인 것처럼 그런 취태가 아니라(13:28 참조) 다윗이 이용한 것처럼 당신의 귀족들이 기력을 보충하려고 적당한 때 먹는 것이 좋은 일이다(전 10:17). 시바가 이 선물로 어떤 흉계를 가졌던지 하나님의 뜻은 다윗에게 이것을 보내고자 함이였다. 하나님은 나쁜 사람의 음모를 통해서도 그의 백성을 위한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신다. 그는 까마귀까지 동원하셔서 고기를 보내시기도 한다.

2. 선물을 통해서 다윗의 환심을 얻으려 했고 신용을 얻으려 했다.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서 시행해야 할 다음 일은 므비보셋을 비난하여 다윗을 격분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윗이 그에게 므비보셋의 안부를 물을 때에 그가 다윗의 왕위에 계승될 것이라 하더이다라고 거짓말을 했다(3절). 사환들의 거짓된 입술이 주인에게 엄청난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흔히 있는 일이다. 다윗은 므비보셋이 야심가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구중에서 압살롬과 그의 통치 하에서 신임을 얻고 있다는 것이며 절름발이이지만 고관직에 오를 수 없을 만큼 허약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비방을 듣고 생각할 여지도 없이 므비보셋의 반역을 인정하고 몰수된 땅을 뺐으려고 시바에게 권한을 부여했다.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은 다 네 것이니라" (4절) 진리가 빛 앞에 드러나면(19:29 참조) 후에 부끄러워할 것인데 그는 경솔한 판단을 내렸다. 다윗은 이런 소리 듣고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율법이 말했듯이 사람들은 은혜를 헛되이 받는 버릇이 있다. 그러므로 시바가 다윗을 속인 것처럼 악의를 품은 사람들은 경계하고 참된 사람을 찾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시바는 그의 계략대로 새로운 신분을 얻었으므로 다윗왕의 고지식함을 비웃고 자기 목적에 승리함을 기뻐했다. 므비보셋의 재산을 얻은 것보다 더 가치있는 왕의 칭찬을 듣고 그를 떠났다. "나로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그러면 족하겠나이다." 위인은 언제나 우쭐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사람은 본래 양편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두 개의 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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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시므이의 저주(사무엘 하 16:5-14)

우리는 여기서 시바의 아첨 못지 않은 시므이의 저주를 다윗이 견뎌내는 훌륭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시바에 의한 다윗은 타인을 잘못 인정했으나 시므이에 대해 그는 바로 판단할 수 있었다. 세상의 미소는 찡그림보다 더 조심할 일이다. 생각해보자.

Ⅰ. 시므이가 얼마나 오만하고 난폭했던가. 그는 다윗의 재난을 통해 자신의 적개심을 폭발시켰다. 다윗이 망명 중에 베냐민성 바후림에 이르렀다. 그곳은 시므이가 살았던 곳이다. 시므이는 사울의 집안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사울이 몰락될 때 그의 문중이라는 이유 때문에 시므이는 모든 관직에서 떨어졌다. 그는 사울의 후계자로 물망되던 자였다. 그래서 그는 다윗에 의해 뼈에 맺힌 원한을 품게 되었다. 다윗이 번영하고 권력이 왕성하면 할수록 시므이는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그가 말로 표현한 저주보다 더 무서운 저주가 그의 마음 속에서 발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므이는 다윗을 날조할 수 있는 모든 나쁜 말로 그를 저주로 퍼부었다.

1. 왜 시므이는 자기의 분노를 이 기회에 발산했는가.

(1) 이때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다윗이 도전자에게 분을 발할 수 있었다면 시므이는 당장 처단되었을 것이다.

(2) 이 때가 다윗이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슬픔에 고충을 더하기 위해 그의 상처에 초를 치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처신자에게 슬픔을 더하는 것은 가장 야만인이다(시 69:26 참조).

(3) 이 때가 자기의 비난을 다윗에게 표현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윗의 당면한 고통은 자기 자신이 자진해서 저지른 죄악임을 증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욥의 세 친구들도 이런 잘못된 원리에서 그를 저주했다. 하나님의 은혜 중에 책망듣는 사람은 왜 하나님은 선인에게 악인을 보내서 비난받게 하시는가를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으니 지금 따라가 그를 잡으라" (시 71:11)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쓰러지는 자를 아주 짓밟아 없애려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2. 그의 악의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비참하게 된 자에게 어떻게 했는가. 그는 다윗에게 돌을 던졌다(6절). 마치 그가 개나 되는 것처럼 취급했다. 유대인은 가장 악한 죄인을 만나면 그가 죽을 때까지 돌을 던졌다. 아마 그가 던진 돌이 다윗이 있는 곳까지 미치지 못한 먼 곳에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힘만 있었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의사를 보여 주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그가 돌을 던지매 티끌을 날리더라" (13절). 그가 저주한 저주가 자기에게로 돌아 간 것같이 그가 날린 티끌이 자기 눈속으로 들어 갔을 것이다. 시므이가 다윗을 미워하면 할수록 자신의 증오는 더욱 무기력함을 느끼곤 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가 미워는 할 수 있을지라도 그를 해칠 수는 없는 것이다.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욥 35:6). 다윗이 좌우에 장대한 호위병과 함께 있을 때 시므이의 무기력함이 드러나므로 그의 분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다윗이 버림받고 박해 중에 고난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태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전과 다름없이 여전하고 오히려 그 신하들은 더욱 열성적이었다.

(2) 그가 한 말이 무엇인가? 그는 돌을 던지며 악한 말을 했다(7, 8절).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라" (22:28). 다윗은 명성있는 양심의 사람이요 의롭고 선한 분이라는 여론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저주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을까? 그가 잊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는 사울의 집에 있을 때에 갈망하던 것이 다윗 때문에 패배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인하여 이렇게 다윗을 비난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기질 때문에 우리는 불의한 생각만 가졌어도 늘 의롭다가도 한 번만 악에 이용되어도, 그를 악인이라고 규정짓는 경향이 있다. 이것보다 더 잘못된 것은 없다. 우리는 너무 일방적이고 부분적이다. 사울의 집에서 순결한 피를 빼앗을 자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집에서 순결한 피를 뺏을 자 또한 없는 것이다. 사울이 다윗의 생명을 노릴 때 다윗은 사울의 생명을 살려 주었다. 사울과 그의 자녀들이 블레셋 사람에 의해 살육당했다는 소식을 다윗이 수마일 떨어진 곳에서 들었을 때 매우 슬퍼했다.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모살자로부터 다윗은 충분히 혐의가 밝혀졌으나 사울의 집에 피 흘린 자는 모두 그의 집 문에 남아 있었음에 틀림 없다. 악의가 없는 사람은 거짓과 악함에 대해서도 방벽이 없다. 악한에게 도전을 당해도 이상하게 생각지도 않고 신중을 기해서 자신을 지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이 재판장이 될 수 없고 진리를 따라 판단하시는 하나님만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울의 피 값을 불법으로 다윗에게서 찾으려 했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보자.

[1] 그의 성품을 나타냄으로 다윗보고 벨리알의 사람 "피 흘린 자여" 라고 이름을 붙였다(7절). 그가 벨리알의 사람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이 피흘린 자다. 벨리알이라 불리는 사람은 악마의 후예이기 때문이다(고후 6:15 참조). 그는 창시 때부터 살인자다. 피흘린 자란 가장 흉악한 자라는 말이다.

[2] 다윗에게 고통을 더해 줌으로써 사울의 피 값을 찾으려 했다. 다윗을 왕위에서 쫓아 내고 광야로 방황하게 한 것은 사울의 피 값이라는 것이였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만일 자기에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하면 그에게 고통이 찾아오고 큰 손상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어리석음이나 불의의 원한에 이용하려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분노를 도와 주지도 않는다.

[3] 그의 왕위가 다시 회복될 수 없도록 망하기를 그는 원했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시 3:2). 하나님은 압살롬의 손의 나라를 므비보셋에게 옮기실 것이라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말을 시바에게서 들었던 것처럼 시므이는 다윗에게 너는 피를 많이 흘렸고 많은 파괴를 했다고 저주를 했다.

Ⅱ. 심한 모욕을 당하면서도 참고 유순하게 대하는 다윗을 생각해 보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장군이 특별히 그의 칼로 다윗의 명예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9절)라고 날카롭게 이를 방어하려 했다. 만일 다윗이 허락만 한다면 아비새 장군은 그의 목을 잘라 저주하는 일을 조용하게 했을 것이다. 그의 존경한 왕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너와 무슨 상관이냐 그로 저주하게 두라" 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도 명예를 좋아하는 제자들이 사마리아성에서 치욕당하는 것을 생각하고 하늘로부터 불을 명하여 저들을 멸하자고 할 때 그들을 책망하셨다(눅 9:55). 다윗이 어째서 침묵을 지키게 했나 생각해 보자.

1. 침묵한 첫째 이유는 자기의 고난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실로 참회하는 자는 할 말이 없다. 어떤 경우에도 참회자의 반성은 말 같은 것은 전연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므이는 사울의 피에 관해 다윗을 몹시 비난했다. 양심으로는 다윗을 저주할 만한 것이 없어 무죄로 인정되지만 그러나 우리아의 피를 그에게 부과시켰다. 그의 말은 거짓이지만 그러나 다윗은 그 비난도 참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는 언제나 비난의 소리도 좋은 충고로 믿는다. 그래서 그들을 선하게 대해준다.

2. 그는 모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관찰했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10절)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막을 자가 누구겠느냐?" (11절) 그의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그의 악한 마음 속에서 나온 것이거나 악마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것은 시므이의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도 없고 핑계나 참작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죄는 예수를 죽는 데 내어 준 사람들의 죄만큼 악한 것이다(행 2:23; 4:28 참조). 그러나 다윗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다윗은 욥과 같이 약탈자로부터 그의 것을 뺏겼을 때 주께서 뺏어갔다고 인식했다. 은혜스러운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말이 없다. "주께서 이루셨으므로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하였나이다." 입술의 저주도 하나님의 회초리가 된다.

3. 그는 위인을 생각하고 고통 속에서도 침묵을 지켰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11절). 경건한 사람은 재난이 인내를 낳게 한다. 견디면 견딜수록 더욱 훌륭한 인내력이 생긴다. 우리의 인내심을 키우면 재난을 개선할 수 있게 된다. 고통에서 연단을 하면 할수록 고통을 당해도 놀라지 않게 하고 이상하게 생각지 않게 된다. 원수가 해하지 않는다고 안심하지 말라. 친구가 불친절하다고 이상히 여기지 말며 자녀들이 불효한다고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

4. 그는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의 고통을 몰아내고 좋은 것을 허락하실 줄 믿고 또 그가 직면한 고통자체가 통제되고 그의 재난으로부터 인내함으로 보상이 있을 것을 믿고 위로를 받았다. "여호와께서 그의 저주대신 선한 것으로 내게 갚으시리라" 생각했다. 만일 하나님이 시므이에게 그를 슬프게 만들라고 명하셨다면 다윗은 이 시련으로 그를 연단시킨다고 생각하고 더욱 위로를 받았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생각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를 높이기 위해서 고통 중에서도 그를 의지해야 한다. 다윗은 바후림에 머무른다(14절). 거기서 원기를 회복하고 사소한 말을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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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도벨의 음모(사무엘 하 16:15-23)

압살롬은 다윗과 그의 약간의 수행원들이 철수하자 예루살렘에 몇 사람의 동지들을 급히 파견하고 방해하는 자가 없으므로 그는 기쁨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문은 열려 있고 대항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체없이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15절). 그가 계획을 세울 때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처음부터 쉽게 성공하게 되므로 아주 기분이 상기되었다.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왕자가 되어 모든 국민이 자기 뜻을 따르는 것이었다. 악인들이 자기의 음모가 기대 이상으로 잠깐 성공을 거두게 되어도 그들의 실망이 더 큰 슬픔과 수치를 당할 것이므로 하나님은 괴로워하신다. 가장 높이 추대된 정치인은 아히도벨과 후새였다. 아히도벨은 그가 예루살렘에도 동행했으나(15절) 후새는 예루살렘에서 만난 사람이다(16절). 그는 이 두 사람의 모사를 가진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궤는 자기와 함께 있었으나 거기에는 염두도 두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이 두 모사들은 모두 미천한 존재들이다. 생각해 보자.

Ⅰ. 후새는 압살롬에게 좋은 지혜로운 조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그의 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를 돕는 척하다가 그를 배반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압살롬은 참으로 위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후새는 압살롬에게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16절)라는 말로 사실은 그를 환영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적인 지혜로 다스리는 사람들이 시침떼기 술책에 얼마나 유혹을 받았던가! 사탄의 함정을 모르고 경건하고 단순한 대화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알아야 한다.

2. 압살롬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갔을 때 다윗의 가장 친하고 신임이 두터운 친구 후새를 만났을 때 놀랐다. 그가 묻기를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17절) 후새는 직책상 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압살롬은 그의 성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윗의 신복인 그가 제일 먼저 그를 찬양할 기회를 얻을만큼 성실을 보여 주었다(욥 3).

3. 후새는 압살롬을 위하여 열심하려는 신념을 더욱 굳게 했다. 왜냐하면 다윗은 자기 친구지만 압살롬은 사실상 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18절). "택한 자에게 속하여 거할 것이니이다" 라는 말을 들을 때 하나님은 웃으셨을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이신 왕을 섬기겠다고 했다(19절). 그가 그의 아버지를 사랑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지나갔으니 그의 후계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마음 속으로 꺼리는 것을 거짓으로 말을 했다.

Ⅱ.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악한 조언을 했다. 그가 책략적으로 거짓을 말하게 했던 것처럼 다윗을 효과적으로 배반하도록 조언했던 것이다. 거짓으로 조언하는 사람은 그를 해치려는 사람이다. 죄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모래 위에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1. 아히도벨은 지혜로운 정치가로 인정받았던 것 같다. 그의 조언은 마치 하나님의 계시를 물어서 받은 것처럼 인정되었다(23절). 그는 국사에 총명하고 신기하다는 평판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비밀 모사가 되었고 선악간 모든 문제에 관해서 다윗도 압살롬도 그의 충고를 들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아히도벨을 하나님의 계시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분별있는 사람과 지혜있는 사람을 비교해 보자. 아히도벨의 정책적인 두뇌를 관찰해 보자.

(1) 세상 사람들은 영적 은혜가 전연 결핍된 세상적 지혜를 찬양한다. 자기 생각에 고착된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를 경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다. 위대한 정치가 중에는 위대한 성자가 드물다.

(2) 위대한 정치인 중에는 자신을 위해서 가장 어리석은 일을 행하는 수가 있다. 아히도벨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소리쳤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말이었다. 그는 횡령자요 경솔한 청년 압살롬을 지지하는 말이다. 전연 선하지 않은 거짓 예언은 결국 신임을 잃게 되었다. 정직은 최고의 정책이며 정직이라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다.

2. 그의 목적 달성을 위한 정책이 왜 좌절되었는가를 연구해 보자.

(1) 악한 조언을 압살롬에게 주었다. 궁을 지키라고 남겨둔 다윗의 처첩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과 동침하라고 조언을 했다(21절). 하나님의 율법에는 이런 죄를 가장 무서운 죄로 규정하고 있다(레 20:11 참조). 바울은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전 5:1)라고 말했다. 루벤이 이 죄 때문에 장자권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아히도벨은 정책적으로 이것을 압살롬에게 종용했다. 이것으로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증거를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음란의 소문보다 더 빨리 그리고 널리 전파되는 것은 없다(역자 주).

[1] 전임자에게 속한 것은 무엇이건 압살롬의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키고 널리 알리려고 한 것이다.

[2] 다윗과 화해할 수 없도록 그의 분을 격발시키려고 했다. 다윗 시대는 평화가 없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 일로 칼을 들었으며 자기 세력을 강화했다. 이것이 아히도벨의 악한 술책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라기보다는 악마의 계시였다.

(3) 이런 모사에도 고분고분한 압살롬은 악하고 추잡한 그의 마음에 맞기 때문이다. 구실로 연기하지 않았다(22절). 기괴한 하나의 반란이 오페라가 된다면 이처럼 흉칙한 욕망이 전주곡이 될 수 있겠는가? 그가 양심이 마비되지 않았다면 이런 끔찍한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통해 시도하려던 아히도벨의 계획은 무너졌다. 이로 인해 그의 명예와 덕망을 완전히 잃어 버렸다. 소돔성에서 있었던 것처럼 그의 죄악을 고의로 뻔뻔스럽게 공개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서 성취되었다. 다윗이 밧세바를 더럽혔기 때문에 그의 부인들이 백주에 욕을 당할 것을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한 일이 있다(12:11, 12). 밧세바는 아히도벨의 손녀딸이다. 그는 상처를 입힌 보복으로 이런 흉계를 조언했다. 밧세바는 엘림의 딸이요(11:3), 엘림은 아히도벨의 아들이다(23:34). 음란죄에 대해 욥은 이렇게 말했다. "언제 내가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욥 31:9, 10)(호 4:13, 14 참조). 이런 악을 당한 다윗의 처첩들은 무슨 생각이 났을까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압살롬이 얼마나 불의한 자라는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그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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