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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전(全) 이스라엘의 왕 다윗(사무엘 하 5:1-5)

Ⅰ. 온 지파들이 다윗에게 나아와, 자기들이 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한다(당시 이들은 목자없는 양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선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 인정한다. 다윗이 결단코 이스보셋의 살해를 찬성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생긴 유리한 조건들을 선용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제의를 수락했다. 유다 지파는 이미 7년 전부터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 다윗 치하에서 그들이 누렸던 평안과 행복은 다른 지파들도 다윗에게 궁정을 바치도록 종용했던 것이다.

각 지파에서 몇 명이 나왔으며, 어떤 열의와 성의로 나왔으며, 헤브론에서 3일을 지내면서 그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그때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다윗을 왕으로 삼았다-하는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다(대상 12:23-40). 여기서는 그들의 연설 요지와 다윗을 왕으로 삼으려는 그들의 이유가 나와 있다.

1. 다윗에 대한 그들의 관계가 다소 동기가 되었다. "우리는 당신의 골육이니이다(1절). 당신은 우리의 골육이요, 이방인이 아니며, 율법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왕이 될 분일 뿐만 아니라(신 17:15) 우리는 당신의 것이옵니다." 즉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당신의 골육으로 여기실 뿐만 아니라, 사울과 그의 집과는 달리, 사람이 자기 집안 사람들에 대하여 갖는 그런 지극한 사랑을 우리에게 대하여 가지고 있음을 아나이다. 우리는 당신의 골육이니이다. 그러므로 이 오랜 내란을 종식하는 것을 당신도 기뻐하리이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며, 보호하시고, 우리의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옵소서."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는 자들은 그에게 이런 환원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주의 골육이니이다. 주는 모든 점에 주의 형제들에게처럼(히 2:17)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통치자가 되시옵고 이 멸망을 주의 수하에 두옵소서" (사 3:6).

2. 그가 이전에 민중에 행한 훌륭한 봉사는 더 한층 좋은 동기가 되었다(2절). "사울이 왕이었던 때에도, 그는 그림자였고, 당신이 실상이었으니, 이스라엘을 주관하신 자는 당신이었나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온 자이니이다. 그러므로 이 공식 중의 보좌에 당신보다 더 적합한 자 누구오리까?" 작은 일에 충성한 자는 보다 큰 일을 맡게 된다. 우리에게 베풀어진 이전의 훌륭한 직능들은 기회가 있는 대로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이 좋다.

3. 하나님의 명령은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일지니라." 즉 너는 그들을 다스리라. 방백들은 목자처럼 자기 백성을 먹이며, 매사 그들의 편익을 도모해야 하며, 먹어야 한다. 그들을 탈취해서는 안 된다. "너는 평화시에 다스리는 왕이 될 뿐 아니라, 전시에는 전쟁 사령관이 될지니, 진영의 온갖 수고와 위험에 대처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고, 이제 마침내 필요성에 의해서 그들이 그리로 나아가게 되었으니, 말도 역시 그렇게 하게 된 것이다.

Ⅱ. 다윗의 공식적이고 엄숙한 취임(3절). 각 도성의 대회가 소집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다윗에게 나아왔다. 계약이 체결되었다. Pacta conventa-즉 계약들이 세워지고, 쌍방이 서명을 했다. 다윗은 평화시에는 그들의 사사로서, 전시에는 그들의 사령관으로서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들의 "동맹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그 증인이 되셨다. 그리고 장로들은 그에게 복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맹은 "여호와 앞에서" 맺어진 일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세 번째로 왕으로서 부름을 받았다. 그의 승진은 점진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신앙이 시련과 연단을 받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의 나라는 메시야의 나라의 한 예표가 되었다. 메시야의 나라도 점차적으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우리는 아직 만물이 그에게 굴복한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히 2:8). 그러나 마침내는 그런 일을 보게 되리라(고전 15:25).

Ⅲ. 그의 치적과 연한에 대해서 일반적인 기록이 나와 있다. 그가 왕이 될 때 나이는 30 이였고, 그 때 사울이 죽었다(4절). 바로 그 나이에 레위인들은 비로소 자기들의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민 4:3). 다윗의 자손 예수도 그 나이쯤에 공무를 시작했다(눅 3:23). 그때에야 사람은 판단력에 있어서 완전히 성장하는 것이다.

그는 도합 40년 6개월을 통치했다. 그 중 7년 반은 헤브론에서 33년은 예루살렘에서였다(5절). 헤브론은 유명했었다(수 14:15). 그곳은 제사장의 성읍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더욱 유명해져야 했고, 더욱 거룩한 도성이 되어야 했다. 위대한 왕들은 각기 자기의 도성을 세우고 싶어한다(창 10:11, 36:32-35). 다윗도 그러했다. 예루살렘이 바로 다윗의 도성이었다. 그것은 성경의 끝까지 유명한 이름이다(계 21장). 거기에 보면 새 예루살렘이란 것이 나온다.

 

5:2 없음.

 

5:3 없음.

 

5:4 없음.

 

5:5 없음.

 

5:6

다윗성 시온(사무엘 하 5:6-10)

멜기세덱이 왕으로 있던 곳, 살렘이 바로 예루살렘이라면(시 76:2 를 보면 그런 것 같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시대부터 유명했다. 여호수아는, 자기의 시대에, 예루살렘을 가나안 남부의 중심 도시로 만들었다(수 10:1-3). 그곳은 베냐민 지파의 몫이었다(수 18:28). 그러나 유다의 땅과 밀접하게 붙어 있었다(수 15:8). 유다의 자손들이 그 도성을 차지했었다(삿 1:21). 그러나 베냐민의 자손들은 여부스 사람들이 자기들과 함께 사는 것을 허용했다(삿 1:21). 그래서 여부스 사람들이 점점 강성해지자, 그곳을 "여부스 사람들의 성읍" 이라 했다(삿 19:11). 이제 다윗은 자기가 전(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직후에 첫 원정으로 여부스 사람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원래는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울가에 충성하던 베냐민 지파가 자기에게 복종하기까지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일 것이다(대상 12:29). 여기서 다음 사실들을 살펴보자.

Ⅰ. 여부스 족속은 다윗과 그의 군대를 무시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소경과 절뚝발이들을 물리치기 전에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6절 개역과 다름-역주). 그들은 다윗에게 이렇게 분노를 자극하는 전갈을 보냈다. 그들은 나중에 다른 기회에 한 말처럼, "어떤 적도 예루살렘의 말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 고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애 4:12).

그들은 적어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1. 자기들의 신의 보호에 대한 신념. 그러나 다윗은 그 신들을 경멸하여 "소경과 절뚝발이" 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발이 있으나 걷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도성의 수호신이다. 네가 이들을 물리치지 않고서는(결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혹자들은, 그 신은 놋으로 만든 별 자리의 우상이며, 요새의 은밀한 곳에, 보호 구역에 안치해 두었을 것으로 본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을 "마우짐" 곧 "요새" (단 11:38)라고 불렀다. 그 자체가 요새에 의지해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이 우리의 강한 망대이니," 그의 팔이 튼튼하고, 그의 눈이 투시력을 가지고 있음이로다.

2. 또는 자기들의 요새의 힘을 믿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요새가 천연적으로든, 인공적으로든 너무도 난공불락의 성으로 방비되어 있으므로, 비록 소경이나 절뚝발이들도 충분히 적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특별히 시온의 요새를 의지하고 있다. 아마 그들은 성벽 위에다가 소경과 절름발이들-병자든 처벌을 받은 죄인이든-을 세워두고 다윗과 그의 군대를 비웃게 하며, 그들이라야 다윗의 적수가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부상당한 자들만 남아 있었지만, 공격자들은 능히 격퇴하리라고 믿었다. 예레미야 37장 10절과 비교하라.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들은 흔히 자기들의 힘을 신뢰하며, 자기들의 몰락할 날이 다가왔을 때에도 아주 안심하고 있은 것이 보통이다.

Ⅱ. 다윗은 여부스족을 치는데 성공한다. 그들의 교만과 무례가 다윗을 놀라게 하기는커녕 원기를 돋우어 주었다. 그래서 다윗은 총공격을 하면서 부하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다. "누구든 여부스족을 칠 자는 하수로 내려가서 저 소경과 절뚝발이를 치라. 그들이 우리와 우리 하나님을 모독하려고 성벽 위에 세워져 있도다." 그들은 어떤 불경스런 말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다윗의 미움을 샀을 것이다. 8절의 말씀을 그렇게 읽을 수 있다. 현재와 같은 해석(흠정역)은 역대 상 11장 6절에서 따온 것이다. 거기에 보면 단지 여부스족을 쳤다는 말만 나온다. 소경과 절뚝발이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여부스 사람은, 자기들의 신상이 자기들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소경과 절뚝발이도 이 집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즉(그레고리 씨의 해석대로) 그들은 더 이상 자기들의 부적을 믿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그 신상들을 존경하지 않을 터였다. 다윗도 그 요새를 점령하고 나서 역시 그런 말을 했다. 자기를 예배하는 자들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이 신상들을 더 이상 그 자리에 둘 수가 없다고 했다.

Ⅲ. 다윗은 시온에다 도읍을 정했다. 이제는 안전한 요새에 거하게 될 것이다. 한 때는 그에게 대항하고 위협적 존재이던 자들도 이제는 그의 안전에 기여했다. 그리고는 자기의 수행원들과 호위병들을 위해서 그 둘레에다 집을 지었다(9절). 그 집은 밀로(마을 회관이나 정부 청사 같은 곳)로부터 시작하여 안으로 지었다. 그는 계속 진행했고, 그의 손이 닿은 모든 일은 잘 되어갔다. 명성을 떨치게 되고, 권세와 재산이 갈수록 더해갔고, 자기 백성들이 보기에는 점점 영예로왔고, 적군들의 눈에는 두려운 인물이 되어갔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자기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뜻대로 이용하시며 당신의 목적을 이루신다. 그런 그분이 다윗과 함께 하사, 그를 지도하시고 지키시고 번영케 해 주셨다. 만군의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자들은 인간들이나 마귀의 무리들이 대적해 올지라도 겁낼 것 없다.

크게 강성해진 자들은 그것이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 덕분임을 알아서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교회를 "시온" 이라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읍" 이라고 한다. 여부스족들, 그리스도의 적군을 먼저 정복하여 찾아내야 한다. 즉 절름발이와 소경을 쳐부셔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그리스도께서 노략물을 나누시고, 자기의 보좌를 거기에 정하시며, 성령에 의해서 그곳을 자기의 주재지로 삼으신다.

 

5:7 없음.

 

5:8 없음.

 

5:9 없음.

 

5:10 없음.

 

5:11

두로 왕의 선물과 다윗의 우행(사무엘 하 5:11-16)

여기서는 이런 기록을 볼 수 있다.

Ⅰ. 다윗의 집이 세워졌고, 대신들의 영접을 위한 궁정이 마련되었고, 충성이 돌려진다(11절). 유대인들은 농부와 목축업자들이었다. 상업과 공업에는 별로 종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두로 왕 히람-그는 재산이 많은 군주였다-이 다윗의 즉위를 축하하면서, 그에게 공인(工人)들을 보내어 집을 지어 주겠다고 한 제의가 있다. 다윗은 이 제의를 달게 수락했다. 그리고 히람의 공인들은 다윗의 마음에 드는 집을 지어 주었다. 하나님의 약속된 계약에는 문외한인 많은 자들이 예술과 기술에는 탁월하다. 그러나 다윗의 집은 한 번도 하나님께 봉헌하기에 부족할 만큼 허술했던 적이 없다. 그의 집은 이방인들의 자손이 지었기 때문이었다. 복음의 교회에 대해서 이런 예언이 있다. "이방인들의 아들들이 네 벽을 지을 것이요, 그들의 왕이 네게 시종을 들리라" (사 60:10).

Ⅱ. 다윗 정부가 수립되었다(12절).

1. 그의 나라가 안정되었다. 아무 것도 그 나라를 동요시킬 수 없었고, 그의 주권을 방해하거나 그의 왕권 자격을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신 자가 그를 안정되게 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한 예표였고,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손이 있고, 그의 "계약은 든든히 서 있기" 때문이다(시 89:21-28). 사울은 왕이 되었다. 그러나 안정되지는 못했다. 아담도 무구(無垢)한 시대에 그러했다. 다윗은 안정된 왕이었다. 다윗의 자손(예수)도 그러하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향해 만들어진 모든 자들도 역시 "왕의 제사장" 이 된다.

2. 그의 나라는 그의 친구들의 눈에나 원수들의 눈에다 다같이 존귀히 보였다. 이스라엘 나라가 이 때에 시작된 모습처럼 그렇게 탁월한 적은 전혀 없다. 그리스도가 "땅의 왕들보다 더 존귀하게" 되리라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시 89:27). 하나님은 실제로 "그를 지극히 존귀하게" 하셨다(빌 2:9).

3. 다윗은 자기가 승진되게 안정된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로써 주께서 내게 은총을 베푸셨음을 내가 아옵니다" (시 41:11).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는 많으나, 그것을 깨닫는 자는 적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은총의 위안을 모른다. 존귀를 받아 안정에 처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인 줄을 아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자이다.

4.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자기가 그들에게 복된 전재이도록 해 주시며, 그들은 자기의 정치를 통해서 행복하게 될 수 있도록 해 주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을 인정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윗의 신민으로 삼으신 것은 다윗을 위해서, 다윗이 위대해지고 부해지고 절대적 인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백성들을 위해서 그를 왕으로 삼으신 것이다. 그가 백성을 지도하고 안내하며 보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왕들은 "자기들의 백성을 복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일군들" 이다(롬 13:4).

Ⅲ. 다윗의 식구가 늘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이사한 이후 그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들이 모두 나와 있다. 그가 헤브론에서 맞은 아들 여섯 외에, 도합 열 한 아들을 본 것이다(3:2, 5). 거기서는 그들의 어미들이 나왔으나, 여기서는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일괄해서 다윗이 "처와 첩들을 더 취하였다" 고만 했다(13절). 이것을 잘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 변명해 줄 수도 없다. 족장들의 그릇된 선례가 그런 일은 해도 괜찮은 일로 생각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다윗은 자기의 동맹국을 늘이고 자기 식구를 늘임으로써 자기의 권세를 확고히 하려 했을 것이다. "자기의 화살통에 화살이 가득한 자는 행복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집 옆에서 자라나고 있는 한 그루의 덩굴 나무도 능히 바다와 땅 끝까지 줄기와 가지를 뻗칠 수 있다. 아담은 한 아내를 통해서 세상에다가 사람을 가득하게 했고, 노아도 다시 그렇게 했다. 다윗은 아내를 많이 두었다. 그러나 자기 이웃의 아내를 탐내거나 범하지는 않았다. 사람이란 일단 울타리를 박차고 나가면 끝없이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윗의 첩들에 대해서는 사무엘 하 15장, 16절, 16장 22절, 19장 5절을 보라. 그리고 그의 아들들에 관해서는 역대 상 3장 1-9절을 보라.

 

5:12 없음.

 

5:13 없음.

 

5:14 없음.

 

5:15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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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블레셋군을 물리침(사무엘 하 5:17-25)

다윗이 할 독특한 공헌은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하는 것" 이었다(3:18). 그러므로 먼저 거룩한 섭리자께서 다윗이 자기의 일을 달성할 기회를 주셨다. 여기서는 블레셋을 물리친 두 큰 승리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다윗은 이 전쟁을 통해서 사울이 죽게 되었던 그 전쟁에서 당한 이스라엘인들의 손실이 가져온 치욕을 보복했을 뿐만 아니라, 이 골치 아픈 이웃 민족, 저주받은 민족 중 마지막 민족을 완전히 몰락시키는 데까지 일을 밀고 나갔다.

Ⅰ. 두 번 다 블레셋인들이 먼저 공격을 했다. 그래서 자기들의 멸망을 부채질했고,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

1. 먼저 그들이 "다윗을 찾으러 올라왔다" (17절).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울의 휘하에서도 1만 명을 죽인 바로 그가 왕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무슨 일인들 못하랴! 그러므로 그의 정부가 아직 자리를 잡기 전에, 초기에 박살을 내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연전(年前)에 사울을 이겼다. 그래서 다윗을 물리칠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고,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같이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메시야의 나라도 세상에 수립되자마자 맹공격을 받았으니, 그것은 그 나라에 반기를 들었던, 유대인들과 이방이 연합된 어두움의 군대들에 의한 공격이었다. 이방인들이 사납게 날뛰었고, 세상 왕들이 반항했다. 그러나 모두가 허사였다(시 2:1 이하).

이와 같이 사울의 나라가 파멸될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은 모여서 의논했으나, "산산이 부서졌다" (사 8:9, 10).

2. 나중에는 먼저 잃어버린 것을 만회하려는 꿈을 안고 "다시 올라왔는데" 그들의 목은 멸망을 향해 더욱 굳어져 있었다(22절).

3. 그 두 경우에 모두 그들은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해 있었다." 이곳은 예루살렘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그들이 차지하려고 바라고 있던 그 도성은 이 다윗이 완전히 요새화해 둔 곳이다. 예루살렘은 초기부터 특정 원수들의 공격 목표였었다. 그들이 편만했다는 것은 그 수가 많았음을 말하며, 겉보기에 굉장해 보였다는 뜻이다. 교회의 원수들이 "지면(地面)에 널리 다닌다" (계 20:9)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편만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화살에는 더 좋은 표적이 되는 법이다.

Ⅱ. 다윗은 어느 경우에서나 그냥 돌진해 갈 수 있었다(다윗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요새로 나갔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중요하고 유리한 지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17절). 그러나 흉패를 통해서 "여호와께 물어 보기" 전에는 행동을 개시하지 않았다(9,23절). 그는 두 가지를 물었다.

1. 자기의 임무에 관해서. "내가 올라가야 하니까? 그들과 대처해야 할 하늘의 임명을 내가 받았나이까?" 혹자는 이것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왕이 된 것은 바로 여호와와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움을 싸우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선한 사람은 자기가 행동하기에 앞서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기를 좋아한다. "내가 지금 가오리이까?" 물론 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이 그 때입니까 하는 뜻이다. "네 모든 행사에서 그를 인정하라."

나아가서 블레셋이 비록 공적인 적이었지만, 그들 중 어떤 자들은 과거에 다윗과 절친한 친구였었던 것이다. 아기스는 다윗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그를 도와 주고 보호해 주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싸움을 하는 것보다는 화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아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적이다. 멸망의 운명이 정해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망설이지 말고 올라가라."

2. 자기의 성공에 대해 물었다. 그의 양심은 "내가 올라가리이까?" 하는 앞의 질문을 했다. 그의 지혜가 이번에 이렇게 묻는다. "주께서 그들을 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이로써 그는 자기가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손에 넘겨 주시고, 그의 명분을 하나님이 기뻐 인정하시지 않는 이상, 자기가 그들을 정복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시인한 셈이다. "주께서 그렇게 하시겠나이까?" 그렇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결정코 그렇게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다면, 그는 우리를 지지해 주실 것이요, 또 우리를 통해서 그가 지지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영적 대적을 이기고 승리하리라고 하신 보장, 곧 머지 않아 그가 우리의 발 아래 사탄이 짓밟히게 하리라는 약속은 영적 투쟁에 있어서 우리를 고무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는 불안 속에서 싸우지 아니한다. 당시 다윗에게는 대군이 있었고 사기도 충천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권세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의지했다.

Ⅲ. 먼저 번에는 칼을 통해서 블레셋군을 근절했다(20절). 다윗이 "그들을 쳤다" 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났을 때,

1. 그는 자기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렸다. "여호와께서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도다. 하나님이 먼저 그렇게 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내가 그런 일을 못했으리라. 그는 마치 땜의 물을 터뜨리듯이 길을 뚫으셨다. 그래서 그 길이 일단 트이자 물은 점점 더 많이 흘러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아니 차라리 그가 모두 하신 것이다. 다윗이 한 일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께만 영광을 돌리라." 다윗은 이 사건이 마치 댐의 수문을 열어젖힘같이 되어, 결국 블레셋군이 전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 사건을 영원히 기념하고 싶었다. 그곳을 "바알브리심" -" 물떠뜨림의 주인" 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이 그들의 군대들의 저변을 파괴시켰기 때문에 머지 않아 그들의 주인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손들도 이 사실을 알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2. 다윗은 블레셋의 미신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상을 마치 보호자인 양 전쟁터로 끌고 나왔다. 이스라엘이 진중에 법궤를 수행시킨 것을 본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겁을 집어 먹게 되자 자기들의 신상을 도로 가져갈 겨를도 못 가졌다. 그 신상들은 "지친 짐승들에게 무거운 짐" 이었기 때문이다(사 46:1). 그래서 자기들의 다른 짐꾸러미와 함께 정복자들의 손으로 넘겨 주고 만 것이다. 그들의 신상은 그들을 실패하게 했고, 아무런 도움도 못 주었다. 그러므로 저들이 스스로 신상을 원수들이 처리하도록 버려 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던 것들로 싫증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인간들이 죽자사자 좋아하던 것도 버리게끔 만들 수 있으며, "몸도 우상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져버리게까지 할 수 있다(사 2:20, 21).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다른 모든 노획물은 자기들의 뜻대로 이용했으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신상들은 불태워버렸다(신 7:5). 하나님은 이렇게 명하셨었다. "너희는 저들의 새긴 신상을 불에 태우라. 그것은 우상 숭배를 너희가 증오한다는 표지요, 너희가 올무에 걸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패트릭(Patrick) 주교는 여기서 이런 점을 잘 지적해 주었다. 법궤가 블레셋인들의 손에 넘어갔을 때는 그 법궤가 그들의 신상들을 멸해버렸다. 그러나 저들의 신상들이 이스라엘 사람의 손에 들어왔을 때는 오히려 그 신상들이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Ⅳ. 나중 번에는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어떤 구체적 표적을 주었다. 그래서 이전처럼 직접 그들을 공격하지 말라고 하셨다. 단지 "저들 뒤에 가서 포위하라" 고 하셨다(23절).

1. 하나님은 다윗에게 뒤로 돌아가라고 명하셨다. 그래야 "이스라엘이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2. 하나님은 자기가 직접 눈에 뵈지 않는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대적을 치겠다고 하셨다(24절). "너는 하늘 군대의 행진소리 같은 발자국 소리를 뽕나무 꼭대기에서 들으리라." 천사들은 가벼이 밟는다. 그리고 구름 위로 걸을 수 있는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시면 나무 꼭대기에서 또는(패트릭 주교가 이해한 대로) 뽕나무나 나무울타리 위로 걸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표적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네 앞에서 행하심을 알리라. 비록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소리를 들을 것이라. 믿음은 들음으로써 오고 또 들음으로써 돈독해지느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다윗이 직접 그들을 쳤을 때에는(20절) 그가 그 일을 하나님 탓으로 돌렸다. "여호와께서 내 대적을 흩으셨도다." 이러한 감사에 넘치는 고백에 대해 다윗을 보상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하나님이 돌로 그 일을 하신 것이니, 다윗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가 한 일로 인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서 더 많은 일을 해 주심을 경험하리라.

그러나 보라. 하나님이 "내가 앞서 가서 블레셋을 치리라" 고 약속하셨지만, 다윗은 그 행진 소리를 들었을 때, 스스로 분별하여 성공을 이룰 채비를 차려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노력을 분발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야 함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을 주시고 일하시도록 역사하신다고 해서, 우리는 할 일이 없는 사람마냥 그냥 주저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가능한 모든 수고와 열심히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빌 2:12, 13).

발자국 소리는



(1) 다윗이 행동할 시기를 알리는 신호였다. 하나님이 앞서가신다면, 우리도 안심하고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2) 적군들에는 경보요, 당황케 하는 소리가 되었을 것이다. 자기들의 진을 행해 오는 군대의 행군 소리를 듣자, 그들은 황급히 물러섰을 것이다. 그리고는 뒤에서 지키고 있던 다윗의 군대에게 괴멸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대항하여 싸우신 자들을 대해 이런 말씀이 있다.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가 그들을 도망치게 하리라" (레 26:36).

(3) 이 전쟁의 성공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25절). 다윗은 명령을 지켰다. 하나님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야 움직였다. 그전에는 가만히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받았고, 그 섭리에 의지하는 법을 익혔다.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을 지키신다. 그래서 그의 앞에 가셨고, 적군을 근절시켰다. 그리고 다윗도 대기 상태에 있던 자기의 이점을 살리는 데 실패하지 않았다. 그는 블레셋인들을 쳤다. 그들의 국경 지대에서도 죽였다. 메시야의 나라가 세워져야 했을 때도, 마귀의 나라를 칠 사도들은 자기들이 성령의 약속을 받기까지는 아무런 일을 해서도 안되었다. 성령은 "강한 바람처럼 하늘에서 나온 소리와 더불어 왔다" (행 2:2). 이것이 바로 뽕나무 위에서 나던 걸음소리로 상징되었던 것이다. 사도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스스로 분기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대로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정복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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