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이 걸어온 싸움(사무엘 상 28:1-5)
Ⅰ. 여기에는 이스라엘을 치고자 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계획이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결심하였다(1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일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블레셋 따위는 남아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일 사울이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았다면 이때쯤에서는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위험은 말끔히 떨쳐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모둔 군사들 보다 훨씬 더 무서워하는 다윗을 그들의 편에 끌어들이자, 이러한 계획을 획책하였다.
Ⅱ. 이 싸움에서 아기스는 다윗이 자기를 도와 주기를 기대하였고 다윗은 그가 그런 기대를 할 수 있도록 아기스를 격려하였다. "너와네 사람들이 나와 한가지로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라고 아기스는 다윗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보호하여 주었으니, 나는 너에게 나를 도와 달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아기스는 가는 곳 마다 성공을 거둔 다윗과 같은 사람을 옆에 데리고 있으면 모든 것이 참 잘되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모호한 대답을 하였다. "우리는 일이 어떻게 되는가 살펴보겠읍니다. 앞으로도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2절). 그의 말은 이런 뜻이다. "나로 하여금 선택할 시간적 여유를 주시면 내가 어떤 자리에 서는 것이 왕을 가장 잘 돕는 길인가를 생각해 보겠읍니다." 이처럼 다윗은 아기스의 기대를 딱 잘라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그를 꼭 돕겠다는 약속에 자신을 얽매여 놓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기스는 다윗의 말이 자기를 꼭 돕겠다는 말로 이해하고, 그로 하여금 자기의 호위대장, 보호자, 또는 나라의 재상으로 삼겠다고 약속하였다.
Ⅲ. 양쪽 군대가 광야에 마주 대하여 진을 쳤다(4절). "블레셋 사람은 수넴에 진을 쳤다." 그 곳은 잇사갈 지파에 속한 땅이며 그들의 나라로부터는 훨씬 북쪽에 있는 땅이었다. 이처럼 이스라엘 땅은 전혀 무방비 상태로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땅의 심장부까지 유유히 행진해 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울은 다윗을 쫓는 동안 그의 백성들을 알몸둥이로 내버려 두었다. 사울은 그의 군사들을 길보아의 근처 산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울 준비는 하였지마는, "여호와의 신이 그를 떠났으므로" 싸울 마음은 전혀 없었다.
Ⅳ. 사울은 크게 두려워 떨었으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그는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자신의 견해와 그리고 정탐꾼들이 가져온 보고에 따라서 그들의 수가 월등히 많고, 무장을 잘 갖추었고, 그리고 매우 용기들이 있어 보였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이 크게 떨렸다" (5절). 그가 만일 하나님과 가까이 하였다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 떨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를 버리시게 하였기 때문에, 그의 힘이 약해졌고, 그의 군대의 수도 감소되었으며, 보잘 것 없는 모양이 되었고, 더우기 그 자신의 마음도 심히 낙담하였고, 그의 죄에 물든 양심은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도 떨게끔 만들었다. 이제 그는 그가 살려준 아말렉 사람의 죄로 물든 피와 그가 죽인 제사장의 무죄한 피를 기억하였을 것이다. 그의 죄가 눈앞에 늘어서서 그로 하여금 혼란에 빠지게 하고, 그의 생각이 혼미해지게 하고, 그의 모든 용기를 빼앗아 갔고, 그의 마음 속에 심판을 두려워하는 생각을 낳게 하여 주었다. 재난은 불충한 자녀들에게 두려움이 된다.
이러한 근심 속에서 "사울은 여호와께 물었다" (6절). 그들이 번영할 때 하나님의 지성소와 그의 제단을 경시하였던 사람들도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 하였나이다" (사 26:16). 그런데 어떤 인간이 여호와를 찾았는데 그를 만나지 못한 일이 있는가? 그렇다. 사울은 여호와를 찾았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셨다." 그의 청원도 그리고 그의 요구도 괘념치 않으셨고, 그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지 지시하여 주시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희망조차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넣어 주시지 않으셨다. 사울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대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겔 14:3) 그럴 수 없다. 그는 좋은 대답을 기대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1.사울은 전혀 "묻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하나님께 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대상 10:14). 사울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물음에 대답지 아니 하시면 악령에게 의논하기로 은근히 뜻을 정하고, 희미하고 냉담하게 물었던 것이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묻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가지고 물었다.2. 사울이 너무 때가 늦게서야 여호와께 물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련의 때가 이미 지나고, 그를 버리기로 결정을 내린 뒤에야 사울은 여호와께 물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를 만날 수 없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3. 사울에게 주어졌던, 물을 수 있는 은총이 몰수된 뒤에 물었기 때문이다. 그가 선지자였던 사무엘과 다윗을 증오하고 핍박하였는데 어떻게 다른 선지자들을 통해 대답을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대제사장을 죽인 그가 어떻게 우림을 통해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또 은혜의 영에게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꿈을 통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 없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갈 6:7).
Ⅴ.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를 소개하기 위해서 벌써 오래 전에 있었던 두 가지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사무엘의 죽음에 관해 언급하였다. 사무엘의 죽음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담대한 마음과 사울에게는 보다 두려운 마음을 주었다. 사무엘이 살아 있다면 그의 돌봄과 그의 좋은 충고와 그리고 그의 귀한 기도가 재난 중에 있는 그에게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사울은 생각했을 것이다.2. 사울이 신접한 자와 박수를 쫓아 내었던 포고에 관한 언급이 있다. 사울은 "살려 두어서는 안 되는" (출 22:18) "신접한 자들" 을 쫓아내는 법을 공포한 일이 있다. 어떤 사람은 사울이 사무엘의 영향을 받던 그의 통치 초기에 이런 법을 공포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최근에 공포된 포고 모양으로 언급된 것을 보아서(9절) 그것이 최근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사울은 그가 악령에 의해 시달림을 받을 때, 자기가 신들린 것으로 생각하고 모든 신접한 자들을 죽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그 죄로부터 어떤 해를 자기 자신이 받을 때는 열심을 내서 그 죄를 미워한다(사람들은 욕하는 자들로부터 그들 자신들이 욕을 먹을 때 그들을 고발하며, 술취한 자들로부터 자기가 행패를 받아야만 그 술취한 자를 고발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거나 죄 그 자체를 미워하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하여간 사울이 자기의 권력을 이용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을 억제 하였다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속에 있는죄에 대해서는 무심하고 잘 보아 주면서도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기를 돋운다. 사울은 그의 왕국으로부터 악령을 쫓아내고자 하면서도 질투와 적의심을 품은 채 자기의 마음 속에 모셔들이고 있었다.
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사무엘 상 28:6-14)
Ⅰ.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았다(7절).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실 때" 만일 그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회개하며,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요청을 들어 주시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하늘을 쳐다 보아도, 그리고 땅을 굽어보아도 위로를 받을 길을 찾지 못하자(사 8:21, 22), 그는 지옥의 문을 두드리기로 결심하였으며, 누구든지 자기 편이 되어 자기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고 사울은 말했다(7절). 그리고 그의 신하들은 사울이 악을 행하는데 지나치게 그를 도와 주었다. 그들은 즉시 사울의 포고를 피하여 (거기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엔돌에 숨어 있는 한 여자를 추천하였다. 사울은 그 여자에게 가서 물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다음과 같은 잘못들을 찾아본다.
1.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멸시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셨고, 그를 싫어 하시는데도, 다른 피조물은 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2.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모순된 행동을 취하였다. 그는 무당들의 죄가 극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신접한 자들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건마는 이제 그는 한때 그가 가증한 것이라고 선고한 것을 다시금 귀한 것이라고 의지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그들이 어떤 죄에 빠질 유혹을 받지 않고 있을 때는 그 죄에 대해 무섭게 욕설을 퍼붓는데, 나중에 그들이 그런 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사울이 무당들을 한참 죽이고 있을 때 만일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가 오래지 않아 그런 무당 중의 하나에게 그 자신이 물어 볼 때가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면, 사울은 하사엘이 말한 것과 같이 "무어! 내가 개란 말이냐?" 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지를지 누가 알겠는가?
Ⅱ. 그런 사람이 한 사람 있단 말을 듣자 사울은 즉시 그 여자에게로 갔다. 그런데 사울은 밤에 변장을 하고 다만 두 사람이 시종을 데리고 갔다. 아마 걸어 갔을 것이다(8절).
1. 사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을 경멸하게 되는가를 보라. 사울이 자기의 운명을 한갖 가련한 무당에게 물어보려고 갔을 때처럼 비참하게 보일 때는 일찌기 없었다.2. 또 얼마나 자신의 일을 숨기게 되는가를 보라. 악한 일은 어두움의 일이다. 그들은 빛을 싫어하며, 빛이 있는 곳에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사울은 왕의 옷을 입고 무당에게 가지 않았다. 그는 보통 군인의 차림으로 갔다. 이는 그 여자가 사울을 알아보고 그를 도와주지 않거나, 또는 자기에게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온 줄로 알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사울이 그런 곳에 갔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고, 싫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록 악을 행하는 자라 할지라도 낯을 붉히고 이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양심이다.
Ⅲ. 사울은 그녀에게 자기의 용건을 말하고 그 때문에 그녀가 결코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1. 사울이 그녀에게 원한 것은 그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어떤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불러 올려 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강신술이었으며, 죽은 자를 불러서 자기의 목적에 이용하여 점을 치게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율법에 분명히 금한 것이며(신 18:11), "산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사 8:19)라는 말씀으로 금하고 있는 바이다.사울은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8절)라고 말했다. 이 말로 보아서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사후에 여전히 영혼이 생존하고, 그리고 인가이 비록 죽는다고 해도 그것으로서 끝장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육체와 분리된 영혼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선한 영이 악령의 지시에 따라 올라 온다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도구로 쓰기에 합당치 않다고 거절한 사람이 마술적인 방법으로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불합리한 일이다.
2. 그 여자는 법이 두렵다는 뜻을 밝혔고, 또 이 사람이 자기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온 것이 아닌가고 의심하기도 했다(9절). "네가 사울의 행한 일을 알지 않느냐?" 고 말했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울로 하여금 바로 그런 무당에게 가서 물어보는 그 시간에, 무당들을 없애라고 하였던 그 포고에 관해 이야기를 듣게 하여 주셨다. 왜냐하면 그의 죄가 그 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그 법이 매우 무섭다고 말한 것은 아마 자신의 주가를 올리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비록 여기에는 그녀에 대한 보수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마는,그 여자는 틀림없이 비싼 대우를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 여자는 사울의 포고 때문에 오는 위험을 깨닫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조심히 세웠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그 진노가 무섭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사울" 이 한 일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했지마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고, 그녀는 자기의 영혼보다는 육신의 생명을 노리는 올가미를 더욱 두려워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들로부터 받는 형벌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받는 형벌보다 더욱 무서워 한다.3. 사울은 결코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맹세로써 약속하였다(10절). 그런 여자를 처벌하는 것이 왕인 그의 책임이었으며, 사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건마는 그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자기가 꼭 하여야 할 일을 자신의 맹세로써 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 양 행동하였다.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고 사울이 약속하였는데 이는 그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약속한 것이었다. 자기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보복을 스스로도 막지 못하는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Ⅳ. 사울이 영혼을 불러 올려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최근에 죽은 사무엘이었다. 그리고 무당은 마술을 써서 사울의 요청을 만족시켜 주었으며, 두 사람이 함께 있게 하여 주었다.
1. 무당이 원하는 안전의 확신을 사울이 그녀에게 주자 (다시 말해서 사울이 그를 결코 찾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만들어주자) 그녀는 마술을 쓰기 시작하였고, 자신을 가지고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라고 물었다(11절). 벌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은 죄인으로 하여금 더욱 담대히 악을 행하게 하고, 그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다.2. 사울은 사물엘과 말하기를 원했다. "사무엘을 내게로 불러 올리라." 사무엘은 자기에게 기름을 부은 사람이며, 전에는 자기의 절친한 친구이며, 자문이었다. 그러므로 사울은 그의 충고를 듣고 싶었다. 사무엘이 사울이 있는기브아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라마에 살고 었으며, 거기서 선지자의 학교를 운영하였건마는, 그가 어려움릉 당하면서도 사무엘과 의논하기 위해 거기에 찾아 갔었다는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그가 만일 찾아 갔었다면 문제가 잘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 때 사울은 사무엘이 다윗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서, 그를 오히려 멸시하였고, 증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사무엘이 죽자 "오 다시 한 번 사무엘을 보았으면!" 하고 그를 애타게 부르게 되었으며, 모든 수단을 다 써서라도 "사무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불러 올리고자"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의 성도들과 사역자들을 살았을 때는 멸시하고 박해 하다가도, 죽은 뒤에는 그런 분을 다시금 모시고 싶다고 말한다. 죽어서 음부에 내려간 부자는 "나사로를 내게 보내 주시고, 그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라고 외쳤다(눅 16:24-27).
3. 여기에는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 사울은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고 말했다. 그런데 그 바로 다음에 이어진 말은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라고 되어 있다(12절). 거기에는 여인이 어떤 주문 같은 것을 외우는 그녀의 주술적인 작업이 있어야 할 곳이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다거나 어떤 동작을 했다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을 자리였다. 그러나 이에 관한 성경의 깊은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사탄의 깊은 곳을 알도록" (계 2:24) 허락해 주시지 않는 것이다. 아니면, 악의 신비성을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마 교회의 고해성사에 관해 기록한 책에 의하면 죄목을 나열하는 것을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그 죄를 짓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악한 데 미련하기를" (롬 16:19) 바라서 죄짓는 법에 대해서는 감추고 있다.4. 유령의 모습을 본 그 무당은 자기에게 온 사람이 사울인 줄 깨닫고 큰소리를 쳤다(12절). "왜 당신은 변장을 하고 와서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은 내가 누구보다도 두려워하는 사울이니이다." 이처럼 그 여자는 그가 아무리 변장을 했어도 그를 알아낼 수 있는 기술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사울에게 알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사울이 나중에 자기를 해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 여자가 본 사람이 진정 사무엘이라는 것을 믿었다면, 그 여자는 악한 왕 사울보다는 선한 선지자인 사무엘을 더 두려워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왕들의 왕이신 분의 진노보다는 땅의 왕들의 진노를 더 무서워한다.
5. (옆에 방에 떨어져 있던 것으로 짐작되는) 사울은 그 여자에게 무서워하지 말고 그 일을 계속하라고 하면서 "무엇을 보았느냐?" 고 물었다(13절). 내가 한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라고 그 여자는 대답했다. 그들은 천사들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신들이라고 불렀다. 가련한 신들이 "땅에서 올라온다" 는 것이다. 그 여자는 지옥을 신성시하고 그들을 존경하는 이교도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였다.
만일 사울이 사무엘과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사무엘의 시체가 있는 라마로 무당을 데리고 가서 거기서 사무엘을 불러 내게 하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의 계획은 전적으로 그의 영혼이 육체를 닮은 모양으로 나타나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이런 계획에 응답해 주기 위해 사탄으로 하여금 사무엘의 형태를 입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진실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혼미한 마음을 주셨고 거짓을 믿게" 만들어 주셨다.
사무엘의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고 말했다면 그들은 그것이 사무엘 자신의 영혼이 아니란 것을 쉽사리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혼" 더우기 의인의 영혼은" 위로 올라 가기 "때문이다(전 3:21). 그런데도 사람들이 속는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속을 지어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서 악마가 사무엘을 가장한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악마는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경우에 사울이 악마에게 물어봄으로 실망에 빠지게 하기 위해 악마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만일 사울이 올바른 태도로 하나님께 물었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위로를 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신이 땅에서 올라온다는 말을 듣자, 그 신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어떤 모양으로 올라오고 있는지 묻기에 바빴다. 그는 조금도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죄의 속임수에 의해 완전히 강퍅해지고 있었다." 사울에게는 극유령의 형태를 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전적으로 그 여자의 말을 의지할수 밖에 없었다. 그 여자는 "겉옷을 입은 한 노인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고 하였다. 사사들에게는 이런 겉옷을 입는 습관이 있었다. 사무엘도 때로 그것을 입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바로 이런 모습때문에 그여자가 그 유령을 보고 한 신(또는 신들 -Elohim)이라고 하였다고 본다.
6. 사울은 그 여자의 말을 듣고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였다." 사울이 비록 사무엘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보통 하는 대로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 그렇게 했든지 또는 그가 듣고자 원했던 부드럽게 속삭이는 음성을 듣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신접한 자가 부리는 마귀의 음성은 지절거리며 속삭거리는 음성이다. 사 8:19). 그리고 사울은 속살거리는 소리를 자세히 듣기 위해(아마 무당이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기울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를 부리는 자의 음성은 "땅에서 나며, 말 소리가 티끌에서 지절거리기 때문이다" (사 29:4).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이 그런 것에 귀를 기울인다.
사울의 죽음 예언(사무엘 상 28:15-19)
여기에는 사울과 사탄과의 회담이 나왔다. 사울은 변장하고 왔다(8절). 그러나 사탄은 즉시 그 정체를 발견했다(12절). 사탄은 사무엘의 외투를 걸친 변장한 모습으로 왔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점이 "이 세상의 어두움의 권세자" 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불리한 점이다. 그들은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궤계와 책략을 잘 알지 못한다.
Ⅰ. 사무엘로 가장한 유령 또는 망령은 무엇 때문에 자기를 불렀는가고 물었다(15절).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이 말에서 우리는 그가 사무엘을 가장한 악령인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패트릭 주교가 보는 바와 같이) 무당은 의인들의 안식을 분요케 할 수 없으며 그들의 마음대로 의인들을 이 세상으로 데리고 올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참 사무엘이라면 그런 마술적인 주술력에 굴복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에게 있어서는 사탄의 계략이 꼭 들어 맞았다. 사탄의 계략은 그를 꼭 사로잡을 수가 있었다.
Ⅱ. 사울은 가짜 사무엘을 진짜 사무엘인 줄 착각하고 그에게 자기의 한탄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그의 한탄의 요점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심히 급급 하나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는데 나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표만 있다면 그들을 잘 막아낼 수 있겠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떠나셨읍니다."
사울은 그가 재난을 당하기 전, "블레셋 사람이 자기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키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나신 사실을 한탄하지 않았다. 그런 지경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을 탄식하였다. 자기들의 형편이 잘 될 때 하나님께 묻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이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물음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으시며, 꿈으로도, 선지자로도 그들에게 응답하시지 않으시며 또 하나님 자신이 직접 대답지 않으시는 것은 물론 그의 사자들을 보내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다.
사울은 참회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의로의심을 시인하지 않고, 화가 난 사람 모양으로 하나님이 불친절하고 그에게서 떠나 버렸다고 하며 달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종인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싫어 버린 자를 선대하리라고 생각했으며, 또 죽은 선지자가 살아 있는 선지자보다 더욱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이(비록 사무엘의 이름을 대기는 했지마는) 실은 하나님보다는 다른 데서부터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의 대적인 악마의 도움을 받고자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렸읍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께 왔나이다." "만일 내가 하늘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나는 지옥을 움직이겠다" - Flectere sinequeo superos, Acheronta movebo.
Ⅲ. 사무엘의 겉옷을 걸친 악령은 사울에게 차디찬 위로를 주었으며, 사울로 하여금 절망하고 자살 하도록 이끌어 가기 위해 애썼다. 그것이 참된 사무엘이었다면, 사울이 사무엘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그는 사울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리고 다윗을 다시 불러서 일을 맡김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얻도록 힘써 보라고 일러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는 이와 정반대로 사울의 경우가 절대로 희망이 없는 것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가룟 유다에 대해서 행한 것과 똑 같이 사울에게도 대하여 주었다. 사탄은 가룟 유다를 먼저 유혹하였고, 다음에는 그를 괴롭혔다. 먼저는 가룟 유다로 하여금 그의 스승을 팔게 하고, 다음에는 스스로 목을 매달게 만들었다.
1. 그는 먼저 사울의 현재와 재난을 비난하였다(16절). 그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대적이 되셨다고 하였고,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좋은 응답을 들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하나님이 너의 원수가 되셨거늘, 내가 어찌 네 편이 될 수 있으며, 너를 떠나셨는데 내가 어떻게 너의 의논 상대자가 되겠는가?"2. 그는 다윗이 나라를 이어받도록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하여 사울을 비난하였다(17절). 아마 이 이상 사울의 귀에 불쾌하게 들린 소리는 또 없었을 것이다. 다윗과 화해하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윗에 대해 더욱 분격하게 하고, 더욱 불화하게 하는 말만 하였다. 한편 그 망령은 자기가 사무엘이라고 믿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단언하였다. 악마는 자신 있게 신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며, "거짓 사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도로 꾸미고" 그들의 용어를 흉내낼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주문에는 좋은 말만이 들어 있다고 말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좋은 말 뒤에 악독한 계획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3. 그는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아말렉 사람들을 완전히 진멸하지 않은 것을 두고 그를 비난하였다(18절). 그 죄에 대해서 사무엘이 사울을 회개시키고자 했을 때, 사탄은 사울로 하여금 그죄를 변명하도록 도와 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비를 기대하지 못하도록 그 죄가 지극히 크다고 말했다. 사탄의 유혹에 귀를 기울인 자가 무엇을 얻게 되는가를 보라. 사탄 자신이 비난자가 되어 그들을 모욕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꾀는 자들은 누구를 닮았는가 보라.
4. 그는 사울의 멸망이 가까왔다는 것을 예언하였다(19절).
(1) 사울의 군대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여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두 번씩이나 언급되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 사탄은 블레셋의 강한 힘과 엄청난 숫자를 보고, 한편 이스라엘의 연약함과 사울의 두려움 그리고 더우기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신 것을 볼 때 능히 이런 예언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선지자를 가장하기 위해서 이를 다시금 하나님과 결부시켜서 예언하였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시리라."
(2)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이 싸움에서 죽임을 당하리라고 예언하였다. "내일" 다시 말해서 가까운 장래에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고 하였다. 이 말은 죽는다는 말이요, 그들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게 되리라는 말이다. 이것이 만일 진짜 사무엘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여 주시지 아니하시는 한 그런 일을 예언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그가 악령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악령을 통해서도 예언을 하실 수 있다. 우리는 한 악령이 길르앗 라못에서 아합이 죽으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그를 멸망시키는 방편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을 수 있다(왕상 22:20 이하). 아마 그 악령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사울을 파멸시켰을 것이다. 아합을 충동하였던 그 악령이 사울을 위협하였고 그 두 사람을 모두 쓰러 뜨렸을 것이다. 이처럼 사탄의 세력 아래 놓인 자들은 가련하고 불쌍하다. 왜냐하면 그가 "노하든지 웃든지 다툼이 그침이 없기" 때문이다(잠 29:9).
사울의 낙담(사무엘 상 28:20-25)
여기서 우리는 사울이 유령으로부터 그런 무서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볼 수 있다. 사울은 "그가 어찌할 바" 를 듣기를 원했다(15절). 그러나 그에게 들려진 이야기는 그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되리라는 이야기였다. 하나님이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방법 외에 어떤 자문이나 위로를 받고자 하는 자들은 여기에 나타난 사울처럼 실망하기가 쉽다.
Ⅰ. 사울은 무거운 짐에 억눌리게 되었다(20절). 사울은 "종일 종야에 식물을 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말을 그대로 버티고 들을 수 가 없었다. 그는 진영에서도 그렇고, 계속 밥을 먹지 않았다. 음식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입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블레셋의 세력을 두려워하는 그의 두려움(15절)이 그의 입맛을 가시게 하였으며, 무당에게 가서 물어 보고자 마음을 정한 이후에 그를 엄습한 양심의 괴로움이, 아무리 좋은 음식을 보고도 욕지기가 나게 하였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그는 무장한 군인처럼 그를 엄습해 온 새로운 두려움의 노예가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의 화살이 그를 꿰뚫은 것 모양으로 사울은 "갑자기 땅에 온전히 엎드러졌으며", "그는 기력이 다하여" 그 침울한 소식을 그대로 참고 들을 수가 없었다. 사울은 이제 더 이상 무당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서 좋은 위로의 말을 들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무서운 공포의 말씀을 주시며 그와 동시에 그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는 희망의 문도 아울러 열어 주신다. 하지만 지옥에 떨어지는 자들은 거기서 빛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두움이 있는 줄로 안다.
Ⅱ. 신하들과 무당 여인이 사울을 강권하여 떡을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함으로 사울을 자기 진영까지 돌아가게 하였다. 무당은 사울이 직접 그 유령과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하도록 그 자리를 피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마 사울이 넘어지며 신음하는 소리를 그 여자가 듣고, 그가 크게 괴로와 한다는 것을 알고 사울에게 달려 왔을 것이다(21절). 그리고 그 여자는 사울에게 정신을 차리게 하고 자기 집에서 어서 떠나가게 하기 위해 많이 애썼다. 만일 사울이 거기서 병이 들거나 더우기 죽기라도 하는 날에는, 무당짓 때문에는 이미 형벌 받는 것을 피해 놓았지마는, 이 때문에 배반자라는 이름으로 벌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가 사울을 도와준 것은 어떤 친절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사울은 잘못된 위로를 구하려다가 더욱 비참한 꼴이 되었다.
1. 그 여자는 사울에게 기력을 차리게 하여 주기 위해 애썼다. 그 여자는 자기가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왕의 말을 청종 하였으니만큼, 왕도 이제 자기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며 사울에게 강권했다(21,22절). 그 여자에게는 살진 송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글자 그대로 보면 그 송아지는 곡식을 떨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송아지를 잡으면 손해가 많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이 송아지를 잡아 음식을 장만하였다(24절). 조세푸스는 그 여자의 예절과 너그러운 마음씨를 크게 칭찬하였으며,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받지 못할 일에도 이 여자처럼 신속히 재난당한 사람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고 말한바가 있다.2. 사울은 음식 먹기를 싫어하였다. "사울은 거절하며 말하기를 내가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23절). 그는 명예롭게 칼에 맞아 죽기보다는 명예롭지 못하게 굶어 죽는 길을 택하고자 하였다. 만일 사울이 기력만이 부족하여 그렇게 애쓰는 것이었다면 음식이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처받은 양심에 아무리 맛좋은 고기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신 김치에 초를 치는 것이나, 침울한 마음에 노래를 불러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3. 그 여자는 드디어 사울의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사울을 설복하여 기력을 차리게 하여 주었다. 그들은 억지는 아니지만, 다정스런 충고를 통해 사울을 강권하였다(23절). 이런 예의 바른 강권을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종들에게 주인이 말하기를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눅 14:23). "옳은 말은 유력한 것이어서" (욥 6:24). 사람들을 이익되게 할 수 있다.
사울은 그 음식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신하들이 음식을 먹고, "일어나서 그 밤으로 갔다" (25절). 그들이 그 밤으로 간 것은 가서 할 일을 빨리 하기 위한 점도 있었으나 그런 소문이 날 만한 집에 갔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조세푸스는 여기서 사울의 용기와 넓은 도량에 감탄하였다. 즉 사울은 이제 곧 생명과 명예를 모두 잃어 버리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도, 군대를 버리지 않고 자기의 진영으로 돌아가서 블레셋과 싸울 차비를 차린 점을 감탄하였다. 나는 오히려 그의 마음의 강퍅함에 더 놀란다. 이런 경우는 적어도 그 형벌이 잠시 유예되기를 위해서라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함직한데, 그는 오히려 더 멸망으로 달음질쳤다. 아마 이때 사울의 격노와 시기가 최고에 달했으며, 다윗에게 친절을 베푼 것 때문에 그가 몹시 화를 내고 있던 그의 아들 요나단도 다른 아들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그의 운명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는 자기가 죽는 다면 그의 가족이나 왕국이 그 후에 어떻게 황폐하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 VEmou/, Qano,ntoj, ga,ia, micqe,tw, puri, "내가 죽는다면 그 후에 세상이 온통 불바다가 되든지 나는 상관 않겠다." - 는 태도였다. 그는 다윗처럼 "당신의 손을 내게 댈지언정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대지 마소서"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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