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사무엘상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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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또 다시 다윗을 쫓는 사울(사무엘 상 26:1-5)

1. 사울은 다윗의 움직임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를 공격하였다.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와서 다윗이 지금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 곳은 전에도 십 사람들이 그를 배반하여 사울에게 알려 준 바가 있던(23:19) 바로 그 장소이다. (비록 여기에 아무런 언급은 없지만) 아마 사울은 다윗을 해하고자 다시 계획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은근히 그들에게 알려 주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어떻게 하면 사울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서 그랬을 것이며, (사울에게는 그런 충동이 새삼 필요한 것도 아니었건만) 다윗이 미워서 사울로 하여금 다윗을 치도록 그를 선동한 것으로 보인다(1절).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십 사람들이 사울을 충동하지 않았다면 사울은 여전히 다윗에 대해 계속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24:17), 다윗을 또다시 괴롭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멸망의 씨앗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옥의 불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유혹의 불꽃이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가기를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있다.

사울은 그들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택한 자 3천명을 거느리고, 다윗이 숨은 곳으로 갔다(2절). 이처럼 성결되지 못한 심령은 그들의 마음 속에 결심하였던 좋은 생각을 쉽사리 버리고, 개처럼 그 토한 것으로 다시 간다.

2. 다윗 역시 사울의 움직임에 대해 정보를 입수하였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수립하였다. 다윗은 사울과 맞싸우려고 나가지 않았다. 그는 사울을 없앨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다윗은 여전히 "황무지에 있었다" (3절). 다윗은 거기서 자신의 힘을 길렀으며, 조용히 은거함으로 자기의 용맹성을 통제하고 있었고, 어설픈 대결을 통해 보여 주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용기를 더욱 드러내 보였다.

(1) 다윗은 정탐을 통해 사울이 "매우 가까운 곳에 이른 것" 을 알아 내었다(4절). 다윗은 확실한 증거가 있기까지는 사울이 자기에게 야비한 행동을 취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 다윗은 자기의 눈으로 직접 사울의 진영을 확인하였다(5절). 다윗은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진친 곳으로 가까이 갔는데, 저녁 황혼의 어스름 속에서도 그들의 진영 안을 살펴볼 수 있는 곳까지 매우 가까이,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갈 수 있었다.

 

26:2 없음.

 

26:3 없음.

 

26:4 없음.

 

26:5 없음.

 

26:6

사울의 목숨을 다시 살려준 다윗(사무엘 상 26:6-12)

Ⅰ. 다윗은 밤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한 사람만 데리고, 용감하게 사울의 진영 안으로 들어갔다. 다윗은 사울의 진영으로 가자는 말을 아비새와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부하에게 말하였었다. 그런데 다른 부하는 그것이 매우 위험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든지, 아니면 그 일을 자진해서 하겠다고 나서는 아비새가 자기보다 그 일에 적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든지, 하여간 그 일에 나서지 않았다. 다윗이 용감하기 때문에 감히 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또는 어떤 이상한 계시를 받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은 기드온과 같이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고 경비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Ⅱ. 다윗이 들여다 본 사울의 진영의 상태는 이러 하였다.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사울이 그의 숙소가 기습을 받을 것을 대비해서 "그의 병거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며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혔다" 고 읽는다(7절). 그런데 파수를 보도록 지명을 받은 병사들까지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12절). "여호와께서 그들로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이처럼 그들의 눈은 잠겼고, 그들의 손은 묶여 있었다.

다윗과 아비새가 그들 사이를 오가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도 그들 중 아무도 깨지 않은 것과, 그리고 모두가 깊이 잠들었던 것을 보면 거기에는 어떤 이상스러운 점이 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주는 잠은 그들을 쉬게 하는 것이요. 그들에게 생기를 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수들을 가두워 놓으시기 위해 그들에게 잠을 주실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다. "마음이 강한 자는 탈취를 당하여 자기 잠을 자고, 장사는 자기 손을 놀리지 못하도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이 들었나이다" (시 76:5, 6). 이것은 자연을 명하사 자기 뜻대로 부릴 수 있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깊은 잠이었다." 하나님께서 맥을 못추게 하고, 멸망시키기를 원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혼미한 심령" 을 주신다(롬 11:8).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얼마나 무력하였으며, 무장해제를 당했고, 사슬에 묶였던가! 그런 데도 그들에게 어떤 해가 가해지지 않았다. 다만 깊은 잠에만 떨어졌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쉽사리 강한 자를 약하게 하며, 지혜자를 어리석게 하며, 경계하는 자를 속일 수 있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고, 하나님의 대적들은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Ⅲ. 아비새는 다윗에게 사울의 머리 맡에 있는 창으로 그를 찌르도록 명령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아비새는(사울이 아주 가까운 곳에 누워 있으니 만큼) 단 한 번에 그를 찔러 버릴 수 있겠다고 하였다(8절). 아비새는 다윗 자신이 그를 찌르라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에 다윗이 이와 비슷한 기회가 있었을 때에 사울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아비새는 자기가 그 일을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만 열심히 간청하였다. 아비새는 사울이 악독하고 용서할 수 없는 대적일 뿐만 아니라, 거짓되고 믿을 수 없는 원수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는 동정이나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하였고, "하나님이 오늘날 그의 원수를 그의 손에 붙이셨다" 고 하였다.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는 사울을 죽이라고 명령하다시피 하였다.

지난번에 있었던 경우는 이번과는 달리 순전히 우연한 것으로서, 사울이 다윗이 있는 굴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사울과 그의 신하들이 빠졌던 깊은 잠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가 그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다. 그러므로 다잇이 결코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비새의 주장이었다.

Ⅳ. 다윗은 사울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것도 관대한 마음으로 거절하였다. 그리고 이로써 자기의 충성을 보여 주었다(9절). 다윗은 아비새에게 사울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였고, 자기 손으로 결코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결코 그런 일을 시키지 않겠노라고 하였다. 다윗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말했다.

1.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죄가 된다고 하였다. 사울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롬 13:2). 그런 일을 행하는 자는 죄가 된다. 다윗이 두려워한 것은 죄였으며, 그는 자신의 안전보다도 자신의 무죄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선수를 쓰는 것은 죄가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나발의 경우에서 그에게 만일 그의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때가 돌아오면 반드시 그 복수를 시행 하신다는 것을 충분하게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 때의 경험으로 보아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사울에게 보복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에 "내가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겠다" 고 말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셨던 것 같이 그를 갑자기 치실 것이다. 아니면 전쟁터에서 죽으리라(후에 이것이 사실로 나타났다). 그것도 아니면 그의 죽을 날이 쉬 오리라.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약속된 왕관을 위해 어떤 폭력적인 수단을 쓰지 않고 오직 때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

폭력을 쓰고자 하는 유혹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만일 다윗이 거기 굴복하였다면, 그는 하나님께 죄를 범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단한 결심을 가지고 그 유혹을 물리쳤다(11절).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신다. 나는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노라." 이처럼 다윗은 자기의 양심을 따라 행했으며,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Ⅴ.다윗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의 흠 없음을 증명하였다. 다윗과 아비새는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을 가지고 돌아왔다(12절).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비병들이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의사가 강한 마약을 주었다고 해도 그렇게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울은 자기를 방비하는 창과, 자신에게 활력을 넣어 주는 물병을 잠자는 사이에 도둑 맞았다. 이처럼 우리도 주의하지 않고 방심하면, 우리의 힘과 위로를 잃어버린다.

 

26:7 없음.

 

26:8 없음.

 

26:9 없음.

 

26:10 없음.

 

26:11 없음.

 

26:12 없음.

 

26:13

사울을 충고한 다윗(사무엘 상 26:13-20)

자기가 사울의 진영에 갔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다윗은 무사히 그 곳으로부터 빠져나오자,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감히 붙잡을 수 없는 그런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13절), 그가 어떤 일을 했는가를 말해 주었다.

Ⅰ. 다윗은 아브넬을 조롱하며 그를 빈정대며 말했다. 다윗은 아브넬과 그리고 다른 호위병들이 모두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깊은 잠에 떨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또 하나님께서 직접 손대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아브넬이 경비대의 대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그를 책망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주군인 왕이 그처럼 위험한 상태에 노출되었었는데도 잠만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위험에서 빠져 나오자, 약한 소리, 즉 멀리서 부르는 소리에도 요압이 깬 것을 보면(14절),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였던 것이다. 아브넬은 (아침 일찌기) 깨어서 소리치며 왕의 휴식을 방해하는 자가 누구냐고 물어 보았다. 다윗은 "나로다" 라고 말하고는 그가 마땅히 왕을 경비하여야 할 때에 잠이 들었던 것을 책망하였다.

아브넬은 다윗이 아무 보잘 것이 없는 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보고, 방비를 단단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아브넬은 마땅히 깨어서 잘 지켜야만 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아브넬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1. 아브넬이 크게 명예를 잃었다고 말했다(15절). "네가 사람이 아니냐? (글자 그대로는 이렇게 되어 있다). 너는 장군으로서 병사들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니냐? 너는 소문난 용사가 아니냐? 너는 아주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존경을 받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 너는 부끄럽게 되었구나! 너는 게으름뱅이 장군이로다!"

2. 다윗은 아브넬이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하였다(16절). "군법에 의해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다. 왜냐하면 너희 임금을 보호하여야 할 때에 너희가 경비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Eccesignum - 이 표를 보라. 왕의 창이 어디 있는가 보라. 왕이 그의 대적으로 생각하는 자의 손에 있지 않은가! 이 창을 가지고 올 수 있었던 자는 능히 쉽사리 그리고 안전하게 왕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었도다. 이제 누가 왕의 절친한 친구인가 보라. 너는 왕을 돌보지 않고 그를 위험한 데 내버려 두었도다. 그러나 나는 그가 위험할 때에 그를 보호하여 주었다. 너는 나를 죽일 놈이라고 말하며 사울을 충동하여 나를 쫓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 누가 정말 죽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을 불의하게 정죄하는 자는 때로 그 정죄에 자기가 빠진다.

Ⅱ. 다윗은 사울과 진지하게 말함으로 그를 감동시켰다. 사울은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서 누구가 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17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사울은 지난 번과 똑 같은 방법으로 자기의 상냥함을 표시하였다(24:16). 사울은 다윗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도 이제 와서 그를 "아들" 이라고 불렀다. 그의 피에 굶주렸으면서도 그의 음성을 들으니 기쁘다고 말했다. 좋은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도 겉으로만 좋은 척하는 사람은 정말 악한 사람이다.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었던 좋은 기회를 만났던 것처럼, 이제는 그의 양심을 감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다윗은 사울이 계속 다윗을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다윗은 사울을 설득하여 그에 대한 핍박을 중단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다.

1. 다윗은 그의 주인을 섬길 수 없게 되었으며, 자기의 직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내 주는 주의 종을 쫓으셨나이다(18절). 내가 내 주를 섬길 수 있도록 허락 하신다면 내가 전처럼 참으로 기쁘게 내 주를 섬기겠나이다. 그러나 내 주는 나를 종으로 생각지 않고 반역자로 생각하고 나를 쫓으시나이다. 내 주는 이제 나의 원수가 되었나이다. 나는 주를 존중하려고 하건마는 내 주는 나를 쫓아 내시나이다."

(2) 다윗은 자기를 하나님과 그를 믿는 신앙에서 쫓아내고자 하는 일에 대해 한탄하였다. 그런데 이 일이 전번 것보다 훨씬 그를 더 슬프게 하였다(19절). "그들이 오늘날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붙지 못하게 하나이다. 그들은 나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살지 못하게 하고 광야와 산지로 쫓아 버렸고, 조만간에는 완전히 나를 이 땅에서 쫓아내려고 하나이다." 다윗에게는 다만 자기의 기업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여호와의 기업인 거룩한 땅에서 쫓겨나는 것이 더 한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재산에 대해 우리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다.

다윗은 다만 이방인들 사이에서 살아야 되는 것보다,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우상 숭배를 강요받는 것이 더 그를 괴롭힌다고 하였다. 그의 원수들은 실제로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그를 쫓아냈으며 아마 다윗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쫓아내는 자요, 우리를 이교도로 만드는 자들이다. 만일 다윗이 특별히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으며 철저한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이스라엘 사람이며 참된 하나님의 예배자였던 이스라엘의 왕과 그 백성들이 그에게 보여 주었던 악독한 대우 때문에, 그들의 신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되고, 그리하여 우상 숭배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라면, 나는 블레셋을 위해 살다가 블레셋을 위하여 죽겠노라" 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들의 태도가 다윗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를 죄짓게 하는 것이 우리를 가장 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윗은 자기를 유혹에 빠뜨리는 자들에 대해 "그들에게 여호와의 저주가 있을 지어다" 라고 말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을 사탄에게 보내는 자들은 마땅히 저주를 받는다.

2. 다윗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18절) 그는 결코 왕이나 다스리는 자나 영예로운 자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지 않았으며, 나라의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도 그러 하였다는 양심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사울도 그의 그러한 점을 증명하여 주었다(24:17). 사울은 "네가 나보다 의롭도다" 라고 말했다. 다윗에게서 어떤 죄를 찾을 수 없는 데도 사울이 다윗을 계속 죄인으로 취급하고 그를 추격하였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며, 그를 더욱 악한 사람으로 만드는 처사이다.

3.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쫓는 것은 단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사울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하였다. "그 영광이 지극히 크신 이스라엘의 임금이 다른 하실 일도 많은데 저를 잡으러 오신 것과 같습니다" (20절). 이는 이스라엘 왕으로 서는 감히 할 만한 노릇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다윗은 자기 자신을 메추라기에 비유하였다. 그것은 죄도 없고 또 별로 해도 끼치지 않는 새였기 때문이다. 그 새는 사냥꾼 앞에서는 도망칠 뿐이요, 어떤 반항이나 저항도 하지 못하는 새였다. 그런데 다만 이런 한 마리의 메추라기를 잡으려고 많은 수의 군인들을 몰고 왔단 일인가? 얼마나 이것이 그의 명예를 깎아 버리는 것인가? 연약하고 그리고 죄없는 대적을 유린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점을 남겨 놓은 것인가! 야고보서 5장 6절에 보면 "너희가 너희에게 대항하지 않는 옳은 자를 정죄하고, 죽였도다" 라는 말씀이 있다.

4. 다윗은 문제의 핵심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그 끝장을 가져 올 방법이 강구 되어지기를 원했다(19절). 사울은 정의에 입각해서 다윗을 쫓는다거나,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다윗도 (비록 사실이긴 하지마는) 사울 자신의 질투와 악의가 그런 일을 하게 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윗은 이 일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면 악인들의 불의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1) "만일 여호와께서 왕을 격동시켜 나를 해하게 하시며 (비록 내가 당신에게는 죄가 없지마는 하나님께 지은 죄를 인하여 이런 방법으로 나를 벌하시는 것이든지) 또는 당신을 괴롭히는 여호와의 부리시는 악신의 영향 때문이든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죄가 어떤 죄이든지 간에 용서를 받을 것이며, 당신과 나의 커다란 괴로움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화해를 되찾기 위한 다윗의 올바른 방법을 보라. 먼저 우리는 위대한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자. 그리하면 다른 모든 원수된 것은 소멸될 것이다(엡 2:16; 잠 16:7).

(2) 그러나 "만일 악인들이 당신을 충동하며 나에게 진노하게 한 것이라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왕궁으로부터 추방을 받아 그 처럼 멸망받아 마땅하다는 말이다. 다윗은 왕으로 하여금 명예롭지 못하고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하도록 권면한 자들을 점잖게 책망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께 저주받은 자들로서 왕의 앞에 서지 못하도록 쫓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요청을 사울에게 청하였다(20절). "당신이 내게 대해 위협했던 것과 같이 나의 피로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이는 잘못을 가려 이를 보복하시는 여호와의 면전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이처럼 다윗은 사울에게 자기의 목숨을 위해서, 그리고 자기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애절하게 변호하였다.

 

26:1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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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1

마음이 풀린 사울(사무엘 상 26:21-25)

Ⅰ. 사울은 자기가 다윗을 괴롭혔던 것이 잘못이었고 또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참회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사울은 존경한다는 다윗의 두 번째 주장은 전번 때보다 더 깊은 감동을 사울에게 줌으로 그가 올바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보인다(21절).

1. 사울은 그에게 보여 준 다윗의 친절 때문에 자기의 마음이 풀렸다고 고백하였다. "나는 네가 나의 생명을 미워할 줄로 생각했는데 너는 오늘 이를 귀중히 여겼도다!"

2. 사울은 다윗을 괴롭힌 것이 매우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였다. 사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법에 거슬린 일이었으며(" 내가 범죄 하였도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이익되지 못한 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도다")이었다고 하였다. 또 자기 친구를 원수로 생각하고 이를 쫓아다녔는데, 생각이 모자란 탓이었다고 하였다. "내가 너와 내 자신에게 대단히 잘못을 범하였다" 고 그는 말했다. 죄를 짓는 자들은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더우기 하나님의 백성들을 치는 악행을 저지른다(욥 19:28).

3. 사울은 다윗에게 다시 궁전으로 가자고 청하였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다윗과 같이 "지혜롭게 행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주위에 함께 있게 하는것이 그들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사울은 전처럼 다윗을 해하지 않겠고, 그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 하리라." 그런데 사울의 이런 개심이 참된 회개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Ⅱ. 사울의 회심을 알게 된 다윗은 그에게 더욱 정중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는 사울의 소년 하나가 와서 왕의 창을 가져 가도록 하였다(22절).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23절).

1. 다윗은 하나님께서 판단자가 되어 주실 것을 호소하였다.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라."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모든 인간의 참된 성품을 아시며,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 행한 대로 어김 없이 갚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여 주시기를 원했다. 여기서 다윗은 실제적으로는 자기에게 불의를 행하고 신실치 못한 사울을 거스르는 기도를 드렸다.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대로 갚으소서." 시 28:4).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그 자신을 위한 기도로 하였으며, 그 자신의 의와 신실함을 보고 자기를 보호하여 주실 것을 기원하였고, 사울은 자기를 악으로 보복하였으나 하나님은 자기를 선하게 보응하여 주시기를 기원하였다.

2. 다윗은 사울에게 다시 한 번 자기의 충성심을 보여 주었다. 다윗은 사울을 의미하면서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 하였음이니이다" 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부어 주신 기름이 그의 보호책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울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으니만큼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한다는 뜻도 있다. (만일 바울이 보통 인간이었다면 다윗은 그를 그처럼 선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 나가서 다윗은 자기도 역시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만큼 자기가 사울에 대하여 선대한 것처럼 사울 역시 자기의 생명을 선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었을 것이다.

3. 다윗은 사울의 약속을 크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의 보호에 맡기고 그의 은혜를 구하였다(24절). "왕은 내 생명을 가볍게 여기셨으나, 여호와는 내 생명을 중히 여기시리이다." 이처럼 다윗은 그가 사울에 대해 친절을 베풀었으니만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친절을 갚아 주시기를 원했다. "좋은 일을 하는 자는 그 보응을 받는다." 는 확신을 가질 만하다.

Ⅲ. 다윗의 성공을 사울이 예언하였다. 사울은 다윗을 위해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라고 축복하였다(25절). 사울은 이제 다윗의 정직함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자기의 군인들이 듣는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다윗을 칭찬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다. 드디어 사울은 다윗의 승리와 등극을 예언하였다. "네가 큰 일을 행하리라."

참된 선을 양심적으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참으로 큰 일을 행하게 된다. 사울은 계속해서 "네가 반드시 승리를 얻고 또 얻으리라" 고 덧붙여 말했다. 그것은 자신을 깎아 내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윗에게 있는 왕의 기질들 - 즉 사울을 살려준 관용, 아브넬이 잠잔 것을 질책하는 그의 장군으로서의 권위, 나라의 일을 위한 그의 세심한 관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여러 가지 표적들 - 을 볼 때 그에게 예언되어진 그대로 드디어 다윗이 왕조에 오르게 되리라는 것을 사울은 확신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좋은 치료제가 그 상처를 아물게 함으로써 그들은 다정하게 헤어질 수 있었다. 사울은 re infecta - 그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리고 그 자신이 취했던 추격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기브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와 함께 돌아가지 않았다. 한 번 실수를 저지르면 쉽사리 그 신용을 회복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다윗은 자기 길로 갔다." 그리고 여기서 헤어진 후 사울과 다윗이 다시 또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

 

26:22 없음.

 

26:23 없음.

 

26:24 없음.

 

26:25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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