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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사무엘의 죽음(사무엘 상 25:1)

여기에는 사무엘의 죽음과 장례에 관한 간단한 기사가 있다.

1. 비록 그는 위대한 인물이요, 여러 가지로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할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마는 그도 말년에는 은퇴의 생활을 가졌다. 그가 정년퇴직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그는 여전히 선지자의 학교를 경영할 수가 있었다. 19:20).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그들을 바르게 책망하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사무엘 자신이 한 동안 조용히 있으면서 하나님께 헌신의 생활을 하기를 원했으며,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만일 노인들이 쉬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2. 사무엘이 다윗과 친밀했고 그리고 그를 아꼈기 때문에, 사울이 그를 대단히 미워했지마는, 그러나 사울의 폭정 아래서도 사무엘은 편안히 죽을 수가 있었다. 사무엘은 때로 사울에 의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기도 했다(16:2). 비록 사울은 사무엘을 미워했지마는, 헤롯이 세례 요한을 무서워했듯이, 사울도 사무엘을 무서워했고, 싸울은 또 사무엘이 참 선지자인 것을 아는 모든 백성들이 두려웠다. 그리하여 사울은 사무엘을 해하지 않았다.

3.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곡 하였다. 그들은 그의 죽음으로 큰 손실을 맛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공로가 켰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당하여 그만큼 그를 애도하며,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으면서 그가 보여 준 봉사가 그를 더욱 존경하고 애도하게 하였을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그들의 학교의 설립자요, 우두머리였던 분을 잃게 되었다. 이제 그 학교가 미약하게 되었다는 것도 커다란 손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무엘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위해 중재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날마다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였다(12:33). 그의 죽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가졌던 가장 좋은 친구를 잃게 되었다. 그의 죽음이 이처럼 사울의 횡포가 더욱 심해지고, 그리고 다윗은 그의 나라에서 쫓겨나 있는 시점에 일어난 것인 만큼 그 손실이 매우 더하였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더 사무엘이 필요한 때였다. 그런데 그는 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을 거절하고 왕을 구했던 그들의 잘못이 생각나서 사무엘의 죽음을 더욱 심하게 애곡하였을 것이다.



(1) 자기들을 위해 충실히 일하던 사역자를 매마른 눈으로 장사지내는 사람이나,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여 주었으며, 자기들에 여호와의 길을 가르쳐 준 사람을 잃고도 안타까운 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돌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2)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친척이나 친구를 불러 가셨을 때,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우리가 그들에게 잘못했던 일들을 겸손히 생각하고 잘못을 뉘우칠 줄 알아야 한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을, 나욧에 있는 선지 학교에 장사지내지 않고, 그가 출생한 라마에 있는 그의 집(또는 아마 장지로 삼기 알맞는 동산)에 장사 지냈다.

5. 이에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갔다. 아마 사무엘의 죽음을 더욱 엄숙하게 애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는 그처럼 좋은 친구요 또 그를 잘 도와 주던(그리고 도와 주기를 바라던) 사람이 죽음으로 전보다 더 큰 위험에 빠질 것 같아서 이스라엘 경지를 벗어나서 광야로 몸을 피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 때 그는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였을 것이다" (시 120:5). 이 바란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방황하던 광야이다. 그 곳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봐 주신 사실을 기억나게 하는 곳이다. 다윗은 이제 이 광야에서 말할 수 없는 많은 용기를 스스로 북돋울 수 있을 것이다.

 

25:2

다윗이 나발에게 사람을 보냄(사무엘 상 25:2-11)

여기서부터 나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Ⅰ. 여기에 그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 볼 수 있는 간략한 기사(2,3절)가 있다. 그 사람은 다윗과의 관계가 없었다면 우리가 전혀 그 이름조차 들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다.

1. 그의 이름. 그의 이름은 나발이었다. 그 뜻은 "미련한 자" 이다. 그의 부모가 어찌해서 그런 이름을 붙여 주어서, 그의 인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나쁜 징조를 삼게 하였는지 이상하다. 그러나 우리 모든 인간들은 모두 그런 이름으로 일컬어질 만한 운명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며" (욥 11:12), 우리 마음이 "미련한 일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2. 그의 가족. 그는 갈렙 족속이었다(역주: 우리나라 성경에는 갈멜 족속이라고 되어 있는데 갈렙의 오식이라고 보여진다. 영어 성경이나 히브리어 성경에 갈렙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가짐은 전혀 갈렙과는 달랐다. 그는 갈렙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왜냐하면 마온과 갈멜은 갈렙에게 수여된 헤브론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수 15:54, 55; 14:14). 그러나 나발은 갈렙의 덕은 상속받지 못했다. 그는 집안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며, 자신에게도 명예가 되지 못했다. "타락한 자에게는 좋은 가문이 오히려 그를 더 욕되게 한다(Degeneranti geners opprobrium)."

70인역과 그 밖의 고대 역본들은 나발을 갈렙 족속이라고 하지 않고, 다만 완고하고, 심술궂고, 무뚝뚝하고, 언제나 호통만 치는 사람이라고만 하였다. 그는 "빈정거리는 사람(a;ndrwpoj kugiko,j)" 이었다.

3. 그의 재산. 그는 매우 큰 자, 다시 말해서 부자였다(왜냐하면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부요는 그 사람을 크게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만일 재산이 없었다면 그는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발에게 아주 흔한 축복인 재산의 축복을 주셨다. 그러나 지혜나 은혜의 축복은 주지 않으셨다.

4. 그이 아내. 아비가일은 이해력이 대단히 빠른 여자였다. 그 여자의 이름은 "아버지의 기쁨" 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여자를, 재물만을 좋아하고 지혜를 좋아하지 않는 그런 남편과 결혼시킴으로써 그 여자의 아버지는 그 여자에게서 어떤 기쁨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많은 자녀들을 세상의 재물이라는 쓰레기 더미에 던져지고 그것과 결혼시키며, 그리고 그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있다. 지혜가 재산의 상속을 받을 때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혜가 없는 재산 상속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비가일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나발과 같은 사람들에게 매여 있다. 그렇다면 아비가일에게 있던 것과 같은 이해력이 그들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5. 그의 인품. 그는 명예롭지도 못했으며, 정직하지도 못했다. 그는 심술궂고, 성을 잘 내며, 성미가 나쁘다는 면에서 명예롭지 못했으며, 그의 행사가 악하고, 매섭고 포악한 사람이기에 정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서는 사기와 폭력을 개의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상당한 재산을 긁어 모았다. 이러한 나발의 인품은 모든 인간을 잘 아시는 분이 그에게 준 것이었다.

Ⅱ. 다윗은 나발에게 자기와 또 자기의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식량을 보태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였다.

1. 다윗은 나발에게 신세를 질 만큼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다윗은 실제로 그의 문전에 동정을 구하러 사람을 보냈다. 이 세상의 재물이 나발과 같이 심술궂은 사람에게는 그처럼 풍부하고 다윗과 같은 성자에게는 그렇게 부족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가치를 도대체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전에도 다윗은 한 번 떡을 구걸하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구걸하였다. 그 사람에게는 누구나 빌어먹는다고 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발과 같은 사람에게 양식을 구걸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는 것은 다윗으로서는 마지 못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는 감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가 그로 하여금 이처럼 궁핍한 지경에 놓이게 하였을 때는 다윗이 구걸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윗이 말한 시편 37편 25절의 말씀도 기억하여야 한다.

2. 다윗은 적당한 때에 나발에게 심부름꾼을 보냈다. 그 때는 나발이 양의 털을 깎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고용했을 때였다. 그래서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으며 좋은 음식이 많이 장만되고 있었다. 만일 다윗이 다른 때에 사람을 보냈다면, 나발은 나누어 줄 것이 없다고 핑계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압살롬의 잔치의 경우와 같이(삼하 13:24), 양털을 깎는 때에는 보통 큰 잔치를 배설한다. 양털이 가나안 땅에서는 중요한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3. 다윗은 그의 사람들에게 나발에게 가서 정중한 인사를 먼저 드리고 나서 요구 사항을 이야기하도록 시켰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내가 그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너희를 보낸 것이라 말하고, 그와 그의 집안의 형편이 어떠한가 물으라" (5절). 다윗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면서(6절), "이같이 그 사는 자에게 말하라" 고 하였다. 우리의 성경 번역에는 그 말에 "부하게" 라는 말이 첨가되었다. 마치 나발과 같이 이 세상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사는 사람만이 정말로 사는 자인 모양으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다" (딤전 5:6).

내 생각에 그를 일컬어 "그 사는 자" 라고 한 것은 나발에게는 너무 지나친 찬사였다고 보인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것이 곧 생명이요, 세상적인 호의 가운데 있는 것이 생명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처럼 거친 대답을 받고 보니, 다윗은 그에게 지나치게 좋은 안부를 전했으며, 구더기 같은 자에게 너무 좋은 인사를 보낸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한 기원은 매우 칭찬받을 만하다. "너는 평강하라. 네 육신과 영혼이 모두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그리고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그에게 내가 그의 건강과 재물을 위해 빌고 있다고 전하라." 다윗은 그의 사람들에게 나발에게 가서 그의 "아들 다윗" 이라고 부르도록 명했다(8절). 그것은 곧 다윗이 나발의 연령으로 보나 그의 재산으로 보나, 그를 자기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그리하여 그로부터 아버지와 같은 친절을 기대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4. 다윗은 나발의 목자들에게 자기와 자기의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어 주었노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가는 말이 고왔으니 오는 말도 곱기를 구하였다. 다윗은 나발의 목자들에게 호소하였으며, 다윗의 군사들이 나발의 목자들 사이에 있을 때에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하여 주었다고 말했다.

(1) 다윗의 군사들은 그들의 나발의 목자들을 해하거나, 상하게 하거나, 소요를 끼치거나, 그들에게서 새끼 양 한 마리 빼앗은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의 성품으로 보아서, 그런 곤궁하고, 모든 것이 만족치 못하고, 식량이 부족한 진영 중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것을 조금도 약탈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간 세심하세 그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잘 다루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 그리고 다윗의 군사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도록 방비하여 주었다. 다윗은 이런 일을 직접 행하고서도 다만 암시 정도로만 말했다. 그가 자기의 선행을 자랑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라고만 말했다(7절). 그러나 다윗의 호소를 받은 나발의 사환들은 그 이상의 사실을 말했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라고 말했다(16절). "블레셋 사람들이 타작마당을 탈취하였을 때" (23:1), 그리고 양의 우리를 약탈하고자 하였을 때, 다윗의 군사들은 나발의 목자들을 보호하여 주었다. 그런 약탈의 손에서부터 나발의 양떼들은 다윗의 도움으로 안전히 지킬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고 말했다. 친절을 베푼 자가 친절을 되돌려 받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5. 다윗은 매우 겸손하게 요구하였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었다. 그러나 황실에 어울리는 진미를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 손에 있는 대로 우리에게 주면 감사하겠노라." 동냥을 원하는 자는 이것 저것 가려서 원할 수가 없다. 맨 먼저 대접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다만 남겨 주는 것에 대해서도 만족 하겠노라고 하였다.

그들은 잔칫날 즉" 좋은 날에 왔노라" 고 말했다. 그 날은 음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다른 때보다도 그 마음이 활짝 열려져 있기 때문에 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을 수 있는 날이었다.

다윗은 빚을 독촉하듯 그에게 요구하지 않았으며, 자기가 왕인 만큼 왕에게 조공을 바치라고도 하지 않았고, 또 장군으로서 기부금을 강요하듯 억지로 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윗은 그의 겸손한 사환임을 자처하며 그에게 친구로서의 온정을 베풀어 달라고 요구하였다.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의 말을 충실하게 그리고 멋지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음식물을 하나 가득 싣고 돌아 가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Ⅲ. 다윗의 정중한 요청에 대해 나발은 심술궂은 답변을 보냈다(10,11절). 누구나 나발이 그처럼 거칠게 그리고 마구잡이로 대답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윗은 스스로를 그의 "아들" 이라고 부르면서 나발에게 떡과 생선을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발은 그대신 돌과 전갈을 주었다. 나발은 다윗의 요구를 단지 거절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멸시하고 모욕하였다. 나발이 만일 다윗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가 봉변을 당한 아히멜렉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까봐 두려워서 다윗에게 물품들을 보내 줄 수가 없었다면, 그는 친절한 대답을 보냈어야 했을 것이며, 그 요구가 정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거절 역시 정중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발은 그와는 반대로, 욕심꾸러기들이 어떤 도움을 요구받았을 때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다른 한 또 다른 하나의 죄를 은폐하고자 했으며, 가난한 자를 모욕함으로 그들 스스로가 구제받기를 단념하도록 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정도로 조롱을 당하고 물러서시지 않으신다.

1. 나발은 다윗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경멸해서 말했다. 블레셋 사람들조차 다윗에 대해서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요, 만만을 죽인 사람이로다" 라고 말한 일이 있다(21:11). 하건마는 나발은 그의 이웃이나 그와 한 지파 사람들은 다윗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며, 더우기 어떤 공로가 있는 사람이거나, 훌륭한 사람인 것을 전혀 모르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나발은 나라를 위해 그처럼 공로를 크게 세운 다윗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좁은 마음이 그 신세를 갚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며, 모르는 척 했을 것이다. 나발은 다윗이 매우 비천하고, 보잘 것 없고, 존경할 필요가 없는 인물인 것처럼 말했다. 위대한 인물이나 공로자들이 이처럼 푸대접 받는 일이 흔히 있는 일로서 조금도 놀랄 것이 없다.

2. 나발은 다윗이 당하고 있는 현재의 재난을 두고 그를 비난하였으며, 그를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방랑객의 하나로 볼 것이지 특별히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는 듯이 대하였다. 그는 동냥을 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하는 심술궂고, 버릇없는 말투를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였다. "(그런 사람들이 전에는 전혀 없었던 것처럼) 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들이 많도다." 그의 이러한 말은 다윗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임을 시사하고 있다(그리고 "다윗은 그의 주인인 사울과 함께 있을 것이지 왜 나에게 먹을 것을 빌러 왔느냐" 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 또 다윗은 자기처럼 도망쳐 온 자들을 환영하고 숨겨 주는 자임을 나타낸다.

누구나 다윗과 같이 위대한 선인이 나발과 같이 심술궂은 사람에게 욕을 먹고 비난을 받는다는 말을 들을 때 피가 끓어 오를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는 법이다" (사 32:5-7).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궁핍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동정을 하고 도와 줄지언정 짓밟아 버리거나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윗이 이러한 고난에 처하게 된 것은 그가 나라를 위해 봉사한 것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명예 때문이지, 결코 자신의 어떤 잘못 때문이거나 자신의 경솔한 행동 때문이 아니다. 그렇건만 다윗은 방랑자와 도망자 취급을 받았다. 우리도 어떤 억울한 비난이나 허위 모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이를 참고 나갈 수 있는 법을 다윗에게서 배우자. 이 땅에서는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그런 대우를 받았다. 가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만물의 찌끼" 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전 4:13).

3. 나발은 자기의 상에 오른 음식물의 소유권을 무척 내세웠다. 그리하여 아무도 자기의 상에 끼이게 하지 않겠노라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물은 모든 사람들의 소유'이지만 -usus communis aguarum) 이것은 내 떡이요, 내 고기요, 내 물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양털 깎는 자들을 위해서 이것들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말하여 그는 이 모든 것이 자기 것임을 크게 자랑하였다. 누가 그것을 막을 수가 있겠는가? 누가 또 그런 그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에서 나발은 모든 것을 자기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다윗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자기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데 누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다만 청지기일 따름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만 사용하여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 그것들을 맡겨주신 분의 것들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재물이란 ta. avllo,tria 즉 "남의 것" 이다(눅 16:12). 우리는 재물이 우리의 것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25:3 없음.

 

25: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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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

그 소식을 들은 아비가일(사무엘 상 25:12-15)

Ⅰ. 다윗이 보낸 심부름꾼들에게 나발이 욕설을 퍼부었다는 소식이 다윗에게 전달 되었다(12절). "다윗의 소년들이 돌이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왔다." 그들은 나발의 심술궂은 말에 대해 아무 말 않고 갑자기 되돌아 서서 감으로 그들의 불쾌감을 나타내었다. 또 그들은 욕설에 대해서 욕설로 대항하거나 힘으로 그를 꺾어 버리려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윗에게 이야기하여 줌으로 다윗으로 하여금 그의 뜻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일처리를 잘 하였다. 그리스도의 종들도 그들이 이처럼 욕설을 들었을 때에는, 저 혼자서 실컷 떠들다가 자기 본색을 드러 내도록 내버려 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종은 그의 주인이 받은 욕설을 주인에게 그대로 전하기는 했어도 그 사람들에게 말대꾸하지는 않았다(눅 14:21).

Ⅱ. 다윗은 신속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하였다. 다윗은 칼을 차고, 4백 명이나 되는 자기의 부하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13절). 그 때 다윗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였는지는 21,22절에 나와 있다.

1. 다윗은 나발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것을 후회하였다. 그리고 그런 일은 헛된 일이었다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준 것은 실로 허사였다. 나는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어 나의 친구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은혜도 모르며, 좋은 보답을 더 이상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나의 선을 악으로 갚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보상을 받았을 때에도 우리가 이미 베푼 선에 대해 후회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에게 또 선을 베풀기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약하고 감사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친절하시다. 우리도 왜 그럴 수 없겠는가?

2. 다윗은 나발과 그리고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멸하기로 결심하였다(22절). 여기의 다윗은 그답지 않게 행동하였다. 다윗의 결심은 피로 물든 결심이었다. 그는 나발의 집이 모든 남자를 사내아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이겠다고 하였다. 그의 결심은 매우 감정적이었다. "한 남자라도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의 원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하였다[다윗은 나에게라고 말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말은 다윗보다는 사울의 입에 올라야 할 말이다(14:44). 그래서 다윗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그렇게 지각 없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처럼 오랫동안 고난의 생활을 통해서 인내를 배워야 했던 그가 그처럼 감정적일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비난의 말을 들을 때 귀먹은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던(시 38:13) 그 사람이며, 전날에는 자기의 목숨을 노리는 자의 생명을 살려 주었던 그 사람인가? 그런데 그 사람이 이제 와서는 단지 자기의 심부름꾼들을 모욕하였다고 하여서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남기지 않고 멸하고자 한단 말인가? 전날에는 냉정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취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는 몇 마디의 거친 말 때문에 그 사람의 온 가족의 피를 흘리게 하지 않고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주님이시여! 인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저들의 마음대로 내버려 두었을 때의 인간의 꼴은 어떤 것일까? 다윗은 사울로부터 해를 받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방비 대책을 세우고 몹시 경계하면서도 자신의 성품을 잘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윗이 나발로부터는 친절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로부터 모욕을 당한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다. 그는 아무런 경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이렇게 갑자기 예기치 않았던 공격을 당하자, 이처럼 혼란에 빠졌다. 우리는 다만 이렇게 기도하여야 한다. "주님이시여!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Ⅲ. 나발의 한 사환이 이 사실을 아비가일에게 말해 주었다. 그 사환은 다른 나머지 사환들보다 생각이 깊은 사환이었다(14절). 만일 이 사환이 나발에게, 그가 졸렬하게 위험을 자청했다고 말해 주었다면, 나발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오늘날 사환들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건방지고, 너무 아는 척하는구나!" 그리고 그를 자기 집에서 쫓아 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생각이 깊은 여자인지라, 비록 사환의 말일지라도 그의 말을 잘 듣고 심사숙고해 보았다.

1. 그 사환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나발의 목자들을 잘 대해 주었다고 하여 그들을 바르게 평가하였다(15,16절). "그들은 우리를 매우 선대 하였나이다. 그리고 자기들이 위험한 일을 당하면서도 의리를 지켜 주었고, 우리에게 담이 되었나이다." 선을 행하는 자들은 여러모로 칭찬할 점을 칭찬한다. 나발 자신은 다윗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했든지, 나발의 사환은 다윗이 명예를 알고 양심적인 인간이라고 증언하였다.

2. 그 사환은 나발이 다윗의 심부름꾼들을 거칠게 대해 준 것을 비난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인이 그들을 수욕하였나이다(14절).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가지고 그들에게 덤벼 들었나이다(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그는 본래 그런 사람입니다(17절). 그는 불량한 사람이며,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라 더불어 말하기가 곤란 하나이다. 그는 재빨리 분노를 터뜨렸읍니다." 아비가일 역시 나발이 그런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3. 그 사환은 아비가일이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다윗이 자기가 받은 모욕에 대해 극도로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다윗이 그의 사람들을 이리로 보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윗이 자기 주인과 자기를 포함해서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여주인이 그들 전체의 안전을 위해 어떤 대책을 강구하여 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다윗이 몰고 올 재난을 막을 힘도 없고, 사울이 와서 그들을 지켜 주기를 요청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러므로 다윗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어떤 대책이 필요하였다.

 

25:13 없음.

 

25:14 없음.

 

25:15 없음.

 

25:16

다윗을 만난 아비가일(사무엘 상 25:16-31)

여기서 우리는 아비가일이 그녀의 남편과 온 집안 식구들에게 밀어 닥쳐오던 재난을 막을 수 있었던 신중한 일 처리를 볼 수 있다. 그 여자는 자기의 구실을 놀라우리 만큼 잘 해냈다. 어리석은 자들이 잠깐 사이에 만들어 버린 틈을 지혜 있는 자들이, 그들의 모든 지혜를 다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걸려야 메울 수 있다. 아비가일이 그런 남편을 가진 것이 더 불쌍한 일인지, 나발이 그런 아내를 가진 것이 더 행복한 일인지 말하기가 곤란하다. "덕스러운 여인은 남편의 면류관이다."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한다." 이런 경우의 지혜는 전쟁시의 무기보다 낫다.

1. 아비가일은 급히 일을 서둘렀는데(18절), 이렇게 시각을 지체치 않은 것이 그 여자의 지혜로운 점이었다. 일이 위급할 때는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다. 만일 적군과 화친을 청하고자 하면, 적군이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야 한다(눅 14:32).

2. 그 여자가 직접 나서서 일을 처리하였다는 것도 그 여자의 지혜였다. 생각이 깊은 여자로서 아비가일은 자기 종들을 시키는 것보다 자기가 직접 나서는 것이 훨씬 일이 잘 되는 길임을 알고 있었다. 덕스러운 여인은 그녀 자신이 집안 사람들을 잘 보살필 줄 안다. 그리고 이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지 않는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잘못을 대신 사과 하여야만 했다. 나발은 다윗의 심부름꾼들과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다윗에 대해 이중으로 욕을 보여 주었다. 나발은 그들이 요구하는 식물은 주지 않고, 대신 그들을 약올리는 말을 주었다.

Ⅰ. 아비가일은 대단히 후한 선물을 마련함으로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였던 잘못을 속죄하려고 하였다. 만일 나발이 아무거나 손쉬운 것으로 주었다면 그들은 고맙다고 하며,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자기 집에서 소출되는 것 가운데서 최상의 것들을, 그리고 그것도 많은 분량을 가지고 가야만 했다(18절). 당시의 보통 큰 잔치에는 떡과 고기만이 아니라, 건포도와 무화과가 따라가야만 했다. 그것들은 말린 것들이었다. 나발은 물을 아끼고 주지 않았지마는 아비가일은 포도주 두 가죽 부대를 가지고 갔으며, 이런 음식물들을 나귀들에게 실리고, 소년들을 앞서 보냈다. "선물은 노를 쉬게 하기" 때문이다(잠 21:14). 야곱도 이런 식으로 해서 형에서의 마음을 돌이키었다.

"궤휼한 자의 그릇은 악할지라도,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이로 인하여 잃어 버리는 것은 없고, 오히려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사 32:7, 8). 아비가일이 (비록 그녀의 행동을 남편이 알게 될 때 이를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라도) 남편 몰래 이상의 모든 귀한 음식들을 다윗에게 가져다 준 것은 단지 불법이 아닐 뿐 아니라, 매우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그녀의 행동은 그녀 자신의 어떤 자랑이나 허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멸망당할 길 밖에 없었던 남편과 그의 가족들을 구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부부간에는 이 세상에 속한 제물에 대해서는 공동의 이해관계와 공동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편이 지나치게 낭비하거나 부당하게 허비하면 이는 다른 한편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

Ⅱ. 가장 정중한 태도와 아름다운 말로 아비가일은 나발이 그들에게 퍼부었던 모욕적인 언사를 속죄하였다. 아비가일은 대단히 격분해서 나발을 멸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달려오고 있는 다윗을 만났다(20절). 아비가일은 최대한으로 공손한 태도와 마음을 가지고 다윗에게 은혜 베풀어주기를 빌었으며, 나발의 죄를 묵과해 달라고 겸손히 요청하였다. 아비가일의 태도는 매우 유순하였다. "그녀는 다윗의 앞에 엎드렸으며(23절), 다윗의 발에 엎드렸다" (24절). 굴복은 아무리 큰 죄라도 용서하게 만든다. 그녀는 참회자와 간청자의 태도를 취하였으며, 그녀의 집안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종들과 다윗의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라도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줍시사고 겸손히 빌었다.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소서." 그녀는 그 이상 더 다윗이 주의해 줄 것과 참을성 있게 들어주기를 요청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말은 이미 다윗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다. 그녀의 말은 그 이상 더 좋은 말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였으며 감동적이었다. 모든 것이 제대로 진행되었으며, 적절히 표현되었고, 또 아주 적절히 그러면서도 애절하게 요청되었다. 그리하여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완벽한 화술에 의해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다.

1. 아비가일은 그처럼 위대한 인물에 대해 마땅한 존경을 돌릴 수 있는 말씨로 다윗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다윗이 누구냐?" 고 하였던 남편의 죄를 보상하기 위하여, 여러 번 다윗을 "내 주" 라고 불렀다. 다윗이 지나치게 감정에 사로잡힌 것에 대해서 그가 마땅히 비난 받을 만하지만, 아비가일은 이 문제에 대해 결코 다윗을 원망하지 아니하였다. 또 아비가일이 다윗의 극도로 악해진 성품에 대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비가일은 다만 다윗의 양심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할 줄로 믿고,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는 일에만 힘썼다.

2. 아비가일은 다윗의 사환들을 환대하지 못한 죄를 자기에게 물어달라고 하였다.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 돌리시기를 바랍니다(24절). 만일 당신이 화가 나셨다면 그 화를 내게 풀어 주십시오. 그것을 내 불쌍한 남편에게 돌리지 마시고, 그것을 당신의 여종의 죄과로 여겨주십시오" (28절). 좁고 옹색한 마음의 소유자들은 자기들의 허물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쏟지 않지만,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허물마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가 담당한다. 우리는 여기서 아비가일의 부부간의 사랑의 힘과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볼 수 있다. 나발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녀에게는 남편이었다.

3.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의 잘못은 성격적인 결함과 이해심의 부족에서 온 것이라고 변명하였다(25절). "내 주여 그의 요양 없는 말버릇과 거친 태도를 괘념하지 마소서. 그는 그런 사람이니이다. 그의 심술궂은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 옵나이다. 그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는 지혜가 부족하였을 따름이니이다. 그의 이름은 나발입니다(그 뜻은 바보라는 뜻이다). 그는 미련한 자입니다. 그가 악의가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다만 어리석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결코 악독한 사람은 아닙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는 그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였나이다." 그녀가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발의 잘못을 사과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의 멸망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어야 할 남편에 대해서 그렇게 그 성격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4. 아비가일은 이 일에 대해서 자기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내 주의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내가 보았다면 그들의 말에 응하였을 것이며,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아비가일은 비록 그녀의 남편이 어리석기는 하지마는, 아내의 말을 듣고 그 의견을 좇을 만큼은 현명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5. 아비가일은 아마 다윗의 얼굴 표정을 보고 그가 마음을 돌이켰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자기의 뜻이 관철되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수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다" 고 하였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마음을 달래는데 자기의 말재주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강하게 역사하여 다윗의 마음이 틀림없이 돌이키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그리고 나서 아비가일은 이렇게 말했다. "내 주의 원수들이 내 주를 해하려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다시 말해서, 내 주 자신이 나발에 대해 친히 복수하시지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내주를 대신하여 그에게 복수하실 것이며, 다른 모든 당신의 원수들에게는 그렇게 하실 것이니이다." 아니면 그녀의 말은 이런 뜻일 것이다. 즉 나발과 같이 연약하고 힘이 없는 자를 친히 복수한다는 것은 자신을 너무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나발은 그에게 친절을 베풀 줄 몰랐던 것같이 그를 해할 줄도 모르는 사람임을 알라고, 다른 다윗의 원수들도 나발과 같이 다윗에게 대항해서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이 되기만을 바라면 된다는 뜻일 것이다. 아마 아비가일은 전날 다윗이 사울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를 살려 준 일을 시사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을 집어 삼키려고 덤벼드는 사자를 당신 자신이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당신을 보고 짖는 개새끼의 피를 당신의 손으로 흘리시겠나이까?" 그 스스로가 피를 흘리겠느냐는 말이 확실히 다윗과 같은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크게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윗의 대답(33절)에서 그 말이 틀림없이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아비가일은 자기가 가지고 온 선물에 대해서는 부족의 뜻을 표하고, 그것들은 다윗에게 드리기는 부족한 것이므로 "내 주를 좇는 소년들에게 주게" 하여 달라고 요청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나발에게 왔으며 그래서 나발로부터 욕설을 들은 열 소년들에게 주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7. 아비가일은 다윗이 나라를 위해 원수들을 물리친 위대한 공적과 그가 성취한 위대한 영광을 극구 찬양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그가 개인적인 복수 때문에 그 영광이 손상되지 않기를 기원하였다. "내 주께서 블레셋을 물리치는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셨나이다. 그러므로 내 주는 주를 모욕하는 자들과의 싸움도 하나님께 맡길 것이니이다(28절).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내 주는 (그들이 비록 배반자가 되어 내 주를 괴롭혔다고 하여도) 이 나라 백성들은 아무도 해하지 아니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 주는 이제도 더욱 사울이 내 주께 대한 자기의 증오를 정당화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일이라도 행하지 않을 것이니이다."

8. 아비가일은 다윗의 현재의 고난이 영광스럽게 결말지어 지리라고 예언하였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좇아 내 주의 생명을 찾는 것이 사실이니이다(아비가일은 왕이라는 그의 신분을 생각해서 여기에 사울이라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내 주는 내 주를 모욕하는 자들을 노려보실 필요가 없나이다." 왜냐하면 지금 세차게 불어오는 폭풍우가 조만간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1) 아비가일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안전하게 보호 하시리라고 확신하였다.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니다." 즉 우리가 우리의 귀중한 것들을 잘 간직하듯 하나님께서 "내 주의 영을 살려 두시리라" 는 뜻이다(시 66:9 의 표현과 같이). 우리가 우리의 보배를 보배상자 속에 넣고 잘 간직하듯 "내 주의 생명은 생명의 보배함 속에 잘 간직될 것이니이다" (라고 갈대아역에는 읽을 수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의 보호로 인하여 살아남을 것이니이다."

"생명싸게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 안에 우리의 호흡과 우리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보호자로 보시고 있는 이들은 안전하고 평안하다. 유다인들은 이것이 "이 세상" 에서 뿐만 아니라, "장래의 세상" 에서도 역시 해당된다고 보기 때문에 그들의 묘비에 이런 말을 새겨 놓는다. "우리는 여기에 육신을 묻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영혼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여 있다는 것을 믿는다." 육체의 진토는 비록 흩어질망정 그 속에서 그의 영혼은 안전할 것이다.



(2) 아비가일은 하나님께서 다윗이 원수들과 싸워 이기게 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원수들의 생명을 여호와께서 "던지실 것이다" (29절). 돌이 물매 속에 싸이지만 그것은 곧 내던져진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알곡처럼 묶여져서 곳간 속에 들어가고, 악한 자의 영혼은 가라지처럼 불에 던져진다.

(3) 아비가일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부요와 권세를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리이다. 그리고 내 주의 원수가 감히 이를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이것은 다시 말하면 이런 말이다." 당신이 자비를 원하시듯 당신께서도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대하게 하실 것이니이다. 그리고 허물을 묵과하는 것이 곧 위인들의 영광이니이다."

9. 아비가일은 다윗으로 하여금 자기가 받은 모욕에 대해 이를 복수하기보다는 용서하여 주는 것이 얼마나 더 좋은 일인가를 생각하게끔 하였다(30,31절). 그녀는 매우 능력이 있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에 대해 말하듯이 맨 나중에 가서야 이 문제를 꺼낸다. 즉 그가 감정에 빠지지 않으면 않을 수록 그는 영안한 것이며, 그의 양심이 평안함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지혜로운 자들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바이다고 하였다.

(1) 아비가일은 다윗이 만일 스스로 복수를 하면 나중에 큰 슬픔에 빠지고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나중에 그런 일이 제발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일들을 잠시 격분한 사이에 많이 행한다. 복수의 단맛은 즉시 후회의 쓴맛으로 변한다.

(2) 아비가일은 다윗이 만일 그 허물을 그대로 묵과하면 나중에 그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며, 그의 지혜와 은혜가 일 처리를 잘하게 하였다는 만족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우리가 죄를 짓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나중에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책망할 그런 일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내 양심이 나를 꾸짖지 않는다" 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10.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자기를 기억하여 달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신 때에 원컨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주의 여종은 당신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도록 하여 드렸으며, 당신의 양심이 불안치 않도록 그리고 당신의 역사에 오점이 남지 아니 하도록 도와 드렸나이다." 우리는 우리를 죄에 빠지게 하지 않도록 도와 준 사람들을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기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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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일을 축복한 다윗(사무엘 상 25:32-35)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잠 25:12).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지혜로운 책망자가 되었으며, 다윗도 그 자신의 평소의 생각대로 그 책망을 듣는 청종하는 귀가 되었다(시 141: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나는 이를 은혜로 여긴다." 충고는 주는 자도 훌륭하고 듣는 자도 훌륭할 때 비로소 성과를 거둔다.

Ⅰ. 다윗은 그가 죄의 길에 빠지지 않도록 그에게 훌륭한 제동자를 보내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32절).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 할지로다."

1. 우리의 친구가 우리의 영혼이나 몸을 위해 어떤 친절을 베푼다면 우리는 이를 두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충고를 하며, 우리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하여 주고, 위로하며 또 알맞는 책망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람들임을 알아야 한다.

2. 우리는 우리를 죄짓는 길에서 막아 주시는 하나님의 고마우신 섭리를 늘 감사해야 한다.

Ⅱ. 다윗은 아비가일이 아주 알맞은 시기에 그의 일에 개입하여 그가 죄를 짓지 않도록 하여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였다.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33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는 책망을 참고 듣기만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책망을 감사함으로 받고, 그들을 칭찬하거나, 이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심히 적다. 아비가일이 자기 남편을 죽을 운명에서 구해 준 것을 기뻐한 것보다, 다윗은 그와 그의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아비가일이 이를 막아 준 것을 더 기뻐하였다.

Ⅲ. 다윗은 그가 처하고 있던 위험이 매우 컸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거기로부터 구출받게 된 자비를 더욱 고맙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1. 그는 그 죄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그는 피를 흘리게 할 뻔하였다. 그것은 그가 정상적인 마음으로 돌아올 때 크게 무서워하는 죄이다. "하나님이여 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시 51:14)라고 기도한 그의 기도가 그 사실을 증거하여 준다. 그는 "그 자신의 손으로 복수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자기 손으로 직접 복수하는 것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롬 12:19)고 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유린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 죄가 극악한 죄인 만큼 그런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 준 그 은혜도 그만큼 크다.

다윗은 아비가일과 같이 지혜롭고 훌륭한 여인을 해하는 것은 자기의 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셨다" (34절)고 하였다. 아니면 다윗은 그 여자를 보는 순간 그 여자를 해침으로 자기에게 나발이 반발하였던 복수를 하고자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우선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다윗은 감사를 돌렸다.

2. 다윗은 그 위험이 매우 다급 하였던 것으로 말했다.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치 아니 하였더면, 벌써 피의 복수는 시행 되었으리라." 죄를 거의 저지를 뻔하였더면 그런 죄에서 우리를 막아 준 그 은혜는 더욱 크다. 다윗은 "거의 실족할 뻔하였는데" (시 73:2), 거기 빠지지 않았다고 말한 바가 있다.

Ⅳ. 다윗은 아비가일을 평안히 돌아갈 수 있게 하여 주었다(35절). 다윗은 사실 아비가일의 권유로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였다. "내가 네 말을 듣고 당초 계획하였던 복수를 중단하였으며, 네 청을 허락하였다. 나는 너와 그리고 너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1.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은 비록 자기보다 훨씬 못한 사람의 말이며, 또 그들의 분노가 극도에 달했을 때에라도, 사리에 맞는 올바른 말이라면 그 말을 듣고, 그 말대로 자기를 조절할 줄 안다.

2. 맹세가 귀한 것이지만 우리를 죄짓게 할 수는 없다. 다윗은 나발을 반드시 죽이겠다고 맹세한 바가 있다. 그는 이미 맹세한 것 자체로 악을 행했다. 그러나 만일 그 맹세를 실행 하였다면 그는 더욱 악한 죄를 범할 뻔하였다.

3. 때로 지혜롭고 충실한 꾸지람은 이를 좋게 받아들일 때 기대한 것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양심을 지배하신다(잠 28: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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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4 없음.

 

25:35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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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아비가일의 결혼(사무엘 상 25:36-44)

우리는 이제 나발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이어서 아비가일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다.

Ⅰ. 나발의 장례식. 사도 유다는 "죽고 또 죽어" 두 번 죽는 사람에 대해 말한 일이 있다(유 12). 그러나 여기의 나발은 "세 번 죽는다." 비록 그가 다윗의 칼을 간신히 벗어나서, 죽음을 면하기는 했지마는 세 번 죽음을 맛보게 된다. 이것을 보아 악인의 생명이 보존된 것은 잠시 후에 그에게 더욱 엄한 하나님의 진노를 퍼붓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볼 수 있다.

1. "나발은 죽도록 대취하였다." (36절). 아비가일이 집에 와 보니, 나발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다가, 많은 음식을 배설하고 잔치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비가일이 어디 갔던 것도, 그리고 많은 음식물을 다윗에게 가져다 준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자기의 어리석음으로 원수로 만든 그 사람 때문에 자기의 죽음이 바로 문밖까지 왔었던 사실을 모르고 단지 마음이 즐거워서 떠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죄인들은 대개 그들이 대단히 위급한 지경에 있으며, 그들의 멸망이 그들의 문밖까지 당도하였을 때도 가장 안전할 줄로 알고 있을 때가 많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점들을 살펴보자.

(1) 나발이 그의 동료들을 접대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엄청난 사치를 부리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그의 손님들은 한갖 양털을 깎는 사람들이었을 터인데도, "그는 왕의 잔치와 같은" 호화롭기가 이를 데 없는 잔치를 배설하였다. 만일 나발이 자신의 재산의 양을 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엇 때문에 그 재산을 주셨는가를 알고 그것들을 가지고 선을 행하였다면 그처럼 풍성한 식탁도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대개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지 않거나 자선 사업에 인색한 사람일수록 헛된 기분이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낭비한다. 하나님과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는 단 한 푼어치를 내놓기도 아까와 하면서, "자기의 육신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주머니에서 금화를 아낌없이 꺼내 놓는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를 생각지 않고 먼저 자신의 열락부터 즐길 생각을 한다.

(2) 나발이 그의 동물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술을 퍼 마셨던가를 살펴보자. "그는 대취하였다." 그의 이름은 나발 곧 "어리석은 자" 였다. 그는 그의 풍족한 재산을 낭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을 짐승과 같이 만들지 않고는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것 이상 그 인간의 어리석음을 나타내 주는 표시가 없고, 그의 멸망이 확실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가 없다. 남을 동정할 줄 몰랐던 나발은 자기의 지나친 사치도 몰랐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이런 꼴을 보고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 주인의 나쁜 본을 본받아 조금도 나은 점이 없었을 것이다), 금시 집안의 엉망인 상태를 바르게 잡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무슨 일을 했으며, 다윗에게 어떻게 했고, 또 그가 다윗에게 행한 일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일이었던가를, 그리고 그가 얼마나 위험에 놓였던 것인가를 일체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발은 취해 있었기 때문에 아비가일이 하는 말을 제 정신을 가지고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술취한 자에게 아무리 좋은 충고를 준다고 해도 그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것" 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제 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2. 다시금 나발은 놀람으로 인해 그 마음이 죽었다(37절). 그 다음날 아침 나발이 약간 제정신이 들자, 그의 아내는 그가 얼마나 위험 했었는가를, 또 그의 어리석음 때문에 그의 가족들도 얼마나 위험했던가를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멸망을 막기 위해 자기가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자 "그의 마음이 죽어 그의 몸이 돌과 같이 굳어졌다." 어떤 사람은 다윗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상당히 많은 음식물을 가져다 주었다는 소식을 아비가일로부터 듣고 그의 가슴이 터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매우 위험하였던 지경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는 말을 듣자 놀라서 정신이 빠져 버리고 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실쭉해 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했고, 아내의 지혜 때문에 체면이 깎였다.

그는 많이 변했다. 그의 마음은 밤새 술로 인해 즐거웠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돌과 같이 무거워졌다. 이처럼 육체적인 쾌락은 덧 없는 것이며, 어리석은 자의 웃음도 쉬 사라진다. "그 연락의 끝장은 이 처럼 침울한 것이 되었다." 술취하는 자들은 그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때 슬픔에 빠진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자의 마음은 언제나 가볍다. 아비가일도 그의 지혜로운 설득으로 나발를 회개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충실한 충고가 그를 절망시켰다.

3. 드디어 나발은 정말 죽었다. "한 열흘 후에" 다시 말해서 나발은 상당한 기간 동안 고통을 겪고 나서,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었다" (38절). 그는 한 번도 머리를 가누지 못하고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은혜를 모르고 사는 자는 죽을 때에도 위로를 받지 못하며, 우리가 죄를 품은 채 죽어도 마찬가지다. 나발의 죽음에 대해 통곡하는 자가 없었다. 그는 통곡 소리도 듣지 못하며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다윗이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를 돌렸다(39절).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찬송을 드렸다.



(1)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손으로 나발을 죽이지 않게 하여 주신 것을 찬송하였다.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다윗은 나발이 그의 손에 의해 죽지 않고 저절로 죽은 것을 기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짓지 않도록 지켜 주신 모든 경우를 들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사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2)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나님 자신이 행하셨으며, 자기의 명예를 높여 주셨고, 자기를 모욕한 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로써 다윗의 세력은 다시 한 번 공고했졌고,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다윗은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 주시는 사람이라고 믿고 따를 수 있게 되었다.

(3) 다윗은 이로써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음을 감사하였다. 이제 그들은 어떤 위험을 당하고 해로움을 당할 처지에 놓인다고 하여도,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Ⅱ. 아비가일의 결혼. 다윗은 아비가일의 아름다운 인품과 그녀의 남다른 정중한 태도와 말솜씨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그녀가 과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를 자기 아내로 삼고자 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39절). 다윗은 그녀가 자기의 아내가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아비가일이 나발과 같은 남편 밑에서도 훌륭한 아내의 자질을 보여 주었으니 만큼 자기 아내가 되면 더욱 훌륭한 아내가 되리라는 것을 믿었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자기를 존경하며, 자기가 장차 왕위에 오르리라는 학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 보았다.

1. 다윗은 자기가 직접 가지 않고 자기의 대리인을 보내서 구혼하였다.

2. 아비가일은 그 청혼을 매우 정중하고 겸허한 태도로 받아들였다(41절). 그녀는 도저히 자기는 그런 명예를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아비가일은 다른 종들의 발을 씻어주는 한 여종이 되겠노라고 하였다. 이렇게 그녀는 다윗을 존경하면서 겸손히 그 요청을 수락하였다. 스스로 겸손할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높이 들리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3. 그 요청을 수락한 아비가일은 자기의 신분에 알맞는 종자들을 데리고 다윗의 사자들을 따라 갔으며, 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 (42절). 아비가일은 다윗이 현재 고난 중에 있다고 하면서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또 다윗이 자기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를 따져서 묻지도 않았다. 오직 그의 말을 귀중히 여겼다.

(1) 왜냐하면 아비가일은 다윗이 매우 선한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2) 또 아비가일은 다윗이 조만간에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비가일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음 가운데서 다윗과 결혼하였다. 다윗에게는 지금 자기를 안주시킬 집이 없지만, 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실현될 것을 믿고 그와 결혼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금은 그와 더불어 고난을 당하지만 종래에는 그와 더불어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윗의 아내들에 관한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1. 하나는 미갈에 관한 기사이다. 아비가일과 결혼하기 전에 다윗은 사울의 딸이며, 그의 첫 아내였고 젊었을 때의 아내였던 미갈을 잃었다. 만일 미갈이 다윗을 여전히 사랑하였다면 다윗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을 불쾌하게 여긴다는 표시로, 그리고 자기와 다윗이 이제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미갈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냈다(44절).

2. 또 하나는 미갈 외에 또 결혼한 아내에 관한 기록이다(43절). 그 여자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보아서(27:3) 그 여자가 아비가일보다 먼저 다윗과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그 당시의 부패한 관습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메시야 초림 이후의 시대에는 더욱 그래서는 안 되며, 종교개혁 이후의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마 19:4, 5) . 아마 사울이 다윗의 유일한 정당한 아내를 속여서 빼앗은 것이 그로 하여금 불법의 길에 들어서게 만들었을 것이다. 부부간의 애정의 매듭이란 한 번 풀어지면 다시 튼튼하게 매기가 어렵다. 다윗으로 하여금 첫 번째의 아내를 지킬 수 없었다는 생각이, 두 번째 아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그것을 구실삼아 우리도 그대로 따른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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