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사무엘 상 18:1-5)
다윗은 사울의 머리에 있는 왕관을 이어받도록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 왕관은 요나단이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본다.
Ⅰ. 현재 왕관을 소유하고 있는 사울은 다윗을 신임하고 그를 발탁하여 궁전에 머물게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데 다윗에게 장래의 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울은 다윗을 데리고 자기 궁전으로 갔으며 다시는 그를 자기 집으로 돌아 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2절). 그리고 다윗은 군인들과 함께 싸우러 나갈 때마다 그들보다 훨씬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리하여 "사울은 그로 군대의 장으로 삼았다" (5절). 그러나 군대의 장관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왜냐하면 아브넬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시위대의 대장으로 삼았을 것이다. 또 우리는 사울이 다윗의 큰 공로에 보답하기 위해 장관과 같은 높은 지위를 주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울은 다윗에게 국사를 맡겼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용기 있는 자처럼 자기의 의무를 다하였다.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자신이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윗이 전에는 자기 아버지 이새의 충실한 아들이었는데, 지금은 그의 주인 사울의 충실한 종이 되었다. 어느 하나에 잘하면 또 다른 하나에게도 잘 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Ⅱ. 왕위의 계승자였던 요나단은 다윗과 친교를 맺었다. 그것은 경쟁자가 친구가 되게함으로 다윗의 길을 밝히 드러내 보여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꾸며 놓으신 일이다.
1. 요나단은 다윗에 대해 특별한 친절과 애정을 느꼈다(1절).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쳤을 때" 요나단은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가 전쟁 전에(34,37절) 사울을 만났던 때 인지 혹은 전쟁 후에(58절) 만났을 때의 일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다만 나중의 경우는 성서의 기록보다는 훨씬 더 많은 말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에 모두 다윗은 매우 신중하고 겸손하며 그리고 경건하게 말했으며, 또 매우 용감하면서도 감미롭게 이야기하였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더우기 그가 배운 것도 없고 생김새도 도무지 그런 말을 할 것 같지 않은데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할 때 듣는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요나단의 마음이" 즉시로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었다."요나단도 전에 다윗이 오늘날 블레셋의 거인을 쳐부셨던 것과 같은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블레셋 군대를 공격하였던 일이 있다. 그리하여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똑 같은 마음과 기질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마치 두 몸이면서도 한 마음인 것처럼 그렇게 쉽게, 빨리 그리고 그렇게 가깝게 마음과 마음이 연락될 수 있었다. 요나단이야말로 다윗을 가장 싫어 하여야 할 사람이었다. 그의 차지가 될 왕관을 넘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도 다윗을 가장 아끼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로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그의 마음의 연합이 어떤 세속적인 것 때문에 갈라지는 일이 없다. 위대한 생각이 다른 하찮은 것들을 모두 극복하게 만들어 준다.
2. 요나단은 여러가지 좋은 선물들을 다윗에게 줌으로 자기의 사랑을 밝혀 주었다(4절). 요나단은, 그처럼 위대한 정신이 거기에 상당한 훌륭한 육체에 깃들어 있기는 해도, 그것들을 감싼 옷이 매우 보기가 너절한 목동의 옷이란 것을 보고 매우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조정 신하의 옷을 입혀 주기 위해 자기의 겉옷를 주었고, 군인의 옷차림을 위해서는 막대기와 물매대신, 자기의 칼과 활을 그리고 목자의 주머니 대신에는 자기의 허리띠 또는 어깨띠를 주었다. 그리고 마치 요나단 자신이 입은 것 모양으로 모든 것이 꼭 맞았기 때문에 그 선물은 퍽 어울리는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기록으로 보면 요나단이 다윗에게 주기 위해 자기 옷을 벗어서 주고 자기 자신은 벌거벗은 것 같다. 사울의 옷은 다윗에게 맞지 않았다. 그러나 요나단의 것은 맞았다. 그들의 몸의 크기가 같았고 그만큼 그들의 마음도 같았다고 볼 수 있다.사울이 다윗에게 영광의 표시로서 그에게 무장을 입혀 주었을 때는 그것들을 벗어 버렸다. 왜냐하면 처음 입어보는 것이라 거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가 왕자와 그리고 군인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마당에서는 그것들을 입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다윗이 요나단의 옷을 입었다. 다윗에게서 우리는 제2의 요나단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도 자기의 옷을 벗어서 우리를 입히시고, 우리를 부하게 하시기 위해 자신을 가난하게 하신 그러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아니 우리 주님은 요나단보다 훨씬 더한 일을 하셨다. 요나단은 다윗의 옷을 입지 않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가 입었던 누더기를 입으셨다.
3. 요나단은 이 우정을 영속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들은 처음 보자마자 대단히 만족함을 느끼고 서로 언약을 맺었다(3절). 그들의 사랑은 매우 진실하였다. 진실한 마음은 서로를 믿는다. 참다운 사랑 항상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를 그의 마음 충심으로부터 사랑하는 자는 그와 영원한 계약을 맺기를 원하여 야 한다.Ⅲ. 궁중에서 그리고 온 나라에서 모두가 다윗을 축복하였다. 서로가 다 좋아 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윗은"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놀랍게도)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다" (5절). 백성들은 마음으로 부터 그를 사랑하였다. 사울의 신하들은 그들 자신이 부끄러워서라도 다윗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과 함께 하였다는 증거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에게 갑자기 쏟아지는 존경과 명예를 겸손하게 잘 받아낼 수 있었다. 그처럼 빨리 올라가는 자는 머리를 잘 쓰고, 마음도 잘 써야 한다. 내려가기 보다는 올라가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악신에 잡혀 다윗을 미워하게 된 사울(사무엘 상 18:6-11)
이제부터 다윗의 어려움이 시작된다. 이런 일은 그의 승리의 꼬리를 물고 일어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승리 때문에 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것은 위대한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곧잘 볼 수 있는 허무함이다.
Ⅰ. 다윗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나치게 존대함을 받았다. 싸움이 승리로 끝나자, 얼마 있다가 사울은 다윗을 옆에 세우고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돌아다니며 개선식을 거행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의 축하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사울이 개선식을 베풀면 많은 여자들이 나와서 춤을 추며 노래 하면서 경의를 표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시인이든지 혹은 다른 사람이 지은 그 노래의 가사는 다윗의 용감함을 극구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울의 면전에서 그처럼 다윗을 높이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것은 못되었다. 그 에서도 제일 문제점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라고 한 점에 있었다. 그러한 수의 차이는 모세가 에브라임과 므낫세 사이에 말한 일이 있다(신 33:17).
Ⅱ. 이것이 크게 사울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고 다윗을 시기하게 만들었다(8,9절). 사울은그들이 단지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으며, 결코 사울이 전에 세운 공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여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거행되고 있는 이 개선식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따라서 그 날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인 사실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알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을 높이 찬양했던 것이다. 그 가사를 지은 사람은 단지 시적인 표현만을 생각한 것이지 결코 사울과 다윗을 비교하여 사울의 비위를 건드리자고 하였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쓴다는 것은 왕의 마음가짐으로 서는 합당한 것이 못 되었다.
그러나 사울은 화를 냈고 그 밑바탕에는 어떤 모반의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그후로 사울은 다윗을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해할 길을 찾았다(9절). 사울은 이제 전처럼 다윗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을 칭찬하는 말을 참을 수 없다. 그리고 전에 자기 자신이 칭찬해 주었던 것조차 모조리 잊어 버렸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위 사람들에 대해 심술을 부리고 모욕적인 언사를 쓰고, 의심이 많고 억지를 부린다면 그리고 또 그 태도가 못되었다면 그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는 표시이다. 왜냐하면 위에서부터 오는 지혜는 우리를 그것들과는 정반대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Ⅲ. 사울은 진노에 못이겨 다윗을 죽이려고 시도하였다(10,11절). "질투와 시기는 인간을 격노하게 한다." 그것은 사울로 하여금 다윗에 대해 난폭하게 만들었으며 미치게 만들었다.
1. 그의 광기가 다시 발작하였다. 사울이 다윗에 대해 악의를 품었던 바로 그 다음 날, 전에 그를 사로 잡았던 일이 있었던 하나님의 부리신 악령이 다시금 사울에게 임했다. 다른 사람을 시기하거나 무자비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사탄이 들어 올 자리를 마련해 주며," 그보다 더한 다른 일곱 악령이 다시 들어 올 자리를 마련해 준다. 시기가 있는 곳에 혼란이 있다.사울은 종교적인 황홀경에 돌입한 것과 같은 모양을 꾸몄다. 그는 집 가운데서 예언하였다(역주:우리 성경에는 "야료하였다" 고 되어 있지만 KJV에서는 Prophesied 즉 "예언하였다" 로 되어 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주석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말하자면 사울이 경계심을 풀고 아무런 호위 없이 사울 앞으로 나오므로 그를 쉽사리 죽일 수 있도록 유인하기 위해 예언자의 거행을 꾸민 것이다. 그리고 또 아마 다윗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충동에 의한 것이며, 그에게 충만히 부어진 예언의 영에 의한 것이라고 돌려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흉악한 격노가 그를 그렇게 행동하게 하였다.
2. 다윗은 비록 지위가 높아졌지만 주인을 위해 수금을 타는 일을 기피하지 않았다. "다윗은 다른 때와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탔다." 높은 자라도 그들이 낮았을 때의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3. 사울은 다윗을 죽일 기회를 찾았다. 미친 사람의 손에 칼이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더우기 악의가 가득찬 사울과 같은 미친 사람에게 칼이 들려 졌다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사울의 손에는 창이 있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그것을 던졌다. 그것은 갑작스런 행동이 아니라 계획적인 행동이었다.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라고 할 만큼 사울은 맹렬한 힘으로 창을 던졌다. 다윗이 그의 원수들에 대하여 한탄한 것과 같이 그는 다윗을 "심히 미워하였다." (시 25:19). 악독의 희생이 되기에는 다윗의 생명이 너무 귀하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사울은 비록 다윗이 나라를 위해 세운 지난 날의 공적을 잊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지금 자기를 그처럼 어려운 지경에서 구해 주기 위해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라도 그 격노를 진정시켰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선보다는 악을 행하게 하는 악령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울을 돕기 위해 수금을 손에 들고 있는 다윗과, 다윗을 죽이기 위해 창을 손에 들고 있는 사울을 비교하여 보라. 그리고 핍박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온유함과 유익함과 저들을 핍박하는 핍박자들의 야만적이고 야수적인 모습을 보라.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는 그의 생명을 찾는다" (잠 29:10).
4. 다행히 다윗은 사울의 강타를 두 번 피했다(다시 말하면 한 번은 이번이고 또 한 번은 나중이다. 19:10). 다윗은 창을 잡아서 다시 사울에게 던지지 않고 단지 피하기만 했다. 사울과 싸우지 않고 단지 자기 목숨만 보존하기 위해 도망쳤다. 다윗은 비록 힘도 있거니와 용기도 있고 또 자기에게 가해지는 해독에 대해 정당하게 반항하고 복수했다는 명분도 있었지마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서 피해서 달아났다. 다윗은 틀림없이 창을 들고 있는 사울의 손을 주목해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골리앗을 향해 달려 나갔던 것처럼 창으로 부터 피해서 달아났다. 그의 안전은 그의 종을 악독한 자의 칼에서 부터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처럼 간신히 대할 수 있는 것을 통해서 그에게 어떤 특별한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다윗과 사울의 딸과의 약혼(사무엘 상 18:12-30)
사울은 이제 공공연히 다윗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것과 같다. 그가 다윗을 겨냥해서 창을 던진 것은 그의 증오를 밝히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의 적의가 어떻게 계속 되었으며, 다윗은 그 공격을 어떻게 받게 되었는가를 볼 수 있다.
Ⅰ. 사울은 다윗에 대한 그의 악의를 다음과 같이 나타내었다.
1.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였다" (12절). 아마 사울은 다윗이 왕관을 빼앗으려고 자기를 해하려 하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는 모양을 꾸몄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이 자기들을 해하려고 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윗이 피해서 달아난 것은(11절), 그에게 그런 생각이 도무지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었다. 하여간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 했듯이 사울은 정말로 다윗을 두려워하였다(막 6:20).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와는 함께 하시지는 않지마는 다윗과는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다윗을 두려워하였다.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며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 "다윗이 지혜롭게 행하면" 할수록" 사울은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였다" (15,29절). 사람들은 허세나 위협이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만 어시석은 자들만이 두려워한다. 지혜로운 자와 선인들은 이를 무시한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자들로부터 두려움이 되고, 사랑할 자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우리 자신이 지혜롭고 행할 때" 가능하다. 지혜는 그 얼굴이 빛나게 하고, 존경을 받게 한다.
2. 사울은 다윗을 궁궐에서 떠나 백성들 사이에 거하게 하였다(13절).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삼았다. 사울이 그를 보기가 싫어서 자기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보내기 위한 조처였다. 그리고 또 다윗이 백성들의 신임을 잃게 될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울의 이 계략도 좋지 못한 계략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백성들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다. 다윗이 "자기들 앞에 출입하매" 백성들은 그를 "사랑하였다" (16절). 말하자면 다윗은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도 군사의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잘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얻었다.3. 사울은 다윗을 선동하여 블레셋과의 모든 싸움을 도맡아 싸우게 하였다. (17절). 이 일을 맡기면서 사울은 다윗에게 그것이 ("나를 위하여" 라는 말로) 왕과 그리고 ("여호와의 싸움" 이란 말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또 동시에 다윗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임을 암시하여 주었다. 다시 말해서 사울이 다윗에게 자기의 맏딸을 아내로 주기로 마음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사울이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주기로 한 보상의 약속 때문에(17:25) 이미 골리앗을 죽임으로써 다윗이 따놓은 상급이었다. 그러나 매우 신중하고 겸손한 다윗은 그 약속의 이행을 요구하고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다시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이를 통해서 다윗에게 어떤 해가 미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이런 말을 했다.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개 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이 조만간 다윗을 죽여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그런 기대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4. 사울은 다윗에게 주기로 약속하였던 자기의 딸을 그에게 줄 시기가 되어 그 약속을 깨고, 그 딸을 다른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는데, 이는 다윗으로 하여금 불평하고 불만하여 폭동을 일으키도록 꾸민 것이다(19절). 이것은 사울이 다윗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모욕이다. 그리고 그의 명예와 아울러 사랑까지를 건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다윗이 반드시 분히 여겨서 욕을 하든지, 혹은 말이나 행동으로 반항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법에 따라 다윗을 얽어 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악인들은 악독을 찾는다.
5. 위의 방법으로도 실패하자, 사울은(다윗을 은밀히 사랑한 것으로 보이는 -20절) 그의 다른 딸을 다윗에게 주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에게 올무가 되게" (21절) 하고자 하는 계략이 있었기 때문에 주었다.
(1) 아마 사울이 자기의 딸이 다윗과 결혼을 한 후에도 남편보다는 아버지를 위해서 다윗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 하였던 것 같다.
(2) 하여간 사울이 원하였던 결혼의 조건은 능히 다윗을 멸망시킬 만한 것이었다(블레셋을 멸망시키고자 하는 자신의 열심을 나타내보일겸 해서). 사울은 결혼의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 백 명을 죽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다윗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을 죽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들의 양피를 베어오라고 하였다. 이것은 할례를 증오하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모욕하는 행동이다. 따라서 이런 일을 행하는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큰 분노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반드시 보복하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사울의 생각은 블레셋 사람들은 해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기 보다는 다윗을 위험한 곳에 보내고자 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었기 때문이다(25절).
[1] 악인들이 얼마나 그들 자신들을 잘 속이는가를 보라. 악신이 그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지 않는 한, 사울의 양심은 감히 다윗의 생명을 그 자신의 손으로 해하지는 못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그처럼 무죄하고 훌륭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무서운 일임을 깨닫게 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 앞에 위험할 일을 하게 하는것은 그 속에 어떤 악독함("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하는 악독함)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악독한 계획은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의 살인이다.
[2] 악인들은 얼마나 세상을 잘 속이는가를 보라. 사울은 다윗을 죽이는가를 꾀하여, 이를 실천에 옮기면서도 겉으로는 다윗을 특별히 천천히 대해 주었다. 속으로는 가장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네가 내 사위가
되리라" 고 말했다(21절). 다윗이 그의 원수에 대해서 그들의 말이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라" 고 말했을 때(시 55:21) 이 경우를 생각하고 한 말일 것이다. 사울이 그의 딸 미갈과 다윗이 결혼하도록 교섭하면서 신하들을 통해서 이 일을 추진한 것은(22절), 아마 그가 그의 큰 딸을 두고 다윗을 속였던 일(19절) 때문이든지 혹은 그 결혼 조건이 너무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다윗이 이를 거절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Ⅰ. 사울의 퍼붓는 증오의 물결이 그처럼 사납게 달려들 때 다윗이 어떻게 처신했는가를 보라.
1. 다윗은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였다" (14절). 다윗은 자기에 대한 사울의 시기와 질투를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행동과 말이 조금도 그를 거스르게 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였으며, 빈틈없이 하고자 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부과되는 어려운 과업에 대해서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으며 또 결코 어떤 무리의 두목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일이 맡겨지든지 성심성의를 다해서 왕과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서 애썼다.그리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사"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성공하도록 하여 주셨다. 그것 때문에 사울이 악한 생각을 품게 되었지마는,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 이 부분과 시편 101편 2절을 비교하여 보자. 거기서 다윗은 "내가 지혜롭게 행하리이다" 라고 약속하였는데, 그 약속이 여기서 그대로 시행되었다. 그리고 "주께서 언제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라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여기에 그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아무리 눈이 먼 행운이 어리석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게 처신하는 자를 축복하신다.
2.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라는 제안을 두 번씩이나 받았는데 그때마다 겸손하게 받아 들였다. 사울이 그의 맏딸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겠다고 하였을 때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18절). "내가 누구이며 내 아비의 집이 무엇입니까? "또 사울의 신하들이 와서 사울의 작은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한다는 말을 전했을 때에도, 다윗은 전에 큰 딸을 주겠다고 약속 하였다가도 그 딸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그런 모욕을 기억하지 않고 여전히 같은 마음을 품고 이렇게 말했다(23절).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다." 다윗은 미갈이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의 허락을 받기까지는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를 알아보자.(1)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된다" 는 것은굉장히 영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울 왕이 자기처럼 미미한 출신이며, 갑자기 출세한 왕이고, 또 별로 일을 잘하는 왕이 아니었지마는, 그가 기름부음 받은 왕이기에 그와 그의 왕실에 대해 최고의 존경을 표시하였다. 신앙은 우리에게 거치른 행동과 무례한 행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마땅히 존경할 자들을 존경해야 한다."
(2) 그는 자신에 대하여 "내가 누구인가"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 말은 결코 비열하고 아첨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가 자기의 명예를 높여야 했을 때는 이를 서슴없이 나타냈던 일이 있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또 (비록 푸른 풀 밑에 숨어 있는 뱀을 두려워하여야 할 까닭이 있기는 하지마는) 사울에 대한 질투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오직 그의 참된 겸손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누구이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다." 다윗은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높이 볼 만한 이유가 많이 있었다. 그는 매우 유서가 깊고 명예가 있는 유다지파 출신이며, 훌륭한 정치가요 군인이었다. 그는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고, 미갈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내가 누구이며, 내 생명이 무엇이냐" 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리 높게 하셔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낮게 생각하여야 한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질 것이다." 다윗이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그처럼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다면 (율법이 아니라 복음으로), 왕의 왕이신 분의 아들이 되는 것을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는가를 보라! 우리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영광을 입게 되었는가?
3. 다윗이 사울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일백 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되었을 때, 다윗은 그 조건에 동의하였다(26절). 그 조건에 대해 "다윗이 좋게 여겼다." 그리하여 기한이 되기 전에 그 요구의 갑절을 채워 2백명의 블레셋 사라들을 죽였다(27절).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건마는) 다윗은 사울이 그를 해하고자 그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전혀 의심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이 그의 명예를 높여 주기 위해 그 일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는 듯이 기쁘게 그 수임을 감당하였고, 용감한 군인으로 활약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점을 다윗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1) 그는 하나님의 보호를 확실히 믿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일을 감당하려면 많은 위험을 겪어야 하겠지마는 사울이 바라는 대로 그렇게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었다.
(2) 국가의 이익을 위한 그의 열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은 그의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그가 기피하지 않은 일이다.
(3) 그는 명예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러한 명예를 받을 만한 자에게 주어졌을 때 빛나는 것이었다. 그는 왕의 사위가 될 만한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때에 그런 명예가 주어지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는 그만한 일을 하기까지는 그런 명예를 받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4. 결혼 후에도 다윗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위한 봉사를 훌륭하게 하였다. 블레셋의 방백들이 또 다시 싸움을 걸어올 때마다, 다윗은 그들을 잘 대항해서 싸웠으며,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였다" (30절). 율법에 의하면 결혼한 사람은 일년 동안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신 24:5). 그러나 나라를 극진히 사랑하는 그의 열심이 그런 혜택을 무시하게 하였다. 승진을 하려고 애쓰는 동안에는 매우 열심이었던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그런 승진을 얻고, 목적이 성취된 뒤에는 대개 전과 같지 않은데, 다윗은 전보다 더 열심이었다.
Ⅱ. 하나님께서 다윗을 해하고자 하는 사울의 모략에서 그를 어떻게 구해 주시었는가 살펴보자.
1. 사울은 올무가 되게 하고자 그의 딸을 다윗에게 주었는데, 오히려 다윗에게 커다란 친절을 베푸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다윗이 사울과 함께 살륙을 당한 뒤에(31:2), 사울의 뒤를 이을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여 주었다.2. 사울은 그를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함으로 그를 없앨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고 하였지마는, 오히려 그것은 다윗에게 백성들의 신망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그가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대항해서 싸우면 싸울수록, 백성들은 다윗을 사랑하였으며," 그의 이름이 더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30절). 그리하여 그의 왕관으로의 길은 그만큼 용이한 것이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진노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매, 그것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선한 섭리에 봉사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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