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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아말렉을 진멸하되 아각을 살림(사무엘 상 15:1-9)

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울에게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라고 엄중히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는 사울이 순종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의 구체적인 사건을 가지고 그를 시험하고자 한다고 명백히 가르쳐 주었다(1절). 이처럼 그의 순종을 시험하고자 한다는 것을 밝혔으니 만큼 그의 불순종의 죄는 더욱 큰 것이 되었다.

1.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다." 하나님은 왕에게 왕의 권세를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왕이 하나님을 위해 그 권세를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왕을 영광스럽게 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왕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드릴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그대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왕은 이스라엘의 분쟁들을 해결하고 질서를 지켜 나가야 한다. 왕은 이스라엘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왕도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속한 자며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고 하여서 그가 하나님께 대해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한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이런 명령을 사울에게 전해줄 만한 사람이다.

2. 사무엘은 사울에게 일반적인 면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그에게 내리시든지 그는 꼭 순종하여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 순종하여야 할 강력한 의무를 우리에게 부과시켜 주신다. 우리는 마땅히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시 116:12).

Ⅱ. 사무엘은 사울에게 지금까지 그가 행한 어떤 것보다도 더욱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지적하였다. 사무엘은 그 명령의 권위를 더욱 높이기 위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는 전제를 달았다. 사무엘은 또 그 명령의 엄중함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을 내가 기억하는가" (2절)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셨을 때 아말렉 사람들이 그들을 해하였기 때문에 아말렉과 싸우신 일이 있다. 그 싸움의 이야기는 출애굽기 17장 8절 이하에 있고 그들의 죄에 대한 책망은 신명기 25장 18절에 있다. 그들은 비열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때 하나님은 아말렉과 대대로 싸울 것이며, 아말렉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셨다.

이러한 일이 이제 사울에게 부과되었다(3절). "가서 아말렉을 치라. 이제 이스라엘은 강하여졌고, 아말렉의 불의도 극도에 이르렀다. 이제 가서 그 저주받은 백성을 일소하라."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남녀와 소아와 젖먹이" 를 죽이되 동정을 해서 남기지 말고, "우양과 약대와 나귀" 를 진멸하되 욕심 때문에 한 마리라도 남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분명한 명령을 받았다.

1.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특히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그들에게 해를 끼친 자들은 조만간에 분명히 그 일이 계산되었다.

2. 하나님은 멸망시키고자 한 자에 대해서도 오래 기다리신 일이 있다. 그 선포가 즉시 시행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3. 그러나 그 시행이 늦어지기는 하되 아주 지연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 대항해서 싸운 일에 대한 보복의 날은 드디어 온다. 하나님의 정의는 서서히 작용하시지만 틀림없이 작용하신다.

4. 심판이 늦어지면, 그만큼 그 심판은 가혹하다.

5. 하나님은 그의 일을 시행할 가장 좋은 도구를 선택하신다. 이 일은 피를 보아야 하는 처절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울은 그 일을 하여야만 하는 거칠고 지독한 사람이었다.

Ⅲ. 사울은 여기에서 그의 군대를 소집하고 아말렉 땅을 습격하였다. 사울이 전쟁터로 이끌고 간 군사의 수는 보병이 20만 명이라는 거대한 숫자였다(4절). 그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며, 그 승리가 모험에 가까왔을 때 그를 따랐던 군사의 수는 6백명에 불과하였다(13:15).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말렉과 싸우기 때문에 그 승리가 확실할 때는 수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몰라도 이번 경우에는 유다 지파에게는 퍽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전체 모인 수의 20분의 1인 1만명이라는 극히 적은 수밖에 모이지 못했다. 한편(레위 지파는 제하고) 다른 열 지파에서는 20만명이 모였다. 유다 지파의 영광의 날은 가까이 왔다. 그러나 아직 이르지 못했다. 사울은 군사의 수를 들라임에서 계수하였다. 그 지명은 어린양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양처럼 세었다고 보기도 하며, 훗날 유다 사람들이 숫자를 세는 방법과 같이 유월절 어린양을 세듯, 다시 말하면 열 명에 대해 어린양 하나를 쳐서 세듯이 세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사울은 군사들을 이끌고 아말렉의 수도인 아말렉 성으로 이끌고 갔다. 그것은 사울이 그들을 약올려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Ⅳ.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 중에 살고 있던 겐 사람들에게 이제 아말렉을 칠터이니 너희는 그들 중에서 떠나라고 다정한 충고를 하였다(6절). 이 때 사울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정성을 다해서 그들에게 충고하였는데 아마 사무엘의 지시를 따라서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겐 사람들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가족이나 친척들이었다. 그들은 천막을 치고 살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쉽사리 다른 곳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그 당시 그들의 대부분이 아말렉 사람들 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장막을 치고 살았지만 자연적인 요새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든지 살 수 있는 용감한 족속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보금자리를 바위 위에 두고 있었다" (민 24:21). 발람은 그들이 쇠미하리라고 예언한 바가 있다(민 24:22). 그러나 사울은 그들을 진멸할 수가 없었다.

1. 사울은 그들의 조상이 애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었던 친절을 친절을 기억하였다. 이드로와 그의 가족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를 지날 때에 그들에게 크게 도움을 주었으며, 그들의 눈 역할을 하여 주었다. 그런데 이제 오랜 후에 그들의 후손에 대해 이 일이 기억하신 바 되었다. 이처럼 선한 사람들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유산으로 남겨 놓는다.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가 무덤에 들어간 뒤에 우리의 선행의 열매를 거두어 가진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베푼 친절을 몰라 보시는, 불친절한 분이 아니시다. 그들은 마지막 큰 날, 의로운 자가 부활할 때에 기억하신 바가 되며, 보상을 받게 된다. "내가 굶주렸을 때에 너희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는 칭찬을 듣는다.

겐 사람들의 조상들이 베푼 온정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아말렉 사람들의 조상이 행한 악행을 벌하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뚜렷이 나타내셨다. 좋은 일을 후손에게 물려주게 하시는 하나님이 왜 궂은 일도 후손에게 물려주게 하시지 않겠는가? 그의 백성들을 돌봐주시는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그들을 저주하는 자들을 저주하신다" (민 24:9; 창 12:3). 그들은 그들이 받은 친절에 대해서도 이로 갚을 수 없고, 그들이 받은 상해에 대해서도 스스로가 보복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두 가지를 모두 하여 주신다.

2.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 가운데 있는 그들의 장막을 옮겨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말렉 사람들 중에서 떠나 내려가라" 고 하였다. 하나님은 진노의 심판을 땅에 내리시고자 하실 때에, 귀한 자와 타락한 자를 구분하시며, 온유한 자들를 그의 노여움에서 가려주시기 위해 애쓰신다. 하나님의 원수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 속에서 빠져 나오는 것" 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것은 그들의 죄에 참예하지 않고 그들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계 18:4). 유다인들에게는 이런 말이 있다.

" 악인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리고 악인의 이웃에게도 저주가 있을 지어다."

Ⅴ. 사울은 아말렉과 싸워 이겼다. 그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라기보다는 악인에 대한 단죄를 처형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이유가 정당하고, 그 소명이 분명한 만큼 그 문제는 조금도 애매모호한 점이 없다. 사울은 "아말렉 사람을 치고" (7절),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다(8절). 이제 그들은 그들의 조상의 죄의 댓가를 값비싸게 치르었다. 하나님은 때로 죄의 댓가를 보류하였다가 그 자손들에서 물으신다. 그들은 우상 숭배자였고, 그밖의 다른 죄들도 많이 범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해서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물으시고자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땅을 전쟁터로 만들었던 그들의 죄까지도 함께 물으셨다.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심판은 신비한 것이오며! 당신의 정의는 너무나 뚜렷 하옵나이다!

Ⅵ. 그러나 사울은 그의 일을 반밖에 시행하지 못했다(9절).

1. 사울은 아각을 살려두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과 같은 왕이었기 때문이며, 아마 상당한 양의 몸값을 받아내기를 바라서 그랬는지 모른다.

2. 사울은 소와 양의 좋은 것들을 남기고, 가치 없고 낮은 것들만을 진멸하였다. 그 때 많은 아말렉 사람들이 그들의 재산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도망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후에도 아말렉에 대한 말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울은 자기 수중과 자기의 세력 하에 들어온 아말렉 사람과 그 재산들을 모조리 진멸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다. 보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만큼 사실상 진멸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희생물이었다. 그러므로 사울이 이 때 상처나고, 병들고, 다리를 절며 그리고 파괴한 것들만을 진멸하면 족하고, 자기의 목장과 식탁을 위해서는 가장 좋은 것과 기름 진 것을 남겨놓은 것은 실로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다.

 

15:2 없음.

 

15: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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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없음.

 

15:8 없음.

 

15:9 없음.

 

15:10

하나님의 버림받은 사울(사무엘 상 15:10-23)

사무엘은 아말렉을 진멸하는 문제에 대해 사울에게 명령한 그의 명령이 잘 시행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사울을 방문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엄격하다는 것과 이에 반대인 인간의 마음은 배반하기 쉽고 속임수가 많다는 확실한 실례를 볼 수 있다.

Ⅰ. 이 문제를 두고 하나님과 사무엘 사이에 은밀히 말을 주고 받은 것을 볼 수 있다(10,11절).

1.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이를 사무엘에게 알려 주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느라." 하나님의 후회는 우리의 후회와 같은 마음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방법과 처분의 변화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변경하시지 않으신다. 다만 방법의 교체를 원하실 따름이다. 그 변화는 사울에게 있었다.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말씀을 사울의 이지러진 복종과 지나친 욕심에 대해 내리셨다. 그리하여 사울은 스스로 하나님을 그의 적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왕국을 맡기고, 왕국에 속한 영예와 권세를 그에게 주신 것에 대해 후회하셨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은 어떤 한 인간에게 지혜와 은혜 그리고 그의 두려움과 사랑을 주신 것에 대해 후회하시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의 이런 은사와 소명은 후회가 따르지 않는 것들이다.

2. 사무엘은 애통하였으며 그런 일이 없기를 원했다. 사울에게 내려졌던 하나님의 은혜가 몰수당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기로 결심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사무엘은 근심하고, 그러한명령이 사울에게 실현되지 않도록 그를 위해 중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온 밤을 새워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다른 사람들은 침상에 누워 잠자고 있을 때, 사무엘은 무릎을 꿇고 기도했으며, 하나님께 매어 달렸다. 사무엘은 그 자신이 정권에서부터 밀려 나온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또 어떤 사람들처럼 그의 뒤를 이은 사울이 그처럼 속히 물러나게 되었다고 은근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사무엘은 사울의 안정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으며, 그에게 비참한 날이 이르지 않기를 원했다. 죄인이 버림받은 것을 선인들은 슬퍼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Ⅱ. 사무엘과 사울 사이에 공공연히 말을 주고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이 무거운 소식을 가지고 길가로 갔다. 아마 사울이 출전하기 전에 길갈에서 만나기로 악속했던 것인지 모른다. 사울이 길갈로 내려 갔다(12절). 그 곳은 사울이 왕으로 등극한 곳이다(11:15). 이제 사울은 자기가 순종을 잘했다는 것이 인정 받음으로써, 다시 한 번 그 곳에서 왕위가 더욱 확고해지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이 유다 산지에 있는 도성인 갈델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보다는 자기 영광을 구해서 승전비를 세웠다는 말을 들었다. 사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념비를(혹은 손을) 세웠다. (사실 그는 자신의 승전을 과시하는 일보다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이 더 급선무였다). 그가 화려한 행렬을 지어 길갈로 "돌이켜 행하여 내려갔다" 는 표현을 보아서 위세 당당하게 길갈로 개선 행진해 들어간 것 같다. 그러한 곳에서 사무엘은 사울을 만났다.

1. 그리고 거기서 사울은 사무엘에게 자기의 순종을 자랑했다. 이것을 사울은 다음과 같은 인사로 표시하였다(13절).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당신이 보내온 전갈을 나는 성공적으로 온수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그때 그는 철면피가 되지 않았다면 자기가 손종했노라고 주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울은 사무엘의 책망을 막아보려고 하였다. 이처럼 죄인들은 그 자신을 정당시함으로 "여호와의 심판" 을 피해 보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의 심판을 피하는 길은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길 뿐이다. 자기의 신앙을 극구 자랑하는 자에게는 편견과 위선이 없지 않다고 보여진다.

2. 사무엘은 사울의 명백한 불순종의 표시를 가지고 그에게 죄가 있다고 선포 하였다. "당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완전히 준행하였나이까? 그렇다면 저 양들의 소리를 어쩜이니이까?" (14절). 사울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도 그의 행한 바에 의해 크게 신세지는 바가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이 사울의 신세를 져야 할 분이 아니시라는 것과 사울이 하나님께 거스리는 행위를 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양들과 소들의 울음 소리" 를 내세웠다. 아마 사울은 자기의 승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그 짐승을 행렬의 후미에 붙여서 이끌고 왔을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것들이 그를 해하는 증거품들이라고 호소하였다. 그것만을 가지고도 사무엘은 사울의 거짓을 완전히 반증한 셈이다. 짐승들의 울음소리는 (금과 은의 녹과 같이, 약 5:3) "그를 반박하는 증거" 가 되었다.

그럴 듯한 거짓이나 위선은 언제나 그리고 여러 번 가장 뚜렷하고 거절할 수 없는 증거에 의해 반박받고 반증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순종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증거를 반박하고 있는 그들의 육체에의 탐닉과, 세상에의 사랑과 그들의 욕정과 무자비 그리고 거룩한 의무에 대한 태만 등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3. 사울은 이러한 책망에 대해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였다(15절). 아말렉 사람들의 양과 소들을 그가 끌고 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1) 그것은 자기의 잘못이 아니요, "백성들이 남긴 것" 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사무엘의 특별한 명령인 줄을 알면서도 사울의 특별한 명령이 없이 백성들이 감히 그런 일을 하였다는 투로 말했다.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하려는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그 잘못을 자기 탓으로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죄란 자기의 자식이면서도 누구나 자기 집 문 앞에 세워두기는 싫어한다. 그 잘못은 유혹자나 동료나 또는 단순히 일한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의 죄과로 고백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회개치 않는 마음을 속이는 것뿐이다.

(2) 좋은 계획이 있어서 그랬다고 이를 정당화하였다. "그것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그랬읍니다. 그분은 당신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은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인 만큼 당신은 이 일에 대해서 나무라실 필요가 없읍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짐승들을 남겨놓은 사울과 백성들의 궁색한 어리석은 짓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도둑질한 것으로 번제를 드리는 것을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짐승들을 전쟁터에서 그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제단에서 제물로 드리려고 가져왔다고 하여서 고마와하실 것이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방법과 하나님 자신이 지시하신 법대로 섬김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잘못된 방법을 정당화하여 주지 않으신다.

4. 사무엘은 그의 변명을 무효화 내지 무시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심판을 내렸다. 사무엘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만을 전했다(16절).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도저히 그처럼 심한 책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사가 자기에게 너무 심한 말씀을 한다고 불평하는 자들은 이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있는 한 그는 다만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며, 그에게 주어진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기서 사울이 만한 것과 같이 다만 "말씀하소서" 라고 말해야 한다. 사무엘은 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였다.

(1) 사무엘은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하게 하였다(17절). 하나님은 그의 상태가 낮을 때 그를 기억하여 주셨고, 그의 심령이 낮은 것을 보시고 그에게 보응하여 주셨다. 귀하게 되거나 부하게 된 자들은 때로 그들의 비천한 출발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처럼 귀하게 되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그를 그처럼 귀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알아보아야 한다.

(2) 사무엘은 사울이 실시하여야 했던 하나님의 명려이 얼마나 쉬운 명령이었던 것인가를 밝혀 주었다(18절).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셨다" 고 하였다. 그 일이 그처럼 쉽고 그 성공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 일을 전쟁이라고 하지 않고, 길로 보낸다. 즉 여행을 보낸다는 말로 표현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철천지원수를 멸절시키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사울이 만일 그 자신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아말렉에 속한 모든 것을 진멸하였다면 그는 실패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이 싸움 때문에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3) 그러므로 사무엘은 이 싸움에서 스스로의 이익을 도모하였으며, 스스로를 부하게 하고자 하였던 것이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일인가를 보여 주었다(19절). "어찌하여 탈취하기에만 급하였으며, 왕자신을 위해 기를 쓰고자 하는 다른 마음을 지님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켰나이까?" 돈을 사랑함이 악의 뿌리가 됨을 보라. 그리고 또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은 가장 큰 죄가 됨을 보라. 그것은 불순종이다.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 하셨나이다."

5. 사울은 자기에게 내려질 단죄를 모면하기 위해 여러 번 자신에 대해 변명하였다(20,21절).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였으며, 내가 하여야 할 일을 다했읍니다." 고 변명했다. 그는 자기 생각으로 볼 때 자기가 하여야 할 일을 다했다고 보았다. 그처럼 그는 자기 자신이 볼 때 하나님보다는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보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렇지만 그는 명령을 수행하면서 아각을 살려 두었다. 그는 아각을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처럼 육체에 속한 악한 마음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의 생각과 같은 정도로 생각한다.

사울은 그 싸움의 주요 목적이었던 "아말렉 사람들을 완전히 진멸하였다" 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탈취함으로 "완전히 진멸하여야 할" 것들을 자기 것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의 뜻" 을 알고 있었으며, 그 명령을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 진멸한다는 것은 지나친 허비라고 생각하였다. 모세의 때에 미디안 사람들의 짐승을 가지고 기도의 제물로 삼은 일이 있다(민 31:31 이하). 그런데 이제 와서 아말렉 사람들의 짐승으로는 왜 안 된단 말인가라고 생각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도하는 것을 좋은 일이라고 보고 그는 백성들이 그것들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도 묵인하였다. 그것은 백성들이 한 일이지 그가 한 일이 아니었으며, 더우기 여기 길갈에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기 위한" 것이며, 그래서 여기로 이끌고 왔다고 하였다. 불순종의 자식들에게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들이 입은 무화과 나무잎을 벗겨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보라.

6. 사무엘은 사울의 변명에 대해서 철저하게 반박하기 위해 이렇게 주장하였다(22,23절). 사무엘은 그의 양심에 호소하였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사울이 비록 아무리 신앙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하여도 다음과 같은 사실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1) 번제와 희생 제물과 그리고 수양의 기름보다 순종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우리가 어떤 일에 힘써야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신다면 우리는 행복하다. 그리고 우리는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한다" (사 1:11).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겸손과 성실과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우리의 양심적인 순종을" 모든 번제와 기타 제사" 보다 하나님께서 더 기쁘시게 받으신다는 사실을 명백히 배웠다. 윤리적인 생활 규범을 준봉하는 것이 모든 의식에 참예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하나님께 가까이 인도하여 준다(미 6:6-8; 호 6:6).

순종은 영원한 자연 법칙에 의하여 부과된 명령이며, 제사는 다만 하나의 실정법(實定法)에 의한 명령일 따름이다. 순종은 무죄 시대의 법이며, 제사는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을 전제로 한 법이다. 그리고 제사는 능히 순종으로 막을 수 있었던 죄를 없애고자 할 때 필요한 차선책이다. 제사보다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더

영광을 돌릴 수있으며, 자신을 거부할 수 있다. 황소와 어린양을 제단에 가져다가 번제를 드리는 것이 "모든 고상한 생각을 하나님께 순종시키며",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보다 훨씬 쉽다. 순종은 천사들의 송축이요(시 103:20), 우리의 송축이 될 수 있다.



(2) 불순종은 가장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드리는 것이며,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경쟁시키는 것이다. 불순종을 여기서는 "거역" 과 "완고" 라고 하였으며, "사술의 죄와 우상 숭배의 죄" 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23절). 참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생활은 다른 거짓 신에 따라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자기의 타락된 성품의 지배를 받는 자들은 우상이나 점쟁이에게 모든 것을 묻는다. 불순종은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든다(롬 5:19). 죄의 악독은 율법을 범하게 하며, 종말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한다(롬 8:7). 사울은 왕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으면 그의 왕실의 권위와 권세를 가지고도 거역과 완고의 죄를 면할 길이 없다.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백성들이 그들의 왕에 대해서 거역하는 것이 아니다. 한 왕이 하나님께 대해 거역하는 것이다.

7. 사무엘은 사울에 대한 판결문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선고하였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멸시하였으므로(아람역), 무시하였으므로 (70인역), 하나님도 왕을 버렸으며, 왕을 멸시하고 무시하여,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나이다. 그대를 왕으로 만드신 분이 다시금 하고자 하지 않는 자들은 사람들을 다스릴 만한 자격도 없고 가치도 없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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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불철저한 회개(사무엘 상 15:24-31)

사울은 회개하는 척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만 행동뿐이요, 또 불철저한 회개임이 분명하였다.

Ⅰ. 사울은 너무나 천박하게 회개하였다. 그는 그의 잘못을 아노라고 법석을 떨기는 하였지마는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을 무서워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아니하였다. 사무엘이 그에게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 는 말을 낳은 뒤에야 사울은"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라고 말했다(24절). 그의 고객은 자유롭고도 솔직한 것이 못되었다. 고문이나 폭력에 의해 강제된 고백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회개가 위선적이었다는 표시를 몇 가지 찾아 볼 수 있다. 아합의 경우도 그렇게까지 심한 것은 아니었다.

1. 사울은 사무엘에게만 좋게 보이려고 하였으며 그의 덕을 보려고 하였다. 그는 백성들의 평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사무엘을 신처럼 떠받들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사무엘이 선지자이며 사울을 왕으로 발탁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쁘게 하고, 그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서, 그의 고백 속에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겼나이다. "라고 말했다(24절). 그것은 마치 사무엘을 하나님 대신인 것처럼 여기는 말투였다. 다윗은 비록 나단의 책망을 들었지마는, 그의 고백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하였지 결코 나단을 의식할 일이 없다. 그래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하였다(시 51:4). 그러나 사울은 무식하게도 그의 죄가 사무엘의 말을 거역한 것으로 고백하였다. 그때의 그의 말은 "여호와의 명령" 을 나타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또 사울에게 용서를 빌었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25절). 하나님만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말투였다. 자기를 속이는 자들은 소문이 흔히 좋지 않게 난 죄를 범했을 때, 눈에 보이는 그럴 듯한 회개의 모양을 하는 것으로 교회와 그리고 목사하고만 화해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성실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사울에 대해 가장 관대한 해석을 내린다면, 그가 사무엘을 하나님과 자기 사이의 중보자라고 여겨서, 사무엘을 통해서 모든것을 호소하고자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그것은 매우 약하다.

2. 사울은 고백을 하면서도 자기의 잘못에 대해 변명하였다(24절). 그것은 결코 참다운 회개의 방법이 될 수 없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라고 하였다. 그와 같은 행동은 그 자신의 행동이지 결코 백성들의 행위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백성들이 아무리 그런 일을 하고자 하여도, 전에 읽어본 바에 의하면,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할 권세가 사울에게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그의 변명은 거짓되고 경박한 것이었다. 그가 무엇이라고 말하든 그는 사실 백성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죄인들은 그들의 잘못에 대해 변명하면서, 그것은 그 자신의 마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변호한다. 왜냐하면 마음의 생각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까지 살피시는 분이심을 잊어버리고 있다.

3. 사울이 관심을 가진 것은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며, 백성들 사이에서의 자기의 이권을 그대로 간직하는것이며, 백성들이 그를 반역하거나 기만하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울은 그처럼 열심히 사무엘에게 자기와 함께 가서 공적인 승전 기념제를 도와 달라고 매어달렸다(25절). 사울이 사무엘을 붙잡아 그 겉옷자락이 찢어지도록까지 성가시게 한 것은(27절), 사무엘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라, 사무엘이 자기를 버릴 때 백성들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버릴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다만 그들 자신들의 이익과 명성을 위해서 훌륭한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에게서 열심히 영향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가 있다. 그러나 사울이 "내가 범죄 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들 앞에서 나를 높여 주소서" (30절)라고 한 것은 매우 천하고 야비한 표현이었다. 이것 회개하는 자의 말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 정반대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부끄럽게 여겨 주소서. 내게 속한 것이 모두 부끄러운 것뿐이옵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미워 하나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도 얼마나 많이 사울의 위선을 따르고 있는가? 유죄의 판결을 받은 사람들일 수록 사람들 앞에서의 그들의 명예를 걱정하는 것이 흔히 있는일이다. 순결하다는 명예를 잃어버린 자는 다만 회개의 모양을 함으로 그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데 그런 자의 회개는 그에게 오히려 부끄러움을 더 가져다 줄 뿐이다.

Ⅱ. 이러한 천박한 회개의 모양으로 사울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한 회개를 통해 사울이 얻은 바가 무엇인가?

1. 사무엘은 앞서 말했던(23절) 선포를 되풀이 할 뿐 그 선언이 취소될 수 있는 희망을 조금도 보여 주지 않았다(26절).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한다" (잠 28:13).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돌아가기를 거절하고, 자기 갈 곳으로 "가려고 돌이켰었다" (27절). 왜냐하면 사무엘이 우선 볼 때, 하나님께서 내친 사람을 따라가서,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사울의 탐욕을 만족시켜 준 그 승전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사무엘은 사울을 따라갔다(31절). 그것은 아마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다른 더 좋은 생각이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무엘은 백성들 사이에 폭동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그 제사가 사울에게 영광을 돌리는 제사가 되지 못하게 또 나가서 아각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실시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32절) 돌아 갔을것이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였지마는 31절, 사무엘이 그 예배를 주관하였다는 말이 없다).

2. 사무엘은 그의 선언의 내용에 알맞는 하나의 상징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 상징은 사울의 난폭함이 계기가 되어 나타났다. 사무엘이 그를 떠나가려고 할 때 그는 사무엘을 붙잡으려고 하다가 사무엘의 옷을 찢었다(27절). 사울은 그만큼 선지자와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사건에 대해 선지자만이 내릴 수 있는 해석을 내렸다. 사무엘은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왕국을 그에게서 떼어 내리라" 는 것을 의미하며, 더우기 그것이 사울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라고 말했는데, 그 사람이란 다윗을 의미하였다. 그 후에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을 베어내게 되었는데(삼상 24:4), 이에 대해서 사울이 말하기를 (삼상 24:20), "나는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아노라" 고 하였다. 아마 사울은 자기가 사무엘의 겉옷자락을 찢어지게 하였던 것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3.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언은 변개치 못한다는 말을 통해 그 준엄함을 재천명하였다(29절).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말이 없으시다" 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 란 말이 영어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힘(Strength)" 이라고 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이스라엘의 영원하신 자 또는 승리하신 자" 라고 읽는다. 아랍어역에서는 "거룩하신 분", 시리아역에서는 "가장 고귀하신 분" 이라고 번역했다. 패트릭(Patrick) 주교는 이 말을 "이스라엘의 승리의 왕" 이라고 읽었다. "하나님은 그대를 내치시기로 결심하셨는데, 그는 결코 그의 뜻을 변개치 않으시리이다.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그래서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인간들은 변덕이 많아서 쉽사리 그들의 마음을 변개시킨다. 또 연약하여서 그들의 목적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다. 그들의 방법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데도 이를 예견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때로 죄인의 회개를 보시고, 그에게 내리려고 하셨던 벌을 돌이키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여기 사울에게서는 회개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도 저를 거들떠 보시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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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각의 처형과 사울과의 결별(사무엘 상 15:32-35)

선지자로서 사무엘은 여기서 왕들의 위 세움을 받았다(렘 1:10).

Ⅰ. 사무엘은 아각왕을 진멸하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실행하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그는 "아각을 찍어 쪼갰다." 어떤 사람은 사무엘이 다만 명령만 하였다고 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손상받은 공의를 위한 희생 제물로서(33절), 그 제물을 찍어서 쪼개는 것과 같은 양식대로, 사무엘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찍어 쪼갰다고 보기도 한다.

1. 아각의 헛된 희망이 사라졌다. "아각이 즐거운 낯으로 왔다." 그는 그가 왕이었음을 나타내며, 그러므로 자기를 존경해 주고 정중하게 다루어 달라는 뜻으로 당당한 모습으로 왔다. 그리고 고생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유순하고 연약하여 "그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보지도 않은 것처럼" (신 28:56) 걷기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확실히 전쟁의 열기도 식고, 사망의 괴로움이 지나갔도다(32절). "아각은 이제 군인인 사울의 칼에서 벗어나자, 평화의 사람인 늙은 선지자인 사무엘로부터는 어떤 위험도 받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1) 죽음은 괴로운 것이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무서운 것이다. 어떤 사본들은 아각의 말을 "참으로 죽음은 괴로운 것이다." 고 읽는다. 따라서 70인역은 먼저의 귀절에서도 "아각이 두려워 떨면서 왔다" 고 읽는다. 죽음은 아무리 용감한 마음도 낙담시킨다.

(2) 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무서움이 지나가지 않았는데도 이것이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죽음이 그들 가까이에 있건마는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참다운 신자들은 은혜로 말미암아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러나 죽음 자체가 지나간 것도 아니며, 그 괴로움 자체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2. 지난날 아각이 행한 악행이 여기서 벌을 받았다. 사무엘은 그의 조상들의 죄만 아니라, 그 자신의 죄까지도 묻기 위해 아각을 불렀다. "그의 칼이 여자들로 무자케 하였던" 것이다(33절). 그는 그의 조상들의 잔인함을 그대로 본받았으며, 그의 밑에 있는 자들도 똑같은 일들을 행하였다. 그러므로 아말렉에 의해 흘린 모든 의로운 피가 이 세대에 돌아갔던 것이다(마 23:36). 자기 자신에 대해 너그럽고 관대하였던 아각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잔인하였으며, 지독하였다. 사람들은 흔히 그렇다 . 그들의 욕망에 대해 관대한 사람들은 그들의 욕정에 대해서도 엄격하지 못하다. 그러나 흘린 피는 반드시 기억이 된다. 왕들도 그들의 흘린 죄없는 피에 대해서 왕중 왕이신 분에게 책임 추궁을 당한다. 므낫세 왕의 이러한 죄에 대해 여호와께서 용서치 않으시겠다고 하셨다(왕하 24:4; 계 13:10 참조).

Ⅱ. 사무엘은 사울왕을 떠났으며(34절), 다시는 그가 당하는 문제에 대해 충고를 하거나 도와 주기 위해 "그를 가서 보지 아니하였다" (35절). 왜냐하면 사울이 사무엘이 도움이나 충고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자기도 사울을 버렸다. 어떤 때 (19:24 의 경우와 같이) 우연히 사울을 만나는 일은 있었어도, 결코 일부러 그를 만나러 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사무엘은 "사울을 위해 슬퍼하였다." 그것은 그처럼 위대한 일을 잘할 수 있었던 사람이 스스로 어리석은 짓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멸망받게 된 것을 생각하고 애달파 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은 사울과 같이 위대한 축복을 받을 수있었던 사람이 그처럼 저주와 천벌을 받을 수 받게 없게 된 그 나라의 형편을 슬퍼하였다. 사무엘은 또 사울을 회개시킬 기회가 없게 된 그의 영원한 상태를 슬퍼하였다. 사무엘인 사울을 위해 슬피 운 것은 그를 위해 하나님께 탄원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왕을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 그리고 사무엘로 하여금 그의 할 일을 하도록 하는 결심을 가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사울을 위한 사무엘의 기도는 아무런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했다.

1. 비록 우리는 버림받은 죄인들에게서 손을 떼며, 그들과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되겠지마는 그런 버림받은 죄인들을 위해서 슬퍼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선지자는 그의 백성을 떠나 가기로 결심하였지마는 "그들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고 하였다(렘 9:1, 2).

2. 비록 버림받은 죄인들이 스스로를 위해서 슬퍼하지 않지마는 우리는 그들을 위해 슬퍼해야 한다. 사울은 자기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노여움에 대해 관심을 쏟지 않고 있었지마는 사무엘은 그를 위해 밤낮 슬퍼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애곡하였을 때에도 예루살렘은 안연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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