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기름 부음과 이에 따르는 징조들(사무엘 상 10:1-8)
사무엘은 여기서 선지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장차 왕이 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Ⅰ.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입맞추었다" (1절). 이 일은 정식적인 엄숙한 모임에서 베풀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베풀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 외형적인 의식 절차가 아무리 미약한 것이라고 하여도 넉넉히 이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아무리 은밀하게 행한 것이라고 하여도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제도는 그 절차와 외모가 비록 보잘 것 없고, 비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는 매우 위대하고도 영광스러운 것이다.
1.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음으로, 그를 왕으로 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신 것이 아니냐?" 대제사장이 그 업무에 임직되면서 자기에게 수여된 은사를 가지고 자기의 의무를 다하여야 하는 것을 나타내는 뜻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왕들도 기름부음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처럼 왕들이 자기의 사명을 감당할 만한 여건을 갖추어 주신다. 이러한 거룩한 기름부음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교회의 왕이신 위대한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메시야에게는 유다 민족의 제사장이나 왕자들과 달리 성령의 기름이 한량없이 부어진다.사무엘이 사용한 기름은 틀림없이 보통 기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 어떤 축복의 말씀이나 기도가 있었단 말을 읽지 못했다. 그때 사무엘은 깨지기 쉬운 유리병에서 기름을 따러 사울에게 부었다. 왜냐하면 사울의 나라는 오래가지 못하여서 무너지고 말 것이며 그 국세도 크게 떨치는 것이 못되며, 또 그는 다윗에 비해 성령의 은총을 많이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달리 다윗에게는 뿔에 담은 기름을 부었으며, 솔로몬에게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예후에게는 상자에 담은 기름을 부었다[역주:우리 성경에는" 기름병" (왕하 9:1)이라고 되어 있으나 KJV에는 box of oil이라고 되어 있다].
2. 사무엘은 사울에게 입맞춤으로써 비록 이 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력이 축소되고, 자기와 자기 집의 영광이 흐려지기는 해도, 자기는 이러한 선택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만족한다는 것을 표하였다.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이 너를 기름부으신 왕으로 삼으셨다. 나는 이를 만족하게 생각하며 기뻐하고 있고 그 표로서 너에게 입맞춘다." 이것은 신하로서의 충성을 다짐하는 입맞춤과 같은 것이었다. 이로써 사무엘이 단순한 왕으로서만이 아니라, 자기의 왕이란 것을 인정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시 2:12)고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인정하며 그에게 충성을 다짐해야 한다. 사무엘은 이러한 의식을 전개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사울로 하여금 유념하게 하였다.(1) 그에게 맡겨진 정권의 본질을 유념하게 하였다. 그는 두령이요, 지도자로서 기름 부음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명예와 권세를 동반한다. 그러나 그는 전쟁을 위한 두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따라서 그는 매사에 조심하며, 수고하며, 위험을 겪어야 한다.
(2) 그 정권의 기원을 유념하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너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그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위해 다스리며, 그를 의지하며, 언제나 그의 영광을 바라야 한다.
(3) 그 정권 수여의 목적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부자가 자기의 커다란 영지를 충실한 관리인에게 맡겨서 잘 관리하게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의 기업을 그에게 맡겨 이를 잘 지키며, 모든 잘 처리하게 하는 것이었다.
Ⅱ. 사무엘은 사울로 하여금 더욱 확신할 수 있도록 그 날에 당장 일어날 몇 가지 표시를 보여 주었다. 그러한 표시들은 사무엘의 말이 틀림없다는 것과 그가 확실한 선지자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또한 사울 자신이 틀림없이 왕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시켜 줄 수 있는 표시들이었다.
1. 그는 얼마가지 않아서 그의 집으로 부터 아버지가 그에게 대해 근심하고 있다는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2절). 이러한 징조를 사울은 라헬의 묘실 곁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지시한 최초의 장소는 그의 조상의 한 묘소였다. 라헬은 베냐민을 해산하고 그 고통으로 죽었다. 거기서 사울은 자기 자신도 죽을 수밖에 없는 몸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그는 왕관을 쓰고 있지만, 그는 동시에 무덤을 보며, 그의 모든 영광이 한 줌의 흙이 되어 묻히리라는 것을 보아야 했다. 거기서 사울은 그를 돌봐주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보낸 두 사람과 만나서, 그들은 암나귀들을 찾았고, 오히려 이번에는 그의 아버지가 그 때문에 걱정하고 있으며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된 것이다. 그는 그 두 사람의 심부름꾼을 만나면 모든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여간 그가 알맞는 때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며 용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잘 된 일이다.2. 다음으로 사울은 산장이 있는 벧엘로 제물을 가지고 예배하러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3,4절). 이제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하나님을 예배하러 올라가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좋은 징조이다.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염소 새끼와 떡과 포도주는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위한 제물이었다. 그런데 사무엘은 말하기를 그들이 떡 두덩이를 사울에게 줄 것이며, 그는 그것들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선물은 거지에게 자선을 베풀면서 주는 동냥이다. 사울은 이후로 언제나 그가 동냥을 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가난한 자에 대해 겸손하며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한편 이것은 왕에게 합당한 예물이었다고 해석할 수가 있다. 예물을 바치는 자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했겠지마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하나의 징조를 보여 주기 위해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시킨 일이었다고 보인다. 사울은 왕으로서 자기에게 바쳐진 이 최초의 예물을 받아야만 했다. 새로 기름부음을 받은 왕인 그에게 바쳐진 이 두덩이의 떡은 그로 하여금 자기의 왕권을 이용하여 호사스러운 생활에 빠지지 말고, 소박한 음식에도 언제나 만족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 될 것이다. 떡은 생명의 양식이다.
3. 그가 볼 수 있었던 가장 현저한 징조는 선지자들의 무리를 만나, 그들과 함께하게 되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그 선지자들 모양으로 사울도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활동은 그 어떤 것을 통한 것보다 훨씬 더 우리의 신앙을 공고하게 하여 주신다. 사무엘은 여기서(5,6절) 사울에게 다음의 사실들을 말해 주었다.(1) 그 사건이 일어날 장소를 말해 주었다. 그 곳은 "블레셋의 영문" 이 있는 "하나님의 산" 이다. 아마 그 곳은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 근처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블레셋의 영문이 있었기 때문이다(13:3). 아마 사무엘과 블레셋 간에 거기에 영문을 세우기로 합의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거기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는 것이 아니면, 블레셋 사람들이 그 땅을 침략해서 강제로 거기에 영문을 세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제 그들에게 혼을 내 줄 수 있는 사람을 세우신 것이다. 거기에 선지자의 학교를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산 "이라고 일컬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도 신앙은 존중하였기 때문에 그 곁에 하나님의 선지자 학교가 설수 있도록 허락했으며, 그들의 공적인 활동을 방해하지 않았다.
(2) 어떤 경우에 그런 징조가 나타나는가를 말해 주었다. 사울은" 노래를 부르며 예언을 하며 내려오는 선지자들" 을 만나고 그들과 합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지자들은 앞으로 올 일에 대해 예언하도록 하나님의 영을 받았거나, 꿈이나 환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본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율법을 공부하며, 이웃을 가르치며, 자선을 베풀고, 특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의 크신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이 닫지 선지자들만 아니라, 그들을 훌륭하게 가르치며,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신앙을 굳건히 지키도록 도와주는 선지자들의 무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사무엘이 출생하던 때 모양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 사무엘은 이러한 학교 또는 신앙의 집들을 세웠는데 이것들이 회당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무엘이 비록 군사로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방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선지자의 학교를 세웠는데, 그런 사람의 통치를 싫다고 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그 당시 음악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엘리사도 그런 방법을 이용한 일이 있다(왕하 3:15). 그후 사울의 경우 악령을 쫓아내는 데 음악이 크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볼 때 오늘날에도 똑같이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는데 음악의 혜택을 입을 수 있다고 본다. 이 선지자들은 산장에서 제사를 드리고 나서 시편을 노래하며 내려오고 있었을 것이다. 거룩한 의식에 참석하고 돌아 올 때의 우리의 마음은 거룩한 기쁨과 찬양으로 크게 부풀어 오를 것이다. 시편 138편 5절을 보라. 하나님의 영은 의식을 통해서 놀랍도록 인간을 변화시키신다. 사울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새 사람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Ⅲ.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이끄시는 대로, 그리고 사무엘이 그에게 권고하는 대로 그 나라를 다스려 나가려고 지시하였다.
1. 사울은 보통의 방법으로 그에게 보여지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7절). 그는 이렇게 지시했다."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네 자신의 지각이 지시하는 데로 따라서 처신하라."2. 그러나 나중에 길갈에서 그에게 일어나는 일과 같은 비상시기 그리고 가장 위험한 때 또 하나님의 도우심이 가장 필요한 때는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며 그가 오기를 "칠일" 동안을 기다려야 한다고 지시했다(8절). 후에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한 것이 그의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13:11). 이것은 분명히 그가 모든 일에 근신하며, 비록 그가 왕이기는 해도 사무엘의 지시를 받아야 하며, 사무엘의 지시에 따라서 행동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가장 위대한 인간은 그 자신을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복종하게 한다.
선지자들과 어울린 사울(사무엘 상 10:9-16)
사울은 이제 사무엘을 떠났다. 그는 아마 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매우 놀라운 심정을 가지고 그 곳을 떠났을 것이다. 그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놀라운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을 볼 수 있다.
Ⅰ. 돌아가는 길에서 생긴 일을 볼 수 있다(9절). 사무엘이 그에게 말한 징조들이 하나도 어김없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게 위대한 확신을 준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마음" 을 주셨다는 것을 즉시 알게 된 것이다. 그 전에는 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불꽃이 그의 마음을 밝혀 주었다. 암나귀를 찾는 문제는 조금도 개의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블레셋과 싸우는 문제, 이스라엘의 슬픔을 제거하는 일, 법을 정하는 일, 바르게 백성을 다스리는 일, 그리고 백성들의 안녕질서를 찾는 일들만이 가득차 있었다. 이런 것들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사울은 전에 감히 생각지도 못했을 만큼 담대해지고 용감해진 자기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제 그의 마음은 낮고 천하며, 협착한 그리고 자기 곡식과 가축들만 생각하는 그런 농사꾼의 마음이 아니었다. 이제 그의 마음은 정치가의 마음, 장군의 마음, 왕자의 마음이 되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위해 한 인간을 부르실 때 그로 하여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주신다. 그들의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라들이 다른 단계로 성장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단계에 합당한 다른 마음을 주신다.
Ⅱ. 사울이 그의 집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산" 에 이르렀다(10절). 말하자면 그들은 "기브아" 또는 "게바" 에 이르렀는데, 그 지명은 "산" 을 의미하기 때문에 갈데아역은 여기서 이를 고유명사로 생각하였다. 거기서 그는 사무엘이 말해 준 바와 같이 선지자들을 만났으며,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강하게 그리고 갑자기 임했다(크게 임했다는 말을 이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이 언제나 그에게 임해 있으면서 그를 인도하신 것은 아니었다. 속히 임했던 것과 같이 그에게서 떠났다. 그렇지만 지금으로 보아서는 성령이 그에게 크게 영향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는 즉시 선지자들과 합류하여 함께 예언을 하였으며, 그들 중 누구보다도 단정히 행하며 크게 감동받아 기쁨을 주린 것을 보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 중에서 예언을 했다."
1. 그의 예언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11,12절). 사울은 이제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가까이 와 있었다. 그들은 선지자들 사이에 있는 사울을 보고 그의 이상한 모습을 와서 보라고 서로 수군거렸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사울을 왕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시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울을 이제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한 사람이라는 귀한 자격을 주신 것을 볼 수 있었다. 칠십 장로를 세워 백성들의 사사로 삼기 전 그들에게도 예언을 하게 한 일이 있다(민 11:25).(1) 그들은 모두 사울이 선지자들 사이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냐?" 선지자의 학교가 아버지의 집 가까이 있건마는, 사울은 한 번도 그들과 어울려 본일이 없으며, 그들을 존경해 본 일도 없고 오히려 약간 멸시한 듯하다. 그러므로 이제 그가 그들 사이에서 예언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신약 성서의 시대에 있어서도 그와 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역시 전에 그 자신이 핍박하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와 한 것을 또 볼 수 있다(행 9:21). 하나님께서 다른 마음을 주시면 그 표시가 곧 나타난다.
(2) 그들 중의 한 사람, 다른 사람들보다는 현명한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그들의 아비, 또는 스승이 누구냐? 하나님이 아니시냐?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배운 것이 아니냐?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받은 것이아니냐? 하나님의 힘이 모자라시냐?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울도 선지자로 만들수 있지 않으시겠느냐?" 또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무엘이 저들의 아버지가 아니냐?"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울은 최근에 사무엘과 함께 있었으며, 그의 종을 통해 사무엘이 어떤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전날밤 사무엘과 한 지붕 아래서 지낸 사람이 그 다음날 예언을 한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는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거나 적어도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들 사이에 끼인 것을 보고 놀라와 할 때 이를 나타내는 속담으로서 "사울도 선지자들 사이에 있느냐?" 는 말을 하게 되었다. 선지자들 사이에 끼이게 된 사울은 속담이 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며 또 겉에 보이는 신앙이나 갑작스럽게 변화한 현재의 상태에 너무 기대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선지자들 사이에 있는 사울은 여전히 사울이기 때문이다.
2. 사울의 기름부음 받은 사실은 비밀로 되어 있었다.
(1) 그가 예언을 끝냈을 때 그는 하나님께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며, 그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짐을 감사한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를 표하며, 계속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기 위하여 곧장 "산당으로" 갔다(13절).
(2) 그러나 사울은 친척들에게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애써 감추었다. 산에서 만났는지 혹은 집에 돌아 오자마자 만났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숙부가 사울을 보자 물은 일이 있다(14절). 그의 사환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울은 그가 사무엘과 만났던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리고 사무엘이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하더라는 말은 하였지마는 "나라에" 관한 일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14,15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입증하여 준다.
[1] 그의 겸손을 말해 준다. 대부분은 이런 놀라운 출세를 당했을 때는 지붕 꼭대기에 올라간 듯 의기양양해서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마음 속으로는 기쁨을 간직하였지마는, 이웃 사람들에게 이를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그의 자녀들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가지고 있다(요일 3:1).
[2] 그의 사려깊은 처신에 대해 말해 준다. 만약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모든 것을 밝혀 말했다면, 그가 반드시 시기하였을 것이며,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는지 모른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비밀로 이야기하였으며, 사울은 이것을 비밀로 간직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사울에게는 나라를 다스리기에 합당한 또 다른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는 자기의 뜻대로 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았다. 하나님께 맡기고 사무엘의 처리를 기대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의 선출과 사울의 소개(사무엘 상 10:17-27)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과 지파의 대표자들인 장로들의 총회에서 사울은 정식으로 왕에 지명되었다. 이 전국적인 대회는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난 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소집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통치 방법의 변혁이 있어야 한다면 속히 있을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끌면 끌수록 그만큼 결과는 나쁜 것이다. 백성들은 사무엘이 하나님 대신 그들 사이에서 활동하는 식의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런 엄숙한 모임에 모였다(그러므로 백성들을 "여호와 앞에 불러 모았다" 고 말한다).
Ⅰ. 사무엘은 그들이 선지자의 통치를 버리고 왕을 바라는 것에 대해 꾸짖었다.
1. 사무엘은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하에서 얼마나 행복하였던가를 보여 주었다(18절). 하나님이 그들을 직접 다스렸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압제하는 나라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상 더 무엇을 바랄 것이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용기 있는 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것 이상의 일을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단 말인가?2. 사무엘은(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그들을 "재난과 고통 중에서" 건져내 주셨는데) 그들을 구원할 왕을 요구함으로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독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19절). 사무엘은 분명한 말씨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오늘날 너희 하나님을 버렸도다. 너희가 이를 실제로 행하였다고 하나님은 보시며, 너희가 그를 버린 것처럼 하나님도 너희를 버림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신다." 신앙보다는 자기 판단을 의지할 때 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나, 전능자의 팔을 의지하기보다 자기 육신의 팔을 더 의지하는 자들은 깨진 물항아리를 위해 생수가 나오는 샘을 버리는 사람들이다.
Ⅱ. 사무엘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왕을 제비로 뽑게 하였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뽑으신지를 알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미 그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무엘은 백성들의 까다로운 성미와 그리고 그들은 자기 혼자의 증언을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 지파, 어느 가족이든지 그 선택에 참여시킴으로써 그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제비를 뽑게 하였다(19절). 그 때 모든 지파 가운데서 베냐민 지파가 선택되었고(20절),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는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다(21절). 이러한 방법으로 사무엘에게 이미 알려 주었듯이, 이번에는 백성들에게 사울이 하나님으로 부터 왕으로 지명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기" 때문이다(잠 16:33).
또 이러한 방법은 모든 논쟁과 이의를 종식시켜 준다. 왜냐하면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며,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기" 때문이다(잠 18:18). 베냐민 지파가 선택되었을 때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엎드러질 가족을 왕가로 세우는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임종의 자리에서 야곱은 예언의 영을 힘입어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유다 지파에게 할당하였기 때문이다. 야곱은 예언하기를 "유다는 사자와 같이 다스릴 것이요. 베냐민은 약탈하는 이리와 같을 것이다" 고 하였다(창 49:10, 27). 그러므로 이 성경 귀절을 아는 사람들은 머지 않아 취소될 수 밖에 없는 이런 일이 시행되는 것을 그다지 좋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Ⅲ. 많은 수고와 하나님의 지시 가운데서 사울은 드디어 왕이 되었다. 제비가 그에게 떨어졌을 때, 그의 이름이 불려지자마자 사울은 선뜻 대답하고 나설 것이라고 사람들은 기대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친구들은 아무도 그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21절). 그는 "행구들 사이에" 숨었었다(22절). 그는 한 번 소유하기만 하면 잃어버리기가 매우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그런 권력을 지금은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1. 그는 그가 나타나지 않음으로 다른 사람을 선택하여 주기를 바라거나 또는 그의 겸손을 나타내기 위하여 물러났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당한 일을 보아서 자기가 바로 제비에 뽑힐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때 그가 진실로 정권을 담당하기가 싫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1)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이 그런 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책을 많이 읽지도 못했고, 군사학을 익힌 것도 없고, 남을 다스리는 법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큰 실수를 저지를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2) 왜냐하면 또 그의 이웃들이 그를 시기하여 그에게 불만을 터뜨릴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3) 왜냐하면 사무엘의 말을 듣고,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것은 죄를 범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가운데서 그들의 요구를 승락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 왜냐하면 이때 이스라엘의 형편은 말할 수 없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블레셋은 강력했고 암몬 사람들 역시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는 마치 폭풍우 속에서 항해해야만 하는 것 같았었기 때문이었다.
2. 그러나 그 선택이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잘 된 것이라고 믿는 백성들은 제비가 떨어진 그 사람을 찾지 않고 그대로 두지는 않았다. 그것이 대제사장과 그의 가슴에 있는 판결 흉패를 통한 것인지, 또는 사무엘과 그의 예언의 영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여호와께 물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행구 사이에 가면 그를 찾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으며, 거기서 "그들은 그를 데려왔다" (23절). 겸손과 겸비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은 없다. 명예는 그림자와 같이 그것으로 부터 달아나려는 자에게는 쫓아오고, 그것을 좇아가는 자들로부터는 달아난다.
Ⅳ. 사무엘은 사울을 백성들에게 소개하였으며, 백성들은 그를 영접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의자나 발판에 올라설 필요가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 보다 "어깨위 맘큼이나 더 컸기" 때문에 그대로 땅에 서 있었어도 다른 사람들이 잘 볼 수 있었다(23절). 사무엘이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훌륭한 왕을 선택하여 주셨나 보라. 너희가 바라던 그런 왕이 아니냐? 모든 백성 중에 그와 짝할 사람이 없느니라. 그의 용모는 위엄이 있고 그의 태도에 있어서도 장중함이 있도다. 무리 속에서 있는 그는 마치 군계일학 같구나. 너희가 그를 보고 판단해 보라. 그는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냐?"
그 때에 백성들은 그 선출의 결과와 그를 자기들의 왕으로 삼는데 대하여 동의를 표하였다. 그들은 "왕의 만세를 외쳐" 불렀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왕이여 오래 오래 건강하시며, 번영하시는 가운데 우리를 다스리소서" 라고 외쳤다. 신하들은 곧잘 왕들에 대한 그들의 애착심과 충성을 표시하기 위하여 좋은 기원의 말씀을 바친다. 그리고 이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사람들은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 한다(시 72:15). 사무엘은 그들에게 얼마 안 가서 그들이 왕에 대해서 염증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마음에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왕의 만세" 를 소리 높여 외쳤다.
Ⅴ. 사무엘은 기본 정관을 정해 주고 이를 기록에 남겼다(25절). 그는 전에도 "왕의 제도" 에 대해 말했던 바가 있다(8:11). 그것은 얼마나 왕이 자기의 권력을 남용하는 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라의 제도" 또는 나라의 법, 재판법 또는 그 본질에 대하여 말했으며, 왕들은 자기의 권력을 어느 정도까지 누릴 수 있고 신하들은 어느 정도까지의 사유 재산을 주장할 수 있는 가를 말했다. 그는 양자 사이의 한계를 정해 주어 서로 침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사무엘은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그들 사이의 협정이 언제까지나 엄정히 준수되도록 하였다. 학식이 뛰어난 패트릭 주교(Bishop Patrick)는 생각하기를, 사무엘이 여기서 전에 말한 바(8:11) 왕들이 주장하게 될 독재적인 권리에 대해 반복하고 이를 기록에 남기게 한 것은 나중에 그들에게 임할 재난의 책임이 그들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재료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사무엘은 그들에게 경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고집하여 왕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Ⅵ. 모든 의식 절차가 끝나자 총회는 해산하였다." 사무엘은 모든 백성을 각기 자기 집으로 보냈다." 선거 이후에 따르는 어떤 활동, 다시 말해서 새로 선출된 왕의 위엄을 위해서 자금을 조달해 주는 것 같은 일이 없었다. 그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것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임금의 이름만 듣고 만족해 하는 가운데 그리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울도 역시 아버지의 집이 있는 기브아로 갔다." 그런데 그의 왕국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가지는 않았다. 기브아에는 궁전도 왕좌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그 곳으로 갔다. 사울이 만일 자기의 출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그런 왕이었다면 그는 그의 고향 성읍을 왕도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미천한 집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겸손한 마음은 그의 출세를 더욱 빛내 주었다. 그의 환경은 변했어도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1. 그런데 백성들은 이 새로운 왕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가? 그들의 대부분은 관심을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모든 백성들은 각기 집으로 갔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공적인 일보다는 자기 집의 일이 더 차 있었다. 대부분의 생각들은 이러했다.(1) 그러나 그를 따라간 몇 사람의 충실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 이었다(26절). 그들은 대다수의 백성들이 아니었고, 적은수의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왕을 선택하였다는 것을 기뻐했기 때문이 아니면, 그가 왕이기 때문에 이웃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왕을 따라서 그의 호위병처럼 기브아로 갔는지 모른다. 그들은 그들의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들을 감동시킨"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 어떤 선한 행동이 있었다면 언제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으로 알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선한 길로 쏠렸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감동이면 다만 한 번만의 감동으로도 충분하다.
(2)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를 모욕할 정도로 그를 멸시하였다. 멍에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어떤 비류들은 언제나 하나님이나 또는 사무엘이 하는 일을 좋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그들은 사울을 멸시하였다" (27절). 아마 그들은 그의 집안이 미천하다는 것과 그의 재산이 적다는 것과 그리고 배운 바가 없다는 것들을 들어서 그를 멸시했을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며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추천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울과 그의 정권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이웃들 모양으로 예물을 가져 오거나, 그가 왕관을 쓰게 된 것에 대해 찬양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 이 불평분자들은 누구들보다 더 열심히 왕을 가지기를 원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왕을 가지게 되자 오히려 그 왕에게 도전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울은 전혀 그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귀중한 구속주께 대한 사람들의 태도 역시 여러 갈래였다. 하나님은 그를 시온산 언덕 위에 왕으로 세우셨다.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복종하며, 그를 기뻐하고, 그에게 예물을 드리며, 그가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 사람들이며, "그가 권세를 쥐는 날 그를 섬기게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고 하면서 그를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에게 대해 기분이 상했으며, 그의 외모에 실망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드디어는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2. 사울은 그의 정권에 대해서 도전해 오는 사람들의 악한 처사에 대해 어떻게 분개하였는가? "그는 잠잠하였다." 난외에는" 그는 마치 벙어리와 같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 하였다. 그는 조금도 분개하는 것 같지 않았으며, 이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그가 겸손하고 겸비하며, 자비로운 성품의 소유자임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왕관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다. 부정한 수단으로 권력을 쥔 사람들은 대개 그들의 명예에 대해 연연하며 모욕하는 자들에 대해 보복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당할 때 자기를 멸시하는 자들에 대해 잠잠하셨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보복하실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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