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사무엘상 0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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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사울의 가문과 인품(사무엘 상 9:1,2)

1. 사울은 매우 훌륭한 가문의 출신이었다(1절). 그는 베냐민 지파의 일원이었다. 바울이라고 일컬어진 신약 성서의 사울도 역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그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롬 11:1; 빌 3:5). 기브아의 싸움에서 베냐민 지파는 매우 작은 지파로 되었으며, 그때 남은 6백명의 남자들을 위해 아내를 마련해 주는 소동이 있었다. 때문에 여기서 베냐민 지파를 일컬어 "가장 작은 지파" 라고 한 것은(21절) 그만 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마른 땅에서 솟아난 뿌리이다. 베냐민 지피는 비록 숫자적으로 작은 지파이지마는 "하나님은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여 주시듯이" (고전 12:24) 가장 존귀함을 입은 지파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인 기스는 "유력한 사람" 이었다. 그런데 "유력하다" 는 말은 재산이 많으며,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으며,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땅을 6백 명에게 분할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차지한 상속 재산은 다른 지파들에 비해 대단히 많았으며, 능히 그들의 숫적인 열세를 조화시켜 줄 만한 것이었다고 보인다.

2. 사울은 체격이 매우 준수한 젊은이였다(2절). 그의 지혜나 덕성, 그의 학업이나 경건성 또는 그의 정신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다만 그는 잘 생긴 얼굴과 훌륭한 몸매 그리고 용모 단정한, 키가 크고 훌륭한 미남자라고만 기록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었다." 천성적으로 탁월한 인물로 타고난 것과 같이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키가 어깨 위는 더 큰 체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블레셋의 영웅인 가드 출신의 거인들과 견줄 만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에 합당한 왕을 선택할 때는 그 풍채의 준수함이나 용모의 미련함을 보지 않으시고, 그의 순진함과 상냥함을 보셨다(16:7, 12). 그러나 하나님은 장중함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서 왕을 선택하였을 때는, 다른 좋은 자질이 없어도 다만 위대한 인물로 보이게끔 키가 매우 큰 사람이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사울은 키가 컸던 것만큼 힘이 셌던 것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다. 삼손은 키도 크고 힘도 그만큼 셌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경시했으며, 그를 묶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팔아 넘겼다. 바로 그러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남달리 키가 크지만 힘이 약한 사람을 경원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열국들과 마찬가지로 왕을 원하고 있었으며, 그런 열국들은 보통 풍채가 당당한 사람을 그들의 왕으로 선택하고 있었다.

 

9:2 없음.

 

9:3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는 사울(사무엘 상 9:3-10)

Ⅰ. 위대한 인물도 그 출발은 미미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되기까지는 전혀 높은 지위나 또 명예로운 자리에 앉아보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 윗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수가 많다. 그러나 사울은 이웃 사람들과 똑 같은 지위에서 갑자기, 단숨에 왕위에 올라갔다. 한나가 노래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셨으며,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셨다" (삼상 2:8). 사울은 그 때 이미 결혼하였고 커다란 자텨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의 집에 살며 아버지의 수중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발탁되는 것은 우연이 되거나 또는 인간의 가능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Ⅱ. 커다란 사건도 작은 계기에서 비롯 된다. 역사는 얼마나 미미한 가운데서 시작되는가! 사울이 왕관을 쓰기까지의 자취를 더듬어 보면, 우리는 다른 모든 높은 자리에 앉게 된 사람들 모두 미미한 일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1. 사울의 아버지는 그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해 사울에게 사환 하나를 데리고 가서 찾아 오도록 하였다. 아마 그때 그들은 베냐민 사람 기스의 땅에서 여러 마리의 암나귀가 도망쳤다든가, 도둑맞았다고 하는 사실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소나 나귀를 잃었을 때 반드시 찾아와야 하며, 만일 그대로 잊어버린 채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된다는 좋은 법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은 누구나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 사람이 자기의 짐승들을 돌보는 것이 결코 자신을 천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녀들도 부모의 일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 들을 볼 수 있다.

사울은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으려고" 기꺼이 나섰다(3,4절). 사울이 암나귀를 찾아 나선 것은 그가 특별히 겸손하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은 거의가 그처럼 평범하고 단순하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것은 특히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의 일을 기쁨으로 하며, 윗 사람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굴욕적인 것이며, 괴로운 일일까? 사울은 어른의 말을 잘 순종하였다. 사울은 아들로서, 그리고 기스의 사환은 사환으로서 충실하였다. 그리하여 사환은 사울과 함께 보냄을 받았다. 사울과 사환은 암나귀들을 찾아 나섰다(아마 그들은 걸어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헛 수고했다. 그들은 암나귀들을 찾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찾던 것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실패를 불평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왕국을 찾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사울이 암나귀들을 찾지 못하게 되자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려고 생각하였다(5절). 그것은 아버지가 걱정하실까봐 그랬던 것이며, 그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헤매고 있으면, 야곱이 요셉에 대해 걱정했던 것처럼, 그가 혹 들짐승의 습격을 받지나 않았을는지, 혹은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나 않았을는지, 늙은 아버지가 근심할 것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늙은 아버지가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해 걱정하실까 두렵다" 는 생각이 사울의 마음 속에 일어났다.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에 근심을 끼치거나 놀라게 하여서는 안 되며, 언제나 그들의 근심을 덜어 드려야 한다.

3. 사울의 사환은 그 때 그들이 라마에 와 있으니만큼 사무엘을 찾아보고, 사무엘에게서 그들이 목적하여 왔던 일에 대해서 지시를 받아 보자고 제안하였다(아마 사환의 신앙이 주인의 신앙보다 더 두 터웠던 것 같다).

(1) 그들은사무엘이 살고 있는 성읍 가까이 와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무엘의 지시를 받기 위하여 그를 찾아갔다(6절).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나이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지혜있는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지혜를 찾아 나서는 길에서는 몇 발자국 걸어가지 않아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2) 그 사환은 사무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아는 바가 없고 다만 일반적인 명성만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존중하는 태도로 말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고 그 사환은 사무엘에 대해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고 그들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은 존귀함을 가져다 주며, 그로 하여금 위대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사무엘에 대한 존경의 내용이었다. 사무렐은 젊은 선지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은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3:19)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후 계속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 되었다.

(3) 사울과 사환은 "그들의 갈 길에 대해 사무엘이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 고 생각하고 그에게 가서 물어 보기로 합의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내용은 고작,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암나귀들을 찾을 수 있는 가망이 아직 있겠는가, 있다면 어디로 가여야 할 것인가라고 묻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논을 선지자에게 묻는다는 것은 사실은 가장 형편 없는 물음이다! 그들은 마땅히 이렇게 말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암나귀 찾는 일을 포기하자.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계신 곳에 가까이 와 있다. 가서 그에게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훌륭한 지식을 배우자. 그로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바른 말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율법의 말씀을 들어보자.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것이다. 그의 말씀을 들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이번 여행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 모든 건전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생각을 가져야만 했었는데, 이스라엘의 영광이어야 할 예언이 그처럼 보잘 것 없는 것이 되어 버렸던 것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언을 통해, 그들의 의무가 아니라 운수에 대해,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듣고자 한다.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을 수 있는 길을 가리켜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런 일보다는 그들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물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4)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 드리며, 그의 충고를 들은 대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였다(7절). "우리가 그에게 무엇을 드리겠는가?" 고 사울은 사환에게 물었다. 그들은 여로보암의 아내가 아히야에게 드렸던 것과 같은 떡과 과자의 예물을(왕상 14:3) 사무엘에게 드릴 수가 없었다. 그들의 식물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 사환은 자기 주머니 속에 돈 사분의 일 세겔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이것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면 어떤 지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8절). 사울도 "네 말이 옳다. 가자" 고 말했다(10절).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사울이 사무엘에게 줄 대가에 대해 말할 때 그는 그 자신이나 그의 후손들의 입장에서 사무엘을 헤아렸으며, "돈을 위하여 점치는" (미 3:11) 거짓 선지자를 생각했던 것이라고 한다.

사울은 사무엘을 한 사람의 선지자가 점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찾아갔다. 그러므로 사분의 일 세겔을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추세로 보아서 이해가 갈 수 있는 행동이었다. 신령한 것을 심은 자는 그를 고용한 사람으로부터 영원한 것 만 아니라 일시적인 것도 아울러 보상받은 것을 볼 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사무엘은 그들의 돈이 필요 없었으며, 만일 그들이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도 그들에게 어떤 지시를 서슴없이 내려 주었을 것이다(아마 사무엘이 그 돈을 받았다면,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무엘을 존경하며, 그의 하는 일의 귀함을 알고 있다는 표시로서 그 예물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 금액이 비록 적은 것이기는 해도 과부의 가산에 해당되는 것이며, 그래도 그들이 낼 만한 것이기에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사울은 그의 사환이 말하기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고자 하는 생각을 전혀 가지지 않았던 것을 보아서, 그가 예물이 없다고 말한 것은, 실은 선지자에게 가기를 반대해서 한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울은 자기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생각하고자 하지 않았다. 사환이 아량을 베풀며 말하자 그때서야 "네 말이 옳다. 그러면 가자" 라고 말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싸구려 신앙을 원하며, 신앙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5) 여기서 이 책을 기록한 역사가는 그 당시 사용되던 선지자의 명칭에 대해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는 말하기를 옛날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에서 "선지자" 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선견자" 라고 흔리 일컬었다고 말했다(9절). 선지자는 우선 선견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관한 것을 말하는 자는 그것들에 대한 직관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9: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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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을 찾게 된 사울(사무엘 상 9:11-17)

Ⅰ. 사울은 보통 있을 수 있는 방법으로 사무렐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 되었다(11-14절). 사울의 집이 있던 기브아는 사무엘이 살고 있던 라마로부터 20마일 밖에 안 되며, 사무엘이 자주 이스라엘을 위한 재판석을 마련하였던 미스바의 근처에 있었다. 그런데도 사울이 너무 파묻혀 살았으며, 공적인 일에 관심을 쏟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까지 한 번도 사무엘을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사울과 사무엘이 처음 만났을 때(18절), 사울이 사무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볼 때, 이 문제에 관해서 그들 사이에 어떤 비밀 약속이라든가 결탁이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여지가 없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께 대해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고 말했다(요 1:31). 그렇다고 해서 사울이 사무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1. 물 길러 나오다가 사울을 만난 라마의 소녀들은 사무엘에 관한 여러가지 지식을 사울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매우 상세하게 사무엘을 만날 수 있는 방법도 가리켜 줄 수 있었다(12,13절).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선지자들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를 찾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 소녀들은 아래와 같은 사실도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1) 그날 산당에서는 제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일반적인 절기이든 혹은 특별한 기도와 감사의 날이든 거기에 제사가 언제나 함께 따랐다. 그때 성막에는 여호와의 궤가 없었으며, 성막의 제단이 전처럼 소문이 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금 자기의 이름을 두실 곳을 택하시기까지, 성막의 제단에서만 제사를 드리도록 한정하시지 않으시고, 다른 곳에서도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을 내리셨다. 사무엘은 라마에 제단을 하나 쌓았으며(7:17), 그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다.

(2) 소녀들은 사무엘이 그 날 그 성으로 돌아 왔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그것이 순회 재판에서 돌아온 것인지 자기의 집에서 오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상관 없다. 사무엘은 그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리만큼 소문이 난 공인(公人)이었다.

(3)그들은 그 때가 바로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린 후에 가지게 되는 잔치의 시간이란 것을 알려 주었다. "지금 가면 산당을 향해 가는 그를 만날 수 있겠나이다" 고 소녀들을 말했다. 그들은 엄숙한 잔치의 시간을 알고 있었다.

(4) 사람들은 사무엘이 가기 전에는 먹기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사무엘을 기다리는 것은 단지 사무엘이 가장 귀한 손님이며, 사람들이 점잖은 태도를 보여야 하며, 어떤 사람이 생각하듯이 이 잔치를 베푸는 사람이며 또 그의 주관으로 제사를 드린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며, 사무엘은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사무엘이 이 잔치 위에 축복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1]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식사시에도 그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축복의 기원을 간청 드려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축복의 기원이 없는 음식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도없이 먹는 음식을 통해서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식사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과 그에게 우리의 의무를 다하리라는 것을 나타내 보여드려야 한다.

[2] 이것을 종교적인 집회의 경우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때 역시 사무엘은 축복을 하였다. 즉 사무엘이 기도하였으며, 그 제물과 함께 영적인 제물을 아울러 드렸다. 이것 역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거룩한 의무를 다 베푼 뒤에야 앉아서 먹었다. 우리의 영혼이 먼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제사에 따른 잔치도 역시 거룩한 의식이다. 그것 역시 기독교의 성만찬 모양으로 독특한 형식의 축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희생 제물의 덕분으로 그들이 그들이 하나님과 화해를 회복하였다는 표시이며, 그들이 은혜를 받는다는 표시이다. 사무엘은 그 잔치 자리를 축복하였다. 다시 말해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그의 특별하신 임재를 통해 이 의식에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기도하였다.

홀 주교(Bishop Hall)는 그 소녀들이 그 거룩한 잔치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 다음과 같은 것을 추측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매우 훌륭한 경건이 실천될 때 그 영향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도 미친다. 종교적인 고장에서 살 때 우리는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곁에서 선행이 실천되는 것을 보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2. 사울과 그의 사환은 가리켜 주는 대로 따라갔다. 그리고 다행히 그 성읍의 회당이라고 할 수 있는 산당으로 올라가는 사무엘을 만났다(14절). 이것은 매우 우연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위대한 사건의 전주로서 이렇게 일이 되어지도록 배려해 놓으셨던 것이다. 현명하신 하나님은 작고도 보잘 것 없는 사건들을 가지시고도 원대하고도 확실한 목적을 실행해 나가신다.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 않는다.

Ⅱ. 사무엘은 특별한 계시의 방법으로 사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무엘은 선견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있는 특수한 방법으로 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

1 . 하나님은 하루 전날 사무엘에게 다음날 이맘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처럼 "가지기를 원하던 그 왕이 될 사람을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셨다(15,16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셨는데" 그것은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듯 그의 마음에 대고 은근히, 부드럽게, 말씀하신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마 그것은 사무엘이 그 문제와 및 이스라엘 백성에 관한 다른 모든 문제들에 관해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위해 그에게 은밀히 기도드릴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사무엘이 한 번 "하나님의 귀에 대고 고한" 일이 있다(8:21).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귀에 알게 하셨다." 그것은 다정하고 친밀한 관계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는 말씀하시기" 때문이다(암 3:7). 하나님은 사무엘이 놀라지 않도록 미리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사무엘로 하여금 그처럼 위대하고 중요한 일을 당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그와 같은 잔치와 제사를 마련시키신 것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모든 구체적인 계획은 마음 속에 간직하시고서도 다만 그에게는 귀에다 대고 속삭여 주셨을 것이다.

히브리어로는 그 말을 "여호와께서 사무엘의 귀를 열어주셨다." 고 읽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하나의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귀를 열어 주시기도" 하신다. 우리는 원래 덮여진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욥 33:14).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자 하시면, 귀를 열어 주시며, "에바다" 즉 "열리라" 라고 말씀하시고(막 7:34). "심령의 수건을 벗겨 주신다 "(고후 3:16).

하나님은 비록 불쾌하시기는 하시면서도 왕을 구하는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진노 가운데서도 자비를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은 그들을 거듭거듭 "내 백성" 이라고 부르신다. 아무리 심술궂고 성가신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내 백성" 이라고 하신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다스릴 사람을 보내 주신다. 그것은 그들이 머리없는 몸이 되지 않도록 하며, "그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한"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후자의 이유 때문에 왕을 가지기를 원했을 것이다.

(3) 하나님을 자비하신 심정으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왕을 주셨다. "내가 내 백성의 곤욕을 보았으며, 그들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노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심술궂은 애라 할지라도 너무 울다가 가슴이 터질까 두려워서 자기 애를 달래듯이, 하나님도 그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셨다(패트릭 주교가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다시금 그들이 왕으로 인하여 받는 고욕 때문에 부르짖어도 응답지 않으실 것이지만(8:18), 아직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가운데 그들의 이웃들의 강폭한 손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한 도구로 쓰기 위해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셨는데, 사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왕을 원했던 것이다.

2. 길거리에서 사울이 사무엘 곁으로 가까이 왔을 때 하나님은 다시금 사무엘의 귀에다 속삭여 주셨다(17절).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다. "사울은 남달리 키가 큰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무엘은 가까이에서 그를 뚫어지게 쳐다 보았을 것이다. 더우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보내 주실 만한 때가 되었으니 만큼 그를 더 자세히 살펴보았을 것이며,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행동은 조금도 부자연스런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통할할 사람이라" 고 말씀하셨으므로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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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환대를 받은 사울(사무엘 상 9:18-27)

하나님의 섭리는 드디어 사무엘과 사울이 한 자리에 모이게 하셨다. 여기에는 성문과 객실에서 은밀하게 그 둘 사이에 주고 받은 말이 기록되어 있다.

Ⅰ. 사울은 성문을 지나가면서, 그 성문 아래서 사무엘을 보았다(18절).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가 사무엘 본인인데도 그에게 사무엘의 집으로 가는 길을 가리켜 달라고 부탁하였다."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가리켜 달라" 고 말했는데 거기 가면 사무엘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디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은 그처럼 위대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외모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던 가를 생각해 보라. 그는 위세를 부리지 않았으며, 수행원을 거느리거나, 어떤 표시를 하고 다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보통 사람과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것을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그에게 어디로 가면 사무엘을 만날 수 있는가를 물어 보았다. 사무엘은 선지자로 보이기 보다는 문지기로 보였기 때문에 그에게 선견자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이처럼 흔히 귀중한 것이 천한 외모 속에 숨겨져 있을 때가 많다. 사무엘은 사울이 찾고 있는 것은 그 집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내가 바로 네가 찾고 있는 선견자다" 라고 대답했다(19절). 사울이 사무엘을 알기 전에 사무엘은 사울을 알아봤다. 이처럼 영광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가 된다(갈 4:9).

1. 사무엘은 다음날까지 자기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사울에게 호의를 보여 주었다. 그 날의 중요한 행사는 제사이며, 그 나머지 시간은 거룩한 잔치를 위해 보내야만 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일은 가게 하겠다. 지금은 나보다 먼저 산당으로 가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이야기 하자." 사울은 암나귀들을 찾을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가 그런 걱정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를 원했다. 먼저 경건의 연습을 쌓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자기보다 먼저 "산당으로 올라가라" 고 하였다.

2. 사무엘은 사울로 하여금 암나귀에 대해 안심하게 만들어 주었다(20절).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으니라. 거기에 마음을 쓰지 말라." 사울은 사무엘이 그가 찾고 있는 것에 대해 해답을 주었으며, 그의 생각을 알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선지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다면, "하나님 자신은 얼마나 더 우리의 생각을 아실 것인가" 라고 믿게 되었다.

3. 사무엘은 사울의 앞길에 놓여 있는 출세의 길을 보여 줌으로 그를 놀라게 했다.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그들이 원하는 것은 왕이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의 뜻에 알맞는 사람이 너 밖에 또 있겠느냐?" 아직까지는 이스라엘 온 나라가 그에게 정권을 맡기리라라고 눈여겨 본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나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선임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울은 그들의 원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출세는 아브넬이나 그 밖의 사람들과 같은 그의 집안이 나 친족들의 영달을 가져다 줄 것이다.

4. 이런 놀라운 소식에 대해 사울은 겸손하게 대답하였다(21절). 사울은 생각하기를, 자기는 비록 키가 크나, 왕이 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무엘이 자기를 놀리는 줄 알았다. 역사가를 말하기를(1절), 그의 부친은 "유력한 사람" 이라고 하였는데, 사울 자신은 자기의 지파 및 자기 집안에 대해서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야곱의 막내 아들인 베냐민은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소년이라고 일컬어졌으며(창 44:20),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의 싸움에서 많은 수가 멸절되어 적은 수만 남았나이다. 나는 그런 베냐민 사람이며, 그 중에서도 내 집은 제일 미약한 집안입니다." 기드온도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한 바가 이다(삿 6:15). 겸손한 태도는 출세와 영달을 위해 가장 좋은 조건이다.

Ⅱ. 사무엘은 공적인 잔치 자리에까지 사울과 그의 사환을 데리고 갔다. 사울의 출세는 사무엘의 입장을 약화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선지자인 사무엘은 사울에 대해 시기하거나, 악의를 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장 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에게 영예를 씌워주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매 그가 자기의 다정한 친구이거나 신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무엘은 그를 자기의 식탁에 초대하는 것을 마음 중심에서부터 우러나와서 환영하였던 것이다.

사울에게 음식을 접대한 것은 사울이 한 말을 보아서(7절) 매우 알맞는 초대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울은 그 때 가지고 있던 돈이나 음식을 다 허비하였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무엘은 사울을 보통 사람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를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 대해 주었는데 이는 사울이나 백성들에게 다음에 일어날 일을 준비시켜 주고자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 사무엘은 사울에게 두 가지의 명예를 높이 올려 주었다.

1. 사무엘은 사울을 청한 자 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자리인 수석에 앉게 하였으며"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라" (눅 14:9)고 말하였다. 가령 그 성읍의 읍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여 상좌에 앉겠다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 잔치의 주인은 사울과 그의 사환으로 하여금 "수석에 앉게" 하였을 것이다(왜냐하면 사환은 사울이 왕이라고 볼 때 국무총리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존경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사람들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2. 사무엘은 사울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것은 그 전날 사울이 오리라는 소식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고(16절), 그를 위해 준비해 놓으라고 요리인에게 부탁하였던 것이다. 왕의 선출을 위해 주의 깊게 마련해 놓은 이 음식은 어떤 것이었던가? 어떤 사람은 그것이 매우 호화스러운 것이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양 어깨쭉지 부분의 고기였다(23,24절). 화목 제물의 오른쪽 어깨쭉지 부분은 제사장의 몫이며(레 7:32), 그 다음 높은 자리에 있는 이에게는 왼편 어깨쭉지를 주도록 되어 있다. 보통 그것은 잔치 자리의 상좌에 앉는 이에게 주는 것이며, 늘 사무엘의 몫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한 접시를 사무엘이 사울에게 준 것은 사울의 입장을 은연중 암시하는 것이었다고 보인다.

어떤 사람은 이 음식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 보고자 한다. 어깨는 힘을 나타내며, 어떤 사람들 생각대로 거기에 붙어 있는 가슴 부분은 사랑을 나타낸다고 한다. 왕은 "정사를 어깨에 메고" 그 무거운 짐을 감당해야 하며, 백성들을 가슴 속으로부터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Ⅲ. 두 사람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과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를 나누었다(25,26절). 사무엘은 이때 사울에게 왕을 원하는 백성들의 요청, 백성들의 요청의 근거,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 등 이 문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조용히 살던 사울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놀랄만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이 곧 하나님께서 정권을 맡기기로 택한 사람임을 말해주며, 따라서 사무엘은 사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계승하게 될 것등을 말해 줌으로 그를 안심시켰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사무엘이 사울을 집으로 보내는데, 한동안 길을 따라 나서서 함께 걸어갔다. 그리고 사울의 사환을 먼저 보내도록 시켰는데 그것은 그 두 사람만이 남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27절). 그리고 다음 장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에게 기름을 부었으며, "여호와의 말씀" 을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그 거룩한 의식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위대한 선지자 그리스도는"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요일 2:27),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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