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의 쇠약과 그의 아들들의 타락(사무엘 상 8:1-3)
두 가지 서글픈 이야기를 우리는 여기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들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1. 훌륭하고 유용한 인간도 늙으면 일을 못하게 된다(1절). "사무엘이 늙었다." 그리하여 전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릴 수 없게 되었다. 현재 그의 나이는 60을 넘은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사무엘은 쉬 늙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였으며, 문제에 고심해 왔다. 그리하여 그것이 그로 하여금 나이에 비해 너무나 빨리 늙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맨 처음에 익은 열매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는 그의 힘과 정신을 온통 공무를 위해 애써 바쳤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전처럼 떨치고 나서야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이가 그를 쇠잔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생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때 그런 일을 할 기력이 쇠퇴한 것과 그리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2. 위대한 사람의 아들들이 곁 길로 나가며, 그의 뒤를 따르지 않는다. 사무엘이 그의 아들들에게 훌륭한 교육을 가르쳤으며, 그들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사무엘로 하여금 품을 수 있게 하였으며,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았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한동안 그들을 그를 돕는 사사로 임명하였으며, 나중에는 라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브엘세바의 사사로 삼았다(2절).그 곳은 남부 지역 사람들이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라마까지 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곳에 상주해 주기를 요청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엘이 그들을 사사로 임명한 이유는 그들이 자기 아들들이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그에게는 기드온 이상으로 자기의 정권을 아들들에게 계승시키고자 하는 야망이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나타난 것으로 보아서는 매우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늙은 사사를 평안히 해 드리며 그의 짐을 가볍게 하여 드리고자 하는데 있어서(기왕이면 - caeteris paribus) 아버지 때문에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일을 하는 데 여러 가지로 유리한 점이 많은 그의 아들을 임명했다는 것은 조금도 잘못이 아니었다. 그들이 잘만 했다면 그들은 조만간 위대한 사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의 아들들이 그의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3절). 그들은 매우 훌륭한 인물이었던 그들의 부친과는 정반대의 성품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닮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참으로 불행한 사실이었다. Degeneran i genus opprobrium -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자가 타락하면 그만큼 더 비난을 받는다.
큰 은혜를 받은 자가 반드시 그 은혜를 자손들에게 넘겨 줄 수는 없다. 의인들이 후손이 조상들의 좋은 길을 따르지 않고, 그 길을 훼손하며, 욥이 말한 바와 같이 그 길을 유린하는 것이 가끔 의인들을 서글프게 만든다. 아니 대부분의 그들은 처음에 바른 길에 들어섬으로 그들의 부모나 친구들이 많은 희망을 걸 수 있게 하였는데, 나중에 곁 길로 새어 나감으로 그들에게 기쁨을 걸었던 사람들은 비탄에 빠지게 하는 일이 더욱 많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로 임명받고 멀리 가서 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1) 좋은 교육을 받고 부모의 감시 밑에서 바르게 처신하던 많은 자녀들은 멀리 세상 속으로 떨어져 나가 부모의 감시를 벗어날 때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나 자기 부모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하여야 한다.
(2) 많은 사람들이 보잘 것 없는 낮은 자리에 있을 때는 일을 잘 하지마는, 높은 자리에 앉으며 권세를 가지게 될 때는 제멋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명예와 지위가 사람이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잘못된 대로 변화시킬 때가 많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엘리의 아들들처럼 그렇게 모독적으로 악독하였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볼 때 그들은 사사의 직분을 더럽혔다. 갈데아역에 의하면 그들은 "탐욕을 따라서 불의한 재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 고 읽을 수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딤전 6:10). 돈은 모든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만 특히 재판관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사무엘은 뇌물을 받지 않았다(12:3).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받았다. 사무엘은 분명히 그들을 사사로 임명할 때 이에 대해서 경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판결을 굽게 하였다. 그들이 판결을 내리려고 결정할 때, 그들의 눈은 법을 보지 않고 뇌물을 바라 보았을 것이며, 누가 바른가를 묻지 않고, 누가 더 많은 액수의 뇌물을 바쳤는가를 헤아려 보았을 것이다. 만일 공의가 무너져, 옳다는 판결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잘못된 판결을 받는다면 이처럼 큰 슬픔은 없다.
왕을 원하는 백성들(사무엘 상 8:4-22)
여기서부터 전혀 새롭고도 충격적인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왕권 통치가 시작되는 사건이었다. 아마 이 문제는 실제적으로 상당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끔 논의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 번도 공식적으로 제안되거나 논의가 되지 않았다.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일컬어지고 있지만(삿 9:22), 실상은 이름뿐인 왕에 불과했다. 아마 그의 멸망은 타르킨(Tarquinius)이 로마에 대해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왕이란 칭호가 가증한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런 증오가 불식 되었다. 그리하여 거대한 혁명을 위한 대담한 발걸음이 옮겨져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Ⅰ. 이 문제에 대해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말했다(4,5절). 그들은 아무런 이의 없이 "다 함께 모였다." 그들은 조금도 폭동을 일으키고자 하는 태도는 없이, 라마에 있는 사무엘의 집을 찾아와 그에게 다만 정중한 태도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전했다.
1. 그들의 불평을 다음과 같은 짧은 한 마디의 말로 나타냈다. 그것은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합니다" 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기 때문에 이웃 백성들의 침략을 받았으며, 또는 내분이 있었다고 보며, 그들에게도 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청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파당심이 어떤 변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1) 사무엘이 늙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나이가 들므로 순회 재판을 열지 못하고 한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만 했다면 그만큼 그는 지혜로와지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며,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늙었다면 그가 하는 일에도 보다 완숙해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을 나이가 늙었다고 버리고자 하는 것은 불친절하며 은혜를 모르며, 나아가서는 불이한 일이다. 하나님은 젊은 시절에도 그를 비천하게 내버려 두시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 마땅히 두 배의 존경을 드려야 할 때에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천대하였다. 늙은이들이 쇠약하다는 이유 때문에 비난받고 물러서야만 한다면 그들이 하는 일도 도무지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사무엘은 실제로 그러 했으니까.
(2) 그의 아들들이 그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사무엘 자신도 괴로워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사무엘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사무엘은 엘리와 같이 자식들을 그대로 악행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 대한 책망을 다 받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하지 못하도록 사무엘이 그들의 직분을 휴직시키며, 벌을 주도록 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로들은 그 정도의 처사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2.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그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 주는 것이라고 그들은 간청하였다.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라고 그들은 청했다. 그들이 사무엘에 반항하여 그들 자신의 vi et armis - 폭력으로 그들의 왕을 세우지 않은 것만은 잘한 일이다. 그들은 이 일을 사무엘에게 의탁하였으며 그가 왕을 세워 주도록 겸손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방식이야 어떻든 그것은 잘못된 제안이었으며, 하나님을 노엽게 만든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무엘이 죽은 뒤에 그들을 다스릴, 그의 마음에 드는 왕을 하나 세워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앞질러 가며 사무엘이 늙었을 때 그러한 왕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직접 통하는 가운데 그들을 다스리는 선지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어느 민족 보다도 행복한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없었다" (신 4:7). 그러나 이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열방과 같이" 화려한 외모와 권세를 가지고 그들을 다스릴 왕을 가지기를 원했다. 보잘 것 없는 겉옷을 걸친 선지자는 비록 전능자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겉모양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서 자색 옷을 입고 많은 호위병과 신하들을 거느리신 왕은 그들이 볼 때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런왕을 그들은 원했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왕의 칭호를 주고 왕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으로 알고, 그에게 다른 한 사람을 지명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아들들보다 지혜로우며, 선하며, 그리고 보다 판결을 잘 내릴 수 있는 왕을 세워주십시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그럴 듯한 모습만이 이면 누구든 상관하지 않을 터이니 "임금을 세워달라" 고만 말했다. 이처럼 그들은 어리석게도 그들의 행복을 떨쳐 버리고, 그리고 저들 백성의 위엄을 열방들의 위엄과 같은 자리로 끌어 올리고자 한다는 명목으로 실제로는 그들의 장점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면류관을 땅에 던져" 모독하기에 이르렀다.
Ⅱ. 이러한 요청을 사무엘은 기뻐하지 않았다(6절). 그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알아 보자.
1. 그의 마음이 찢기는 듯 하였다. 아마 그는 그러한 그들의 생각을 미리 들은 바가 없었을 것이다. 사무엘을 화나게 한 것은 그가 쇠약하였다는 것과 그의 아들들이 불법한 일을 행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가 아니었다(사무엘은 그자신과 그의 가족에 대해 비방하는 것은 얼마든지 참고 들을 수 있었다).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는 화를 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명예를 비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2. 그는 무릎을 꿇었다. 사무엘은 즉석에서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이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위해 시간을 내었으며,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위해 기도하였다. 그는 기도를 통해 이 문제를 하나님께 내놓았다. 사무엘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일에 우리의 구할것을 하나님께 아뢰면" 우리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빌 4:6, 7). 어떤 곤란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동시에 우리의 이익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신다.
Ⅲ.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라는 것을 지시하여 주었다. 난국에 처하여 하나님을 찾는 자는 그의 가까이 계셔서 그를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셨다.
1.하나님은 사무엘의 불쾌함을 씻어 주셨다. 사무엘은 그런 요청을 받고 매우 당황 하였었다. 사무엘은 자기의 예언자적 직무가 경시 되었다는데 대해 크게 당황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었던 모든 친절이 배은망덕으로 돌아 왔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조금도 언짢게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고 일러 주셨다.(1) 그는 이 문제를 그렇게 괴롭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해 배신한 것이라고 하셨다. "백성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린 것이다. 나도 너와 똑같이 모욕을 당하고 있다" 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가 받는 냉대와 우리에게 부어지는 멸시를 함께 받는 것이라면 우리는 감히 이를 참고 감당할 수 있다. 우리는 "주를 위해 받는 훼방" 을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없고(시 69:7), 도리어 이를 기뻐하며 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골 1:24).
사무엘은 그들이 사무엘의 정치 체제를 싫어한 것이라고 불평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정치 체제를 싫어하였다. "그들이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로다" 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열방을 치리하셨다" (시 47:8).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리신 방법은 보다 독특한 신정 정치의 방법이었다. 사사들의 소명과 사명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그들의 국사도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에 따랐다. 그들의 통치 체제의 구성은 물론 그 행정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란 전제 밑에서 시행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행할 때 그들은 이런 체제 속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또 영광스러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법을 싫어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시키면 그들은 사실보다 더 비참한 재난을 당하게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백성들처럼 그렇게 쉽사리 죄를 범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마 그들은 이런 이유때문에 다른 열방의 백성들과 같은 입장에 서고 싶어서 그런 요청을 하였을 것이다.
(2) 사무엘은 이상스럽다거나 놀랍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그런 백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림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8절). 처음에 그들은 사무엘을 몹시 존경하였으며 순종하였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강퍅한 성품을 버리기 시작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자기가 속았다고 하는 것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세와 아론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언제나 통치자들을 욕보였으며, 아니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도 하였다." 새로운 신에 이끌리는 큰 죄에 비해 보면 새로운 정치 체제에 매혹을 느끼는 것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무엘은 그들이 배반할 수 있는 족속이라고 생각하여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 라고 일컬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사 48:8). 이것은 "어려서부터의 그들의 습관이었다" (렘 22:21).
2.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들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다면 사무엘은 어떻게 말해야 했을는지 몰랐다. 만일 그가 그들의 요청을 거부하였다면, 그는 선지자가 아니라 세력과 지배를 좋아하는 자와 그리고 자기 아들들을 제멋대로 살게 만드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또 만일 그가 그들의 요구에 굴복 되었다면, 그는 그의 진실을 배반하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며, 변화로 말미암아 오는 모든 잘못된 결과에 대한 보조자가 되었을 것이다. 아론은 "우리를 위하여 신을 만들라" 고 말하는 사람들을 좋게 해 주다가 죄를 범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왕을 만들어 달라" 고 말했을 때, 그들의 말을 응락해 줄 수가 없었으며, 하나님께서 들려 주시는 대답을 듣고 확실히 말할 수 밖에 없었다.
(1)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그들이 왕을 가질 수 있다" 고 전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백성들이 하는 말을 들어야" 만 했다(7,9절). 결코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기쁘게 생각하신 것이 아니시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방해 하듯이, 또 어떤 때는 우리를 노엽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하는 대로 내버려 두시기도 하시는데, 이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우리에게 왕과 방백을 주소서" 라고 그들이 말했을 때, "하나님이 분노하므로 그들에게 왕을 주었으며" (호 13:10, 11 참조), 그들의 소욕대로 내버려 두셨다(시 106:15; 78:29). 하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그들의 요구에 만족시켜 주라고 사무엘에게 명령하셨다.
[1]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채찍으로 그들 자신이 매맞도록 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와 왕의 통치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많은지를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이다(대하 12:8 참조). 그들은 얼마 안 되어서 모든 면에서 볼 때, 그들의 형편이 사울의 때가 사무엘의 때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그것은 보다 악한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그들의 뜻이 용납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사무엘에 대해 반역하던지 또는 더 나가서 그들의 신앙에 대해 전반적으로 모반을 일으켜 다른 나라의 신들을 섬겼을 것이며, 그들처럼 왕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스스로 그렇게 하도록 하기 보다는 차라리 왕을 세워 주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3] 하나님은 그런 일을 통해서도, 자신의 영광을 거두실 수 있으셨으며, 그런 그들의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시고도 하나님 자신의 지혜로운 목적에 봉사하도록 하실 수 있으셨다.
(2) 그러나 사무엘은, 그것 말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가지게 될 때 얼마 안 가서 싫증을 느낄 것이며, 그들이 잘못 선택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할 것이나, 그 때는 이미 때가 늦었을 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만 했다. 사무엘은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여야만" 했다(9절). 동방의 왕들이 그들의 신하를 다스리듯이, 그들을 다스릴 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일 가지게 되면, 그들의 짐이 매우 무거울 것임을 사무엘은 알려 주어야만 했다. 그들은 다만 왕들이 가지고 있는 화려함과 장엄함만을 보았으며, 그리고 왕을 가지게 되면 다른 열방들 사이에서 그들의 나라를 위대한 나라. 우월한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원수들에 대해 무서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들에게 그런 화려함을 위해 그들이 치러야 할 댓가가 얼마나 무거운 것이며 열방의 왕들이 휘두르는 전제적인 권력이 얼마나 감당키 어려운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명령 하여야만 했다.
그의 마음을 지나치게 세상의 것에 두는 자는 그의 욕망을 조절하기 위해 그것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이점과 함께 불리한 점을 아울러 생각하여야 하며 또 사물의 한 면만 아니라 또 다른 일면도 아울러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과 육체의 지배에 굴복하는 자는 그들의 주인이 얼마나 엄한 자이며, 죄의 지배가 얼마나 포악하다는 말을 분명히 듣고 알고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세상의 통치를 받으려 하고 있다.
Ⅳ.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실히 전달해 주었다(10절). 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일러 주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개하셨으며, 그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거부로 해석하고 계시는 것과 그리고 그것은 곧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으로 간구하셨다는 것과 그러나 그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주장을 고집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 하시리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더우기 사무엘은 그들의 선택으로부터 오는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밝히 말해 주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그들의 이해 관계에 대해 사실을 이야기하여 주면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철회하며, 현재의 상태대로 그대로 머물기를 원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서 사무엘은 그들에게 일반적인 왕의 권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 에 대해서 열방이 왕실 제도에 의거하여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11절). [패트릭(Patrick) 주교가 주석한 것과 같이] 사무엘은 이 문제에 대해 정당하고 정직한 왕의 권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권리는 왕의 의무에 관해 기술한 모세의 율법의 한 부분의 기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며, 당시 널리 보급되어 있던 열방의 왕들이 가지고 있던 권리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곧 왕의 제도이라" 고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말한 그 제도의 내용인즉 이런 것이었다. 즉 "왕은 자신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하여 너희의 가장 귀한 것들을 허비할 것이며, 권세를 가진 자들이 흔히 하듯이 자기의 권세를 남용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 군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희는 그에게 반드시 복종해야 할 것이다."
1.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처럼 그러한 왕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먼저 생각해야 했던 것이다.(1) 왕은 그를 시중들 많은 심부름꾼들과 시종관들을 필요로 할 것이며, 그의 병거와 말을 이끌 마부들과 그의 병거를 호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병거에 앞서 달릴 사람들을 반드시 필요로 할 것이다. 많은 수의 수행원들을 거느리는 것이 왕자들이 주로 꾸미는 위세이며, 위인들의 허풍이다. 왕은 무엇 때문에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할까? "왕은 왜, 자유자로 태어났으며, 자유롭게 교육을 받고, 지금 너희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너희의 아들들을 자기를 위해서만 봉사하도록 임명하려고 할까?" (11절) 그들은 왕을 섬기며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지금까지 부모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던 사람들이 왕을 위해서 일해야 하며, "왕의 땅을 갈고 그의 추수를 거두어 들여야 "하며(12절), 그리고 이것을 그들의 자유로 생각하기조차 한다. 이것은 매우 큰 변혁이다.
(2) 왕은 풍성한 식탁을 꾸밀 것이며, 사무엘이 그러했던 것과는 달리(9:13), 제물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고기 반찬과 산해진미를 마련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이런 것들을 마련하여야 할까? "왜 왕은 너희의 집안 일을 돌보기를 바라는 너희의 영리하고 재간 있는 딸들을 취해서 자기의 일을 시키며, 너희가 원하든 말든 그들을 데려다가 떡 굽는 자나 요리사와 같은 일을 시키려는가?"
(3) "왕은 경비와 수비병으로 활약할 상비군이 필요할 것이며, 너희의 아들들은 너희 성읍의 장로들이 되어 집에서 조용히 살며, 명예를 누리는 대신, 천부장과 오십부장이 되어 정복자를 기쁘게 하여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4)" 너희는 왕이 많은 수의 충신을 두고, 그들에게 권세를 주며, 지위를 높여 주고, 그들을 부자로 만들며 그들의 명예에 어울릴 만한 많은 재산을 나누어 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의 재산을 가지지 않고는 달리 다른 데서 그것들을 마련할 수는 없지 않은가?" (14절) 왕은 너희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았으며, 또 너희의 후손들에게 물려 주기를 바라는, 너희 밭과 포도원을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을 취할 것이다. 그는 또 그것을 자기만 취하지 않을 것이다(그렇기만 한다면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그것을 취하여 너희의 상전이 될 그의 신하들에게도 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희의 수고로 얻은 것을 지배할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좋게 여길 수 있겠는가?"
(5) "왕은 그의 위세와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수입이 필요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수입을 너희에게서가 아니며 어디서부터 얻을 것인가? 왕은 너희 땅의 소출의 십일조와(15절), 양떼의 십일조를(17절) 취할 것이다. 너희는 이 중의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십일조를 바쳐야 하는데 그것만도 너희에게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왕을 가지게 되면, 그는 왕실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너희에게 너희 재산 가운데서 내어야 할 십일조를 보다 더 존엄하게 부과시킬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부담하여야 할 그 막대한 비용을 생각해 보라."
2. 이것이 그들의 불평의 씨앗이 될 것이다.
(1) 그들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불평할 것이다. 한 때 그들은 왕에게 직접 불평을 토한 일이 있다. 그러나 열방의 왕들 모양으로 그 대답은 "너희의 멍에가 무거우나, 나는 더욱 무겁게 하리라" 는 대답을 들었다(왕상 12:11).
(2) 그들이 하나님께 불평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지 않으실 것이다(18절).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응답하시리라 기다릴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훈계에 대해 귀머거리였었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이러한 재난이 닥쳐왔고,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말해 주셨는데도 이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불의한 욕망과 계획 때문에 재난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기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길을 잃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우리를 선대하시지 않으시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된 것이며, 우리 자신의 손으로 그 관계를 회복 하여야 한다.
Ⅴ. 백성들은 그들의 요구를 계속 고집하였다(19,20절). 누구를 속이지도 않으시고 속지도 않으시는 하나님 자신이 그 결과에 대해서 그처럼 설명하였으면, 백성들은 그들의 요구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이를 내릴 것 같은데, 그들은 그 결과가 좋든지 나쁜든지, 옳든지 그릇되었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원한다고 고집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계속 주장하였다. "하나님이나 사무엘이 아무리 반대하여도 우리는 우리를 다스릴 왕을 가지고자 한다. 우리가 아무리 값비싼 댓가를 치르며, 우리 자신이나 후손들에게 불편함을 가져 온다고 하여도 우리는 왕을 가지고자 한다."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보라.
1. 그들은 바른 말씀을 듣지 못했으며, 그들의 이해관계를 보지도 못했다. 그들은 사무엘의 논란에 대답할 수 없었으며, 그 설득력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요구를 더 완강하게 고집하였으며, 더 오만한 자세를 취했다. 전에는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라고 하였었는데, 이제 와서는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이다" 라고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왕을 가지고 싶으며우리의 뜻에 거슬리는 말은 듣고자 하지 않는다" 고 바뀌게 되었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가 얼마나 모순된 것이며, 어떻게 그들의 이성(理性)을 가진 인간들을 짓밟고 있는가를 보자.2.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기다릴 수 없었다. 때가 이르면 이스라엘 왕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율법 속에 암시한 바가 있으시다(신 17:14, 15). 그리고 아마 그들은 그 때가 멀지 않았다는 암시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너무 조급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w 동안에 우리를 다스릴 왕을 가지고 싶다." 그들이 만일 십년이나 혹은 십이년만 기다렸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다윗 왕을 모실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울을 왕으로 세움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임했던 재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급작스런 해결이나 조급한 욕망은 그들을 오랫동안 후회하게 만든다.
3. 그들이 왕을 가지기 원했덛 목적은 전처럼 저희들도 열방들과 같아지며, 하나님께서 자기들보다 진보하게 만든 그런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하는 목적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왕이 그들을 다스리며 싸움이 났을 때 앞장서 싸워주기를 바라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참으로 어리석고도 지혜가 부족한 백성이었다.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해도 바로 앞서의 경우에서와 같이 사무엘의 기도와 하나님의 우뢰를 통한 싸움보다 더 잘 싸워주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7:10) 왕이 싸워 준다는 것이 승전을 확신시켜 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확실성을 가지지 못할 때 그들만은 싸움에 이길 수 있다고 볼 수 있었을까? 그들은 그들의 특전에 싫증이 났던 것 같다. 그들의 사사 가운데는 아무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최초의 왕과 또 마지막으로 매우 훌륭하였던 왕인 요시야도 모두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했다.
Ⅵ.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곧 흩어졌다.
1. "사무엘은 백성의 모든 말을 듣고 여호와께 고하였다" (21절). 사무엘의 보고가 없어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선지자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그를 보내신 분에게 회답을 드리며, 다시금 하나님께서 내리실 차후의 지시를 기다렸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고 있는 문제와 상황을 익히 아시고 계시면서도 우리에게서 직접 들으시기를 원하신다. 사무엘이 "여호와께 고하였다" 고 한 것은 그가 혼자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자 하는 기도에 사무엘과 함께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 가운데서 허락하신 친밀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들은 마치 친구들에게 속삭이듯 여호와의 귀에 대고 아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다" (요 4:32).2. 백성들이 지나치게 왕을 가지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도록 지시하셨다(22절). "그들에게 왕을 세워주라. 그리고 그에게 충성을 다하게 하라. 만일 그들이 그렇게 애써 보기를 원했던 그 위세와 권세가 그들에게 짐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저들 스스로에게 감사하게 하라." "그리하여 하나님은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셨다" (롬 1:24).
사무엘은 이것을 그들에게 일러 주었다. 그러나 당장은 그들을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왜냐하면 왕의 임명은 하나님께 맡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제 더 할 일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선택이 끝난 뒤 사무엘에게 알려 주면, 그들은 사무엘에게서 듣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한 동안 그들은 고요히 지내며 문제의 해결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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