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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기럇여아림에 간 하나님의 궤(사무엘 상 7:1,2)

여기서 우리는 기럇여아림에 있는 하나님의 궤에 대한 기사를 보고는 약 40년 후 다윗이 그 궤를 옮겨 갈 때까지 (대상 13:6) 다만 한 번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14:18).

Ⅰ.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축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을 그들의 짐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궤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향기" 가 아니라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 가 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게 되었다.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기쁨으로 궤를 그들에게로 옮겨갔다(1절). "그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겼다" 는 말씀이 맨 처음에 나왔다. 그들의 이웃인 벧세메스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받아들일 때 만큼 그것을 떠나보낼 때는 기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궤로 말미암은 벧세메스에서의 살륙은 자의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땅한 응보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살륙을 당한 자들은 하나님의 궤를 원망할 것이아니라,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달아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렘 25:6)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성례를 더럽히는 자에 대한 그의 심판은 그 성례를 두렵게 생각지 않게 하고, 오히려 그것들을 더럽히게 하며, 잘못 사용하게 하는 데서 부터 시작된다.

2.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때 참으로 귀한 손님을 환영하며 맞이 하듯이 존경과 외경, 그리고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환대하는 가운데 모시고 갔다.

(1) 그들은 궤를 모실 만한 합당한 장소를 준비하였다. 그들에게는 궤를 안치할 공적인 건물이 없었다. 그러나 아비나답의 집에 모셨는데 그 집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아마 그 성읍에서 제일 좋은 집이었을 것이다. 또 아마 그 집주인은 그 성읍에서 가장 경건하며, 하나님의 궤를 매우 사모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들판에 있는 돌 위에 하나님의 궤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으며, 제사장의 성음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기 집에 그것을 모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평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집안으로 모셨는데, 아마 그 집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모셨을 것이다.



[1] 하나님은 그 궤를 안치할 곳을 찾아 내신다. 한 사람이 그것을 몰아내면 다른 사람의 그것을 모셔 들이고자 마음이 동한다.

[2] 하나님의 궤가 개인의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은 결코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아직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공적인 장소를 구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집에서 집으로 돌아다니며 설교하였다.

[3] 때로는 이스라엘의 평민들이 신앙적인 면에서 제사장들보다 더 잘 할 때가 있으며 그들을 부끄럽게 할 때가 있었다.

(2)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준비하였다. "그들은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다." 그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그가 나이가 많아 허락했기 때문이거나 또는 자기의 집을 돌보아야 하는 일 때문에 그 일을 시키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아마 신앙이 깊고 경건한 젊은이이며 동시에 그러한 최상의 일을 할 만큼 열심이 있었을 것이다.

엘리아살의 일은 심술궂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궤를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는 것일 뿐 아니라, 호기심에 가득찬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지거나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는 궤가 놓인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늘 고상하게 꾸미는 일을 하여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궤가 비록 궁벽한 곳에 안치되어 있기는 해도, 아무도 돌봐주는 이가 없는, 무시된 상태로 내버려진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엘리아살을 레위 족속, 더우기 아론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지 않다. 또 그가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번제를 드리거나 향을 피울 제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몇몇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 앞에 와서 기도하였을 것이며 그는 그때마다 그들을 도와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들은 그를 성별하였으며, 그의 동의를 얻어, 그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시켰으며, 늘 이 일에 종사하도록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 성읍에 있는 모든 이름들 가운데서 그를 따로이 세웠다.

이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당하고 있는 난점에 비추어 볼 때 능히 용서받을 수 있는 처사이다. 하나님의 궤가 금방 포로에서 해방된 것과 같은 상황에서는 급작스럽게 정식으로 엄숙한 가운데 모시기는 기대하기 어렵고, 있는 형편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Ⅱ. 하나님의 궤를 여기에 그대로 둔다는 일은 서글픈 일이다. 다시금 실로에 잘 모셔야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해도 그 곳은 아직 황량한 채로 있었다(렘 7:14). 아니면 놉이나 혹은 기브온, 그것도 아니면 회당과 제단이 있는 다른 곳에 모시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러나 궤는 애국심이 불타는 사람이 일어나서 바른 장소로 모셔갈 때까지 그곳에 그대로 있어야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1. 하나님의 궤가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었던 기간은 매우 오랜 기간이었다. 하나님의 궤는 40년 이상이라는 매우 긴 기간 동안 멀리 떨어지고, 궁벽한 곳에 자리잡고, 찾아오는 이들도 없으며, 거의 무시된 오히려 삼림의 성읍에 머물러 있었다(2절). 다윗이 옮겨가기 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의 궤는 기럇여아림에 있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 사이에 거룩한 열심이 쇠잔하였다는 증거인데, 이상하게도 사무엘이 다스리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궤가 지성소로 옮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묵인하셨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궤가 제자리에 있을 때 그것을 무시하였던 죄를 벌하시고자 하시기 때문이었으며, 또 하나님의 궤를 설정한 그 제도의 중심은 다만 그것이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나중에 올 좋은 것이 곧 진동치 못할 것" 임을 보여 주고자 하시기 때문이었다(히 9:23; 12:27). 그것은 제사장들에게, 그들에게서 나오지 않은 한 사람을 성별하여 그 궤를 지키게 하였다는 것을 책망하기 위한 것이었다.

2. 20년이 지나서 비로소 이스라엘 온 족속은 하나님의 궤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70인역 성서는 오늘 우리가 읽는 성서보다 그 뜻을 보다 더 분명히 밝혀준다. 거기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족속이 다시금 여호와께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의 궤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런 불편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이 어디 있는지, 또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궤가 성전에 없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의 표시가 없는 가운데 그들은 날마다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제격식대로 드릴 수가 없었다.

형식적인 교수들이 대체적인 외형상의 꾸밈새에 만족하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제나 열납의 표시가 없는, 하나님의 궤가 없는 제단에 대해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해 보고 하나님을 찾아 헤매며, 탄식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아무 하나님의 성령께서 특별히 역사하신 사무렐의 설교를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회개와 갱신의 경향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며,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슥 12:10) 시작하였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우리가 가진 성서 가운데서 이것을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건과 비견할 말한 것을 찾는다면 사도행전 2,3장의 일대 회심 사건뿐이라고 본다.



(1)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의식의 귀한 가치를 아는 자는 그러한 의식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2) 참다운 회개와 회심은 하나님을 찾아 탄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며, 우리가 계속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우리는 파멸이며, 하나

님의 은혜를 회복하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은혜 가운데 다시 임하시게 하시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는 안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로서는 하나님의 궤를 소유하고, 그것을 들여다보거나, 그것을 찾아 탄식할 때가 더 좋은 때였다. 은혜의 방법이 너무 흔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천시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부족하여 사람들이 애써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좋다.

 

7:2 없음.

 

7:3

우상을 제하고 미스바로(사무엘 상 7:3-6)

사무엘의 이름이 4장 1절에 나오고 지금까지 한 번도 언급이 되지 않았는데, 그 동안 사무엘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을까? 하지만 그가 백성들 사이에서 행한 수고가 비록 언급은 되지 않았어도 이제 그 열매가 맺고 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모하기 시작하였다." 는 것을 깨닫자, 쇠는 달았을 때 쳐야 하듯이,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충실한 친구로서 그들을 위해 두 가지 일을 힘써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Ⅰ. 개혁은 "우상을 제거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하기 때문에 사무엘은 그들로 하여금 우상을 제하게 하는 일에 힘썼다. 그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했다" (3절). 그는 순회 전도자 모양으로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며 말했던 것 같다(5절에 가서야 그들이 모인 것을 보아서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어디에 가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을 슬퍼하는 것을 볼 때 나는 너희가 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고 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너희가 이것들을 알라."

1. "너희는 우상을 제하여 버리라. 너희는 이방 신들을 멀리 하라. 너희의 하나님은 경쟁자를 원치 않으신다. 그들을 멀리 하라. 너희 각자가 먼저 그렇게 하고, 온 나라에서 그들을 제하여 버리라. 이방신 바알들을 제하고, 이방 여신들인 아스다롯들도 그렇게 하라." 이런 우상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섬기고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아스다롯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은 그것이 가장 사랑받는 우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매혹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다운 회개란 제일 매혹적인 죄를 내려치는 것이며, 특별한 열심과 각오를 가지고 "쉽사리 달라붙는" 죄를 떨쳐 버리는 것이다.

2. "너희는 하나님께 엄숙히 돌아오라. 그리고 신중히 생각하고 단단한 결심을 가지고 그렇게 하라. 왜냐하면 그 두 가지는 모두 너희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고, 드러나게 하고, 굳건히 하게 하는 그런 마음가짐 속에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3. "너희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라. 다만 그를 섬기고 다른 것은 섬기지 말라.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를 섬긴다고 할 수 없다. "

4. "이것만이 축복과 구원을 위한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다. 오직 너희는 이 길을 따라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리라. 왜냐하면 너희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손에 붙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사무엘의 설교의 취지였다. 그리고 그 설교의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매우 컸다(4절).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였다." 그들은 그들에 대한 예배를 그만 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 우상들을 부셔 버렸고, 제단을 훼파하고, 완전히 그들 사이에서 제하여 버렸다. "우리가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호 14:8; 사 30:22)

Ⅱ.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게 하며 그를 섬기게 하는 데 힘썼다.

1.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였다(5절). 온 이스라엘이란 적어도 그들을 대표하는 장로들은 빠짐없이 모이게 한 것이라고 본다. 거기서 그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리라고 약속하였다. 그들이 방방곡곡에서 부터 모여 사무엘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자 기도하는 것은 매우 잘하는 일이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설교가 효과 있는 설교가 되도록, 설교를 듣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신앙 집회에서 우리는 설교를 듣는 것 이상, 함께 공동 기도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기억 하여야 한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또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로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였을 것이다. 사역자들이 교인들을 위해 도움을 더욱 주는 길은 오직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길 뿐이다.

2.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부름에 응해서 모였다. 그런데 그들은 단지 모이기만 하지 않고, 열심과 호의를 나타내었다(6절).

(1) "그들은 물을 길러 여호와 앞에 부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1] 그들은 땅에 쏟은 물이 다시 거둘 수 없는 것같이 보잘 것 없고, 불쌍한(삼하 14:14; 시 22:14), 죄로 말미암은 창피한 자기들의 꼴을 고백하는 것이다. 아랍어로 보면 이 말은 이렇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여호와 앞에 회개하며 그들의 마음을 쏟아 놓았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눈물이 강물같이 흘러 나오고 경건한 슬픔에 사로 잡혔던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열심히 기도하며 간구하였다. 기도하는 영혼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토한다(시 62:8).

[3] 그들은 철저하게 개혁하였다. 그들은 그릇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물과 같이, 그들의 모든 죄와 결별하며, 다시는 그러한 죄에 연연하며 매어달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회개하였으며, "그들의 모든죄과를" 버리기로 단단히 결심하였다. 이스라엘은 이제 "우상으로부터 떠나는 세례를 받았다." 고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보았다.

[4] 어떤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그들의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무엘이 그들에게 확신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 의식은 초막절의 의의를 살리는 의식으로 사용되었다(요 7:37, 사 12:3 참조). 그러한 의미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은 금식하고 나서 여호와 앞에 물을 부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쌍한 모습을 고백하고 나서는 마지막에 용서해주시고, 다시 화해하여 주시기를 원하였다.

(2) "그들은 금식하였다." 그들은 음식을 멀리함으로 그들의 영혼을 일부러 괴롭히며, 이로써 그들의 회개를 표시하며, 그들의 헌신을 나타내었다.

(3) 그들은 공공연히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스스로는 부끄러움을 알았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우리의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 는 것을 알게 된다.

3. 사무엘은 그 때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스렸다. 이로써 사무엘은 그들이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가 용서함 받았다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과 화목의 길을 터놓아 주셨다는 확신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것은 용서의 다스림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아직 우상을 버리지 않았다는 정보를 듣고, 율법에 따라서 그들을 고소한 것인지 모른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자를 그는 다스렸다. 그는 재판정을 차리고 그 기간을 지정하고 나중에(16절)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순회 재판도 시행하였다. 이제 그는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는 다만 한 사람의 예언자로 활동하기에 앞서, 그들로 하여금 일단 버렸던 그러한 죄로 다시는 빠져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치리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7:4 없음.

 

7:5 없음.

 

7:6 없음.

 

7:7

블레셋의 침공와 이스라엘의 승전(사무엘 상 7:7-12)

Ⅰ.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와 기도를 위해 모인 것을, 마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것으로 보고 불쾌하게 생각하여 침공을 개시하였다(7절).그리하여 그들은 자기의 나라로 군대가 쳐들어 오는 것보다는 쳐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러한 의심을 품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쉽사리 언제나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악을 행하고자 한다고 그릇 추측한다.

1. 때로 선에서 악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인 신앙적인 집회가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화근을 불러 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집에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무엘이 그들을 불러 모은 것에 대해 원망하고 싶어졌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길에 들어서서도 재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 죄인이 회개하면 사탄은 더욱 맹렬하게 기승을 부리면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기를 꺾어 놓으려고 한다.

2. 그러나 선은 드디어 악과 구분이 된다. 이스라엘은 가장 좋은 때에 적의 위협을 받았다. 그들은 회개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적을 맞이할 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었다. 블레셋은 가장 불리한 때에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다. 왜냐하면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그 일을 그대로 감행하도록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갱신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표시를 재빨리 보여 주며, 또 그들에게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시리라" 고 한 그의 사자의 말이 틀림없다는 확증을 보여 주는 기회로 삼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분노의 소리를 찬양의 소리로 바꾸어 놓으시며, 원수들의 악한 계략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자기의 은혜로우신 목적에 봉사하도록 만드신다(말 4:1, 2).

Ⅱ. 재난을 당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을 하나님 다음 가는, 가장 귀한 친구로 생각하고 그에게 달라붙었다. 사무엘은 군사도 아니요, 용맹으로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블레셋이 무섭고 저들은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되어 사무엘에게 달라붙어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달라" 고 부탁하였다(8절). 그들은 무장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금식과 기도를 위해 모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대부분은 기도와 눈물을 그들의 무기로 삼았으며 이를 의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큰 힘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달라고 열심히 매어 달렸다. 그들은 그것을 기대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무엘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겠다" 고 약속했으며(5절),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 이라는 약속을 하였으며(3절), 그가 한 말은 모두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에 대해 그가 율법을 주시고 또 이에 따라서 심판하시는 분으로 순종하는 자는 그의 개입으로 크게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사무엘이 기도를 그치지 않도록 간절히 원했다. 만일 그들에게 어떤 군사적인 준비가 있었다면 그것을 믿고 그처럼 간절히 기도해 달라고 매어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을 이기지 못했던 일을 기억했을 것이다. 우리의 위대한 중보자가 하늘에 계시며,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니,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 크신 위로가 되신다!

Ⅲ. 사무엘은 번제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재의 기도를 드렸다(9절). 그는 젖먹는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다. 그리고 번제물이 타며 그 연기가 하늘에 오를 때 이스라엘을 위한 사무엘의 기도도 따라서 하늘로 상달되었다.

1. 그는 중재기도를 위해 번제를 드렸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을 제물로 드리면서 중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드릴 때, 그 위대한 제물을 눈여겨 주목해야 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기도는 들으심을 받을 수 있다. 사무엘이 기도없이 제물만 드렸다면 그것은 한갖 헛된 그림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무엘이 두 가지를 함께 드렸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으며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2. 순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제사는 번제였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그의 기도를 드릴 때 의지하였던 근거는 하나님 자신의 명예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여호와여, 당신의 이름을 인하여 이제 당신의 백성을 구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당신의 영광을 돌려 드리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해 활동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3. 그가 드린 제물은 단 한 마리의 젖먹는 어린양이었다. 하나님은 제물의 크기나 그 수량을 보시지 않으시고, 그 마음 중심의 태도를 보신다. 하나님은 신앙이나 기도 없이 드리는 수천 마리의 산양이나 황소의 제물보다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나타내는) 한 마리의 어린양을 더 즐겨 열납하신다. 사무엘은 제사장이 아니나, 레위 사람이요, 선지자였다. 이것은 특별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가 제사를 드린 것은 특별한 지시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열납하셨다. 이것은 제사장들을 책망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스스로 멸망의 자리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Ⅳ. 하나님은 사무엘의 기도를 자비로써 응답하여 주셨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9절).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은 사무엘 자신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기도를 자비로써 응답하셨다. 기도의 아들들은 기도하는데 유명하다. "사무엘은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 있었다" (시 99:6). 그 응답은 실제적인 응답이었다.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셨다(10,11절). 그들은 완전히 패주하였다. 사무엘의 기도는 기대 이상으로 응답받았으며, 이스라엘의 용기가 충천하였다.

1. 사무엘의 기도는 영광을 입게 되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며 그와 동시에 기도를 올리자마자, 전쟁은 개시되었으며, 블레셋 사람들과 즉시 대항해서 싸우게 되었다. 따라서 "그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으며", 우뢰 소리로 대답하셨다(사 65:24). 하나님은 이로써 사무엘의 기도와 번제를 열납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지난번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는, 그처럼 불경한 두 제사장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나오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 알았던 그들의 오만한 생각을 벌주고자 하셨다는 사실을 여기에 보여 주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이제 하나님은 그들이 경건한 선지자의 입과 심령에서부터 나오는 신앙적인 기도를 절대 의지하는 겸손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2. 하나님의 능력이 영광을 입게 되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가운데 그들을 패주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수 10:11 과 같이) 큰 우박덩이를 가지고 하신 것이 아니라, 큰 우뢰 소리를 가지고 그들을 어지럽히셨다. 우뢰 소리가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고 놀라 도망치게 만들었다. 그들은 쉽사리 이스라엘의 칼날 앞에 밥이 되었으며,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크게 살륙을 당했다. 조세푸스는 우뢰 소리의 공포 외에도 그들이 싸움을 시작하자, 블레셋 사람들의 발 밑에서 지진이 일어나 도처에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켰으며, 불길이 일어나 그들의 얼굴과 손을 태웠으며 재빨리 도망가게 만들었다고 덧붙여 설명하였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 자신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 낭패를 당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무서워했던 것과 같이(4:7) 하나님 자신을 그렇게 무서워했던 것 같지는 않다.

3. 영광은 이스라엘의 군사들에게도 주어졌다. 그들은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는 데 쓰임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이기는 기쁨을 누렸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따라가며, 그들을 쳤다." 어쩌면 그렇게 빨리 그들은 회개하고 갱신하며 하나님께 돌아간 그 혜택을 입었던가! 그들은 이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 사이에 계시므로 그들의 원수들이 감히 그들 앞에 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Ⅴ.사무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승전을 감시하는기념비를 세웠다(12절). 그는 "도움의 돌, 에벤에셀" 을 세웠다. 만일 백성들의 완악한 마음이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잃어버리면 그것을 일깨워 주게 하고자 하였으며, 계속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며, 은혜를 잊어 버리지 않도록 계속 증언해 주게 하고자 이 돌을 사무엘은 세웠다.

1. 그 기념비가 세워진 장소는, 20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크게 살륙당한 바로 그 장소였다. 그 때의 싸움이 에벤에셀 근처에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4:1). 전번에 패전을 초래케 한 죄가 그들의 회개로 인하여 용서를 받았는데, 그 용서는 그들이 패전하였던 바로 그 장소에서 크게 이김으로 이를 확증시켜 주셨다(호 1:10 참조).

2. 사무엘은 이 기념비를 세우는 데 손수 애썼다. 사무엘은 자기가 직접 애써 기도함으로 그 은혜를 입게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하는 이 일에는 자기가 직접 개입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3. 사무엘이 그러한 이름을 붙인 까닭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사무엘은 과거에 내려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승리에 대해서만 감사를 표하고, 장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는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에게 행하신 바에 대해서만이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구원에 대해서는 아직 그것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며, 더우기 명확한 것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대로 그 구원부터 미루어서 감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증거 한다" 고 바울은 말한 바가 있다(행 26:22).

 

7:8 없음.

 

7:9 없음.

 

7:10 없음.

 

7:11 없음.

 

7:12 없음.

 

7:13

사무엘의 선정(사무엘 상 7:13-17)

여기에는 그후 이스라엘에 베푼 사무엘의 선정에 관한 기사가 있다. 그는 그의 선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였으며, 보다 많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굉장한 일을 하며 그들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었지마는 자신에 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런 기록을 볼 수 없지만, 다른 곳(대하 35:18)에 보면 사무엘의 시대에 선지자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하나님의 궤가 멀리 있고, 실로와 많이 떨어진 곳에서지만 유월절 절기를 보통 이상으로 정성을 다해 지켰다고 되어 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만 그가 하나의 보조자로서 일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그가 일한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1. 그는 국가의 평화를 안전하게 수호하였다(13절).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공격하거나 침략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며, 하나님의 손은 블레셋을 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것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더 이상의 진노를 면하고 있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수호자요 구원자였다. 그러나 그는 기드온과 같은 칼의 힘이나, 삼손과 같은 팔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힘과 백성들을 갱신시키는 활동력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하였다. 신앙과 경건은 한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최선의 방책이다.

2. 국가의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다(14절). 사무엘의 영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용기를 얻고, 블레셋 사람들이 부정하게 그들에게서 탈취하여 오랫동안 점령하고 있던 성읍들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이해 관계가 큰 것들이지만 어느 것 하나만 내놓겠다고 반항하지 못하고 그 요구에 순순히 굴복하였다. (어떤 사람은) 비록 나중에 도로 빼앗기기는 하지만 그 지역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에그론과 가드까지 회복하였다고 보았으며, 그 두 성읍 사이에 있는 작은 성읍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은 것이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보고 있다. 이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갱신과 신앙을 통해 얻었으며, 원수들의 근거지를 빼앗고, 그들의 형세를 유리하게 전개시켰다.

여기에 또 추가하여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다." 고 기록되어 있다. 아모리 사람이란 나머지 원주민인 가나안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이 그들과 동맹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잠잠했으며, 전에 가끔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에 대해 위협을 끼쳐오지 않았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며" 그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잠 16:7).

3. 그는 백성을 다스리며 재판을 주관하였다(15,16절).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선지자로서 그는 그들의 책임을 가르쳤으며, 그들의 죄를 꾸짖었다. 이것을 일컬어 "다스렸다(judged)" 고 하였다. (겔 20:4; 22:4 참조). 모세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였을 때" 이것을 두고 이스라엘을 "판단하였다(judged)" 라고 하였다(출 18:16). 이처럼 사무엘은 사울이 임금이 된 뒤에도 계속 일생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리하여 사울이 정식으로 왕위에 취임한 뒤에도 사무엘은" 나는 너희에게 선하고 의로운 도를 가르치는 일을 쉬지 않겠다" 고 약속하였다(12:23). 치리자로서 사무엘은 하급 재판의 상소를 받아 이를 판단하여 주었으며, 율법에 따라서 소송의 사유를 심문하여 이를 판단하기도 하였으며, 죄인들을 심문하여 무죄를 선언하기도 하고, 유죄를 선고하기도 하였다.

이 일을 그는 나이가 많아서, 휴직하고 사울에게 직무를 이양한 뒤까지라도, 일생 동안 행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그는 요청이 있자 다시금 그의 권위를 발동하여 아각과 사울까지도 재판하였다. 그리고 그가 한창 활동하던 때에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적어도 그가 영향을 끼치던 지역들은 모조리 순회하며 재판하였다. 그는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 그리고 모든 베냐민의 족속들 사이에 재판정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조상의 성읍인 라마에 상주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지역으로부터 그들의 문제들을 가지고 거기까지 가서 사무엘의 판결을 받았다(17절).

4. 국민들의 신앙을 진작시켰다. 사무렐은 자기가 사는 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다. 그런데 그것은 놉이나 기브온 또는 어떤 다른 회당이 있는 지역의 제단을 무시하고자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의 의가 맡겨졌던 실로는 황폐해졌고, 그들의 제물을 드릴 장소가 아직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신 12:11). 그는 율법을 볼 때 그들에게 택하여 주리라 한 장소가 보류되고 있음을 알고,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족장들이 행한 것고 같은 일을 행했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자기 가족과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위한 제단을 하나 쌓았다. 훌륭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재물과 능력과 이익을,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고장의 신앙을 계속 부흥시키는 데 사용했다.

 

7:14 없음.

 

7:15 없음.

 

7:16 없음.

 

7:17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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