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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나의 노래(사무엘 상 2:1-10)

여기에는 한나의 감사의 노래가 있다. 그것은 기도의 영과 아울러 예언의 영에 의해 감온 받아 노래한 것이다. 자비를 원하는 한나의 간청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본 바가 있다(1:11). 여기에는 이에 대한 응답의 찬양이 있다. 그런데 이 두 번의 경우에 모두 한나는 "마음의 감동을 받아 입을 열어" 말했던 것이다(다만 앞서의 경우는 자기 자신의 요구에 의해서 그리고 후자의 경우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해 그러했던 것이 다를 뿐이다). 전반적인 면에서 다음의 사실을 살펴보자.

1. 한나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을 때 감사와 찬양의 노래로 이를 시인하고 고백하였다. 그녀는 아홉 문둥이와는 달랐다(눅 17:17). 찬양은 우리들이 마땅히 바쳐야 할 의무금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2. 한나가 받은 은총의 기도의 응답이었다. 그러므로 한나는 마땅히 감사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만일 기도를 통해서 얻은 것이 있다면 마땅히 이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아야 하며, 찬양을 돌려야 한다.

3. 한나의 감사가 여기서는 기도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즉 "한나가 기도하였다" 고 한다. 왜냐하면 감사는 기도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도고에서 우리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반드시 표시 하여야 한다. 아니, 이미 받은 바 은혜에 대한 감사는 앞으로 받을 바 은총에 대한 간구가 된다.

4. 한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을 것을 계기로 해서, 부풀어 오른 가슴을 가지고, 하나님의 세계 통치와 그의 교회에 대해 베푸시는 선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로 삼았다. 우리에게 어떤 찬양의 기회가 있으면 우리는 유감없이 이를 찬양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5. 한나의 기도는 영적인 것이었다. "아무도 그녀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감사를 드릴 때는 누구도 그녀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한나는 간구할 때 중얼거리는 신음 소리같은 것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입술을 크게 벌렸다.

6. 여기에 이 감사의 노래가 기록으로 남겨진 까닭은 여자들도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갈 수 있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여자들의 기도와 찬양도 기억하시며 들어 주신다. 동정녀 마리아의 찬양은 이 한나의 찬양과 매우 흡사하다(눅 1:46). 우리는 이 찬양에서 세 가지의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극치 안에서 얻은 한나의 승리와 하나님께서 한나를 위해서 베풀어 주신 위대한 일들을 볼 수 있다(1-3절).

1. 한나가 아떻게 하나님을 놀랍도록 찬양하였는가 보자. 한나는 현재 자기가 기뻐하고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리고 흔히 부모들이 귀여운 자기 자녀들에게 하듯이, 남달리 뛰어난 자기 아들 사무엘에 대한 어떤 언급이 있음직 한데, 그것도 그렇지 않았다. 아니, 한나는 받은 바 은혜의 선물을 뛰어 넘어 이를주신 분을 찬양하였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선물 주신 분은 잊어 버리고, 다만 그 선물에만 매어달리기 쉬운 것이다. 모든 시내를 따라 올라가면 우리는 샘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 있는 무한한 극치를 찬양하게 한다. 다른 사무엘은 또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호와는 한 분 뿐이시다. "주 밖에 다른 이가 없나이다." 하나님은 감히 다른 것에 견줄 수 없는 존재, 비교할 수 없는 극치로서 찬양받아야 마땅하다. 영광은 하나님의 이름에 돌려드려야 하며, 우리는 "하나님같은 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감히 견줄 자도 없다" 는 것을 시인 하여야 한다.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인 체하는 가짜들이다(사 18:31). 한나는 다음의 네 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특성을 찬양하였다.

(1) 하나님의 순결하심을 찬양하였다. 이것은 하늘의 세계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들이 언제나 찬양드리는 하나님의 특성이다(계 6:3; 출 4:8). 이스라엘이 애굽과 싸워 승리하였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거룩함에 영광스러운" 분이시라고 찬양하였다(출 15:11). 그리하여 한나도 자기의 승리를 두고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다" 고 하나님을 찬양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본성이 방정함을 나타내며, 그의 공정한 통치와 재판을 나타내는 성품이시다.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2)하나님의 능하신 능력을 찬양하였다. 그녀는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혹은 능력)도 없읍니다" 라고 노래하였다. 한나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에게서 받은 위대한 도움을 경험하였다. 그리하여 이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말하는 데 모세의 노래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신 32:31).

(3)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를 찬양하였다. "여호와는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성품과 모든 주장들의 잘잘못을 명확하게 그리고 완전히 꿰뚫어 보신다.

(4) 조금도 흠이 없으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찬양하였다. "하나님은 행동을 달아보신다" 고 하였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뜻 안에서 자신의 행동을 달아 보시며, 심판을 통해서 인간들의 행동을 달아 보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의 행한 대로 사람들에게 갚아 주신다." 그러나 사람들처럼 잘못이 없으시다.

2. 한나가 어떻게 자신을 위로 하였는가 보자.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이로써 우리가 위로를 받는다.

(1)한나는 거룩한 기쁨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한다" 고 말했다. 그의 아들 때문이 아니라, 그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 중의 기쁨이시다(시 43:4).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우리의 즐거움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당신의 구원을 즐거워하나이다. 당신께서 나에게 베푸신 이 특별한 은총 때문만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전체에게 베푸신 당신의 구원을 인하여서도 즐거워하나이다. 이 아이는 그 구원의 방편이 될 것이오며, 더우기 그 구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지금의 구원은 그 예표임도 내가 아니이다."

(2) 한나는 거룩한 승리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내 뿔이 높아졌나이다. 단지 아들 하나를 가졌다고 하여서 나의 명망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이런 아들을 가졌다는 것으로 인하여 높아졌나이다." 다윗이 악기의 한 종류인 뿔을 들도록(역주, 우리 성경에서는 나팔을 불도록) 지명한 음악인에 관한 기사를 우리는 읽을 수 있다(대상 25:5). 그러므로 "내 뿔이 높아졌나이다" 라는 말의 의미는 "나의 찬양이 보통 이상의 곡조까지 올라갔다" 는 뜻이다.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다." 하나님은 우리의 높임을 받으실만 하신 분이시다.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내 입이 크게 열려졌나이다." 즉 "나는 이제 나를 꾸짖던 자들에게 대답할 수 있겠나이다." 전통에 화살이 가득한 자, 즉 그의 집에 자녀들이 많은 자는 "성문에서 원수를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시 127:5).

3. 여기서 한나가 어떻게 하나님께 적대하는 자들을 침묵시켰는가 보자(3절). 그녀는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라" 고 하였다. 브닌나와 그의 자녀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 한나의 신앙과 그녀의 기도를 비난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나는 드디어 그러한 믿음과 기도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 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여자라" (미 7:10).

그러나 아마 한나는 그의 노래에서 브닌나에 대한 것을 생각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보인다. 즉 그녀의 노래는 "그들의 입으로 하늘을 대적하는" (시 73:9) 블레셋과 그 밖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대적들의 오만함을 꺾어 버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보인다. "이것이 그들을 침묵하게 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소서. 나를 위해 내 대적들을 심판하여 주신 분은 그 백성들을 위해 그들의 대적들도 심판하실 것이리이다."

Ⅱ. 한나가 인간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을 주목한 사실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인간사의 흥망성쇠이며, 그 갑작스런 변화이며 또 번성한 때와 역경의 때가 주마등처럼 빨리 엇갈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셨는데" (전 7:14) 이는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고전 7:30)하게 하고자 함이다.

1.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강한 자는 약해지고, 약한 자는 강해진다(4절). 한편 하나님께서 말씀만 한 마디 하시면, "용사의 활은 꺾어진다."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지며, 전과 같지 못하며, 계획했던 바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언제나 싸움에 이겨온 자들이며, 승리를 확신해 온 자들이다(시 46:9; 37:15, 7). 모든 사람은 병들고 나이가 들면 연약해지고, 그들의 활도 그리 오랫동안 힘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의 능력에 의해 영광을 누리던 용사들도 자기가 믿었던 활 때문에 오히려 실패하게 되는 것을 본다.

또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 말씀만 한 마디 하시면 약해서 비틀거리던 자, 곧장 걸어갈 수도 없던 자가, 몸과 마음에 "힘을 얻으며," 커다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아파서 병들어 약해졌던 자가 활력을 되찾으며, 슬픔에 젖었던 자기 위로를 되 찾을 것이다. 그리하여 약한 손이 강해질 것이며, 떨리는 무릎이 굳게 되어질 것이다(사 35:3). 승리는 자취 없이 사라지고,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다(사 33:23).

2. 부자들은 곧 가난해지고, 가난한 자는 갑자기 놀랍도록 부하게 된다(5절). 하나님의 섭리는 때로 인간의 재물을 앗아가 버리며, 그들의 노력을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들 가득한 자들(곧 창고가 가득한 자, 집에 좋은 것으로 가득한 자. 욥 22:18 . 그리고 주의 재물로 그들의 배가 가득한 자들. 시 17:14)은 매우 가난하고 곤궁하게 되고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걸하며, 때거리를 위해 일해야 하며 창피를 무릅쓰고 땅을 파야 하는 신세가 된다. "정녕 재물은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잠 23:5) 재물이다. 그리하여 재물을 가지고 행복을 삼던 자들에게는 비참만이 남는다. 가난을 모르고 모든 것이 가득한 가운데 살던 사람들은 갑절의 슬픔을 맛보아야 된다.

그러나 또 한편 하나님의 섭리는 주린 자에게 주림을 면케 하시기도 한다. 면케 하신다는 것은 지금처럼 일용할 양식을 위해 고된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 땅에서 산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다시는 주림이나 목마름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운명의 탓이거나 인간의 지혜나 또는 어리석음의 탓만도 아니다.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술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다" (전 9:11). 또 가난하게 되는 것이 반드시 인간의 잘못은 아니다(7절). "여호와께서 가난하게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신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된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그들의 부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 가시기도 하신다.

우리가 가난한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에 만족하고 거기에 알맞게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부자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자로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여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넉넉한 재물로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겨야 한다. 이러한 일은 같은 한 사람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 욥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은 부자를 가난하게 만드실 수 있으며 다시 또 그를 부자로 만드실 수 있다. 하나님은 주실 수도 있으며 주었던 것을 빼앗아 가실 수 있고, 다시 또 빼앗아 가셨던 것을 주실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부자들은 자랑하거나 안전하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금방이라도 가난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도 결코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때가 되면 가난한 자들도 부자로 만들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3. 식구가 없던 가족에게 많은 식구를 주시고 많은 식구를 거느리던 가족이 오히려 쇠잔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감사의 직접적인 동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가 일곱을 낳았다" 는 말은 한나 자신을 두고 한 말이다. 비록 지금 한나는 아들 하나밖에 없지마는 그 한 아들을 나실인으로 만들어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직접 섬기게 하면, 그 한 아들이 그녀에게는 일곱 아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는 이것은 그녀의 신앙을 나타낸 말일 수도 있다. 지금 그녀에게는 한 아들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는 더 많은 아들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과연 그녀는 다섯 자녀를 더 둘 수 있었다(21절). 그리하여 사무엘이 두 자녀와 같은 것이라고 친다면 한나는 그녀가 원랬던 만큼의 자녀를 둘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가 일곱을" 낳는 동안, 또 한 번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잔 해지겠고," 잉태치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브닌나는 이제 완전히 풀이 죽고, 의기가 저상되었다. 유다 사람들의 전설에 의하면 한나가 한 자녀를 낳으면 브닌나는 두 자녀를 땅에 묻었다. 가난했던 가족이 흥왕하고, 현저하였던 가족이 쇠잔해진 예가 참으로 많다(욥 22:23; 시 107:38).

4.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6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1) 이것은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낳고 죽는 것을 통할하신다. 어떤 한 사람이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죽음의 화살을 그에게 쏘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죽이신다." 죽음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움직이는 심부름꾼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계 1:18) 분의 명령으로만 진토가 된다. 어떤 한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인간을 살리시는 분께서 하시는 일" 이다. "아무도 영혼의 길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는데 "영혼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 으로 부터 받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병에서 나았고 고통에서 해방을 받았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만 "죽음으로부터 살리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2)하나님은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다르게 취급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죽이시고 또 어떤 사람은 살리신다. 그들이 똑같은 위험에 처했을 때(말하자면 전쟁이나 유행병에 걸렸을 때), 한 사람은 죽이기도 하고, 한 사람은 살리기도 하신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 인간이 보기에는 살아야 할 것 같은 이가 무덤에 내려가고, 마땅히 죽어야 할 것 같은 이가 살리심을 받는 경우도 많다. 죽는 것과 사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시는 것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또 살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3) 하나님은 같은 한 사람에게 이렇게도 하시고 저렇게도 하신다. 여호와는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신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끌고 가셨다가도 다시 일으키시며,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지경에 처한 사람까지도 다시 살리신다(고후 1:8, 9). 하나님은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는 "돌아가라" 고 말씀하신다(시 90:3). 아무 것도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없으신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도 문제가 없으시고,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것도 어려움이 없으시다.

5. 진보와 퇴보도 역시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낮추시기도 하시고 어떤 사람은 높이기도 하신다(7절).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하시며, 낮은 자에게 은혜와 영광을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과 겨루는 자를 고발하여 진토에 묻고 밟아 버리신다(욥 40:12, 13). 그러나 주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자는, 주께서 그들을 높이시며 구원하여 주신다(약 4:10).

혹은 이것을 한 사람의 경우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교만하여 낮춘 자가 드디어 겸손해지면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신다고 볼 수 도 있다. 8절에 보면 여기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이 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신다." 말하자면 낮고 보잘 것 없는 자리, 아니 쓰레기 더미와 같은 곳, 그리고 멸시받는 곳에서 부터 일으키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신다" (시 13:78 참조). 인간의 승진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 인간이 볼 때는 합당치 못한 사람들이 높이 올리움을 받는다.

요셉과 다니엘, 모세, 그리고 다윗 등은 감옥에서부터 궁전으로, 목자의 지팡이를 잡던 손에서 홀을 잡는 손으로까지 놀라운 승진을 거듭한 사람들이었다. 귀인들은 그들을 멸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으며, "영광의 보좌를 이어 받게 "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들어서 높이 쓰는 사람을, 그들이 진토에서 나왔으며 거름 더미에서 나왔다고 하여 비난하지 말자. 그들의 출발이 보잘 것이 없었다면 그만큼 그들은 크신 은혜를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 것이 되기 때문이다.

6. 그것이 아무리 놀라운 것이라 할지라라도 우리들이 묵묵히 시인할 수 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가 진술되었다. 왜냐하면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이다."

(1) 만일 우리들이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땅의 기초가 되는 모든 피조물을 떠받들고 계시며 지금도 여전히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세계를 지속시키고 계신다. "땅을 공간에 다실 수 있으신" (욥 26:7)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훨씬 초월해서 우리의 가족 문제나 국가적인 모든 문제에서 하시지 못할 일이 없으시다.

(2)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것을 비유적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주권을 의미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는 감히 아무것도 항쟁할 수 없다. 땅의 왕자와 귀인들, 국가의 통치자 왕정부는 "땅의 기둥들이다" (시 75:3).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은 그들의 권력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어떤 사람이든지 높이 들어 쓰신다. 그러나 감히 누구든지 "당신이 누구요" 라고 말할 수 없다.

Ⅲ. 모든 하나님의 친구들에게 베풀어질 하나님의 보호와 놀라운 진전과 하나님의 대적들이 받을 멸망에 대한 예언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셨으며 또 행하시고 계시는 일들을 통해서 그녀의 기쁜 승리를 경험한 한나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하여 주실 일에 대해서도 즐거운 희망을 가지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9,10절). 경건한 열정은 그러한 때에 고상한 예언을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상 숭배가 만연하고 있던 그 백성 사이에서도 참다운 신앙을 계속 유지시켜 주셨던 것이다[패트릭(Patrick) 주교는 말했다].

1. 이 예언은 사무엘과 그리고 그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의 통치를 직접 예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호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적인 블레셋은, 더우기 하늘이 우리로 정복당하고 진압당할 것이다(7:10).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이될 것이며, 다윗 왕은 힘을 더 얻어 강력한 왕이 되며, 크게 높임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사사 시대에는 매우 보잘 것 없는 민족이어서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크게 법석을 떨어야만 했었는데) 이제는 갑자기 크게 드러나는 민족이 되어 이웃 민족들을 복종시키는 나라가 되었다. 그것은 매우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그리고 사무엘의 출생은 바로 그러한 시대의 여명이 되었다.

2. 그러나 우리는 이 예언에서 그 이상의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나라, 은혜로운 나라의 통치에 관한 것이다. 한나는 이처럼 여기서 크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말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처음으로 "메시야" 또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이름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일찍부터 유대교와 기독교의 고대 주석가들은 이 말이 다윗을 지나서 다윗의 자손을 일컫는 말이라고 주석하였다. 여기서는 성육하기 전과 그리고 그 이후에 있을 중보자의 나라의 영광에 대해 모두 언급하

고 있다. 왜냐하면 그 통치 방법이 영원한 말씀에 의한 것이든 육신이 되신 말씀에 의한 것이든 모두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 대해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확신할 수 있다.



(1) 그 나라에 고한 충성스러운 자들의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강력하게 보호함을 받을 것이다(9절). "그가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다" 고 하였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성도를 즉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고 성결함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가운데 속한 자들은 그의 신체의 가장 낮은 부분인 그 발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것이다.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발까지 지켜 주신다면 그들의 머리와 마음은 더욱 잘 지켜 주실 것이다. 또 이렇게도 생각할 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을 지키신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들의 서 있는 땅을 안전히 지켜 주시며, 그들이 가는 길을 잘 닦아 주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하나님은 그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거나, 길에서 비틀거리지 않도록 은혜로 돌봐주시며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 주실 것이다. 그들의 발이 미끄러질 뻔할 때(시 73:2), 하나님의 자비가 그들을 붙들며(시 94:18), 넘어지지 않게 지켜 주신다(유 24).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걷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발을 지켜 주신다(시 37:23, 24 참조).

(2) 그들을 대적하는 모든 힘이 그들을 감히 넘어 뜨리지 못할 것이다.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위탁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힘이 교회에 위탁되어 있는 동안에는 인간의 힘이 감히 교회를 대항해서 이를 무너뜨릴 수 없다. 교회는 힘이 없어 보인다. 교회는 친구도 적고 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교회의 우월성은 인간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다(시 33:16). 하나님은 인간의 힘을 필요로 하시지 않으신다(시 147:10). 또 인간의 힘을 두려워 하시지도 않으신다.

(3) 모든 대적들은 확실히 멸망받을 것이다. "악인들은 흑암중에서 잠잠케 될 것이다" (9절). 그들은 맹인이 되고 벙어리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길을 보지 못하게 되며, 스스로를 위해 말 한 마디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저주받은 죄인은 바깥 어두움에 좇겨나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영원히 아무 말도 할수 없게 된다(마 22:12, 13).

악인들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 라고 일컬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산산이 깨여질 것이다" 고 예언 되었다(10절). 사람들 사이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하는 그들의 잘못된 계획은 여지없이 부서지며 그들 스스로도 멸망받는 것이다. 전능자를 거스르는 그들의 계략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눅 19:27 참조) 하나님은 이런 일을 실패하지 않고 하실 수 있는 길을 여러 개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하늘로부터 우뢰를 발하시는 것" 이다. 하나님은 하늘 우뢰로 그들을 두렵게 하고 놀라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직접 멸망시키기도 하신다. 누가 감히 하늘의 우뢰 앞에 버티고 설 수 있을 것인가?



(4) 하나님의 나라는 널리 널리 확장될 것이다. "여호와는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실 것이다." 다윗의 승리와 지배도 상당히 멀리까지 미쳤다. 그러나 "땅 끝은" 메시야의 소유로 약속되었다(시 2:8). 땅 끝은 메시야의 황금 홀에 의해 정복되며, 그의 철장으로 지배될 것이다. 하나님은 만인의 삼판주이시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와 및 그의 백성들의 원수를 심판하실 것이다(시 10:5, 6).

(5) 메시야이신 왕의 힘과 명예가 더욱 더 성장하고 높아질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신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그의 위대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기 위한 것이다(시 89:21, 그리고 눅 22:43 참조). 또 그의 부끄러움을 잘 참고 견딜 수 있게 하며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려 주기" 위해 힘을 주신다(시 110:7). 또 하나님은 당신이 "기름부은 자의" 뿔 즉 그의 힘과 영예를 높여 주시며,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신다" (시 89:27). 이것은 그 승리를 더 찬란하게 하며, 또 무엇보다도 한나의 기쁨이었다. 한나의 "뿔이 높아졌다" (1절). 왜냐하면 한나는 메시야의 뿔이 높아지리라라는 것을 예견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희망을 확고히 하여 주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속한 자들은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원수들은 멸망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기름부음을 받은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힘을 가지시고 구할 자는 구하고 멸망할 자는 철저하게 멸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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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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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사무엘의 성별과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사무엘 상 2:11-26)

여기에는 엘가나의 가족들의 좋은 성품과 태도 그리고 엘리의 가족들의 잘못된 성품과 태도가 나와 있다. 그 두 가지 기사가 여기에 서로 엇갈려서 나오고 있는데 아마 역사가, 곧 사무엘서의 저자는 두 가정을 분명히 대조적으로 나타내 보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엘가나의 가족들의 신앙적이며 질서적인 태도는 엘리의 가족들의 잘못이 더욱 잘못된 것으로 보이게 한다. 한편 또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은 어린 사무엘의 경건한 신앙을 더욱 돋보이게 하여 준다.

Ⅰ. 우리는 엘가나의 가정이 어떻게 일이 잘 되어 가는 지를 보자. 그리고 전보다도 얼마나 더 좋아졌는가를 보자.

1. 그들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성전에 올라갔을 때, 엘리는 그들에게 축복하였다(20절). 엘리는 권위 있는 자와 같이 축복하였다. "여호와께서 이 여인에게 많은 자녀들을 주사 여호와께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한나가 많은 자녀가 있는 가운데 그 하나를 드려 성전에서 봉사하게 하였다면 그것은 그 처럼 신앙적인 행위였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는 오직 하나뿐인 가운데, 그것도 매우 사랑하는, 그녀에게서 마치 이삭과 같은 아들을 여호와께 바쳤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한나의 영웅적인 신앙에서 나온 행위였으며 따라서 결코 상급을 놓칠 수 없는 행위였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을 때 그는 많은 후손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는데(창 22:16, 17), 한나도 사무엘을 여호와 앞에 산제물로 바쳤을 때 마찬가지의 약속을 받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많은 이득으로 우리에게 반드시 되갚아진다. 한나는 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고 다섯 자녀를 보상으로 받았다. 엘리의 축복이 효력을 발생하였다(21절). 한나는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라도 잃어 버리는 것이 없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백배의 보상을 받는다(마 19:29 . KJV에도 a hundredfold로 되어 있다).

2.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이 말은 11절과 20절에 두 번씩이나 언급 되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간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가 돌봐야 할 식구들이 있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좋은 곳에 남겨두고 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무엘은 그들을 따라가고자 울었다는 말이 없다. 오히려 그들을 떠나 그 곳에 머물기를 원하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속히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어른처럼 행동하였다.

3. 그들은 "매년제" 를 드리기 위해 해마다 꾸준히 하나님의 집에 올라갔다(19절). 그들은 가지들의 아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서 성전에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지 않았다. 또한 다른 헌물을 더 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 할 은혜를 깨닫고 철따라 올라가야 할 때에 한번도 빠짐없이 올라갔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을 끌어당기는 어떤 자력과 같은 것이 실로에 있기 때문에 더욱 자주 갔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아이를 보기 위해 한 해에도 한 번 이상 자주 성전에 올라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실로는 라마로부터 40리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해마다 한 번씩 매년제를 드리기 위해 올라가는 것은 특히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매년제를 위한 제물을 가지고 갔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나는 아들을 위해 새로운 "작은 겉옷" 과, 또 거기에 따르는 것들을 마련해다 주었다(19절 -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것도 한 해 한 번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한나는 사무엘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는 기간 동안에는 그의 옷을 마련해다 주었다. 그것은 그가 자기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들과 함께 있든지 또는 따로 있든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든 부족함이 없도록 잘 돌봐야 한다. 그러나 책임적이며 희망이 있는 자녀와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는 갑절의 친절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

4. 어린 사무엘을 매우 잘 하였다. 여기에서는 사무엘에 관한 언급이 네 번에 걸쳐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1) 사무엘은 여호와를 잘 섬겼다(11,18절). 그는 교리를 배웠으며 항상 기도에 힘썼으며, 곧 읽기를 배우고 율법서를 읽을 때 즐거움을 깨달았으며, 이처럼 여호와를 섬겼다. 그는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겼다. 말하자면 엘리의 감독 하에 엘리가 명령하는데 따라서 섬겼다. 엘리의 아들들 앞에서 섬긴 것이 아니었다. 무엇으로 보든지 그들은 사무엘의 후견자가 될 수 없었다.

아마 사무엘은 엘리의 곁에서 직접 그를 섬겼으며, 그의 일을 도와 주었는데, 이것을 두고도 그가 하나님을 섬겼다고 일컬어졌을 것이다. 사무엘은 레위기의 제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나이보다도 훨씬 적었지마는 제단 곁에서 엘리를 도와 주었을 것이다. 사무엘은 촛불을 켜거나 접시를 들거나, 또는 심부름을 하거나 문을 닫는 일같은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데도 매우 경건한 심정으로 하였기 때문에 "여호와를 섬겼다" 고 말할 수 있으며, 또 크게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한동안 사무엘이 그의 일을 하도 잘 하였기 때문에 엘리는(그가 비록 제사장이 아니지마는) 제사장들 모양으로 에봇을 입도록 허락해 주었을 것이다. 엘리가 볼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과 함께 계셨던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일찍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부모들은 이렇게 자녀들을 양육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받아주실 것이다. 특별히 아이들에게는, 사무엘이 엘리는 대하듯이, 스승을 존경하는 태도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신앙은 매우 어린 아이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시 8:2; 마 21:15, 16 참조).



(2) 사무엘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다. 사무엘은 어린 나무와 같이 여호와 앞에서 자라났다(21절). 힘과 키 그리고 특히 지혜와 이해력이 점점 자라서(26절),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능력이 있는 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젊은이들은 하나님을 보다 잘 섬길 수 있는 은혜를 입는다. 여호와의 집에 심어진 나무는 더욱 흥왕하게 된다(시 92:13). 사무엘은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았다." 어린이들이 순종을 잘하게 하며 덕스럽게 기르는 것은 그들에게 크게 힘을 돋구어 주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은 하늘로부터 그리고 땅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여기에 사무엘에게 일컬어졌던 바로 그대로 우리의 주님 예수께 대해서도 그대로 일컬어졌다(눅 2:52).

Ⅱ. 이제 우리는 엘리의 가족들이 비록 성전 문에 앉아 있었지마는 얼마나 많은 악행을 행하였는가 살펴보자. 교회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하나님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1. 엘리의 아들들의 지독한 악행을 보자(12절).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들이었다." 그들이 불량자였다는 것이 여기에 강조 되었다. 엘리 자신은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틀림없이 엘리는 그의 아들들을 잘 가르쳤으며,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고 또 그들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장해서는 불량자가 되었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악인이 되었고 극악한 탕아가 되었다.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개념적인 지식과 지식의 규모(롬 2:19)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천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몰랐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와 같이 살았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우아함을 줄 수 없으며 또 그것이 그들의 피 속에 흐르게 할 수도 없다. 매우 경건하고 신앙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자녀가 반대로 눈에 띄게 불경건하며 극악한 사람일 수가 많다. 왜냐하면 "경주는 우리 마음대로 빨리만 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요 사사였다. 그의 아들들은 나면서부터의 제사장이었다. 그들의 신분은 신

성한 것이었으며 명예로운 것이었다. 그들은 소문이 두려워서라도 품행을 단정히 해야만 했다. 그들은 행정부의 장이나 높은 이들이 사는 수원지에 살곡있었다. 그럴데도 그들은 불량자였다. 그들의 명예로운 지위와 권력과 학식이 그들을 더욱 악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제단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집에서 그들은 자기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부요와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치 이방의 잡신 모양으로 섬겼던 것이다.우상 숭배와 신성 모독, 더우기 제사장들의 신성 모독 이상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또 없다. 이제 우리는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이 어떤 것들이었나 살펴보자. 그것은 매우 불행한 고찰이다.



(1) 그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모독하였다. 그것을 취해서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었고 또 자기들의 사치를 만족시켰다. 하나님은 제물 가운데서 그들의 몫을 적당히 제켜 놓도록 규정해 놓아 주셨다.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불 태울 제물과 그들이 차지할 몫은 엄연히 구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요, 자기 배만 섬겼으며(롬 16:18),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바 있는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개" (사 56:11)와 같은 자들이었다.

[1] 그들은 제사를 드리는 봉헌자들을 약탈하였다. 그들은 봉헌자들의 몫인 화목제의 제물을 강탈하였다. 제사장들의 몫은 "흔든 가슴" 과 "든 뒷다리" 였다(레 7:34). 그러나 그들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봉헌자들이 친구나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종교적인 의식의 잔치를 위해 고기를 솥에 넣고 삶을 때에, 그들은 사환을 보내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가서, 솥에 찔러 넣게 하고 어떤 것이 나오든지 제사장의 것이라고 하여 가져오게 하였다(13,14절). 백성들은 제사장들을 존경한 나머지 아무 말없이 순종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습관화하기까지 하였다.

[2]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섰으며, 하나님의 권리까지를 침범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작은 일로 여겨졌지마는, 하나님까지도 괴롭히는 일이었다" (사 7:13). 이스라엘의 명예를 위하여 살펴볼 일이 있다. 백성들은 그들의 부당한 요구에 할 수 없이 굴복당하기는 했지마는 하나님의 것이 강탈되어서는 안 된다고 매우 염려하였다. 그리하여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취하라" 라고 하였다(16절). 먼저 제단을 바쳐야 할 것은 바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일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기름을 드리기 전에는 그들이 고기를 마음놓고 먹을 수 없었다.

제사장들이 오히려 그들이 가르쳐야 할 백성들로부터 훈계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훈계조차 듣지 않았다. 그들은 제사장이 먼저 섬김을 받아야 하며, 좋다고 생각하면 기름끼가 있는 고기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삶은 고기에 싫증을 느겼으며, 군고기를 먹고 싶으니만큼 날고기를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왜냐하면 제사장들은 그들이 원하는 부분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제단을 위해서(먼저 기름을 태우라는 법이 있기에) 그들의 요구를 완강히 거절하면 제사장의 사환들은 매우 거만하게 나오며 폭력을 사용하여 억지로라도 빼앗아 갔다. 이 이상 더 하나님을 모독하며 백성들을 학대하는 일은 또 없다. 그 결과,

첫째, 하나님은 이를 매우 불쾌하게 여겨졌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컸다" 고 한다(17절). 성물을 모독하는 것과 여호와께 드리는 봉헌물에 대해 인간들이 욕심을 내는 것 이상 하나님을 더 화내시게 하는 것이 없다.

둘째, 이 때문에그들의 신앙이 크게 손상을 받았다. "사람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다." 그들 때문에 많은 착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를 싫어하게 되었고, 모르는 사이에 제물을 멸시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제도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는 백성들의 죄도 크다. 그러나 백성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제사장들의 죄는 더욱 크다. 목사들의 탐욕, 호색 그리고 거만함보다 더 신앙에 손상을 끼치는 것이 또 없다.

이러한 서글픈 이야기 가운데 사무엘의 경건한 생활에 대한 언급이 반복되어 나온다. 이러한 악한 무리들 가운데서도 사무엘을 순전하고 경건하게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입증하듯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 섬겼다" 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무엘의 섬김은 백성들 마음 속에 성전에 대한 신앙이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었다. 백성들은 엘리의 아들들에게는 혐오를 느꼈지마는 사무엘의 진심에 대해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으며, 사무엘 때문에 신앙을 지키고 있었다.



(2) 그들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범했다(22절). 그들은 각기 자기들의 아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살진 수말" 과 같았다(렘 5:8). 그들이 보통 창녀의 집에 가는 것도 극악한 죄라고 할 수 있는데, 하물며 그들이 제사장이란 직권을 이용하여 경건하며 신앙적인 여인들을 범하는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도저히 제사장으로서 범할 죄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오 하늘이여 놀라라, 땅이여 떨어라." 그들의 죄는 감히 필설로 충분히 나타낼 수가 없도다.

2. 엘리는 그의 아들들의 악행을 꾸짖었다. "엘리는 매우 늙었다(22절). 그는 전처럼 성막의 일을 돌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일을 그의 아들들에게 맡겼는데 그들은 엘리가 노쇠하였기 때문에 무시하였다. 그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였다. 한편 엘리는 아들들의 악행에 관해 많은 말을 들었으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으며, 그를 더 늙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엘리는 그들이 여인을 범했다는 말을 듣기까지는 그들을 그렇게 꾸짖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말을 듣고서야 그들을 꾸짖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만일 엘리가 그들의 탐욕과 사치한 생활을 꾸짖었던들 이러한 나중의 잘못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을 들으면, 되도록 속히,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도록 그들을 제때에 꾸짖어야 한다. 이때 그들에 대한 엘리의 꾸짖음에 대해 살펴보자.

(1) 엘리의 꾸짖음은 매우 정당하고도 이치에 맞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매우 합당한 말이었다.

[1] 엘리는 그들의 죄가 명백하며 숨길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23절). 이것은 한 두 사람의 억측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공연히 말하는 증거이다. 모든 이웃들이 너희를 욕하고 있으며 나에게 불평을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날더러 이 불평의 씨앗들을 제거해 달라고 말한다."

[2] 엘리는 그들의 죄가 가져올 잘못된 결과를 말해 주었다. 그들은 그들만이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여야 할 너희들이 (말 2:6),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케 하는도다. 그리고 그들을 바로 세워주지 못하고 멸망케 한다. 너희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렇게 그릇되어 섬기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곧 그들을 다른 신으로 가도록 하며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는 것이다."

[3] 엘리는 그들이 범죄함으로 가져오게 될 위험에 대해 경고하였다(25절). 엘리는 하나님께서 나중에 그에게 일러준 바를 여기서 그의 아들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곧 그들의 "죄악을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는 것이었다(3:14).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법관이 (말하자면 제사장인데 그들은 백성들을 재판하라는 지명을 받았던 것이다. 신 17:9) 판결하려니와, 또 그를 위해 변명해 주며, 또 중재해 주며, 대신 속죄도 해 주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말하자면 제사장이 여호와의 성사를 모독하면, 또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모욕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엘리는 그 자신이 사사였다. 그리고 때로 범법자를 위해 중재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 범죄한 너희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속했으며,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켜 주는 바로 그것들에 대해 하나님의 법과 명예를 거슬러 죄를 범한 너희를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간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친아버지가 그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 주지 못하여, 그들을 위해 변명을 해 줄 수 없다고 한다면 그들의 상태가 매우 비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원과 속죄 자체에 거슬려 죄를 범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것이다.그것은 "약속의 피를 발로 밟는 것" 인데,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히 10:26).



(2) 엘리의 꾸짖음은 너무 부드러운 것이었다. 엘리는 그들을 심하게 꾸짖어야만 했다. 그들의 죄는 마땅히 심한 꾸짖말을 받을 만한 것이었다. 그들의 성품을 보아서도 그러했다. 엘리의 부드러운 태도는 더욱 더 그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엘리가 말하기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라고 한 것은 너무 안이한 비난이었다. 엘리는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것은 부끄러운 소문이다. 그대로 참을 수 없다. "그가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든지 혹은 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든지, 하여간 이처럼 그들을 부드럽게 대해 준 것은 하나님과 그의 성전의 명예를 위한 그의 열심이 부족하였던 증거임이 명백하다. 엘리는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다. 그러나 그는 대제사장과 사사로서 자신이 그들의 죄를 심판하고, 그들을 구금하고 벌을 주었어야만 했던 것이다. 엘리의 말은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치 못한 말이었다. 때로 우리는 책망을 할 때 날카로운 말로 책망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두렵게 하여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유 23).

3. 엘리의 아들들은 책망을 듣고도 계속 완악한 일을 고집하였다. 엘리의 자비는 그들에게서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엘리의 권위도 그 사랑도 존경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명백한 표시" 였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기를 원했다. 하나님도 이제 그들에게 마땅한 심판을 내리시고자 하여,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고, 그들의 양심을 마비시켜 주셨으며, 그들이 받기를 거절하였던 은혜를 거두어 들이셨다. 지혜로운 책망에 대해 귀를 막는 자는 분명히 멸망으로 인침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대하 25:16; 잠 29:1 참조). 이러한 기사가 있은 바로 뒤에 또 다시 그들의 완악함이 부끄러운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 사무엘의 순종에 관한 기사가 언급되었다(26절).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랐다" 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자신이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은혜를 대제사장의 아들들에게는 주시지 않으시고, 미천한 기골 레위인의 아들에게는 부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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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와 그의 집이 받은 위협(사무엘 상 2:27-36)

엘리는 그의 아들들을 너무 지나치게 부드럽게 책망하였다. 그리고 마땅히 선포하여야 할 위협을 선포하지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를 날카롭게 책망하며, 그를 위협하기 위해 한 선지자를 엘리에게 보내셨다. 왜냐하면 엘리의 관대함이 그들로 하여금 악행을 더욱 저지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의인들이 그들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또 그들의 부주의하고 태만하여 죄인들이 죄를 짓도록 도와 주었다면, 그들은 그런 위협을 받아야 하며, 그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해야 한다. 엘리의 가정은 땅에 있는 어느 가정보다 도 하나님께 가까이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다" (암 3:2). 그 소식은 엘리에게 직접 보내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엘리를 회개시켜 그를 구원 하시고자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엘리의 아들들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이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엘리에게 그의 책임감을 일깨워주시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그 심판을 면하게 하시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를 나타낸 것 같지 않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엘리에게 전한 소식은 매우 위협적인 내용의 것이었다.

Ⅰ. 하나님은 엘리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의 집과 그의 가정에게 베풀어 주신 것을 기억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론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그에게 나타나시었는데(출 4:27), 이는 장차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실 은혜의 표시였다(27절). 하나님은 그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며, 그의 후손들이 이 제사장직을 상속하게 하셨는데, 이로써 그의 가정을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단에 올라가 분향하는" 영예로운 일을 맡겨주셨으며, 재판장의 흉배인 에봇을 입게 하셨다. 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차지하게 하는 명예로운 대우를 하여 주셨다(28절). 그 이상 어떻게 더 하나님께 충성하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남다른 은총, 특히 영적인 제사장 직분은 우리가 그 면류관을 모독하고 우리의 신임을 배반할 때 그만큼 우리의 죄를 크게 만들며, 마지막 날에 우리를 불리하게 만든다(신 32:6; 삼하 12:7, 8).

Ⅱ. 하나님은 엘리와 그의 가정의 잘못을 밝히 드러내 보여 주셨다. 그의 자녀들은 악을 행하였고, 그는 이를 보고도 못본 체하였다. 그리하여 그 자신도 그러한 죄악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고소는 그들 전부에게 해당된다.

1.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성물들을 모독하였다. "너희는 내가 명한 나의 제물을 밟았다. 너희는 그 제도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을 뿐 아니라, 가증한 물건처럼 차버렸다." 그들은 "여호와께 성결" 이라고 씌어진 가마솥에서부터(슥 14:2), 강제로 제물의 고기들을 빼앗아갔으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태우라고 하신 기름을 자신들을 위해 약탈해 감으로써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을 가장 멸시한 잘못을 범하였다.

2. 엘리는 그들의 오만과 불신앙을 벌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그들의 잘못을 도와 주었다. 엘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겼다" 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은 곧 이런 뜻이다. "너는 네 아들들의 잘못을 의법 처단하면 그들이 크게 손상받을 것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그들의 모독적인 행위 때문에 나에게 드리는 제물이 손상을 입는 것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 그들은 마땅히 그 벌을 받아 그 직분에서 면직되거나 파면 되어야만 했다. 그들의 자녀들이 악한 길로 가도록 허락하거나 장려하는 사람들, 또는 그들을 제지하거나 벌 주기 위해 그들의 권위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그의 자녀들의 평판을 더 걱정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그의 자녀들을 더 만족시켜 주고자 원함으로, 결국 "그들을 하나님보다도 더 중히 여긴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성물을 탈취한 것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엘리 자신은 이를 싫어하였으며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기는 하였으되, 그들이 탈취한 군고기를 먹었던 것 같다(15절). 엘리는 "비둔한 사람" 이었다(4:18). 그러므로 (비록 홉니와 비느하스가 주로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의 전 가족이 책망를 들었으며 "내게 드리는 제물의 좋은 것으로 네가 살이 쪘다" 라는 말을 들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충분히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만족히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을 가지고 자기들을 살찌게 하였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데 사용하였다(호 4:8 참조).

Ⅲ. 하나님은 엘리의 가족에게 주셨던 제사장의 상속권을 박탈하신다고선언하셨다(30절). "그 자신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위해서 질투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의 직분이 취소되고 면직되었다" 고 하셨다. "나는 전에 네 집과 네 조상 이다말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고 말한 바가 있다" (엘리는 아론의 막내 아들 이다말의 후손이다). 어떻게 해서 대제사장의 지위가 엘르아살의 집에서 이다말의 집으로 옮겨졌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변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엘리가 이다말의 후손으로서 그런 지위를 계승한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그 약속이 주어진 조건을 한 번 살펴보자. "그들이 내 앞에서 영영히 행하리라" 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 말은 "그들이 충실히 섬길 때 이러한 명예를 가질 수 있다" 는 조건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 앞에 행한다" 는 말은 언제나 계약의 조건이었다(창 17:1). 그들이 나를 그들의 면전에 세우게 하라. 그러면 나도 그들을 영영히 나의 앞에 세울 것이다(시 41:12).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이제 너희가 나를 저버렸으므로 나도 역시 너희를 저버릴 수밖에 없다. 나의 앞에서 행하여야 할 너희가 나의 앞에서 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행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런 고약하고 버릇이 없는 종들을 내리치실 것이며, 그 직분에서 쫓아 버리실 것이다.어떤 사람은 이러한 면직의 적용 범위가 단지 엘리의 후손인 아비아달의 자리를 엘르아살의 후손인 사독이 차지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레위 족속의 제사장 직분 전부를 무효화시키는 데까지 확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Ⅳ. 하나님은 이러한 면직의 정당한 사유를 하나님의 통치의 확고한 원칙에서부터 밝혀 주셨다. 이 원칙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다(가인도 이런 원칙의 적용을 받았다. 창 4:7).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존중이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1. 이 말씀에 대해 우선 개략적으로 검토하자.

(1) 하나님께로부터 존대와 멸시가 모두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은 낮은 자를 높이실 수 있으며, 높은 자를 멸시하실 수 있으시다.

(2) 우리가 하나님과 대할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주관하시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은총으로 받을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시 18:25, 26 참조).

2. 이번에는 좀더 자세히 검토하여 보자.

(1) 이것은 하나님께 존경을 표하며 사람들의 명예를 높여 주는 신앙의 영원한 덕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하나님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라 결국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된다. 참으로 위대해지는 길은 참으로 선하게 되는 길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우리가 겸손하고 자신을 부정하며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 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영화롭게 하신다는 약속을 받을 수 있다(요 12:26 참조).

(2) 이것은 또 경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에게 내릴 영원한 비난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가장 위대하시며, 천사들까지라도 숭배하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은 곧 사람들을 멸시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는 스스로가 경멸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경멸을 당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경멸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자랑하는 명예가 진토에 파묻히게 될 것이다.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며, 그들의 이름이 크게 비난받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죽었을때는 그들의 기억은 쇠미해지고, 그들이 부활하였을 때는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고 멸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의 무기력한 악의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전능하신 공의에 대해 돌린 멸시는 그들의 머리 위로 돌아갈 것이다(시 79:12).

Ⅴ. 하나님은 그들의 씻을 수 없는 모욕에 대해 그들의 가족에게 내릴 영원한 심판을 예언하셨다. 무서운 저주가 그의 후손에게 계속해서 일어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배 문제에 있어서 만은 하나님이 얼마나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신분과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얼마나 호되게 다루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만일 하나님의 종들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모독 한다면 그들은, 이런 경우는 물론 다른 경우에도 언제나, 다른 죄인들보다는 몇 갑절 더 가혹한 징벌을 받는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여기에 엘리의 집에 내린 파멸 선고를 읽고 두려워 하여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위협들이 들어 있다.

1. 그들의 힘이 꺾일 것이라고 하셨다(31절).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겠노라." 그들은 그들의 모든 권위를 박탈당하고, 면직되며, 전처럼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실 것이다(말 2:8, 9 참조). 엘리의 아들들은 백성들을 압제하며 그들의 권리를 침범하기 위하여 그들의 힘을 남용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인 엘리는 그들을 제지하며, 그들을 벌 주기 위해 마땅히 사용했어야 할 그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땅히 뻗어야 할 때 뻗지 못한 팔을 끊으시겠다는 위협은 정당한 위협이시다.

2. 그들의 목숨이 길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엘리 자신이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나이에서 오는 지혜와 침착함과 경험과 그리고 권위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그 신앙을 보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나이에서 오는 허약함 때문에 그의 책임에 대해 냉담했고 태만하였다. 따라서 그의 후손은 누구나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위협을 받았다(31,32절).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라" 는 말이 두 번씩이나 반복되었다. 그리고 또(33절) "네 집 생산하는 자가. 대대로, 한창 일할 나이인 젊어서 죽으리라" 는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의 가족은 아주 멸절되지는 않겠지마는 그의 후손중 누구나 그 시대의 탁월한 인물이나 유명한 인물이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유대교 저술가들의 글을 인용하여 말한 바가 있는 패트릭(Patrick) 주교의 말에 의하면, 훨씬 오랜 후에 예루살렘의 가족들이 대개 18세 이상을 살지 못하는 어떤 한 가족이 있었는데 조사를 해보니까 바로 그 가족이 그러한 선포가 내려진 엘리의 집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3. 그들의 모든 즐거움이 끊어지리라고 하였다.

(1) 성전의 부귀 속에서 누리던 그들의 즐거움이 쇠잔할 것이다. "너는 내 처소에서 대적을 만날 것이다" 고 하셨다. 이 예언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공하여 그 땅을 노략하여 폐허 왕같이 만들었을 때에 실현되었다(13:19). 그 일로 말미암아 제사장들의 수입이 격감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하나님의 궤가 노획당한 것은 하나님의 집에 대한 적대적인 행위였다. "이스라엘의 평강을 본다" 는 것이 한 가정의 축복인 것과 같이(시 128:5, 6). 그 반대 즉 이스라엘의 평강을 보지 못하는 것은 한 가정 특히 제사장의 가정에 대해서는 가혹한 심판이 된다.

(2) 자녀를 통한 기쁨이 쇠잔할 것이다.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너의 가족에게 오점이 되며 짐이 될 것이며, 친척들에게 치욕과 그리고 괴로움이 될 것이다. 그가 바보이거나 또는 병으로서거나 또는 악하든가 가난하든지 하여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다." 자녀가 죽는 것은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한다. 그러나 나쁜 자녀는 우리를 더욱 더 슬프게 한다.

4. 그들이 가진 재물이 모두 허비되고 그들은 매우 가난하게 될 것이다(36절). "네 집에서 남은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서 살기가 괴로울 것이다. 그는 생계를 위해 너의 집의 뒤를 이을 가족들에게 가서 머리를 숙일 것이다."

(1) 그는 매우 적은 동냥 -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해 빌 것이다. 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가를 보라. 엘리의 아들들은 좋은 살고기만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들은 떡 한 덩어리를 보고도 크게 기뻐할 것이다. 방종한 자에게는 굶주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형벌이다. 산해진미가 아니고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은 일용할 양식에도 굶주릴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이처럼 어김없이 그들을 찾아들 것이다.

(2) 그는 매우 천한 일이라도 하고자 하여 애걸할 것이다. "제사장에게 속한 어떤 일이라도 나에게 시켜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 탕자들이 마땅히 하여야 할 말이다. 부요와 권세는 이를 남용할 때 유실되고 만다. 그들은 감히 높은 자리를 구할 수 없으며, 제단에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보잘 것 없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며, 일을 열심히 하되 삯은 형편없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은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다. 이 예언은 엘리의 후손인 아비아달이 반역죄로 인하여 솔로몬으로부터 파면을 당해 성전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완전히 응했다(왕상 2:26, 27). 이로써 우리는 엘리의 후손들이 이와 같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5. 하나님은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을 통해 이러한 심판을 속히 실행하시며, "이것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는 슬픈 소식을 엘리가 살아서 들을 것이라고 하셨다(34절). 엘리는 이런 말씀을 들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은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는 그 위협이 한 가지 실현되었다. 이제 나머지 위협들도 차례대로 실현될 것이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러 번 함께 죄를 범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같은 날에 함께 죽으리라고 예언되었다. "이 가라지들을 한데 묶어 불사르라." 이 예언은 어김없이 실현되었다(4:11).

Ⅵ. 엘리의 집에 내리는 이 모든 위협들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하나의 자비로우신 약속이 있다(35절).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라" 는 약속이다.

1. 이 예언은 엘르아살의 후손인 사독이, 솔로몬 치세의 초기에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되었을 때 실현되었다. 그는 자기 일에 충성을 다했다. 그리하여 레위 계통의 제사장 제도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그의 후손들이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다. 목사의 잘못은 그 목사 자신을 멸망시키는기는 하되, 목사직 자체를 자멸시키지는 못한다. 일하는 이가 아무리 악해도 일 자체는 세상 끝날까지 존속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신임을 배반한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 그 일을 충실히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일할 사람들이 없어서 땅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여기에 일컬어진 이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지파에서 행하리라" 고 하였다(그 사람은 곧 다윗과 그의 후손을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심판의 흉배를 입고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 국사를 위해 왕에게 자문 역할을 할 것이다. 많은 가정들이 타락하여 멸절하여도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후계자를 세우신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들의 조상과 달리 악하게 될 때는 하나님께서 이에 맞추어 다른 사람을 선하게 만들어 주신다.

2. 그 예언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서 완전히 실현되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거절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자비로우시고 충실하신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에 들도록 모든 일을 하셨다. 하나님은 그를 위해 견고한 집을 반석위에 세워주실 것인데, 지옥의 문이 감히 이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2:28 없음.

 

2:29 없음.

 

2:30 없음.

 

2:31 없음.

 

2:32 없음.

 

2:33 없음.

 

2:34 없음.

 

2:35 없음.

 

2:36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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