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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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거처를 찾는 단 지파(사사기 18:1-6)

1. 단 지파 사람들은 라이스 지방에 마음을 두었다. 그러나 단지파 사람 전부가 아니라 단 지파의 일부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라이스는 가나안 땅 중에서 단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 형제들은 유다 지파와 블레셋 족속 사이에 있는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 지파 사람의 일부는 그들의 성읍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않았기 "때문이었다(1절). 그들의 땅은 다른 지파의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전부 적의 수중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기에서 살려고 하기 보다는 형제의 집에 의지하고 살려고 하였다. 그러나 드디어 곤경에 몰린 그들은 그들 스스로 들고 일어나 그들이 살 땅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매달려 사는 것보다는 아무리 보잘것 없을지라도 자기의 집에서 사는 편이 훨씬 낫다.

2. 이 단 지파 사람들은 라이스를 탐지했다. 그들은 "그 땅을 살펴보기 위해 다섯명의 남자" 들을 보냈다(2절). 그리하여 그곳이 살기에 적합한 곳인지, 사람들이 어떤 태세를 갖추고 있는지 자기들이 그 땅의 주인이 되는 일이 가능한 일인지, 그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 얼마만한 힘이 필요한지, 또 어떤 방법으로 공격해야 하는지 등 그곳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 오도록 하였다. 그들이 탐지하기 위해 용맹스런 남자들을 보낸 것은 그들이 적을 만났을 경우 그들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뛰기 전에 살펴 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단, 사람들은 그 세밀함에 있어 "길가의 뱀" 과도 같았고(창 49:17). 그 용기에 있어서는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 (신 33:22)와 같았다.

3. 그 정탐꾼들은 미가의 제사장과 아는 사이였으며 그들은 이것을 이용했다. 그들은 이 레위인이 그들이 사는 곳을 떠돌아 다녔을 때 부터 그를 알게 된것 같다. 비록 그의 얼굴 모습이 변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알아 보았다(3절). 그들은 그가 이렇게 먼 데까지 온 것을 보고 놀라 왜 여기에 있는가를 물었을 때, 그는 그가 여기서 어떤 일을 행하고 있으며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말해 주었다(4절). 그들은 그가 그 신당에서 신탁을 맡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그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5절).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섭리에 대해 얼마나 경솔하고 관심이 없는가를 보라. 만일 그 레위인이 드라빔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이들은 하나님께 문의해 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회주의자처럼 불가피하게 되었을 때에만 믿음을 생각한다. 그들은 거룩한 계명에도 아주 무지하여 하나님께서 신상을 세워놓는 것을 금하고 계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 상과 그들의 일을 의논하고, 그 댓가로 평안한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묻는 것이 용납될 것인가?" (겔 14:3). 그들은 하나님의 우림보다도 미가의 드라빔을 더 신뢰하고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이들이 실로를 지날 때 하나님의 귀한 제사장에게 묻지 않고 미가의 집에 있는 보잘것 없는 레위인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평상시 방법대로 그의 드라빔에게 의논해 보는 척했다. 그리고 그들이 믿건 안 믿건, 하나님께서 그들의 성공을 약속하시고는(6절) 격려의 대답을 그에게 주셨다고 그럴 듯하게 말하여, 그들을 믿게 했다. "평안히 가라 너희의 일이 안전하고 쉽게 이루어지리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즉 "의인의 길을 아시고 응낙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찬성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그는 그 일을 번성케 해 주시며 항상 너희를 보살피고 길을 안내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하게 해 주시리라." 우리는 우리가 가려는 길이 하나님께서 찬성하시는 길인지 잘 검토해 보아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면 우리는" 평안히 가면"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면 우리는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가시니" 우리는 결코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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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군의 출정(사사기 18:7-13)

Ⅰ. 사람들을 보내어 라이스 성읍과 그곳 사람들의 상황을 탐지해 오도록 했다(7절). 그곳은 다스리는 사람도 없었고 또 그 땅을 지키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침입해 들어가기에 매우 쉬운 곳이었다.

1. 사람들이 저마다 사악할 대로 사악해졌는데도 그것을 다스리는 권력자가 없었다. 그곳에는 권세를 잡은 자, 즉 이들을 다스릴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수치를 느낄 줄 몰랐으며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극악 무도한 행위로 하나님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이웃을 해하여 서로 파멸을 가져오게 했다.

(1) 치리자들의 직무는 무엇인가? 그들은" 제재의 상속자" 이다. 즉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상속자로서 계속하여 권력을 잡아야 할 자들이요, 그 권력으로 악을 그 땅에서 제재해야 할 임무를 맡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제재권의 소유자들" 이며, 그들에게는 그것을 위해서 권력이 부여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악한 모든 일을 견제하고 억압하며 "행악자들에게는 두려움" 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뿐이다. 그러나 권수를 잡은 자들은 그들의 악한 행실을 바로 잡아 사람들이 해를 입지 않고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제재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비록 재판의 칼이 악을 근절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가지를 자르고 더 자라거나 퍼져 나가지 못하게 한다. 악은 언제나 제재를 받고 있으며 그러할수록 악은 더욱 대담하고 위험스러운 세력을 뻗쳐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 온다.

(2) 이 사악함은 어떤 방법으로 막을 수 있는가? 죄지은 자는 수치를 당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나 또는그들의 양심에 의해 죄의 수치를 당하지 않은 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처벌의 수치를 받게 함으로써, 악을 제재해야 한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악을 몰아내고 그것을 경멸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항상 덕행을 드러내어 칭찬해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게으름, 술취함, 속임, 거짓말 등 의 죄악을 부끄러워 하도록 해야 한다.

(3) 악을 제재할 수 있는 권세를 잡은 자가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해지며 얼마나 쉽게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겠는가! 그 때에는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게 된다" (시 12:8). 이것을 볼 때 훌륭한 율법과 훌륭한 국가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2. 그곳 사람들은 허술한 방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라이스의 백성들은 문들을 다 열어 놓고 집은 수리도 하지 않은 채 태평스럽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악이 너무 커서 하루하루 하나님의 보복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떤 위험성도 느끼지 못한 채 편안히 살고 있었다. 탐지하러 온 자들은 이곳에 처음왔을 때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으나 그들이 게으르고 비겁한 자들인 것을 알고는 그곳의 방비가 매우 허술하여 그들이 쉽게 점령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비록 그곳은 내륙에 위치해 있고 개방되어 있는 마을이긴 했지만 "시돈 사람(그들의 땅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고 인공적으로나 자연적으로 잘 방어되어 있었다.) 같이 평안히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기" 때문에 시돈 사람들은 그들을 도울 수가 없었고, 그들이 위험에 처한다 할지라도 아무도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끝으로, "그들은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않고" 아무 일도 않고 있거나 (그들은 하는 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게으르고 호화롭게 보냈으므로 결국은 그들 자신을 방어할 힘도 없게 되었다.) 남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기를 즐겼다. 또 그들은 그들의 이웃에 의존하거나 연합하는 것을 경멸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도 남을 돕지 않았고 또한 아무도 그들을 돕지 않았다. 이런 것이 라이스 사람들의 상태였다.

Ⅱ. 탐지하러 갔던 자들은 희망적인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8-10절). 아마도 단 사람들은 이 일을 매우 힘든 일로 여겨 그들이 라이스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주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먼 곳을 위험을 무릅쓰고 갈만한 가치가 없는 땅이라고 생각하여 더러는 이곳에 탐지하는 자들을 보내는 데 반대했을 것이다. 이 정탐꾼들은 다음과 같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1. 그들은 그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진술했다. "너희들이 우리의 말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9절). 그리하여 우리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몰리게 되어 살게 된 이 산지의 땅보다 훨씬 낫더라.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10절), 우리는 물론 거기서 편히 살 수 있느니라." 가나안의 북쪽 맨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이 성읍도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거늘 가나안 땅은 얼마나 기름진 곳인가를 깨닫자.

2. 그들은 그 땅을 얻을 수 있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전혀 의심치 않고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백성들은 평안하기 때문이니라" (10절). 안심하고 있을수록 더욱 위험하다. "하나님이 그것을 너희 손에 주셨으므로 너희가 그것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그 일을 할 것을 선동했다.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망설이지 말고 어서 빨리 가자." 그들은 사람들이 지체하고 있는 것을 재촉했으며 게으름을 부리는 것을 꾸짖었다.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조차도 남이 선동해야 한다. 천국은 매우 좋은 나라로서 "그곳에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는 그것을 확신하는 데 게을리 말고" 영생을 굳게 믿고" 오직 "그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써야 한다."

Ⅲ. 단 사람은 라이스를 치러 갔다. 그들은 그들의 몫으로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드디어 그곳을 향하여 떠났다(11-13절). 단 지파 사람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는 그들의 수가 6만 4천명이었으나(민 26:43)이에 100분의 1도 못되는 6백명의 사람들만이 병기를 들고 쳐들어 갔다. 그 지파의 형제나 또는 다른 지파 사람들이 그들을 도우러 오지 않았다는 것을 이상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공동 관심사나 공통 정신이 생겨 협동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 가나안에 들어오고 나서 오랜 후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 전에는 이들은 거의 서로 돕지 않았으며 그러한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 6백명만이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떠났던 것 같다(21절). 그들은 "어린 자식들과 가축", 즉 가족들과 재물들을 데리고 오면서 분명 그들이 성공하리라는 것을 확신했을 것이다. 다른 지파 사라들은 그들의 땅을 지날 때 단 사람들을 자유롭게 통과시켜 주었다. 그들은 첫날 기럇여아림(kirjathjearim)에 진을 치고 그날 밤을 지냈는데, 그 일로 해서 그곳을 마하네단 즉 단의 진영이라 일컫게 되었으며, 그들이 처음 행진한 소라와 에스라올 사이도 똑같은 이름이 붙여졌었다(13:25).

둘째날에 그들은 미가의 집이 있는 에브라임 산지에 다다르게 되었다(13절). 여기에서 그들은 잠시 머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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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미가의 신상들(사사기 18:14-26)

단 사람들은 그들이 살 만한 땅을 찾아 보도록 정탐꾼들은 보내었다. 그들은 부지런히 살피고 돌아 다녔다. 그러다가 이제 이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 관하여 미리 자기 지파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거기에서 그들은 신상들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단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 집에 우리들이 갖고 있지 않은 에봇과 드라빔이 그 밖의 여러가지 예배의식에 필요한 것들을 지니고 있다. 그런 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14절). 우리가 우리의 일에 대해 그 신상에게 물어 보았을 때 좋으리라는 응답을 얻었다. 그것들을 가지고 있을 만하다. 아니 그보다 우리가 그것을 훔치는게 나을 것이다. 우리가 그 신상들을 차지하면 우리는 더욱 번영할 수 있고 또한 라이스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의를 행하는 한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비참하게도 이들은 (꼭 마찬가지로 각시 놀음에나 알맞는) 이 신상들을 하나님의 임재의 표적으로 삼으려 했다. 그들은 이 신상들이 그들의 사업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 급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정확한 신탁을 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실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하려 하고 있었으며, 실로 근처에 살고 있는 미가보다는그들 자신에게 더욱 신당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런 목적으로 라면 에봇과 드라빔을 자기들의 힘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신당에 대해 (비록 그 평판은 잠시 뿐이었지만)이상한 존경심과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만일 이 신상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그 동기가 거룩한 것이었는가 하는 것을 알았다면 당장 그 신상들을 팽개쳐 버렸을 것이다. 이 신상들을 갖기 위해 그들이 어떻게 제사장을 꾀어 그것들을 훔쳐 내었으며 어떻게 미가에서 협박을 가했는가 하는 사실을 들을 수 있다.

Ⅰ. 그 집의 위치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다섯명의 남자들이 에봇과 드라빔 그리고 그 외의 부속물들을 훔쳐내기 위해 들어가 있을 동안, 6백명의 단 사람들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서 제사장과 이야기하고 있었다(16-18절). 이 비열한 제사장이 그의 신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없는 가를 보라. 그의 보물들이 없어질 동안 그는 문간에서 어슬렁거리며 이 낯선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신들은 얼마나 무력한가? 그 신들은 그것들 자신이 도난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우상들은 다른 것들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들도 잡혀갔다" 는 비난을 받고 있다(사 46:2). 오, 단 사람들의 추행이여! 자기들 자신도 지키지 못하여 잡혀가는 이 우상들이 어떻게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보이시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로는 불충분하다는 듯, 또한 하나님이 임재를 나타내기 위해 표적들을 지니고 있는 성전으로 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그들은 이 신상들을 취하였으나 그것들은 실상 아무 일도 못하고 단지 "그들 앞에서 가는 신들" 에 지나지 않았다. 더우기 그들은 그들 자신이 만들지도 않고 그것들을 훔쳐 내었다. 한 오페라의 서곡과도 같이 우상숭배는 도덕질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들은 제 2계명을 깨뜨리기 위해 제 8계명부터 어겨 이웃의 물건을 취하여 그들의 신으로 만들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번제를 바치기 위해 훔쳐오는 것을 싫어하시나" 마귀는 그것을 좋아한다. 만일 단 사람들이 그 우상들을 부수어 버리고 그 제사장을 처벌하였다면 그들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의 도리를 행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들의 조상들과 같이 그들의 하나님을 위해 진노를 나타내었을 것이다(수 22:16).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사람을 눈여겨 보지도 않아 경건함과 영예로움을 완전히 잃어 버리고는 이렇게 그들 마음대로 우상들을 취하여 중죄를 범하게 되었다.

Ⅱ. 그들은 이제 제사장에게 그 신상 뿐만 아니라 그도 그들이 함께 데리고 가겠다고 듣기 좋게 설득시켰다. 그 까닭은 그들이 그 신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들은 어떻게 그를 유혹했는가?(19절). 그들은 그에게 그가 지금 받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에게는 일개의 가정의 성직자로 한 개인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는 "한지파" 의 성직자가 되는 것이 더욱 명예롭고 유익한 일이었다. 그가 그들에게로 간다면 그는 더욱 많은 신봉자들을 거느리게 되고 그의 제단에는 더욱 많은 제물이 쌓이게 될 것이며 그는 드라빔과 의논한 댓가로 미가의 집에 있을 때보다 더 넉넉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2. 그들이 어떻게 그를 설득할 수 있었는가? 단 몇 마디의 설득에 그는 마음에 기뻐하였다(20절). 그들의 권유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그에게 기쁨을 주었고 그의 탐욕과 야망을 만족시켜 주었다. 그는 그가 이곳을 떠나야 할 특별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았다. 미가는 "그를 속이지 않았으며 그의 품삯을 변경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그 신상들과 함께 떠나는 것을 응락해 주었다. 만일 그가 레위인의 의무대로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기 위해 실로로 갔다면 그는 그곳에서 환영받고 (신 18:6) 그가 떠나온 것을 칭찬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는 커녕 그는 우상을 짊어지고 가서 모든 성읍에 우상 숭배를 퍼뜨려 놓았다. 그 자신이 미가를 떠났다는 것만 해도 미가에게는 몹시 부당하고 미안한 일이었으나, 그는 더욱 무례하게도 미가가 그리 소중히 여기던 신상들을 함께 가져가 버렸다. 배반 잘하는 레위인에게 이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집을 버린 자가 어떻게 다른 집을 지킬 수 있겠는가? 그는 "그의 마음에 기뻐하며" 떠났으므로, 강제로 타의에 의해 가게 되었다고 변명할 여지가 없다. 홀(Hall) 주교의 말대로 그들이 그를 10 세겔을 주고 유혹할 수 있었다면, 11세겔을 주는 자가 있으면 그를 잃게 될 것이다. 선한 양심이 파괴된 자에게 무엇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고용인은 그가 단지 돈을 받고 있는 자이므로 언젠가는 달아나 버릴 것이다." 그 제사장과 우상들은"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들이 그들 가운데에 서서 가게 한 것은 그가 마음이 변하여 도망치거나 혹은 미가가 따라와서 그를 잡아갈 것을 막기 위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광야를 지날 때 법궤와 제사장을 무리 가운데 모시던 이스라엘의 행진의 규칙을 모방하여 그렇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Ⅲ. 미가가 자기의 신상들을 찾으러 그들을 추적해 왔을 때, 그들은 그를 위협하여 물러가게 하였다. 미가는 그의 신당이 약탈당하고 그의 제사장이 도망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곧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모아 약탈해간 자들을 추적했다(22절). 그의 소작인들도 그와 함께 예배의식을 가졌던 사람들로 보이는 그의 이웃 사람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돕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곧 모여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들을 그들 앞에 두고 진행하는(21절) 그 약탈자들을 뒤쫓았다. 그들도 어린 아이들과 가축을 데리고 천천히 가고 있으므로 미가의 무리들은 그들을 곧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단 지파의 사람들은 워낙 그 수와 힘이 많았으므로 미가의 무리는 그들와 힘으로 싸우기보다는 이치를 따져서 그들이 빼앗긴 것을 되찾기를 바랬다. 추적한 사람들은 단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 때 맨 뒤에 서서 가던 (공격에 대비하여 맨 뒤에는 가장 힘세고 용맹스러운 자를두었던 것 같다.) 단 사람들이 낯을 돌려 미가에게 웬 일로 그들을 부르는가고 물었다(23절). 그는 그들과 논쟁을 벌여 그의 물건을 돌려줘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힘을 내세우며 물건을 돌려달라는 미가를 위협하였다. 힘(might)이 정당한 권리(right)를 능가한 다는 것은 통속적인 일이다.

1. 미가는 그들이 자기에게 분명히 잘못을 행했다고 주장했다(24절). "너희들은 나의 신들을 취하여 갔다. 내 자신이 그것을 나의 하나님의 상으로 만든고로 나는 그것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그것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이것들을 잃으면 내게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인가?"

(1) 이것은 우리에게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어리석음과 그들에게 역사하고 있는 사탄의 권세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만을 숭배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가가 손수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들을 그의 신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어리석은 자들은 이처럼 무익한 것에 마음을 쏟으며, 그것을 잃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이 생각한다.

(2) 이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우상 숭배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어떤 창조물에 우리의 행복을 걸고 거기에 지나친 집착을 지니며 그것으로 부터 결코 떨어지려 하지 않고서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말하게 될 때 우리는 바로 그것을 우상화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 위안, 희망, 행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거는 바로 그것이 우리의 신이요,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는 것이다.

(3) 그러나 만일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을 따라서 그렇게 열심히 행한다면 하물며 우리는 진실하신 하나님께 그렇게 깊은 애착으로 행하여야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관심을 기울이며, 그와의 교제를 지극히 중히 여기며, 하나님을 잃게 되는 것을 가장 큰 슬픔으로 느껴야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시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을 떠나 비탄에 잠겨 있는 비참한 영혼들은 미가처럼 방황할 것이며, 우리는 이런 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의 표적이 의심되고 위로를 잃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2. 미가가 그의 물건을 되 돌려줄 것을 요구했을 때, 그들은 그에게 피해를 끼치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또한 공평한 처사를 행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 신상들에 대해 값을 지불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이 원정해 온 목적을 이루고 그들 자신을 위해 그런 신상을 만든 후 그들이 약탈해 온 신상들을 돌려주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조금만이라도 그를 측은하게 여겨주었다면 그는 그렇게 비탄에 빠져 슬퍼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해 주기는커녕 만일 그가 즉시 그의 요구를 철회하고 물러가지 않는다면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여, 그들의 도적질한 행위를 정당화했다(25절). "노한 자들이 너희를 처서 네 생명을 잃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네 생명을 잃는 것은 네 신들을 잃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다." 사악하고 사리를 분간 못하는 사람들은 의로운 행위를 하라고 충고받을 때 매우 화를 내며 의로운 것과 합당한 것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고 애쓴다. 미가의 죄란 단지 자기의 물건을 요구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해서 그는 그의 생명과 그의 가족의 생명을 위협 받았다. 미가는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신들을 구할 만한 용기도 없었고 또 그 신들이 그를 지켜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데에 대한 확고한 이유도 거의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순순히 그것들을 포기했다. "그는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다" (26절). 우상을 잃게 된 것을 계기로 그가 그 신들의 헛됨과 무능함을 깨닫고 그것들에게 그리 집착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쳐 그가 배반했던 진실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그것들을 잃은 그가 무력으로 그것들을 취하여 갖고 간 자보다 훨씬 유익했을 것이다. 우상을 잃고 그에 대한 상처를 치료받고서 "우리가 더 이상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손실은 분명 이로운 것이다(사 2:20; 30: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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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의 정복(사사기 18:27-31)

Ⅰ. 단 사람들은 라이스를 점령했다. 그들은 계속 행진하였으나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으므로, 아마 미가의 집에서 도적질한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단정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번영했다는 사실로써 그들의 사악한 행위를 정당화한다.

1. 라이스의 성읍과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그들은 조용하고 방심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들을 염탐하러 온 다섯 명을 경계하지 않았고 그들의 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도무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단 사람들은 그들을 쉽게 처부술 수 있었다(27절). 많은 사람들은 방심으로 해서 파멸하게 된다. 사탄은 우리가 방심하여 경계하지 않고 있을 때 우리를 이용한다. 그러므로 항상 경계하고 있는 자는 복된 자이다.

2. 단 사람들은 라이스에서 완전히 승리를 거두었다. 단 사람들은" 칼날로 그들을 치며" 허름하여 다시 지어야 할 성읍들을 불살랐으나(27,28절), 아무도 이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다. 가나안 사람들의 죄악의 그릇은 완전히 채워졌으나, 단 사람들의 죄악은 이제 채워지기 시작할 뿐이었다.

3. 어떻게 이 정복자들은 그 땅에 기거하였는가? (28,29절) 그들은 성읍을 세우고 낡은 건물을 새로 짓고" 그 성읍을 단이라 이름하여" 비록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과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들은 지파의 태생이라는 것을 표하고자 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특권을 잃지 말고 그것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리들 자손에게 우리의 그 특권을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Ⅱ. 그곳에 즉시 우상이 세워졌다. 하나님은 은혜스럽게도 당신 약속을 이뤄 주시어, 단 사람들의 몫이 된 땅을 얻을 수 있게 하여 주셨고, 따라서 그들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충성을 했어야 했다. 하나님은 "민족들의 수고한 것을 소유로 취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게 하려 함이었다" (시 105:44, 45)그러나 이들이 그곳에 정착한 후 행한 첫번째의 일은 그 하나님의 율법을 퍼뜨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착하자 마자 "새긴 신상을 세워" (30절) 사악하게도 그들의 모든 성공의 영광을 그 신상에게 돌렸다. 만일 하나님께서 무한한 인내를 지니고 계시지 않았다면 이것들을 즉시 부수어 버리셨을 것이다. 이 번영하는 우상 숭배자들은 계속 죄를 범하여 "그들의 힘으로 자기 신을 삼았다" (합 1:11). 제사장의 직책을 맡은 레위인의 이름이 여기서 밝혀지고 있는데, 그것은 "마나세(우리 성경은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인 요나단" 이었다. 원본에는 마나세라는 단어 앞에 "1" (n)자가 첨가되어 있는데, 유대인 율법 학자에 의하면, 이 문자는 빼버려야 하는 것이므로 마나세는 곧 모세라는 이름과 같은 것이다. 또한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 레위인은 유명한 모세의 손자이며 모세는 실제로 게르손이라는 아들을 갖고 있었다. 이 율법 학자들은 역사가들이 모세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그 이름에 다른 문자를 삽입하여 마나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하고 있다. 라틴어역은 그것을 모세라고 읽었다. 만일 모세에게 정말 이런 사악한 손자가 있어 우상 숭배를 만들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렇게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타락한 후손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패트릭(patrick) 주교는 이것은 율법학자들의 근거 없는 이야기이며 요나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레위인이 또 다른 가문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타락이 어떻게 지속되었는가를 말하고 본 장을 끝내기로 하겠다.

1. 요나단과 그 자손들은 라이스에 정착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정복되는 날까지 일했다(30절). 미가의 신상이 제거되고 난 후에도 이들은 제사장의 신분을 지니고 있어 성읍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하여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단 사람들에게 환영받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제사장과 이것이 아무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모았을 것이다.) 세웠을 때에도 이들을 불러 그의 제사장으로 세웠다는 것은 매우 있음직한 일이다.

2. 이 새긴 신상은 사무엘의 시대가 오기 전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 계속 단 자손에게 있었다. 아마도 사무엘의 시대에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우상 숭배를 억압하고 그것을 파괴했을 것이다. 영적인 병은 쉽게 걸리지만 오히려 그 치료는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병에 감염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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