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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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되찾은 평화(사사기 10:1-5)

평화롭고 조용한시대가 가장 살기 좋은 때이긴 하나, 이 때는 별로 큰 일이 없어 역사가들은 별로 쓸 것이 없기 때문에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두 사사들, 돌라와 야일이 다스리던 때에도 별 큰 사건이 없었으므로, 역사의 기록에 있어서 극히 작은 부분 밖에는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사사의 직분을 다하여 그 나라를 위해 일함으로써, "하나님을 영광되게 했으며" 아비멜렉과 같이 왕위 권세를 자랑한다든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그들이 차지한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1. 돌리는 아비멜렉 후에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한다(1절). 아비멜렉이 끊임없는 야망으로 백성들을 교란시키고 재앙을 초래케 하여 이스라엘을 타락시켰으나, 그 후 하나님은 이 어진 사람을 들어 쓰시어서 우상 숭배를 파괴하게 하고 폭동을 진압시키며, 또 아비멜렉의 횡포로 해서 받은 상처를 낫게 함으로써 그 백성들의 잘못을 고치게 하셨다. 이렇게 돌라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했고 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는 잇사갈 지파의 자손이었으며, 그 지파 사람들은 "어깨를 내려 짐을 메는 자들로서" (창 49:14, 15) 섬기는 일을 즐겨했다. 그러나 이제 이 지파의 한 사람이 통치자가 되었다. 자신을 낮추는 자가 높임을 받기 때문이다. 잇사갈의 첫 아들의 이름은 돌라였는데 (창 46:13, 민 26:23). 이 사사도 바로 그 조상의 이름을 따라갔다. 이 이름은 벌레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은 선조의 이름이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잇사갈 출신이었으나, 그가 다스리는 직권을 맡게 되었을 때는 에브라임 산지로 와서 거하였으며, 그곳은 그 나라의 중심부에 있어서 다스리기 편리했다. 그는 23년간 이스라엘을 평온히 다르셨으나(2절) 별로 특기할 만한 업적은 남기지 아니하였다.

2. 야일은 길르앗 사람이었으며 그 후의 계승자인 입다도 역시 그러했다. 이들은 모두 요단 건너편에 있는 므낫세 반(半) 지파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은 형제들과 서로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하나님은 통치권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겨가는 동안 또 그 지파가 유다에 정착하기 전까지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는 지파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시어 "부족한 지역에 더 풍성한 영예를 허락해 주셨다." 야일은 모세의 시대에 그 나라를 평정시키기에 매우 열심이었던 바로 그 지파의 유명한 사람(민 32:41; 수 13:30)과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야일의 중요한 업적은 그가 많은 자손을 갖고 있어 가문을 영예롭게 해 놓았다는 점이었다.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었다. "(4절)

(1) 그리고 그들은 높은 직위에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다." 즉 그들은 아버지의 대리역으로 각 곳을 돌아 다니면서 백성들을 살피는 순회 사사들이었다. 우리는 이 후에 가면 사무엘이 자기의 아들들을 사사로 만들었지만 그들은 훌륭한 사사기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삼상 8:1-3).

(2) 그들은 각자 한 성읍을 맡고 있었으며, 그곳을 그들의 아버지와 같은 선조의 이름인 하봇야일 즉 야일의 동네라 불렀었으나, 그것들은 후에는 도성들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받은 마음을 도시로 확장시켰거나 아니면 그들이 작은 몫에고 극히 만족하여 서로 밀집해 있는 그곳을 성읍처럼 울타리로 쳐서 문을 해닫은 때문이었다. 작은 마을에라도 만족하는 자에겐 큰 도시가 될 수 있다.

 

10: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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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없음.

 

10:6

다시온 역경(사사기 10:6-9)

Ⅰ. 이스라엘은 다시 우상 숭배하게 되었으며, 이 죄는 그들을 가장 쉽게 빠지는 것이었다(6절). "그들은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며 마치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백성들처럼" 말할 수 없이 타락해 갔다.

1. 그들은 많은 신들을 섬겼다. 즉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오래된 악령인 바알과 아스다롯 뿐만 아니라, 마치 그들의 어리석음은 모든 이웃에알리는 듯이 수리아, 시돈, 모압, 암몬 그리고 블레셋의 신들을 모두 섬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사업이 모든 나라에서 신들을 수입해 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일을 행하는 것이 더욱 경건치 못하고 우둔한 짓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들은 타국의 신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 자신을 천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영예롭게 되려는 지각을 지닌 백성이라면 결코 그들의 신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많은 재산이 여러 나라의 우상들을 사들이는데 낭비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독립적인 신당을 지었을 것이며, 따라서 이 우상을 섬기는 신봉자들과 제사장들도 그들의 신을 따라 분명 이스라엘 땅에 들어왔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 자신의 나라에서 살 수 없었다면 이스라엘에와 뿌리를 박았을 것이며, 이렇게 하여 타국 사람들이 그들의 힘을 좀먹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이스라엘이 그 이웃 나라들에 게 경의를 표하고 환심을 사기 위해 그 일을 행할 것이라면 그들은 물론 실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악한 기교로써 이 나라들을 친구들로 만들려 했지만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으로 해서 이들은 그들의 적이 되고 억압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죄를 범한 바로 그점으로 해서 인간은 처벌받을 것이다."

2.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을 자기들이 섬기는 잡신들의 하나만큼도 여기지 않고 아주 저버렸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려 그를 전혀 섬기지 아니하였다." 하나님과 재물을 둘다 섬기려는 자는 얼마안가 하나님을 버리고 재물만을 섬기게 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얼마 안가서 완전히 하나님을 저버리게 된다.

Ⅱ.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벌하시기 위해 그들의 적의 억압에 처하게 했다. 그들이 즉시" 여호와의 손에 떨어졌다면", 그들은 "그의 자비하심이 매우 크시다는 것" 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인간의 손에 붙이셨으매", 그들의 학대는 매우 심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남서쪽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 파시었고" 또 동시에 북동쪽에 있는 암몬 사람들에게 파시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두 틈바구니 사이에서 비참하게 "짓밟혔으며, 문자적인 의미대로 압제를 당하였다" (8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어느 성읍이 우상 숭배를 행하면 나머지 다른 성읍들이 그들을 쳐 죽이도록 명하셨다(신 13:12 이하). 그들은 이 일에 매우 열심이었으며 특히 두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세운 제단을 쌓자 여호수아는 그들을 크게 꾸짖었다(수 22장). 그러나 이제 그들이 몹시 악하여져서 한 성읍이 우상 숭배를 좇자 다른 성읍들도 그 성읍을 벌하는 대신 같이 그것을 따르고 또 그들보다 더욱 심하게 우상을 섬겼다. 이렇게 "악을 행한 자들에 대해 분노를 품고 징벌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죄를 범하거나 "헛되이 칼을 빼들었으므로", 하나님은 이웃 나라들로 하여금 당신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을 치도록 하셨다. 롯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을 억압하는 암몬 사람들의 통치는,

1.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것은 18년간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횃수를 야일이 다스리던 시기 안에 집어 넣고 있으며 야일은 이스라엘을 개심시켜 구원할 능력이 없었으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일은 야일이 죽은 후에 바로 시작된 것으로 보는 있는데, 이것이 더 타당한 견해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암몬 사람들에 의해 가장 피해를 입은 자들은 야일 자신의 고향인 길르앗 사람들이었으므로 우리는 야일이 살아 있는 한 적어도 그들을 시정하고 보호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그 통치는 매우 비통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압하여 분노하게 만들었다. 암몬 자손들처럼 비천한 백성들에게 정복당한다는 것은 매우 화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암몬 사람들은 요단 건너편 곧 "아모리 사람의 땅" 이라는 (8절) 곳에 거하는, 가까운 지파부터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 땅이 그렇게 불리우게 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참할 정도로 타락하여 이교도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취하고, 그들이 완전히 아모리 사람들이 된 때문이었거나 (겔 16:3), 아니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를 지음으로써 그곳 지명에 이스라엘의 이름이 없어지고 "아모리 사람이 땅" 으로 간주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그들을 침입해 들어와 이스라엘의 가장 유명한 지파인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지파를 정복하였다(9절). 이처럼 하나님을 저버린 백성들은 굴욕을 당했고 그들은 이 침입자의 대항할 힘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들은 이러한 위협 속에서 "그들의 적 앞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며, "대적을 당할 힘이 없었다" (레 26:17, 37). 그들은 "습관과 행실이 그들 자신에게 이러한 일을 가져오게 했다." 그들의 처절한 타락이 그만큼 쓰라린 고통을 가져온 것이다.

 

10:7 없음.

 

10:8 없음.

 

10:9 없음.

 

10:10

이스라엘의 회개(사사기 10:10-18)

Ⅰ.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통 중에 그들의 잘못을 하나님께 고백한 겸손한 자백이 있다(10절). 이제 그들은 고문당하는 악인처럼 그들의 잘못을 인정했으며, 매맞은 아이들처럼 그들의 잘못을 고칠 것을 약속했다. 그들은 그 고통을 불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로 해서 이러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그리고 그들은 불평할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행하지 아니한 일을 고백했는데, 실상 죄는 거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저버렸나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죄과를 고백했다. "우리는 바알을 섬겨 어리석고 사악한 일을 행함으로써 당신을 배반 하였아옵니다."

Ⅱ.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지극히 자비로운 소식을 보내셨다. 그것이 천사에 의해 전해졌는지(2:1 에서처럼) 또는 선지자에 의해(6:8 에서처럼) 전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을 해 주셨다는 것은 퍽 감사한 일이다. 또한 그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을 때 이와 같은 말씀을 보내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더욱 회개하게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려는 것은 매우 큰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을 그들의 적에서 구해 주신 일을 상기시키시며 그들을 책망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을 먼저 애굽 사람에게서 구원해 주셨으며, 그들의 땅에 쳐들어 온 아모리 사람들에게서 구원해 주셨고, 모압 사람들과 합하여 이스라엘을 억압한 암몬 사람들의 손에서 구해주셨고 또한 삼갈 사사 시대에 그들을 괴롭힌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구원해 주셨다. 그 후에도 그들의 적으로부터 고통당하여 간구할 때면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에게 큰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11,12절). 다른 곳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시돈과 마온 사람들의 압제에서도 구원해 준 것을 여기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의롭게 그들을 징벌하셨으며, 또 은혜롭게 그들을 구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 속에서 그를 따르고 섬겨 두었어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은 그들의 가슴을 찔렀을 것이다(13절). "그러나 너희를 고통 속에서 구원했을 때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이제 너희 들은 다시 고통 속에 빠지게 되었도다." 이처럼 그들은 "그들 자신의 미혹함으로 그들에게 내려진 은혜를 저버렸다."

2. 하나님은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므로", 하나님도 당연히 그들을 버려 구원치 않으시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을 회개하게 하시고 바로 되게 일깨워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1) 바알 신들을 섬긴 어리석음을 알게 했다. 그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어 이 신들의 은혜를 입으려 했으나 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신들은 어떤한 도움도 주지 못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 짖어서(14절), 그들이 너희를 위해 무슨 일을 해 줄 수 있는지 알아보라. 너희는 그들을 신으로서 섬겼으니 이제 그들이 너희에게 거룩한 권능과 선함을 행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라. 너희는 그들이 너희의 왕이나 방백이 되는 것처럼 충성을 다했으니, 그들이 이제 너희를 보호해 줄 수 있는지 시험해 보라. 너희는 그들이 너희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준 것처럼 생각하고 악인들처럼 제물을 그들의 제단에 드려 그들을 찬미했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친구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참된 참회에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있기를 바라서 우상으로 섬기고, 하나님과 대적하는 보좌를 우리의 마음 속에다 제공해 준 모든 것들의 전적인 무익함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탐닉하고 있는 감각적 쾌락이 우리의 만족이 될 수 없음과, 우리가 탐닉하고 있는 이 세상의 부귀도 우리의 기업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 밖에서는 행복하거나 평안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2) 하나님을 버렸기에 그들에게는 비참과 위험이 따름을 알게 했다. "너희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라." 나는 이제 너희에게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는 말 밖에는 줄 수가 없거늘(13절), "너희는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는지도 모른다" 는 것 뿐 아니라 만일 그들이 우상을 버린 후 앞으로는 올바른 일을 행하겠다고 그들의 잘못을 자백하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겠다" 는 뜻의 말씀을 들려 주신 것이다.

Ⅲ.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정의에 겸손히 복종하면서, 그의 은혜를 간구했다(15절).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희막문에서 엄숙하게 거행된 총회 석상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여기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었으며, 그것이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매달리며 죽더라도 그곳에서 죽으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하는 자백을 반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1. 그들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완전히 굴복했다.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옵소서." 여기에서 그들은 그들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벌을 가하시더라도 달게 받겠다는 태도와,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징벌하시든 그것은 그들에게 결코 해롭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나타내고 있다. 즉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아래 복종하고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려 했다. "모세는 인간이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받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레 26:41).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은 그들이 행한 일이 매우 사악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징벌은 결코 가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자신을 위하여 올바른 인간으로 만들어 주시게 한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이 원수들로부터 "건져 내옵소서." 그들은 그들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한 대로 벌주시지 않기를 간구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희망을 가지고 그의 정의에 굴복해야 한다.

Ⅳ. 이리하여 그들은 이제 회개를 하고 마음을 정하게 했다. 그들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했다. "그들은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렸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나라와 계약의 말씀에 낯선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겼다." 환난이 그들을 하나님께 돌아가게 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섬기던 신들이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전에 업신여기던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그것은 죄에 대한 회개 뿐만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진실된 참회였다.

Ⅴ. 하나님은 다시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은총을 보이셨다. 우리는 그것을 다음 귀절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16절). 하나님 안에서 어떤 슬픔도 있을 수 없으며 (하나님안에는 무한한 기쁨과 행복이 있으며, 이 세상 어떤 죄악이나 환난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다), 항상 변함이 없다. 그는 "항상 불변하시니 누가 그를 돌이키리오?" 그러나 그의 선하심이 곧 그의 영광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자비하심을 통하여 그의 이름을 드러 내시며, 모든 이름 가운데 높이 그 위엄을 떨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약의 말씀에서 그 자신이 그의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심을 즐겨 밝히셨듯이, 그는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그의 자비로움을 그들에게 기꺼이 보여주신다. 그는 빛들의 아버지이시듯이, 또한 자비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자식들의 불순종과 비극은 인자한 아버지에게는 근심이 되며 그의 자연스런 사랑에 깊은 충격을 주듯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탄원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매우 근심하셨으며 (시 95:10). "그들의 가증한 일에 상심하셨다" (겔 6:9). 이처럼 그들의 고통을 하나님께는 슬픈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백성을 구원해 주시길 호소할 때, 잘못한 자식에게 너그로움을 베푸는 어지신 부모들과도 같이 하나님은 그의 벌을 기꺼이 거두어 주신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렇게 자비하시며, 인간들이 죄를 지어 사망에 이르는 것을 결코 즐겁게 여기지 아니하신다.

Ⅵ. 이제 사태는 그들을 암몬 사람들의 억압에서 구원하기 위해 일들이 진행되었다(17,18절). 하나님은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전의 그들이 아니라 새로운 다른 사람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협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좀더 겸손하여져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이제 그들이 이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려 하였다.

1. 암몬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그들을 멸하려 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일격에 물리칠 수 있도록 (계 16:16) 한 마음으로 뭉쳤다.

2. 이스라엘 자손들도 그들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한데 뭉쳤다(17절). 18년간 남의 나라의 통치를 받은 것은 예전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서로 합심하지 않아 그들의 적에게 정복당한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가족이나 성읍 혹은 지파들이 뭉치지 않고 각자 행하고 그들을 묶어 줄 공동 관심사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쉽게 적의 먹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뭉칠 때 그들은 적을 잘 막아낼 수 있었는데, 이 경우에도 역시 그러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한 마음으로 뭉칠 때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이제 길르앗의 백성들과 방백들은 암몬 사람을 치려 할 때 그들을 지휘할 대장에 대해 제일 먼저 상의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한 자들은 에훗, 바락, 기드온과 같이 특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다음번 주인공은 보다 평범한 방식으로 소명받게 되었다. 즉 이 일을 하기에 훌륭한 자가 누구인지를 회합을 열어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후에 이 선택된 자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 주시어 그를 인정해 주셨다(11:29). 이 사건은 후세에 하나님의 특별한 부름을 입은 자가 없을 때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행하시듯이 백성의 신뢰와 권한으로 치우침 없이 뽑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이 선택된 자를 너그럽게 인정해 주실 것이다.

 

10:11 없음.

 

10:12 없음.

 

10:1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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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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