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의 정병 300명(사사기 7:1-8)
Ⅰ.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고 미디안을 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 훌륭한 장군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1절). 그의 일에 전념하여 조금도 지체할 틈이 없었으므로 "그는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한 그는 일이 지연되지 않도록 서둘렀다. 그는 한 유명한 샘 곁에 그의 진을 쳐서, 그의 군사들이 물이 없이 고통 받는 일을 덜어 주었다. 그리고 그 곳은 높은 지대였으므로 그의 "골짜기 아랫편에 있었던" 미디안을 치기에 다소 유리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이란 결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오히려 서둘러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는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더욱 분발해 나가야 한다(삼하 5:24).
Ⅱ. 하나님은 예정되어 있는 이 싸움의 승리에 대한 영광을 홀로 받으시기 위하여, 기드온에게 그 싸움을 위해서 단 300명의 군사들만을 남기라고 지시하셨다.
1. 현재의 군대는 3만 2천명이었다. 그 중대한 일에 비하면 모집된 인원은 오히려 매우 작은 인원수였으며, 이제 그들과 대항하기 위해 온 미디안 사람들의 수에 비해서도 극히 작은 군대였다. 그리하여 기드온이 이 인원수로는 너무 부족하다고 느낄까 보아 하나님께서 그에게 오시어 "너무 많다" (2절)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이 숫자로도 잘 싸우기 힘들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을 쓰기에 적합치 않다는 것을 아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 안되는 지극히 적은 사람들의 손을 통해 큰 일을 하시는 것을 가끔 발견하나, 그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고의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그렇다. 여선지 드보라는 "하나님을 도우러 오지 않는 자" 를 비난했거늘, 하물며 이렇게 중요한 싸움에서 온 자를 돌려 보내야만 했는가? 물론 그렇다.(1)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수행하시는데 그들이 필요치 않으며 그들 없이도 일을 해낼 수 있고, 사람의 행위로 덕을 입으시는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여기에서 하나님은 미디안 사람의 수효에 비해 자기들은 너무 적은 수효라고 생각하여 비겁하게 그들에게 굴복하여 그들을 치려고 생각지도 못하는 겁많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만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한 사람이 천 사람을 무찌를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3) 여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뽐내지 못하게 하셨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자만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스려 자긍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러한 조치를 취하셨다. 마찬가지로 그 영예로운 일을 거부하는 자들은 그 승리의 영예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셨을 때 그들의 입에서는 "내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는 말이 나올 것이 틀림없었다. "자랑하려는 자는 주 안에서 하여야 하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2. 하나님은 그들의 수를 줄이려고 두 가지 방법을 취하셨다.
(1) 하나님은 비겁하고 약한 마음을 가진자들은 돌아가도록 명하셨다(3절). 요르단에 자리잡은 므낫세 지파를 그들의 조상으로 갖고 있던 길르앗 사람들은(민 26:30) 길르앗산이라 부르는 높은 곳에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엄청난 적군의 수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고 겁을 먹고 있던 자들은 돌아가도 좋다는 지시를 들었을 때, 매우 기뻐하며 그 곳을 떠나갔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지시는 율법서에 나와 있었다(신 20:8). 그러나 기드온은 아마도 이 율법은 그들의 땅을 더 확보하려 할 때 해당되는 것이지 그들처럼 그들의 땅을 지키기만도 급한 이런 때에 관한 율법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군대의 힘이 얼마나 약한가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이러한 지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기드온과 같은 대장 아래서 미디안과 같은 적을 무찌르는 일에 어느 이스라엘 사람이 두려워하겠는가 하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2/3나 되는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대장과 함께 계시어 그들을 구하시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단지 적군에 비해 너무 빈약하게 보이는 그들의 군사력에 겁먹고 기드온이 이런 선고를 이용하여 달아나 버렸다. 그들이 그렇게 쇠퇴한 정신을 갖게 된 것은 오랫동안 남의 억압 속에서 살아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들 자신의 죄의식이 그들 앞에서 그들을 노려 보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감히 앞에 놓여진 죽음을 대할 수가 없었다. 두려움에 떠는 약한 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합당치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인 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적다.
(2) 하나님은 또 다시 그들에게 면직령을 내려 단지 300명만 남게 하셨다. "백성이 아직도 많으리라" (4절). 그들을 더 해고 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이 우리들보다 얼마나 높으신가를 보라. 기드온의 군대가 시스라를 친 바락의 수보다는 많았지만(4:14) 기드온은 아마도 그의 군사의 수가 매우 작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믿음으로 인한 용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그는 이렇게 위험한 싸움을 하려 하지 않고, 가장 유리한 방법을 택해 후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군사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고 그들의 수가 1/3로 줄었을 때도 여전히 "너무 많다" 고 하셨다. 이에도 우리는 때로 교회와 그것의 이익을 약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해내기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고, 강력하고, 지혜롭지 않아도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수를 줄이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돋보이게" 하시는 것이다. 기드온은 그의 군사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도록 명령 받았는데, 그는 아마도 하롯샘에서부터 흐르는(1절) 냇가로 그들을 데리고 갔을 것이다. 그곳에서 기드온이나 또는 다른 사람이 그들이 어떻게 물을 마시는지를 살펴야 했다. 그들은 모두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고자 했을 것이며 기드온은 그들에게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되면 한동안 물을 마실 수 없을 터이니 이 시간에 어서 활기를 얻도록 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명 물을 맘껏 돌이키기 위해 말처럼 무릎을 꿇고서 그 입을 물에 대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개처럼 물을 핥지 않고 그들의 손으로 조금씩 물을 떠 빨리 입을 축였을 것이다. 후자에 속한 사람들은 겨우 삼백명의 지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들을 데리고 미디안 사람들과 싸울 것을 명하셨다(7절). 먼저 행한 방법으로는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는 진지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자들을 잘 가려낼 수 없었지만, 이제 두 번째 방법으로 해서 그런 자들을 잘 가려낼 수 있었다. 즉 그들은,
[1] 오랫동안 고통을 잘 견디어 낼 수 있는 자들이었으며, 목마르거나 지치는 것을 불평하지 않고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허영을 부리는 자들이 아니었다.
[2] 그들 자신의 만족보다는 하나님과 그들의 나라를 위해 일하려 하여 싸우기를 조금도 지체하지 않으려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선택하시며 이들은 그것을 기뻐할 뿐 아니라 선한 일을 하는데 매우 열심을 기울인다. 이들의 수는 적고 힘은 매우 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구하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삼백명만 남기고 그 외의 "사람들을 각각 그의 처소로 돌아가도록" 하라고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기드온의 믿음과 용기의 커다란 시련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돌아 가도록 명을 받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열성을 품고 있었던 자들이었으므로 아주 멀리 떠나지 않고 이 300명이 싸움을 할 때 도울 수 있도록 한 쪽에서 대기해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큰 일을 위해 더 많은 수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기드온의 군사들은 면직되고 그 수가 더욱 줄었다.
3. 싸움을 위하여 든든히 무장해야 할 군대가 얼마나 허술한 장비를 갖추었는지 살펴보자. 만일 이 300명이 하인들과 시종인들을 데리고 있었다면 또 칼과 창으로 이중무장되어 있었다면 더 쉽게 적을 물리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매우 허술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1) "그들은 양식을 손에 들고 있었고" (8절), 짐은 뒤에 남겨두었다. 각자가 자기의 식량을 짊어진 것이다. 그것은 저들이 믿음에 대한 하나의 시험이었다. 곧 자기들이 날라 갈 수 있는 것이 식량의 전부인 그런 판국에 그래도 저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저들의 근면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즉 저들이 힘 자라는 한 최대의 식량을 기꺼이 운반하려 하는지를 시험하는 시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실로 하루살이 품꾼의 생활이었다.
(2) 모든 군사들은 나팔수가 되었다. 해고당한 군사들은 이 삼백명을 위해 나팔을 두고 갔으며, 그들은 싸움이 아니라 무슨 경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처럼 무기 대신 나팔을 집어 들었다.
탐색하는 기드온(사사기 7:9-15)
군사가 이처럼 많이 줄었으므로 기드온은 믿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싸우러 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의 군대를 강화시키는 대신 그의 믿음을 더욱 크게 하셨다.
Ⅰ. 하나님은 기드온이 믿음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하나님께로 온 말씀만이 믿음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그가 바라는 것에 대해 충분한 약속을 해 주셨다(9절).
1. 하나님께서 그 행동의 근거가 되는 명령을 내리셨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기드온의 처사는 대장으로서 무모하고 지혜롭지 못한 처사로 보았을 것이다. "일어나라." 너희 군사가 적지만" 너희로 내려가서 그 진을 치게 하리라."2. 기드온의 승리는 매우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확실한 성공을 약속해 주셨다.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이리라." 그것은 모두 너의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 을 바로 그가 어떻게 일을 행할 것인지 매우 근심하고 있던(아마 그랬을 것이다.) 날 밤에 전해졌다. "생각에 잠겨 근심하고 있을 때 이 위로의 말씀이 그의 영혼을 기쁘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거룩한 위로를 강하게 그리고 때맞게 그를 믿는 자들에게 내려주신다.
Ⅱ. 하나님은 기드온의 믿음을 더할 수 있는 좋은 지주(支柱)를 그에게 주셨다.
1.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 진영에 몰래 가서 무엇인가를 알아 오도록 하셨다. "네가 내려가 싸우기를 두려워하거든 먼저 네 부하를 데리고 가서(10절)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11절)." 그것은 그가 그의 믿음을 아주 강하게 할 말을 들으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연약함을 아시며, 또 조그만 일로도 그들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기드온의 마음의 동요를 미리 알고 계신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내려가 그곳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 하나님께서 말씀하는 것을 더욱 확신하도록 하셨다. 기드온은 그가 매우 신임하는 "그의 부하 부라를 데리고 가도록 명령받았는데, 이 부하는 아마도 바알 제단을 부술 때 그를 도운 열 사람 중에 속한 자일 것이다. 그는 단지 부라만을 데리고 가도록 명령받았으며, 이것은 그의 부하로 하여금 그가 들은 것을 증언해 주고 이 일을 이스라엘에 알릴 때가 오면 이 말을 더욱 확고히 세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가 부하를 데리고 가야 했던 이유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으며 아무 도움이 없고 것보다 작은 도움이라도 있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었다.2.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다소 절망적인 광경을 보게 했던 것이다. 비록 밤이긴 했지만 메뚜기떼 같은 무수한 적군의 수를 보고(12절) 그는 매우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힘과 용기가 메뚜기보다 낫지 못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들이 가진 약대의 수는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았다.
3.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이 말을 통해 기쁜 전조를 알게 하셨으며, 기드온은 이 말을 듣고 왜 하나님이 그를 그곳으로 보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적중에서 동료들끼리 하는 말을 엿들었는데 아마도 이들은 잠들지 않은 채 침상에 함께 있었을 것이다.
(1)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우리들이 보통 그렇게 하듯이 밤에 꿈꾼 것을 말했는데, 사실 꿈을 다시 말한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집으로 굴러오는 것을 꿈꾸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이 떡이 우리 장막의 하나에 이르러(그것은 아마도 그들 진영의 본거지였을 것이다.) 매우 크게 부딪혀 무너뜨려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묻히게 되었다(13절)." 솔로몬은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다" (전 5:7)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때로 꿈 속의 우스꽝스러운 공상들로해서 혼잡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2) 이 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동료가 그것을 해몽해 주었으며 그것은 매우 기드온의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기드온의 칼날이라" (14절). 우리는 이 해몽하는 자의 말에서 그의 가족을 위해 곡식을 타작한(6:11-19) 기드온이 떡 덩이로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와 그의 군대는 밀가루로 만들어진 빵 조각처럼 보잘것 없고 보리떡처럼 우습게 보이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불 위에서 급히 구워낸 떡처럼 빨리 한데 뭉쳐 보기와는 달리 강한 힘으로 이 큰 적군을 무찌르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해몽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에게 이런 꿈을 꾸게 하신 것도 또 이렇게 말하게 하신 것도 모두 하나님이셨다. 만일 기드온이 이 꿈 이야기를 듣고 그와 그의 부하들이 그것을 해석했다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으며 또한 기드온에게도 별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적군을 통해 이런 해몽이 나온 것은 그것이 모든 인간이 마음과 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미리 겁부터 먹고 있는 자들은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하나님이 그의 손에 미디안을 붙이셨도다."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대적하여 싸우시는 것을 아는 자들은 감히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그를 바로 이곳으로 가게 하시어 이 말을 듣게 해 주신 것을 알고는, 군사들의 수가 줄어 근심하던 마음이 매우 큰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는 그 자신이 큰 일을 할 보리떡으로 비유된 것을 아주 기뻐했다. 이렇게 용기를 얻은 그는 다음과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15절).
1. 그는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즉 그는 즉시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경배드렸거나 아니면 그에게 승리를 확신시켜 주시고 또 그것으로 용기를 얻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흘러 넘쳐 팔을 들어 하늘을 우러렀을 것이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 말하고 그를 경배할 때 하늘로 향하는 문은 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북돋워 주는 찬미를 하나님께 돌려야 하며 미소하고 우연적인 일로 보이나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해야 한다.2. 그는 그가 받은 이 위로를 그의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일어나서 "곧 출전할 준비를 하자. "하나님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심리전을 편 기드온(사사기 7:16-22)
Ⅰ. 기드온은 한밤중에 미디안 군대를 몹시 놀라게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두렵게 했던 그들을 이렇게 놀라게 함으로써 패주시키고 멸하게 하려 했다.
1. 기드온이 행한 공격은 여려 면에서 포로로 잡힌 롯을 구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적군을 공격한 그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군사의 수에 있어서도 비슷했다. 즉, 아브라함의 군대는 318명이었으며 기드온의 수는 300명이었다. 그들은 둘 다 군대를 나누어 밤에 공격하였고, 이렇게 매우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창 14:14, 15) . 또한 기드온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디만 사람들은 그두라의 후손이었다.) 그의 믿음을 물려받은 자였다. 기드온은,(1) 그의 군대가 적긴 했지만 세 개대로 나누고(16절), 그 중 한대는 자기가 직접 지휘했다(19절). 왜냐하면 큰 군대(기드온은 큰 군대인 것처럼 보이려 했다.)는 보통 우익, 좌익, 본부로 나뉘기 때문이다.
(2) 그는 모든 군사들에게 그가 행하는 대로 하라고 명했다(17절). 그는 그들에게 무엇을 그들이 해야 하는가를 단호하게 들려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매우 신기한 일이어서 그들은 선뜻 이 일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명령으로나 북소리로 군사들을 지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먼저 일을 행하는 것을 보고 그들로 하여금 그대로 따라 하도록 지시했다.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라." 우리의 대장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도 이처럼 그의 군사들에게 명했다. 즉 그의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사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따르도록 했다. "내가 행한 대로 너희도 행하라."
(3) 그는 적군들이 방심한 채로 편히 있을 밤을 틈타 그들을 공격하여 그 둘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려 했다. 더우기 그의 군사는 수가 적어 잘 들키지 않는 이점이 있었다. 자정이 조금 지난 깊은 밤중에 일어나는 싸움은 더욱 놀라게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밤에 놀라는 것(시 91:5)과 밤의 두려움(아 3:8)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알고 있다.
(4) 기드온이 계획했던 것은 그 거대한 적의 무리를 놀라게 하여 패주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매우 치욕적인 패배를 주려 했다. 그는 그의 군사들을 오른 손에는 나팔로, 왼손에는 횃불이 든 항아리로 무장시켰으며, 이처럼 적군을 향해 진격하는 것이 그에게 어떤 모욕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적군을 향해 행군한다기보다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하는 것 같은 무장을 하고 이들을 향해 나아갔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도다" (사 37:22). 그의 군사의 수가 적었던 것은 그의 이 계획을 퍽 유리하게 해 주었다. 왜냐하면, 수가 적기 때문에 이들은 들키지 않고도 적진 가까이에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적군이 보초를 교대할 때에(19절) 그들을 매우 놀라게 하여 혼비백산시키고 이 틈을 타서 일을 벌일 계획을 하고 있었다. 기드온은 적군을 위협하여 혼돈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 세 가지 방안을 고안해 냈다.
[1] 시끄러운 큰 소리를 냈다. 모든 군사들이 매우 공격적인 태도로 나팔을 불게 했고, 동시에 항아리를 깨뜨려 부수게 했다. 아마도 이들은 서로의 항아리를 맞부딪쳐 깨뜨림으로써 더욱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게 했고 이에 적군들은 매우 놀라 서로를 죽이는 사태까지 일어났을 것이다.
[2] 갑자기 횃불을 밝혀 주위를 환하게 했다. 그들은 "말아래 둔 촛불처럼" 횃불을 숨겨 들고 와 적 진영에 나타났을 때, 갑자기 모두 횃불을 밝혀 들어 적 진영을 번개불처럼 눈부시게 해놓았다. 아마도 그들은 야영 천막에 불을 질러 더욱 혼란을 빚게 하였을 것이다.
[3]커다란 함성을 질렀다. 모든 사람은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18절) 하고 외치도록 되어 있었으며, 그들이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20절) 하고 외친 것은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로부터 들은, "그것은 기드온의 칼날이다" (14절) 하는 귀절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드온은 그의 이름이 적군들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 약점을 이용하여 그의 이름을 외치게 했으나, 그는 하나님 없이는 그의 이름이 보잘것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호와를 위하여 그리고 기드온을 "위하여 싸운다" 는 그 강한 목적의식으로 해서 군사들은 더욱 큰 용기로 싸움에 나아갈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여호와의 위대한 이름과 기드온이 이름을 외침으로써 적군을 두렵게 했다. 여호와의 칼은 모두 기드온의 성공의 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온의 칼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인간은 그 도구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며, 인간은 크든 작든 모두가 하나님의 종이다. 적군은 두려움 때문에 패배하고 말았으며, 그들이 패배한 것은 특히 "여호와의 칼날"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손에 칼을 들지 않고 "칼" 이란 말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적들도 "입으로 나오는 칼" (계 19:21)에 의해 모두 달아나 버린다.
2. 미디안 사람을 멸한 이 방법은 다음과 같이 비유될 수 있다.
(1) 그것은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고 나팔을 불고 어둠 속을 비칠 횃불을 그릇 속에 넣고 나아가 (고후 4:6, 7) 이 세상에 있는 마귀의 왕국을 파괴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지혜있다 하는 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 이 세상의 어리석은 자를" 선택하시어 보리떡을 미디안의 천막에 던지셨으니, "이 놀라운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칼이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칼이 되었다.
(2) 그것은 심판의 날의 두려움으로 비유될 수 있다. 훌륭한 홀(Hall) 주교는 이에 대한 비유를 다음과 같이 적용하고 있다. 이 나팔 소리와 횃불들이 오만한 미디안과 아말렉을 혼비백산시켜 두려움에 떨게 한 것 같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천사장이 나팔을 불 때 세상은 불붙고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어 사라지고 주님께서 큰 함성속에 내려 오실 것이라 한다.
Ⅱ. 이 경보작전은 훌륭한 승리를 거두었다. 미디안 사람들은 마치 여리고의 벽들이 큰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듯이 아우성 치며 죽어갔고, 이 광경을 보고 기드온은 "그들의 조상들이 그들에게 들려준 놀라운 사실들" 을 체험했을 것이다. 기드온의 군사들은 그의 명을 지켜 "각기 자기 처소에 가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고" (21절) 나팔을 불어 그들을 놀라게 하여 서로 죽이게 했으며, 횃불의 불이 당겨 그들을 멸하게 했다. 그들은 미디안의 처소로 뛰어들어가 탐욕스럽게 적군의 피를 묻히거나 그들을 약탈하지 않고 단지 침착하게" 여호와의 구원을 보고" 있었다. 그 구원은 단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다. 이 계획이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두었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1. 적군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두려워 하였으므로 모두가 이 일을 당하여 매우 놀랐다. 기드온의 군사가 번개처럼 그들을 포위하자, "그들은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다" (21절). 그들이 이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그들이 기드온 군사의 수효가 그렇게 크게 격감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기드온 군사들의 최후 통첩이 있은 후로 점점 더 수효를 증가 시켰으리라 결론지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팔을 불며 횃불을 든 군사들의 매우 강한 군대일 것이라는 생각에, 앞뒤를 잴 필요 없이 달아나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에게 이런 공포심을 일으킨 것은 다분히 초자역적인 권능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 군사들이 적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너희 한 사람이 천 명을 잡게 하리라" 는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공포심을 그들에게 준 것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 때로 큰 두려움을 주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즐거운 위안이 되기도 한다.2. 그들은 서로 뒤엉켜 쓰러졌다. "하나님께서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었다" (22절). 이 혼돈 속에서 그들은 나팔부는 자들과 횃불든 자들이 진 밖에 서 있는데도 그들의 처소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여 옆에 있는 동료를 적군으로 착각하여 서로 찔러 죽였다. 우리는 이처럼 "어떤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아니 하도록 우리의 정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유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어떤 재앙에 처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이처럼 교회의 적들을 자기들끼리 멸하도록 하신다. 그러나 교회의 친구들이 이렇게 파멸한다면 그것은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그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났다. 그러나 날이 밝자 그들은 실수로 인하여 치명적 패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다시 돌아가 이스라엘군을 무찌르기엔 너무 늦은 때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갔으며 300명의 기드온 군사들이 그곳을 점령하게 되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며" (잠 28: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올 것이다" (욥 18:11).
기드온의 승리(사사기 7:23-25)
이 영광스런 승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1. 면직되어 흩어져 있던 기드온의 군사들은 그들의 적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이 비열한 자들을 맹렬히 추격했다. 이 일을 행한 자들은 납달리와 아셀 지파에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그때 그 먼 곳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에 군사로 지원하였으나(6:35), 면직되었던 자들이었다. 싸우기를 두려워하였던 자들은(3절) 이 위험한 고비가 지났을 때 전리품이라도 나누어 가질 양으로 적을 추격하는 일일지라도 전심을 다했다. 다음은 있었으나 싸움이 허락되지 못한 자들이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군에서 면직당한 이들은 역대기하 25장 10,13절에 나오는 "심히 노하여 돌아간" 자들과 는 달랐다. 이들은 전선에 나아가 군대를 비록 도울 수 있는 영예를 거부당했지만, 그 승리를 얻기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2. 기드온의 소집명령을 받아 에브라임 사람들을 합심하여 요단 건너에 있는 여러 냇가에 지켜서서 돌아가는 적군들의 퇴로를 차단하여, 앞으로 다시는 이스라엘에 이와 같은 재앙을 가져오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을 전멸시킬 수 있게 도왔다. 그리하여 살륙당한 그들의 시체는 사방에 있었다(에 6:13). "그들은 나루턱을 취하였다" (24절). 즉 그들은 강 기슭에 잠복하여 도망해 오는 미디안 사람들을 잡으려 했다. 여기에는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숨겨져 있었다(사 24:17).
3. 미디안 군대의 방백 두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에게 잡혀 요단에서 살해되었다(25절). 그들은 갈가마귀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오렙이란 자와 이리라는 뜻을 지난 스엡이란 자였는데,그들의 이름은 아마도 그들의 성품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도망하다가 하나는 "바위 아래" (사 2:21; 계 6:15), 또 한 사람은 기드온이 미디온 사람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하여 밀을 포도주틀에서 타작하던(6:11) 그러한 "포도주틀" 옆에 숨었다. 그러나 그들의 은신처는 그들이 살해당할 장소가 되었으며, 그곳에 "여기에서 미디안의 방백들이 죽었도다" 하는 이름을 붙여 그 후손들에게 영원한 치욕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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