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사사기 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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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학대받는 이스라엘 자손(사사기 4:1-3)

Ⅰ. 본문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다. 그들은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 그들은 여호와 예배를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다. 이것이 그들이 가장 쉽사리 빠지는 죄이다(1절). 여기에서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보자.

1. 타락이 지니고 있는 이상한 힘이 있다. 그것의 파국적인 결과를 너무나 자주 경험하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시 그 죄에 빠진다. 타락의 성향은 막아 내기가 극히 어려운 것이다.

2. 오랜 평화는 흔히 악의 만연을 초래한다. 그 땅은 80년간 태평하였다. 이 기간동안 그들은 마땅히 신앙을 공고히 했어야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 평화가 그들로 하여금 방심하고 방랑케 했으며, 거짓 신들 숭배가 만족을 준다고 생각한 욕정에 탐닉했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자들의 번영은 그 자신들을 파멸시키는 법이다." "여수룬은 살찌게 되면 반역한다. "

3. 선한 통치자들의 죽음이 백성들에게 커다란 손실이 있다. "에훗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악을 행했다." 고 했다. 본문은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그는 그들에게 엄격한 눈으로 살피어 우상 숭배로 보이는 모든 것은 금하고 벌을 내렸으며, 그들을 하나님 예배에 전념하도록 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오히려 에훗을 더 두려워했었기 때문에 그가 떠난 후에는 하나님을 반역했다.

Ⅱ. 이스라엘은 그들의 원수들에 의하여 학대를 당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하나님은 저들을 버리셨다. 그러자 그들은 모든 노략자들의 손쉬운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이 하나님을 멀리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듯이 그들을 멀리하셨다. 하나님 예배에서 떠나는 자들을 하나님의 보호하심에도 떠나게 되는 법이다. 나의 사랑 받는 자가 이렇게 행음하게 되었을 때 "그는 나의 집에서 무엇을 행하였는가?" (렘 11:15). 하나님은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다" (2절). 하솔에 도읍한 야빈은, 아마 이전에 여호수아가 침략하여 배어 죽이고 그의 도성을 불태운 사람과 동명이인이며 아마 그의 후손인지도 모르겠다(수 11:1, 10).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도성은 재건되고 세력은 재규합되어 점차 실지를 회복하고 마침내 하솔의 왕이 되었다. 그리하여 죄로 말미암아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모든 이권을 상실해 버린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게 까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속박의 생활은 이전의 어떤 것 보다 더 오랜 것이었고 훨씬 더 비참한 것이었다. 야빈과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지독하게 이스라엘을 억압했다. 그 억압이 한층 가혹했던 것은,

1. 이 원수의 군대들은 이전의 어떤 적보다 이스라엘과 더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그들에게 피해의 기회가 더 많았던 것이다.

2. 그들은 그 땅 원주민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는 타협할 수 없는 적개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즉 이스라엘이 그 땅에 침입하여 그 땅을 빼앗았으므로 그들이 이스라엘을 자기들의 지배하에 둘 수 있게 될 때는 옛날 싸움에 대한 보복으로 훨씬 더 잔악하게 대했다.

3. 전에는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에게 정복되어 복종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리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선고된 예언이었다(창 9:25). 그래서 지금도 저들은 이스라엘의 발 아래 있어야 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무런 불안을 끼칠 수 없었어야 마땅했다.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의 태만, 비겁 그리고 불신앙만 아니었더라면 가나안족들은 그렇게 큰 세력을 획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기 조상들이 정복했던 자들을 자기들이 어리석게도 남겨 두었다가 그들에 의하여 압제를 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Ⅲ. 이스라엘은 저들의 하나님께 돌아갔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통이 하나님께로 자기들을 몰고 가게 되고, 다른 아무런 구제책이 없게 되자 비로소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자기들이 번영할 때 하나님을 무시한 자들은, 곤고를 당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때를 경험할 것이다.

 

4:2 없음.

 

4:3 없음.

 

4:4

드보라와 바락의 계획(사사기 4:4-9)

드디어 이스라엘이 야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 구원받을 때가 왔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 억압자들의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극심한 학대를 받고 있던 북쪽의 지파들이 특히 하나님께 크게 부르짖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난한 자에 대한 학대와 궁핍한 자의 한숨을 들으시고 이제 하나님께서 일어나셨다."

Ⅰ. 드보라의 예언자로서의 활약과 치리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좋은 준비였다(4,5절). 그녀의 이름은 꿀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그 이름처럼 부지런하고 지혜로왔다. 즉 그녀의 백성들에게는 부드러웠고 적에게는 날카로왔다. 그녀는 "랍비돗의 아내" 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이름은 남자들의 이름 중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없으므로 지명이라고 생각하는 자도 있다. 그래서 그녀는 "랍비돗의 여자" 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랍비돗을 보통 명사로 보아 등들(lamps)을 뜻한다고 본다. 유태의 율법 학자들에 의하면, 그녀는 성전의 등의 심지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였었다. 하나님을 위한 극히 보잘것 없는 일을 하였던 그녀가 후에는 이렇게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혹은 드보라는 매우 지식이 많고 지혜로운 자로서, 그 백성들을 밝혀주는 조명 또는 광채의 여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이제 드보라가 행한 일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녀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맺고 있었다. 그녀는 여선지자로서 성령의 감화로 인해 거룩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었고, 지혜의 은사를 받는 자였다. 이 모든 것은 결코 평범한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고 했다. 따라서 아마 그녀가 전능자의 환상을 보았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2. 그녀는 이스라엘을 섬기는 일에 전념을 다했다. 야빈이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있던 시기에 그녀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아마도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에 야빈은 그녀가 하는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여군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변자인 여선지자로서 특별히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계하고 그들의 재난을 수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사방에서 그녀에게로 와서 재판을 받았다. 그것은 인간들 간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관계된 일들 중에 있었던 어떤 잘못을 시정하는 조언을 주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이웃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고 불경건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서 어디에 이 일을 호소하여 막아야 할지를 몰라 한탄하던 자들이 이제는 드보라에게 와서 이런 일들을 고하였다. 이에 대해 드보라는 성령의 검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판결을 알려 줌으로써 많은 잘못을 시정하였으며, 각 지방 치리자들은 율법을 엄중히 실행하도록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다. 그녀는 종려나무 아래에 거하였으며 혹은 어떤 학자들의 말대로는 앉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후 이 나무는 드보라의 종려나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그녀는 이 나무 아래에 보잘것 없는 거처를 마련하여 살고 있었거나, 아니면 정의를 상징하는 이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마련해 놓고 옥외에서 재판하는 일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억압받고 있는 종려나무와도 같이 모든 악조건을 이기고 점점 번성해졌을 것이다. 조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드보라에게 와서 이스라엘이 야빈의 손에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줄 것을 그녀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요청을 이스라엘에서 받은 어느 특정 시기에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을 판결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다(삼상 7:6, 8).

Ⅱ.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졌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그에게로 나아가 재판을 받을 때에 그들은 그녀에게서 구원을 찾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는 자는 은혜와 평화, 은혜와 위로 그리고 은혜와 영광을 얻을 것이다. 그녀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 자신이 직접 군대를 지휘하기에 적합치는 않았지만 납달리 지파의 출신 바락을 그 일에 합당한 인물로 지명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바락은 아마도 그의 주위에 있는 적군들을 여러번 무찔러서 (왜냐하면 하솔과 하로셋은 납달리 지파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두각을 나타내었고, 그의 백성들로부터 명성을 얻고 있었을 것이다. 이 용맹한 자는 압제자들의 굴레를 떨쳐 버리기 위해 열심히 싸웠으나 드보라의 명령이나 지시 없이는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바락은 드보라의 머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녀도 역시 바락의 손 없이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둘이 힘을 합하였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구원할 수 있었다. 자급자족이 아니라 상부상조가 가장 위대하고 좋은 일이다.

1.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녀는 바락에게 명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시스라가 지휘하고 있는 야빈의 군대를 물리치도록 하였다(6,7절). 바락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적을 물리치는 큰 일을 해내기 위해 줄곧 깊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결한 불꽃이 그의 가슴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그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기꺼이 행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일로 인하여 주저하고 있었다.

(1) 그에게는 군사들을 모을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그러므로 드보라는 여선지자의 권능으로써 그에게 하늘의 옥새를 주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 하셨느냐? 하나님은 확실히 명하셨다. 그러니 나의 말대로 행하라.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바락을 충동시키기 위해 이 말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네 자신에게 은밀히 그의 목적을 알리시고 너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구원할 도구로 쓰시리라는 것을 말씀하시지 아니 하였느냐? 너는 네 자신의 영혼에 이런 충동을 느끼지 못하였느냐?" 만일 느꼈다면, 드보라의 예언의 영이 바락에게 있는 군사의 영을 환신시켜 주었을 것이다. "다볼산으로 가라."

[1] 그녀는 바락에게 몇 명의 군사들을 모아야 할지 알려 주었다. 그녀는 그로 하여금 만명의 군사를 모으도록 하고, 이 수가 적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을 약속해 주셨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2] 어디에서 그들을 모아야 할 것인지도 알려 주었다. 그는 자기 지파와 스블론 지파에서만 군사들을 모아야 했다. 그는 이두 지파의 군사로 충분했으며, 더 많은 군사를 모으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3] 그녀는 그가 어디에 군사들을 집결시켜야 할 것인지를 알려 주었다. 즉 그는 그의 이웃에 있는 다볼산에다 기지를 마련해야 했다.

(2) 그는 군사들을 일으켰으나 어떻게 적을 무찌를 기회를 얻어야 할지 몰랐다. 만일 적을 칠 수 있는 용기만 갖고 있다면, 이스라엘은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는 소문을 들은 적군은 아마도 싸우려 하지 않을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드보라는 말했다. 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시스라와 그 무리를 네 손에 붙이리라. 그녀는 그에게 이 싸움은 오래 걸리지 않고 일격에 끝이 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1]적군의 명장 시스라는 용감하고 노련했으며, 그는 훌륭한 철병거를 갖고 있었고, 거대한 군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따라서 적군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만큼 그녀는 그에게 단단히 마음의 무장을 하도록 일러 두었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여 미리 준비하여 두는 것이 좋다.

[2] 시스라가 그의 군대를 이끌고 어느 곳에 이를 것인지를 알려 줌으로 써, 드보라는 바락으로 하여금 싸움에 임할 때에 그의 믿음을 확고히 하도록 해주었다. 시스라가 집결한 곳은 시스라 자신의 의지에 따른 우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후에 바락이 드보라가 말한대로 이 일이 이루어진 것을 알고 그녀가 말한 그 나머지 일들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루어 지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며, 특히 그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더욱 위로 받을 수 있었다. 즉,

[3] 그녀는 그에게 확신에 찬 약속을 들려 주었다. 내가 (즉 하나님의 이중으로 말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네 손에 붙이리라고 했다. 그리하여 바락은 드보라의 말대로 시스라가 그의 무리를 이끌고 그곳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그들이 곧 패하게 되리라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오직 그들을 그(바닥)의 손에 붙이기 위해서만 그들을 이끄셨다는 점을 주목하라. 시스라는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해 그의 군사들을 이끌고 오지만 이스라엘께서 도리어 그들을 멸하시기 위해 곡식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신 것이었다(미 4:11, 12). "너희 민족들아, 모이라 그러나 필경 패망하리라" (사 8:9; 계 19:17, 18 참조).

2. 바락의 요청에 그녀는 그와 함께 싸움터에 나가 줄 것을 약속했다.

(1) 바락은 그녀가 함께 있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녀가 동행하는 것은 실상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전략 자문보다 더욱 든든한 것이었으리라(8절). 내게 충고해 주고 지시해 주며 어려움에 처할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기 위해 당신이 나와 함께 간다면 내가 가려니와, 그렇지 않다면 나는 가지 않겠나이다. 어떤 자들은 이 말이 그의 약한 믿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즉 이 일을 하기 위해 그가 그녀를 담보로 잡지 않는 한 그녀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끊임없는 지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드보라가 함께 해 줄 것을 진지하게 간청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욱 타당한 견해일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로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그에게 있어서는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모든 경우에 신탁으로 의논해 주는 그 여선지와 함께 하는 것보다 더욱 만족스러운 것은 없었다.

(2) 드보라는 그와 함께 갈 것을 약속해 주었다(9절). 그녀는 자기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수고도 아끼지 않았고, 어떤 두려움에도 낙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고 싶지 않는 곳에는 그도 보내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불러 일을 명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들을 도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드보라는 약한 그릇(여인)이었지만, 강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녀가 바락과 함께 가는 것을 동의하긴 했지만 그녀는 바락에게 이 일을 자신의 영광으로 주장하지 않도록 미리 충분한 암시를 주었다. "네가 이제 가는 일(여행:字意)로는 (그녀는 이 일이 성공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싸움터로 가는 것을 단순히 여행하는 일에 견주고 있다.) 영광을 얻지 못하리라. 비록 너 혼자 간다 해도 그 영광은 네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시스라를(2절에서는 이스라엘은 그의 손에 팔았지만, 이제는 그 보복이 시스라에게로 돌아왔다.)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기 때문이다."

[1] 드보라는 그녀에게 승리가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여 바락 자신이 미리 알도록 하였다.

[2] 하나님은 (그의 연약함을 바로 잡으시기 위해) 야일의 손에 의해 승리를 완성토록 하셨으며, 그 일로 인하여 바락의 영광은 다소 감소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락은 이 말에 만족하였고 그의 영광보다도 이 일의 승리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결코 그의 임무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명령을 주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는 드보라가 함께 하려 하지 않는 한, 감히 싸우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말은 그에게 큰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므로 이 고귀한 여주인공을 "일어나 바락과 함께 갔다."

 

4:5 없음.

 

4:6 없음.

 

4:7 없음.

 

4:8 없음.

 

4:9 없음.

 

4:10

시스라를 무찌름(사사기 4:10-16)

Ⅰ. 바락은 지원병을 모집했다. 그러자 곧 할당된 인원이 다 찼다(10절). 그들은 주로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인들이었으나, 드보라의 노래를 보면, 다른 지파에서도 온 것 같다(5:14-17). 그리고 남부 유다 광야에 살던 겐 족속 중 헤벨가(家)의 이사를 말하고 있는 11절은 그 집안의 야엘이란 여인이 세울 공적 때문에 미리 나온 것이다.

Ⅱ. 시스라는 무수히 많은 막강한 군사들을 집결시켰다(12,13절). 그 당시 야빈과 헤벨의 집과는 화해하고 있었기 때문에(17절), 그들은 시스라에게 바락이 군사들을 집결시켰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들이 시스라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이 일을 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뭏튼 그것은 하나님이 드보라를 통해 말씀하신 일을 이루는 역할을 해주었다. "내가 시스라를 붙이리라" (7절). 시스라는 주로 그의 병거들에 대해 큰 자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900대의 "철병거" 가 특기되어 있다. 이 철병의 굴레에는 낫을 끼워 바락의 보병들을 추격하여 잔인하게 죽이려 하고 있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독창력은 서로를 멸하는 방안을 만들어 내어 "전쟁과 싸움으로부터 오는" 욕정을 만족시킨다.

Ⅲ. 드보라는 교전 명령을 내렸다(14절). 조세푸스에 의하면, 시스라가 자기의 군사들을 몰고 와 산꼭대기에서 진을 치고 있는 바락의 군사들을 포위하려는 것을 본 바락은 아주 낙심하여 보다 안전한 장소로 후퇴해 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보라는 이 날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스라의 군대를 물리치는 승리의 날로 예정된 날임을 확신시켜 줌으로써, 바락을 격려하여 시스라를 급습하게 했다. "그리하여 매우 위협적인 태세를 갖추고 출현한 그들에게 멸망의 때가 왔다. 앞으로 되어질 일은 과거지사 처럼 명확했다."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셨노라." 이 큰 일을 해내기 위해 드보라와 바락이 어떻게 업무를 분담하고 있는가를 보라. 즉 드보라는 머리로서 "명령을 하고", 바락은 손으로서 "일을 행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의 은사를 골고루 분배해 주신다(고전 12:4 이하).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긴 하지만" (고전 11:3), 성령의 임재를 받은 자는 서로 손을 맞잡는 것을 기뻐하며, 드보라가 바락과 함께 한 것은 그에게 퍽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바락에게 부족된 것을 보충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1. 드보라는 그에게 "오늘이 그 날이다" 라고 말해 줌으로써, 바락의 행동에 결여되어 있는 것을 보충해 주었다.

2. 드보라는 그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시켜 줌으로써, 용기를 보충해 주었다.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 하시느냐? 하나님께서 너의 인도자가 되시는데 네가 용감히 따르지 않겠느냐?"

(1)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중에 겪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앞서 가시며 우리는 그의 인도하심 하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만족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2)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행하신다는 소망을 지닌 자는 용감하게 그리고 기쁘게 그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사탄과 싸워 고통당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더라도 결코 당황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라.

Ⅳ. 하나님께서 친히 그 적군을 패하게 하셨다(15절). 비록 싸움터에는 철병거나 바락을 위협했지만, 그는 거룩한 권능을 의지하고서 산에 있는 그의 요새를 떠나 드보라의 명대로 골짜기로 내려갔다.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버리는 구원은 헛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만 있다" (렘 3:23).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시스라를 패하게 하셨다" 고 했으니, 바락의 신뢰는 기만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무서운 힘이 적군들의 영혼을 잡아 이상한 혼돈 속으로 몰아 넣었으니 만큼 바락이 적진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사기가 죽고 도망치려 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별들도" 하늘에서부터 그들의 편을 들어 싸운 것 같다(5:20). 조세푸스에 의하면, 거센 우박 줄기가 그들의 얼굴을 때려 그들은 꼼짝하는 수 없이 도망가야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쉽사리 이스라엘군의 희생물이 되었고, 드보라의 말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붙이셨도다. 그러니 이제 너는 권능으로 그들을 치게 될 것이다."

Ⅴ. 바락은 이 기회를 용감히 이용하였다. 확고한 결단과 지칠 줄 모르는 끈기를 가지고 적군을 패주시켰으며, 적장의 숙소인 하로셋까지 추적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붙여 주시어 멸하게 될 자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죽였다. "남은 자가 없었다" 고 했다. 우리의 영혼이 싸우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신다면, 우리도 분발하여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우리 영혼의 적을 이기도록 해주실 때, 우리는 신중한 결단력을 가지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용맹스럽게 거룩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4:11 없음.

 

4:12 없음.

 

4:13 없음.

 

4:14 없음.

 

4:15 없음.

 

4:16 없음.

 

4:17

시스라의 죽음(사사기 4:17-24)

우리는 가나안 사람들의 군대가 완전히 패한 것을 보았다. 그들은" 땅위의 쓰레기처럼" 되었다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적군을 패하게 하여 주실 것을 간구할 때 이 전례를 들어 후손들이 탄원하였다(시 83:9, 10).

Ⅰ. 적장 시스라는 완전히 패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왕 야빈은 그들이 이기리라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이 싸움터에 나오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면 이제 이 장수가 유력한 자가 몰락한 행적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1. 그는 그의 병거도 버리고 도보로 도망하였다(15,17절). 그는 병거에 대하여 큰 자만과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사가 자기의 군대처럼 말이나 병거를 하나도 갖지 않은 보병인 것을 알고 무시하고 경멸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가 자신의 교만을 부끄러워하게 되었으며 그 교만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귀절이다. 그 누구의 것보다도 시스라의 병거는 잘 만들어졌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이제 그것을 버리는 편이 안전하고 편하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피조물에 기대를 건자는 실망하게 된다. 그것은 부러진 갈대처럼 그들의 손에 의해 부러질 것이지만 또한 그 손을 꿰뚫고 많은 고통을 줄 것이다. 우상은 즉시 무거운 짐이 되며(사 46:1), 우리가 신으로 추구하던 것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리라. 시스라가 이제 병거에서 내린 모습을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그의 얼굴이 수치로 해서 얼굴이 붉어졌는지 아니면 분노로 해서 떨고 있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쉽사리 이런 꼴을 당하거나 얼마 전에는 자기의 팔을 깊이 신뢰하다가 잠시 후에는 간신히 자기의 발뒤꿈치를 믿어야 하는 그런 군주들을 결코 신뢰하지 말라.

2. 시스라에게는 어떤 요새도 또 자기 몸을 숨길 만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겐 사람들의 장막으로 도망갔다. 그는 전에 이 보잘것 없고 고적하게 살고 있는 겐 사람들을 비웃었고, 더우기 그들이 신봉하고 있는 종교를 조소했었지만 이제 그는 이러한 자들의 장막 속에 숨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헤벨의 아내 장막에 숨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른 곳 보다 덜 의심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17절). 그가 이 곳으로 올 용기를 가진 것은 그 때 그의 주인과 헤벨의 집이 서로 화목하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그들 사이에 공수 동맹은 없었으나 그가 숨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여기 밖에 없었다. 야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것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고 확대를 가하지 않았고, 그들의 단순하고 조용하고 해함이 없는 생활은 의심할 필요도 또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도 하나님은 참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신 것인지도 모른다. 시스라는 그들이 비록 야빈에게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들에게 숨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3. 야엘은 그를 안으로 맞아 매우 환영해 주었다. 아마도 그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싸움의 결과를 군사들에게 묻기 위해 장막 문간에 서 있었을 것이다.

(1) 그녀는 그를 맞아들였다. 아마도 그녀는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 군사가 지나가면 그에게 친절을 베풀어주고자 이렇게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급히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시스라를 보자. 그녀는 그를 그녀의 장막으로 맞아들여 쉬게 했다. 그녀가 이렇게 시스라를 쉬게 한 것은(18절), 그로 하여금 그 장막에 더 지체하게 한 다음, 그를 추격하여 올 바락의 손에 시스라를 넘겨주려 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처음부터 시스라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후에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움직여 그렇게 하도록 했는지는 알 수 없다.

(2) 그녀는 마치 초대한 손님처럼 그를 정성을 기울여 대하였고, 그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지쳐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그가 기운을 회복할 때 까지 푹 쉴 수 있는 편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갈증을 느끼고 있던 모양이다. 시스라가 목을 축이려고 시원한 물을 좀 달라고 할 때, 그녀는 자기 장막 안에 마련해 둔 최상의 음료를 제공했다. 그것은 곧 우유였다(14절). 아마 시스라는 이 우유를 정신없이 들이켜 숨을 돌린 후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그는 추위를 느꼈거나 감기들 것을 염려했었는가? 아뭏든 그녀는 그를 담요로 덮어 주었다. 이렇게 그녀는 그의 안전을 위해 성의를 표해 주었다. 그러나 단지 시스라가 그녀에게 누가 자기를 찾거든 이곳에 없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일렀을 때(20절), 그녀는 그러한 약속을 거절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거슬려 죄악을 범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그들에게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을 거슬러 그들의 말을 들어주어서도 안 된다.

끝으로, 우리는 그녀가 그를 빨리 잠이 들 수 있게 하기 위해 주위를 될 수 있는 한 아주 조용히 했을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시스라는 지금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가장 위험한 때에 처한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란 얼마나 불안정하고 불분명한 것인가? 우리가 믿는 자도 쉽게 우리를 배반할 수 있고 우리를 보호해 주기를 바라는 자들도 우리를 파괴하는 자들임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인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결국은 하나님을 우리의 친구로 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우리를 속이시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4. 그가 깊이 잠들었을 때 야엘은 장막의 말뚝으로 그의 살을 꿰뚫어 죽였다(21절). 그리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5장 26절에 의하면, 그녀는 이 일을 더 확실히 해 두기 위해 그 말뚝으로 그의 목을 잘라 놓았다. 그녀가 그를 맞아 들였을 때부터 이러한 계획을 품고 있었는지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그가 그녀에게 편리하게 거짓말 하도록 시켰을 때 그녀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살인자이며 파괴자인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찬란하고 거룩한 빛 줄기가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와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이일을 하도록 인도했을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사악함이나 미움, 그리고 개인적인 복수심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1) 그녀로 하여금 이러한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그녀에게 남자보다도 더 큰 용기를 불어 넣어 준 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능이었다. 만일 그녀 혼자의 힘으로 이 일을 행한 것이라면, 말뜻으로 그의 살을 꿰뚫는 일을 못 했을 것이다. 또 그녀가 이 일을 하려 할 때 그가 깨어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그의 부하가 그를 따라와 이 일을 목격하게 된다면 그녀와 그녀의 식구들이 이것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신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 일을 성공적으로 행할 수 있었다.

(2) 그녀의 행동을 정당화해 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의 근거였다. 따라서 이것은 특별한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결코 모방되어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웃에 대한 우애와 친절을 명하는 율법은 경건하게 잘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초대하고 우리를 신뢰하고 있는 자들을 배반하는 생각들은 결코 가지면 안 된다. 그러나 야엘의 이 행위에 대하여(앞장에서 나온 에훗의 행위와도 같이), 우리는 그녀가 거룩한 충동에 의하여 이 일을 행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매우 만족스럽게 여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매우 심오하다. 하나님의 판결을 집행하는 도구로 쓰여진 것은 장막을 고정시키고 있던 하나의 말뚝이었다. 그들은 자주 장막을 옮겼으므로 그녀는 이 말뚝들을 뽑아 내는데 익숙하였다. 그러므로 이 같은 큰 일을 당하여 민첩하게 해 낼수가 있었다. 이처럼 철병거로 이스라엘을 멸하려던 시스라 자신이 또 하나의 철말뚝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 보잘것 없는 것들이 강한 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엘의 영광과 시스라의 수치를 볼 수 있다. 즉,

[1] 이 위대한 적장은 자는 도중에 죽어 버렸다. 그는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 빠져 있었으므로 반항하기는 커녕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는 잠의 사슬에 묶여 있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이처럼 "마음이 강한 자는 탈취 당하였도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은 잠에 빠졌으며" (시 76:5, 6), 그 잠 속에서 그들은 죽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한 자라도 자기의 힘을 자랑하지 말라. 그가 잠들면 그의 힘은 약하게 되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는 어린아이도 그를 모욕할 수 있고 그의 생명을 빼앗을 수가 있다. 또 그가 비록 잠들지 않더라도 그 힘은 곧 소비되고 그는 피로하게 되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그가 곤비하여져서" 라는 귀절을 모든 옛 사본들은 달리 해석하고 있다. 아람역과 아랍역에는 "그는 몸부림치다 죽었다" 고 했으며, 시리아역에는 "그는 기절하여 죽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70인역에는 "그는 혼미하여 죽었다고" 되어 있다. 또한 라틴어 벌게이트역에 따르면, 그가 잠과 죽음이 얽힌 상태에서 죽었다고 표현되어 있다.

[2] 그를 죽인 말뚝은 그의 머리를 꿰뚫고 땅에 박혔다. 이것은 그가 속세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홀(Hall) 주교의 견해에 따르면, 그의 귀는 땅에 밀착되어 있어서 마치 그의 몸이 그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3] 그는 여인의 손에 의해 죽었다. 이 사실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죽음을 더욱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이 사실을 아비멜렉(9:54)처럼 알았다면 그는 아마 매우 분개했을 것이다.

Ⅱ. 이 승리는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기쁨이었다.

1. 바락은 그의 적장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고(22절), 그의 적이 혼비백산됨으로써 그의 일이 잘 행하여져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매우 기뻐하였을 것이다. 만일 그가 자기의 명예에 집착했었다면, 적장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 것을 모욕이라고 생각하여 매우 분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드보라에게 같이 가자고 고집했을 때 자기의 일의 영예가 감소되고 말리라고 했던 선언(" 여호와께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라")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는 그 전까지는 그 예언이 이렇게 실현되리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었다.

2.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왕 야빈의 손에서부터 완전히 구원받게 되었다(23,24절). 그들은 이 날의 승리로 해서 그의 속박을 벗어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대로 야빈과 그의 백성들을 공격하여 한 사람의 군사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 버렸다. 전에 이스라엘은 어리석은 동정 때문에 이 일을 행하지 못하여 그들 자신이 고통을 받았지만, 이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준 자비에 배반당한 백성이므로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백성이므로 더 이상 적들의 만행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마지막 두 귀절은 적의 이름이 3번이나 나오며 그를 "가나안의 왕" 이라고 청했다. 그것은 아마 저들이 행한 행적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멸망되었고 또 철저히 멸망되고 말았으므로 이 일 후에는 가나안 왕들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어 그들에게 쳐부술 수 있는 힘을 허락해 주셨을 때 빨리 가나안을 멸했었다면 큰 재난을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하지 않은 것보다는 늦게라도 행하여 경험속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었으니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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